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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P 시리즈]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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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1, 2018 03:27에 작성됨.

시마무라 우즈키(上)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월의 초입에 들어선 어느 날.

 

 

CG프로덕션의 별관에 위치한 미시로 상무의 집무실에서는 상무와 마스터 트레이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상, 연습생들에 대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그래.”

 

결재판 속에 든 서류를 빼낸 뒤, 빈 결재판을 다시 마스터 트레이너에게 건네려던 상무는 잠시 멈칫하고는 고개를 들어 마스터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만.”
“말씀하십시오.”
“네 의견은 어떻지? 그 아이.”
“제 의견 말입니까? 글쎄요…….”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답지 않은 모습에 상무의 눈썹이 작게 움직였다.

 

“대답하기 힘든가? 그 남자가 입막음이라도 지시하던가?”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멋대로 평가해도 좋을지.”
“상관 없다. 내가 묻는 질문에 답하도록.”

 

“알겠습니다.” 상무의 단호한 어조에 마스터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이너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라. 구체적으로는?”
“말씀 드렸다시피 테크닉도, 피지컬도 연습생들 중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발목을 잡고 있어요.”
“자각은 있던가?”
“……나름대로 자기 혼자서 이것저것 해 보려고 하는 모양입니다만, 그게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스터 트레이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단어를 선택하는 것인가, 그녀의 앞에서 잠시동안 입술을 달싹거리던 마스터 트레이너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답답합니다.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그렇군. 잘 알았다.”
“상무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결국은 프로듀서가 진행하는 일이다. 그 남자도 무언가 생각이 있으니 그 아이를 내세운 것일 테고.”
“신용하고 계시는군요, 그 남자를.”
“신용이라…….”

 

상무는 마스터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마스터 트레이너, 넌 아이돌이 뭐라고 생각하지?”
“아이돌 말씀이십니까?”

 

상무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보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그 질문을 그 사람에게도 하셨습니까?”
“물론.”

 

상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하던가요?”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더라도 한 번쯤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더군.”
“……난해한 말이군요. 매력을 돌려 말하는 걸까요.”
“글쎄, 그건 본인이 알고 있지 않을까.”

 

상무는 빈 결재판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 건에 대해서는 계속 지켜보도록 하지. 그 아이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모니터링 하도록.”
“네. 그럼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상무에게서 결제판을 받아 들고 마스터 트레이너는 작게 고개를 숙인 뒤 집무실을 나섰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문이 닫히고, 집무실 안에는 고요한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번쯤은 직접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상무는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를 바라보았다. ‘연습실 사용 내역’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 종이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즈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종이를 바라보던 그녀는 눈을 감고, 언젠가 프로듀서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 되면 멘탈은 피지컬을 잠식합니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혹사도 필요한 법이에요. 멘탈이든, 피지컬이든.

 

”……그래, 더 늦기 전에 말이지.”

 

다시 눈을 뜬 그녀는 책상 한 켠에 놓인 달력을 바라보았다. 행사까지는 아직 4주에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었다. 결코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촉박한 것 또한 아니었다..

 

 

 


시마무라 우즈키 <Like a Fastball>

 

 

 

린, 미오와 함께 ‘뉴 제너레이션즈’를 구성하기로 결정된 다음 날부터 저희들에게는 무거운 과제가 산더미처럼 밀려왔습니다. 단체곡의 센터 파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안무와 스텝, 그리고 오프닝 무대에서 부르게 될 우리들의 새로운 노래까지. 마치 예전 프로덕션에서 활동하던 시절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연습을 마친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 시각이었지만, 저는 연습실에 남아 베테랑 트레이너 씨에게서 보충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오른발, 왼손, 돌고, 원위치! 그래!”

 

짝, 짝, 짝. 베테랑 트레이너 씨의 박수 소리가 마치 메트로놈처럼 주기적으로 연습실 안에 울려 퍼집니다. 저는 그 박수 소리에 맞춰, 몸이,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동작을 하나 둘씩, 순서대로 꺼내놓았습니다. 

 

“표정이 굳었다! 동작이 완벽하면 뭐 하나? 아이돌의 생명이 뭔지를 기억해! 기본을 잊지 마!”
“네, 네!”

 

아차, 하는 순간 트레이너 씨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뒤늦게 거울을 바라보면 처음에 짓고 있던 희미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처음의 희미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습니다.

 

“지금은 동작이 늦어! 집중해! 하나! 둘! 셋! 넷!”
“네엣!”

 

어떻게든 안무의 마지막 동작까지 마치고 저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무릎을 짚고 서서 숨을 고르고 있자니 베테랑 트레이너 씨가 다가오셨습니다.

 

“슬슬 힘들어 보인다만. 더 할 수 있겠나?”
“괘, 괜찮아요……! 아직, 할 수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는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힘을 넣어 가까스로 자세를 잡고 일어섰습니다. 베테랑 트레이너 씨는 그런 저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한다.”
“네?!”
“더 이상 하는 건 명백한 오버워크다. 프로듀서 씨도 계속해서 강조했을텐데? 테크닉보다 중요한 건 컨디션을 유지하는 거라고.”
“그, 그랬지요…….”

 

정론이었습니다. 저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하고 쉬어라. 단, 정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오늘 했던 것을 계속 머릿속으로 곱씹어 봐. 이미지 트레이닝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몸을 돌려 연습실을 나서는 트레이너 씨를 향해 허리를 숙였습니다. 연습실의 문이 닫히고, 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습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하아…….”

 

힘을 빼기가 무섭게 팔과 다리가 덜덜 떨려왔습니다. 간단하게 마무리 운동을 마친 저는 연습실을 나와 샤워실이 있는 탈의실로 터덜터덜 향했습니다.

 

 

 


 

 

 

“으으, 늦었다……경비 아저씨한테 또 혼나겠어…….”

 

샤워를 마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을 나온 우즈키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1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입구 근처에 마련된 휴게실을 지나던 그 때, 그녀는 별안간 들려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마무라 우즈키.”
“네?”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자 자판기 옆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단정하게 올려 묶은 머리카락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눅마저 들게 만드는 강렬한 화장이 인상적인 그녀는 우즈키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시간까지 혼자서 연습하는 건가?”
“네,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어서요.”
”흠, 고생이 많군. 그나저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아……네…….”

 

한겨울의 바깥 공기만큼이나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듯한 그녀의 말에 우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상무는 복도 안쪽을 슬쩍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장소를 옮기지. 슬슬 트레이너들도 집에 가야 할 테고.”

 


****

 

 


일언의 말도 없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상무의 뒤를 따라간 우즈키가 도착한 곳은 프로젝트의 사무실 옆에 위치한 상무의 집무실이었다. 집무실 가운데 설치된 접대용 소파에 우즈키를 앉힌 상무는 그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시마무라 우즈키’.”
“네, 넷!”
“이름을 부른 게 아니다.”

 

그제서야 우즈키는 상무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수첩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거기에 적힌 내용을 읽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즈키는 얼굴이 화끈해지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2년 전, 연습생 신분에서 K프로덕션으로 소속 변경, 그 해 11월에 와일드 카드 자격으로 솔로 데뷔하여 곧바로 유닛에 참가……흥, 시시한 수작을 부리는군.”

 

“뭐, 지난 일에 연연할 건 없지.” 콧방귀를 뀌며 수첩의 페이지를 넘기던 상무는 수첩에서 눈을 떼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우즈키를 바라보았다. 우즈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군?”
“네, 네? 아, 저, 그게…….”
“이건 너희 프로듀서가 작성한 ‘스카우트 리포트’의 사본이다. 너희들 개개인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와 그 나름대로의 주관적인 분석이 들어 있지.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 있더군. 오늘 할 이야기도 그것 과 연관되어 있다.”
“어떤 내용……인가요?”
“데뷔한 지 반 년째가 되던 여름을 기억하고 있나?”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더듬던 우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년 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즈키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그녀의 호흡과 심장박동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상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너는 오디션에 단 한 번도 합격을 하지 못했다. 그 전까지는 트라이어드 프리무스에 비견되는, 8할이 넘는 합격률을 자랑하던 네가 말이지.”

 

상무의 말을 듣는 순간, 우즈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될 비밀을 들켜버린 것이었다. 목덜미에 맺힌 식은땀이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렸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손에 들린 수첩을 바라보던 상무는 그런 우즈키의 모습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 여름날에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딱히 캐물을 생각은 없다. 흥미도 없고, 내가 알 필요도 없지.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건 있어.”

 

그녀는 수첩을 집어넣고 고개를 들어 우즈키를 바라보았다. 저물어가는 석양을 등진 그녀의 눈빛이 우즈키에게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트레이너들의 보고를 들어보면 너는 썩 괜찮은 인재다. 재능도 적당히 있고 경험도 있다고 하더군.”
“그, 저……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 트레이너들의 보고서를 보면 썩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 뭐가 문제지? 같은 유닛을 짜고 있는 아이들이 문제인가?”
“아, 아뇨! 절대 아니에요! 그 아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전부 제가 모자라서……!”
“뭐, 그건 그렇다고 치지.”

 

상무를 올려다보며 두 손을 내젓던 우즈키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신인 오디션에서 지원동기를 묻는 심사위원들에게 너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지?”
“네, 네…….”
“그럼 너에게 묻지. 너는 아이돌이란 게 뭐라고 생각하나?”
“네……?”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말을 듣던 우즈키는 상무의 질문에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생각하는 아이돌이 뭐냐고 물었다.”
“그……그게…….”

 

우즈키는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상무의 시선을 피해 이리저리 눈길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상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이돌이란 저 하늘의 별과도 같이 사람들에게서 목표가 되어야 하는 존재라고.”

 

우즈키는 상무의 말에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짙은 감색으로 바뀌어가는 밤하늘에는 흐릿한 구름 사이로 미약한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허나, 너희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하더군. 아이돌이란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너는 어느 쪽이지? 사람들이 돌아보는 쪽인가, 아니면 사람들로 하여금 바라보도록 하는 쪽인가?”

 

상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 프로듀서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겠지?”
“네…….”
“그는 유능한 인재야. 나도 10년 넘게 이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만한 인재는 지금까지 찾아볼 수가 없었어. 타카가키 카에데도, 카와시마 미즈키도, 그리고 사기사와 후미카도. 일견 아이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그 남자의 인도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우즈키는 묵묵히 상무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런 그가 너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자리가 너이기에 맡을 수 있는 자리라고 말이지.”
“네……?”
“’현실을 보라’고 몇 번이나 설득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어.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는가 궁금해질 지경이더군. 너는 어떻지? 네가 생각하기에, 자기 자신에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저, 저는……그게…….”

 

상무의 눈길을 피해, 시선을 내리깔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우즈키는 별 다른 말을 찾지 못한 듯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상무의 눈썹이 꿈틀, 하고 움직였다.

 

“네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네 스스로가 직접 증명해 봐라. 그 남자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그의 믿음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제, 제가요……?”
“그래. 네가 직접.”
“하, 하지만 저는…….”

 

“정 짊어지지 못하겠다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우즈키의 말허리를 자르며 상무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 짊어지지 못하겠다면……내려놓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 먹구름 뒤에 숨어 있는 별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법이니.”
“그, 그럴 수는……!”
“그게 싫다면 증명해 보여라. 네 가치를. 너를 믿는 프로듀서의 가치를. 잿더미에 뒤덮인 네가 신데렐라인지, 아니면 평범한 동네 아낙네인지를.”

 

침묵 속에서 우즈키는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무는 시선을 내려 우즈키의 무릎에 놓여 있는 그녀의 두 손을 보았다. 자그마한 두 손은 언제부터였는지 굳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래. 내 용건은 여기까지다. 혹시 따로 용건이라도 있나?”

 

우즈키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라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 상무는 소파에서 일어나 집무실의 창가에 설치된 그녀의 업무용 책상으로 향했다.

 

“오늘 수고 많았다. 이만 들어가서 푹 쉬도록.”
“네, 말씀 감사합니다…….”

 

우즈키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집무실을 나갔다. 찰칵, 하는 조용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방 안에 혼자 남은 상무는 의자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땅거미마저 저문 하늘은 새까만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정도면 적당히 자극이 되었을 테지…….”

 

불야성의 불빛을 뚫고 비치는 어스름한 별빛을 바라보며 그녀는 언젠가 프로듀서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저는 톱 아이돌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취향이 있고, 얼마나 많은 수요을 만족시키느냐에 걸리는 거죠.
-시마무라는 시부야나 혼다에 비하면 성질이 조금 다르죠. 시마무라는 스프레이처럼 많은 이들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것이 가능한 아이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시마무라를 믿습니다. 그 아이는 분명 평범한 아이이지만, 그렇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테니까요.

 

그것은, 우즈키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나 참, 이래서야 완전히 악역이군. 어쩌다 내가 이런 꼴이 됐는지……이래서는 그냥 계모가 아닌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크게 기지개를 켠 뒤, 상무는 책상 위에 설치된 전화기로 손을 가져갔다. 멀쩡한 사람을 악당으로 만들어 놨으니, 그 대가는 당사자에게 지불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어디, 오늘은 어디를 가 볼까.”

 

그녀의 혼잣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전화기의 스피커를 통해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신데렐라 걸즈 총괄 프로듀서 P입니다.]
“아, 나다. 저번에 얘기했던 그 가게 말이다만. 지금 시간 되나?”
[네? 지금 말입니까?]
“그래. 안 돼나?”
[아, 아뇨. 안 되는 건 아닙니다만……평일에는 안 드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냥, 변덕이다. 보수를 겸해서 말이지.”

[……보수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전화기를 손에 든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표정이 떠올랐기에, 상무는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상무님께 쓴 소리를 들은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다지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트레이너 분들께 혼났고, 앞서가는 린과 쫓아오는 미오를 보며 초조해했으며, 늘 연습실에 혼자 남아 하루를 곱씹었습니다.
상무님의 질문에 저 자신을 납득시킬만한 그럴싸한 대답조차 떠올리지 못한 채, 저는 그저 하루하루를 연습실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저는 평소처럼 연습실에 남아 보충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프로듀서 씨에게서 배웠던 트레이닝 방법으로, 안대와 이어폰을 쓴 채 기억하고 있는 댄스를 추는 연습이었습니다.

 

“휴우……자꾸 여기서 멈칫거리게 되네.”

 

노래가 끝나고, 거칠어진 호흡을 바로잡으면서 저는 이어폰과 안대를 벗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앞에서 무언가 새하얀 것이 기다렸다는 듯 펄쩍, 하고 뛰어올랐습니다.

 

“까꿍~!”
“꺄아악?!”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저는 눈 앞의 새하얀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느슨하게 풀어헤친 교복 위에 새하얀 가운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 사람은 다름아닌 시키 씨였습니다.

 

“아……시키 씨?”
“응응! 이치노세 시키랍니다~!”

 

언제 들어온 것일까요……라고 생각하려던 저는 조금 전까지 제가 하던 트레이닝의 내용을 떠올렸습니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었으니, 누가 들어오더라도 알아챌 수 있을 리가 만무하겠죠.

 

“오늘 어디에 계셨어요? 레슨 자꾸 도망친다고 베테랑 트레이너 씨께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던데…….”
“후후, 놀라지 마시라. 프로듀서 책상 밑에서 깜박 잠들어 버렸다는 말씀~! 냐하핫!”
“그, 그런가요…….”

 

시키 씨는 가장 최근에 신데렐라 걸즈에 합류한 사람으로, 그 깐깐한 마스터 트레이너 씨 마저 입을 다물게 할 정도로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이따금씩 레슨을 도망가거나 연습에서 건성건성인 태도를 보여서 트레이너 분들께 혼나기는 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혼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네, 저 같은 거랑은 다르게요.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저를 바라보던 시키 씨는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제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시키 씨……?”

 

시키 씨는 그 실력만큼이나 기행도 자주 저지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령 레슨을 마친 아이들에게 찰싹 달라붙어 냄새를 맡는다던가, 이따금씩 프로듀서 씨의 옷을 가지고 숨어버린다던가, 하는 행동들입니다.
펑소대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시키 씨는 호오, 하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있지, 너 지금 즐거워? 아이돌 일 재밌어?”
“그, 그럼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걸요!”
“그래~?”

 

저를 바라보던 동그란 눈이 자그마한 호를 그렸습니다. 시키 씨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던 손가락으로 코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거 알아? 동물은 냄새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는 거.”
“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뜬금없는 시키 씨의 말에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시키 씨의 말에 저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네 냄새, 전혀 즐거워하는 냄새가 아닌 것 같거든~?”

 

저는 숨이 막혔습니다. 가슴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비밀이 들킨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그게 무슨 뜻인가요……?”
“뭐~폼 잡으면서 말했지만 결국 동물은 그렇다는 말이지, 넓게 보면 인간도 동물이지만, 과연 인간이 동물과 같은 감정표현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을까~?”

 

“냐하핫” 시키 씨는 헐렁한 백의의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가리며 작게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을 앞에 둔 고양이처럼 제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냥 코가 좋은 JK니까 말이야? 단순히 냄새를 잘못 맡은 걸지도 모르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걸까요. 시키 씨는 멋대로 또다시 웃기 시작했습니다.
시키 씨의 웃음을, 마치 저를 꿰뚫어보는 듯한 그 가느다란 미소를 볼 때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진짜 ‘천재’인 이 사람이라면, 단념하고 제 속내를 조금만 털어놔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미 다 들켰을지도 모르는걸요.

“……만약에.” 저도 모르게 제멋대로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시키 씨의 생각이 맞다고 한다면……어떻게 하실 건가요?”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저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저는 아무렇게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는 자그마한 기대를 품고.

 

“몰라.”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대답이었습니다.
방금 전의 둥실둥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처럼 딱 잘라 대답한 시키 씨는 다시 제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내 역할이 아니야.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네 주위에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 말장난 좋아하는 언니, 참견하기 좋아하는 키다리 아저씨라던가?”

 

시키 씨의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어떤 사람의 얼굴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의 조각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뭐? 이 정도도 혼자 못 한단 말이야? 그러라고 우리가 너를 데려온 줄 일아?! 쓸모 없는 계집 같으니라고!

 

저는 곧바로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떨쳐냈습니다.

 

“뭐~그렇다는 거지. 냄새도 실컷 맡았겠다, 이제 가야겠다. 안녕~!”
“아, 저, 저기……!”

 

제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시키 씨는 마치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걸음걸이로 연습실을 나갔습니다. 저는 멍하니 스르륵 닫히는 연습실의 문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왜 아이돌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는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는 정말로 이 일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요?

 

상무님과 시키 씨, 두 사람의 말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좌우로 붕붕 흔들어 머릿속을 맴도는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앞의, 벽면 전체에 설치된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거울에 비친 것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있는 수수한 트레이닝 복 차림의 여자아이였습니다. 신데렐라도 뭣도 아닌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
눈을 감으면,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근사한 린의 모습과,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가고 있는 미오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는 다시 눈을 떴습니다. 눈 앞의 여자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정신 차려”라는 뜻을 담아, 저는 손을 들어 그녀의 두 뺨을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여유가 있다면 동작을 한 번이라도 더 확인하자. 우즈키, 넌 할 수 있어!”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저는 손에 쥐고 있던 이어폰을 끼고 안대를 썼습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저는 또 다시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도 모를 안무를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프로듀서 씨께서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극한상황에서는 멘탈이 피지컬을 지배한다. 그걸 이겨낼 수 있는 건 무의식중에 몸이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하는 것 뿐이야.”

 

하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은 연습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채 끝없이 반복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끝없이 이어지는 무모한 달리기라는 것을 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던 그 날 프로듀서 씨께서 제게 말씀해주셨던 ‘그 말’도 함께.

 

 

 

 

----------------------시마무라 우즈키(中-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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