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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키 「햄죠가 밟혀서 터져버렸다조! 다시 부활이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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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31, 2017 20:47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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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양처럼 웃고 있는 하루카. 이오리와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귀여운 타카츠키씨 등등..

화목하고 따뜻한 온실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지금 거북함을 느끼고 있다.

창문에 내 모습이 탁하게나마 반사되고 있다. 나는 물그러미 나 자신의 반영을 응시한다.

거기에는 한없이 탁하고 어두운 키사라기 치하야가 있다. 밝은 빛 아래 음지의 곰팡이처럼 말라가는 나 치사라기 치하야.

 

왠지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왔다. 절대로 섞일 수 없는 저 밝은 아이들 사이에 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떠오르는 동생의 끔찍한 죽음에 괴로워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혐오스럽다.

그렇기에 가끔씩, 나는 저 아이들을 보면서도 경망스럽고도 발칙한 한가지 상상을 떠올린다.

저 아이들에게, 내가 겪은 그런 끔찍한 가족의 죽음이 찾아오게 되면 어떨까? 하고,

 

물론 알고 있다. 이것은 내 나약하고 더럽혀진 곰팡이 같은 정신이 만들어낸 헛된 망상임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 끔찍하고ㅡ 흉측한 망상에는 기묘하고 묘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측면이 있어,

가끔씩 내 충족욕을 자극하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절대로 충족되서도, 충족될 수도 없는 호기심이다. 

그런데 눈 앞에서, 나는 전혀 예측못한 방식으로 그 혐오스런 호기심을 충족할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일이였다.

 

헤드셋을 낀 채 가만히 앉아있는 내가 제법 처량해 보였는지,

친절함으로 가득 찬 우리의 하기와라 유키호께서 그녀가 정성스레 끓인 녹차를 조심스레 찻잔에 담아 

내게 가져왔다. 그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키사라기 치하야 「아, 고마워.」

 

근처에서는, 아미가 히비키에게 새로운 장난질을 시도해볼 요령이였다.

아무래도 카드 놀이의 일종인 듯 하다. 아미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함께 주머니 속에서 몇 장인가 카드를 꺼냈다.

한 장의 카드의 뒷 면에는 바퀴벌래 모형이 붙어 있다. 시덥잖은 장난질용 카드이다.

그런데 그녀가 카다 뭉치를 꺼내는 사이, 과자 부스러기가 몇 개인가 흘러나왔다.

그 부스러기에 히비키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던 햄죠가 제법 날렵하게 내려와 과자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유키호 「차 좀 더 끓여줄까?」

 

치하야 「아니,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고마워.」

 

유키호 「헤헷. 또 마시고 싶으면 말해줘.」(미소)

 

그녀가 돌아간다. 히비키가 아미의 장난에 걸려, 기겁하며 바퀴벌래가 붙은 카드를 허공에 내다 던졌다.

그것은 그대로 허공을 날아, 유키호의 발 아래 떨어졌다.

유키호가 기겁하며 비명과 함께 넘어진다. 다른 아이들이 유키호를 주목한다.

 

하루카 「유키호! 괜찮아?」 ㅡ아마미 하루카가 그녀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갔다. 

 

하루카는 자주 넘어진다. 고의든 자의든, 그녀는 제법 자주 넘어진다.

그것이 평소에 평범한 장소라면, 다치지 않는 한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이다.

유키호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가던 하루카는 또 넘어졌다. 넘어지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의 소지가 없다.

겨우 사무소 바닥에서 넘어지는 정도로, 그녀는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녀 앞에 햄죠가 있었다.

 

하루카 「아앗!」

 

우드득.

 

작은 생물 주제에, 안의 것들이 부셔지는 소리는 제법 컷다. 아마 이 사무소 안에 모두가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순간 나의 표정은 어땠을까? 이미 지난 순간이지만, 문득 궁금하다. 무표정이였을까?

아니면 기묘한 호기심에 대한 충족으로 희열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나는 하루카를 보았다. 그녀의 투명한 녹색 눈동자는 공포와 당황 속에 사시나무 떨리듯 진동하고 있었다. 그게 여기서도 보였다.

그녀가 무릎을 치웠다. 무릎에는 피가 가득히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처에서 나온 것은 아니였다. 

찐득찐득한 고깃살점들도 몇 개인가, 끈덕지게 붙어 있다. 

나는 다음으로,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햄죠였던 것의 참혹한 잔해가 무릎 아래 으깨져 있었다.

 

 

2.

예상 외로, 사무소 안으로는 비명소리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충격적이여서일까?

혐오스럽게 되어버린 그 햄죠였던 것의 잔해는 사무소 바닥에 붉은 핏자국과 함께 끈적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하루카를 다시 바라보았다. 당황하여 마네킹처럼 굳어버린 하루카의 무릎에는 내장 찌꺼기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다음으로 히비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예상 외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였다. 정신이 감당 못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까?

나는 순간적으로 바깥에서 영업 중인 프로듀서를 부를까도 잠시나마 고민했다. 

어쩌면 분노한 히비키가 하루카에게 해코지를 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서로를 조심스레 살피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히비키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서로를 조심스레 살피고만 있었다. 아마 이 예상 못한 불상사에 끼어들기 곤란한 것이겠지.

한참이 지나서야 하루카가 첫 말문을 열었다.

 

하루카 「저, 저기 히비키..이, 이건 사고..해, 햄죠는ㅡ」

 

아마 괜찮을거야.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둔 것이 분명했다 하루카는.

그 말을 꺼내기에는 햄죠였던 것의 상태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저것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그때 히비키가 하루카에게로 다가갔다. 천천히. 

 

타카네 「저기 히비키ㅡ」

 

히비키 「됐어. 잡지 마.」

 

그녀 그대로 하루카에게로 다가갔다. 다른 아이들의 눈에서 공포의 빛이 어른거리는게 보인다.

문득 유키호에게 눈이 갔다. 그녀는 쟁반을 두 손에 꽉 쥔 채로 마코토의 뒤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히비키는 어느새 하루카의 코 앞에 서 있었다.

 

다음은 어떤 일이 날까? 나는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내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발생했다.

 

히비키 「헤헷. 하루카, 괜찮다조? 햄죠 좀 줄래?」

 

하루카 「어?」

 

히비키 「햄죠 좀 담아줘. 윽, 다 터져버렸네?

괜찮아. 이 정도는 상관없다죠?」

 

하루카 「으, 응!」(당황)

 

몹시 당황한 하루카는 그대로 허겁지겁 햄죠의 으깨진 잔해와 내장들을 한 손에 담기 시작했다.

제법 역겨운 일일텐데, 아무래도 예상 외의 히비키의 반응에 놀라서 그런 것이 분명했다.

히비키도 같이 쪼그려 앉아 햄죠의 잔해를 열심히 수습했다. 딱히 별다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마치 일상의 사소한 사건 따위를 마주한 느낌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거지?

 

히비키 「아..눈알 한 개가..아, 여기 있다조! 헤헷, 다 찾았다.

이거면 충분하다죠?」

 

하루카 「...」

 

타카네 「저, 저기 히비키, 혹시 괜찮으신건지!」

 

히비키 「응! 괜찮아 괜찮아. 하루카, 뭐 실수할 수도 있는 거다조?

이 정도는 괜찮아. 자신 잠깐 먼저 나가볼게. 어차피 일도 다 끝났는데 먼저 퇴근한다고 프로듀서에게 전해달라조!」

 

심지어, 마지막에 그녀는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인사를 나눈 그녀는 순식간에 정문을 지나 사라졌다. 마치 꿈만 같았다.

허나 바닥에 뿌려진 핏자국은 그것이 현실임을 똑똑히 말해주고 있었다.

 

도대체 왜지? 나는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치하야 「..저기 얘들아. 나, 먼저 나가볼께.」

 

그래서,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3.

그녀의 행적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나는 작고 야트막한, 산이라 부르기에도 어려운 작은 언덕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곳은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곳이였다. 동네에 흔히 널린 그런 이름 모를 산들.

오랫동안 버려지고 잊혀져서 그저 쓸모없는 잡풀과 잡목만이 무성한 그런 값어치 없는 그런 곳이였다.

 

나는 히비키와  제법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그녀를 쫓아갔다. 그녀의 점퍼 주머니 한 켠이 붉게 물들은게 보였다. 아마 저기에 햄죠의..잔해를 담아뒀을 것이다.

히비키는 이제는 아예 길이 나있지도 않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냥 언덕 하나에 오르고 싶었던 것일까?

그 위에서 햄죠를 묻어주고, 얘들 몰래 통곡하기 위해서? 제법 현실적인 추측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히비키의 표정은 여전히 싱글벙글 즐거워 보였다. 

 

제법 지친다 생각될 무렵, 나는 어느새 언덕의 정상까지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낙엽 쌓인 바닥에 최대한 몸을 낮춘 채로 말리 비틀어진 썩은 고목 뒤편에 몸을 기댄 채로 히비키를 지켜보았다. 

언덕 위에 썩어가는 낙엽과 죽어가는 고목들만이 가득한 그 곳에는 작은 우물 비슷한 구멍이 있었다.

그것은 얼핏 우물 같아보이긴 했다. 작은 양동이 바구니 같은게 메달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우물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렇다기엔 느낌 자체가 무언가 달랐다.

 

이제 어떻게 될까? 히비키는 땅을 파고 거기에 햄죠의 시체를 넣고 묻으며 참았던 눈물을 터트릴까? 마치 내가 예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또다시 보는 기분일지도.

마침내 히비키가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햄죠의 잔해들을 한 손 가득 담은 채로 주머니 안에서 꺼냈다.

역한 느낌의 내장들이 손가락 사이로 줄줄히 흘러나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만 헛구역질을 해버렸다.

아마 들키진 않았겠지? 

난 황급히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순간 난 경악에 휩싸였다.

 

히비키는 그것을 그대로 우물 같은 구멍에 던져버렸다.

경악에 휩싸인 나는 그만 쓸데없는 소리를 내버렸다. 뒤늦게 실수를 알아채고 고목 뒤로 몸을 가렸다.

설마 들켰을까? 시간이 흐르고, 나는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히비키 「치하야, 하이사이?」

 

..눈 앞에서 히비키가 지켜보고 있었다.

 

4.

히비키 「잠깐 와 봐. 보여줄게 있다조?」

 

치하야 「아..응..」

 

그녀는 아무 설명 없이 내 팔목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는, 그대로 구멍이 있는 곳을 향해 끌고 갔다.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으므로, 함부로 저항하기에는 다소 두려웠다.

나는 일어나면서 몰래 주먹보다 조금 작은 돌 하나를 손에 쥐었다. 겉으로는 모르겠다만, 어쩌면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

만약 필요하다면 그녀를 제압할 '호신용 도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히비키 「잘 보라조!」 그녀가 구멍 안을 가리켰다.

 

나는 주먹을 쥔 손을 엉덩이 뒤로 가리며,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어둠 뿐이였다.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봤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우물 특유의 기묘한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 뿐이였다.

 

치하야 「저기..뭐를 보라는 거야?」

 

히비키 「잠시만..아! 지금 올릴께.」

 

그녀가 낡은 두레박줄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말라 비틀어진 노끈이 썩어가는 지지대와 마찰을 일으키며, 불쾌한 탁음을 만들어냈다.

구멍 안에서부터 양동이와 돌이 서로 부딪히며 특유의 짤랑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아주 작은 것으로 보아, 구멍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깊은 모양이였다.

곧 양동이가 바깥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것에, 나는 충격에 휩싸여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햄죠였다.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햄죠.

 

히비키 「이제 11번째 부활이다조!」

 

 

5.

그것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햄죠였다. 살아있는 햄죠.

나는 구멍 안을 살펴보았다. 불쾌한 냄새가 미적지근한 바람에 섞여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 안에 트릭 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히비키 「햄죠가 다시 살아났다조!」

 

치하야 「아..그거 정말인거야? 정말로 살아난거야?」

 

히비키 「응! 그렇다조 치하야.」

 

문득 전에 히비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11번째라고 했었다. 11번째라고?

 

치하야 「가나하씨, 11번째라고 한 말은 무슨..?」

 

히비키 「응응. 11번째 부활이다조. 햄죠, 그동안 엄청 죽었다구?

차에 치여 터져 죽고, 내가 실수로 밟아 죽이기도 하구,

배고픈 이누미가 물어 뜯어 죽이기도 하고..엄청 죽었어.

그래서 11번째나 부활했다조?」

 

치하야 「아니..믿을 수가 없어. 그것보다..도대체 어떻게 이걸?」

 

히비키 「신님이야.」

 

치하야 「..신?」

 

히비키 「응! 신님이다조? 햄죠가 처음 죽은 날에, 자신 엄청나게 슬퍼서 막 울고 있었어.

그런데 꿈 속에서 신님이 말해줬다조? 우물에 넣으면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해줬어.

그래서 우물에 넣었더니, 정말로 살아났다조!

예전보다 더 얌전해지고 똑똑해지고 더 강해져서 이제는 자신처럼 완벽해졌다구!

꿈 속에서 신님께서 말씀해주셨어.

이번에 다시 부활하면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될 거라구.」

 

햄죠 [찍찍] 

 

히비키 「헤헷, 완벽한 햄죠! 다시 만나서 반갑다조. 이제 집으로 가서 쉬자!」

 

치하야 「자, 잠깐만! 가나하씨 잠깐!」

 

히비키 「응? 왜? 치하야도 뭐 다시 살려야되는게 있는거야?

그런데 사람은 안된다죠? 신님이 말하셨어.」

 

치하야 「...」

 

히비키 「그럼, 다음에 보는거다조!」

 

히비키는 평소처럼 햄죠를 어깨 위에 올리고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사라졌고,

남은 것은 당황해서 말조차 잊어버린 나 혼자 뿐이였다.

나는 혼자서 우물을 몇 번이고 다시 내려다봤다. 하지만 느껴지는 거라곤 불쾌한 미풍 뿐이였다.

 

그때, 나는 별안간 엄청난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마구 요동치며, 터질듯한 전율감이 온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곧바로 언덕을 내려갔다. 언덕을 내려, 급하게 택시를 잡고는 납골당으로 향했다.

 

유우가 묻힌 납골당으로.

 

 

6.

마침 납골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여윳돈을 얹어주며 잠시 기달려달라 말한 다음

주저할 것 없이 마치 벌집처럼 벽면에 빼곡히 차 있는,

납골함이 안치되어 있는 유리칸들을 하나 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곧 유우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열쇠가 없었기에 유리 상자의 문은 잘 열리지 않았다. 주저하던 나는 결국 재킷을 벗고는,

그것을 팔꿈치에 감아 유리창을 깨버릴 수 밖에 없었다. 함을 꺼내는 과정에서 손목이 좀 베여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정도야, 예전에 많이 했었으니까.

 

재킷으로 납골당을 소중하게 감은 다음, 바로 택시를 타고 다시 그 언덕으로 가는 길로 돌아갈라 부탁했다.

택시가 길을 거슬로 올라가는 동안, 심장은 마치 터질듯이 요동쳐서

숨이 가빠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유우, 기다려줘. 이제 곧 만날 수 있을꺼야. 

정말로 다시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 엄마랑 아빠를 먼저 불러서 다 같이 만나는거야.

그래서 다시 화해해서 예전처럼 사이좋게 한 가족이 되서 행복하게 사는 거야.

억지로 슬프게, 죄책감으로 마음을 누르면서 힘들게 살 필요가 없어. 이제 감정이 따르는 대로 마음대로 사는거야.

불연듯 유우가 생각나서, 죄책감으로 감정을 일그러트릴 필요도 없어. 가장 먼저 하고 싶은건, 마음대로 웃고 다니는거야.

웃고 싶은대로 웃고, 쉬고 싶은대로 쉬고 싶어. 노래에 집착해서 몸을 혹사시키지 않아도 돼. 

 

유우가 다시 살아나기만 하면.. 다시 살아나기만 하면..

 

어느새 택시는 내가 처음 탓던 그 자리에 도착한지 오래였다.

기사가 조심스레 부르는 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다시 깨어났다.

 

어느덧 황혼이 진 언덕은 이제 스산한 바람이 부는 밤하늘이 뒤덮고 있었다.

옷깃을 다듬고는 낡아 갈라지고 말라비틀어진 돌이끼들이 사그라드는 돌계단들을 하나 하나 올라갔다.

 

나는 언덕 위에 도착했다. 눈 앞에 우물로 다가갔다.

양동이는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우물 안에서 미적지근하고 비릿한 바람이 올라왔다.

도대체 안에 뭐가 있는 걸까? 잠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양동이에 유우의 납골함을 담고, 줄을 잡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7.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상으로는 제법 많이 지난 것 같이 느껴졌지만, 따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였다.

그때 손가락 끝으로 양동이가 메달린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인가가 아래서 양동이를 당기고 있었다.

유우일까?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구멍 아래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치하야 「아! 그러고보니 하루카가 말해줬었지..핸드폰 후레시 기능이 있다고.

이걸..이렇게 하였던가?」

 

잘 안되네. 고장난건가? 하루카가 화면에 버튼 부분을 누르면 켜진다고 했었는데..그 버튼이 있던 액정 부분을 눌러도 켜지질 않잖아?

 

치하야「혹시 고장난건가?」

 

나는 몇 번인가 핸드폰을 두드려봤다. 분명 렌즈 아래 부분이 고장난 것이 분명했다.

몇 번인가 두드리자 액정이 자동으로 켜졌다. 아 드디어 고쳐진 건가?

그때 줄이 또 한번 요동쳤다. 이번에는 제법 강하게 당겨져서,

나는 그만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어둠 속으로, 핸드폰은 흐릿한 빛이 되어 떨어지다 이내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깊은거지?

 

나는 천천히 밧줄을 감아올리기 시작했다.

 

치하야 「유우, 거기 있어?!」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조금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서둘러 밧줄을 감아올렸다.

 

치하야「윽! 뭐가 걸린ㅡ」 

 

그 순간,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이 밧줄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 갑작스러운 힘에 나는 덧없이 확 앞으로 고꾸라져버렸고,

그대로

 

저 아래의 어둠으로 떨어졌다.

 

8.

정신을 차리고 나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부패의 악취가 가득한 물 고인 바닥과 오른팔의 통증이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는 왼손으로 가장 아픈 부분을 살짝 눌러봤다. 

 

치하야 「악!」

 

절로 고통에 비명이 새어나왔다. 팔목이 퉁퉁 부어 있었고, 공포심이 들 정도로 팔이 휘어진 것이 느껴졌다.

못해도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구멍은 꽤나 깊어서 여기까지는 달빛만이 간신히 들어오고 있었다.

두려움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소리를 있는 힘껏 질러봤지만 이런 아무것도 아닌 언덕 위에 누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후회심이 들었다. 도대체 난 지금 무슨 짓을 해버린거지? 도대체 왜 그런거야?

미쳐버린거야 치하야?

 

「누..나..」

 

나는 똑똑히 들었다. 그것은 절대로 환청 같은 것이 아니였다. 유우의 목소리였다.

나는 황급히 소리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작은 그림자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마치 어린아이 형태의.

 

치하야 「유우니? 저, 정말 유우인거야?」(울먹)

 

「누..나..」

 

점점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그림자의 윤곽도 점점 더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틀림없었다. 그것은 유우의 목소리에 유우의 모습이였다.

나는 가나하상의 말이 진실이였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유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흥분어린 환희의 감정에 휩싸였다.

 

「여기..와..하나ㅡ」

 

아픔조차도 잊고 그대로 유우에게로 다가가려는 순간, 나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것은 정말로 사소한 것이였다. 어떻게 인지했는지도 의야할 정도로 사소한.

나는 어둠 속에서 왼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바스락거리며, 썩은 물 사이에 섞여, 무언가 딱딱하고 가벼운 것들이 느껴졌다.

유우는 분명히 여기로 걸어오고 있었다. 조금만 만져도 바스락거리는 그런 바닥 위에서.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나고 있지 않다고?

 

「하나가..」

 

그것은 유우였다. 아니, 유우의 탈을 쓴 무엇인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오자, 어둠 속에서 조금 더 윤곽이 뚜렷하게 보였다.

초점 없는 두 눈을 빛내는 유우의 머리와 내장이 다 비쳐보이는 미숙한 육신 아래로 연녹색 혈관선들이 마치 연체동물의 촉수처럼 가득히 붙어있었다.

그 연녹색으로 발광하는 혈선들을 따라가니,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몸을 웅크린채 도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은 아닌, 더 거대한 무언가 미지의 존재가.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저것은 유우가 아니야.. 인형극의 인형마냥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실체는 저 어둠 속에 있었고, 그것은 지상의 다른 무엇도 아니였다.

 

「..하나가..되자!」

 

9.

공포에 질린 나는 놈에게 가까히 다가갔던 것을 후회하며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그 와중에도, 유우의 탈을 쓴 혐오스런 괴물은 그 달팽이 같은 점액질의 구불구불한 촉수를 꿈틀거리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리고 당황한 나머지, 그만 무언가에 걸려 바닥에 넘어져버렸다.

넘어지면서 무의식적으로 부러진 오른팔을 내민 덕에, 지독한 고통이 몰아닥쳤다.

왼팔로 오른팔을 감싸자, 오른팔이 아까 전보다 훨씬 더 휘어지고 퉁퉁 부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부러진 딱딱한 뼈가 피부 바로 아래까지 솟구친 것만 같았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서움에 살짝 건들자,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치하야 「아악!!」

 

「..하나가..되자!」

 

나는 다시 일어날 생각조차도 못하고, 그대로 발로 땅을 밀면서 뒤로 다가갔다.

이제는 근 1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였다. 유우의 얼굴 사이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혐오스런 메론빛 촉수들이 기어나왔다.

핏덩어리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눈알이 촉수 사이를 빠져나와 바닥을 굴렀다. 이제는 공포 속에 정신조차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간신히 떨어진 구멍 바로 아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있어야할 줄이 없었다. 

 

치하야 「어, 어디있는거야? 주, 줄! 양동이! 어디있냐고!!」

 

치하야 「히, 히비키! 설마 너야? 너가 치운거냐고!

이 개같은 년아! 이 씨x년! 사, 사람살려!!」(비명)

 

하지만 아무리 소리질러도 들어줄 사람 따윈 없었다.

설령 있었어도 한 팔이 부러진 상태로 기어올라갈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절망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괴물은 이제 코앞에 있었다. 유우의 머리통 사이로 피가 새어나오는 실선들이 그어지더니,

이내 그것은 마치 끔찍한 혈화마냥 뼈 없이 흐물흐물거리는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가득한 아가리를 벌리며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앞으로 찾아올 일에 대한 미지의 공포심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는 바닥에 가득히 쌓여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수많은 뼈들이였다. 동물들의 뼈. 개, 돼지, 쥐, 햄스터, 새를 비롯하여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뼈들까지.

수많은 뼈들이 장구한 세월간 켜켜히 쌓여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우물이였던 이곳 위에 뼈로 대지를 쌓아 올릴 때까지.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괴물은, 무언가를 살리는 능력 따위는 없었다.

대신 히비키 같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무언가, 미지의 방법으로 꼬드겨서

그 시체를 똑같이 복제해서 거기에 자신의 분신 같은 것을 심은 다음 부활한 사자의 행세를 하는 것이였다.

놈이 원하는 건 알 수 없다. 세계 정복? 인간 지배?

 

치하야 「이제 와서..」(체념)

 

진실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 최후가 머지 않았음은 당장에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괴물은 나를 덮치지 않았다. 

 

뭐지?

 

나는 살짝 눈을 떴다. 내게 다가오는 혐오스런 핏빛 촉수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에 닿자,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코 끝으로 매케한 탄내가 흘러나왔다. 그것들은 팔 하나 간격을 두고 놈들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꾸물거리는 촉수들은 다시 하나로 뭉치더니,

이윽고 유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증스러울 정도로 똑같은 모습이였다.

그 가짜가 입을 열며, 평생 잊을 수 없을 고문이 시작되었다.

 

10.

「누나..나 왜 죽게 만들었어?」

 

치하야 「아냐! 닥쳐! 넌..넌 유우가 아니야!」

 

「나 엄청 아팠는데..누나한테 살려달라고 빌었잖아.」

 

치하야 「아냐 아냐! 유우는..그 자리에서 바로ㅡ」

 

「누나가 밀었잖아. 왜 민거야? 엄마 아빠가 다 나만 봐서 그런거야?」

 

치하야 「아냐!..아냐..아니야..」(울먹)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평생 다시 듣고 싶었던 목소리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흘러나온다.

마치 한 대 얻어맞은마냥 머리가 얼얼하고, 열대의 열병에 시달리는 것마냥 머리가 어지럽다.

 

「나 왜 밀었어? 그렇게 싫었어?

그래서 날 여기에 던진거야? 죄책감 때문에?」

 

치하야 「아니야! 난, 난 그냥..우웨엑」

 

「그렇게 믿고 싶은 거잖아. 누나.」

 

「누나가 날 밀었어. 내가 싫다고 하면서 밀었잖아.

트럭에 깔려서 온 몸이 부스러지는데도 혼날까봐 아무 말도 안하고 도망갔잖아, 누나.」

 

역류한 토사물에 목이 따갑다. 한가득 쏟아내버렸지만,

오히려 열병과도 같은 두통과 어지럼증은 더욱 심하면 심해졌지 누그러지지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머리 속으로 유우를 도로 한가운데로 밀어버리는 어린 시절의 내가 생생하게 재생된다.

정말로 나다. 내가 정말로 유우를 죽인거야? 내가 죽었던거야? 나야?

 

치하야 「킥..킥킥킥..」

 

이상하게 우스웠다. 왜 이렇게 웃기지?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평온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의 직감은 지금 이 순간이 이성의 마지막 고비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 파리떼들 수천이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 유우의 목소리는 골을 파고드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두통을 잊기 위해 부러진 오른팔을 미친듯이 긁고 때렸다. 그어진 상처에서 피가 새어나왔지만 그 두통은 멈추지 않았다.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 그만!!

 

 

 

「누나. 나 혼자 너무 오래 기다렸어..같이 하나가 되자 누나야..」

 

치하야 「...」(울먹)

 

제발, 살려줘요.

 

 

「치하야!!」

 

 

그 순간이였다. 달빛 아래로 무엇인가가 떨어지며, 텅하고 바닥과 부딛혔다.

그것은 예의 그 양동이였다. 구멍 위에서 히비키가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이쪽을 마구 부르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양동이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 몸이 서서히 떠오르는게 느껴졌다.

 

마지막 순간에 달빛이 굴절되며, 나는 어둠 속에서 유우의 인형을 조종하던 것의 윤곽이나마 볼 수 있었다.

 

나는 보았다. 무언가 훨씬 거대하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감당 못할 공포스러운 무엇인가가 어둠 속에서 태동하는 것을.

그 순간 나는 이때껏 두려워했던 어둠에 차라리 감사했다. 

저 무엇인가를 내가 직접 보지 않게 해줬음에. 저것은 괴물들의 어미였다.

어둠 속에서 놈의 핏빛 눈동자가 가늘게 구부러지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기묘한 눈빛이였다.

그것이 직전에 놓친 먹이에 대한 증오 섞인 비웃음인지, 아니면 그저 인간의 표정을 흉내낸 것인지 나로써는 알 수 없었다.

 

달빛이 더 반사되어 들어오자, 암흑 안에 드리운 그 거대한 존재의 그림자는 이내 지느러미 같은 것을 펼치고는 더욱 더 깊은 어둠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의 뒤편으로 마치 성지를 순례하는 무리들을 방불케하는 끝없는 촉수의 물결이 뒤따랐다. 한 마을의 죽은 것들을 모두 복제하고도 남을 수의 수많은 기생충들이.

 

그것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엔딩.

눈을 뜨자 나는 병원에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걱정스럽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히비키의 말에 따르자면, 나는 우물 아래 떨어져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상하게 뭔가 홀린 듯한 나를 발견하고는 따라오다가 우물에 떨어진 나를 발견하고 바로 구해냈다고 말해줬다.

 

그러면 이 모든게 다 꿈이였을까?

꿈인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최소한 병원 안에서는 알 수 없다.

열병처럼 지독하고 끔찍한 연극과 같은 악몽을 꾸고 일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 모든 일이 너무나도 이상해서, 분명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한데도 이상하리만치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루카 「치하야..(울먹) 정말 다행이야.」

 

이오리 「쳇. 치하야 넌 다를줄 알았는데 하루카마냥 칠칠맞게 떨어지기나 하고..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즈사 「아라아라. 그래도 멀쩡해서 다행이잖니?」

 

치하야 「아..」

 

히비키 「팔 때문에 조금 불편하겠지만, 나랑 다들 모두 열심히 도와줄꺼다조!」

 

치하야 「고마ㅡ헉!」(기겁)

 

치하야 「그, 그거! 그거! 그거!!」(경악)

 

히비키의 어깨 위에 있는 그것! 햄죠! 

아니 햄죠의 탈을 쓴 그 괴물! 

공포 속에 소리지르는 나를 향해 그녀가 다가온다. 그녀의 어깨 위에 달라붙은 그 흉측한 괴물 또한 가까워진다.

나는 다시 깨어난 그 공포에 기겁하며 버둥거렸다. 나는 마치 간질병이 도진 정신병자마냥 미친듯이 날뛰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 악몽의 공포를 버텨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치하야 「햄죠! 괴물! 그거! 꺄아악!!

그건 괴물이야! 햄죠가 아니라고! 꺄아악!」

 

마코토 「치하야! 히비키도 있는데 그 말은 너무 심하잖아!

아무리 다쳤다고 해도ㅡ」

 

히비키 「됐어. 치하야는 아직 모를테니까..」

 

히비키 「치하야. 햄죠는..떠났다죠.」 하루카 「미, 미안ㅡ」

 

히비키 「괜찮다조! 하루카가..고의가 아니였던건 다 아니까..」

 

치하야 「뭐? 그, 그러면 지금 어깨 위에 저건.」

 

히비키 「얘는..햄죠의 친구야. 하무죠라고. 아직 치하야에게는 소개 못 시켜줘서 미안해.

사실 햄죠에게는 친구가 있었거든..」

(울먹) 나랑 하무죠랑 햄죠가 그렇게 떠나버려서 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분명히 좋은 곳에 갔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자,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하무죠의 모습은 햄죠와 너무나도 똑같았다.

 

병문안을 왔던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남은 것은 히비키 뿐이였다.

아직 오후임에도 커튼이 쳐진 일인실 안은 제법 어둑어둑했다. 나는 전등 스위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스위치는 병실의 단 하나 뿐인 문 옆에 있었다. 여기서 문까지는 제법 먼 거리다.

게다가 환자로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내겐 더더욱 다가가기 힘든 거리다.

젠장. 왜 하필 저기 있는거야?

 

 

히비키 「치하야, 아이들은 모두 바빠서 먼저 갔다조?」

 

치하야 「으, 응..」

 

히비키 「...」

 

히비키 「혹시, 뭐 불편한 거라도 있는거야?」

 

그 때처럼, 심장은 공포 속에 당장에라도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치하야 「왜..아까 전부터 스스로를 '나'라고 하는거야?」

 

히비키 「..아! 내가 그렇게 말했었나? 헤헷, 요즘 도쿄말 연습중이라서 그렇다조!」

 

치하야 「..어제부터 바로?」

 

히비키 「...」

 

히비키 「..설마, 아직도..그 꿈에서 헤어나지 못한거야?

나랑 햄죠가 아직도 괴물이라고 생각하는거야?」

 

히비키가 다가왔다. 그러고보니, 그녀가 평소 달고 다니던 귀고리도 오늘은 왠일인지 없었다. 그런데 귓볼에 구멍도 없는 것 같다.

마음 속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래..이제는 될대로 되라지.

 

치하야 「아냐. 그냥..이제 될대로 되겠지.」(체념)

 

히비키가 내 곁에 의자를 가져다 대고 앉았다.

그리고...

 

 

 

ps. 음..오래간만에 또 괴기물로 찾아왔습니다.

다음번에는 더러운거 아니면 한 번 슬픈거 도전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런데 감정이 워낙 없어서 슬픈거는 좀 힘들거 같다는..

댓글 추천 언제나 감사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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