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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바라봤던 길은 내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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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9, 2017 22:46에 작성됨.

 

 

 

-여태까지 바라봤던 길은 내게..

 

 

 

 

 

 

 

"이제는 네 꿈을 찾으렴.."

 

"..."

 

7년만에 딸을 찾은 어머니, 그 어머니와 마주하는 11살의 어린애가 아닌 훌쩍 커버린 18살의 딸.. 따뜻한 그 손으로 쓸어주는 이마, 어렸을 때 기억하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미소지어주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 앞에서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는 '이치노세 시키'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할까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까 평소처럼 경박하게. 그래, 이치노세 시키가 늘 그랬듯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흥미가 없는 것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어야할까 평소의 이치노세 시키라면 그래야할까

 

 

그런데 어째서..

 

"...."

 

'경박한' 이치노세 시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걸까 또 어머니는 왜 그런 이치노세 시키 앞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는 걸까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인사를 바보같이 무심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런 딸 앞에서 왜 아무런 핍박도 서운함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런 시키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야로 헝크러진 딸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며 그 무심한 눈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미소 짓는 어머니, 몇년간 그리워했던 몇년간 보고 싶었던 그 모습 그대로의 어머니..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아무말도.. 아무표정도 지을 수 없는 이치노세 시키. 그대로 언제 흐른지도 모르는 시간이 지나 이제는 헤어져야할 때  어머니가 눈 앞에서 멀어지더라도, 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더라도, 백의에 찔러 넣은 손을 꺼내지도 않는 이치노세 시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탄차가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시키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3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 하지만 평생 느껴본적 없는 감정들이 스쳐가는 그런 시간. 다시 눈을 떴을 때 시키는 뒤돌아 자신의 뒤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백의를 입고 있는 그 남자를.. 아버지를 바라본다. 

 

".... 시키"

 

시키에게 무슨 죄라도 지은듯 죄책감이 가득 담긴 그 표정, 시키와 마찬가지로.. 아니 시키보다 더 경박한 성격인 주제에 이럴 때는 이런 표정을 짓는 구나. 조금 놀란 느낌. 하지만 내색할 기분도 내색할 의무도 못느끼는 그런 무미건조한 기분.

 

"... 있잖아 파파"

 

어머니를 향해는 때지 못했던 입. 하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경박하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구밖에 모르는 아버지를 향해서는 쉽게 땔 수 있었던 그 입. 그 입으로 시키는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래, '이치노세 시키' 처럼 말을 한다.

 

 

 

 

"질렸어 이제. 이런 지루한 연구 같은 거 말이야.."

 

 

 

 

그게 이치노세 시키가 사는 법이니까.

 

 

 

 

 

##

 

 

 

-여태까지 걸어왔던 길은 내게..

 

 

 

 

"뭐어?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직장인들로 붐비는 밤의 주점. 그런 주점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하의를 유니클로로 무장한 백수의 한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를 향해 주변 사람들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하는 깔끔한 정장을 입은 이십대 후반의 한 여자. 그런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다행히도 주점엔 취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성방가를 뽐내고 있어 이목이 끌리진 않은 것 같다. 작게 쉬는 한숨. 다행히다라는 안심과 이 여자는 조신함이라는 게 없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동시에 교차해간다. 하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듯이 이 여자.. 그래,  '선배' 다운 것이 직장생활을하면서도 안지워진 것이리라 생각하며 그냥 넘어가도록 하고 맥주를 든다. 거품이 빠지지 않은 시원한 맥주. 백수에게는 호사이지만 지금은 선배가 있으니 그냥 즐기기로 한다. 설마 이것보다 더 시끄러워지기나 하겠어?

 

"도대체 왜?!!"

 

"풉-!"

 

커졌다. 100데시벨 정도. 주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게 느껴진다. 이 여자.. 그러니까 선배는 신경쓰고 있지 않는 듯하지만

 

"콜록콜록.. 선배 전에도 말했지만 공공장소에서는 좀 조용히 말하시면 안될까요?"

 

"아니 지금 그게 문제야? 내 후배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데!"

 

쾅! 목소리만큼 커다란 맥주잔을 놓는 소리 일단 남자.. 그러니까 '후배' 는 늘 그랬듯이 면목없다는 듯이 주변 사람에게 신경쓰지 말라며 목례를 한다. 오늘은 이런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였던 것 같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많이 시끄럽죠? 하하... 선배 목소리좀.."

 

"하!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네 대학 동아리에서 쓸만하다는 놈은 너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다니! 이건 완전 배신이잖아 배신!"

 

".. 선배도 제 기대에 배신했으면서"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성숙해진다는 말은 전부 뻥인게 분명하다. 적어도 이 선배에게는.

 

"뭐?!!!"

 

쾅!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하.. 선배 너무 취하신 거 같은데 목소리도 느낌표 3개만큼 커지셨고.. 그러니까 일단 나가서 얘기하는 게 어떨까요?"

 

"취하기는 무슨..! 혹시 내 지갑이 걱정되서 그러는 거야? 내가 지금 다니는 프로덕션이 월급을 얼마나..! 읍읍!"

 

"여기 계산좀 부탁드립니다!"

 

목소리는 남성보다 크지만 다행히도 근력은 여성다운 선배의 입을 막으며 둘이 먹은 음식을 계산(물론 돈은 선배돈이다.)하는데 성공한 후배는 그대로 연약한 선배를 으쓱한 뒷골목으로.. 보다는 선배가 아무리 소리쳐도 고성방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것 같은 한적한 공원으로 데려갔다. 중간에 선배의 저항이 많이 있어 여기저기 긁히긴 했지만 얻어 먹은 값으로 치도록 하자. 

 

 

 

 

##

 

 

 

 

 

 

"자요 선배"

 

".. 나는 따뜻한 곳에 있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 말하지마요.. 또 영업방해로 경찰서에 잡혀가고 싶으세요?"

 

"쳇.. 후배랑 취중환담도 못하는 나라구만 이 나라는.."

 

"아니 그건 어느 나라에가도 마찬가지일걸요 아마.."

 

"재미없기는..."

 

툴툴대면서도 후배가 내민 캔맥주를 받아든 선배는 잠시 그걸 바라보다 다시 후배에게 그걸 내밀었다. 물론 그게 '이거 좀 따 줘' 라는 의미인 걸 잘알기에 선배에가 내민 그 캔을 따주며 그 작은 손에 다시 쥐어주었다. 약간 기쁜 듯한 표정. 역시 기분 파인 것 같다 이 여자는..

 

".. 추워도 맛있구나 맥주는"

 

".. 인생이 힘들면 술이 맛있다고 하잖아요"

 

"... 이상한 말하지 마"

 

조금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공원 단풍이 흩날리는 게 보기에도 좋고 소리도 좋지만.. 역시 이런 곳에서 밴치에 앉아 추위를 버티기에는 유니클로에게는 조금 무리인 것 같다. 맥주도 꽤나 차갑고.. 그래도 돈은 선배가 냈으니(캔맥주값 포함) 불평은 안하는게..

 

"더럽게 춥네.."

 

"...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선배쪽에서 불평이 안나오는 건 아니지만.. 뭐, 당연한건가? 

 

"왜 하고 싶은게 없는데"

 

"큽.. 네?"

 

취기로 추위를 잊자는 러시아틱한 발상을 하며 맥주를 들이킬 때 평소의 선배와는 다른 낮은 목소리가 들려와 마시던 맥주를 입에서 때고 고개를 돌렸다. 그윽하게 바라보는 선배의 눈, 취했거나 진지했거나 둘 중 하나 인 것 같은데 지금은 진지한 것 같다. 

 

"... 저도 잘.. 모르겠어요."

 

25살의 나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시간이 꽤나 흘렀다. 부모의 말을 따라 선생의 말을 따라 공부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국내에서 최고로 꼽는다는 대학을 나왔지만.. 졸업을 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태까지 타왔던 인생이라는 레일이 끊겨 버린 듯.. 아니, 하나 였던 레일이 갑자기 수십 수백개로 갈라진듯 가야할 곳을 잡지 못했다. 돌아봐도 여태까지 자신을 밀어주었던. 너의 길이라며 알려주었던 사람들은 없었다. 남겨진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

 

".. 그래?"

 

"네.."

 

신통치 않는 대답임에도 선배는 알았다는 듯이 후배에게서 고개를 돌려 자신의 맥주를 홀짝 마신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무게를 잡는 것도 아니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것도 아니었다. 맥주가 거기있으니 마신다.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  

 

여느 때처럼 인생에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허송세월 보내고 있을 때 온 선배의 연락. 후배는 자신의 인생에서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거절을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100데시벨 단위로 커지는 선배의 목소리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람의 고집은 예전부터 꺾이지 않았으니까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자신은 왜..

 

갑자기든 씁쓸한 기분에 후배는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 다시 맥주를 한모금 마신다. 분명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일까.. 이번에는 조금 쓴 느낌.. 그런 후배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배는 후배에게 눈길을 주기보다는 어딘지 모를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맥주를 홀짝인다. 뭔가 생각이 있어보이면서 없는 듯한 묘한 분위기. 뭐랄까 먼저 말을 꺼내야할 것 같은..

 

".. 저기 선.."

 

"꿈이란 거 말이야"

 

그런 후배의 마음을 잘알고 있는지 선배는 후배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어느새 돌린 고개 마주하는 눈. 꽤나 오랜만인거 같다 이렇게 사람과 마주하며 얘기를 한다는게..

 

"배워보고 싶지 않아?"

 

"네..?"

 

분명 선배가 후배에게 뜬구름 잡는다는 소리를 한 게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이번엔 선배쪽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자 후배는 고개를 갸웃 한다. 만화에서 머리위에 물음표를 띄운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니 정말 뜬금 없긴 한것 같다. 

 

"꿈이란 거 배워보고 싶지 않냐고 묻는 거야"

 

"아니, 선배가 어떤 말을 한지는 정확히 들었는데요 지금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변함없이 둔탱이구나 너는"

 

그런 후배를 보며 선배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그 속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후배 앞에 내밀었다. '에?' 하는 얼빠진 소리가 들려오자 선배는 그 걸 후배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었다. 하나는 백수에게는 거금이나 다름 없는 5천앤의 지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346.. 프로덕션..?"

 

평범한 직장인의 것이라고 보기엔 디자인의 요소가 조금 많이 첨가 되어있는 것 같은 세련된 명함이었다.

 

"돈은 차비고 명함은 내꺼야 내일 프로덕션에 찾아올 때 안내데스크에 주면서 내 이름을 대 그러면 알아서 안내해줄 거니까"

 

"선배 일단 저는 돌아갈 차비는 있는.."

 

"시끄러워 바보 후배주제에 독립한 주제에 일도 안해서 생활비 부족한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

 

선배의 지당하신 말씀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를 못드는 후배. 그런 후배를 바라보며 선배는 이제 됐다는 듯이 밴치에서 일어나 끄응 기지개를 펴고 처진 후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개를 드는 후배 마주치는 내려다보는 선배의 눈. 뭔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후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이라는 건 어쩌면 먼저 정해두고 달려가는 게 아닐지도 몰라"

 

"..네?"

 

"요컨데 남을 보고 배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거지. 꿈을 찾아 달려가는 아이들에게서는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고"

 

"....?"

 

후배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선배는 이제 됐다는 듯이 씨익 웃어주며 그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었다. 

 

"그럼 내일 잊지 말고 나와"

 

"아, 저기 선배!"

 

후배는 그렇게 떠나가는 선배를 일어나 잡아보려고 했지만.. 그대로 쿨하게 떠나가는 선배를 잡을 순 없었다. 허탈함에 다시 주저앉은 후배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긴 한숨.. 손에 들려있는 5천앤이라는 거금, 그리고 세련된 명함..

 

"..346 프로덕션..?"

 

처음보는 것 같은데 뭔가 익숙한 이름.. 일단 주소는 있으니까 찾아갈 수는 있겠지만..

 

"아~ 진짜~!"

 

답답함에 벅벅 긁는 머리. 내일 일정이 있던건 아니었고 선배의 이런 보살핌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모르겠다 정말~!"

 

 

 

 

 

이제는 뭐.. 될대로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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