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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루: 「비가 내리고 있네요」

댓글: 9 / 조회: 1023 / 추천: 2



본문 - 12-09, 2017 00:03에 작성됨.

(※링크의 동영상을 들으며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비가 내리고있네요. 쏴아아아아....하고서 위에서 아래로 끝도 없이 소리가 이어집니다. 단단한 도시의 바닥에 툭툭툭 부딪히는 소리가 가끔씩 귀에 들어옵니다. 차가운 물기가 오른 공기 탓일까요. 문득, 빗소리가 시원하다.라고 생각해버립니다.
비오는 날은 별로 좋아하지않아요. 빵이나 과자나 밀가루반죽들은 습기를 싫어하니까. 억지로 꺼내면 일하기 싫다고 몸을 뒤틀며 움직이질않고, 방치해버리면 심하게 토라져 버리죠. 달래주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잘 보살펴줘야합니다. 습기가 차지않도록.
그래서 밀가루를 잘 넣어줬습니다만, 저는 조금 심심하네요. 밀가루가 나오지않는다면, 빵도 없다고요? 보관해둔 빵이라든가도 비가 오기전에 미리 먹어두었기에 없습니다. 비가 올 건 예상 못하고 보관 한 것이라, 비의 습기를 맞으면 맛이 없어질테니까요. ....별로 배가 고팠다던가 이제와서 조금 남겨둘걸이라고 후회하는 건 아닙니다. 진짜에요? 프로듀서가 빵을 사올테니까요! 아마도요....
빵도 없습니다만, 프로듀서도 없으니 좀 더 심심합니다. 프로듀서가 사올 빵만 기다려집니다. 프로듀서도 기다리는 건 당연하고요...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찰싹 창문을 바라봅니다. 차가워. 살짝 소름이 돋는 것 같지만, 비가 내리는 날의 차가운 창문은 뭔가 반갑습니다. 평소엔 느끼지 못 하는 것이라서 그럴까요. 왠지 창문을 만지고 있으면 비가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하늘은 회색으로 짙어졌습니다만, 그렇게 우울하거나 침체된 느낌은 없습니다. 비오는 날의 도시는 바쁘니까요.
어두워졌기에 차라든가, 신호등이라든가, 빌딩의 불빛이 더 잘 보입니다. 깜박깜박,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이 더 잘 보입니다.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찰박-찰박- 발딛음과 물웅덩이의 소리가 들립니다. 따박따박- 단단한 콘크리트나 시멘트를 두드리는 소리보다도 재밌습니다. 같은 발자국이라도 묘하게 다르니까요. 때때로, 물웅덩이를 거세게 밟아버리는 사람이나, 차가 촥하고 뿌리는 물에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별로 좋은 건 아니지만,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니까... 아, 또 누가 물을 맞았네요. 저런....
저야 빌딩 안에 있으니 괜찮지만, 저도 비맞는 건 싫어합니다. 빵집이 빵을 세일해도 나가기 싫을 만큼... 축축해진 양말과 신발이라든가, 몸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젖은 옷이라든가, 그런 게 시작되면 어딘가 빨리 들어가 벗어버리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고싶어지지요. 사람들도 더 빨리 움직입니다. 네, 빨리 들어가고싶겠지요. 우산이라든가 우비라든가 써도 안 젖는 건 아니니까요. 얼른 들어가서 따뜻한 목욕과 코타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름모를 행인 분, 화이팅.
코타츠라고 하니 저도 조금 으실으실해졌네요. 팔에 닭살이 돋기시작했습니다. 히터를 켜도되지만, 역시 코타츠가 더 좋아요. 묵직한 이불에 꼬옥 안겨서 훈훈한 코타츠 속에 들어가있는 기분은 따뜻한 걸 넘어선 편안함이에요.
오븐 속에 들어가는 빵 반죽의 기분이 이럴까요...저는 구워지지않지만요!
...우웅, 졸리네요. 먹을 것도 없이 마냥 코타츠에 있으니 금방 잠이 와요. 빵은 없고. 안에 우유가 있지만, 이건 아껴두어야해요. 프로듀서가 빵을 사오기 전에 다먹으면 안 되니까.
아, 그러고보니 프로듀서는 어디에 있을까...프로듀서, 아직 밖에서 돌아니고 계신걸까요? 비가 많이 오는데...
소파에 누워 폰을 꺼내고 생각해봅니다. 프로듀서의 연락처는 찾기가 쉬워요. 제가 그렇게 설정했지만 말이죠. 프로듀서의 연락처를 띄워두었지만, 뭘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네요.
전화해볼까요. 음.....미팅 중이라면 어쩌죠. 프로듀서는 착하니까. 그런 상황이라도, 나중에 전화를 못 받은 걸 두고 미안해 할 겁니다. 별로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죠. 아무튼, 프로듀서한테 전화를 해야할까요. 음....밖일 수도 있지요. 비오는데 밖에서 우산을 들고 스마트폰을 꺼내면...어후, 별로네요. 적당히 문자나 보내놓을게요.

[프로듀서! 비가 많이 오고있어요.어디에 계세요? 마중 나갈까요?]

........답장이 바로 오진 않습니다. 하긴, 이렇게 우르릉거리는 날에 폰의 알림 정도는 못 들을 수도 있죠. 혹시 프로듀서가 근처에 계시진 않을까요. 다시 창문에 붙습니다. 비냄새가 납니다. 비오는 날이 좋다면 분명 비냄새 때문일겁니다. 물 비린내라기에는 좀더, 흙과 풀내음이 진하게 섞인 향이죠.
시키 쨩이 말하기를 비가 오지않을 때 땅에 스며들었던 식물들의 화학성분이 비가 오면서 어쩌구저쩌구...음....잘 기억나지않네요. 아마 그 다음에 후미카씨가 매우 잘 들리는 혼잣말로 '이래서 메마른 이과들은'이라고 중얼거린 걸로 기억합니다.
뭐, 어때요! 바게트도 크루와상도 다르지만 같은 빵이라고요! 어느 쪽이든 비냄새가 기분좋다는 건 변하지않아요.
도도도도도하고 땅에 부딪히는 빗소리도 좋아요. 조금 안정된달까요.
멍하니 창 밖을 보다보니 하늘이 번쩍-하고 밝아집니다. 어라...? 번ㅉ-

꺄! 엄마! 으악!! 으이....

소파에 뒤통수를 박았네요...으...눈물이 나지만 일단 일어나야겠습니다. ....아무도 없었죠? 좋아요. 제가 천둥소리에 놀라 넘어져서 소파에 머리를 박은 건 아무도 못 본 거네요.

.....아파아아앗!!! 아파요! 아프다고요! 뒤통수에 천둥이 친게 분명해요! 훌쩍... 아무도 못 봐서 다행이지만, 전혀 좋지않은데요. 모리쿠보의 포오즈가 되어버리고말았습니다. 머리에 빵을 문질문질하면 덜 아플텐데....

역시 프로듀서가 빨리 돌아와야합니다. 헛! 정말로 답장이 왔어?!

[지금 빵집에서 나왔어. 금방 갈게.]

아싸!

흥흥흐흥♬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벌떡 일어나서 창문으로 달려갑니다. 아직 프로듀서가 보이진 않네요. 흐음.... 그렇다면... 일단 쟁반이랑 접시랑, 포크를 먼저 꺼내두는 게 좋겠어요. 쟁반이랑 접시는 분명, 찬장에....아, 팔이 안 닿네요. ...제 키가 작은게 아니라, 찬장이 높은 거에요. 아니, 지금은 이게 아니라... 아무튼 의자를 사용하겠습니다.
쟁반, 접시....포크..! 다 챙겨서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 깨끗한 수건을 가지런히 두면.. 주방에 들어갈 준비가 다 끝난 것 같네요. 앞치마를 두르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냅니다. 비오는 날의 유리창처럼 서늘하네요.
프로듀서가 언제 올지도 모르니 우유는 약불에서 서서히 끓이기로 하죠. 아, 그 옆에도 물을 끓여야지요. 에? 뭐냐고요? 좀 이따 알려드릴게요~
일단은 우유에 집중해야해요. 우유 데우기는 간단하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거든요. 덩어리지거나 눌러붙지않게 낮은 불에서, 서서히 휘저어 주면서 은근히 열을 가해주는 게 관건. 너무 끓여도 덩어리가 생기니 집중해서 잘 보아야합니다. 설탕을 한 숟갈 넣고 다시 서서히 휘저어줍니다. 우유에서 조금씩 김이 올라오네요.

앗! 문이 열렸네요. 프로듀서가 왔어요! 딱 좋을 타이밍에 들어오시다니, 과연 프로듀서입니다.
프로듀서는 저를 부르다가 주방에 있는 걸 알고는 조용히 돌아가서, 테이블에 빵을 풀어놓습니다.
이제 거의 다되었으니 저도 금방 갈 수 있어요!
물 속에서 끓여 데운 머그컵을 건져내어 데운 우유를 담아냅니다. 쟁반 위에 올리면, 식사 준비 끝입니다!
프로듀서에게 머그컵을 하나 건내고, 빵을 우물우물 먹어봅니다. 후고후고후고.... 음, 센카와 베이커리의 피냐맛 크림빵이네요! 뭐, 어떤 빵이라도 맛있었을 테지만요. 으실으실한 밖에서 돌아온 프로듀서. 코타츠에 앉아 데운 우유를 한 모금 마시더니, 몸을 파르르르 떨며 한숨을 내쉽니다. 후고후고. 프로듀서가 조금 편안해졌는지 굳은 얼굴에 미소가 부드럽게 번집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받았네요. 그래도, 이게 다 빵을 사오신 프로듀서 덕분인걸요. 서로 마주보며 히힛-하고 웃습니다. 무엇 때문에 웃는 걸까요. 역시, 빵을 먹어서 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후고후고 그래도 행복하네요. 코타츠에 앉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데운 우유와 빵을 먹고있어요. 행복한 일이에요.
빵을 먹다가 문득, 창밖으로 고개가 돌아갔습니다. 비가 내리고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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