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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P 시리즈]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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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30, 2017 03:58에 작성됨.

<퍼스널리티P 시리즈의 이전 이야기들>

1. 타카가키 카에데 <밤 바다의 이정표>

2. 사기사와 후미카 <First Step>

3. P <인내의 삶> 

4. <신데렐라 걸스> 

5. 센카와 치히로 <함께 걷는 길> 

6. <'어제'가 '오늘'과 함께 할 '내일'에게> 

7-1. <방랑자라고 다 길 잃은 것은 아니다> 

7-2. 호죠 카렌 <히로인과 소녀, 꿈의 무게> 

8. 네가 모르는 이야기, 너만이 아는 이야기

9. (Re)Write─덮어 쓰는, 혹은 다시 쓰는

10. 촛불과 별빛이 가장 밝게 빛날 때

11. 결말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것 

 

<외전격 이야기들>

메모리얼 <사쿠마 마유의 회상>

사기사와 후미카<걷지 않은 길>

사기사와 후미카 <파트너>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도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의 강변에는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때로는 축구 골대를 세워서 축구장이 되기도 하고, 높은 펜스를 세워서 야구장이 되기도 하는 작은 공터의 옆에는 잔디로 덮여 있는 비스듬한 강둑이 있습니다. 강변의 작은 공터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그 장소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오디션에서 떨어지거나, 선생님께 혼나거나, 아니면 시험을 잘 못 보거나……이유는 많지만, 저는 그런 일이 있을 때면 늘 이 장소를 찾곤 했습니다. 해질녘 잔디 위에 혼자 앉아서, 지평선 아래로 녹아내리는 석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 속에 뭉쳐 있던 것이 사르르 녹아서 사라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돌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1년의 마지막 오디션마저 탈락한 그 날에도 저는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가슴속을 짓누르고 있는 무겁고 시커먼, 씁쓸한 맛이 도는 것을 석양과 함께 녹여버리기 위해서.
하지만, 평소처럼 향한 그 장소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여기서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멍하니 풀밭에 앉아, 지평선 아래로 스며드는 땅거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저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곳에는 뿔테 안경 위에 야구모자를 눌러 쓰고, 체육복을 입고 있는 몹시 키가 큰 아저씨가 서 있었습니다.

 

“한숨을 쉬는 모양새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괜찮으면 한번 말해볼래요?”
“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잖아요? 비밀로 할 테니까. 네?”
“그, 그렇죠…….”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는 아저씨의 말에 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아저씨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러 갔던 것,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에게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양성소에서 있었던 이야기…….
제 이야기를 듣던 아저씨는 턱을 쓰다듬으며 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런가요. 아이돌이라.”
“아하하……재밌는 농담이죠? 저 같이 평범한 게 아이돌이라니.”
“글쎄요, 농담 같지는 않은데. 그래, 아이돌이란 말이죠.”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즉시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저를 바라보는 그 사람은 지금까지의 어른들과는 달랐습니다. 특기 같은 건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저를 바라보며 ‘그래서야 요즘 시대에 아이돌 하겠느냐’며 명백한 비웃음을 짓는 다른 어른들과는 달리, 그 사람은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제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당신은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나요?”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은가.
그것은, 지금까지 막연히 아이돌이 되고만 싶었던 저에게 던져진 자그마한 돌멩이였습니다.
고요한 수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자그마한 돌멩이.

 

 


시마무라 우즈키 <Like a Fastball>

 

 


1월의 마지막 주.
CG프로덕션의 별관에 위치한 상무의 집무실.


“뉴 제너레이션……’신세대’인가.”
“네, 그렇습니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 앞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강렬한 눈가의 화장과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날카롭다 못해 예리한 느낌마저 주는 그녀는 이제는 ‘신데렐라 걸즈’가 된 아이돌 부서를 총괄하는 총괄이사를 맡고 있는 미시로 상무였다.

 

“시부야 린, 시마무라 우즈키, 그리고 혼다 미오라……쿨, 큐트, 패션의 대표격 멤버로 이루어진 유닛이란 말이지.”
“네, 뉴 제너레이션의 발표를 기점으로, 기존에 소속되어 있던 인원들에 대해서도 각자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타입을 배정할 예정입니다.”
“여기 적힌 대로라면 트라이어드 프리무스에 대응하는 유닛도 구상중인 모양이다만.”
“네, 그렇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상무의 눈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녀의 눈길이 머무른 곳은, 한 소녀의 프로필이 적혀 있는 페이지였다.

 

“……프로듀서.”
“네.”
“너는 네 가치와 네 능력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래서 우리도 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우선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믿어주더라도 의문점이 생기는 건 물어봐야겠지.”

 

상무는 서류를 내려놓고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 아이가 하겠다고 한다면. 너는 시마무라 우즈키를 정말로 데려갈 생각인가?”
“물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의 이적을 받아들였으니까요.”
“그것 뿐인가?”

 

상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날카로운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단코,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는 건가? 네 ‘스카우트 리포트’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만.”
“그 아이는 여태껏 치수가 안 맞는 옷을 입고, 안 맞는 신발을 신고,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아이는 분명 다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훗, 말은 청산유수로군.”

 

그녀는 작게 웃으며 책상 위에 놓여있는 서류의 가장 앞면에 자신의 날인을 찍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맡겨 보겠다. 네 눈에 보이는 신데렐라가 정말로 잿가루를 덮어쓴 신데렐라인지, 아니면 그냥 촌동네 기집애일지.”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다른 일 없으면 가 봐.”
“네.”

 

그는 상무에게서 서류를 받아 들고 가볍게 머리를 숙인 뒤 집무실을 나섰다. 찰칵, 하고 닫히는 집무실의 문을 바라보던 상무는 의자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네 생각은 그렇겠지만……과연 그 아이가 네 생각처럼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 네 방법이라는 걸.”

 

그녀가 바라보는 창 밖에서는,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였던 땅거미가 마치 스며드는 것처럼 지평선 아래로 서서히 잠겨 들고 있었다.

 


***

 

 

“다녀왔습니다.”

 

프로듀서가 사무실로 들어오자,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던 트레이닝 파트의 트레이너 네 사람과 치히로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됐어요?”
“이렇게 됐습니다.”

 

치히로의 질문에 프로듀서는 빙긋 웃으며 상무의 날인이 찍힌 보고서를 들어 보였다. 그것을 본 마스터 트레이너는 훗, 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런가, 결국 통과되었군.”
“그렇죠, 뭐. 다들 그렇게 생각하셨잖아요?”

 

소파에 털썩 걸터앉은 프로듀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다섯 사람을 돌아보면서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꿀꺽, 다섯 사람은 일제히 침을 삼키며 프로듀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섯 사람을 돌아본 프로듀서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스케줄 보드를 바라보았다. 1월이 끝나가는 스케줄 보드의 저 끝에서부터 커다란 글자로 적힌 한 줄의 글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3월, 신데렐라 걸즈 데뷔]


 


 

 

“으으, 춥다…….”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새벽의 한기를 머금은 칼바람이 코트의 두툼한 옷감을 뚫고 들어옵니다. 목도리를 둘렀지만 바람을 막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뒤늦게 옷깃을 여미자, 그러는 저를 놀리기라도 하듯 이번에는 코트의 아랫쪽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허벅다리를 훑는 서늘한 감촉에 몸을 떨면서 저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골목길을 벗어나 큰길로 나서자 몰아치던 바람이 잠잠하게 잦아들었습니다. 한 번에 수십 대의 자동차들이 왕래하는 커다란 교차로의 횡단보도에 서자 건너편의 빌딩에 설치된 커다란 광고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비타민 음료의 광고가 떠오르는 광고판의 한 켠에는 자그마한 디지털 시계가 있었습니다.

 

-2/1, 맑음, 오전 8시 30분.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고, 제 옆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과 함께 저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맞은편에서 길을 건너오는 많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지만,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야 그렇겠죠. 저는 이미 활동을 쉰 지 반 년도 더 지났으니까요.
이 꼴이 되어버린 저를……이제 와서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고개를 붕붕 흔들어 안 좋은 생각들을 떨쳐내고 저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교차로를 지나 큰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저 멀리 우뚝 솟아오른 세 개의 건물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지금 제가 소속되어 있는 CG프로덕션의 건물이었습니다.

 

“으음…….”

 

프로덕션으로 향하는 마지막 횡단보도를 앞두고 보행신호를 기다리던 저는 상점의 유리창에 비치는 제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유리창에 비치는 소녀는 코트 위에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두툼한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목도리를 손으로 내리자,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유리창에 비치는 소녀를 향해 빙그레, 입꼬리를 말아 올렸습니다. 그러자 유리창 속의 소녀 역시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네, 이게 더 보기 좋아요. 오늘은  프로필 사진을 찍는 날이니까 웃어야죠.
그 때,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잰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11시.
CG 프로덕션의 본관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는 신데렐라 걸즈의 촬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좋아, 다음 12번부터 15번 준비해!”

 

연신 플래시가 펑펑 터지며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팔짱을 낀 프로듀서가 촬영에 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진도가 쑥쑥 나가는군.”

 

자신의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프로듀서는 팔짱을 풀고 옆을 바라보았다. 언제 온 것인지, 그의 옆에는 물이 빠진 면바지 위에 낡은 점퍼를 걸치고 있는 촬영팀의 팀장이 있었다.

 

“이번엔 제때 점심을 먹을 수 있겠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이건 그냥 그대로 말하는 거야. 저번에 신입 모델들 촬영할 땐 밥도 못 먹고 쫄쫄 굶어 가면서 했거든. 진도가 안 나가서.”
“그렇다면 선배들의 활동에 동행시킨 보람이 있는 것 같군요.”

 

프로듀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촬영장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해 보는 아이돌다운 일이었기 때문일까,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던 아이들은 처음 해 보는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사진사의 요구에 따라 자세와 표정을 바꾸어 가며 피사체로써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모두가 칭찬을 듣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뒤처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 때, 촬영장으로 올라오는 한 소녀의 모습에 팀장의 눈이 반짝였다.

 

“저 아이지? 요전번에 K프로덕션에서 이적했다는 아이.”
“네. 시마무라 우즈키라고 합니다. 올해 17살이죠.”
“17살이라……그렇게 안 보이는데.”
“하핫,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인상도 귀엽고, 스타일도 좋고……무난하게 잘 팔리게 생겼군. 확실히 능숙해.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연신 터지는 플래시의 불빛이 불편했던 모양인 듯, 프로듀서는 쓰고 있던 안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왼쪽 눈두덩이를 잠시 동안 문질렀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팀장은 프로듀서가 다시 안경을 고쳐 쓰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괜찮겠나?”
“뭐가요?”
“우즈키라는 저 아이 말이다. 듣기로는 K프로덕션에서 나름 밀어주던 아이라고 들었다만…….”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일까, 팀장은 말꼬리를 흐리며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아뇨, K프로덕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저 아이는 잠재력이 충분한 아이였으니까요.”
“음.”

 

실제로 K프로덕션 소속 당시 우즈키가 소속된 유닛은 동시기에 데뷔했던 ‘트라이어드 프리무스’의 거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도 평가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다만, 그 인기가 오래 가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을 뿐.

 

“그렇기에 하는 말이다.”
“네?”

 

그는 고개를 돌려 팀장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떤 생각으로 저 아이를 데려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보이고 들리는 게 있어.”

 

프로듀서의 눈썹이 움찔, 하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뿐. 그는 잠자코 팀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앞만 바라보며 걸어갈 때, 차마 못 보고 지나친 발 밑의 가시는 무척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지.”
“그렇…….”
“오늘은 여기서 마감하겠습니다!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프로듀서가 뭐라고 대꾸하려던 찰나 촬영장의 조명이 약해지면서 꺼져 있던 스튜디오에 불이 들어왔다.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직원을 발견한 팀장은 손을 들어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족히 더 큰 프로듀서의 등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

 

“이거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 같군. 뭐, 내 생각일 뿐이니까 너무 가슴에 담아두지는 말고.”
“아뇨, 조언 정말로 감사합니다.”
“조언은 무슨……그냥 오지랖이지. 그럼 열심히 해 보라고, 점심 맛있게 먹고.”
“감사합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프로듀서는 멀어져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타이밍이 살렸구나. 운이 좋았어.”

 

프로듀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촬영장 한 켠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촬영장 안을 돌아보는 그의 눈에, 촬영팀 직원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는 팀장의 모습이 얼핏 지나갔다.

 

“……그 점이라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래봬도 실패에는 꽤 일가견이 있는 몸이니까요.”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가,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말은 아무도 듣는 사람도 없이 촬영장의 싸늘한 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다음 날 오후.
CG프로덕션의 별관 지하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레슨을 마친 우즈키는 쿄코, 미호와 함께 마무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연습실 밖에서 휴대전화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던 베테랑 트레이너가 통화를 마치고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마무라.”
“네?”
“프로듀서가 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 집에 가기 전에 한번 사무실에 들렀다 가도록.”

 

‘두 사람은요?’라고 말하듯 우즈키는 양 옆의 쿄코와 미호를 바라보았다. 우즈키의 속내를 눈치챈 듯 베테랑 트레이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이가라시랑 코히나타는 관계 없다.”
“그럼 저만인가요?”
“그래. 분명히 전달했으니 잊지 말고 들렀다 가도록.”
“네, 네!”

 

베테랑 트레이너가 연습실을 나간 뒤, 가만히 서로를 마주보던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듀서 씨가 저를……?”
“무슨 일일까요……?”
“호, 혹시 어제 사진 찍다가 무슨 실수라도……?”
“서, 설마요…….”

 

두 사람에게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우즈키의 속마음은 표정만큼 좋지는 않았다. 정말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샤워를 마친 우즈키가 별관 2층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오후 여섯 시를 약간 넘긴 시각이었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복도를 지나 사무실의 앞에 도착한 우즈키는 사무실의 문에 달린 창문을 통해 사무실 안쪽을 슬쩍 살펴보았다.


“으으, 너무 여유를 부린 건 아닐까……”

 

창가 쪽에만 불이 켜져 있는 모양인지, 사무실의 문에 달린 자그마한 창문으로 은은한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우즈키는 가볍게 문을 두 번 두드리고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실례합니다…….”

 

그녀의 예상대로 사무실 안에는 창가 쪽에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던 프로듀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겨울, 그것도 난방이 꺼진 사무실이었지만 프로듀서는 코트도, 재킷도 입지 않고 와이셔츠 한 장만을 걸치고 있었다.

 

“아, 시마무라구나.”
“죄송해요. 마무리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려서……”
“하하, 괜찮아. 나도 이 뒤에 회의가 하나 남았거든. 자, 여기 앉아.”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쪽의 전등과 라디에이터를 켰다.

 

“슬슬 몸이 식었을텐데 뭐라도 마실래? 핫초코? 아니면 차?”
“그럼 저는 핫초코로…….”
“그래, 금방 가져오마.”

 

우즈키가 소파에 앉는 것을 본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들고 온 서류를 소파 앞의 테이블에 대충 내려놓고 곧바로 준비실로 들어갔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우즈키의 눈에 서류의 표지에 적힌 글귀가 들어왔다.

 

‘뉴 제너레이션즈……?’

 

설마 저것 때문에 부른 걸까? 우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이건 시마무라 꺼, 이건 내 꺼.”
“아, 감사합니다.”

 

잠시 후, 프로듀서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우즈키의 앞에 내려놓고, 곧바로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레슨은 어때? 따라갈 만 해?”
“네. 트레이너 여러분들께서 신경 써주셔서요……무척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프로듀서는 들고 있던 머그잔을 내려놓고, ‘뉴 제너레이션즈’라고 적힌 서류를 집어 들었다.

 

“아마 곧 마스터 트레이너에게서 이야기가 있을 테지만, 조만간 ‘그룹’을 정하게 될 거다.”
“그룹……이요?”
“그래. 너희들의 특색, 인상 등을 종합해서, 소위 말하는 ‘속성’을 정하는 것이지.”
”아! 765프로덕션의 Vo, Da, VI 같은 건가요?”
“그래, 맞다.”

 

빙그레 웃으며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시마무라를 부른 이유는,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야.”
“부탁하고 싶은 거요……?”

“그래.”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즈키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보았다. 반짝이는 안경 렌즈 너머로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우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센터에 한번 서 보지 않을래?”
“네……?”

 

 


 

 

 

“하아…….”

마치 성채처럼 커다란 CG프로덕션의 건물을 나서면서 저는 새하얀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바깥의 공기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날이 잔뜩 서 있었지만, 제 머릿속에는 아직 프로듀서 씨와 나눈 이야기가 뱅뱅 맴돌고 있었습니다.

 

 


“센터……요? 제가요?”

 

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프로듀서 씨는 빙그레 웃으며 제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그것. 표지에 ‘뉴 제너레이션즈’라고 적힌 기획서였습니다.

 

“한번 읽어봐.”

 

저는 서류를 받아 들고 표지를 넘겼습니다. 3월에 있을 저희들의 데뷔 무대에 관한 기획서였지만, 두 번째 페이지에 적힌 내용에서 저는 고개를 들어 프로듀서 씨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데뷔 무대의 센터를요……?”
“그래, 정확하게는 오프닝 무대의 센터지만.”
“세, 세 사람이라고 하셨죠? 그럼 나머지 둘은…….”
“시부야와 혼다가 함께 유닛을 이루게 될 거다. 너희들을 위한 노래도 따로 준비될거고.”

 

저는 황급히 종이로 시선을 내렸습니다.
정말 미오와 린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 사이에 한 칸, 텅 비어 있는 공란이 있었습니다. 저는 숨을 삼켰습니다. 시부야 린이라니, 저 같은 게 감히 린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센터라니……이런 건 저보다 린에게 맡기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난 이번 무대가 너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훌륭하게 일어선 모습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하거든.”

 

프로듀서 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무언가 무거운 족쇄가 달린 것처럼, 입술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저를 기다리는 팬이라니, 그런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뭐……아직 며칠의 여유는 있으니까, 결정하기 어렵다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줄 수도 있어.”

 

저는 슬쩍 눈을 옆으로 돌려 창문에 반사되어 보이는 스케줄 보드를 바라보았습니다.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한 시간. 결코 여유가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며칠의 여유’라는 건 제게 심적인 여유를 주기 위한 프로듀서 씨의 거짓말일 테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뱅글뱅글 돌던 머리가 우뚝, 멈춰 섰습니다.

 

‘더 이상은 안 돼. 언제까지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입술을 깨물면서 저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 이상 머뭇거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저는 고개를 들어 프로듀서 씨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아……난 정말 바보야…….”

 

저는 횡단보도에 서서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저는 결국 프로듀서 씨에게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확신에 찬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프로듀서 씨의 눈을 마주보는 순간, 덜컥, 하고 가슴이 무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오처럼 댄스를 잘 추는 것도 아니고, 린처럼 노래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아카네처럼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온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이라기에도 민망한 생채기들뿐.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몇 번이나 혼이 났는지 모릅니다.

 

“……뭐, 아직 시간은 조금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고 다시 말해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떨구는 제게 프로듀서 씨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답 대신 몇 번째일지 모를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왔던 것입니다.

 

“하아아…….”

 

터덜터덜, 발끝만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던 제 눈에 가만히 서 있는, 남성용 단화를 신은 발이 보였습니다. 멈추기에는 이미 늦었던 모양입니다. 황급히 발걸음을 멈추려 해 보았지만, 톡, 하고 제 이마와 남성분의 팔이 가볍게 부딪혔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어서…….”
“아, 아뇨. 그렇게 심하게 부딪힌 것도 아닌데……요……?”

 

제 얼굴을 바라보던 남성분은 고개를 한번 갸웃거렸습니다.

 

“혹시……시마무라 우즈키 양 아니세요?”
“아, 네. 맞는데요……?”
“혹시 저 기억 안 나세요?”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는 그분의 말에 저는 유심히 눈 앞의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과 가느다란 눈썹, 그리고 둥그스름한 얼굴 윤곽이 어쩐지 낯익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습니다.

 

“아아, 참. 이걸 안 쓰고 있었구나. 자, 이러면 알겠죠?”

 

제가 좀처럼 눈치를 채지 못하자 그분은 그제서야 기억났다는 듯, 품 속에서 동그란 무테 안경을 꺼내어 썼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그 사람이 누군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M씨! M씨 맞으시죠?”
“하하, 이제야 기억해주시네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한편 그 시각, 별관에 마련된 신데렐라 걸즈의 회의실에서는 트레이너들과 프로듀서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 확정 된 건가? 센터는 시마무라에게.”
“……아직은 아닙니다. 본인이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서요. 아직은 제 희망사항일 뿐이에요.”
“정말 그 아이로 강행할 생각이군.”
“상무님께도 그렇게 허가를 받았으니까요. 일단은 좋은 대답을 기다릴 뿐입니다.”
“그렇군……알았어.”

 

프로듀서의 대답에 마스터 트레이너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혹시 마지막으로 질문이나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프로듀서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네 사람을 돌아보았지만, 그와 시선을 마주친 트레이너들은 제각각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이상으로 오늘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마저 정리할 게 남아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먼저 준비를 마친 프로듀서가 회의실을 나간 뒤,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발소리가 잦아들었을 무렵 퇴근 준비를 하던 트레이너가 말을 꺼냈다.

 

“어쩐지 초조해하시는 것 같네요. 프로듀서 씨…….”
“뭐, 그야 당연하지. 시마무라가 관련된 일이니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뭐야, 내가 너희한테는 얘기한 적 없던가?”

 

마스터 트레이너의 대답에 나머지 세 사람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마스터 트레이너는 ‘이런, 이런’하며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재작년 연습생들 오디션 때 기억나나? 아마도 카미야가 들어왔을 때 즈음일텐데.”
“아, 기억나요. 우즈키가 처음으로 참가했던 오디션이었죠.”

 

“맞아.” 루키 트레이너의 대답에 마스터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마무라는, 그가 처음으로 눈도장을 찍어둔 연습생이었거든. 아마 별 다른 일이 없었다면, 그 아이는 트라이어드 다음으로 우리 사무소로 들어왔을거야.”
“그런데 오지 않았다는 말은……별 다른 일이 생겼다는 뜻이 되는군.”

“그래.” 베테랑 트레이너의 말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를 했거든.”
“”거래요?!””

 

트레이너와 루키 트레이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P라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과는 달리, 베테랑 트레이너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타카가키인가.”
“그래. 시마무라의 지명권을 K프로덕션으로 넘기는 대신, 당해 9월의 드림 페스티벌에 출장하는 출장권을 양도받는 거래였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았던 당시의 우리에겐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지.”
“타카가키 씨의 싱글 데뷔가 8월이었으니까, 9월이면…….”
“확실히,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겠어. 그 남자, 타카가키만 나오면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마스터 트레이너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척 고민을 많이 했다. 욕심쟁이였기에 어느 쪽이든 놓치고 싶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그는 타카가키의 손을 들었지.”

 

“왜 그랬을까, 이유를 알겠나?” 그녀는 자신의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베테랑 트레이너를 제외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녀에겐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야. 25살. 아무리 재능이 있고, 가능성이 보인다 하더라도 나이보다 더 큰 패널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남자는 그걸 무척 신경쓰고 있었거든.”
“아……!”
“무엇보다도 대놓고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지. 협상 테이블에 직접 올라온 것이 K프로덕션의 사장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은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타카가키를 위해서.”

 

“정말 웃긴 사람이지. 파워 싸움이라면 이쪽도 안 질텐데.” 마스터 트레이너는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뭐, 그런 이야기다. 결국 그 남자는 시마무라가 저 꼴이 난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때 자신이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하고 말이지.”
“……정말 그거뿐일까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키 트레이너가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씨는 프로정신이 굉장히 강하신 분이잖아요. 그런 분께서 단순히 죄책감이나 동정심 때문에 우즈키를 데려왔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 그것도 맞다.”

 

루키의 말에 마스터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남자가 시마무라를 고집하는 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싸구려 동정심이나 책임감 이외의 무언가가 있겠지.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트레이너라는 역할에.”

 

맏언니의 말에 세 명의 동생들은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M씨와 저는 빌딩 사이에 마련된 자그마한 공원의 쉼터로 향했습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저는 M씨가 내민 캔커피를 받았습니다. 약간 후끈거리는 열기가 차갑게 굳은 손바닥을 살살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M씨는 엇차, 하는 소리를 내며 제가 앉아 있는 벤치의 옆자리에 털썩 몸을 기대었습니다.

 

“정말로 이거면 충분해요? 더 비싼 것도 사 드릴 수 있는데.”
“네, 조금 전에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오는 길이라서요.”
“그랬군요.”

 

M씨는 제가 이전에 몸담고 있던 K프로덕션에서 저를 스카우트해주신, 저의 첫 번째 프로듀서였던 분입니다. 하지만 M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아이돌들을 담당하게 되었고, 제게는 다른 프로듀서님이 배정되었습니다.

 

“저, 저기,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뭐, 늘 하던 대로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프로덕션 분들은…….”
“아, 저 이직했습니다, 다른 회사로요.”
“아……죄, 죄송해요…….”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어쩐지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니, 실제로 제 잘못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잘 했더라면, M씨가 괜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그런 생각 따위를 하고 있자니, M씨는 크게 웃으면서 제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하핫, 너무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지금은 새 프로젝트를 맡고 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K프로덕션보다 훨씬 대접이 좋아요.”

”CG프로만큼은 아니지만.” M씨는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 몸을 낮추어 작은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남들한테 제가 이런 말 했다고 하지 마세요? 사장님한테 혼나거든요.”
“네, 걱정 마세요. 안경은 이제 안 쓰시나봐요?”
“네, 뛰어다니는데 불편해서 렌즈로 바꿨습니다. 그래도 스카우트를 할 땐 ‘인상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쓰고 다니고 있지요.”
“그, 그런가요…….”
“…….”

 

또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휘이잉, 하는 바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딸깍, 딸깍, 캔커피의 오프너를 만지작거리던 M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우즈키 양의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제, 제 소식이요?”
“네. 3월달에 데뷔하신다는 소식이요.”
“그, 그걸 어떻게…….”
“뭐, 업계의 소문이란 건 빠른 법이지요.”

 

M씨는 딸각거리던 손짓을 멈추었습니다.

 

“이렇게 무사하게 복귀하시는 걸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P씨에게 당신을 맡긴 건 옳은 선택이었네요.”
“아하하……P씨께는 K프로덕션에 있을 때도 무척 신세를 졌으니까요…….”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네?”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당신께 말씀 드렸어야만 하는 일이었는데......제가 겁이 많아서 이제야 말씀을 드리네요.”

 

잠시 말을 멈춘 M씨는 가볍게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실은, 당신은 처음부터 K프로덕션이 아니라 CG프로덕션으로 갔어야만 했습니다.”
“그게 무슨……말씀이세요?”

 

M씨는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잠시동안 저를 바라보던 M씨는 무거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양성소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만났던 오디션, 기억하시나요?”
“물론이죠! 제가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실은, 거기서 당신을 지명한 건 P씨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저도, 다른 심사위원들도 아무도 당신을 지명하지 않았어요.”
“그럼 어째서 제가 K프로덕션에 갈 수 있었던 거죠……?”
“……사장님의 억지였습니다. CG프로덕션은 업계 굴지의 대기업. 그런 곳에서 뽑은 것이라면 어떻게 써먹든 이용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죠. 그래서 그분은 P씨에게 억지를 부렸습니다. 당신의 지명권을 우리에게 달라고요.”

 

M씨는 한 손으로 쥐고 있던 캔을 두 손으로 고쳐 잡으며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저는……담당 프로듀서로써 당신을 맡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어요. 당신의 어느 점을 내세워야 하는지, 어떻게 당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 그런 아이디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야 그렇겠죠. 저는 당신의 가치를 모르니까요. 그런 게 보였다면, 아마 P씨가 아니라 제가 당신을 지명했을 겁니다.”
“아, 아니에요!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말아주세요! M씨는 충분히……”
“하핫, 그런 위로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제가 그런 소리를 들을 처지가 못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M씨…….”
“아마, ‘선배’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겠죠.”

 

마른 웃음을 흘리던 M씨의 입에서 나온 ‘선배’라는 사람은, 아마도 M씨의 뒤를 이어 제 프로듀스를 담당하셨던 K씨일테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목덜미의 솜털이 바짝 일어서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M씨는 자신의 선배인 K씨를 무척이나 믿고 따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의 담당이 되고 난 뒤, 선배는 틈만 나면 제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면서요. 선배든 저든 피차일반이었던 거에요.”
“그럼, P씨와는 어떻게……?”

 

저는 무척 신경이 쓰였습니다. K프로덕션에 있던 시절에도 지금의 프로듀서 씨에게 많은 신세를 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부분에서였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인사치레조차 피하고 다녔는데, M씨는 어떻게 P씨와 제 관계를 눈치챘던 것일까요?

 

“예전에 드림 라이브 페스티벌의 협조 건으로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당신에 대해서 묻더군요.”

“어찌나 집요하게 물으시던지……누가 보면 사생팬이라고 오해할 정도였어요.” M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거기서 직감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 당신을 잊지 않았다고. 당신에게 미련이 남아 있다고.”
“그래서 이적 요청을 하셨군요…….”
“네,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신을 먼저 찾아낸 그 사람이라면, 우리들이 찾아내지 못한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당신을 맡기기로 결정한 겁니다.”

 

M씨는 다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주친 그의 눈빛은, 조금 전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선택을 하기를 잘 한 것 같네요.”

 

 


 

 

M씨와 헤어지고 나서, 저는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다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2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그 장소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의 강변에 위치한 자그마한 공원이었습니다. 아니, 단순한 공원은 아니에요. 이 곳은, 2년 전 막연하게 아이돌을 꿈꾸던 한 여자아이가 커다란 만남을 가졌던 장소였으니까요. 그리고 제게 있어서는……평생 잊지 못할, 무척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넓은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둑에 올라서서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공원의 불빛마저 모두 꺼진 늦은 밤, 별빛처럼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을 등지고 선 어떤 사람의 질문이 들려왔습니다.

 

‘아이돌, 아직도 하고 싶어요?’

 

그 때의 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저는 다시 눈을 뜨고, 손에 있던 휴대전화를 바라보았습니다. 휴대전화의 화면에는 이미 어떤 사람의 전화번호가 떠올라 있었습니다. 이 통화버튼을 누르면 그 사람에게 곧바로 연락이 갈 테지요. 그리고 그 사람은 지체하지 않고 제 전화를 받아 줄 겁니다.
저는 휴대전화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통화음이 채 두 번도 울리기 전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생각은 정리됐어?
“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한번 해 볼게요.”
-고맙다.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네, 그렇게 할게요.”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고개를 들어 어둑해진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두근두근,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감각을  느껴 본 게 언제였을까, 무척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습니다.

고양감과 함께 점점 가속하는 가슴의 맥박을 느끼면서, 저는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시마무라 우즈키, 열심히 할게요!’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中)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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