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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하라 베이커리: 빵집에 여왕님이 오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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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6, 2017 00:33에 작성됨.

매서운 바람이 거칠게 사람의 옷을 흔든다. 추위가 거세질수록, 집 안은 점점 더 열이 오르고, 사람들은 집 안에서만 웅크리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가게의 손님이 줄어든다.

 

홀짝-

 

오랜만이네요. 얼마만이죠?”

 

그런 것과 달리, 오오하라 베이커리에는 의외의 손님이 들어와 있었다. 가게는 따뜻했지만, 손님은 찬바람이 냉랭했다. 그녀 앞에 놓인 커피가 유독 더 빨린 식은 것은 착각이 아닌 무려 실화다.

 

홀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한파를 눈앞에 둔 당사자는 마치 다른 세계에 있다는 듯이 차만 홀짝 거리고 있었다.

 

커피가 입에 안 맞으시나요?”

 

“....”

 

다른 것, 드릴까요?”

 

“....”

 

여유롭게 마실 것을 권유하면서, 살갑게 상대의 추위를 걱정했다. 살짝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칼, 감은 듯한 실눈, 담요로 가려졌지만 그럼에도 가릴 수 없는 쓸쓸한 다리. 오오하라 베이커리의 주인장이자, 오오하라 미치루의 오빠. 오오하라 히이라기는 오늘도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며 손님을 접대하고있었다.

 

닥쳐.”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한껏 내려다보는 살벌한 눈으로 그녀는 눈 앞의 히이라기를 대응하고 있었다. 히이라기 입장에서는 불쾌할 법한 언행이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히이라기도 그냥 그려러니 하고 마는 중이었다. 어쩌면 조금 재밌어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왜 내가 불렀는데도 거절했지, 돼지?”

 

싫으니까요.”

 

“....”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히이라기는 살짝, 뜨거운 숨을 내쉬고 말은 덧붙였다.

 

싫은 건, 그냥, 싫은 겁니다.”

 

“....”

 

고고고고고----하는 어딘가의 효과음이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토키코가 히이라기의 대답에 그 기운을 더 키웠다. 그러나, 히이라기는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롭게 차의 향이나 음미하고 있었다. 미소짓는 걸 보니 꽤 맘에 들게 우려졌나보다.

 

오늘은 분명히, ‘제가 코타츠 안에서 미치루를 하루종일 껴안고 부비부비하면서 같이 귤과 빵을 먹는 날로 정해져있습니다. 추운 겨울을 나려면 미치루의 온기가 필요하거든요.”

 

여기서 동생 허락을 받았는지는 일단 넘어가자.

히이라기는 상상만해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파르르 몸을 떨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 하고 한 번 숨을 내쉬고, 히이라기는 간신히 다시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무튼, 오늘은 쉬는 날입니다.”

 

“....”

 

불만있으신지?”

 

살짝, 실눈 사이로 보라색 빛이 살그머니 나와서 토키코를 찔렀다. ...! 하는 희미한 소리와 함께 고고한 여왕의 기운에 살짝 금이 갔다. 여기서 더 몰아붙이면 깨지려나싶지만, 그래봐야 별 좋은 일은 없겠지.

 

장사꾼의 능수능란한 상술일까, 아니면 히이라기라는 인간의 여흥일까. 히이라기는 찻잔을 내려놓고 의외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아름다우신 여왕님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으니... 이런데도 대접하지않는다면 너무하겠죠.”

 

살짝, 우아한 인사를 가볍게 올리고 히이라기는 말을 이어나갔다.

 

여왕님을 불쾌하게하고, 여기까지 끌고온 저의 결례에 대한 사죄로... 케이크를 대접할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어도 되겠습니까?”

 

키득-키득- 살짝 놀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묘하게 녹아있는 말이었다. 토키코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히이라기는 아랑곳않고 다만 윤허하기를 기다렸다. 왜인지 히이라기의 농간에 넘어가는 기분이라 별로 유쾌하진 않았지만 사실 손해볼 건 없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방 속으로 사라진 히이라기를 기다린다. 한참 동안,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히이라기가 나올 기미가 없자, 고개를 쭉 빼고 갸웃거리다가, 토키코는 그제서야 몸의 스크럼을 풀고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손깍지를 낀다음 팔을 쭈욱 당겼다. 허리를 뒤로 한껏 젖히기도 하고, 여러 군데를 움직여가며 굳었던 몸을 풀어주었다.

 

뚜두두둑 소리가 연신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도, 누군가 볼까 싶어서 빠르게 가게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문을 잠그고 closed로 돌렸다.

 

남의 가게 마음대로 닫지말아주세요

 

누구한테 명령이지?”

 

속으로만 놀라움을 삼켰다. 크흠이라고 아주 작게 말하고서 토키코는 다시 팔짱을 꼈다. 도도하게 건방지게, 뒤로 돌아본다. 턱을 살짝 올리고 눈은 아래로 깐다. 그리고 또각- 또각- 성큼걸이로 걸어간다.

 

좋아, 이것으로 완벽한 여왕이다.

라고 토키코가 생각했다.

 

네네~ 여왕님~”

 

, 이렇게까지해야 만족하나?”

 

글쎄요...하지만, 저택에서만 가끔 보기에는 아깝단 말입니다.”

 

토키코님이라고 불러.”

 

네네~ , 그럼 여왕님. 제 사죄를 받아주시겠습니까?”

 

히이라기가 갈색 통나무 모양의 롤케이크를 내려놓았다. 단면으로 보면, 벌꿀색 푹신한 시트사이로 윤기가 흐르는 생크림들이 층층히도 쌓여있다. 살짝 얼른 먹어보라는 듯이 히이라기가 포크를 건내자, 토키코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포크를 빼앗듯이 가져갔다.

 

“....”

 

맛있다. 맛있다. 이 감각만이 토키코를 지배했다. 지금이라면 여왕이라는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아. 이 케이크에 자신의 목줄을 건내주고, 손에 쥐여주고싶다.

 

찌릿찌릿 퍼지는 감각에 토키코가 홍조를 띄우며 몸을 떨었다. 간신히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꼰 다리를 유지했지만, 히이라기의 눈에는 이미 미동이 눈에 띄었다.

 

촉촉하고 무거운 카스테라가 아니라 보슬보슬한 느낌의 시트. 약간 물기가 부족한 것 같지만, 오히려 크림과의 궁합이 더욱 절묘해진다. 파스르...하는 느낌으로 서서히 풀어지는 시트는 한껏 퍼지고 크림에 닿아 엉킨다. 크림에서는 매끄러운 우유의 풍미와 함께 톡톡 튀는 듯한 상큼함이 느껴진다. 소리는 나지않지만, 딸기의 씨앗이 톡톡 씹을때의 느낌이다. 빨갛지도 않고 광택이 흐르는 하얀 생크림에서 기분좋은 딸기의 맛이 느껴진다. 겨울이 조금씩 가시고 싱그러운 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감각. 아무것도 느껴지지않던 거리에 은은한 꽃향기가 오는 것처럼. 이 케이크에도 딸기의 맛이 그런 식으로 숨어있다. 마치 봄처럼.

 

하으으...”

 

결국 참지못하고 틈으로 신음이 살짝 흘렀다. 토키코도 얼른 깨닫고 입을 닫았다. 손보다 빠르게 눈을 굴려 히이라기의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히이라기는 찻잔을 내려다보며 차의 색을 감상 중이었다.

 

꽤 한참을 보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홀짝- 마셨다. 그리고 입술로 !’하는 표정을 만들었다. 토키코 님을 신경쓰지못해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부드럽게 취하고, 맛을 물었다.

 

그럭저럭 먹을만하네.”

 

감사합니다.”

 

실제론 무지 맛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튕기지않으면 조금 억울한 기분이었다. 여왕이라는 이 토키코가 겨우 케이크하나에 내어줄 수는 없다.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케이크를 먹었다. 커피와 케이크의 조화. 방심해버렸다. 평점심을 찾기위해 마셨던 커피가 오히려 격정스러울정도로 놀라운 맛의 조화를 이끌어버렸다. 결국 무너졌다.

 

토키코의 몸이 녹아내리듯 테이블 위에 달라붙었다. 포크를 꽉 쥐고 몸을 파르르르 떨다가 토키코는 몸을 번쩍 일으켜 세우고 외쳤다.

 

맛있어!!!”

 

여왕의 품위도 잊어버리고 어린애처럼 눈을 번쩍 뜨며 토키코는 외쳤다. 히이라기가 몰래 토끼처럼 귀여워요~ 라면서 붙여준 토끼코라는 별명이 참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결국에는 될대로 되버려라~라는 마음으로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먹다가 토키코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미치루는?”

 

, 오늘은 레슨이 있대요.”

 

“.....

 

토키코가 포크를 멈추고 히이라기를 향해 불같은 눈을 보냈다. 히이라기가 빙긋 웃음을 짓고 토키코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까딱였다. 그리고, !하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손뼉을 치고 말했다.

 

케이크는 공짜에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토키코의 가슴에 벅차올랐지만, 말해서 무엇하랴 상대가 그 히이라기인 것을. 천년은 구렁이로 천년은 구미호로 살다가 인간으로 둔갑한 것과 같은 저 능구렁이의 장난에 또 말려든거냐. 한탄하며 토키코는 케이크를 먹었다. 원래라면 돈주고 사먹었을 좋은 케이크를 공짜로 받았으니까 따지고보면 토키코는 이득일지도 모른다. 가게로 걸어와야했다는 걸 빼고도 케이크가 공짜.

재차 포크를 움직여 입에 케이크를 넣은 토키코는

맛있으니 봐주마

라고 말할 뻔했다.

 

후훗.”

 

겨울의 찬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오오하라 베이커리의 하루는 잘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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