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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제 12장 - 묘역(墓域) 上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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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4, 2017 22:30에 작성됨.

파도가 치솟는다. 
군함과 바다괴물들이 실랑이를 벌이며 철썩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상상화(畵)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파도가 솟구쳤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드리운 파도의 그림자를 목도한 이들은,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해 하던것을 멈춘다.

거기에는 배를 휘감은 크라켄의 촉수를 구타하던 히노 아카네도 포함되 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에게, 더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솟구친 파도가.. 도로 내리치지 않은 채 찰나의 순간, 그대로 얼어붙었다.
굽이치던 물결은 그대로 크고 뾰족한 날붙이와 같이 변하고 그것이 서서이 기울어지더니.. 이윽고 수면 위로 일렁이던 바다색이 아닌 거체에 내리꽃혔다.

 

거무죽죽한 체액과 함께 내리꽃힌 얼음과 함께, 갈색 비스무리한 형체가 물 위로 둥둥 떠오르며 군함과 군함 사이의 바다를 메꾼다.
사람들은 그것이 곧 크라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십여초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체액과 먹물이 섞인 액체가 수면위를 뒤덮고 그 위로 한가하게 지나가는 흑철나무로 조각된 나룻배와.. 여인.

털이 수북하여 코트로 헷갈려 보이는 망토를 걸친 채. 여인, 아야세 에리는 크라켄에게 내리꽃힌 파도모양 빙하옆을 지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 에리치카 님이다 ! 모두 최선을 다해라 ! "

 

3함대의 함대장인 여성이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떠나가라 소리친다. 그 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쪽배 위에 선 금발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보고서 환호섞인 함성을 내지른다. 추앙받는 뮤즈. 그것도 군 최고통수권자가 직접 전장에 나선 것이다.

 

 

아야세 에리. 그녀가 내려와 날카로운 얼음덩이가 달린 철봉을 휘두르니 빙하에 찍혔음에도 미미하게 발버둥 치던 크라켄이 축 늘어진다.
그럼과 동시에 작은 배 위에서 훌쩍 뛰어올라 수면 위에 발을 딛는다. 정확히는 그 해수면 위에 찰나에 생겨난 얼음 발판 위에 딛은 것이었지만. 발판을 만들어가며 괴물과 군함의 격전의 현장으로 다가가는 걸음을 보자니, 나룻배는 여태까지 왜 타고왔던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다가오는 걸음은 차가운 바람을 몰고왔다. 해풍이 춥다고 하지만, 그녀가 몰고 오는 것은 마치 한겨울이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추웠다. 크라켄들 역시 그 한기를 느낀것인지 약간이지만 굼뜨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 우선은 3함대로.. "

 

 

자기 안의 우선순위를 결정한 그녀의 발걸음은 급속도로 빨라졌다. 발판만 아니었다면 물 위를 달리는듯한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질주하여, 그녀는 3함대의 뱃머리에 다다랐다. 그리곤 곧장 철봉을 뻗어 그 끝에 달린것을 힘껏 휘두르니.. 집요하게 들러붙어 있던 다리 한개가 통째로 잘려나가 차갑게 변해가는 바닷속에 빠진다.
배 자체가 반 즈음 들려 밑창에 붙은 크라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선원들의 여태까지의 노력과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성과.

에리치카의 활약상을 보고 영향을 받은건지, 병사들이 총탄을 퍼부어 헐렁해진 촉수 한짝이 휘청거리다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으로 푹 쓰러졌다. 그들은 악에 가까운 함성을 내지르며 총탄이 없는 자들은 착검하여 달려들어 빨판을 쑤셔대고 그것도 모자라, 선실에서 비상용 도끼를 꺼내어 힘껏 휘두른다.

 

저항하는 촉수에 병사 몇몇이 날아가지만, 그들은 움츠러들지 않고 맞선다. 뮤즈의 아야세 에리가 자신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 다가오니, 용기가 흘러넘쳤다.

 

이윽고, 조각 두세가닥 남은 촉수로 발버둥치던 크라켄의 가시돋힌 배 위로, 얼음의 그녀가 올라선다.
촉수를 휘둘러 떼어내려고 해봐도, 이미 모조리 잘려나가거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기에 잘린 단면을 버둥거리다가 체액을 뭍힌게 전부였을 뿐이다. 망토로 얼굴에 붙은 액체를 가볍게 닦아내고서 그녀는 철봉을 두손으로 번쩍 치켜들었다. 방금 전까지 날카로운 칼날 모양을 하고있던 얼음이 길다랗고 뾰족한 형상으로 변해간다.

 

" 흠! "

 

길고 뾰족한 형상이 완성되기 무섭게, 그녀는 힘껏 그것을 찔러넣었고.. 크라켄은 부르르 떨더니, 그나마 배에 붙여놓았던 빨판을 떨어뜨리며 힘없이 수면위에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걸 선박의 난간에서 쳐다보고 있던 눈은 경외섞인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 굉장히 강하고... 차가워요.. " 그 눈동자의 주인인 시마무라 우즈키는 그러한 감상을 남긴다. 미호역시 옆에서 에리의 모습을 처다보다가 고갤 끄덕인다. 미호는 제국 · 왕국 전쟁 당시에, 에리가 육군을 이끌고 오는 정면쪽이 아닌, 당시 제국군 남해선단 제독인 니시키노 마키가 이끄는 해상병력이 침공해오는 남쪽에 있었기에 아야세 에리에 대해서는 이름과 대표적인 몇몇 특징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비록 무방비상태에서 당했지만 함대 기함이 쩔쩔맬 정도의 바다괴물인 크라켄을 이토록 어렵지 않게 물리치는 그녀의 강함에 전율했다.

저런 무지막지한 것들을 상대로, 우리들은 싸웠었다 라고 생각하니(실제로 에리와 칼을 맞대고 싸웠던 것은 린이었지만) 없던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크라켄이 늘어지자, 기울어져 있던 함선은 균형을 되찾는다. 아야세 에리는 철봉을 뽑아들고서 ─── .

 

" ...! "

눈과 눈이 마주친다. 올려다보는 눈과 내려다 보는 눈.
하늘색과 갈색.
얼음과 태양.

우즈키는 황급히 몸을 숙였다. 미호 역시 에리가 고개를 돌려봄과 동시에 고개를 움츠렸다.


' 우즈키짱..! 설마 우리..'
' 어떡하죠?!'

 

곧이어 그녀가 다시 바다 위를 질주하여 저 너머 연기나는 5함대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에 병사들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직, 크라켄의 공격은 끝난것이 아니리라.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음을.. 우즈키 일행은 느낌으로 깨닫는다. 곧이어 함대장이 병사들 가운데에 선다.?이어서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 함선의 손상 및 병력피해를 확인해라 ! 서둘러 ! "

 

다친 이들이 빠르게 선내 의무실로 옮겨지고, 사지가 멀쩡한 이들은 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각자의 자리로 움직인다.

 

" 파악이 끝난 후, 즉시 5함대를 도와 괴물들을 몰아낸다! "

 

병사들의 기합소리 사이에, 세 명의 목소리는 섞여있지 않았다.

같은 시각, 3함대 기함 식료저장고.

 

" 점점 상황이 안좋게 돌아가네요..! " 그 생각없다고 왕국 동네방네 소문난 아카네의 얼굴이 근심으로 어두워져 있다.


순항할 줄 알았던 길에 예상에도 없던 크라켄들의 습격에 더해, 아야세 에리.. 그녀가 우즈키의 얼굴을 봤다면 분명 정체를 들킬게 뻔할 터 이다. 그래도 일단 급한 불은 꺼진 탓에 그들의 배는 크라켄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이제 다른 함선으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돌리고 있던, 그 찰나.

 

파도가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장난감 배를 두고 물보라로 휘두르는 짖궂은 아이...

라고 딱 잘라 표현하기엔 그것은 너무 크고 또 커다랬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에 봉우리가 솟구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큰 파도오름이 솟았다.

 

 

" 저.. 전방에 - " " 이리내라 ! "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관측병의 망원경을 빼앗은 함대장은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형상을 목격하고야 만다.

 

해수를 뚫고 솟구쳐 오른 그것은 통상적인 크라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기에.

 

 

" 저건 대체 뭐냐! 저런 크기는 들은적도 본적도 없다..! "

 

촉수 하나가, 군함 하나와 맞먹는 두께로 철썩이며.. 너 멀리 제국의 군함을 종이배마냥 쓸어내 엎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함대장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모른다. 그것은 솟아오른 덩치만으로도 위협적이기 그지없음에도 그걸로 끝나지 않고.. 착실하게 5함대를 향해 유영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공포스러웠다.

 

그것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때 마다, 그 반동으로 오는 결코 낮지않은 파도는 그것의 위력을 어림 짐작케 했다.

 

" 사..4함대 괴멸..! 통신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

 

 

 

"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저 빌어먹을 커다란 크라켄은 뭐고? "

 

병사들이 동요에 휩싸인다.

 

" 저런거랑 싸우라고..? 말도안돼..! "

" 나 방금 봤어! 저 커다란게 4함대 기함을 날파리처럼...히익! "

" 우리도 저렇게 될거야..! "

 

 

그리고 한 편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야세 에리라는 목격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직전이던 미호는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야세 에리가 오히려 예상보다 더 전력이 강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 편, 5함대로 성큼성큼 다가오며 파도를 일으키는 거대두족류를 목도하던 눈동자는 점점 시선을 위로 올린다.

그도 그럴것이 가까워질 때 마다 갑판에 그림자가 드리울 정도로 크기를 실감내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그녀가 사실 보고있던 것은 크라켄이 아니라, 그것의 솟구친 배 위에 붙어있는 무언가였다.

 

 

'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

 

 

크라켄의 크기탓에 잘 보이지 않는것은 물론, 그대로 서있다간 서있는 선박과 함께 바다에 잠겨버릴 위기라는걸 잘 알고있었던 탓에, 그녀는 강수를 두기로 마음먹는다. 그 증거로 그녀가 선 갑판 앞부분을 시작으로, 점점 서릿발이 올라오고 있었으니.

아니냐 다를까, 4함대를 날벌레처럼 쳐서 날려버린 거대한 촉수의 가 풍압과 물보라를 동반하며 쓸어왔다.

 

그리고, 언제 생긴지 모를 넓고 두꺼운... 함선의 옆면을 모두 덮는 빙벽이 거대한 촉수를 가로막는다. 배 역시 조금의 흔들림만 있을 뿐, 기울어지거나 그런 것이 없어 멀쩡함에 이상함을 느낀 병사 몇이 아래를 살펴보니, 선박 주변이 통째로 얼어 배의 세 배 정도 면적의 얼음 섬이 탄생해 있었다.

 

에리는 자기 몸 주변으로부터 솟아나는 냉기를 품고서 두족류의 꼭대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 비정상적인 크라켄의 대규모 무리. 그리고 영역 밖으로 나오면서 까지 인간의 선박을 공격하는 상식을 벗어난 호전성... "

 

 

잠깐 뜸을 두고, 한발짝 그녀가 내딛자 뱃머리가 마치 커다란 공성추마냥 뾰족하고 돌기달린 형상의 얼음으로 뒤덮혔다.

 

 

 

 

" 네가 주동자였군 ! 이치노세 시키 ! "

 

 

 

 

히 - 히히히 - .

 

히히히- 흐히히히 ─ .

 

흐 - 히히히하하하하 !

 

크라켄의 꼭대기에 있던 형상이... 말 그대로 크라켄의 표면을 '미끄러져 내려오며' 그 부름에 응하듯 웃음소리를 키운다.

 

아무렇게나 헝크러진 긴 머리카락 사이로 가려진 두족류의 빨판과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얽혀있는 반쪽을 단 그것은. 나머지 반쪽인 인간이 형상만으로도 이치노세 시키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 안녀엉~ ? " 크라켄의 배와 머리 사이부분에 '멈춘' 그녀는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서있는 모습은 지극히 부자연 스러웠다.

발 부분이 마치 크라켄의 안에 흡수되어있는 듯한 기괴망측한 형태를 하고있었으니 그럴만 했다.

 

 

" 이쪽은 안녕 못하겠는데. " 아야세 에리의 반응은 싸늘했다.

 

" 왜애~ 소-중한 함대가 산산조각나서~ ? "

 

" 아니, 그냥... "

 

 

그녀가 한쪽 다리를 치켜든다.

 

 

 

" 네 얼굴이 엿같아서. "

 

 

곧이어, 들린 다리는 즉시 그녀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찍힌다.

 

── 쾅!  

 

허나 갑판을 감싼 얼음을 내치는 소리만 날 뿐, 어느센가 이치노세 시키는 크라켄의 표면으로 약간 올라가 있었다. 

빨판은 혐오스럽게 철퍽이고, 사람의 얼굴이 남아있는 반쪽은 히죽히죽거리며 비웃을 따름이다.

 

그녀가 철봉을 치켜세운다. 들고있는 봉의 끄트머리에는 묵직한 할버드의 도끼날과 같은 얼음덩어리가 달려있다. 

 

" 하나만 물어보자. 굳이 이렇게 우릴 막는 이유가 뭐지 ? "

 

에리는 전투태세를 잡아가며 그렇게 물음을 던졌다.

질문을 듣고, 팔 대신 달린 촉수다발턱에 괴는 시늉을 하다가 또한번 입이 찢어지도록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 당연히 너희들이 방해되니까 그렇지. "

" 하, 네 '같잖은 주인'이 시켜서겠지. 꼭두각시. "

 

조롱 비스무리한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촉수로 휘둘러침에도 꼼짝도 않던 함선을 감싼 빙하가 들썩인다.

크라켄의 몸통은 약간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동시에 빙하를 감싸오르듯이 그것의 다리 여러개가 다방면에서 감싸 얼음 전체를 들어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아야세 에리.

자기 몸집만한 고드름을 불러내 집어올리려는 촉수들에 쏘아내지만 여지껏 다른 크라켄들과는 달리 표피에도 제대로 박히지 않는다.

에리의 얼음 탓에 추위에 떨면서도 한편으로 안심하고 있던 병사들은, 선박의 각도가 점점 기울어지자 혼란에 빠졌다.

 

 

" 주인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모두 ! 없어져라 - ! "

 

괴물과 같은 변조가 뒤섞인 이치노세 시키의 외침과 함께 빙하가 요동치며 균열이 일어난다.

 

" 정화되라! 이단이여 ! 불신하는 자들이여 ! 죽음으로서 뜻을 함께하라 !! "

 

 

마침내 거대 크라켄이 함선을 둘러싼 빙하와 통째로 힘껏 들어올리자 선박은 멀리서 보기에도 족히 70도는 되보이는 각도까지 뱃머리가 처올려진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는 참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병사들이 입수당할 각오를 하고있다가, 감작스럽게 멈춘 선박의 움직임에 어리둥절하며 눈을 떠보니, 배는 그 70도 각도로 솟은 채로 멈춰있던 것이다. 솟구친 배의 밑창을 따라 치즈처럼 늘어져 뻗어있는 얼음덩이는, 언젠가부터 바닥에 또 깔려있던 다른 빙하덩어리와 일체화 되어 치솟은 배를 그대로 고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솟은 뱃머리의 꼭대기.. 얼음 돌기로 감싸인 부분 끄트머리에 서서 털망토를 휘날리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제야 높이가 맞춰져 똑바로 정면을 향해 이치노세 시키를 응시하고 있었다.

 

 

" 나를 꽤나 무시하고 있나 본데. 이래뵈도, 소싯적에 드래곤과 1대1 로도 이겨봤단 말이지. 하물며 좀 커다란 돌연변이 크라켄 따위가... "

 

 

말을 다하는 꼴을 못보고 거대 크라켄이 에리가 선 뱃머리를 향해 어김없이 촉수를 휘두른다.

 

하지만 촉수는 그녀에게 닿기는 커녕.. 눈 앞에서 우뚝 선 채로 굳어버렸다.

 

 

 

" 이 에리치카님의 상대가 될리 없지. 안그래 ? "

 

 

굳은 촉수와 에리의 사이에 닿아있는 철봉의 끝은, 미세하게나마 크라켄의 안쪽으로 찔려들어가 있었고, 곧이어.. 촉수 전체에 서리가 올라오더니 이내에 산산조각나 부서져 바닷속으로 떨어진다. 크라켄이 부서진 촉수를 버둥거리며 움츠러드는 낌새를 띄자, 그 위에 '연결' 되있는 이치노세 시키 역시 아까까지의 능청스럽고 교활해보이는 페이스는 어디갔는지 붉은 눈동자와 시뻘건 뿌리들을 번뜩이며 살기를 뿜는다.

 

아까 전 상황과 반대가 되어, 이번에는 이치노세 시키가 정색하며 아야세 에리는 입가에 여유를 머금은 미소를 띈다.

 

" '뮤즈'는 주인님의 사상에 반하는 존재들.. 가증스러운 것들..! 모두 없어져야 해..! "

" 미안하지만 그렇게 쉽게 없어져주지 않을 거거든. "

 

에리의 손바닥 위에서 그녀의 몸집만한 정육면체 얼음 큐브가 생겨나고, 이를 철봉으로 야구배트 휘두르듯 휘둘러 쳐올린다.

그러길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쳐 크라켄의 위에 있는 시키를 향해 날아오는 덩어리들을, 타겟이 된 그녀는 촉수다발로 휘둘러 궤도를 비껴낸다. 

 

이윽고, 아까까지 날아온 것 보다 더 큰 큐브가 날아옴에 촉수를 바짝 편다. 촉수의 끝이 꿈틀거리며 이윽고 촉수 전체에 힘줄이 솟구치고.. 그대로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큐브가 산산조각난다.

더 이상 공격을 허용하기 전에 끝장을 내려는듯, 붉은 눈을 번뜩이며 도로 뮤즈가 서있는 곳을 응시하는데..

 

그녀의 눈동자에, 아야세 에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 나 여깄어. "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올려봄과 동시에, 길다란 얼음 칼날이 괴이한 몸뚱아리를 꿰뚫었다. 그러나, 이치노세 시키는 입가에서 피를 흘려낼 뿐 다른 리액션은 없었다. 표정은 여전히 정색일색이고, 에리는 힘껏 찔러넣었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뒤이어 

 

" 어리석은... 뮤즈라 하여도, 주인님의 축복은 ── . "

 

 

 

" 이걸로 끝낸다 한 적 없는데 ? "

" ...!! "

 

에리가 찔러넣은 부분을 시작으로 서리가 점점 가속을 붙여가며 면적을 넓혀간다. 그제서야 상황을 깨달은 시키는 뭔가 해보려는 시간도 없이, 뻗으려던 촉수도.. 뭔가 모멸적인 말이라도 던지려면 입까지 모조리 얼어붙고 만다.

그리고 얼어붙음은 끝이 없이.. 이치노세 시키를 시작으로 이윽고 거대 크라켄의 전신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마침내,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거대한 두족류의 저항에도 무색하게 통째로 얼어붙고야 만다.

에리는 얼어붙어서 간신히 눈동자만 굴러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 별의 사도라면 코토리를 통해 많이 전해들었지. 죽어마땅한 상처에도 아무렇지 않게 낫는다고 말야. "

 

 

뻘건 눈동자를 부들거리는 시키를 향해, 그녀는 쐐기를 박는다.

 

 

" 그러면 이것도 낫는지 한번 시도해봐. "

 

 

꽃혀있던 얼음칼날을 뽑아, 칼날이 이어져있지 않는 철봉 부분으로 크라켄과 시키가 이어진 부분을 세게 찔러넣는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함대 전체를 휩쓸어 날려버릴 것 같던 거대한 두족류의 형상이, 그 위에 비참하게 얼어붙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형상과 함께 산산조각나 무너져 내린다. 부서져 쏟아지는 크라켄의 파편들은 크고 작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뮤즈의 승리를, 제국 함대의 승리를 알리는 신호가 되어 퍼져나갔다.

 

 

.

.

.

.

.

 

같은 시각.

제 3함대 기함.

 

저 멀리서 부서져 내리는 파편들을 보며 병사들은 환호를 내지른다. 함대를 습격하던 크라켄들은 거대한 것이 부서짐과 동시에 뿔뿔이 흩어졌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제국의 화력에 찢겨져 해면에 부유물이 되었다.

함대들은 대열을 가다듬고 본래 목적대로 '묘역'을 향한 항해를 재개한다.

그리고 그 원래대로 돌아온 순항로 가운데서, 우즈키와 그녀의 일행은 아야세 에리에 대한 걱정을 품은 채, 결코 편치 않은 길을 향한다. 특히, 시마무라 우즈키는 그것 외에 한가지 더.. 신경쓰고 있는 것이 있었다.

 

 

' 아까, 커다란 크라켄과 함께 느껴졌던 그 기운.. 설마하지만.. '

 

그녀가 보았던, 들었던, 대면했던 것들과 상통하는 무언가를 느낀 그녀의 근심은 둘의 것보다 더욱 컸기에.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녀의 마음만은 날아서라도 가고싶으리라.

 

 

 

 

마찬가지로, 석연찮음을 품고있는 이가 하나 더 있다.

 

제독함대 기함, '비트 인 엔젤' 호.

VIP 숙실에 앉은 금발의 그녀는 입고있던 망토와 전투복을 벗어 걸어놓는다.

 

화려하게 금으로 수놓인 무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인상적인 욕조 안에 몸을 담구자, 드문 신음이 흘러나온다.

배꼽 바로 옆부터, 두 가슴 사이를 가르고 턱까지 올라오는 장대한 상처.

다름 아닌 아이올라이트 블루의 그녀가 에리에게 세겨놓은 부상이자 평생 안고가야 할 치욕 그 자체.

 

분명 이 상처로 인해 아야세 에리는 죽음의 문턱을 들락날락했었지만 천축으로부터 온 의료전문가와 제국의 의술을 규합한 끝에 그녀의 상처는 '거의' 아물어 있었다. 왜 '있었다' 인 이유인즉슨..

욕조의 수면위를 따라 미세한 붉은 줄기가 슬슬 세어나왔기에. 딱지도 모두 사라져 말 그대로 흉터가 되어가고 있어야 할 가슴팍의 상처는.. 미미하지만 손톱 한칸만큼 벌어져, 안에서 피를 줄줄 세어내고 있었다.

 

'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 '

 

그녀는 기억을 되짚어본다. 어느 순간에 가슴에 통증을 느꼈을 때가 있었다.

 

거대 크라켄+이치노세 시키와 교전할 때 ?

선박을 통째로 얼음 조각처럼 만들어 구했을 때 ?

빙벽을 전개할 때 ?

 

아니다. 그 이전이었다.

 

그녀가 출격해, 3함대에 다다랐을 무렵.

 

갑판에서 내려다 보는게 눈이 마주쳤던.

 

 

" ...윽..! "

 

기억을 더듬어가던 중 명치에 가까운 부위에 따가움을 동반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는 상처를 살핀다.

통증이 느껴지던 부위에서 발견된 것은... 다름이 아닌.

 

 

미세하게나마 불씨를 품은 '푸른 불꽃' 이었다.

 

 

' ...설마, 몸 안에 남아있던 불씨가 반응해서..? 하지만 무엇에 ? '

 

 

아야세 에리는 찰랑거리는 욕조 안에서, 눈이 마주쳤던 병사의 눈, 코, 입을 떠올린다.

그러다가 한가지 결과에 다다랐다. 정말 말도 안돼지만... 잇을법 한 결과에.

 

 

" 3함대..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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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막간 한 편 후, 묘역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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