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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코 '프롤로그의 프롤로그' 1/2

댓글: 2 / 조회: 370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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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9, 2017 19:10에 작성됨.

“팬입니다. 싸인해 주세요!”
“..네!”

내가 나나오 유리코라는 여학생과 알게 된 사건은 특별한 일이었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날은 특별하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인도어파이고,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 중에서 굳이 좋아하는 장르를 꼽자면 추리나 스릴러보다는 판타지 스토리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판타지에서는 나와 비슷한 또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이 많아서 좀 더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러브코미디도 주인공이 비슷한 또래이긴 하다. 다만 어차피 비슷하다면 판타지 쪽이 좀 더 마음에 든다. 어차피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읽을 거라면 비현실적인 요소가 더 많은 쪽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취향 문제다.
그 날도 평소처럼 새로 나온 소설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요즘은 인터넷 서점에서 간단히 새 책을 체크하고 구매할 수 있지만, 역시 서점에는 인터넷 판매점에는 없는 맛이 있다.
딱히 ‘책은 역시 종이책이지!’하는 부류는 아니다. 종이책도 나름의 맛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전자책 쪽이 보관하기에도 좋고 들고다니면서 읽기도 편하다. 어느 쪽을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전자책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왜 서점에 왔느냐 하면 새 책 체크에는 서점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은 발매일, 제목, 판매량 등 여러 조건을 붙여 정렬할 수 있다. 그런데 정렬은 앞 순위는 보기 편한 대신 뒤로 밀려난 책에는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
오프라인 서점은 직접 여러 코너를 다니면서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책에도 시선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영 아니네..”
다만, 그 날에 새로 발견한 장편 판타지는 영 아니었다.
용사와 마왕이 나오고, 용사가 동료를 모아가며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협력한다.
짤막한 소개글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이게 전부였지만 여기까지만 읽어도 엔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마왕을 쓰러뜨리고 해피엔딩이겠지.
이런 이야기는 옛날에는 잘 나갔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낡았다.
좀 더 참신한 설정이 아니면 팔리지 않을거라고 무책임한 감상을 느끼며 집어든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찾기로 했다.
“...으음…”
그 때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혹은 불만스러운 신음소리였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처음 보는 여자애가 서 있었다.
나이는 중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 정도로 보였다.
내가 통로를 막고있나 싶어서 살짝 옆으로 비켰지만 그 여자애의 시선은 나를 따라왔다.
길을 막았다는 이유가 아닌 것만은 알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상당히 귀여운 애라서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걸어볼까도 생각했는데 당시의 나는 꽤 순수한 인도어파라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여자애한테 말을 건다는 것은 너무나 난이도가 높았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노골적으로 나를 의식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어느쪽도 아닌 제 3의 해결책을 쓰기로 했다. 얼른 책을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으으음…!”
그런데 다시 책을 내려놓으려고 하니 또 뭔가 불만이 있는 것처럼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대체 뭐가 불만인지 짐작가는 구석이 없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뭐가 문제냐고 따지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기에 모르는 척 했다.
“저기요!”
그랬더니 상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얌전해 보이는 아이인데 의외였다.
아니, 인도어파라고 전부 사람을 대하길 서툴러하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직접 말을 걸어왔는데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에 대답을 했다.
“ㄴ.. 네?”
첫 대답에 말을 더듬었던 일은 지금도 부끄럽다.
변명을 하자면 말 걸릴거라고 예상도 못했기에 당황했다. 당시의 내가 사람을 대하는 일이 특히 서툴렀던 탓도 있긴 하지만.
“그 책, 재밌거든요?”
“...네?”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책이란 건 역시 내가 들고 있던 책일까? 그게 재미있다고? 그래서 뭘 어쨌다는 걸까? 그런 의문만이 계속해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그러니까, 한 번쯤 읽어… 보시라고요.”
이쪽의 당혹감이 전해졌는지 여자애가 더듬더듬 말을 덧붙여줘서 간신히 왜 말을 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소개글만 읽고 책을 내려둔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영 아니라고 한 것까지 들렸을 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말을 걸어올 정도였으니 아마 들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내가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 마디 중얼거렸을 뿐인데 직접 말을 걸어오다니, 이 책의 상당한 팬이라고 짐작했다.
“...”
“......”
일단 왜 말을 걸었는지는 알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더니 조금씩 빨개졌다.
팬심으로 말을 걸었긴 해도 역시 처음보는 남자에게 말을 걸은 일이 익숙치않은 눈치였다.
영 분위기가 불편하니까 나도 뭐라고 말을 해야겠다는 조급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말해도, 역시 판타지라면 좀 참신한 게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그.. 뻔한 스토리는 영 취향이 아니라서요. 솔직히 말해서 결말을 아는 이야기에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
앗. 너무 말했다. 곧바로 후회했다.
지금은 상당히 시간이 지났는데 저질렀다 싶어서 식은땀이 흘렀던 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다.
역시 좋아하는 화제에대한 얘기가 나오면 말이 많아지는건 오타쿠… 아니, 인도어파의 단점이다.
여자애도 조용히 아무 말도 없었다. 갑자기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질린걸까, 역시 사과하는 게 나을까,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뻔한 이야기에 무슨 재미가 있냐고요? 그야 재미있죠! 시작과 끝이 뻔하다고 해서 과정도 뻔하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오히려 결말을 예상할 수 있기에 중간 과정에서 얼마나 참신함을 보여줄 수 있는가, 그게 작가의 실력이 아닌가요? 그리고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아.”
여자애가 먼저 갑자기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내더니 조용해졌다. 그리고 엄청나게 빨개졌다. 딱 보니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 표정이었다.
자폭한 걸 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곤란해하는 애를 놔두고 가자니 그것도 사람으로서 할 일이 못되겠다 싶어서 어떻게든 말을 받아주려고 했다.
“어.. 그렇군요. 그래도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취향 아닌 책을 시험삼아 사보기엔 부담이 돼서요.”
“으으음… 그러시다면야..”
어쩌다보니 종교 권유 거절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는데, 그래도 여자애는 무심코 말실수한 것이 무마되었다는 안심과 결국 책을 읽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아쉬움이 섞인 표정으로 먼저 서점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어쩔줄 모르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의사소통에는 성공했어도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투르다는 점은 그대로였으니까.
특이한 애가 있네.. 그래도 귀여운 애였지.
나나오 유리코를 만난 첫 날의 감상은 그랬다.

책은 주로 달마다 새로운 책이 발간된다.
그런데 소설책을 내는 회사는 한 군데가 아니고, 보통 제각각 발매일이 다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신간을 체크하고 싶으면 발매일마다 서점에 들러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번에 그녀를 만난 때는 바로 다음 신간 발매일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사흘 정도 뒤였을까.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서점에 도착했기 때문에 바로 신간 코너로 향했다.
평소엔 가는 길에 있는 다른 책들도 눈길을 주곤 하지만, 인기있는 새 책은 좀 늦었다고 매진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서둘렀다.
그랬더니, 있었다. 그 여자애가.
하지만 대화 한 번 했다고 아는 사이가 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아는 사이라고 해도 여자애한테 쉽게 말을 걸 정도의 배짱도 없었기에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아!”
여자애가 작은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나를 본 것 같았다. 귀찮은 일이 될 것 같으니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귀여운 애인데 아는 사이가 되고싶다.
두 생각이 동시에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 여자애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음…”
바로 옆까지 다가오나 싶더니 이번엔 또 멈춰서 우물쭈물거렸다. 작은 소리로 뭔가 중얼거리는 것도 같은데 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나한테 볼 일이 있는 건 확실해 보였고, 저번엔 상대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으니까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걸자고 결심했다.
사실은 이 시점에서 아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이긴 것도 한 몫 거들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앗! 저기, 그, 죄송해요. 또 망상에 좀…”
망상이라니? 그냥 좀 예쁜 애인 줄 알았는데 사실 상당히 위험한 사람이 아닌가 해서 한 걸음 물러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라도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여자애랑 얘기해 보겠나 하는 생각에 도망치는 것만은 참아냈다.
“이거, 빌려드릴게요!”
“이거...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기에 뭘까 했다.
나도 중학생이기 때문에 흔한 착각대로 혹시? 했는데 안타깝게도 두꺼운 그 종이뭉치는 책이었다.
“아, 이거. 저번에 그 책인데요..”
듣고보니 확실히 본 기억이 있었다. 저번에 말을 걸렸을 때 계기가 된 책이었다.
뒷표지에 쓰여있는 짤막한 소개글만 읽고 거르기로 한 책이었기에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이걸.. 왜 저한테?”
“꼭! 읽어 보세요!”
당연한 의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애에겐 당연하지 않았었나보다. ‘뭘 그런 걸 물어봐?’ 라는 느낌으로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 확실히 돈이 없어서 안사겠다고 하긴 했지만요.. 제가 누군지 알고 빌려주시는 거에요?”
여러가지로 의문점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누군지는 몰라도, 항상 이 서점에 오시는 분이란 건 알고 있어요. 다음 주에도 오실 거죠? 그 때 돌려주세요.”
“네에…”
왜 내가 여기 자주 오는 걸 알고있지? 역시 날… 아니, 그렇다기엔 완전히 기억에 없는데? 애초에 자주 온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한테 자기 책을 빌려주나? 돌려받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등등 갖은 의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라서 혼란에 빠져있는 동안에 어찌저찌 책을 받아들게 되었고, 책을 건네준 그 아이는 서점을 나가 사라져버렸다.
얼마나 혼란스러워 했는지 다음에 움직일 수 있었던 건 5분 뒤였다.
5분도 충분히 긴 시간이었지만, 체감으로 20분은 지났다고 느꼈으니 어느정도였는지 알 수 있겠지.
무심코 받아든 책을 내려다봤다.
투명한 북 커버에 씌워져있었다. 책을 정말로 소중히 여긴다고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을 소중히 하면서 왜? 새로운 의문이 늘었다.
찾아보니 뒷쪽 커버에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한자로 쓰여 있어서 검색해보니 나나오 유리코, 라고 읽 것 같았다.
그 날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새로 책을 살펴보니 뭐니 할 여유가 없었다.
귀여운 애인데… 이상하네.
나나오 유리코를 만난 두 번째 날의 감상이었다.

영문모르게 받아온 책이라도 어쨌든 책은 책이다. 취향에서 살짝 빗나가긴 했어도 공짜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바로 읽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역시 뻔한 스토리였다. 엔딩도 짐작이 됐다.
하지만 스토리가 뻔했기에 가끔씩 드러나는 이 책만의 개성이 더 크게 느껴졌다. 식당에서 라면을 주문할 때 계란을 넣겠다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버섯이 들어있었다는 느낌이다. 어차피 라면이 나온다는 점은 확실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상치 못한 요소에 신선미가 느껴지는 것이다.
덕분에 책의 스토리 자체를 예상할 수 있어도 책의 재미는 예상할 수 없었다.
오히려 굉장히 재미있었다. 당장 다음 권을 읽고 싶을 정도였다.
‘다음 스토리가 궁금하다’가 아닌 ‘이 캐릭터들의 모습을 좀 더 보고싶다’라는 이유로 다음 권을 사고싶다는 감정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나나오라는 그 여자애가 모르는 사람이 무시하는 걸 보고 말을 걸은 것도 좀 이해가 갔다.
사실 나도 후회했다. 이런 책이 눈 앞에 있었는데 그저 커다란 스토리 라인이 예상간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저평가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지금은 책을 통한 대리경험에 비중을 두고 참신한 설정만을 찾아다니지만 분명 옛날에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런 내용에 푹 빠졌었다.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에 돌려달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달력을 확인했다.
다음 주에도 한 출판사의 발매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정확한 날짜를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 날을 말한거라고 확신했다. 다음 번에 나나오를 만날 때는 이 날이겠지.
그랬더니 바로 다음 날에 만났다.
그 날은 딱히 새 책의 발매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두 번째로 만난 날에 나는 책을 사러가서 한 권도 사지 않았기에 돈이 남았고, 빌린 책의 다음 권도 읽고싶었기 때문에 서점에 들렀다.
그랬더니, 만났다.
하필 그 책의 다음 권을 계산하고 있을 때 서점에 들어오는 나나오와 딱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평소에 내가 서점에 오는 시간과 나나오가 오는 시간은 아주 살짝 엇갈려있었다고 한다.
항상 내가 볼 일을 마치고 서점을 나갈 때에 나나오는 서점 입구가 보인다는 그 정도의 아주 살짝만 엇갈렸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나나오를 본 적이 없었지만 나나오는 ‘항상 서점에 오는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나나오가 오기 직전에 계산까지 다 끝내고 서점을 나섰을텐데 이 날은 ‘이 책의 1권은 지금 빌려서 읽었는데, 1권은 안사도 되겠지? 그런데 나중에 다시 읽을 때 1권만 없으면 신경쓰일텐데..’라는 쓸모없으면서도 중요한 고민에 시간을 꽤 잡아먹어서, 나나오와 계산대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나나오의 시선이 나에게서 내가 계산하는 책으로,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히죽.
살짝 웃었을 뿐이지만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나오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별로라고 하더니 하루만에 바로 사러 오셨네요~?’ 하는 환청이 들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남자 중학생 특유의 이상한 자존심이 그 환청의 원인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문제의 책은 계산 중이고, 점원이 바코드를 찍고있는 책을 뺏어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할 말이 없었다.
계산이 끝나자 바로 빠른 걸음으로 서점을 나왔다.
예의상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게 해준 나나오에게 감사의 말 한 마디라도 하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얼굴이 빨개진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또 서점에 들어오는 중이었던 나나오가 발을 돌려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선 달려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치면 그건 또 패배를 인정하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다면 공격이라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도 기선제압이라고 할 정돈 아니었고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안녕하세요? 그… 나나오 유리코씨. 맞죠?”
“네. 나나오로 불러주시면 돼요.”
저번에 대화할 때는 서로 머뭇머뭇했는데 이번의 나나오는 뭔가 활기찼다.
“그럼 나나오씨. 왜... 따라오시는 거에요? 서점에 볼 일이 있으신 게?”
“그런 것보다. 빌려 드린 책 읽으신 거죠?”
마지막 남은 오기로 아니라고 거짓말이라도 할 셈이었는데 묘한 압력에 바로 수긍해버렸다. 어차피 책을 사는 모습을 보였으니 바로 들통날 거짓말이었다. 여러가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이었다.
“네. 예상 외로 재밌는 책이어서 하룻 밤만에 읽었어요.”
“그렇죠?”
그럴 줄 알았다. 그런 느낌이 들도록 가슴을 펴고 우쭐한 표정을 짓는 나나오를 보니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성과 대화한다는 상황에 대해 긴장하고 있던 게 풀렸다.
“뻔한 스토리라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감탄했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오랜만에 읽었어요. 고마워요.”
긴장을 풀고 솔직하게 감사를 표하자 나나오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왜 놀랐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순순히 감사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책… 좀 더 빌려도 될까요? 저번에 말하신 대로 다음 주에 돌려드릴게요.”
그렇게 말하자 나나오는 조금 고민한 뒤에 말했다.
“음… 그러면 그 책. 드릴게요.”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였다. 겉보기로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나랑 동갑 정도인데 우리 나이 또래에 책 한 권 값이 싸다고 할 순 없었다.
“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대신.”
놀라서 사양하려고 했는데 말이 끊겼다. 나나오는 살짝 부끄러워하면서도 주저없이 말했다.
“대신… 감상을 들려주세요. 저, 그 책 좋아하는데 주변에서는 아무도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듣고나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로서도 바라마지않은 조건이었다. 나나오처럼 예쁜 아이와 만날 구실이 생겼으니까.
“저야 좋죠. 잘 부탁해요. 나나오씨.”
“잘 부탁해요!”
아마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만져봤을 여자애의 손은 상상보다 부드러웠다.
“그럼요. 바로 얘기로 들어가서, 전 역시 그 책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아. 거기도 좋았죠. 그런데 전 여기가 더…”
“맞아요 거기도 좋죠. 그러면 여긴...”
“이 부분은…”
그 이후 한참을 서서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사실 나도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말이 많아지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나나오는 그런 나로서도 놀랄 정도로 돌변했지만.
정도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저 책을 좋아하는 귀여운 애다.
세 번째 날의 감상이었다.

헤어질 때 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헤어졌기 때문에 만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셋째 날에 열이 올라서 대화했던 일이 거짓말같을 정도로 연락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날은 주로 새 책의 발매일이 되었다.
내가 먼저 서점에 도착해서 책을 구경하는 시간을 조금만 늘리면 곧 나나오가 왔다.
그러면 나나오가 볼 일을 마칠 때까지 잠시 기다린 뒤에 장소를 바꿔서 책에 관해서 얘기를 나눴다.
둘 다 중학생이고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편이 아니라서 기껏해야 패스트푸드점이었지만 대화가 즐거웠기 때문에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나나오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특정한 날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관계’에 어딘가 로망을 느끼고 있었다.
연애감정은 아니었다. 한 번은 대화하는 중에 반 친구를 만나서 사귀는 사이냐고 질문을 받았는데 단박에 부정했다. 부정할 수 있었다.
나나오는 굉장히 예쁜 아이고 착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데 묘하게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연애감정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몰랐지만 독점욕이라고 할까 옆에 잡아두고 싶은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확신한다.
어째서 그런지는 나도 이해할 수 없어서 본인에게 얘기를 꺼내봤더니 본인은 자기가 그렇게 여자같지 않냐며 조금 낙담했지만. 솔직히 그 모습은 귀여웠다.
몇 번인가 만난 뒤에 깨달은 것이 있는데 사실 나나오는 책에 대한 화제일 때와 아닐 때의 텐션이 굉장히 차이난다.
처음 만났을 때 어렴풋이 짐작하긴 했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가령 책에 대해 얘기할 때 내가 말하는 빈도가 4면 나나오는 6정도인데, 학교생활같은 다른 화제가 나오면 비율이 8:2까지 확 바뀐다.
그리고 망상에 자주 빠진다. 두 번째로 만났을 때 했던 그거다.
망상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해서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전개가 바뀌는 일도 있고 방금 전까지 이야기하던 책의 내용에 편승해서 자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일도 있다.
한 번 망상에 빠지면 어지간해선 돌아오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가끔씩 망상하면서 내용을 입으로 뱉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같이 망상의 설정에 어울려주면 엄청나게 좋아한다. 매번 그렇게 어울려주기엔 빈도가 너무 잦다는 점이 문제지만.
망상에 대해 그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확연한 특징이 하나 있었다.
나나오는 자신이 책 속의 내용으로 들어갈 때 굉장히 다양한 배역을 설정한다. 히로인이 될 때도 있고 단순한 엑스트라가 될 때도 있으며 조력자 A선에서 끝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절대로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책에 대해 얘기하는 상황이 아닐 때의 나나오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취미가 같았던 점도 있었지만, 성격도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나나오 정도는 아니지만 망상은 가끔씩 하는데 주인공이 되는 나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흔한 용사 이야기로 따지면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모험을 떠나자!’ 부분에서 ‘모험을 떠나는 나’를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여행을 하는 용사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 정도라면 어떻게든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이 되기는 힘들었다.
읽는 입장에서야 결말을 예상할 수 있지만 등장인물의 입장에서는 모험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비극적인 결말이 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그래도 가족을, 자라온 마을을 떠나서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용사 이야기처럼 요정이라도 나타나서 너라면 가능하다고, 분명 할 수 있다고 해주지 않는 이상 무리인 일이다.
내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지만 나나오도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는 비슷한 성격을 하고 있으니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나나오네 학교의 문화제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이 때부터 서점에서 만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대신 만날 때는 메일로 연락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만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뭔가 심각한 사정이라도 있는 건지 걱정돼서 물어봤더니 최근 온라인 게임을 시작했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에 시간을 들이면 그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 만도 하지.. 딱히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납득하고 있는데 같이 하지 않겠냐고 권유받았다.
인터넷 서점은 종종 이용하고 있고 요즘은 학교 숙제를 할 때도 컴퓨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내 방에도 컴퓨터는 있다.
그래도 온라인 게임은 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은 꼭 어딘가 한 부분에서는 협력 플레이를 강요하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부터 꺼려진다.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나나오도 사실 그것 때문에 권유했다고 한다.
친구가 하고 있어서 둘이 같이 하기로 했는데, 협력 플레이를 하려면 한 명 더 필요하다고. 학교 친구들은 아예 게임 자체를 하지 않아서 게임 진행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나도 게임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고 협력 플레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온라인 게임 하나정도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같이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다.
검색해보니 세계관 설정 자체는 특별한 구석이 없는 왕도형 RPG였다.
설정이 심심하지만 대신 시나리오가 좋고 그래픽이 예뻐서 생각보다 유저는 많다고 한다. 나나오가 좋아할 법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처음 만난 계기가 된 책도 딱 이렇게 왕도형이면서 그 안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타입이었고. 아마 친구라는 애도 나나오의 취향을 알고 있기에 같이 하자고 권유했을 것이다.
“나나오는.. liliknight라는 아이디랬지?”
로그인해서 캐릭터를 만들자마자 우선 친구추가부터 했다.
‘친구추가 요청을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떴는데 계속해서 ‘요청중’만 뜨고 거절도 승낙도 되지 않았다. 잘못 보낸 거라면 거절이라고 나올테고 제대로 보냈다면 승낙할 테니까 아마 아직 로그인하지 않은 모양이다.
오늘은 발매일인데도 서점에 오지 않아서 게임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게임에도 로그인하지 않았다면 다른 일이 있나보다. 나나오도 책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고, 언제든지 다른 사정이 생길 수 있을테니 크게 신경쓰지 않고 게임을 진행했다.
게임을 좀 해보니 이거, 의외로 스토리가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좋은 시나리오와 예쁜 그래픽’이 세일즈포인트라고 그랬지.
플레이 자체는 무료인 온라인 게임은 시나리오에 비중을 낮게 잡는다고 편견이 있었는데 잘못된 인식이었다고 깨달았다.
1시간 정도 뒤에 메시지가 왔다.
‘liliknight님으로부터 친구요청이 승낙되었습니다.’
‘안녕! 이 게임 시작했나보네.’
벌써 저녁인데 늦게 로그인했다고 생각하며 답장을 쓰려고 했는데 아이콘이 또 깜빡거렸다. 메시지가 하나 더 온건가? 새로 온 메시지부터 먼저 열어보기로 했다.
‘vividrabbit님으로부터 친구요청이 도착했습니다.’
비비드… 누구지? 시작한 지 한 시간밖에 안되는 나한테 친구요청을 할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 고민했다.
결국 승낙한 건 어차피 한 시간밖에 하지 않았기에 뭐가 잘못되어도 잃을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친구요청을 승낙하셨습니다.’
승낙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기 무섭게 띠롱띠롱하며 메시지가 연속으로 왔다. 어떤 내용인지 대충 읽어보자면.
‘늦어!’
‘이 시간에도 게임하는 거야?’
‘어디야? 초보자 마을?’
‘거기 가만히 있어!’
같은 내용이었다.
누구야? 누군데 갑자기 막 반말이야? 가만히 있으라는 건 또 뭐야? 아니 이 시간에 게임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뭐부터 물어봐야할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사람 대하는 것이 서툴다. 나나오의 경우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였고.
어쨌든 누군지부터 물어봐야겠다고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는데 내 캐릭터 앞에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캐릭터 둘이 나타났다.
한 쪽은 liliknight. 나나오의 캐릭터고 다른 한 쪽이 vividrabbit, 방금 친구로 등록된 정체불명의 플레이어였다.
방금 나타난 것도 그렇고 입고있는 옷도 화려한 게 굉장히 비싸보이는데… 같이 나타났다는 건 역시 나나오의 친구가 이 토끼일 것이다.
‘vividrabbit님으로부터 파티 신청이 도착했습니다.’
그러고보니 협력 플레이를 하려면 한 명 더 필요하다고 했었다. 나는 막 시작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협력 플레이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저쪽에서 먼저 파티 신청했으니까 뭔가 쓸모가 있을 것이다.
승낙.
‘좋아! 그럼 간다!’
‘안녀’
채팅을 치다가 끊긴 것 같은 나나오의 메시지와 함께 우리들의 캐릭터는 어디론가 전송되었다.
짤막한 로딩 후에 이동된 곳은 집이었다. 게임 초반의 설명에 마이 홈이라는 컨텐츠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 이동된 곳이 딱 그것같았다.
‘어서오게 소년! 환영한다오!’
‘안녕? 갑작스럽게 미안하네…’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대사로 말한 게 토끼고 그 다음에 말한 게 나나오다.
토끼는 타자도 굉장히 빠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토끼씨는 누구시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굳이 알고싶다면야!’
‘내 친구인 안나야. 이 게임을 소개해 준 것도 안나고.’
‘앗. 그렇게 말해버리면 재미없잖아 유리코~’
안나, 라고 하는 건 역시 이름이겠지. 이름으로 소개받았다고 해도 갑자기 여자애(추정)를 이름으로 부를만큼의 배짱은 없어서 그대로 토끼로 부르기로 했다.
그 날은 게임 진행은 잠시 멈추고 셋이서 떠들썩하게 떠들면서 보냈다.

게임을 시작한 이후 서점에서 나나오를 만나는 일은 더욱 줄어들었지만, 게임에서 만나는 시간이 생겨서 결과적으로 보면 더욱 자주 만나게 되었다.
레벨 차이가 너무 나서 같이 게임을 한다기보다 채팅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채팅이라고 해도 토끼씨의 텐션이 너무 높아서 우리 두 명이 질질 끌려다니는 모양새였지만.
두 달쯤 지난 뒤였을까. 두 사람의 접속 빈도가 확연하게 줄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토끼씨한테 물어봤더니 답변은 간단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 나쁜 일은 아니니까 걱정마!’
준비라… 시험 공부라도 하고있겠거니 싶었다. 나도 게임을 시작하면서 공부 시간이 줄어서 접속 시간을 줄이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다음번에 나나오를 만난 곳은 게임 속이 아니라 서점이었다.
그 날은 새 책 발매일이었지만 이미 서점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만나는 것이 디폴트가 되어버려서 딱히 나나오를 기다릴 생각은 없었고, 새로 나온 책만 둘러보고 집에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나나오가 서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엔 서점에서 만난다고 해도 내가 먼저 도착하기 때문에 내가 기다리는 일이 있어도 나나오가 기다리는 일은 없었는데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무슨 일 있어? 나나오가 먼저 와 있다니.”
“요즘은 서점에 거의 안왔으니까. 느긋하게 둘러볼까 싶어서 먼저 왔어.”
그렇게 말은 했지만 느긋하게 둘러보려고 왔다면 평소처럼 와서 늦게 나가면 되는 일이지 굳이 내가 오기 전부터 있을 필요는 없었다.
뭔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눈치를 챘지만 딱히 추궁할 생각도 없어서 넘어갔다.
그 뒤는 예전과 같았다. 새로 나온 책을 둘러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서점을 나와서 패스트푸드점으로 장소를 옮겨서 또 얘기를 나눴다.
“요즘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는데, 잘 되고 있어?”
문득 떠올라서 물어보니 아무래도 잘 안되고 있는 모양이다.
자세한 사정은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노력하는 양에 비해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점이 고민거리라는 것은 파악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얘기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다른 건 영 아니니까 나…”
갑자기 침울해진 나나오를 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못한 진지한 표정이었기에.
“확실히 다른 건 몰라도 책에 관한 일에 관해선 나나오가 엄청나지.”
“다른 건 몰라도….”
“그래도 나나오는 ‘굉장한 나나오’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나나오는 굉장한 사람이야. 그걸 책에서밖에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지.”
“......”
“......”
“......”
“...음, 어, 아니. 뭐라도 말해주지 않으면 굉장히 부끄러운데… 방금 나 엄청 부끄러운 말 하지 않았나?”
말 끝난 뒤에야 부끄러운 말이라고 깨달아서 허둥지둥하고 는데 나나오가 표정을 풀고 웃었다.
“그래… 그렇지? 분야가 다를 뿐인데. 그 사람도 같은 말을 했었어.”
“‘그 사람’?”
“응…. 그러니까. 요정이라고 할까.”
나나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후련해진 표정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헤이 보이! 아이돌 좋아해?’
‘아이돌… 이요? 아뇨. 딱히 아무 생각 없는데요?’
나나오가 접속하지 않은 어느 날에, 토끼씨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몇 번이나 만난 사이지만 이 사람의 텐션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사실 이번에 티켓 하나를 얻었는데 난 필요없어서. 가질래?’
‘필요없으면 팔면 되지 않아요?’
‘나도 받은거라 팔기 좀 그래! 버리기도 아까우니까 써주라. 후회는 안할걸?’
아이돌인가.. 굳이 공연장까지 가서 보는 건 귀찮은데. 뭐 봐두면 반 애들하고 대화할 때 정도는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받을게요. 그래서 누가 나오는데요?’
‘후후. 놀라지 마시라! 유리코가 나와!’
‘네?’
‘자 그럼 소년의 메일로 티켓 보냈으니까. 잘 다녀오라고!’
‘네? 아니, 잠깐만. 네????’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 계속해서 되물었지만 토끼씨는 그 말만 남기고 로그아웃해버렸다. 뒤에서 핸드폰이 메일의 착신음을 울렸지만 나는 그걸 확인할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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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문서에 작성하고 복사 붙여넣기 했는데 중간에 짤린 걸 몰랐네요.
으아 부끄러워라... 재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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