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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つこ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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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7, 2017 22:28에 작성됨.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진 바닷가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밀물과 썰물이 천천히 오고가는, 평화로운 정경. 하지만 나는 왜 이 물결이 너무나도 슬프게만 보이는 걸까. 혹시 너무 오래 노을을 쳐다봐 눈에 물기가 머금어져 그런걸까. 나는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다. 눈물이 파도처럼, 다시 밀려들어온다. 아아, 나는 혹시 노을이 슬픈 것일까. 나는 잠시 태양에서 눈을 뗴어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물은,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된다는 듯이 밀려들어온다. 아아, 나는 파도가 슬픈 것이리라. 나는, 파도의 이름을 가진, 그 아이를 무심코 떠올려 버린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2학년 때의 봄. 꽤 강한 대학 축구부의 부부장인 나는, 부장을 대신해 부원들을 인솔해 정문 앞에서 매니저 모집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축구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스포츠 계열 동아리들도 이 때를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전단지를 돌린다. 그들에게 지지 않으려 전단지를 몇 십개 쯤이나 나눠주었을까, 내 눈에 아름다운 여자아이 하나가 들어온다. 첫눈에 반했다고 설명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그래, 저 아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무심코 스쳐 지나갔다. 행동파인 나는, 누구에서 설명할 겨를도 없이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래, 부원들이 말릴 새도 없이, 마치 운명처럼.

 

「미안하지만, 혹시 매니저에 관심 없니?」
「네?」

 

나의 갑작스럽고도 조금은 무례한 권유에, 그 여자아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살짝 찌푸린다. 찌푸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그 표정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왜일까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밀어붙인 나,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후회. 아, 이 아이에게는 이렇게 하지 않는게 정답이었을텐데. 나는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후회를 가슴의 한 쪽 구석으로 몰아낸 채, 뒤늦은 사과를 한다.

 

「아, 미안. 나는 이 대학의 축구부 부부장인데, 너같은 예쁜 아이가 우리 동아리의 매니저를 해 주었으면 해서.」

「아, 칭찬은 감사드립니다만, 그...」

「무례했다면 미안해. 하지만 정말로 네가 아니면 안 될것 같아서.」

「저는, 그, 따로 생각해 둔 부가 있어서...」

 

애석하게도 그 아이에게는 다른 마음에 두었던 부활동이 있었던 모양이라, 그녀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한다. 거절당했으면 물러나야한다. 마음 속에서는 그렇게 말했고 또, 우리 축구부의 철칙이 그러했지만 왠지 놓치기 싫었던 나는, 다시 한 번 권유를 한다.

 

「한 번만 생각해봐 주면 안될까? 이렇게 부탁할 테니까.」
「아, 그... 알겠어요...」

「고마워! 너같은 아이가 매니저로 들어와 준다면 나로서는 정말 기쁠거야. 그렇지, 만약 그럴 생각이 든다면 이 연락처로 연락을 해줘.」

 

무슨 바람이 들었던 것일까? 나는 웬만한 사람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내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그 아이에게 가르쳐주면서까지 신신당부를 한다. 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자 그 여자아이는, 나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 풀어졌는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아, 그럼 제 휴대전화 번호도 알려드릴게요. 제 이름도 모르시고 전화를 받으실 수는 없으실 테니까요.」
「이거 고마운걸. 너같은 미인에게 전화번호를 받다니 말이야. 그래, 네 이름은?」
「미나미. 닛타 미나미예요. 아름다울 미(美)에 물결 파(波)를 이름 한자로 써요.」
「닛타 미나미라, 예쁜 이름인걸. 고마워, 그럼 연락 부탁해!」

 

닛타 미나미. 나는 그 이름을 품고 부원들에게 돌아간다. 나의 이상행동을 내 지켜본 부원들이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뒤에서 쑥덕거린다. 뭐, 한 대씩 꿀밤을 먹여줬지만.

 

그 날 밤, 내 전화번호에서 낯선 사람임을 알리는 전화벨이 울린다.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전화기를 쳐다본다. 휴대폰에는 닛타 미나미라는 이름이, 밝게 빛나며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전화를 받는다. 그녀의 고혹적이고도 우아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퍼진다.

 

「아, 여보세요? 선배?」
「듣고 있어. 벌써 결정을 내렸다니 고맙네. 그래, 언제부터-」
「죄송해요, 역시 생각해 둔 부가 있어서 안될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은 뜻밖에도, 완고한 거절. 뭐, 이렇게 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열중하던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공허함이 가득차게 되는 법이다. 나는 어쩔 수 없지, 라고 그녀에게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나의 한숨에 저 쪽에서 몇 번이고 죄송하다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뜻밖의 내용을 입에 담는다.

 

「그, 축구부 매니저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선배랑은 계속 통화를 하고 싶은데요.」
「어, 어?!」
「네, 저에게 그렇게까지 열성적으로 권유해주신 분은 처음이라서 저도 조금 흥미가 생겼달까...」
「고마워! 고마워, 미나미!」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며 그녀의 관대함에 감사한다. 나의 대답에 미나미가 조금 놀랐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 아름다운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아마 이 때였으리라,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알아챈 때가. 공허하다고 느낀 가슴 속에 바닷물이 꽉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래,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노을이 아름답게 진 바닷물이 넘실거리며 들어오는 기분.

 

그 때부터 나와 미나미는 가끔 통화를 했다. 몇 번은 과제의 일로, 몇 번은 부활동의 일로, 몇 번은 자격증의 일로, 몇 번은 나의 일로. 과제야 축구만 해 온, 머리가 텅텅 빈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부분이기야 했지만, 다른 일들은 최소한 내가 조언해줄 수 있는 범위 내였다. 특히 부활동의 경우, 축구부 부부장으로 활약해 온 나의 알량한 경험을 전수해 줄 때마다 미나미는 감사해했었다. 나의 허접한 조언에 미나미가 감사해 할 때마다, 너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몇 번이고 나오려다가 튀어나오지 못 한다. 그래, 어쩌면 나는 그 때 말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너를 위해서라면, 너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얼마 지나 여름. 항상 그렇듯 다른 대학과의 시합에서 경기를 뛰던 나는, 상대 선수의 태클을 피하지 못하고 다리에 그대로 걸려 넘어진다. 동료들이 나에게 달려와 괜찮냐고 물어본다. 괜찮아, 그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전혀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리고 통증. 나는 그 날,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내 발로 걸어나오지 못했다. 병원에 가 보니 전방 십자인대 파열. 무려 일 년이나 재활을 해야 하는, 지긋지긋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시간이 내 앞에 기다렸다. 축구부 에이스라는 이름 아래 나를 따라다니던 재미없는 여자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때에도, 미나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봐 주었다.

 

「선배. 아픈 데는 괜찮으세요?」
「아, 괜찮아. 이까짓거, 별 거 아니야.」

 

당연히 별 것 아니지는 않았다. 그야 멀쩡이 있던 인대가 부러졌는데 멀쩡할리가. 하지만 미나미의 목소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치유되는 기분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내 귓가에 울려퍼진다. 천사의 목소리를 듣는 것같다. 노래를 부르면 잘 부를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아, 그, 한 아이돌 프로덕션으로부터 아이돌 제의를...」
「아이돌 제의? 그거 대단한걸! 미나미쨩이라면 톱 아이돌이 될 수 있을거야!」
「그런, 저 같은게...」
「아니야. 미나미쨩은 정말로 예쁘니까, 톱 아이돌같은 건 껌일거라구.」

「선배도 참...」

 

미나미는 나의 말에 한사코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는 그저 작은 지역에서만 아름다움으로 소문난, 머리 빈 여자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적이며, 품위가 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버린 나에게도 말을 걸어주고, 괜찮냐고 물어봐주고, 자기 일처럼 슬퍼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 또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아이가 톱 아이돌이 될 수 없다면 이 세상에 톱 아이돌은 존재하지 않아. 나는 확신한다. 나는 더 이상의 확신은 없을 정도로 확신한다.

 

「그러니까, 내 말 듣고 그 프로덕션에 꼭 가도록 해.」

「아, 네. 알겠어요. 선배 말씀, 새겨듣도록 할께요.」

「그래. 아 참, 안 좋은 일을 시키는 프로덕션이라면 말하라구. 내가 축구부 부원들이랑, 럭비부 부원들이랑, 야구부 부원들이랑...」
「그,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미나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렇게 할 꺼야. 그러니까 그 쪽 녀석에게 내 말 좀 전해줘, 알겠지?」
「아, 네...」
「좋아, 그럼 지금이라도 프로덕션으로 가도록! 내가 서포트해줄 테니까!」
「네! 닛타 미나미, 힘내겠습니다!」

 

내 말에 기운을 받았는지, 조금은 주눅들어 있었던 미나미가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미나미쨩은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야. 혼자 빛나게 두면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 그러니까, 나 대신 누군가가 서포트를 해 주어야만 해. 움직일 수 없는 나를 대신해서, 그녀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우직한 사람이.

 

재활의 시간은 지겹고도 험난하다. 애초에 걷는 것부터가 너무나 힘이 든다. 조금 걷다가 휠체어를 타고, 조금 걷다가 휠체어를 타고. 몇 번이고 넘어질 때마다 미나미의 생각을 한다. 나의 말을 믿고 프로덕션이란 미지의 세계로 넘어가버린 그녀. 가끔은 그녀가 그립기도 하다.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걸려고 한 때도 수십번은 되었다. 하지만 걸지 않았고, 내가 한 말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조금 외로울지라도, 나는 일어설 수 있으니까. 아니, 일어서야만 하니까. 그래야,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테니까.

 

가을 내 재활을 하면서, 나는 바다를 생각한다. 아주 어릴 적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바다. 축구를 좋아하기 시작한 때부터 산 속에 틀어박인 채, 고된 훈련을 받느라 한 번도 보지 못한 바다. 나는 바다를 생각한다. 노을이 지는 바다. 언젠가 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 물론 이 재활이 빨리 끝난다면 더욱 좋겠지. 그럼 바다를 더욱 빨리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겨울. 병원에서 재활 결과지를 받아들고 나오던 나는 무심코 근처의 편의점을 쳐다보았다가 눈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전단지에 보여 잠시 멈춘다.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 아이는 분명히 미나미일 것이다. 아니, 확실한 미나미였다. 프로덕션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크게 전단지가 내붙여지다니.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편의점 유리문에 붙여져 있는 전단지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그것은 신인 아이돌 합동 콘서트를 안내하는 내용. 이건 가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가지 않을수는 없다.

 

처음 발을 내딛어본 콘서트장의 내부는 꽤나 크고 화려하다. 뭐, 도쿄 돔을 통째로 빌려서 공연하는 거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나는 아직 다 낫지 않은 다리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녀가 알아볼 수 없게 온 몸을 꽁꽁 싸맨 채로, 그러지 않으면 그녀가 나를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듯이.

 

콘서트가 시작되고, 미나미의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신인 아이돌이라고는 해도 꽤나 많은 팬덤을 모은 모양이다. 앞을 쳐다보니 미나미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팬들의 모습이 보인다. 꽤나 수가 많네, 나는 중얼거리며 무대 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몸매를 여실히 보여주는 옷을 입은 채, 그녀가 노래하고 있다. 마치 여신의 모습, 나는 어쩌면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육만 명에 달하는 관중 아래에서 굳어버린, 막 프로에 입문한 풋내기 선수의 모습으로 나는 잠시 굳어버린다. 나는 그녀를 독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할 수 없는 것을, 나는 과욕을 부린 것이다. 나는 잠시 그녀의 이름을 외치는 그녀의 신도들을 쳐다본다. 나는 이들에게서 그녀를 빼앗아 갈 수 없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천천히 콘서트장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 휠체어는 잘 접어 트렁크에 넣어 놓고 바닷가로 가자고 말한다. 바닷가,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특히 겨울의 바닷가는. 겨울에는 항상 훈련을 하고 합숙을 했었으니까.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바다가 보고 싶다. 아름다운 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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