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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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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9, 2017 01:48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12월 21일


상무실. 프로듀서와 미시로 상무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긴장을 공유했다. 상무는 서류 더미를 살피고 있었고, 프로듀서는 그런 상무의 용태를 살피고 있었다.


상무의 눈알이 구를수록 프로듀서가 손등을 조용히 쥐어뜯는 횟수도 늘어난다.
상무가 마침내 서류를 내려놓았다. 상무는 제목만 다시 훑곤 프로듀서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잘 짜인 기획이다.”
“칭찬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프로모션, 미디어 노출 전략, 상품 전개 방식, 과감하고 대담하다. 내 마음에 쏙 드는군. 기획 자체엔 무엇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프로듀서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상무의 말은 얼핏 들으면 칭찬처럼 들리지만, 말에 숨은 의미가 있다. 기획 자체엔. 즉 기획엔 문제가 없지만 외부적 요인엔 문제가 있단 건가……?


프로듀서가 마른 입술을 적시자 상무가 답을 고한다.


“그런데……. 이게 신데렐라 프로젝트여야 할 필요가 있나?”
상무의 가느다란 시선이 프로듀서를 찌른다.


“내가 알기론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보는 사람이 미소 짓게 하는 아이돌을 목표로 한 기획이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상무는 서류를 뒤적여 어떤 구절을 손으로 짚었다.


-다른 요인이 아닌 아이돌의 매력만을 최우선으로 드러내도록…….


“대담하고 공격적으로 나간다. 그건 좋다. 그런데, 미소는 어디 있지?”
“그건…….”
“확실히 내 마음에 드는 기획이다. 다른 때였으면 밀어줬을 테지. 오히려 초기 기획은 내 성에 차지 않았어. 미소 같은 그런 두루뭉술한 동화 같은 주제에 집착하는 영문 모를 기획은 현실적이지 않아. 그래서 난 이 기획을 동결시켰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 기획에서 가능성을 느껴 동결된 프로젝트를 받아와 자기가 직접 손을 보기로 했다. 상무도 프로듀서의 능력을 알고, 또, 오다이바 페스의 실적을 바탕으로 프로듀서에게 프로젝트의 해동을 맡겼는데…….


“그래서, 다시 해동시킨 결과가 이것인가? 기획이 초기 기획과 달라지는 경우는 많다. 오히려 일상다반사지. 이 업계는 변화무쌍한 업계니까. 하지만 이건 동결된 기획을 일부러 다시 시동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별개의 기획이다.”
“하지만 이거로 된 거 아닙니까?”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울렸다. 프로듀서는 어두침침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초기 기획에서 동떨어진 기획이 되는 경우가 많잖습니까. 스폰서의 요구, 시장의 동향 같은 요소에 따라 기획 같은 건 얼마든지 달라지거나 엎어질 수 있다는 건 상무님 본인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어차피 동결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기획 의도가 달라져도 성공만 하면…….”
“그래, 통과시켰을 거야. 자네 사정이 매스컴에 터지기 전에, 자네가 제출했던 초기 수정안을 안 봤으면 그랬겠지.”
상무가 프로듀서의 말을 가로막는다. 프로듀서는 말문이 막혀 반론하지 못했다.


“기획에 자네 사욕이 묻은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프로듀서는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당장 손톱을 물어뜯고 싶었다. 하지만 혼탁한 의식 속에 아슬아슬하게 남은 자제력이 프로듀서의 근질근질한 잇몸을 달랬다.


“설마 이것으로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그러는가?”
“그, 그런 건…….”
“뭐, 됐어. 이 이상 추궁하진 않으마. 자네는 심란한 상태일 테니. 자네는 그저 지금 당황스러울 뿐이다. 조금만 쉬면…….”
“아뇨, 전 멀쩡합니다. 이 기획은 아이돌의 매력을 살리려고……. 저는 딱히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원 발안자에게 기획을 돌려주도록 하겠다. 방향성을 이대로 굳히면 자네도 만족스러울 테지.”
“그건 안 됩니다! 그건 제……!”
“뭐가 안 된다는 거지? 이 기획은 아이돌의 매력을 우선으로 전하는 기획. 그리고 자네 말대로 자네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면, 자네 말고 다른 이가 실행해도 되잖나.”
상무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프로듀서는 상무의 기백에 밀려 뒷걸음질 칠 뻔했다.


트라우마가 한창이었던 예전처럼.


부하를 제지하려는 상급자의 기백. 미시로 상무의 의도는 그뿐이었다. 하지만 상무를 앞에 둔 프로듀서의 내면엔 묘한 스위치가 켜졌다.


근래 혼탁하고 혼란스러운 의식에 잠겨 너덜너덜해진 프로듀서의 이성 필터를 뚫고, 진득한 감정이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친다. 모양새가 잡히지 않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덩어리가 프로듀서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웃기지 마! 그건 내 것이야! 그건 나야!”
프로듀서는 그만 소리 지르고 말았다.


프로듀서는 말을 뱉고 나서야 숨을 크게 집어삼켰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이미 뱉은 말을 집어삼킬 수 없다.


프로듀서의 심장이 순식간에 식었다. 아니, 얼어붙었다. 프로듀서는 즉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순간 이성을 잃어서 무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침묵. 상무의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쓰디쓴 후회가 프로듀서를 감싼다. 혈액이 얼굴로 몰려 프로듀서가 수치를 얼마나 느끼는지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일어나게나.”
상무가 담담하게 말했다. 프로듀서는 허리를 원래대로 곧이 폈다.
상무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피로가 쌓여서 그런 거다. 쉬는 게 어떤가? 휴가를 며칠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군. 자네한테 유급 휴가가 남아있던가? 만약 없어도 유급으로 처리해주겠다.”
말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프로듀서의 가슴이 죄인다.


프로듀서는 이런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사실이 프로듀서의 마음을 때린다.
프로듀서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프로듀서는 책상에서 서류를 회수하곤 서류를 가슴에 꼭 품었다.


“수정하고 다시 제출하겠습니다.”
“난 이걸 승인하지 않겠다. 승인하면 자네가 망가질 테니까.”
“실례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상무실에서 나왔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었지만, 도망치는 듯한 다급함이 실려 있었다.


프로듀서는 복도에서 몇 걸음 걷다가 이내 벽에 기대에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안즈…….”
프로듀서가 중얼거린다.


프로듀서는 다시 일어나 복도를 걸었다. 여전히 비틀거리는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구토감이 올라왔지만 속이 비어서 그런지 진짜로 토할 것 같진 않았다.


“난……. 꺾이지 않아…….”
프로듀서는 마치 살아있는 시체처럼 걸으며 아이돌과 제3 사무실로 향했다.


12월 21일


겨울방학을 앞둔 마지막 월요일. 그러나 학교는 정해진 스케줄을 진행하느라 학생들을 봐주지 않는다. 안즈도 자리에 앉아 교실에 조용히 녹아들었다. 단, 녹아들었을 뿐이지 성실하게 수업을 듣진 않았다. 안즈의 시선은 칠판이 아닌 자신의 노트로 쏠려 있었다.


안즈는 노트에 여러 문장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프로듀서에게 한 제안을 이루기 위해 노래 가사를 직접 만들고 있다. 안즈는 입을 뻐끔거렸다. 수업 시간에 가사를 입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게 나름 조심해서 몰래 작업에 들어갔는데…….


“후타바, 뭐 하고 있지? 지금 딴짓을 하고 있어?”
수학 교사가 안즈를 지목했다.


“아뇨, 아무것도…….”
“그럼 이 문제를 풀 수 있겠지?”
수학 교사는 방금 막 적은 따끈따끈한 문제를 가리켰다. 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긁적였다. 안즈가 제자리에서 가만히 칠판을 훑어보자 수학 교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집중을 안 하니까 그렇지. 후타바, 네가 아무리 아이돌이라도 특별 취급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면…….”
“25L네요.”
안즈는 시원스레 자리에 앉았다.


수학 교사는 문제를 재빨리 체크했다. 안즈가 머리를 굴린 것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수학 교사는 문제와 안즈를 몇 번 번갈아 보았다. 그리곤 내키지 않는 티를 팍팍 내며 혀를 찼다.


“정답이다.”
그 후 수학 교사는 쉬는 시간까지 안즈를 터치하지 않았다. 안즈는 자리에 앉고 나서도 몰래 작사 삼매경에 빠졌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카네가 안즈에게 달려왔다.


“안즈 쨩! 뭐해요?”
아카네의 우렁찬 목소리가 안즈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안즈는 쉬는 시간이 온 줄도 모르고 작사에 열중하고 있었으므로.


“아아, 놀랐네. 음, 작사하고 있었어.”
“작사? 노래를 만들고 있었어요?”
“응, 그럴 일이 있어서.”
“오오, 대단해요! 어떤 노래인가요?”
“아직 두루뭉술해. 편안하게 쉬는 느낌으로 하려고.”
“그렇군요……! 아티스트 같아요! 안즈 쨩!”
“어어, 고마워.”
아카네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안즈의 노트를 뚫어지라 바라본다. 덕분에 노트에 심을 뭉개던 팬이 멈췄다.


“저기, 그렇게 계속 보면 작업하기 껄끄러운데…….”
“앗, 죄송합니다! 안 볼게요!”
아카네의 시선이 바로 천장을 향했다. 다른 아이였으면 목이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힘찬 동작이었지만, 아카네니까 괜찮겠지. 안즈는 아카네를 보고 피식 웃었다.


“아카네 쨩은 노래가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노래엔 힘이 있으니까요!”
아카네의 고개가 평소대로 내려왔다.


“적어도 저는 겪었어요! 오다이바 페스에서 안즈 쨩의 무대를 보고! 듣고!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아카네는 안즈의 무대를 보고 아이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하, 아직 오디션에 합격조차 하지 못했지만요.”
아카네가 멋쩍게 웃었다.
“뭐, 초조해하지 마. 아카네는 좋은 아이돌이 될 거야.”
안즈는 미소를 머금었다.


안즈는 지금 아카네를 보고 힘을 얻었다. 다른 이에게 기운을 전해주는 게 아이돌이다. 그러니 아카네는 분명 좋은 아이돌이 될 테지. 안즈는 시선을 창가로 옮겼다. 마침 먼 곳이 보고 싶었으니까. 아마 방위상으로 창문 너머가 346 프로덕션 방향이었을 거다.


안즈는 지금 기운을 전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했다.


12월 25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탄생 축하일은 언제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웬만한 사람은 만장일치로 오늘을 꼽을 것이다.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은 아니라지만, 오늘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란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거리 곳곳에서 성대한 멜로디가 흐른다.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지만, 사람들 스스로(주로 상점의 판촉 직원들이지만.) 몸에 하얗고 빨간 것을 둘러 분위기를 내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일하러 오다니. 나도 리얼충이 다 됐네.”
안즈는 카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족, 커플 단위 손님들이 제각기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가 트리에 감긴 전구 다발처럼 손님들에게 감겨 반짝반짝 빛난다.


손님들은 제각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바빠 지금 카페에서 안즈를 보는 사람은, 안즈와 동석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변장 성공. 선글라스와 모자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기획도 성공.


오늘은 일반인 사이에 섞여 일상을 보내는 안즈라는 컨셉으로, 인터뷰 일이 잡힌 날이다.


안즈가 앉은 테이블엔 안즈를 포함해 총 3명이 자리했는데, 안즈, 안즈 옆자리에 프로듀서. 그리고 안즈와 마주한 잡지사 기자까지 총 3명이다.


“급한 일정인데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야 실리면 좋으니까요.”
프로듀서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외부 인사와 만나는 자리였기에 프로듀서의 차림새는 말끔했으나, 얼굴 곳곳에 묻어나온 피로는 도통 씻어지지 않아 프로듀서의 얼굴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안즈는 조금 걱정됐지만, 지금은 일이 우선이다.


“그럼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기자가 방긋 웃으며 운을 띄웠다.


그 후 인터뷰가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그냥 잡지에 흔히 실리는 특별할 것 없는 인터뷰. 안즈는 질문에 재치를 섞어 조리 있게 답변했고, 기자는 안즈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안즈의 대답을 받아 적었다.


피로에 전 프로듀서가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잡은 일이다. 안즈는 이 일을 소홀히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컨셉을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성심성의껏 임했다.


인터뷰 분위기는 좋았다. 카페의 다른 테이블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했다. 안즈가 일을 잘 해내는 걸 보고 프로듀서도 미소 짓는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미소를 위해 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인터뷰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기자가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이 손짓하며 말했다.


“아, 지금 생각난 게 있는데요.”
안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프로듀서분 있잖아요.”
기자가 프로듀서를 가리켰다.


순간, 프로듀서가 조금 움찔거렸다. 프로듀서가 다리로 테이블을 건드린 탓에 옆에 있던 안즈가 프로듀서의 반응을 눈치챘다.


“어라? 오늘 인터뷰는 안즈의 인터뷰 아니었어요?”
안즈가 태연한 척 웃으며 기자의 시선을 끌어오려 했으나,
“하는 김에 같이 하면 좋죠.”
기자가 능청스럽게 흘렸다. 기자는 안즈와 한창 인터뷰를 할 때보다 오히려 더 즐거워 보였다. 순간 안즈의 등에 싸늘한 감각이 지나갔다. 안 좋은 예감이 든다.


“프로듀서 씨는 요즘 유명하시잖아요?”
“아, 뭐……. 이야기가 돌긴 하죠.”
기자가 프로듀서를 똑바로 바라본다. 프로듀서는 기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시선을 돌려도 기자는 멈추지 않는다. 눈을 맞추지 않아도 귀는 열려 있으니까.


“저, 진짜 감동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해서요. 그도 그렇잖아요? 옛날 드라마 주인공 같아요.”
프로듀스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어떤 대답을 해야 이 자리를 무난하게 넘길 수 있을까. 상대가 소속한 잡지사는 제법 규모가 있는 잡지사. 대놓고 불쾌감을 표현해도 괜찮은 곳이 아니다. 굳이 따지면 346 프로덕션보단 작은 곳이다. 오히려 규모 면이든 영향력이든 346가 훨씬 더 위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무시하면 섭섭한 곳이다.


일을 제대로 망치면 당분간 성가셔질 정도는 되는 곳이다. 프로듀서는 될 수 있으면 무난하게 넘기고 싶었다.


……그와 별개로 프로듀서의 가슴이 끓어오를 기미가 보인다. 속이 따끔따끔하다. 불이 붙기 전에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려야 한다. 프로듀서의 자제력은 무뎌졌다. 기자가 이 화제로 프로듀서의 속을 긁으면 얼마 전 상무실에서 미시로 상무한테 소리친 것처럼, 기자한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런 사태는 피해야 한다.


프로듀서는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셨다. 되도록 찬 것을 마시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먼저 주문한 건 따뜻한 음료다. 속은 식히지 못했지만 그래도 수분을 섭취한 덕분에 속이 그나마 덜 쓰라리다.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표면에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권유는 감사하지만, 안즈 인터뷰를 계속하시는 게…….”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끈질기다.
프로듀서의 이마가 씰룩였다.


프로듀서의 경험이 경고한다. 프로듀서는 업계에서 여러 기자와 만났다. 그리고 기자들이 취재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다. 다양한 부류의 기자가 있었고, 그 중엔 노린 사냥감을 몽구스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부류도 있었다. 이것이 정의감 등, 긍정적인 요소로 발현되는 성질이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잡지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기사의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기사를 자극적으로 조명하는 부류……. 그런 부류는 어떻게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고정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해답을 찾아내기보단, 문제를 이미 정한 답에 맞추려는 부류. 얽히면 상당히 성가신 부류.


“당신에 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조금 정도는 괜찮잖아요.”
“아아, 지쳤다. 프로듀서. 우리 언제 가? 빨리 쉬고 싶은데…….”
안즈는 칭얼거리면서 테이블에 뺨을 대었다. 컨셉을 살려 자리를 뜰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물론, 기자 때문에 진짜로 자리를 뜨고 싶었으므로, 속내도 담아서 했지만.


“그래, 시간이…….”
프로듀서는 안즈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으나,
“남들과 스타트 지점이 다르시잖아요.”
기자가 끈질기다.


프로듀서는 순간 불쾌감을 얼굴에 드러낼 뻔했지만, 참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화를 내면 인터뷰 기사의 속성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안즈에 관해 알아보는 기사가, 안즈에 관해 안 좋게 알아보는 기사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대처하기가 성가시다.


“남들과 스타트 지점이 달랐지만, 그리 특별한 건 없었어요. 전 그냥 저일 뿐입니다. 더 이야기할 만한 것도 없어요.”
참자, 참자…….
프로듀서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에이, 너무 겸손하게 구신다. 특별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기자가 푸근하게 웃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흔히 분위기 좋을 때 나오는 웃음이고, 눈길도 따스했지만 프로듀서에겐 그 어떤 흉안보다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감지한 섬뜩함은 이윽고 현실이 된다.


“부모가 없는 게, 있는 거랑 같을 리가 없잖아요?”
여전히 같은 얼굴로 기자가 말한다.


“제 말은, 그러니까. 허들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이렇게 성공한 게 대단하단 이야기였습니다.”
“저, 죄송한데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기로…….”
“저는 어렸을 적에 저희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공부하라 뭐해라 하도 시끄러워서……. 인생에 거추장스럽다고 그렇게 느꼈거든요.”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낚싯줄이 프로듀서의 턱을 꿰어버렸다. 낚싯줄을 잡은 기자가 낚싯대를 흔든다.


“대단한 부모도 아니었거든요. 재산은 그냥저냥. 사는 집도 그냥저냥. 정말 지루하고 심심한 집이었어요. 그저……. 집에 가면 언제나 갓 지은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용돈은 일주일에 3천엔 받았고, 일요일엔 외식을 했죠.”
낚싯줄이 흔들린다.
프로듀서의 정신도 흔들린다.


“저희 집은 그냥 어디에도 있는 평범한 가정이었어요. 저도 얌전하게 자랐지만, 가끔 반항도 하고 그러는 애들을 살짝 동경하기도 했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반항하는 게 멋있게 느껴져서요.”
프로듀서의 주먹이 흔들린다. 지금 당장에라도 테이블 위로 부상하려고,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부들거렸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이성이 그걸 가까스로 멈추고 있다. 이걸 물 위로 올리면 안 된다. 물고기를 물 밖에 내놓으면 안 되는 것처럼.


프로듀서가 갈등하든지 말든지 기자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이유로 부모가 없는 아이도 동경했습니다. 고아인데도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게 참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만……. 그만해.”
프로듀서는 작게 중얼거렸다.
“예?”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프로듀서의 이성의 끈이 바로 끊어질 것처럼 불안한 비명을 지른다. 기자가 드리운 낚싯줄이 프로듀서의 이성의 끈에 얽혔다.


프로듀서는 기자의 얼굴을 후려 패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주먹을 당장 테이블 위로 꺼내 기자의 주둥이에 날려, 기자의 이를 부러트리고 싶었다. 물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거리. 한 번이다. 한 번만 휘두르면 충분하다.


프로듀서의 주먹이 점점 더 위로 부상할 무렵…….


안즈가 프로듀서의 주먹을 잡았다. 안즈의 손이 프로듀서의 주먹을 아래로 가라앉혔다. 안즈는 겉으론 티를 내지 않으며 프로듀서의 주먹을 꼬옥 잡았다.


안즈는 프로듀서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의지는 전해진다. 프로듀서는 부풀어 오른 가슴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그……. 인터뷰를 그만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요.”
“아, 그런가요. 아쉽네요. 기껏 흥미가 돌았는데……. 분위기도 좋았잖아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안즈와 프로듀서는 말을 아꼈다.


“그럼 오늘은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뵙죠. 아, 근데 말이에요. 실례지만, 이건 진짜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기자가 고개를 살짝 앞으로 빼고, 프로듀서한테 조금 더 가까워졌다. 기자가 눈초리를 가늘게 뜨며 말했다.


“부모가 없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죠?”


순간, 프로듀서의 이성 줄이 끊어졌다. 프로듀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물기라는 물기는 혈관에서 다 빠져나가기라도 했는지 프로듀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프로듀서의 주먹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그걸 안즈가 급히 억누른다.


“프로듀서, 잠깐!”
당황한 안즈가 의사를 말로 전하려 했지만, 그 전에 안즈의 귀에,


-어? 저거 후타바 안즈 아니야?
-진짜다.
-어디? 우와, 뭐지? 인터뷰 왔나?
-옆에 있는 건 프로듀서인가?
-야, 근데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잡혔다.


안즈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안즈를 알아본 주변 일반 손님들이 안즈 쪽 테이블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안즈가 주변을 인식했을 때, 주변을 돌아보느라 손에서 힘을 뺐을 때, 기자가 입을 놀렸다.


“저는 그런 기분을 모르거든요.”
“입 닥쳐!”
그와 동시에 테이블이 엎어졌다.


벌떡 일어난 프로듀서의 몸이 테이블을 치고 그대로 앞으로 뻗었다. 프로듀서의 주먹이 기자의 뺨을 뭉갰다. 기자의 몸이 프로듀서의 주먹이 향한 방향 그대로 넘어진다. 기자가 시원스레 엎어진다. 그리고, 기자가 몸을 가누기까지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카페에 정적이 감돌았다.


상황을 인지한 안즈가 프로듀서를 올려다보았다. 프로듀서는 숨 쉬는 방법을 잊기라고 했는지, 아니면 숨 쉬는 기능이 망가지기라도 했는지 불규칙하게 씩씩거리며 기자를 노려보았다.


기자가 뺨을 감쌌다.


“아야야……. 내 얼굴……. 으윽…….”


안즈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은데 목이 멨다. 목을 메운 건 당혹감과 허탈함, 그리고 철렁함이다. 안즈는 기자가 일어나면서 슬쩍 지은, 아주 한순간 지은 표정을 똑똑히 봤다.


기자는 얼굴을 부여잡으며,
웃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음이 카페에서 몇 번이고 울린다. 카페 손님들이 제각기 핸드폰을 들어 기자와 프로듀서, 그리고 안즈를 화면에 담았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시간의, 지나간 순간은 렌즈에 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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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를 크리스마스로 맞춘 건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의 영향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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