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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이제 다시 봄이 왔음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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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5, 2017 22:08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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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칼만큼이나 푸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천천히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청첩장을 들어 결혼 시작 시간을 확인했다.

‘…… 토요일 오후 5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결혼식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기로 했다.

입을 옷. 제대로 준비됐다. 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생각하니 어색하긴 하지만 특별한 날이니 만큼 바지 대신 스커트다. 축의금.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축의금을 받을 그녀에게도, 주는 나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액수다. 하지만 여기서 액수를 줄일 수는 없다. 이렇게라도 해야 축의금과 함께 그녀와 연관된 모든 슬픔이 내 곁을 떠날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그렇게 모든 것을 끝맺는 것이다.

사실은 하나도 모르겠다. 끝낼 수는 있는 건지, 애초에 끝낼 마음은 있는 건지. 축의금으로 일부로 이렇게 많은 돈을 준비한 것도 그녀에 대한 나의 미련을 알아 달라는 소리 없는 표현은 아닌지. 혼란스럽다. 그녀로부터 청첩장을 받은 후,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갑자기 왜 이럴까. 끝난 뒤에 있을 또 다른 아픔이 때문일까. 그래서는 안 된다. 다 끝나면,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나는 거울 앞에 섰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음을 지어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말들을 꺼내 보았다.

“결혼 축하해 하루카. 정말 행복해 보이네.”

목에 뭔가 걸린 것만 같았다. 다음 말을 내뱉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 둘이 너무 잘 어울려. 결혼 생활 …… 즐겁게 하길 바래.”

아직 리허설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떡하란거지. 일단 세수부터 해야 될 것 같다.

 

해변을 따라 호텔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예식장은 저 호텔들 중 하나에 위치해 있었다. 이른 봄이지만 사람이 드문드문 있는 풍경의 백사장 옆으로 바다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시리도록 푸르렀다.

예식장에는 이미 도착한 하객들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신부와 신랑의 모습도 사무소 동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는 한 남성이 맡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어느 쪽 하객인지 물었다. 신부 측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청첩장을 확인한 뒤 축의금을 받아갔다. 그는 생각보다 두꺼운 축의금 봉투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에게 방명록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방명록이라면, 여기 이 카드에 이름이랑 덕담 간단히 써 주시면 됩니다.”

그가 나에게 조그만 카드와 펜을 건네며 말했다. 크기는 조금 큰 메모지 정도였다.

“이게 방명록인가요?”

“네. 식이 끝나면 신랑과 신부가 하나씩 볼 예정이니 대충 쓰시면 큰일납니다.”

그는 살짝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카드에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매 순간이 봄처럼 따스하고 활기차길 기원합니다.

- 키사리기 치하야’

상투적인 문구였다. 친한 친구 사이처럼 장난스럽게 써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래서 누구나 떠올릴 법한 평범한 문구를 택했다. 엄청난 액수의 축의금과 지극히 평범한 축하 문구. 아이러니하다. 지금 내 심정도 그렇다. 끝맺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도대체 그녀는 나에게 무엇일까?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를 위해 바뀌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지금 입고 온 이 스커트조차도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에게 무엇인가? 공허한 질문이 내 머릿속에 메아리 쳤다. 지금껏 물은 적도, 앞으로 물을 일도 없을 쓸데없는 질문이다. 그녀를 생각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머릿속에서 지우는 편이 낫다. 아무 탈 없이 이 시간을 보내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면 나도, 그녀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식장에 더 많은 하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타카네였다.

메인홀을 둘러보았다. 눈덮인듯 새하얀 버진로드를 따라 고급스런 의자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별이 수놓아진 듯 아름다운 조명들이 홀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결혼식에 딱 맞는 그런 장소였다. 나는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옆자리에 타카네가 와 앉았다.

“치하야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반갑군요.”

나도 그녀를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고풍스러운 목소리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저도 시죠 씨랑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갑작스럽게 연락이 온 하루카에게 고마워지는군요.”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른 동료들의 소식을 물었다.

“시죠 씨 말고 사무소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예상하셨겠지만 다들 바쁘답니다. 저는 그나마 스케쥴을 조정할 수 있어서 올 수 있었지요. 모두 치하야와 하루카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모일 수 있다면 기쁠 것 같군요.”

모두들 다시 모일 수 있을까.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 없지만 우리들은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도 모르게 슬픔이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걸 보기라도 한 건지 타카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회자의 개식사와 함께 식이 시작되었다. 식은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주례 없이 진행되었다는 정도다. 신랑이 먼저 입장했다. 그는 하루카가 말했던 것처럼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긴장한 탓인지 뻣뻣한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덕분에 하객들의 웃음으로 식장이 화기애애 해졌다. 나도 어색한 웃음으로 분위기에 어울렸다.

뒤를 이어 신부가 입장했다. 하루카가 한 손에는 꽃을 다른 한 손에는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살짝 숙인 얼굴에서 은은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하얀 웨딩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아름다웠다.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의 그녀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이 행사의 조연일 뿐이다. 내 역할은 주인공인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신랑이 하루카의 아버지로부터 그녀의 손을 건네 받았다. 이제 둘은 혼인서약서를 낭독한다. 서로가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하고는 서로의 손에 반지를 끼운다. 그리고 서로의 입술을 맞춘다. 그녀는 이제껏 본적 없는 행복한 모습을 하고있었다. 나와 키스할 때의 그녀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해내고 싶지도 않다. 나만 힘들어질 뿐이다.

양가 부모님의 성혼선언문 낭독이 있은 뒤, 둘은 식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로 축하 받으며 공식적인 부부가 되었다. 나도 그들처럼 평범하게 축하하고 싶었다. 방명록에 적은 것처럼 그들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그녀가 힘들었으면 했다. 하다못해 그녀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줬으면 했다.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도록. 그런데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한 모습으로, 모두로부터 축복받고 있다.

지인들의 영상 편지를 보고, 신랑이 직접 부르는 축가를 들을 때도 도저히 식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가장 밑바닥부터 목구멍까지 슬픔이 가득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견디기가 버거웠다. 나는 홀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찬 물로 세수를 해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배수구를 따라 흘러내려가는 물처럼 이 감정의 찌꺼기들도 흘려 보낼 수 있을까. 결혼식이 끝나면 그녀를 웃으며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모든 것이 이상했다. 내 마음을 도통 헤아릴 수 없었다. 거울에는 내 모습이 선명히 비치고 있었다. 거울 속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는걸까.

내가 홀로 돌아왔을 때, 식은 이미 막바지에 다다랐었다. 잠시 자리에 앉아 있으니 기념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신부측 친구를 부르는 사진 기사의 호출에 나와 타카네는 하루카 바로 뒤에 섰다. 나는 최대한 활짝 웃으려 노력했다. 사진에는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할 일이겠지만.

사진촬영 후, 하루카가 밤에 결혼식 뒤풀이가 있을 예정이니 시간되면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녀 말로는 남편이 호텔 바를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일단 알겠다고 말했다. 식사는 호텔 뷔페에서 하면 된다는 그녀의 말에 따라 타카네와 함께 뷔페로 향했다. 타카네는 각종 요리들을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뒤풀이에 참석할 건지 물었다.

“시죠 씨는 뒷풀이에 참석하실 건가요?”

“당연하지요. 언제 다시 하루카를 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없죠. 이런 말하려니 가슴 아프지만 마지막으로 보는 그녀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답니다. 그러니 치하야도 꼭 같이 갑시다.”

마지막. 그래 마지막이다. 오늘이 지나면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신혼여행을 떠나겠지. 그것은 기약 없는 이별은 아니다. 몇 박 몇 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여행사의 잘 짜인 스케줄들이 모두 끝나면 일본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 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내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녀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음을 영영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그건 싫다. 거울 속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식의 결말은 안된다.

타카네는 쉼 없이 요리를 나르며 그녀 옆에 빈 접시를 쌓아갔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떨리는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대로 집에 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하루카에게 그런 말을 하는게 옳은 걸까. 행복한 신혼 생활을 기대하고 있을 그녀에게 견디기 버거운 짐을 떠미는 행위나 다름없다. 여러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타카네가 마지막 접시를 비우고 우리는 하루카가 말했던 바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그녀도 거기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말해야 할지 말지 계속 고민되었다.

“흠흠. 치하야, 실례지만 먼저 가시겠습니까? 저는 갑작스러운 용무가 생겨서 잠시 다른 곳에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옆에서 발을 맞춰 걷던 타카네가 갑자기 말했다. 무슨 용무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천천히 오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금방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가까운 화장실을 찾아 떠났다. 나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저기다. 바가 보인다.

“치하야 어서와! 엄청 빨리 왔네.”

문을 열고 바로 들어서자 하루카가 나를 반겨줬다.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너희 남편은 어디 간거야?”

“아, 그 사람? 좀 전에 친구라는 사람들이 와서 데리고 갔어. 결혼한지 얼마 됐다고 벌써 마누라는 뒷전이라니까.”

그녀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아무도 없는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 그녀에게 말해야 할까. 괜히 그녀에게 상처만 주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녀와 얘기하고, 웃고,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끝내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아니다. 마지막 순간을 후회로 남기고 싶지 않다. 결말만큼은 내가 원하는 데로 쓰고 싶다.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잠시만. 그녀에게 내 마음을 말할 아주 조금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저기, 하루카. 우리 바다 보러 나가지 않을래?”

“바다? 갑자기 왠 바다야?”

뜬금없는 나의 부탁에 그녀는 살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오랜만에 둘이서 이야기도 나눌 겸. 이왕이면 분위기 있는 데가 좋잖아?”

“음… 아주 잠깐만이야? 너무 오래 자리 비우면 손님들한테 실례니까.”

“괜찮아. 오래 안 걸릴거야.”

그렇게 나와 그녀는 바에서 조금 걸어 나와 바로 앞의 해변으로 향했다. 은은하게 부서지는 달빛을 받으며 나와 그녀는 백사장을 따라 걸었다. 별다른 말은 오고 가지 않았다. 그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둘 밖에 없는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역시 밤에 보는 바다는 낭만적인 것 같아.”

그녀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멀리 수평선을 향해 있었다. 나는 몇 발자국 더 가서 그녀 옆에 자리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개를 향한 채로 준비했던 말들을 꺼내기로 했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고막을 두들겼다. 깊게 숨을 들이 쉬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다문 입술을 뗐다.

“하루카, 난 말이지 너랑 헤어지고 정말 힘들었어.”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없이 수평선을 보고 있었다.

“매일 아침이면 너랑 연애하던 시절이나, 헤어졌던 날을 곱씹어 보곤 했어. 당연히 일도 손에 제대로 안잡혔지. 그래서 사무소도 그만뒀어. 괜히 민폐 끼치는 것 같았거든. 사무소 나온 뒤로는 프리랜서로 지내면서 내킬 때만 일했어. 나름 쌓아 놓은 게 있어서 그런건지 일은 생각보다 자주 들어오더라. 남는 시간에는 너랑 다녔던 곳들을 다시 가봤어. 하루는 비 오는 날이었는데, 요코하마를 돌아다니고 있었어. 기억나? 네가 데리고 갔던 레스토랑이랑, 같이 걸었던 공원 말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너한테 연락이 온 거야. 같이 식사나 한 번 하자고 말이야.”

그녀는 이제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있었다. 서로가 눈을 마주친 채로 말을 이어갔다.

“난 그때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어. 그래서 통화한 그 날 옷도 새로 사고 너랑 만나는 날 아침에는 화장도 열심히 준비했었지. 그런데 네가 결혼 소식을 전할 줄은 전혀 몰랐어. 너무 슬퍼서 울음도 안 나오더라. 하지만 곧 마음을 다 잡고 이 기회에 모든 걸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네가 골라줬던 옷들도 모두 정리해서 결혼식이 끝나면 너와 함께 떠나 보내려 했지.”

그녀의 눈동자 위로 슬픈 기색이 잠시 지나쳐갔다. 그녀의 것일까, 그녀 눈동자에 비친 나의 것일 것. 아니면 둘 모두의 것일까.

“그런데 오늘 결혼식을 보면서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팠어.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네 모습이 너무 견디기 어려웠어. 하지만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이대로는 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모든 게 끝나 버릴거라는 사실이었어. 난 아직도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너 때문에 죽을만큼 아픈데, 네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는건, 난 정말로 싫어…”

따뜻한 눈물이 내 뺨 위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옷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루카, 정말 미안해. 그 어느때보다 행복해야할 날인데, 정말 미안해…”

하루카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나에게 아무 잘못 없다고 말하려는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그렇게 힘들었을 줄 몰랐어. 나는 네가 얼마 안지나 일상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했어. 나처럼. 그래서 결혼식에 널 초대했던거야. 우린 다시 예전처럼 친한 친구 사이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어. 이별하면 금방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난 말이지, 네가 날 사랑해줬던 만큼 널 사랑하지 못했어.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던거야.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이대로 가면 서로 힘들어질 것 같았어 그랬어.”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고인 눈물이 그녀의 볼 위로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나한테 고백했을 때, 정말 기뻤다? 어쩌면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몰라. 너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나도… 널 사랑해 치하야.”

그녀는 살며시 나에게 다가와 입술을 맞췄다. 하늘의 달이 우리 두 사람 위로 축복이 담긴 달빛을 환하게 내렸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바다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우리 둘만을 위한 축가를 불러주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조연이 아닌 그녀와 함께하는 주인공이었다.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다. 나도 그녀도 흘린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그래, 이젠 작별의 시간이다.

“난 이제 돌아 갈게. 잘 가. 치하야.”

그녀가 내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는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돌아가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하루카! 결혼 축하해. 꼭 행복하게 살아.”

이번만큼은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따가운 봄 볕을 맞으며 그녀는 잠에서 깼다. 그녀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 밖으로 가로수들이 줄 지어 놓여진 모습이 보인다. 꽃이 만개해 있었다. 가로수 옆에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그녀는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마전 새로운 사무소와 계약을 했다. 예전에 다니던 사무소만큼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곳이었다.

채비를 마친 그녀는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향긋한 꽃내음이 봄바람을 타고 그녀에게 불어왔다. 그녀는 이제 다시 봄이 왔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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