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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꿈이 되어, 꿈을 위해 너와 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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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4, 2017 09:59에 작성됨.

"앗....."

 

뚝.

 

발걸음을 멈췄다.

 

"치하야 쨩.....?"

 

뚝.

 

바로 앞에 있었던, 익숙한 사람 또한 그 자리에서 못박힌 듯 서서는, 커다래진 두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았다.

 

응,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 그 사람- 하루카와 마주쳐버린 건, 예정에는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그밖에도,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아, 안녕.....오랜만이네."

"응."

 

아직 얼떨떨한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 나는 단단히도 잠겨있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좀 늦었지만,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으로 찾아와봤던 연습실은, 그런 안일한 기대와는 반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저기, 치하야 쨩.....혹시....."

 

소근거리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조금은 어색한 웃음이 보였다. 뒤에 나올 말은 굳이 끝까지 듣지 않아도,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다. 나는 고개만을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하루카는, 또 한 번 놀라워하는가 싶더니, 다시 웃음을 돌려주었다. 평소와는 어딘가 다른 웃음. 조심스러움과 약간의 불편함이 배어나오는, 그런 웃음.

 

"그렇, 구나."

"응."

 

일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지만, 과연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놀랍다는 감정을 끝까지 감출 수 있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하루카라면 머지않아 이 곳에 방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 쪽과 타이밍까지 완전히 일치할 줄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는 있는 것일까, 이거? 나는 애써 동요를 감추며 여전히 맞은 편에 가만히 서 있는 하루카를 훑어보았다. 변장용 모자와 안경, 계절에 맞는 두터운 겉옷. 그리고 어깨에 매고 있는 조금 낡은 듯한 에코백까지.

 

사무소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때로는 둘이서. 이 연습실을 오고가며 자주 봐왔던 모습이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이 곳을 방문한 목적 또한 나와 동일하다는 거겠지.

 

"그러는 하루카도, 이 쪽과 같은....."

"에, 에헷, 맞아. 잠깐 맞춰보려고 왔어. 이제 곧 있으면 최종 예선이니까."

 

하루카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별도, 달도 잘 보이지 않는, 마치 얼어붙은 것 같은 밤하늘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가버렸구나.

 

처음 그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완연한 겨울.

 

그리고 거기에 참가하는 것조차 허둥거렸던 우리 두 사람은, 이젠 본선 진출을 앞두고 있는 상황.

 

응, 그렇게 되었는데.....후우. 나는 생각을 더 잇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순식간에 하얀 입김으로 화하는 그것. 아까부터 계속 가만히 서 있던 하루카는, 뒷통수에 손을 대고는 멋쩍게 웃었다.

 

"아하하.....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사무소에 연락이라도 해두는 게 좋았을까."

"그러게."

"지금 와서 열어주세요~ 하는 건, 역시 민폐겠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그럼 어쩔 수 없나~ 조금 아쉽지만, 이번에는 그냥 돌아갈 수밖에. 응. 그럴 수밖에."

 

그, 그러니까 다음에 보는 걸로! 하루카가 빙글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정말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딱딱한 걸음걸이로, 빠르게,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했을 때부터 쭈욱, 명백히 이 쪽을 피하려는 모습. 그렇지만 나는, 그게 특별히 싫다는 건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쩔 수 없다고 수긍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고 해야할까.

 

그도 그럴게, 현 상황에 있어서 하루카와 나, 두 사람은.....머지않아 본선 진출을 두고 서로 대결해야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하루카가 이 쪽을 피하는 건 당연했다.

 

처음 우리 둘이 맞붙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승부를 앞두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괜히 붙어 있어 이상한 쪽에다가 빌미를 주는 일은 피해야하니까. 굳이 하루카 쪽에서 피하려고 하지 않아도, 요즘따라 장소와 시간을 달리하는 우리 둘의 일정표가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던 것 같긴 해도.

 

하여튼, 여기서 하루카를 보내주는 것도 당연했다.

 

하루카는 동료이지만, 아니, 그를 넘어서 무척 소중한 사람이지만 ......지금만큼은 단 하나뿐인 자리를 두고 다투는, 그, 적....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적과 같이 있어줄 의리 같은 건, 적어도 나한테는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떠나려고 하는 이를 붙잡아둘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하루카."

"어, 응!"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을- 하루카를 불러세웠다. 끼기긱. 급격히 브레이크가 걸린 하루카가, 다행히도 이 쪽을 돌아봐주었다. 나는 그런 하루카의 상냥함에 속으로 감사함을 표하면서, 불러세운 목적을 입에 담았다.

 

"돌아가는 건 좋은데.....조금 걱정이 되어서."

"응? 걱정이라니?"

"시간, 괜찮을까 하고."

 

그 말에 하루카는 급히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굉장히 알기 쉬운 반응을 보였다.

 

"에에에에!?!?"

".....아슬아슬해?"

"여기서 곧장 창문 쪽으로 뛰어내려서 나간다고 해도, 굉장히 아슬아슬.....아, 이젠 늦었다."

 

꼴깍. 하루카는 이젠 죽었다는 듯이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와 움직임을 같이해 축 처진 어깨가, 정말 처량해보였다. 정말, 이렇게 되어서야. 나는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좀 아까 바라본 하늘이, 유달리 까매보여서 혹시- 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그게 정말이 될 줄은. 그래도 또 몰라서 내 쪽의 시계를 확인해봤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의욕은 인정하겠지만, 오고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으면 곤란하겠지."

"으흑,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라도 맞춰볼 걸 그랬나? 그치만, 이왕 할 거라면 연습실에서! 라는 생각에....."

 

어쩌지~! 빨리 가서 맞춰보겠다는 생각에, 뭐 챙겨온 것도 별로 없는데! 하루카는 황급히 에코백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내어 열어보고는 더욱 울상을 지었다. 택시라도 타고 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된 거겠지. 이렇게 된 이상 하루카가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어쩔 수 없네. 나와 같이 돌아갈 수밖에."

 

실은 하나뿐이 아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하루카가 엄청난 기세로 머리를 숙였다. 나는 무심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아냈다. 내 집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선보이기에는 조금 삭막한 곳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좋다는 걸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감사하지 않아도 돼."

"그치만, 만약 치하야 쨩이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이 불쌍한 하루카 씨는 차가운 밤거리를 방황하며 밤을 지샐 수밖에 없었다고요!?"

"나한테 감사하기보다는, 돌아가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안이한 생각을 반성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우우우.....네에엡....."

 

다박다박. 이 쪽이 먼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사이, 하루카도 신발을 벗어 한 켠에 정리해두고, 잔뜩 움츠린 상태로 복도를 지나왔다. 나는 곧장 거실의 히터를 틀고는, 매고 있던 가방과, 걸치고 있던 갈색 외투를 벗어 구석에 걸어두었다.

 

"후아~ 따뜻해~"

 

찬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는 사이, 하루카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통통 튀는 듯이 거실로 도착했다. 그러고는 바로 탁자 근처에 놓여있는 방석 하나를 끌어와, 냉큼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치하야 쨩네 집에 오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구나~"

 

생각보다 별로, 변한 건 없네.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하루카의 시선이 내 쪽에 이르러서는 움직임을 멈췄다. 언제나와 같은, 빛을 머금고 있는 초록빛 눈동자.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몹시 부담스럽게 느껴져, 나는 차를 내온다는 핑계로 급히 부엌으로 향했다.

 

"치하야 쨩.....?"

"자, 여기."

 

이 쪽의 상태를 물어보는 말소리도, 별로 듣고 싶지 않아져서. 투박한 찻잔을 탁, 하고 소리내서 탁자에 내려놓는 걸로 막아버렸다. 그러자 하루카는 얌전히 차를 마시는가 싶더니, 다시 이 쪽을 바라보았다. 하루카와는 반대편 쪽 자리에 앉아있었던 나는, 또 한 번 그 시선에게서 벗어나고자 다른 곳들로 자꾸만 눈을 돌렸다. 여러 음반이 한가득 꽂혀있는 선반.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상당히 애용 중인 오디오 세트. 그리 잘 사용하지는 않는 전기밥솥. 베란다 창문 쪽에 붙여놓은 결로방지 시트. 침대. 그 주변의 서랍과 서랍 위에 놓여있는, 그 애와 함께 있는 사진이 담겨있는 액자.

 

그리고, 그리고 또.....

 

"......"

 

정말, 이럴 때만큼은 인테리어에 신경쓰지 않는 나 자신이 미워진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어진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루카와 눈을 마주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지금만큼은 라이벌이네."

 

하루카의 입에서 신경쓸 수밖에 없는 사실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내키지 않는 대답을 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적과의 동침, 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나."

"굳이 따진다면야."

"아하하......무, 물론! 어디까지나 지금만 그런 거지만! 치하야 쨩은 동료인 걸! 친구인 걸! 무지무지 좋아하는 걸!"

 

하루카가 마구 사족을 붙여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앞으로 싸우게 된다는 사실은, 가려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반쯤 사무적인 태도로 앞으로 식사에 대한 것이라던가, 앞으로 뭘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적이라고 해도 집에 들여보낸 이상은 손님이니까. 그에 맞는 대우는, 해주지 않으면 안되겠지.

 

"음.....저녁은 미리 챙겨먹고 나왔으니까 괜찮은 것 같고.....하고 싶은 일이라면 있었는데."

 

여기서 하기에는, 역시 무리겠지? 하루카는 이미 답변이 정해진 질문을 했다.

 

"응.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고성방가로 이웃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요~"

 

하루카는 컵을 탁자 한 켠으로 밀어놓고는, 그대로 푹 엎드렸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툭툭 탁자를 몇 번 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밖에 해야겠다- 할 만한 것도 없으니, 일찍 자두는 편이 좋으려나?"

".....그렇겠네. 최종 예선이 얼마 안 남은 이상, 컨디션 관리에는 신경을 써야하니까."

"치하야 쨩도 취침?"

"응. 트레이닝은 전부 끝내두었으니까. 마지막에 맞춰보는 걸 제외하면."

"헤에~ 그렇구나. 역시 나랑 똑같았네."

 

하루카가 상반신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그대로 덜렁 누워, 데구르르 굴렀다. 그러고는 한 손을 들고는 설렁설렁 흔드는가 싶더니, 그것마저 내려버리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럼 난, 이만 꿈나라로.....쿨......"

 

아니, 잠깐만. 쿨.....이 아니잖아. 아까는 적과의 동침이니 뭐니 말한 주제에, 그렇게나 간단히 잠이 들어버리면.

 

"하루카, 기다려. 설마 그 상태로 바로 잠들어버릴 셈?"

"아, 맞다. 자기 전에 씻어야지. 미안, 치하야 쨩. 잠깐 샤워실 좀 빌릴게. 그렇지, 갈아입을 옷도."

"편한 대로."

"고마워."

 

벌떡. 하루카는 방금 전 태도가 거짓말처럼 보일 정도로 힘차게 일어나서는, 구겨진 셔츠며 스커트의 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러고는 내가 건네주는 여분의 홈 웨어를 받아들고는 익숙한 걸음으로 샤워실로 향하는가 싶더니.....

 

"으, 우와앗!"

"하, 하루....."

"괘, 괜찮아 괜찮아! 아마미 하루카, 올 그린 올 라이트입니.....댯!"

 

역시나.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어도, 휘청거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단순히 덜렁이 기질이 발동했던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걸까.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는 하루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

 

".....치하야 쨩, 자?"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소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도 함께. 이리저리 뒤척이는 모양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눕기에는 조금 좁은 침대인 만큼,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

 

차암, 그러니까 말했잖아. 둘 중 하나는 바닥에서 자는 게 좋겠다고.

 

물론 손님을 박대할 수는 없으니까, 이 쪽이 바닥에서 자는 쪽이 되겠지만.....

 

나는 말없이 얼마 전의 회화를 떠올렸다. 하루카는 하루카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가 하나뿐인 침대를 양보하던,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던 풍경. 이전에도 몇 번 경험한 적 있었기도 했던, 그런 주고받음. 그리고 결과는 이렇게, 언제나 같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지.

 

이래서야 진짜 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방 전체를 소등하고, 두 눈을 감고 있어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던 내가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 예의 목소리가 몇 번 더 나를 불렀다.

 

"치하야 쨩, 치하야 쨩~ 일어나 있다면 응답해주세요~"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했다가, 일단 가만히 있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애처로움을 더해가나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반쯤 체념한 투가 되고 말았다.

 

".....자나보네."

 

부스럭. 또 한 번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에 났던 소리는 단순히 자세가 불편해서가 아닌, 내 쪽으로 방향을 틀다보니 나왔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벽쪽으로 몸을 돌린 게 아닐까. 그렇다고 생각하니, 이번에는 내 쪽이 말소리를 내게 되었다.

 

"응. 자고 있어."

"자면서도 대답이 가능하다니, 몽유병이잖아, 그거."

 

킥킥. 바로 근처에서 웃음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

 

"좀 전만 하더라도 바로 잠들어버릴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앟은 모양이네."

"이상하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라도, 있는 걸까?"

 

그 뒤로 이어진 건, 침묵이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바로 대답하기에는 곤란한 질문이었을까.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방 안은 껌껌했다. 커튼을 치고, 불이라는 불은 전부 껐으니 당연했다.

 

"곧 있으면 최종 예선이구나.....이젠 일주일도 안 남은 것 같았는데......있지, 치하야 쨩. 치하야 쨩은, 두렵지 않아?"

 

침묵을 깨고 다시 흘러나온 목소리는, 무척 떨리고 있었다. 나는 누워있는 방향 그대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명확하게는 아니어도 주변의 윤곽은 어느 정도 잡아내주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향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떨어트리지 않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두렵지 않다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두려워할 뿐이라는 것도 아니야.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우승이고, 본선 진출은 어디까지나 그를 위한 과정에 불과하니까."

"그렇구나....."

 

거짓말은 아닌 대답에, 하루카는 힘없는 목소리로 수긍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그 말에 부족했던 진심을 보충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응?"

"설마 그 과정에서, 하루카랑 맞붙게 될 줄은 몰랐어."

"아....."

 

동료라도 같은 스테이지에 서면 서로 라이벌. 그렇게 못 박아두듯이 생각하고, 다짐하고, 말했는데. 정작 그 상대가 하루카라는 현실이 내게 찾아오고 나니, 그 생각이나 다짐이나 발언 그대로로 행동하기에는, 솔직히 힘에 부쳤다.

 

"나, 나도, 치하야 쨩이 대전 상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

 

아하하.....아이돌의 세계는 냉엄하다는 사장님의 말씀, 어쩌면 정말이었는지도 모르겠네. 꾸욱. 하루카는 그렇게 덧붙이고는, 같이 덮고 있는 이불을 살짝 자기 쪽으로 끌었다. 그러고는 몇 번 더 꿈지럭거리다가 말소리를 흘렸다.

 

"솔직히.....조금 무서워."

 

다 듣기도 전에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그런 말소리였다. 나는 눈만을 살짝, 왼편으로 움직였다. 이 쪽에게서 등을 돌리고, 최대한 벽에 붙어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소녀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치하야 쨩의 실력이라면, 이미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하루카도, 나에게 있어서 무척 긴장되는 상대야."

"앗....."

 

어디까지나 본심을 말했을 뿐인데, 그 소녀는 너무나도 알기 쉬울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그런 태도를 보일 것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아직도 등을 돌리고 있는 상대에게, 계속해서 진심을 부딪쳤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는 걸,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해."

"매력, 이라고 해도 말이지.....나로서는 잘....."

"하루카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간에, 나로서는 하루카 또한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벌써부터 지겠다는 듯이 말을 하는 건....."

"아니, 그건 아니야."

 

하루카에게서, 그렇게나 위태로우면서도, 결심에 찬 목소리가 나올 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 이 쪽이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하루카는 그 목소리 그대로 말을 이었다.

 

"나, 치하야 쨩하고 대결하게 된 거, 무섭지만.....그래도, 지고 싶은 마음은.....전혀 없으니까."

 

말이 끝나는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하루카가 발하는, 이 쪽을 향한 선전포고가 별로 싫다거나 슬퍼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그것은 분명.....

 

동료이자, 친구이자, 이젠 라이벌이 된 하루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나도 그래."

 

부스럭. 나는 그 말을 뒤로 완전히 하루카에게서 등을 돌렸다. 두 사람이 덮기에는 조금 모자란 이불을, 하루카가 절반 넘게 점유하고 있는 게 조금은 얄미워져서, 내 쪽으로 쭉 잡아당겨 탈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푸후훗."

"뭐, 뭐야. 갑자기 웃고는."

 

뒷통수에 조금 날이 선 목소리가 꽂혔다. 나는, 한동안 멈추지 않았던 웃음을 겨우 가라앉히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웃음이 나와버린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게, 이상해서."

"이상하다니.....?"

"이렇게나 간단히 선전포고를 주고받을 줄은 몰랐거든. 설마 싸우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던, 싸우기 싫었던 사람하고."

".....싸우기 싫다라는 건, 같은 사무소의 동료라서?"

 

하루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을 입에 담았다.

 

"으으응, 아니. 그것보다도 좀 더 깊은- 근본적, 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

"근본적인 이유라.....그런데, 그런 게 있는 것치고는 너무나도 시원스럽게 지고싶지 않아- 라고 해버렸지 않았어?"

"먼저 그런 말을 꺼낸 건 하루카잖아."

 

이 쪽이 던진 말에, 하루카의 말소리가 끊어졌다.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할 필요도 없이, 분명 어딘가 찔린 듯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거나 하겠지. 나는 아주 조금 놀림을 섞은 말을 입에 담았다.

 

"좋겠네, 하루카는. 그런 이유, 없어보이니까."

".....글쎄. 과연, 어떨까나."

 

없으니까, 그렇게나 간단히 지고 싶지 않다고 한 거겠- 나는 뒤에 이어져야 했을 말을 다 내지 못했다. 그 대신, 도로 하루카를 향해 몸을 틀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하루카는 끝까지 나한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치하야 쨩이 있어서 꿈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 아이돌."

 

만약 치하야 쨩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어쩌면 이 길을 포기했을지도 몰라.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라는 막연한 동경만으로 시작했던 거였으니까. 그런데, 치하야 쨩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나서는....좀 더, 힘을 내고 싶어졌다고 해야할까. 속에 있는 말을 잔뜩 토해낸 하루카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아하하, 하고 웃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 꿈을 위해서는.....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끝을 장식하는 말에는, 괴로움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치하야 쨩."

".....응."

"나는, 치하야 쨩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 어떤 사람이길래, 싸우기 싫은 걸까?"

"하루카는 내게 있어.....새로운 꿈을 보여준 사람, 이야."

 

나는 마음 속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혀있다시피한 그 때를 돌이켜보았다. 하루카가 처음으로, 아이돌로서의 무대를 선보이던 그 때. 우리들은 지금도 그리 잘 알려졌다고 할 수는 없는 아이돌이지만, 그 때는 정말.....모든 게 서툴고, 어색하고, 잘 못하고 그랬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실력이나 능숙함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이돌로서도 충분히 노래를,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걸.....하루카를 통해 배웠으니까."

 

그것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것을 자각하면서- 쭉 품고 있었던 생각을 하루카에게 전했다.

 

"그, 그렇게 말해준다니, 정말 기쁜데....."

"말해주는 게 아니야. 정말로 그런 거야. 하루카, 나는....."

 

끝까지 자기 자신의 대단한 점을 알아주지 않는 하루카가 답답해져서, 저도 모르게 하루카에게 손이 갔다. 그러자 하루카는 조금 망설이면서도, 자기 어깨에 닿은 내 손을 감싸쥐고는.....

 

부스럭.

 

"우리들, 어떤 의미로는 정말.....비슷한 것 같아."

 

겨우, 이 쪽을 바라봐주었다. 서로 맞잡은 손을 통해, 서툴게나마 전해져오는 온기를 접하는 순간. 싸우는 게 싫어도, 지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있어 꿈이 되어, 꿈을 위해 너와 싸운다.

 

그렇지만 그건, 오직 꿈만을 위해서, 다른 것 전부를 모두 저버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야. 같은 꿈을 통해 만난, 너를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질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야.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루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렇네."

 

응, 이렇게나 비슷한 우리들이라면, 분명. 나는 확신을 가지고 답했다.

 

"신기하다니까. 우리, 그렇게 똑같이 살아오지는 않았을텐데. 학교도, 사는 곳도 다르고. 나이도, 내 쪽이 한 살 더 많은데 말이야."

 

그런데도, 이렇게나 같은 부분이 있다는 게. 하루카는 내 대답을 받아, 더욱 즐거운 듯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은 적인데도 말이지."

"그리고 치하야 쨩은 그 적을, 잘도 집까지 들여보내주었고."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말이야. 대단한 자신감이라니까? 기세를 탄 하루카가 우쭐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 되면 자기 처지를 깨닫게 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역시 그 때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좋았을지도."

"에, 잠깐!? 역시라니!? 치하야 쨩,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얏!?"

"그대로 컨디션 난조로 이어지게 해서, 부전승을 노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니까."

"뭐, 뭐라.....고....."

"농담이야."

"흑, 농담을 그렇게나 진지하게 말하지 말아줘....."

 

심술 섞인 농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기세를 팍 꺾어버린 모양이었다. 하루카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너무 심하게 해버렸나.....나는 반성하는 마음 반, 좀 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라는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반으로 하루카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하루카가 내게 하려던 짓은?"

"그건....이거닷!"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던 하루카가, 갑자기 이 쪽에게 몸을 날렸다. 불의의 습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던 나는, 그대로 하루카에게 양 볼을 단단히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훗훗후, 어떠냐- 이 하루카 님의 꼬집기 공격은."

"히, 히거해, 하흐카!"

 

윽, 이래서야 항의도 제대로 할 수 없다.....찌릿. 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적의를 눈에 담아, 득의만만한 얼굴의 하루카를 쏘아보았다.

 

"방심하고 있던 치하야 쨩이 나쁜 거라구?"

"나, 나져....."

"싫~어. 어디보자, 그렇지. 치하야 쨩이 항복하면 놔줄까나?"

 

하루카가 키득키득 웃었다. 큭, 지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걸, 실력 행사로 보여줄 수밖에. 나는 어둠을 틈타 몰래 한 손을 들어, 하루카의 팔뚝 근처에까지 두었다.

 

"항복하지 않으면 더 아프게 꼬집을 거야~?"

 

좋아,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네. 나는 검지와 엄지를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그대로 하루카의, 긴팔에 감춰진 여린 팔뚝살을 세게 꼬집었다.

 

"아얏!"

 

이 때다. 나는 급히 하루카의 두 손을 쳐내고는, 아직 둔한 아픔이 남아있는 두 볼을 매만졌다. 하루카는 연신 꼬집힌 데를 주물거리는가 싶더니, 이쪽으로 원망 가득한 눈을 향했다.

 

"치, 치하야 쨩...."

"미안. 항복하기는 싫었거든. 그리고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칫, 그랬던 겁니까."

"맥없이 항복해버리는 건, 하루카도 재미없겠지?"

"으-음, 그건 그런데....."

"분한 마음은 알겠지만, 여기까지만 해두는 건 어떨까."

"앗! 이기고 도망갈 생각인거야!?"

"둘 다 오디션장에 나올 수 없게 되는 대형 참사는, 나로서도 사무소의 다른 모두에 있어서도 극력 피하고 싶은 일이니까."

".....치하야 쨩,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진한다는 느낌이라니까. 아무리 하루카 씨라도 어울려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구요."

 

하루카는 몇 마디 투덜거리는가 싶더니, 바로 뱅글, 하고 이쪽에게서 등을 돌렸다. 몇 번이고 봤던 것이지만, 이번에는 어딘가 안심이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으으음.....이렇게 된 이상, 복수는 내일 결행하기로 할까요. 졸리기도 하고, 이제 슬슬 자두지 않으면 위험한 시간인 것 같으니까.....저기, 치하야 쨩은?"

"글쎄, 아직은."

"너무 늦게 자면 내일이 힘들어질지도 모른다구요?"

"응, 그렇지.....이 쪽도 어떻게든 자두지 않으면, 안되겠네."

 

나는 안심이 되는 뒷모습을 남겨두고, 바깥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두 눈을 감았다. 마치 가운데에 선 하나를 그어두기라도 한 것처럼, 정 반대로 돌아눕고 있는 두 사람.

 

"하루카."

"응, 치하야 쨩."

 

그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역시 똑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말을 입에 담았다.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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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꿈이 되어에서 영감을 얻어서 작성했습니다. 새로운 아이커뮤에서도 하루치하 왓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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