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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루] 빵집 아가씨의 하트 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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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1, 2017 22:46에 작성됨.

"으윽.."

 

아침.

오늘도 출근이다. 부숴질 것만 같은 등과 다리를 억지로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선, 지금이라도 쓰러질 것 만 같은 다리를 허리의 힘으로 겨우 움직여, 휘청거리면서 욕실을 향해 나아간다. 옷을 벗고 온수를 틀어 샤워기의 스위치를 올리자, 아직 데펴지지 않은 찬물이 온 몸을 강타한다. 무심코 움츠러들며 발을 뒤로 빼다, 미끄러져 뒤로 넘어질 뻔 한 걸 어찌어찌 겨우 균형을 잡았다. 항상 있는 일이다.

 

[오늘의 뉴스입니다. 검찰은 어제 류이케 이사장 부부를 체포하기로..]

 

찬 물이 정신에 걸친 잠을 찢어내고, 뒤이어 흐르는 따스한 물이 편안했을 꿈을 말끔히 씻어낸다. 적당히 따스한 기운이 몸에 올라오자, 난 샴푸를 온 몸에 칠했다. 바디워시 쪽이 피부라던지 건강이라던지에 더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둘을 따로 쓰는 번거로움을 아침부터 겪고 싶지는 않다. 샤워타올 따윈 항상 젖은 채로 썩어가다 못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그리고 샴푸를 써서 온 몸에 X같은 현실을 칠한 다음, 그걸 다시 온수로 씻어내었다.

 

[..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오늘도 세상 한번 평화롭구만."

 

높으신 분들이니, 정치니, 경제니, 사회니 하는 문제가 지금 당장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걸 하찮게 여기는 대가도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일 속에 파묻혀선 잔업이 없기를 비는 사회 초년생에겐 너무나도 먼 세상의 이야기다. 자기 눈 앞가림하기도 바쁜 사람이, 거시적인 세상에 눈을 돌릴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이 뉴스도, 곧 나올 연예계 소식을 위해 틀어두었을 뿐이다.

일단 그쪽 업계 종사자로서, 최신 뉴스는 언제나 체크해둬야 한다. 지식정보 사회에서 정보 격차란 꾸준한 노력 정도론 절대 메울 수 없는 계급의 한계선이다.

 

[다음 뉴스입니다. 어제 주간문춘이 발표한 인기 아이돌 미나세 이오리의 베게 영업 의혹 소식에 대해, 765프로덕션과 미나세 그룹이 공동으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역시인가.. 덤빌 자리를 보고 덤벼야지."

 

오늘도 세상은 평화롭다. 저 멀리서 군사 충돌이 일어나고 어린아이가 죽어가고, 요 근처에선 살인 사건, 저쪽에선 총리의 측근이 체포되고 있지만 참 평화로운 세상이다. 항상 그랬듯이 말이다. 20년 전, 컴퓨터가 직장에 보급되고 있던 시절부터 스마트폰이 삶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지금까지 말이다. 기술은 바뀌어도, 그걸 쓰는 사람이라는 건 바뀌지 않았다. 지금의 기술은 인간에겐 너무 이르다는 어느 학자인지 정치인인지의 주장은 의외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후우."

 

그저께 슈퍼에서 사온 페트병에 든 블랙커피를 마시고, 양복으로 갈아입는다.

아침이란 바쁘고 힘든 시간이다. 한 숨 돌리면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는 여유를 부리는 것은 사치를 넘어 죄악에 가까운 행이다. 이 시간대에 제복이 아닌 사복을 입는다는 것은 대학생에게나 허용된 한 순간의 일탈이다. 갑갑한 와이셔츠 위로 딱딱한 양복 바지가 올라와 둘을 불편한 벨트로 함께 묶어버린다. 허리와 배를 중심으로 느껴지는 압박감에 짜증 대신 적절한 만족감을 느끼는 시점에서,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회사의 노예가 되어버린 걸 지도 모른다.

넥타이는 가방 속에 고이 모셔, 일 시작 전까진 꺼내지 않는다. 소소한 저항이다.

 

그리고 구두를 대충 닦고 문을 나선다.

다녀오겠습니다, 같은 말은 필요없다. 어차피 이 집은 나 혼자 사니까. 고향까진 신칸센에 타서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 이런 쓸데없는 상념을 머리 속에 되뇌이는 사이, 난 어느새 셋집 문을 나섰다. 화장실 빼고 방이 하나 더 달린 이 집은 지방의 건물 치고는 조금 비싸긴 해도, 집세만큼의 역할은 해 주고 있다. 역까지 걸어서 10분 근처라는 건 괜찮은 조건이다.

 

아니, 정확히는 15분 근처인가. 하지만 이 5분의 시간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괜찮은 조건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주게 된다.

 

"어서오세.. 안녕하세요!!"

 

빵 냄새.

코에 빵 냄새가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난 이미 출근길 위에 있는 빵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몇 년 동안 반복한 익숙한 동작은 무의식 속에서 정확한 순서로 반복 동작 루틴을 다시 반복한다.

 

"오늘도 좋은 아침이에요!!"

 

삐죽 튀어나온 송곳니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정신을 차렸다. 빵가게 따님이 활기 넘치게 인사한 것이다. ‘좋은 아침’이라고 미소지어 대답했다. 여기까지가 무의식에 맡겨도 아무런 문제 없는 부분이다.

 

"좋은 아침, 미치루."

 

의식은,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오오하라 미치루에게서 풍기는 농후한 빵 냄새에 이끌려 다시 현세로 돌아온다. 빵 냄새 가득한 대화 속에서 졸음과 피로가 사라진다.

 

"오늘도 좋은 냄새네."

 

빵 냄새.

 

아침을 뒤흔드는 빵 냄새만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없다.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욕실로 기어가 물로 꿈을 씻어내고 샴푸와 바디워시 속에 현실을 섞어 온 몸에 바른다. 그 쓴 맛을 씻어내야만 비로소 이상과 현실의 비율이 적절하게 잡혀진 인간만이 어제와 같은 나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절망스런 사실 속에, 그래도 오늘을 살 수 있다고 믿게 만들어주는 빵 냄새가 있어야만 사람은 미쳐버려선 아침부터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빵의 힘,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거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창하면 어떠랴.

 

난 오늘 아침도 이 빵가게의 빵을 먹는다. 출근길 위에 마땅한 빵집이 없다는 이유로. 이유야 어찌되었든, 공복은 채워야 하는 법이다. 아침 식사의 의학적인 효율성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에헤헤.. 오늘은 저도 좀 도왔어요."

 

"도와? 옆에서 반죽 째로 뜯어먹은 게 아니라?"

 

놀란 미치루. 어떻게 눈치챘냐고 묻는 듯 하다. 미안하지만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빵을 먹은 미치루의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일 정도니까 말이다. 장래희망이 빵집 아가씨만 아니었다면, 무심코 빵을 사서 입에 넣어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후고옷!!"

 

웃음.

이 오오하라 빵집을 운영하는 그녀의 부모님 두 분이 웃는다.

 

"어디 보자.. 아,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일하는 거 있.. 아, 계절한정 신제품이에요? 뭐 들어있어요? 그리고 따님 좀 떼어주시고요. 손을 계속 물려서 아픈데요."

 

"후고후고후고후고..."

 

오오하라 빵집의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낸다. 옆에선 사모님이 날 반갑게 맞이하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 날 단골손님 겸 집 근처의 좋은 청년으로 봐 주는 걸까? 바쁜 아침에 미치루랑 잠시나마 놀아주고 있으니, 좋게 봐도 이상할 건 없다. 오히려 기쁜 일이지.

 

"네, 여기 여름 한정인 콘브레드 단호박 오이 샌드위치엔 단호박 샐러드와 오이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콘브레드는 스위트콘을 섞어서 맛있게 구웠고요!"

 

"설명 고마워, 미치루."

 

어느 새 내 손에서 떨어진 미치루가 말했다. 미치루가 웃었다.

왜인지 포만감이 느껴진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이곳을 부장한테 소개해 줄 생각은 없다.

 

"에헤헤..."

 

귀여운 녀석.

하지만 입가에 침이 흐르는 건 위험하지.

 

"침 닦아라."

 

"후고옷."

 

"후고."

 

기합소리냐 그건. 아니면 나처럼 입에 빵이라도 넣어둔 거냐.

가게 내부에서의 취식이 금지된 건 아니어서, 어느 새 나도 입에 빵을 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빵을 씹을 때 마다 터져나오는 거친 야성미가 돋보이는 식감과, 옥수수 알갱이에서 나오는 향미가 입 안에 감돈다. 고급스럽지는 못해도, 와일드하고 든든한 한끼 식사가 되어준다. 단호박이 지니고 있는 단맛만 사용한 단호박 샐러드가, 현대 문명인에겐 너무 거칠 수 있는 콘브레드에게 은은한 달콤함과 크리미함을 옥수수 알갱이 사이사이에 흘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너무 텁텁하거나 무거워질 수 있는 메뉴를 오이의 상쾌함이 전부 다 잡아준다.

 

"맛있네.."

 

"그렇죠? 먹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지죠?"

 

"그리 행복해 보이냐?"

 

"네!"

 

그렇게 말하곤, 미치루는 활짝 웃었다. 미치루야말로 행복해 보인다.

 

어느 새 다 먹고, 또 하나를 주문해버렸다. 하나는 전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면서 맛보도록 할까.

 

"어유, 맛있게 드시네요."

 

"맛있으니까 말이죠. 미치루는 맨날 이런 맛있는 걸 먹는 건가 싶으면 부러워질 정도라니까요. 하하하."

 

그렇게 말하곤, 미치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치루가 굳었다.

 

고개를 젖히자, 입을 꽉 다문 미치루가 보인다. 특유의 비죽 삐져나온 송곳니도 입 안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미치루!! 너 또!"

 

"또 상품을 집어먹은 거니?!"

 

1년하고도 6개월 전, 미치루는 빵집 아가씨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도 몰래 상품을 집어먹다 걸려서 혼났을 때였다.

손님에게 팔아야 할 빵을 자꾸 집어먹으면 빵집 아가씨가 될 수 없다고 말하자 울상이 되어선 내 손을 물려고 달려들었지. 애석하게도, 그 때에 비해서 큰 발전은 없는 것 같다.

 

"후고옷!!"

 

슬슬 늦겠다. 출발해야지.

그러면서도, 대체 뭐가 그리 미련이 남은 건지 빵집을 나선 후에도 자꾸 뒤를 돌아본다.

 

 

--

 

 

"예, 예. 가능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아, 당일 말입니다만... 아, 그쪽은 저희도 조금 어렵습니다. 저희 쪽도 소속 아이돌들 일정이 꽉 차있어서요. 예. 지금 연수중인 아이들도 없는 상황이라... 모델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 그럼 당일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휴우..."

 

딸깍. 전화 끊기는 소리.

 

"넵툰 쪽 전화였지? 어때?"

 

"어려울 것 같아요. 저쪽도 마땅한 아이돌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서... 트레이닝 중인 아이들이라도 상관없다고는 하는데."

 

"없지."

 

과장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쪽도 과장 따라 한숨을 쉬었다.

 

"그렇죠. 모델 쪽도 지금 다 다른 일이고.. 그렇다고 진짜 아무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경하는 일, 이었기에 이쪽 업계만큼은 고령화 현상의 여파를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과장이 말한 적이 있다. 애석하게도 그 예측은 틀렸다. 우리 회사는 어린 소녀들을 모델이나 아이돌 같은 걸로 팔아먹는 회사다. 어린 소녀의 절대적인 숫자가 줄어들면, 그 만큼 아이돌이나 모델로 기용할 만한 이쁜 아이들도 줄어들게 된다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같은 외모면 더 편하게 벌어먹을 수 있는 일들로 빠지기도 하고. AV라던가.

 

"한 명 잡아와."

 

"프로듀서들한테 시키세요. 전 영업이라고요. 그쪽 사람들이면 적당히 길 가다가 ‘팅’하고 왔다! 면서 아무나 잡아오겠죠."

 

이쪽은 일을 잡아오는 게 일이라, 일거리 부족으로 고민하진 않는다. 업무 과다로 고생했으면 고생했지. 인재 부족이라고 아우성치는 그 친구들에게, 내 일을 조금 나눠주고 난 빠른 퇴근을 하면 밸런스가 딱 맞지 않을까?

 

"그게 가능한 건 765의 괴물들 정도일 거다."

 

"아아, 아카바네 씨라던가 리츠코 씨라던가 타카기 사장이라던가... 유명하죠."

 

업계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는 놈은 961에서 파견한 간첩인 게 분명하다.

팅, 하고 왔다는 그 감각은 잘 모르겠지만. 애초에 그런 한 순간의 감각만으로 스카우트라던지 프로듀스를 한다던지 하는 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흉내낼 만한 재능이 아니다. 나 같은 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관찰하고 철저히 분석해서 파악한 후에야 스카우트니 뭐니 하는 걸 할 수 있겠지.

 

그래, 요 3년 동안 꾸준히 본 미치루라던지. 삐죽 튀어나온 송곳니와, 따스한 오븐 속에서 부풀어오른 빵처럼 피어난 미소. 음, 그 정도로 오랫동안 관찰해야 하지. 신중하게 말이야. 특히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그 미...

 

아니지, 그 빵순이는 아니야. 난 대체 무슨 괴상망측한 생각을.

 

"아맞다. 프로듀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 이번에 프로듀스과 쪽으로 부서이동 결정됐더라. 인사이동으로 그쪽 가는 거면... 순서상 다다음, 아니지 몇 년 뒤이긴 하나? 아무튼 그 때 인사고과 땐 승진하겠는데? 축하해. 아, 미리 말해두는데 아이돌이나 모델이랑 사귀면 모가지 날아가니까 조심해라. 스카우트해온 아이돌이랑 열애설 나도 버티는 건 765랑 315정도니까."

 

"엑."

 

"엑, 이라니. 딱히 타 지역 부임이라는 것도 아니잖아. 애초에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겐 타 지역 영업점 같은 건 없지만. 그리고, 너도 슬슬 여러 가지 배워서 관리직 준비해야지. 아니, 그 전에 너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았나?"

 

...타이밍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아무튼 맨 처음에 얼빠진 소리를 내어버렸다.

 

"아, 예. 그래도 진짜로 프로듀스과일 거라곤 생각 못해서... 재무과나 총무과 근처로 갈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총무과랑 프로듀스과로 나뉘어졌다곤 하는데, 너 체력 좋잖아. 좀 더 힘내도 좋을 거라고 내가 프로듀스과를 추천했지."

 

"하하하하. 과장님, 체력이 걱정이면 저랑 같이 운동이라도 할까요?"

 

"늦게 알려줘서 미안!! 하지만 나도 바빴다고!! 미츠코가 요즘 삐져서 컵라면밖에 안 해준단 말이야!!"

 

니네 가정사 따위 알까보냐. 삐졌다는 것도 밤자리 문제겠지. 운동하라고 조루자식아. 것보다, 프로듀스과?

...사실 예상 못한 건 아니었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째서 당황해버린걸까.

 

"이동까진 1주일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준비할 동안 네가 맡았던 일은 미네기시한테 인수인계해주고. 2주일 정도는 좀 바쁠 거다."

 

내 일은 미네기시가 맡게 되었나. 뭐, 그놈이라면 일을 망친다거나 할 녀석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되겠지. 이쪽은 실수 없이 인수인계만 잘 해주면 되겠고. 나 있을 때 마무리해야만 하는 일은 없고.

 

"인수인계 잘 해주라고, 센빠이."

 

"키만 190을 넘는 거인한테요? 여자아이를 데려오란 말입니다. 프로듀서에게 여자아이를. 이번에 인사과 사람이 재미있는 이력서를 받았다고 했더만. 미녀 비서 출신인가 뭔가 하는 사람."

 

"음, 고놈은 내부자료 유출로 징계다. 고발 감사."

 

도-이따시마시떼.

자, 그럼 일이나 하자.

 

"센빠이!"

 

마침 저기서 달려오는 키190에 몸무게 67의 스켈레톤도 오고 있으니.

 

 

--

 

 

"후우, 오늘은 잔업 없이 어찌어찌 넘어갔나."

 

영업이란 일은 특성상 퇴근 시간이 조금 들쭉날쭉한 면이 있다.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고, 회사도 잔업한 만큼 추가 급료는 제대로 지불해준다. 물론 성과에 따른 보너스도 제때제때 나오고.

그래도 잔업은 싫지만.

 

"후우..."

 

"어서오세요!!"

 

퇴근길.

열차에서 내려 5분 정도를 걸어가면 빵집이 나온다. 출근길에서도 5분이니, 어느 쪽에서 가도 5분이다.

 

"그래. 아까 먹은 빵은 도로 뱉어냈어?"

 

"아저씨 손을 다 못 먹었어요! 후고후고후고..."

 

아저씨라니, 너무하네.

이런 모습만 보면 이성보다 본능을 중시하는 짐승녀 같지만, 어른에겐 존댓말 꼬박꼬박 쓰고 예의도 바른 아이다. 흔한 유토리 세대의 무개념 젊은이와는 다르다. 물론 그 무개념 중엔 나도 포함되지만.

 

"아침에 산 건... 다 나가버렸네."

 

넉넉히 좀 만들어 주지. 그거 맛있는데.

 

"아, 대신 항상 찾던 초코쿠키 따로 챙겨뒀어요."

 

"오우, 고마워. 잘 참았네."

 

"에헤헤..."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미치루가 웃었다.

활짝 피어오른 빵 같은 행복한 미소. 그 사이에 걸려 반짝이는 송곳니가 귀엽다. 앞으로 신세지게 될 프로듀스과의 놈들에겐 이곳을 알려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왜지?

아니 뭐 아무튼. 그 뭐냐, 미치루는 아직 어린 학생이기도 하고, 사람보단 짐승에 가까운 타입이라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고, 맨날 만나는 이웃이랑 돈 관계로 엮이게 되면 여러가지로 뒷일이 귀찮아지고, 무엇보다 내가 좋게 보는 거지, 남들이 보면...

 

쓰다듬쓰다듬

 

"저, 저기..."

 

"...아아, 미안. 무심코."

 

또 손을 깨물렸다. 이번엔 좀 아프... 어라? 잠깐만 손에 뭐가 걸리는데.

아, 이 녀석 얼굴이 밝은 이유가...

 

"미치루, 너 혹시 또" "미치루우!!"

 

"후고옷?!"

 

방금 단말마는 ‘어째서 들킨거지?!’라는 의미였을 게 분명하다. 뭐, 자업자득이다만.

...흔적까지 먹어치운다는 발상이야 했겠지만, 수량을 맞춘다는 발상은 하지 못한 걸까. 빵집 아가씨가 될려면 회계나 부기에 관한 지식도 갖추는 쪽이 좋지 않을까? 표정을 감추는 건 애한테 너무 어려울지도 모르고.

 

"이전에도 말했지만, 상품을 그렇게 먹어치워서야 빵집 아가씨가 될 수 없다고."

 

"후고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미치루는 의기소침하다. 본인의 의지로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 이라는 건 남자라면 몇 번 겪어봤을 테니 그게 나중에 어떤 기분을 가져오는지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미치루,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말이다..."

 

니는 지금 일 하고 싶어서 하는 거냐? 머리 속 한구석에서 스스로를 비웃는다. 대학 졸업하고 니트가 되고 싶지만 살자니 돈은 벌어야 하고, 그래서 면접 보니까 면접 보는 곳 마다 떨어지고, 결국엔 마지막 추가 모집으로 들어간 곳이 저기잖아.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만,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해 줘야겠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미치루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스스로를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상식적인 선에서 미치루를 위해서 충고하는 거니까 꼰대 기질을 좀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요리사는 말이야, 자기가 만든 고급 요리를 먹을 수가 없어. 요리사의 요리란 말이야, 전부 다 자신 외의 누군가의 뱃속에 들어가기 위해 만드는 거야."

 

정말이야?

그야 꼰대 기질일 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그거 말고. 더 중요한 거 말이야.

너, 진짜로 미치루를 위해서 충고하는 거냐?

...무슨 소리야?

 

 

--

 

 

결국, 미치루는 내가 혼냈다는 걸로 해서 부모님의 심판은 면하게 되었다. 당분간 빵 금지령이니 하는 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오하라 빵집의 두 오너는 미치루의 기본권을 존중할 줄 아는 양식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음 날, 매장에 가니 미치루는 없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물어보니 당분간 매장에 세울 생각은 없다고 했다. 애초부터 슬슬 뺄 생각이었는데 마침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도 말했다. 역시 학생은 학업에 전념해야 한다고 했지. 하기사, 지금까지 미치루가 한 일은 UN아동노동금지협약인지 뭔지를 위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빵집 아가씨가 되고 싶다는 미치루의 마음은 알겠지만, 역시 학생이라면 학업을 중시하는 게 좋겠지. 부모님 입장에서도 그럴 거고. 그리고...

 

"빵집 아가씨라는 일 많이 벌까?"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점심시간.

바쁘게 일하다가 휴식을 즐기고 있는 꺾다리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그냥."

 

"아, 그러고보니까 오늘 빵 많이 사왔네요. 부서이동 하기 전에 나눠주는 거에요? 아니면 저한테 다 주는 거에요?"

 

"둘 다 아니거든?"

 

미네기시 이놈은 그렇게 먹어대는데도 살이 안 찐다. 성장기 때야 살로 갈 영양이 다 키로 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성장은 진작에 끝났어야 할 지금도 이놈은 살이 안 찌고 있다. 내 식사량의 2배는 넘게 먹으면서 말이다.

 

"선배가 그만큼 먹을 건 아니잖아요."

 

"글쎄, 왠지 모르게 배가 고프네. 아무튼 물어본 거에 대답이나 해."

 

빵을 계속 입에 집어넣는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먹은 빵으로는 부족해서 조금 더 사먹었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해서, 결국 몇 개를 점심밥 삼아 더 사버렸다. 덕분에 열차에 늦을 뻔 하고, 평소보다 배 이상으로 늘어난 짐에 짜증나고 지치는 아침부터 장난 아니게 불편했다. 나도, 주위의 시선도. 아침의 만원전철에 빵을 잔뜩 싸들고 가는 직장인이라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이상한 놈 취급이 당연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허기가 가시질 않는다. 냠냠. 어째서지.

 

"음... 많이 버는 일은 아니겟죠. 솔직히 우리가 쓰는 알바랑 큰 차이가 있나 싶어요."

 

"그렇지?"

 

"네. 우리도 행사 할 때 알바 모집해다 쓰잖아요. 그거랑 무슨 차이가..."

 

우적우적. 빵을 씹는다.

후고후고.

아직 배고프다. 위장은 이미 한계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부족하다. 입에서 위장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가, 하나도 채워지지 않는 듯 한 느낌이다. 대체, 왜 이리 배가 고픈 걸까. 아니, 지금이라도 토하고 싶을 정도이긴 한데 배가 고프다. 빵을 좋아하긴 했지만, 마치 걸신 들린 미치루처럼 마구잡이로 씹어넘기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데.

 

"너무 많이 먹지 마요. 안 그래도 요즘 뱃살 나온다면서 고민하고 있었잖아요. 밀가루 음식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요."

 

"시끄러. 것보다, 너도 그딴 개소리를 주워섬기는 거냐?"

 

"아, 그게... 그..."

 

평소와 같은 농담. 하지만, 빈 속을 긁어서 뒤집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무심코 뱉어낸 가시 돋힌 목소리에 후배가 조금 당황한 듯 한 눈빛을 보였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후배가 잘못 들었다고 안심하도록 그에게 스켈레톤 자식이라는 농담을 붙여주었다. 분위기는 다시 괜찮아졌지만, 속은 굶주림 속에서 뒤집어진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미치루와는 며칠 간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다. 어제와 오늘은 빵집에 가지 않았다. 대신 밤 늦게까지 예정된 잔업을 소화했다. 시간은 이미 늦은 저녁.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오늘 밤도 도시의 불빛에 가려 별은 잘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구름마저 뜬 건지 달빛이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

 

"괜찮아? 요즘 어디 안 좋은 것 같은데."

 

금요일 마지막 날에 재수없게 잔업에 걸려버린 과장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음, 선배. 거울부터 보고 오세요. 이 일만 끝나면 주말을 즐길 수 있는 직장인이 그런 얼굴을 해도 되나요?"

 

미네기시가 걱정되는 듯 말했다. 딱히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아닌 인사치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미네기시가 안 좋아 보여도, 나 역시 진심으로 걱정하진 않을 테니까. 짜증난다.

뱃속이 비어도, 가득 차서 넘쳐흘러도 바닥 끝까지 비어버려선 계속 배고프다고 칭얼댄다. 하지만 무심코 큰 소리를 내버릴 것만 같다. 조금만 참자. 미네기시 말대로, 오늘은 금요일이다. 야근에 고생한 이번 주는 이걸로 끝이다. 다음 주까지만 좀 고생하면, 당분간은 야근 없이 연수만 받으면 된다.

 

"...끝!"

 

"수고하셨슴다!! 햣하!!"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좀 속이 안 좋아서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그려, 수고해라. 주말동안 몸조리 잘 하고."

 

문을 나선다. 닫힌 문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엔 내 이름이 섞여있을까. 내 욕을 듣기 위해 필사적으로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발과 다리는 정직하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2층에 있는 사무실이라 엘리베이터는 운영하지 않는다. 내가 들으려 했던 말들은 대리석 계단을 두드리는 발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스스로를 폭발시키지 못한 감정이, 괜한 계단에 화풀이를 한다. 쿵쾅-쿵쾅. 누군가 굴러 떨어진 게 아닌가 해서 나와본 경비가, 내 안색을 살피곤 몸조리 잘하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했다. 저녁 간식으로 빵을 들고 있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달리다시피 하여 자리를 벗어난다.

 

"배고파..."

 

어찌되었든, 배가 고프다. 갑작스럽지도 않게 이번 주는 계속 배를 곪고 있었다. 굶주려 있는 것이다. 배가 고파졌다. 시간과 공간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 같은 건 내게 없다.

이 공복이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 채워야 할까. 주말 동안 이렇게 주린 배를 쥐고 있으면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게 분명하다.

 

"...."

 

그래, 빵을 먹자. 좋아하는 빵을 먹자.

이 시간이라면, 아직 오오하라 빵집이 열었을지도 몰라. 문 닫기 직전이겠지만. 지금부터 가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어. 팔고 남은 걸 좀 받아가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조금은.

하지만 어디서 채워야 할까

 

 

--

 

 

그리고, 평소보다 멀게만 느껴지던 3분의 길을 걸어 전철역에 도착했다.

 

[JR후쿠이 역에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열차가 지연될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

 

 

"캄사하무니다~"

 

편의점을 나선다. 일본어가 조금 서투른 외국인 직원의 인사를 받았다. 유학생일까? 유학생이 아니라면 후쿠이 현까지 올 일은 없으려나. 일하러 온 거면 대도시 쪽에 가지.

 

비뚤어진 생각과 함께 손을 흔든다. 손에 든 봉투에는 할인 마크가 붙어있는 식빵 한 덩어리와 맥주 한 캔. 이런 걸로, 배가 찰 리가 없다. 하지만 들고 나왔다. 보란듯이 흔들며 지나간다. 행인들 몇 명이 술에 취한 사람인가 싶어서 날 피한다. 안 취했다고. 그냥 배고플 뿐이라고. 집에 가서 간단히 맥주 한 캔만 딸 거라고. 하지만 취기가 오른다고 해서 짜증이, 공복이 가라앉을까? 빈속에 술을 부어넣었다간 다음 주 얼굴을 비춰야 할 새 근무처에 나가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내 알 바 아냐. 자기 일을 그렇게 생각하며, 내팽개치고 나온다.

빵집이 보였다. 보란듯이 봉투를 흔들었다.

 

"..."

 

"...아. 미치루."

 

빵집 앞에, 미치루가 있었다.

 

 

--

 

 

"됐어요. 지금은 생각 없어요."

 

미치루가 빵을 거절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만들어준 빵만 입에 댄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미치루는 내가 내민 빵을 거절했다.

 

"미치루."

 

거절했다.

 

"거절할 거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침을 흘리는 건 자제해야겠지?"

 

"너무해!! 이럴 땐 아무 말 안 하고 넘어가는 게 보통이잖아요!! 아저씬 사람 마음도 모르고!!"

 

"나 아직 20대야... 결혼 안 했어... 사귀는 사람도 없어... 아저씨 아니야..."

 

맥주를 땄다. 집 근처의 인적 없는 공원에서. 곁에 미치루를 끼고.

벤치 위에서 여중생을 데리고 맥주를 마시는 양복 차림의 회사원이 있었다. 근처에 사람이 있었다면, 위험한 범죄자로 오해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다행인 것은, 이 시간엔 여기 올 사람은 없다는 것 정도다.

 

"에? 사귀는 사람 없어요?"

 

"꿀꺽꿀꺽... 푸하! 그래! 없다!! 모쏠이다!! 세상아 들어라!! 모쏠이 여기 있었다!!"

 

한밤중 고성방가로 경찰서에 불려가게 될 지도 모른다만 알 게 뭐야. 회사에서 콤플라이언스니 뭐니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그건 안 지키니까 그렇게 강조하는 거라고. 따라서 나도 지키지 않겠어! 이건 술김에 고성방가를 저지른 거니까 심신미약도 인정받을 거야!

 

"아저... 아니, 오빠 좋은 사람인데요."

 

"으응? 좋은 사람이라니?"

 

스스로가 스스로를 평가하건데, 난 나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인가? 아니다. 그저 나쁜 사람이 아닐 뿐이다. 사람이란 건 착하다나 나쁘다 같은 간단한 기준으로 쉽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양비론이 상당량 섞인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사실인 것이다.

이번 주 내내 몸이 안 좋았던, 빵 좋아하는 직장인일 뿐이다.

 

"빵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어요. 전부 착한 사람이에요."

 

"..."

 

미치루가 말했다.

 

"빵집 아가씨가 되고 싶은데, 빵을 눈 앞에 두면 멈출 수가 없어요."

 

두서도, 복선도 없이 시작한 한탄이었다. 별빛도 달빛도 없이 가로등만 어슴프레 빛나는 밤, 미치루는 밤의 공원에서 일주일 동안 가게에 나가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저도 팔아야 할 빵을 먹으면 안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참으려고 했는데, 무심코 손이 가버리네요. 차라리 제빵사를 해 볼까 싶었지만, 그랬다간 매장에 나가기도 전에 전부 제 입으로 들어가버릴 거에요. 이전번에도, 콘브레드 샌드위치 만들다가 제가 많이 집어먹어 버렸어요. 처음엔 넉넉히 만들었는데."

 

"그건 심각하네. 얼마나 먹은 거야?"

 

"음... 매상에 좀 심각한 영향을 끼칠 정도요."

 

오오하라 부부의 결단에 찬사를 보내야 하나.

 

"그래서 말이에요."

 

"응."

 

"빵집 아가씨는, 그냥 관둘까 싶어요. 역시 먹는 쪽이 나아요."

 

"...."

 

"솔직히 말하면, 아침에 빈둥거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 있죠? 아침에 빈둥거리는 건 정말 최고에요!! 오빠가 왜 매일 아침마다 썩은 반죽 같은 얼굴을 하고 들어왔는지 이해가 될 정도에요. 아침에 빈둥거리는 맛을 알아버리면 말이죠~"

 

차라리 편하다, 라고 미치루가 말했다. 내 얼굴에 대한 중상모략을 곁들여선 웃으며 말했다.

안돼, 배부르질 않아.

 

"게다가 말이죠, 곰곰히 생각해 보니 빵집 아가씨는 근처에서 알바를 구해와도 될 것 같아요. 오히려 전 대형 식품 메이커의 직원으로서 여러 하청업체들과 매점들에게 먹을 걸 진상받는 위치가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송곳니가 빛나지 않는다. 내가 먹고 싶은 건, 아니, 보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아니면, 빵 전문 요리 평론가나 연구가 어떨까요? 그거라면 먹는 게 일일 테니까! 아, 그러고보니 이전에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말이죠, 고대 이집트에서 쓰였던 생효모를 가지고 그 때의 빵을 재현해서 만들어낸 학자가 나오더라고요. 밀가루 품종에 굽는 화덕까지 다 맞춰서요. 저도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먹는 거니까!"

 

요 3년간. 아침마다 미치루와 만났다.

다른 학생들은 아직 침대 속에서 비비적거리거나 부모님에게 응석부리고 있을 시간, 그녀는 매일 빵집에 나와서 좋아하는 빵을 팔며, 부모님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 시대에선 찾아볼 수 없는 기특한 아이였다. 난 미치루 나이 때, 부모님에게 새 게임을 사달라고 조르기나 했었는데.

그렇게, 아침부터 열심히 살았는데 말이야.

 

"...먹을래?"

 

"그렇지! 하는 김에 우리 집 말고 다른 곳, 다른 나라의 빵도 섭렵... 에?"

 

"먹을래?"

 

"저기, 아까 제 이야기 들었어요? 아, 혹시 술에 약해요? 그러고보니까 맥주로 술빵을 만들 수 있는데, 남은 거 있으면 주세요."

 

"좋아하잖아. 빵."

 

미치루가 묵묵히 식빵 덩어리를 받아들었다. 썰리지도 않은 식빵 덩어리가, 미치루의 입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맛있나 싶어 한 덩어리를 떼어 먹어보았다. 오오하라 빵집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없었고, 편의점의 상품들 사이에서도 팔리지 못해 할인 스티커를 부여받은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맛없었다.

 

"맛없어요... 이런 거, 제대로 만들지도 못한 식빵 덩어리 같은 거..."

 

"맥주는 못 준다. 이거라도 있어야 좀 넘어갈 것 같네."

 

"너무하네요... 이렇게 맛없는, 맛없는 걸... 하지만... 일주일만이어서..."

 

오오하라 미치루는 빵을 좋아한다. 그녀의 인생 자체를, 빵을 먹기 위해 소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빵집 딸로 태어난 환경 탓에 빵을 좋아하게 된 건지, 빵을 좋아하는 미치루가 빵집에 태어나게 된 건지 철학적으로 고민해도 될 정도다.

그런 그녀가, 일주일간 빵을 먹지 않았다.

 

"부모님이 안 주진 않았을 텐데."

 

"제가 안 먹었어요. 그냥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사 먹었어요."

 

1주일간 삼각김밥인가. 젊은 직장인인 나도 버티기 힘든 식단인데, 한창 성장할 시기의 여자아이가 버틸만한 식단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빵집 일을 하느라 ‘힘들다’고 하는 개념과 상황에 내성을 갖춰버린 성실한 아가씨는 1주일간의 고행을 버텨낸 것이다. 빵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던 이 오오하라 미치루가.

 

"흑... 으흑..."

 

"미치루..."

 

"으아아아아앙!!!!"

 

미치루가 내게 달려들었다. 미치루의 작은 얼굴이 내 품 안에 박혔다.

상처입은 짐승처럼, 혹은 귀여운 여자아이처럼 미치루는 슬프게 울었다. 그러면서도 빵은 씹어삼키고 있었다. 빵 부스러기가 양복 곳곳에 달라붙었다. 이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미치루."

 

"훌쩍... 우에엥... 네에에..."

 

"저기서 빵 사줄께. 먹고 싶은 걸로."

 

마침 저쪽에 편의점도 있다. 먹을만한 빵 정도는 있겠지.

 

"저기서 지금 파는 빵 다요."

 

...아직 12시 전이다. 새 상품들은 안 들어왔겠지. 응. 그럴 거야. 아직 내 지갑은 버틸 수 있어. 그리고...

 

"그래그래. 알았어."

 

"정말요?!"

 

"응.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뭣한데..."

 

미치루가 날 진지하게 바라보며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정신은 편의점의 빵을 싹쓸이할 생각으로 가득하다. 집중력과 신중함이 결여된 상황이다. 그러니까

 

"미치루, 아이돌 한 번 해볼래?"

 

계약을 맺을 땐 신중해야 하는 법이라고 가르쳐둬야겠다. 프로듀스과의 놈들에게 넘길까 보냐.

 

 

 

 

 

 

 

 

 

 

 

 

 

--

 

 

"아, 예. 미네기시입니다. 예. 그 일 말인데... 아, 담당자가 바뀌었습니다. 예. 전임자는 프로듀스 부서로 옮겼습니다. 바꿔드릴까요? 예. 잠시" "넵툰 쪽이지? 잠깐 전화 바꿔줘. 아, 예. 예.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이거 매번 신세를 져서.. 예. 아아, 그거 말이죠?

 

괜찮은 아이를 한 명 발굴했습니다. 빵만 제 때 주면, 최고의 미소를 보여줄 거에요. 빵이 무슨 뜻이냐고요? 하하, 직접 보시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목소리가 무섭다고요? 아뇨?"

 

"오빠, 가 아니라 프로듀서. 뭔 그리 험악한 느낌으로 전화를 해요?"

 

"미치루, 이해하렴. 네 앞에선 허세라도 부리고 싶은 걸 거야."

 

"왜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날 밤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 날 끌어들인 거겠지.

좋은 사람들은 서툴다고 하니, 빵 좋아하는 오빠는 서툰 면이 있는 거다. 이해한다.

빵집 아가씨에서 아이돌로 체인지라니, 서툰 것에도 정도가 있다곤 생각하지만. 하지만 불평도 불만도 없다.

 

...빵을 먹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빵집 아가씨가 되고 싶던 거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이돌도 별로 다르진 않을 것 같다.

 

그럼, 언제쯤 눈치챌까? 언제쯤 눈치채줄까?

벌써 구워지기 시작한 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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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가 아침에 먹은 게 콘브레드 샌드위치인 이유요?

맨 처음에는 프로듀서가 빵을 만들고 미치루를 초대하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직접 만들고 사진을 찍어 글에 첨부할 생각이었습니다. 콘브레드는... 음 적당히 찾다 보니까 그게 적절할 것 같아서요.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전 제 생각보다 빨리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제 생각보다 훨씬 먼 곳을 다니며 출퇴근 왕복 3시간이라는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나무삼! 오오 붓다여 그대는 정녕 열반에 드셧나이까!!

 

그리고 이 글의 도입부를 매일 출근해야만 하는 무간지옥에 빠진, 혹은 빠질 분들에게 바칩니다. 그래도 2일 일하면 다시 휴일이다....

아무튼 번듯한 직장 다니고 있는 놈이 여중생에게 심쿵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짓는 게 좋겠죠. 이 이상 가면 저 새X는 경찰이 조지기 전에 내가 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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