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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생일 SS) 그녀의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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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29, 2013 04:38에 작성됨.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까하고 그것을 고민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입술이 메말라 입을 떼어내기가 힘들어진다. 그녀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퍽이나 힘들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정말로 오래 된 소중한 친구, 혹은 어느 사이엔가 좋아하게 된 소중한 연인이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내가 이리 묻는 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그녀)와는 어떻게 처음 만났습니까?”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대답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대답하는 사람은 그 시작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랬을 것이고, 대답하지 못한 사람은 반대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 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되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그것은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소중한 만남 중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있는 법이다.
아마 나와 그녀의 만남도 그런 후자에 속할 것이다. 어디서 만났는지는 기억이 난다. 그것은 누구나 올 수 이는 평범한 강가의 공원. 하지만 날짜는 기억이 안 난다. 계절도, 시간도 그 무엇도 우리의 시작에 대한 정확한 힌트를 나는 물어보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제대로 전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른 아침인 출근과 통학 전에 잠시 시간을 내 조깅을 하던 새벽이었을 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가족들과 식사를 하기 전에 따스한 저녁노을과 시원한 강가의 바람을 마지하며 달리던 저녁 시간일 수도 있다.
수줍은 푸른 초입의 새싹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던 따듯한 봄일지도 모른다. 
더운 여름 매미나 잠자리들이 허물을 벗고 나무등과 풀잎 끝에 사뿐히 앉았던 밝은 여름일지도 모른다.
꽃과 풀 나무들이 더위에 고생했던 몸을 서서히 풀어주며 그간의 더위에 물들었던 푸른색들을 진하고 연하게 만들며 짐을 내려놓은 가을일 수도 있다.
이것도 아니면 한 해의 시간들을 추억하며 그간의 땀들을 하얗게 얼려 그 동안의 고생과 추억을 사뿐히 내려놓던 겨울일지도 모른다.
어떤 계절이든, 어떤 시간이든 나는 정확히 이 시간이라고 당신들에게 말해줄 수 없다. 단지 깨닫고 보니 그녀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강이나마 기억하기로 그녀는 강가의 공원길을 가볍게 달리다 보면 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같이 달리고 있었다.
상쾌했다.
당시의 내가 느꼈던 기분을 가장 간단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러했다. 무엇이 상쾌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강가의 공기가 상쾌했을 수도 있고, 달리면서 뻥 뚫렸을지 모를 가슴 속 응어리가 상쾌했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그녀의 모습과 분위기, 행동이 그러했을 지도 모른다.
당신의 그녀를 말하자면 간단히 말해 운동부가 어울리는 여학생이었다. 나이가 적다면 중학교 상급생, 반대로 많다면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표현이 애매한 것은 당시 나의 나이는 20대 후반이었는데, 그 때부터 청소년기 소녀들의 나이를 겉모습으로는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소녀가 나와 같은 코스를, 그것도 제법 조깅을 오래한 성인 남성과 같은 속도와 거리로 달리는 것은 드물었기에 난 그녀가 틀림없이 운동을 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검은 머리는 살짝 뻗쳐 들린 뒷머리로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결이 좋고 윤기가 나 땀을 흘려도 그것이 굉장히 보기 좋고 시원한 인상을 주었다. 외모는 언뜻 보면 당시의 꾸미지 않는 소녀들이 가끔씩 본의 아니게 상대를 속이듯 멋지거나 예쁘장한 외모의 남자로 오인 받을 수 있는 중성적인 면이 있었다. 거기다 불행히도 그녀의 가슴은 여성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감이 있고, 엉덩이는 헐렁한 체육복 바지를 입은 바람에 둥그런 여성적인 모습을 모두 가려주고 있었다. 즉 단순히 첫 만남만으로는 그녀를 간단히 소녀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난 따로 묻거나 관찰하지 않고도 그녀가 소녀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귀여운 여자아이라고 말이다. 이것에 대한 이유를 묻는 결례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이유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추상적이고, 희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묻게 된 다면 위에처럼 긴 분량의 글자들을 소비하면서 확실한 정보를 주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을 낭비하는 일을 범하고 말 것이다.
어쨌든 늘 그렇게 같이 달리던 소녀였지만 난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공원에는 그녀와 나 말고도 바람을 쐬러 오는 이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우리처럼 가벼운 운동과 조깅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와 나만이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며 서로 이름을 묻거나 나이, 취미 등을 이야기할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의 운명적인 공간과 만남을 같이하는 일은 없이 단순히 조깅만을 했을 뿐이다. 그래도 난 묘하게 그녀를 의식했다. 그녀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었겠지만. 
조깅 시간은 거의 한 시간 정도로 기억한다. 그러다보면 계절에 상관없이 몸은 늘 땀에 젖어 있었고, 그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번 상상해봐라. 아직 앳된 소녀가 열심히 운동하며 땀을 흘리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 모습을 말이다.
탄력이 강한 앳된 피부는 땀으로 눈이 보시게 윤을 내며 그런 와중에 짓는 미소는 아침의 일출, 혹은 저녁의 노을에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빛났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만약 당신들이 질문한다면 내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바로 내가 그녀에게 빠져든 이유.
이것을 겪지 못한 당신들에게 부족한 문장력과 어휘력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단순하게나마 말해주겠다.
그녀는 굉장히 귀엽고 아름다운 사랑스런 여자아이였다. 그런 소녀와 강가의 공원이라도 같은 공간을 달리는 남자로서 빠져들지 않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고된 일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러 그녀를 무시한다는 선택지를 고르려는 이가 있다면 난 그에게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리 괴로워지려 하냐고 물어볼 것이다. 
몸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것이 운동이다. 그런 운동을 하면서 그런 괴로움을 굳이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내 말이 굉장한 과장처럼 느껴지겠지만 당시의 당신들 중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강하게 나의 의견에 대해 동조를 해주며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비난 받을지 모를 나를 변호해주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매력적인 소녀에게 나는 빠졌고,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사소하고 평범한 일이었다.
그 때의 모습은 확실히 기억한다. 
강의 물결은 잔잔히 흐르면서 노을빛 사이에 섞인 햇살이 떨어져 섞이며 사방에 펼쳐진 은처럼 노을빛으로 빛났고, 멀리 육교에서는 퇴근을 서두르는 차들이 서로의 등살이 떠밀려 오히려 천천히 선행을 하고 있었다. 옆에 공터에서는 배드민턴을, 그 위에 제방에서는 장 보고 돌아가는 어머니들과 유모차에 탄 어린 아이들. 가방을 멘 초등학생들이 무언가 신나는 일이 있었는지 달리고 있었고 상가건물 앞에서는 몰려오는 손님들을 마지하기 위해 유리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렇게 묘사하고 보니 앞서의 이야기를 가져오자면 어쩌면 그녀와 내가 처음 만났던 시간은 주홍빛 따스한 노을이 어울리는 저녁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평범한 일상의 모습 속에서 잔잔한 강가의 물결처럼 풀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곳에 그녀는 앉아 수통을 거꾸로 들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보아하니 깜박하고 수통에 물이나 스포츠드링크를 넣지 않고 나온 것 같았다. 차림을 보면 지갑도 가져오지 않은 것 같은 그녀로서는 곤란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갑이나 물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가자니 달려온 시간이 있어 돌아가면 저녁 시간이 되어 다시 나오지 못하고 운동을 중간만 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을 아는 것인지 그녀는 한숨을 쉬며 수분보충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려고 했다. 상쾌한 바람이 그녀와 나의 땀을 식혀주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 등을 떠미는 듯 했다. 달리려는 그녀에게 다가가 난 아무렇지 않게 내가 들고 있던 수통을 건넸다.

“수분보충이 부족하면 내 것을 사용하면 어때? 늘 넉넉하게 챙겨 갖고 나와서 여유가 있거든.”

실제로 내가 내밀은 수통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소녀취향의 분홍색 수통보다 크기가 훨씬 커 많은 양을 담을 수 있었다. 갑작스레 다가온 호의에 그녀는 당황한 듯 나를 빤히 보며 당황해 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 큰 성인 남성이 갑자기 호의를 보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도 혼자 있는 소녀로서는 여러 가지로 의심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을 이해하기에 그녀가 거절할 경우 한 번 더 설득할 말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쉽게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마침 곤란했는데!”

남자처럼 시원하게 받아들이는 그 순수한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호의를 베푼 것은 나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준 것만으로 나는 큰 기쁨을 느끼며 속으로 그녀에게 역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여성치고는 강렬하며 남성처럼 굵은 듯한 기분이 들지만 씩씩한 분위기가 강해 그녀에게 충분히 어울린다는 것이 당시 처음 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내 감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수통 뚜껑에 내 수통의 음료를 따라 두 잔을 마시고서 기분 좋은 미소로 나에게 돌려주며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녀가 돌려주는 수통을 받으면서 난 여자아이가 마시기에는 너무 담백한 음료가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며 좀 더 단 맛이 있는 음료를 준비할 걸 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곧 그 생각은 나와 그녀가 하는 일이 조깅이라는 것을 기억해내며 부정했지만 말이다.
이 단순한 호의로 그 날 남은 길이의 조깅코스는 그녀와 나란히 달리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키쿠치 마코토. 그 때 그녀에게서 들은 이름이었다. 당시 나이는 16살로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육상부를 하고 있냐고 묻자 그녀는 당황하며 웃으며 부정했다.

“그런 질문을 자주 받지만, 전 운동부에 속해있지 않아요. 다른 일로 바쁘거든요.”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씩씩하고 건강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수줍게 웃더니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살짝 작아진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아이돌을 준비하고 있어요. 하하, 어울리지 않는 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래서 아이돌을 노리고 있다고요. 칭찬을 들어도 잘생기거나 멋지단 말을 많이 들으면서 같은 여학생들에게도 남학생 취급을 받고 있거든요. 하다못해 발레타인 때는 우정이 아닌 진심으로 초콜렛을 주면서 러브레터까지 주는 여자애들도 있었다니깐요. 너무 하지 않아요?”

그녀는 불만을 토로하며 동의를 구하듯 나에게 말하더니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자신이 아이돌이 되려 하는 이유를 말했다.

“그래서 좀 더 귀여운 여자아이로 취급 받기 위해서 아이돌을 지망하고 있어요. 실제로 아직 연습생이지만 765라는 멋진 사무소에 합격을 했다고요.”

그녀는 자랑스럽게 그리 자랑을 하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건 제가 그래도 좀 여성적으로 보인다는 거겠죠? 아저씨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까 호의도 제가 남학생인 줄 알고 그렇게 쉽게 건네신 거죠?”

그녀는 놀리 듯 나에게 그리 물으며 익숙한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을 나는 말로서 부정하며 제지했다. 여학생임을 알고 있었고, 그것도 귀여운 여자아이라 나도 모르게 돕고 싶었다고 말이다. 

“귀여운 여자아이라고요……?”

그녀는 내 말에 놀란 듯 하면서 생전 처음 듣는 단어를 듣고 그 뜻을 생각해보듯 달리면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 입 꼬리는 서서히 말려 올려가며 그녀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나에게 확실히 보여주었다.
주먹을 꽉 쥐며 아자하고 귀엽게 소리까지 낸 그녀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런 말은 부모님 이후로 처음 들어요! 정말, 정말 제가 귀여워요? 여자아이 같아요?” 

난 그런 그녀의 질문에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처음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확실히 귀여운 소녀다. 중성적인 면이 느껴지지만 잠시만 그녀를 본다면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반응을 보니 보통은 남자로 취급된 듯 했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로 취급 받는 그녀가 아니라 이 귀여운 소녀를 남자로 취급해 그녀의 사랑스러운 여성적인 모습들을 모르는 그 사람들이 말이다.
내가 재차 그녀가 굉장히 귀여운 소녀라는 것을 말해주며 평소에도 그리 느끼고 있었다고 말하자 그녀는 굉장히 기뻐했다.

“야리! 정말 고맙습니다!”

그것이 감사인사까지 받을 감상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확실히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에 난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며 그녀와 달리게 되었다. 사실 이 때 내가 느꼈던 행복감은 상당한 편이었지만 설명할 재주가 부족해 그냥 여기까지만 설명한다. 단지 그녀와 같이 달리는 그 순간이 굉장히 행복했을 거라는 거만 막연하게나마 상상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이 날을 기점으로 그녀와는 자주 같이 조깅을 하게 되어 좀 더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키쿠치 마코토라는 아이돌은 나라는 팬 1호를 갖게 되었다.
그녀에게 언제 데뷔를 하냐고 묻자 그녀는 1년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수시로 텔레비전에 나오고, 수시로 그 모습들이 바뀌는 아이돌의 겉모습과는 다르게 아이돌을 준비하는 기간은 굉장히 길며 힘들다고 한다. 거기다 그렇게 고생해 겨우 데뷔하게 된다 해도 이름을 알리지 못해 곧장 사라져 기억에서 잊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것은 사회초년생도 아닌 청소년기의 여린 소녀들이 겪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에게는 이런 내 생각을 전하면서 그래도 계속 도전할거냐고 묻자 그녀는 고난 따위는 묻어버리는 듯 한 밝은 웃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인기아이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니깐요. 그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아저씨처럼 귀여운 여자아이로 봐주었으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요.”

그 말에 난 그녀가 남자 같다는 평가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세삼 느낄 수 있었다. 본인은 원치 않게 남자 같은 대우를 맞고, 동급생에게 러브레터를 받기까지 한다. 러브레터를 준 여학생들에게는 장난도 있을 것이고 동경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는 큰 상처가 된 것이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에 나온 화려하면서 남성들에게 환호를 받는 아이돌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목표로 아이돌에 지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째서일까. 이렇게 귀여운 소녀인데. 이런 내 생각을 그녀에게 곧이곧대로 말하자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수통의 음료를 나누어준 후로 그녀는 나와 자주 이야기를 하며, 나중에는 운동이 아닌 다른 이유로도 만나게 되었는데 이렇게 금방 친근하게 나에게 다가오게 된 것은 자신을 여자로 대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아저씨다. 오빠라 하기에는 나이차이가 좀 나고 아저씨라 부르기에는 적은 편이지만 단순히 --씨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듯해 그런 호칭으로 부르게 된 듯싶다. 오빠라 불러주는 것은 그녀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었을 테고 불리는 내 입장에서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아저씨란 호칭은 처음 그 만남 이후로 정착되어 버렸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면 나이차이가 제법 나는 커플들의 사랑이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생겼을지 몰라 미리 확언해 둘려한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나이차이가 나는 남매와 같은 관계였다. 서로를 친근하게 대하지만 연애감정 같은 것은 그녀도 나도 느껴본 적은 없다. 그러니 그런 내용을 기대하고 있다면 일찍 감치 접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계절이 한 번 씩 변해 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간대 만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확실히 봄.
바로 키쿠치 마코토가 그간의 연습생 신분으로 고생 후 아이돌로서 데뷔하게 된 날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잔뜩 흥분해 나에게 알려왔고, 꼭 나에게 봐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녀의 데뷔는 지방의 케이블방송에서 부담 없이 이루어졌다. 시청률이 적은 지방의 작은 방송국에서 이루어진 데뷔지만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팬클럽회원에 가입하려면 빨리 하셔야한다고요! 그러지 않으면 다른 남자들이 자리를 채울 거라고요?”

마코토는 그날 저녁에 과자와 음료수만으로 축하파티를 벌린 후 그리 말하며 굉장히 기뻐했다. 많은 팬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자로서 주위에 인정받고 싶기에 그녀는 그 작은 데뷔무대에 그렇게 기뻐할 수 있던 것이다.
그 뒤로 그녀는 서서히 인기를 얻게 되었다. 참고로 나는 그런 그녀의 부탁에도 그녀의 팬클럽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그의 가까운 지인인 내가 자리를 차지하기 보다는 그녀의 새로운 팬들이 들어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말에 마코토는 이해하면서도 불만인 듯한 얼굴이었지만 말이다. 
대신에 난 그녀의 앨범 발매일 날 제일 먼저 앨범을 구입해 그녀에게 사인을 받은 남성팬이 되었다. 그 때의 그 앨범은 지금도 소중한 내 보물이 되었고, 그녀의 앨범은 새로 나올 때마다 구입하여 그녀에게 사인을 받고 있다.
어쨌든 인기를 얻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아이돌로서 순탄한 듯싶었다. 아니, 확실히 그녀의 아이돌로서의 모습은 주위에서 보기에는 성공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돌이 된 후 그녀는 여성적인 일이 아닌 남성적인 일들을 주로 맡고 있었다. 남장역, 남자 같은 성격의 여성 역. 노래도 여성적이라기보다는 남자가수들이 부를 것 같은 파워풀한 이미지였다. 그리고 사무소에서도 마케팅을 그런 쪽으로 밀고 가고 있었다. 나중에 그녀가 말해주기를 가난한 사무소인 765는 마코토가 원하는 여성적인 이미지 쪽을 밀어주고 싶어도 그것이 무리였다고 한다. 가난한 그들로서는 인기와 수입이 보장되는 왕자님 마코토를 버리고 개성과 인기가 없어 두드러지기 힘든 공주님 마코토를 밀어줄 수 없던 것이다. 
그것을 말하는 마코토는 슬퍼보였지만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사무소 사람들은 확실히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고집으로 그 사람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기특했으면서도 안타까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노력하는 그녀를 보며 자주 고민하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인 키쿠치 마코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다. 그리고 거기에 낙심할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어느 날 자신의 팬클럽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녀의 팬클럽은 높은 비율로 여성들이 많았다. 적은 비율로 남성팬도 있지만 가입만 해놓고 눈에 보이는 팬으로서의 활동은 안 해주는 듯 했다. 응원편지는 모두 여성 뿐. 그 이야기를 듣고 어느 날 난 그녀에게 기운을 주기 위해 무엇을 할지 겨우 정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난 그녀에게 응원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라는 것은 속이고 그녀의 열성적인 남성팬인 것으로 연기해 그녀에게 팬 필명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녀가 출연하는 라디오에도 편지나 인터넷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매력과 귀여움을 토로하며 주위에 알리기도 했다. 

“헤헤, 아저씨 이것 좀 봐주세요! 저에게도 남성팬이 편지를 보냈어요! 이거, 이거 보여요! 저보고 귀엽데요! 드디어 제대로 된 남성 팬이 저에게도 생겼어요!”

처음 그 편지를 받고 그녀는 나에게 처음으로 귀엽단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최고로 밝은 미소로 숨도 고르지 않고 나에게 달려와 자랑을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정말 잘 되었다며 축하한다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가벼운 접촉에 그녀는 내가 진짜 그녀의 오빠가 된 것처럼 어리광을 부리며 기뻐했다.

“이름은 알려주지 않지만, 그래도 좋아요! 제 팬클럽에도 늦게 가입했더라고요. 근데 필명이 P라는데, 무슨 뜻일까요?”

난 그 말에 그냥 단순한 알파벳을 쓴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열성적인 팬이 그리 생각 없이 쓰지는 않았을 거라며 내 말을 부정했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깊은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녀와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순수함을 가지는 그녀는 이제는 주위에서 잘 믿지 않는 왕자님의 존재를 믿고 있다. 자신의 여성성을 발견해줄 소중할 왕자님을. 
내 P란 필명은 거기서 발생한 것이다. 프린스Prince의 P.
정말로 단순한 뜻에서 발안한 필명인 것이다.
그녀는 그 P라는 팬이 자신의 사인회나 악수회에 와주기를 바랬지만, 내가 갈 수 없어 그 열성적인 남성팬은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것에 못내 아쉬워하며 낙담했고 난 그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 직접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위로를 했다.
P라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팬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고, 키쿠치 마코토의 여성적인 매력을 피력하는 열성적인 남성팬의 존재에 그녀에 대한 평소와는 다른 매력에도 흥미를 보이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서서히 그녀에게는 여성적인 일도 들어오게 되었고, 팬클럽에도 남성들의 수가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사실에 기뻐하며 더더욱 P라는 팬에 대해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덕분에 난 그녀가 목표를 이루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 P로서 팬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 남성팬이 늘어나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기뻐하며 처음으로 남성 팬에게서 받은 내 편지를 소중히 하는 그녀를 보면 그만 둘 수가 없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직장인으로서 편지 한 개를 못 쓸 정도로 바쁘지는 않았다.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그녀는 어느 날 나에게 고백해 왔다. 그러면서 그 P란 사람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다시 말했지만, 그가 원하지 않는 듯해 그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난 그런 그녀를 위로하며 아이돌로서 빛나면서 동시에 여성으로서도 아름다워지기 시작한 그녀가 눈부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다. 점점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진다고. 나만이 알던 그녀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알게 된다. 남성적인 매력이 아닌 그녀만이 지닌 여성적인 매력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것이 어쩐지 묘하게 아쉽지만 동시에 기뻐 고민하게 된다. 내가 P라는 팬의 일을 언제 그만 두게 될지. 멀지 않아 그것을 그만 둘 것이다. 남성팬이 늘어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가짜 팬의 열성적인 응원 글은 필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나의 응원편지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미 나도 목표를 이루었기에 그 전처럼 열정적이지 못한 것이다. 거기다 편지의 빈도가 줄어들었는데도 그녀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인기 아이돌이다. 단 한 사람에게만 신경 쓰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처음으로 응원 편지를 보내준 남성팬이라 해도 말이다.
차츰 줄어가던 편지는 이내 뜸해지기 시작하고 곧 멈출 것이다. 난 그 마지막 응원편지를 그녀의 생일로 정했다. 여름의 끝자락인 8월 29일이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P의 편지와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난 생일 전에 보낸 편지에는 오랜만에 열성적으로 글을 적어 제법 장문의 응원 글을 보내게 되었다. 거기에는 일이 생겨 이제 팬으로서 응원편지를 더 이상 보내기 힘들 듯 하다는 여지를 남겨놓고서 다음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러면 그녀는 아쉬워하면서도 이해해줄 것이다.
그 편지를 마지막으로 난 그녀의 생일선물로 무엇이 좋을지 고민했다. 그녀에게는 많은 선물들이 팬으로부터 전달 될 것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남성적인 물품이 아닌 그녀에게 어울리는 여성적인 선물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은 많지 않았다. 겹치지 않은 선물로 주고 싶었지만 팬의 수를 생각하자면 아마 힘들 것이다.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던 나날을 보내던 중, 그녀의 생일에 가까워져 내 메일주소로 한 메일이 날아왔다. P로서 활동할 때 사용하던 메일이었다. 발신자는 키쿠치 마코토. 나는 편지에 주소도 적어놓지 않아 그녀의 답신은 메일로만 받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감사인사겠거니 하며 열어보다가 마지막 줄에 난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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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아, 그리고 선물은 직접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 동안의 감사 인사는 직접 하고 싶으니깐요. 그러니 그 때까지는 인사를 아껴두겠습니다. 그럼 그 때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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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온다고? 
그 말에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결코 이 P란 인물을 직접 만날 수 없다. 내가 만든 가상의 팬이니깐. 그런데 어떻게 직접 만난다는 것일까? 다시 메일을 보내 주소를 물어볼 생각일까? 그래서는 곤란하다. 결코 밝힐 수 없으니 말이다. 그녀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그 일에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직접 만나지 못한다는 거절 메일을 보낼 준비를 하며 그녀의 메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뒤로 그녀는 생일 전날인 오늘까지 메일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난 그녀가 잊었구나 생각하며 안심했다. 바쁜 그녀로서는 이 일을 잊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난 기껏 준비한 생일선물을 보내지 못했다. 소포로 보내고 싶었지만 직접 만나겠다는 그녀의 말이 걸렸기 때문이다.
선물이 담긴 포장된 선물은 나중에 그녀의 사무소에 몰래 두고 가기로 마음먹고서 외출을 준비했다. 이제 그녀는 17살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겨우 1년이 약간 넘는 기간에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간 것이다. 굉장히 긴 듯 했지만 생각보다 짧은 만남이었다. 새삼 추억에 잠기는 것을 느끼며 아직은 더운 바깥을 향해 문을 연다. 그러자 문 밖에는 놀랍게도 오늘 선물을 주려고 한 그녀, 아이돌 키쿠치 마코토가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난 그 인사에 얼떨결에 ‘어, 그래’라고 답한 후 그녀를 빤히 보았다. 아침 일찍 운동을 하러 나온 길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옷차림이 굉장히 차려입은 기색이었다. 잘 정돈된 작년보다는 길어진 보브컷의 단발, 여성스러움을 잔뜩 내비치려는 듯한 비칠 듯한 하얀 원피스. 건강하지만 보기 좋게 쭉 뻗은 다리 끝 푸른 샌들에 감싸인 하얀 발. 
결코 운동을 할 만한 복장은 물론 학교에도 갈 복장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그녀를 더운 바깥에 세워둘 수 없어 집 안으로 초대했다. 한풀 꺾이더라도 여름의 아침이다. 피부가 중요한 아이돌인 그녀를 햇빛에 오래 세워둘 수는 없었다.
집안에 들어오자 난 그녀를 거실 소파에 앉히며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면서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선물은요?”

그 당당한 요구에 난 당황했다. 지금 있는 것은 P로서 그녀에게 전해주려 한 선물 뿐. 나로서 준비한 선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줄 선물은 있다가 점심쯤에 사러갈 예정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뚱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이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말했잖아요. 직접 받으러 오겠다고.”

그 말에 난 순간 사고가 정지함을 느꼈다. 그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있다하면 그것은…….
그리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그녀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뒤로 깍지를 끼며 다가왔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그녀는 당황하는 내 얼굴에 즐거워했다.

“준비하셨죠? P.씨-”

그녀는 알고 있던 것이다. 내가 자신에게 응원편지를 보냈던 최초의 남성팬이 P라는 것을.자신의 팬에게 이런저런 환상을 가졌을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곧장 사과를 했다.

“미안해.”
“네?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신 거예요? 선물 주시겠다고 하셨으면서.”

내 사과에 그녀는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짜로 놀랐다기보다는 그저 나를 놀래주기 위해 그리 연기하는 듯 했다. 그럼에도 난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에이, 역시 준비하셨잖아요. 괜히 놀래 키고. 그럼 얼른 주세요. 저도 학교에 가야 하니깐요.”

난 우물쭈물 하다가 이내 그녀의 사무실로 전해주려 한 선물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건넸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어 자신의 얼굴 옆에서 살짝 흔들더니 미소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무슨 선물이에요?”
“그게…….”
“반지라면 좋을 텐데-”

그 말에 난 당황하여 말도 못하고 허둥거렸고, 그녀는 킥킥 웃다가 선물상자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아까부터 왜 그리 당황하세요?”
“……너를 속였으니깐.”
“언제요?”
“계속 너의 팬인 척 속여서 편지를 보냈잖아. P란 팬은 실제로 없었는데…….”

난 그리 고백하며 고개를 숙였다. 난 그녀를 속인 것이다. 가짜로 그녀의 열성팬을 연기하며 그녀를 응원했다. 그러면서 팬과 만나고 싶어 했던 그녀의 마음을 배신했다.
이런 내 사과에 그녀는 다시 놀라는 표정을 연기하며 말했다.

“에, 아저씨 내 팬이라고 했던 건 거짓말이었어요?”
“그건 아니냐!”

즉각 부정하자 그녀는 선물로 입술을 가린 채 쿡쿡 웃었다. 어쩐지 평소보다도 유쾌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언제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그, 그건…….”

대답할 말이 궁해졌다. 팬은 팬이다. 하지만 편지를 보냈던 P는 아니다.  
그녀는 선물상자로 툭툭 자신의 입술을 두들기다가 이내 그 상자로 살포시 나의 입술을 눌렀다.

“거짓말 하신 적 없잖아요. 그 P씨도, 눈앞의 아저씨도 모두 나의 팬이시니깐요. 결국 거짓말한 사람은 없어요. 단지 이름을 숨기셨을 뿐이지. 모두 사실이잖아요. 저를 응원하시던 말까지 말이죠.”

그녀의 말에 난 선물상자에 눌리는 입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P도, 나도 모두 그녀의 팬이었다. 
P가 한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고, P가 한 일들은 내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일이었다.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고 있었지만, 필명만 썼을 뿐 결국 모두 내가 한 일이었다. 단지 아는 지인이 아닌 새로운 남성 팬이 생기기를 원해 나만 그렇게 연기 했던 것이다.

“……언제부터 안 거야?”
“저의 매력을 주위 사람에게 말해줄 때부터요. 그건 아저씨가 아니면 말해줄 수 없는 매력이었거든요.”

그렇다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 직접 만나고 싶다던 그 말들은 무슨 뜻이었던 걸까? 그녀와 나는 아이돌 일로 바쁘더라도 가끔 연락하며 직접 만나고 있었다.
그 의문을 느끼며 바라보니 그녀의 미소는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그 미소는 굉장히 짓궂어 쉽사리 답을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흔들거리는 발걸음으로 뒤로 물러나 나의 입술에서 상자를 떼어냈다.

“하아, 정말 둔하신 분이구나-”

한숨 뒤에 그녀는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로 이어 말한다.

“P씨가 아저씨라는 것을 알고 그 이름의 뜻도 동시에 깨달았다구요.”  

그녀는 나에게서 빙글 몸을 돌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관으로 향했다. 직장인과 학생의 아침은 짧은 편이다. 그녀는 이런 바쁜 아침에 단순히 선물을 받으러 온 듯 했다.

“이렇게 일찍 안 왔으면 보나마나 사무소로 선물을 보내시려고 했겠죠?”

그녀는 게슴츠레 나를 뒤돌아 흘겨보고서 몸을 돌려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찰칵하고 문 돌아가는 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흔들었다.

“‘공주님은 왕자의 키스로 깨어난다.’ 딱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면서 그녀는 뒤돌아 나의 입술을 눌렀던 상자의 부분에 자신의 입을 맞추며 나에게 윙크를 했다.

“오늘 아이돌일은 휴가니깐 자세한 이야기는 있다 퇴근한 후에 해주세요, 나의 둔한 왕자님!”

그녀는 그리 말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순간 환한 아침햇살이 그녀의 몸을 감싸 나의 시야를 방해했다.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며 바라보니 어느 사이엔가 그녀는 멀찍이 집을 나서고 있었다. 난 따라갈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다가 나의 입술을 만져본다.
나의 입술이 먼저 상자에 닿은 듯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녀가 상자로 입술을 가리며 웃고 있을 때 이미 닿고 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입술을 매만지며 난 다시 달력을 본다.
오늘은 8월 29일.
그녀가 나를 찾아오기로 한 날. 그리고 그녀가 17살이 된 날.
이 날 난 한 명의 팬으로서가 아닌 왕자로서 그녀를 만나야하는 듯 했다.

“정말, 있다가 퇴근 후에 어떻게 하라고.”

제대로 된 파티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이럴 때 갑자기 공주님을 만족시켜야 한다니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쩐지 유쾌해져 웃고 말았다. P라는 사람의 편지는 끝난 듯 했지만 그 인연은 결국 끝나지 않게 되었다. P는 끝까지 그녀를 배신하지 않은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 아침 햇살이 밝은 날 나는 그녀의 왕자님이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파티는 뭐가 좋을까?”

그녀의 바람대로 반지를 사다줄 수는 없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 아무리 둔하다 해도 나이 30을 바라보는 사회인이다. 사회생활에 대해 알고 있고, 그녀의 위치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그녀의 바람을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난 그녀의 팬이다. 아마 좀 더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주님이 왕자님까지 다 하고 있잖아.”

그녀에게 이리 말하면 화내겠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기에 이른 아침, 소파에 앉아 난 출근할 때까지 혼자 웃고 말았다. Prince, Princess 결국 둘 다 P였던 것이다.
투명한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시원한 바람이 살짝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와 다음 계절이 무엇인지 알려주던 여름 끝자락에 한 사랑스러운 소녀가 축복을 받던 날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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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 팬의 입장에서 써본 축전입니다.
너무 힘내서 써버린 덕분에 수정할 엄두가 안 났습니다.
저 다운 글이군요.
그러니 네잎부치란 말은 그만 두시죠.
계속 네잎부치라 하시면........
그거 아세요? 얼마 남지 않은 9월 9일은 코토리 생일이란 걸....
뭐, 별 뜻 없니다. 결코 코토리로 협박하는 거 아니예요~ 하하~

P.S : 창작글 첫축전은 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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