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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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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4, 2016 11:40에 작성됨.

전편

하루카「나 말야, 765 프로덕션이라는 곳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어」
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1

 

---

 

「에에, 저기, 그러니까... 우리 사무소에 입사하고 싶어서 찾아왔다, 고... 했지?」

「.......」


갑작스럽게 나타난 소녀, 아마미 하루카와 사무원인 코토리는 응접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키사라기 치하야는 꽤나 초조한 눈치인 코토리의 뒤에 선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다. 다른 사무소의 경우엔 정기적으로 오디션을 열어 우수한 지원자를 선발해 인원을 충당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규모가 극히 작은데다 사장인 타카기 준지로의 괴벽에 가까운 인선으로 스카우트된 아이돌이 대다수인 765 프로덕션에 자발적으로 입사를 신청해 오는 사람에게 대응하는 메뉴얼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다. 이 경우엔 코토리의 임기응변에 기대는 수밖에 없겠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그것 역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노골적으로 쩔쩔매며 난처한 시선을 보내는 코토리를 보며 치하야는 작게 한숨지었다. 이렇게까지 동요할 이유는 없을 텐데, 아무래도 오늘 상태가 이상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금 냉소적인 생각을 내색하지 않고 치하야는 입을 열었다.


「역시 사장님께 연락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희만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 으응, 그렇겠지? 치하야 말대로네! 그럼 저기, 지금 바로 전화를 해 볼게!」


코토리가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황급히 자리를 뜨자, 치하야는 하루카와 단 둘이 남겨졌다. 하릴없이 눈을 돌리고 있는 치하야와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인 하루카 사이에 대화가 성립될 리도 없어, 둘 사이에는 거북한 침묵만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공기가 무겁다. 치하야는 그 문장의 의미를 실감했다.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오토나시 씨.


가벼운 원망과 치미는 탄식을 억눌러 삼키고서 치하야가 소파에 앉자 하루카가 흠칫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위축된 두 눈이 물끄러미 치하야를 향했다. 익숙하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치하야는 저 정체불명의 소녀가 보내고 있는 눈빛의 의미를 생각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아련한 동경, 애타는 그리움, 사무치는 슬픔, 들끓는 애정, 깊숙이 자리잡은─ 그리움.
지나치다. 처음 보는 상대를 향해 품기에는 너무나 깊고, 넓고, 무겁다. 그렇지만 저 감정은 도저히 꾸며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어딘가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의 망해에서 무언가를 건져올리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거듭해도 성과는 없었다. 결론은 변함없었다.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치하야는 아마미 하루카와 완전한 초면이었다.
그렇다면 이 의혹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마미 씨라고 했었죠.」


낯선 울림의 이름을, 천천히 곱씹듯 입에 담았다.


「우리, 만난 적이 있나요?」
「──윽!」


다친 부위를 짓밟힌 것 같은 소리를 내며 하루카가 크게 몸을 떨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불안한 얼굴로, 하루카는 망연자실해져 치하야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상처입은 동물을 닮은 눈이다. 치하야로서는 곤혹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도 해 버린 것일까.


「…… 아, ──읏」


말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선 안 된다는 이성적 사고가 충돌하는 것일까. 하루카는 입을 작게 벌리더니 그런 자신에게 놀란 듯 크게 뜬 눈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깨문 아랫입술이 하얗게 변색되어 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토해내는 것 같은 기세로 하루카가 말했다.


「아, 뇨… 처음… 이예, 요…」
「… 그렇… 죠.」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 치하야는, 그러나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을 뿐이었다. 세상의 그 누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그 밑에 가리워진 것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 소녀는 대체 누구이기에 자신을 보며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는 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치하야는 차라리 그렇게 외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것을 억누르고, 치하야는 재차 질문했다.


「사무소에 입사하고 싶다는 건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거겠죠.」
「… 네.」
「왜 우리 사무소인가요?」
면접관도 아닌데 이런 질문을 해서 어쩌겠다는 걸까. 치하야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거라면 다른 유망한 사무소도 많았을 텐데요. 이런 규모도 작고 인지도도 어정쩡한 사무소에, 어째서 들어오고 싶은 건가요?」


굳이 자신이 던질 이유가 없는, 하지만 합당한 질문을 던지고서 치하야는 대답을 기다렸다.
하루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움츠러든 고개도, 바닥만을 향하는 시선도 움직일 기미가 없다.
묵언만으로 알 수 있는 처절한 고뇌의 끝에, 하루카가 중얼거리듯 답했다.


「사람이… 있어요.」
「…?」
「만나고 싶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그건 누구죠?」


홀린 듯이 치하야는 그렇게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멋대로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을 터인, 괴로움에 찬 하루카의 신음만이 그 물음의 답이 결코 가볍게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임을 짐작케 했다. 아니면, 치하야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조금 다른 것일까. 만약 대상의 문제라면 어떨까.
이 소녀가 감추고 있는 대답이, 치하야 자신으로서는 들을 수도 없고 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


「……」


치하야가 건넬 말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그제서야 코토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휴우…. …! 아, 으음…」


문을 닫고 기대어 서서 숨을 돌리던 코토리는 이내 사무소 안의 분위기를 눈치채고서는 다소 수다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아, 그러니까, 하루카라고 했니? 네 이야기를 했더니 사장님께서 곧바로 사무소에 오신다고 하셨어. 아마 직접 만나보고 채용을 결정하실 모양인데,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을까?」
「… 그렇게 할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하루카의 모습을, 치하야는 복잡한 심경을 담아 바라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알 수 없는 긴장이 단번에 탁 풀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하루카라는 아이에 관해서 조금이나마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의혹이 더욱 깊어졌을 뿐이다. 치하야는 답답함에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 시야가 검게 덧칠되었다. 그런데도.


사무소에 뛰어들어온 직후에 보았던, 하루카의 표정.
그것만큼은 눈꺼풀의 안쪽에 새겨진 듯 사라지지 않았다.

 

***

 

「으으음….」
「……」


765 프로덕션의 사장, 타카기 준지로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겨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것은 하루카다. 여전히 무릎 위에 모은 두 손을 힘주어 쥐고 있는 하루카는,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인 양 입을 다물고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바닥만을 응시했다. 치하야와 코토리는 이렇다 할 대화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사장실 바깥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미 하루카 군?」
「… 네.」


먼저 정적을 깬 것은 사장이었다. 이름을 불린 하루카가 고개를 들어 사장과 마주했다─ 고 생각한 사장은, 이내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하루카는 명백하게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리라고, 사장은 근거도 없이 그렇게 느꼈다. 이 아이는 어쩌면 하기와라 군과 비슷한 성격일지도 모른다. 사장이 말을 이었다.


「정리해 볼까. 자네는 아이돌을 지망하고 있는 몸으로, 이런저런 사무소에 지원해 보았지만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고심하던 중 우리 사무소를 우연히 알게 되어 지원하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맞는가?」


수긍하듯 하루카가 고개를 끄덕, 했다.


「… 뭐어, 왜 우리 사무소인가, 아이돌을 지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질문이 있겠네만… 그런 것은 차차 듣기로 하지. 자네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테고.」
「……」
「자네를 지원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알고 싶나?」
「… 저, 는.」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네.」
「예…?」


사장이 손을 뻗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인지 하루카는 찻잔에 손을 대려는 기미조차 없었다.


「실력에 관해서는 알 길이 없네만… 외모에서는 합격점이야. 굳이 따지자면 수수한 쪽이겠지만 그렇기에 가질 수 있는 매력도 있을 테지. 다소 과하게 주눅이 들어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분명 타인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밝음이 잠들어 있으리라고, 나는 그렇게 느꼈다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하루카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팅 하고 오는 것이 없지도 않았다─ 라고 해야 할까.」


어디가 간단한지 알 수가 없다. 하루카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미적지근한 반응이 조금 의외였던 것인지 사장이 커흠, 하고 한 차례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 지금부터가 본론이네만, 우선 자네의 채용 자체는 하기로 했네.」
「…!」


채용, 이라는 두 글자에 하루카의 눈이 크게 뜨였다. 무언가 말하기 위해 움찔대는 입가를, 그러나 사장은 곧바로 가로막았다.


「다만 견습생의 신분으로라는 제약이 붙게 되네만, 괜찮은가?」
「견, 습…?」


그렇다네─ 사장이 대답했다.


「우리 사무소에 소속된 아이돌들은 대부분 내가 직감으로 스카우트한 이들이네만, 자네의 경우엔 그렇지가 않으니까. 사정을 고려한 채용인 만큼 모종의 차별점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말일세.」
「…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뭐, 어려울 것은 없네. 레슨 위주의 스케줄로 역량의 검증과 향상에 집중할 것. 업계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필요할 테니 종종 다른 아이돌 제군의 영업이나 스테이지에 동행할 필요도 있겠지. 친목도 어느 정도 다질 수 있어야 하겠고. 단적으로 말해 아마미 하루카 군, 자네가 우리 프로덕션의 아이돌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주길 바라는 것이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다면, 두말없이 자네의 입사를 받아들이지.」


하루카는 말없이 사장을 응시했다. 방금 들은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인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입을 작게 벌린 채인 하루카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불안, 의구심이 뒤섞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고 싶다는 얼굴이군.」
「……」
「간단하지 않겠는가. 기량이 올라올 기미가 없거나, 다른 아이돌과 불화를 일으킬 경우, 여타 아이돌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뭐어,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받아들이겠는가, 사장이 눈빛을 통해 재차 물어 왔다.
하루카는 그제서야 그 시선을 비로소 똑바로 마주했다. 몸의 떨림,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서, 아마미 하루카는 결연한 얼굴로.

 


── 사장이 앉아 있는 소파의 뒷편, 어렴풋이
── 흐릿하게 보이는 그 아이의 모습이.

 


답했다.

 


***

 

「… 흐응, 신기한 일도 다 있네. 이런 사무소에.」
「신기한, 걸까.」
「그렇잖아. 적어도 나라면 이런 덴 안 골라. 어떤 위인인지 한 번 보고 싶은걸.」


새침한 얼굴로 독설하는 미나세 이오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치하야는 사장실 방향을 힐끗 보았다. 사장과의 면담을 위해 그 사람이 들어간 지 20분쯤 지났을까.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을지 알 수 없어 초조한 심경으로 기다리고 있던 도중, 때마침 출근한 이오리에게 치하야는 대강의 사정을 설명한 참이었다. 기막혀하면서도 어쨌거나 지원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눈치였기에, 치하야는 이오리와 함께 면담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생겼어, 그 사람? 나이는? 귀여운 편?」
「… 글쎄. 잘 모르겠어.」
「무슨 대답이…. 직접 봤잖아?」
「그건 사실이지만.」


이오리는 어이없어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럴 만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치하야는 생각했다. 도저히 상대의 외모라던가 분위기, 특징 따위를 관찰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편적인 겉모습 정도는 말해줄 수 있었지만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말을 아끼기로 했다. 저 당혹스러운 방문객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온전히 이오리 스스로에게 맡기고 싶었다.


「…!」


그 때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장실의 문이 열렸다. 치하야는 이오리의 존재조차 잊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사장과 함께 그 소녀, 아마미 하루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카는 치하야가 있는 방향을 보더니 돌연 표정을 굳히고선 눈을 내리깔았다. 무슨 일일까.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사장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 여기 있는 아마미 하루카 군에 대해서 말이네만, 앞으로 우리 사무소 소속의 견습생으로서 받아들이기로 했네. 자세한 소개는 다른 아이돌 제군들이 모였을 때 하도록 하지.」


견습생, 이라니. 그런 것이 있었던가. 치하야는 당혹스러웠다. 적어도 치하야가 알고 있는 한 765 프로덕션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제서야 옆에 있던 이오리를 떠올린 치하야가 상태를 살피기 위해 눈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치하야는 흠칫 몸을 떨었다.
하루카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오리가, 굉장히 이질적인 것이라도 보듯이 그 얼굴을 심각하게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간을 찌푸리고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오리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 뭐야, 저거.」
「미나세… 씨?」

 

「왜, 저런 눈을 하고 있는 거야?」

 

이유조차 모른 채 가볍게 전율하며, 치하야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하루카의 눈은, 늘어뜨려진 앞머리의 그림자에 가려 확인해 볼 수 없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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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군인의 연재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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