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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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링크 / 平沢進 - Forces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여러분. Weissmann입니다.
열 다섯번째로 그려본 창작 그림은 '무나카타 아츠미'입니다.
이번에 그려본 무나카타 아츠미양은 '등산'을 정말 좋아하는 백합 속성의 캐릭터입니다. 아이돌이 된 계기 역시 프로덕션의 소녀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욕을 보였으며, '산'을 오를 수 있다면 그 누구든, 성별에 무관하게 달려드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등산의 대상으로는 치히로씨나 프로듀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진정한 등산가...) 이런 아츠미양의 등산에 대한 열정에 감격한 동료 '이브 산타클로스'씨는 아츠미양에게 자신의 고향인 그린란드의 최고봉, 군비외른 산으로 초대하는 친절을 베풀기도 하였으니....취미가 손가락 운동인 아츠미양에게 등산은 최적화된 스포츠임이 틀림 없습니다.
각종 등산 장비를 착용한 채 전문적인 등산을 즐기는 아츠미양의 모습은 어떨까....상상하며 그려보았습니다. 물론 아츠미양의 '등산'이 이런 '등산'은 아니지만, 산을 향한 불타오르는 집념과 멈추지 않는 끈기와 용기는 실로 감탄할만 했기에 아츠미양에게 해발 8000m는 기본인, 지구상 최고봉들이 즐비하게 펼쳐진 '히말라야 산맥'을 선물해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이런 엄청난 도전을 하기엔 아무래도 외롭고 쓸쓸할 것 같아 영혼의 동반자인 '야나기 키요라'씨도 함께 등반하는 것으로 그려보았습니다.
구도상 비록 뒷모습만 그리게 되었지만, 미시로 프로덕션 내에서 사실상 아츠미의 보호자(...)역할을 맡고 있는 키요라씨가 함께라면 아무리 힘든 등산이라도 아츠미양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키요라씨는 작중에서 정밀 사격에 정통한 모습을 보이거나, 통제 불능 상태의 아츠미양을 단숨에 제압해버리는 '너스권'의 소유자인만큼 아무리 힘든 임무라도 멋지게 수행해내는 강인한 면모를 가지고 있죠. 분명 아츠미양과 함께 환상의 자일 파티(Seil Party/ 같은 자일에 의지한 채 산을 오르는 등산조)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매번 다큐멘터리나 사진으로만 봐왔던 '히말라야 산맥'이지만...이런 거대한 산맥을 그리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는 내내 '히말라야 등반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근대 등산의 시조'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며 그려보았는데, 근대 등산의 역사에서 열강들 간 대륙 최고봉의 정상을 향한 치열한 경쟁과 그 이면에 가려진 '제국주의'의 탐욕이 깃들어있다는 점은 특기할만 했습니다. 스포츠이자 도전으로서의 근대 등산이 태동한 시기는 19세기 무렵, 제국주의가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고 등산 역시 국가 체제 선전이나 타 대륙 침략을 위한 사전 식생 조사와 같은 군사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례로 유럽 열강들의 남미 대륙의 침략에 있어, 과학 탐사대의 안데스 산맥의 식생 조사나 해안 측량 등은 신대륙에서의 해군 및 육군의 교두보 확보 및 거점 확보에 매우 중요한 군사 정보들이 되었죠.)
우리에게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는 우문현답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대영제국의 탐험가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의 말은 당시의 등산을 '깨끗한 탐험 정신, 순수한 도전정신'으로 여겨지게 만들었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대영제국이나 독일제국 등의 유럽의 여러 제국들은 당시 유럽의 식민지 국가들의 영역에 있던 고산 산맥들에 너도나도 탐사대를 보내어 자국민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주의에 입각한 이러한 무모한 도전들은 숱한 비극들을 낳았고 조지 맬러리 역시 수차례에 걸친 에베레스트 정상 도전으로 대영제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지만, 결국 마지막 도전에서 실종되고 말았고 이후 70여년의 세월이 지난후에야 현대의 에베레스트 탐사대에 의해 그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순수한 과학 탐구 정신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기엔,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에 버금가는 엄청난 라이벌 의식이 근대 등산계에 만연했던 점은 이렇게 숱한 사람들이 산에서 죽어가는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근대의 등산은 '알피니즘(Alpinism)'이라 부르는 국가주의 등산에서 태동하였습니다. 본래는 알프스 산맥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를 위해 스위스의 과학자 베네딕트 소쉬르가, 알프스 산맥의 '몽블랑' 등정에 현상금을 건 것이 시초로 여겨지지만 이내 유럽의 알프스 산맥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극한의 고봉(高峰)에 도전하는 것을 '알피니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1920년 경, 일본을 통해서 이러한 사조가 처음으로 유입되었고 국내 등산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故조지 맬러리의 말처럼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는 시대는 이제, 제국주의의 종언과 함께 과거가 되었습니다. 열악한 산악 장비의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고 세계의 유수의 봉우리들에 사람들의 발길이 수북하게 찍히면서 과거와 같은 '경쟁적인 등산'은 점차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죠. 그러나 여전히 탐험가들과 등산가들은 '보다 어렵게, 보다 힘들게' 산을 오르며 '도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해발 8000m의 환경은 그곳에 적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입니다. 산소는 희박하고 기온은 변화무쌍한데다 의식이 종종 아득해지는 고산병이 만연한 곳,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눈사태와 보이지도 않는 천길낭떠러지의 크레바스, 아차 하는 순간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빙벽과 수직 절벽.....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산을 향해 올라갑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오늘날의 등산가들은 과거의 '인간이 산을 정복한다.'는 오만한 시선 대신, '산을 만나러 간다, 산의 초대를 받는다.'는 생각을 가진다고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높은 정상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드넓고 거대한 자연의 일부인, 그 산 자체를 정복할수 는 없다는 것이죠. 국가의 명예라든가 인종, 체제의 우수함을 위해 산에 올랐던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다른 시각의 접근임은 분명하네요. 사람들마다 산에 오르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다들 그곳에서 '산과의 만남'을 하고 온다는 점은 비슷하죠. 각자가 느끼고 듣는 산의 이야기는 다 다르겠지만요. 어쩌면 사람들은 '산이라는 얼굴의 또다른 자신'을 만나기 위해 지금도 극한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자일 파티, 참된 등산가 아츠미양과 강인한 의지의 키요라씨를 그려보았습니다.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alk&wr_id=13478
데포르메 신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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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산의 상업성과 기술의 발달로 등정 자체의 가치가 추락하자 외국에서는 등로주의로 옮겨갔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등정주의에 집착하는 게 안타까울따름입니다.
그나저나 아츠미를 보고있자니 프로듀사에 낚여서 절규하며 등정하고있을 것 같네요.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맬러리가 계속 실패해서 가뜩이나 열받아 있는데, 주변에서 (계속 실패하는데도) 산에 왜 오르냐고 질문을 너무 많이 받다보니 홧김에 아무렇게나 대답해버렸다는 비화....그런데 맬러리의 말이 생각나는대로 대충 둘러댄것 치고는 너무나도 유명해져 버렸군요. 산이 그곳에 있기에 오른다.... 마치 선문답 같기도 합니다.
그리는 내내, 지금도 어려운 일이지만 과거에는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고산지대에 도전하는 일이 몇 배는 더 힘겨웠을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대로된 안전 장비도 없고 등산과 관련된 학문도 발달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들로 고산에 내몰린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안타깝기도, 또 한편으로는 으시시하기도 했네요.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산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은 긍정적이군요. 산을 정복의 대상에서 교감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바뀌면서, 과거에는 '등산' 자체가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등산과 함께 환경 보호도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하니, 국내에서도 등산을 통한 자연 교감과 환경 보호가 같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네요.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아츠미양과 키요라씨. 아츠미양의 산에 대한 도전은 끝을 모릅니다.
소중한 감상, 감사합니다!
진정한 산악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아츠미양도 깨달았겠군요! 산악왕을 꿈꾸는 아츠미양의 도전을 응원해주시길! 감사합니다!
위험한 캐릭터성때문에 메이저 데뷔가 어렵지 않을까 했었는데 당당히 특채를 꿰어찬 아츠미. 이것이 등산 정신인가..산에 오르면 다음 산이 보이는..
아츠미는 여자아이의 산에 대해선 본인 철학이 있는 것 같고, 정복의 대상이면서 겸손하게 대하기도 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뇌피셜입니다
물론 너스권은 그런걸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번엔 히말라야 산맥이라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아츠밍...
그나저나, weissmann 님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에는 언제나 혀를 내두르게 되네요.
저도 앞으로 글을 계속 써 내려가려면 그만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텐데...
'등산'을 좋아하는 아츠미양의 특징을 재해석하여 '히말라야 등반'을 상상해보았는데,
아츠미양이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습니다. X-D 함께 가신 키요라씨가 곁에 있으니 든든하겠죠!
인문학 상식들이라.....저 역시 그림을 그리면서 등산에 대해 새로이 알게되고 또 배운 점들이 많기에, 프로듀서님들과 함께 공유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적어보았는데, 재미있어 해주시니 기쁘군요! 프로듀서님께서 쓰신 라이라양의 일본 생활에 대한 글을 보면서, 아랍 문화라던가 일본 생활 등에 대해 무척 상세하게 그리셔서 저 역시 많은 감탄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창작 활동을 하면서 몰랐던 부분에 대해 더 잘 알게되거나,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네요!
프로듀서님의 라이라양 이야기나 아츠미양 이야기 역시 기대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아츠미 "Because, girls's dreams and hope is there"
아츠미양의 산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잘 드러나는 대사로군요! :-)
네팔의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최초로 올랐다고 인정받고 있는
뉴질랜드인 탐험가 故 에드먼드 힐러리경(2008년 타계)의 말이 생각납니다.
it's not the mountain we conquer but ourselves / Sir Edmund Percival Hillary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 에드먼드 힐러리 경
산과의 대화는 또 다른 나와의 대화.
아츠미양과 키요라씨는 산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엿듣고 싶네요!
할 말을 잃게 만드는군요. 아츠미양이 미묘하게 성장한 듯 한 것도, 멋진 산맥과 특히 저 구름! 탐날 정도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그리는 과정은 꽤나 길고 험난하였지만, 다 그리고 나서 그림들을 맞춰 보았을 때 펼쳐진 광경에 무척 뿌듯함을 느꼈답니다. 산맥을 그려본 것은 처음인데, 서툰 그림에도 많은 프로듀서님들께서 응원해주셔서 더욱 기쁘네요! 산과 산 사이의 구름은 포토샵 브러쉬를 활용해 보았는데 제법 고산의 느낌이 살아나서 그리면서도 꽤나 놀랐답니다. 본래라면 아츠미양이나 키요라씨에게 산소마스크나 헬맷 등을 씌워야 겠지만 그랬다간 누가 누군지 못알아볼 가능성이 커서....(당장 키요라씨도 뒤통수만 보이고....) 과감하게 생략했더니 보다 스릴있는 그림이 그려진 것 같네요.(실제로 알파인 스타일의 등산은 산소 마스크와 같은 인공적인 장비를 최소한으로 하여 등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산과 아츠미양. 어쩌면 그것은 운명적인 만남을 뜻할지도요!
프로듀서님의 굉장한 감탄에 저 역시 무척 감사합니다!
등산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포기를 모르는 집념을 가진
귀여운 아이돌 아츠미양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츠미양이 종종 '등산'을 하려다 여러 캐릭터들에 휘둘려서 '등산'을 당하는
사례가 왕왕 있는만큼 산과 아주 친숙해지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네요.
산에 대한 원대한 야망을 지닌 아츠미양이라면 분명 지구의 최고봉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여기며 그려보았답니다....오늘도 그녀는 산을 오르고 있겠군요!
이런 아츠미양이라면 미시로 프로덕션 최초로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날도 머지 않을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