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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마음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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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1, 2016 07:57에 작성됨.

마계의 지독할 정도로 내리쬐는 그 태양볕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마족 뿐이었다.
원체 온도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그들은 이 날씨에도 쾌적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마계에서의 전투는 마족들에게 유리했다. 거기서 식량마저 빼앗긴 인간군은 말 그대로 물살에 밀려 올라가듯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자아, 이제 괜찮을거예요. 조심해요."
"감, 감사합니다, 공주님."
"건강해지셨으면 다른 부상당한 사람들을 데려와주시겠어요?"
"아, 예!"


유키호의 말에 방금 전까지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던 남자는 황급히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키호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군에 의해 습격받은 보급병들 중 패주하던 일부와 합류해 어느 정도 식량이 들어오긴 했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었다. 그리고 식량을 잃은 인간들의 모습은 비참했다. 쉬쉬하고 있긴 했지만 유키호는 병사들 사이에서 탈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말 뿐이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 병사들의 탈주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키호는 마왕군은 그걸 저지하지 않을 거란 느낌을 받았다.
 

「정전을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적을 없애는 거지만, 정전을 원하지 않는 적을 대상으로 정전 협상을 하고 공존을 원한다면 적의 사기를 꺾어 버리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지. 그런 면에서 병사들의 사기는 중요해. 만약 병사들에게서 탈주의 이야기가 나온다면, 적을 분해시켜 버리는 데에 반 이상은 성공했다고 봐도 좋을거야.」


이 모든 것이 예전에 자신에게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해 주던 한 사람이 말했던 것과 너무 비슷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유키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마하니, 치하야가 그들에게 협력했을 리 없다고 그녀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쟁 내내 치하야와 함께 다녔었고, 치하야의 방식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마족들의 주력 공격인 대상인 보급로를 공격해 오는 것부터, 상대를 제압해 오는 방식까지 치하야의 것과 너무 닮아있어서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불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치하야는 늘 말했었다. 만약 마족들이 전쟁에 익숙했더라면, 제일 먼저 보급로를 제압했을 거라고.


만약 정말로 마족들에게 치하야가 협력한 거라면, 치하야는─


'언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속으로 생각한 유키호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도 모르게 치하야가 마족들에게 협조해 이 일을 벌이고 있을거라고 확정짓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몇 번 때렸다. 정신차려야 했다. 쓸데없는 의심은 안된다. 치하야가 그럴 리 없었다. 게다가, 만약 정말로 치하야가 협조한 거라면, 치하야는 그 사실이 알려지는 즉시 인간계로 돌아올 길은 모두 포기해야만 한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 일을 멋대로 지레짐작해선 안된다.

 
"유키호, 왜 그러고 있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던 유키호의 뒤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장에선 듣기 힘든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반가워하며 유키호는 고개를 돌렸다.

 
"뭐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방해했나보네?"
"아니, 아니야! 쓸데없는 생각 중이었어. 부상자들은 어때, 토모에쨩?"
 

유키호의 말에 토모에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패주한 보급병들 사이에 있던, 자신과 같은 '신관'인 그녀는 동시에 유키호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구였다. 신에게 순결을 바치기로 한 신관. 그런 그녀까지 전쟁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치하야를 적군에게 빼앗긴 유키호에게 안도와 동시에 불안을 안겨주었다. 만약 여기서 토모에마저 포로로 잡혀간다면─
유키호는 다시 고개를 휘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안된다.


"나도 얼른 도울게. 조금만 더 힘내줘, 토모에쨩!"
"응. 그렇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 유키호."
"괜찮아, 이 정도는!"


활발하게 말하는 유키호를 보며, 토모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나 따르던 한 살 위의 공주는 적군에 잡혀가 현재 생사를 알 수 없고, 둘째 오빠는 마족에 의해서 팔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패주병에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껴서 걷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토모에는 그녀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았다가 곧 사람들을 치료하는데에 전념했다.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슬슬 쳐도 좋지 않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멀리서 인간군을 살펴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무런 표정없이 상대를 바라보았다.

 
"싸우고 싶습니까?"

 
조용한 목소리가 그렇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조용히 보던 그녀는 다시 앞을 보았다. 비룡 위에 올라탄 그녀의 은빛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유감스럽지만, 아직이옵니다."
"어째서 아직이라는 거야? 거참, 답답하네. 저 상태의 인간군을 없애는건..."
"전 이번 작전이 마음에 듭니다."
 

그녀의 무감정한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담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마지막 말에 상대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조용한 보랏빛 눈동자로 인간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도 않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이 계획은 그런 계획입니다. 그러니 쓸데없이 열올리지 않아줬음 좋겠군요."
"뭐야, 왕의 계획에 찬성하는거야?"

 
그 말에 타카네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히비키는, 자신이 완벽하다는 자각이 강한 사람. 물론 어느정도 실력은 되지만 진짜는 크게 별볼일 없다. 그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찬성, 반대 이전에, 이건 왕의 명령이옵니다."
"그런 바보같은 명...!"
"왕의 명령을 폄하하고 말고는 히비키, 당신 마음이지만..."


그 순간 히비키는 섬뜩한 기분을 느껴야했다. 그 섬뜩함은 그녀의 무표정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닌, 그녀의 목에 닿은 차가운 물체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카네의 표정은 그런 것을 들이댄 사람답지 않게, 협박하는 표정도, 무엇도 아닌 그저 차가운 표정을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따르지 않겠다는 건 왕에게 도전하겠다는 의미가 되는 것 알고 계신지?"
"....!"
"지금 히비키의 위치에서 왕에게 도전하려면 몇 명을 이겨야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 중엔 저도 있고, 원한다면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싸워보시겠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녀의 생각만큼 히비키는 멍청하지 않았다. 왕이 전권을 위임할 만큼 강한 그녀를 상대로 싸울 만큼. 그 때문에 히비키는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물러가야만 했다.
한숨을 쉰 은발의 여성은 다시 인간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인간군의 병사들이 탈주를 시도할 때까지. 하지만 적당히 겁을 주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행동은 동시에 아군을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나기나타를 뻗었다.


타카네는 조용히 외쳤다.


"달의 왈츠!"


그 순간, 날의 끝에서 초승달이 뛰쳐나왔다. 초기엔 타카네의 손만한 크기였던 그 초승달은 인간군을 향해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날아가며, 점점 더 커져갔다. 모래 폭풍을 일으키는 그 것을 인간군이 발견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마족의 습격이다!! 습격...!"


쨍쨍거리며 울리는 종소리는, 끝을 스치고 지나간 거대한 초승달에 멈추고 말았다. 타카네는는 나기나타를 쥔 채로 손을 앞으로 내민 자세 그대로였다. 회전하며 돌아온 초승달은 그대로 그녀가 들고 있는 막대에 달려들듯 돌아와 사라졌고, 그녀는 그 반동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정도로 충분하다. 전의를 잃어 버린 자는 이런 공격으로도 충분히 전투를 포기할 것이다. 수많은 전투의 경험이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기해주십시오."


뒤에서 흥분한 이들의 움직임이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이들 중 그들을 모두 봉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타카네에게 덤빌 생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왕이 타카네를 전권 위임자로 선택한 이유였다.

 

 

 

 

 

"...정말로 괜찮은거야?"
"응? 뭐가?"
"아무리 도움이 되었다고 해도, 난 포로인데?"
"괜찮아, 그런 거라면! 하루카씨가 동행하니까!"


그게 더 수상해.
그렇게 말하는 대신 치하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하루카는 그 결정이 어제 자신이 즉석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쓸데없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단지 다른 이들 몰래 치하야를 끌고 나왔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이들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이 하루카에겐 행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거야?"

 
그리고 하루카의 말에 의심은 했지만 확증을 잡을 수 없었던 치하야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에 치하야를 돌아보았던 하루카는 웃으며 말했다.

 
"하루동안 뭐 멀리 나갈 수도 없겠고, 전시라서 분위기도 안 좋고 하니 비룡이라도 태워줄까 해서 데리고 나온거야."
"그래... ...잠깐, 뭐라고?"
"응? 비룡에 태운다고..."


그 말에 치하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표정에 의아해하던 하루카는 아, 하고 내뱉곤 당황해서 말했다.


"비, 비룡은 난폭한 생물이 아니야! 알고 보면 상당히 온순하고... 또, 내가 있으니 치하야쨩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거야.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아줘."
"아니... 그렇게 말해도..."

 
하아, 하고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쉰 치하야는 대체 비룡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건지 고민해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이중으로 하는 고민에, 치하야의 머릿속은 배로 복잡해졌다. 그런 덕분에 치하야는 별다른 대책을 찾지 못하고 비룡이 있는 곳까지 끌려왔다. 그리고 비룡의 크기를 본 치하야는 또 한 번 그에 압도되었다.
언제 봐도 비룡은 거대하다. 이런 거대한 생물을 제압하다 못해 가축화를 시킨 마족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까.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된 치하야가 숨을 잠깐 멈췄다가 크게 내쉬자, 하루카는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치하야쨩이 앞에 타는 편이 낫겠지?"
"앞에?"
"응. 일단 치하야가 비룡을 다룰 순 없으니 나와 같이 타야 할텐데... 뒤에 타는 건 곤란할것 같은데?"
"뒤쪽은 왜?"


그렇게 묻는 치하야에 잠깐 머리를 긁적이던 하루카는 약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비룡은 빠르니까, 두 사람이 타면 확실히 비행 중엔 위험할 지도 모르고, 그러면 일단 날 꽉 잡아야 하는데..."
"...매달려야 한다는 거네."
"말하자면 그렇게 되는거겠죠?"

 
치하야는 잠깐 생각해보았다. 비룡이 나는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몇 번 전투를 겪어봐서 알고 있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비룡은 왕만이 탈 수 있는 비룡이다. 그 비행 속도를 좀 더 높게 쳐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 상황에서 하루카의 뒤에 탄다면, 떨어지지 않으려면 하루카의 허리에 말 그대로 '매달려야' 한다. 그 점은 치하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치하야는 결정을 내렸다.


"앞."
"알았어."


그리고 치하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하루카는 치하야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에 당황하며 치하야가 하루카를 바라보았지만 하루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치하야의 허리를 붙잡은 채로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가 땅을 박찼다.
제자리에서 도약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도약력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아 버린 치하야는, 잠시 뒤에 조심스레 눈을 뜨고서 자신과 하루카가 비룡 위에 올라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보고 미소짓고 있는 하루카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치하야지만, 하루카는 치하야를 비룡의 목과 몸이 연결되는 부분에 올려진 안장에 앉혔다. 이 동물에도 안장이 얹혀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치하야는 순수히 감탄했다.


"신기한데..."
"뭐가?"
"이런 거대한 동물이 사람을 따른다는 것도 신기하고... 여러 가지."

 
그 말에 하루카는 짧게 미소지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지금이 전시라는 것을 잊어 버린다. 하루카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으면 포로라는 것도 잊어 버린다.
친구로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치하야를 자신의 앞에 앉힌 채 비룡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오늘은 산책이에요, 산책! 가자!"

 
그 말에 비룡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특유의 울음소리를 울리고선 커다랗게 날갯짓했다. 펄럭이는 거대한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에 치하야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펄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몇 번이고 날갯짓을 하자, 떠오를 것 같지 않던 거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키자마자, 비룡의 커다란 날개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그 거체엔 믿기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순식간에 마왕성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치하야는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처지가 우스웠다. 얼마 전까지 비룡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었는데, 지금은 이 위에 무려 마족들의 왕과 함께 타고 있다라.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무시하기로 그녀는 결정했다.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만큼, 비룡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왕성의 작은 모습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치하야는 인간이었고, 그런 높은 풍경엔 하루카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이 보여주는 반응대로 그녀는 무서워하면서도 신기한 듯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치하야가 하루카의 말에 대답하는 것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치하야쨩!"
"왜?"
"생각해보니까 어딜 가야할지 결정을 안 했거든.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전쟁터만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이 데려다 줄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한다면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인간계다.
그렇게 말할 뻔 했던 것을 상대가 마왕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황급히 막은 치하야는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상대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깨닫고 지적했다.
 

"난 인간인데."
"...아."
"마계의 어떤 곳을 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걸까?"
 

그 말에 머쓱하게 웃은 하루카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어떤 곳이라도 상관 없을까?"
"마계에 대해선 전혀 모르니까. 아무래도 좋아."
"그러면 그냥 순회하는 것 정도로 할까나. 자아, 가자! 아, 천천히 날아줘!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


마지막의 말은 비룡에게 하는 것이란 걸 깨달은 치하야는 그 말을 과연 비룡이 알아들을까 하는 심정으로 비룡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비룡은 마치 그 말을 완벽히 알아들은 듯 급히 속력을 내던 것을 그만두고 하루카의 말대로 천천히 허공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 것에 놀란 치하야가 비룡을 바라보자, 하루카는 웃으며 말했다.


"비룡은 영리한 생물이거든. 특히 얘네들은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의 말도 알아들어. 놀랐지?"
"정말 알아들어?"
"물론이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하루카를 보며 치하야는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거대한 생물이 사람의 말까지 알아듣는다고?
천천히 공중을 선회하던 하루카는, 무엇인가 발견한 듯 치하야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에 비룡을 바라보던 치하야가 하루카를 돌아보자 하루카는 웃으며 손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

 

그리고 치하야는 감탄의 탄성을 내뱉지도 못했다.

그 아래로 보이는, 마계의 도시는 인간계의 도시와는 다른 방대함이 있었다. 인간의 도시처럼 계획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난잡하다고도 할 수 있을 테지만, 치하야는 그 도시에서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것에서 놀랐다.
도시 자체에서 생명력이 느껴진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입체적인 도시였다. 그 순간 치하야는 자신이 떠올린 입체적이란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 깨달았다. 그 것은 입체적이라는 말 외엔 아무 것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입체적인 도시에서 넘쳐흐르는 생명력에 압도당하는 것을 느끼며 치하야는 멍하니 마계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런 치하야를 바라보던 하루카는 웃으며 말했다.

 
"마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야. 우리들은 마을에는 딱히 이름을 붙이지는 않지만 마계에서 현존하는 마을 중 가장 거대한 마을일거야."
"...굉장하네."


작은 탄성과도 같이 그 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에 하루카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하지만 치하야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비룡을 이끌며 말을 이었다.


"이 광경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이걸?"
 

그 광경에 눈을 떼지 않은 채 치하야는 그렇게 응답했다. 하루카는 치하야와 같이 마계의 도시를 내려보다가 치하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계와는 완전 다른, 마계의 도시의 모습에 푹 빠진 치하야는 하루카가 자신을 바라보는지도 깨닫지 못한 듯 했다.
비룡의 고삐를 붙잡아 당겨, 천천히 마계의 도시 위를 선회한다. 마계의 도시는 매력적이었다. 그 매력적인 모습에 푹 빠져있던 치하야는 하루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계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

 
그 말에 치하야는 하루카를 돌아보았다. 하루카는 묵묵히 비룡을 바라보며, 여전히 똑같은 속도로 선회하며 말했다.

 
"인간은 우리를 혐오하지. 천족도 마찬가지고. 단지 우리들 중 일부가 추악한 모습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만으로 우리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 하지만, 그런 우리들도 살아가고 있고, 이런 황폐한 대지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살고 있어."
"......"
"이런, 사람이 살 수 없는 듯한 대지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 우리도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마계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이 풍경을 본다면 분명히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 말에 치하야는 자신의 아래에 있는 마계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
 
딱 보기에도, 활기가 있는 도시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

 
"한 명이라도 이해시켰다면 기뻤을테지만, 난 결국 아무도 이해시키지 못했어. 그 생각이 나서, 보고 싶었어. 이 모습을. 뭐, 결국 내가 보고 싶어서 와 버린 거지만..."
 

치하야의 귓가로 하루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하루카를 돌아본 치하야는 다시 마계의 풍경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성공했네."
"응? 무슨 소리야, 치하야쨩?"
 

하루카는 의아해하며 그렇게 물었지만, 치하야는 하루카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한 사람은 이해시켰으니까."

 
그 말과 함께 치하야는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그 행동이 무슨 뜻인지는, 하루카는 치하야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하루카는 웃고선 치하야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잠깐, 하루카, 뭐하는거야!"
"이제 속력을 올릴 테니까,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뿐이야!"
"꺄앗!!"
 

그 행동에 화를 내던 치하야는 하루카가 비룡의 속력을 급격히 올리자마자 비명과 함께 하루카의 팔을 붙잡았다. 그 모습을 보던 하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 마계의 풍경을.
하루로는 부족하지만, 보여줄 수 있는 만큼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잠, 하루카, 너무 빨라...!!"
"너무 걱정하지 마,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하루카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치하야를 끌어 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어 꽉 끌어안았다.
푸른 머리카락이 강한 바람에 흩날렸다. 그녀의 신세가 포로라고는 할 수 없는 증거인 양, 향유의 향이 흐릿하게 코 끝을 스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루카는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자신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완전히 통하지 않고, 완전히 이해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이해해주려고 하고, 자신을 비웃기보다 똑바로 바라봐주는 그녀를.
 
전쟁 중이라고 해도, 그런 것은 그녀들을 감싸는 바람에 휩쓸려 이미 머릿속에서 완전히 날아가 버린 뒤였다. 하루카는 바람에 모든 기분을 맡긴 채로 웃었다. 그에 치하야가 그녀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하루카는 이내 곧 치하야도 미소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웃음이 좋다고, 하루카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빠른 속도로, 인간계보다 훨씬 짙푸른 하늘을 비룡이 가로질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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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방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다 올리긴 무리일까나..

아니 근데 들어보면 다들 거기서 페북만 하는 거 같기도 해서 요런거 쓰고 있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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