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그 때의 이야기요?"

댓글: 1 / 조회: 1306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2-31, 2015 22:18에 작성됨.

"그게...아마 처음 알게 된 건 한달 전쯤이였을 겁니다."

 

...

 

전 어느 연예 사무소의 아이돌 프로듀서였습니다. 유능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아이돌들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거란 자신은 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어느 날, 평소처럼 서류 정리를 끝낼 참이였습니다.

"어?"

시야가 좀 흐릿해지더군요. 이상해서 눈을 비비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는 조금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습니다. 야근이 좀 잦았거든요.

그로부터 3일 후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프로듀서 님. 제 책상에서 이번 달 예산 서류 좀 가져다 주실 수 있나요?"

"잠시만요. 어라?"

눈이 나쁜 사람들은 안경을 벗으면 세상이 뿌옇게 보인다고 하죠? 아마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였을 겁니다.

"어윽..."

"프로듀서 님? 어디 안 좋으신가요?'

"아, 아뇨! 그냥 좀 눈이 뻑뻑해서...이젠 괜찮아요! 여기요, 치히로 씨!"

물론 멀쩡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말 할 수는 없었습니다. 프로듀서는 저 혼자, 여건이 안 되면 치히로 씨의 일도 도와줘야 하니까요. 아, 센카와 치히로 씨는 저희 부서의 사무원입니다. 미인에 유능한 분이죠. 치히로 씨한테는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 이후로 눈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간 계속 이상해졌다가 좋아졌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정말 미치겠더군요.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거나 있어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을 때만 그런 상태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 당시에는 제발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고 있었죠.

그런 절 비웃듯 오히려 몸은 더 나빠졌습니다.

처음 이상이 생긴 지 1주일이 지나고 눈의 상태도 좋아질 기미가 보일 때였습니다.

"프로듀서!!!"

"우왁! 뭐야, 미오야?"

미오였습니다. 네, 혼다 미오요. 저희 사무소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뉴 제네레이션의 일원이자 특유의 활달한 성격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입니다. 아, 미오 자랑으로 또 얘기가 산으로...

"갑자기 그렇게 사람을 놀래키면 안 되지."

"무슨 소리야? 아까 전부터 한참 부르고 있었는데."

"...어?"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제가 계속 멍때리고 있었다는군요. 누가 불러도 듣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문제는 그 당시 저는 정말로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 뿐만이 아니였습니다.

"아우...배고파. 치히로 씨! 저 간식이나 뭐 좀 먹고 올게요."

"네? 점심시간 지난 지 10분도 안 됐다구요? 혹시 오늘 점심 굶으신 거에요?"

"에? 그럴리가요. 분명 점심으로...어라?"

"프로듀서 님?"

"오늘 점심으로는 샌드위치...아냐. 햄버거...도 아닌데? 뭐 먹었지?"

"프로듀서 님? 장난 치시는 거면 정말 가만 안 있을 거에요!"

"저 이런 걸로 장난 치는 사람 아닌 거 치히로 씨도 잘 아시잖아요!"

비정상적인 공복감, 기억력 감퇴,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변해버린 성격. 불과 1주일만에 전 몸도 정신도 모두 망가져갔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정밀검사를 하니 아니라다를까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하시더군요.

"이건..."

"뭐가 문제인거죠?"

"혹시 약물 같은 걸 지속적으로 섭취하신 적이 있습니까?"

"약물...드링크라면 자주 마시는데요."

"흠...그러면 그 드링크도 간과할 수는 없겠군요."

"드링크가 잘못된 건가요?"

"드링크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좀 더 복합적이네요."

"복합적이요?"

"드링크 성분이 환자분 체질과 극상성입니다. 입에 대는 거 자체가 문제였어요. 그게 평소 잦은 야근과 잔업 때문에 피로해진 몸을 자극했고 그 결과가...이겁니다."

"그런..."

"드링크까지는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지만 평소에 업무량이 도를 넘어섰어요. 도대체 회사에서 얼마나 일을 시키는 겁니까? 지금 당장 실려가지 않은 게 용할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때 멋모르고 벽에 낙서를 하다 어머니께 걸려서 혼난 이후로 그렇게 혼난 적이 없었죠.

"그럼 전 어떻게 해야..."

"우선 그 드링크는 앞으로 절대로 입에도 대지 마세요. 다른 드링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 안되겠으면 다시 여기로 오시면 체질에 맞는 것으로 만들어 드리죠. 그리고 야근이나 밤샘도 금지입니다."

"그건 좀 무리인 것 같은데요."

"금지입니다. 앞으로 적절하게 휴식을 취해도 10년은 지나야 완치가 될까말까입니다. 한번만 더 무리하시면 정말 저 세상 가는 수가 있어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했습니다. 제 몸이 그만큼 위태롭다는 증거겠지요. 병원을 나선 전 착잡했습니다. 이 사실을 사무소 모두에게 알릴 수는 없었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지니까요.

결과적으로 그 때의 저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였죠.

며칠 안 가 큰 라이브 무대가 잡혔고 일이 급증했습니다. 그 후는...대충 짐작이 가시겠죠? 잔업이 생겨 드링크를 마시고 야근. 이후 라이브가 끝나고 무대 뒤에서 아이돌들을 맞이하다가 의식을 잃고 그대로 쾅.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더군요. 그 때 절 쳐다보는 의사 선생님의 허탈한 표정은 잊을 수가 없더군요. 지금도 죄송스럽구요.

"죄송...합니다."

"아뇨. 저희야말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남았죠?"

"길어야 1주일입니다."

이상하게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화가 나지 않더군요. 제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까요. 오히려 뭔가 홀가분해진 기분이였습니다. 하지만 사무소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아이돌들한테는 비밀로 해 주시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였죠. 몸 소중한 줄 모르고 막 굴리다가 멋대로 판단해서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야 한다는게...그래도 정말 오랜 기간동안 함께 한 동료들이 우는 모습을 보긴 싫었어요.

며칠 안 가 졸음이 쏟아졌고 그대로 잠들었죠.

 

...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렇습니까."

"바보같았죠?"

"아뇨.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거든요."

"정말로요?"

"네. 기억은 그 사람과의 연이 중요한 겁니다. 자신과 타인의 관계, 즉 연이 서로가 긍정적이라면 기억이 뚜렷하지만 자신이 타인에게 악감정이 있다면 그 타인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고 타인이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다면 그 타인의 행적이 흐릿해지죠."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그 사람들도 절 좋게 기억하고 있어서."

"당신이 떠난 후 그들은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무너져 내린 사람들도 많았구요."

"대충 누군지는 짐작이 가네요."

"그래도 그들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평생 기억할 겁니다."

"사장님한테 개인 사정으로 외국으로 갔다고 한 게 도움이 되긴 했네요."

"자, 그럼 가시죠. 심사 후 새 기회를 잡을지, 이대로 계속 남을지, 아니면 벌을 받을지 정해질 겁니다."

"저...혹시 새 기회를 가진다 해도 본인이 원한다면 계속 남을 수 있나요?"

"아마 가능할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가죠."

---------------------------------------------------------------------------------------------------------------------------------------

번역판의 [치히로「모바P는 한자를 읽을 수 없다」]를 보고 떠올랐습니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