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별의 인도자 1

댓글: 4 / 조회: 1055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01-08, 2016 20:09에 작성됨.

 

 미시로 상무의 사무실은 어두웠다. 346 프로덕션의 신관 최상층에 자리한 그 방은 오랜 시간 동안 주인 없이 비어있었지만, 미시로 상무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그 주인을 찾게 되었다. 아직 이틀 정도 되었을 뿐이지만 최상층의 방은 처음부터 그녀의 방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미시로 상무는 사무실의 불을 잘 켜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해가 지고 바깥이 어두워지면-물론, 미시로 상무가 그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남아있다면-불이 켜졌지만 보통 신관의 최상층은 항상 어두웠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미시로 상무는 조금 어두운 분위기를 선호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미시로 상무가 그렇게 말해도 주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기에 전기를 아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은 역시 본보기가 된다면서 감탄하곤 했다. 바보들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미시로 상무의 주변에는 바보들뿐이었다. 이 아이돌 사업부라는 건 어떤가.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을 뿐이지 제각기 멋대로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효율이 낮다. 재능과 자원의 낭비다. 

 

 그래서 미시로 상무는 모든 걸 백지화하기로 했다.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더욱 효율적인 방향으로. 그 와중에 다소의 이견과 갈등이 빚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럴 때 살아남는 자가 진정으로 빛나는 자라고 할 수 있겠지.

 

 미시로 상무의 예상대로 반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도태되는 자는 서서히 썩어 죽어갈 뿐이다. 실제로 반발을 일으킨 자 중에서 제대로 된 반박이나 해결책을 가져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 한 명,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프로듀서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미시로 상무는 신데렐라 프로젝트, 보통 CP라고 부르는 그 구성원이 신경 쓰였다. 예전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영락한 프로듀서가 첫 번째였다. 그는 무뎌져 있었다. 그의 성공담은 미시로 상무도 들은 바가 있었지만 지금 그 남자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아직 그 예리함이 완전히 다한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실망이었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사무원 쪽이었다. 그녀의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다. 하지만 묘한 이야기를 들어버려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똑똑똑 하고 문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

 

 누군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이 사무실에 올 수 있는 건 미시로 상무가 직접 부른 사람들뿐이었으니까.

 

 "실례합니다."

 

 갈색 문이 열렸다. 복도의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갈색 머리의 사무원은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자네가 센카와 치히로라는 사무원인가?"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다. 미시로 상무는 센카와 치히로를 알고 있고 센카와 치히로는 미시로 상무를 알고 있었다. 효율을 중시해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기로 알려진 미시로 상무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문득 그녀는 질문을 입에 올렸다. 확인하는 것처럼, 자기 암시를 하는 것처럼.

 

 "그렇습니다."

 

 미시로 상무와 치히로가 직접 대면하는 건 처음이었다.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 아니고, 아버님께서 자네를 꼭 만나보라고 말씀하셔서 말이지."

 

 미시로 상무는 책상 위에 손을 모아 올려두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이 위화감의 근원이었다. 치히로의 과거는 이미 서류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개 사무원이 아버님이 신경을 쓰실 정도란 말인가. 아니, 애당초에 그녀는 왜 사무원으로 346 프로덕션에 들어온 것인가.

 

 "회장님께서요? 저를?"

 

 치히로는 놀란 모습이었다. 하지만 미시로 상무의 눈에는 다른 무언가가 더 느껴졌다. 어쩌면, 그녀는 놀라는 척을 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 웃음 뒤에 무언가 더 있다고.

 

 "아이돌 부문을 새로 맡으면서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어."

 

 미시로 상무는 문득 떠보는 것처럼 슬쩍 말을 흘렸다.

 

 "저는 일개 사무원일 뿐입니다만…"

 

 치히로는 곧바로 내빼는 모양새였다.

 

 "그건 아무래도 좋아. 자네가 아이돌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건 사실이고, 아버님께서 실언을 하실 분도 아니니까 말이야."

 

 미시로 상무의 본심은 조금 달랐다. 회장이 실언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은 건 믿지 않았다. 미시로 상무에게 회장의 말은 보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무원 한 명을 콕 집어서 말할 분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센카와 치히로에게는 무언가 있다.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런 불안감이 생겨났다. 직접 보고 나서도 떨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자네는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아이돌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지긋이 바라보는 미시로 상무의 시선에 치히로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다들 뛰어난 인재들이죠. 귀엽고, 예쁘고, 매력 있고."

 

 하지만 미시로 상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어. 내가 자네한테 원하던 말은 그런게 아니야." 

 

 치히로 역시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면 저는 상무님을 실망하게 해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치히로는 여전히 엷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미시로 상무는 치히로의 웃음이 거짓이라고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직감일 뿐이었다. 오히려 모든 행동과 표정과 어조는 치히로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심스러웠다.

 

 "…그래. 그럼 조금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지. 나는 신데렐라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시로 상무는 조금 과감하게 말을 꺼냈다. 자칫 성급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의 흐름이었지만 치히로는 여전히 웃는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회사라는 건 어린아이의 고집으로만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자를 때는 확실히 잘라야 하고 포용할 때는 확실히 포용해야 하지. 모두가 각자의 방법을 고수하다가는 끝이 없어. 효율이 떨어지지."

 

 꽉 쥐고 있었던 미시로 상무의 손이 펴졌다.

 

 "그런데 CP는 뭔가 달랐다. 아니, 이상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CP는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미시로 상무는 그 차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다.

 

 "유능한 프로듀서가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는 유능하고, 이전에도 그 능력을 증명했지요. 이번에도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치히로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 뿐은 아니었다. 다른 부서들도 다 각자의 생각이 있었을 텐데도 미시로 상무의 방침에 따랐고, 반발이 있을지언정 결국 명령에 따랐다. 하지만 CP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CP의 총 책임자인 이마니시 부장을 필두로 해서 미시로 상무의 방침에 대한 확연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다른 부서의 인원들이 스스로 생각할 줄을 모르는 멍청이들만 모여있다고 가정하는 건 너무나 큰 비약이다.

 

 "그만큼 신뢰를 얻은 게 아닐까요? 상무님께서는 해외에 계시다 오셨으니 잘 알지 못하는…"

 

 그것은 치히로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실수였을까, 미시로 상무에게는 순간 웃음을 띤 가면 뒤의 치히로의 진짜 얼굴이 보인 것 같았다. 그건 마치

 

 "지금 내가 해외에서 막 돌아와서 아무 물정도 모르는 채라고 말하는 건가?"

 

 노기를 띤 목소리에 처음으로 치히로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럴 리가요. 불쾌하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깨졌다.

 

 "…오히려 저는 상무님과 생각이 같은 걸요."

 

 불온하고, 불량하고, 불안했다. 센카와 치히로의 얼굴은 똑같이 웃고 있었지만, 조금의 변화도 없었지만,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이야기지?"

 

 미시로 상무는 무언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아름다운 성에 어울리는 건 선택받은 공주님뿐. 반짝이는 그 영광에 어울리는 사람뿐이라는 거죠."

 

 '아름다운 성에 어울리는 건 선택받은 공주님' 이라는 건 346 프로덕션, 즉 미시로의 모토였다. 미시로라는 이름을 회사에 내건 신념의 발로였다.

 

 "예전에 우연히 회장님과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분명, 아이돌 부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가수나 배우 방면에서도 수많은 별들을 만들어 낸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치히로의 입에서 아버지인 미시로 회장의 이야기가 직접 나온 건 상무에게도 조금 의외였다. 

 

 "그런데, 어째서?"

 

 치히로는 미시로 상무와 뜻이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속한 신데렐라 프로젝트가 보이는 행동은 반대가 아닌가.

 

 "알고 있습니다.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그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걸. 기껏해야 그중의 몇 명 정도겠죠. 프로듀서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치히로는 갑자기 웃었다.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헤프게 보였다. 치히로가 고개를 숙인 이후로 만들어진 가라앉은 분위기가 다시 깨졌다.

 

 "뭐 예외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요? 모두가 공주님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눈앞의 여자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사무원처럼 보였지만 본심이나 의도 같은 걸 전혀 읽을 수 없고 작은 단편들만 스칠 뿐이었다.

 

 "그럼 이참에 아예 반대되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도 좋겠네요. 상무님께서 생각하는, 공주님들을 모으는 거죠."

 

 머릿속에서 후보들을 추리는 것처럼 치히로는 과장스럽게 손을 꼽으면서 말했다.

 

 "이미 그럴 생각이었다. 준비하고 있어."

 

 크로네라는 프로젝트. 그 이름처럼 왕관을 쓸 자격이 있는 자들을 모으는 계획. 미시로 상무는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머, 역시 대단하시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미시로 상무는 힘이 쭉 빠졌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까지의 프로젝트를 백지화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기존의 아이돌들을 해고하거나 할 수는 없다. 물론 회사 측에서 주어지는 지원이나 대우가 달라질 것이고, 그로 인해 아이돌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 부서의 개편 등의 이유로 아이돌들을 쉽게 내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CP는 그런 맹점을 찌른 셈이었다. 미시로 상무가 강제로 힘을 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랬다가는 반발이 더욱 커진다.

 
 "그럼 가 봐."
 

 기다렸다는 듯이 치히로는 고개를 숙였다. 누가 봐도 예의 바른 인사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뒤를 돌아 사무실을 나가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밝고 완벽한 웃음이었다.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