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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미카 (삽화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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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1, 2016 20:36에 작성됨.

“달다.”

 

할로윈, 서양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날. 그러거나 말거나, 프로듀서는 잠옷차림으로 코타츠에 처박혀 있었다. 작은 17인치 티비에서 흐르는 할로윈 특선 무대를 멍하니 지켜보며 그는 츄잉캔디를 질겅질겅 씹어대고 있었다.

 

코타츠 위에는 으레 상상하는 귤이 아닌 여러 사탕들이 즐비했다. 녹화방송이야 진즉에 끝낸 지 오래였지만 오늘의 라이브는 꽤나 치열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보니 신경이 날카롭기도 했지만, 성황리에 무대를 끝마쳤다. 더구나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할로윈 의상을 입은 아이들을 보니 꽤나 흐뭇하기도 했던 프로듀서였다.

 

덕분에 퇴근은 빨랐고, 담당하는 아이들과 멋진 식사모임도 한 뒤에 귀가했다. 사장의 아량덕분에 빠르게 돌아와 편히 쉬고 있던 프로듀서였지만, 홀로 맥주를 마시고 멍하니 있던 중에 날아온 메시지는 번쩍 정신을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치히로였다. 그녀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집으로 찾아갈 수도 있으니 사탕을 잔뜩 준비해놓으라는 것. 프로듀서는 잠시 문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얼마나 세게 일어났는지 코타츠가 뒤집어져서 정리하는데 꽤나 애먹은 프로듀서였다.

 

일단 옷을 챙겨 입고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집안에 사탕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기에 거의 바닥을 보이는 캔디 코너의 물건들을 거의 싹 쓸어오다시피 했다. 추운날씨에도 땀나게 달려갔던 그는 혹여나 집에 누군가 온건 아닐까 주변을 한 바퀴 뛰어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코타츠 위에 사탕봉지를 뿌린 그는 숨이 찬 와중에도 사탕을 풀고, 아이들의 취향에 맞춰서 사탕을 분류했다.

 

온다고 하면 카오루나 니나같은 애들이 오겠지. 졸려서 안 오려나. 안즈 이 녀석은 귀찮다고 안 오겠지, 아니, 사탕이 걸려 있으면 어떻게든 올지도 몰라.

 

빠르게 분류를 끝낸 그는 냅다 옷장에서 양복을 꺼내 입었다. 흐트러진 모습은 위험하다. 만반의 준비를 하자 다짐한 그는 완전 업무 상태로 코타츠에서 긴장한 채로 대기했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났다. 해는 이미 저 멀리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고, 얼마 있으면 새벽이 찾아올 법한 시간이었다. 지쳐서 코타츠 위에 널브러진 프로듀서는 바스락거리는 사탕 한 봉지를 목격했다. 이 시간이면 애들은커녕 아무도 안 오겠지. 작은 봉지를 까자 동그란 사탕이 데구르르 위를 구르고, 프로듀서는 굴러오는 사탕을 입에 쏙 넣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당분이 녹아 흘러든다.

 

사탕이라는 것도 먹어본지 오래인 프로듀서였다. 가끔 받는 것이야 있었지만, 자신보다 좋아하는 애들이 워낙 많았기에 그는 대부분 양보했다. 프로듀서에겐 주로 쓰디쓴 커피나 마셨던 기억들이 샘솟는다. 티비에선 심야 방송들이 나오고, 그는 멀뚱히 사탕을 굴리다가 핸드폰을 들어 치히로에게 답장을 보냈다. 정말 오는 거 맞아요? 어째 속았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기에 확인할 겸 보냈건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포기했다.

 

이 시간에 누가 오겠어. 속단한 그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코타츠로 파고들었다. 시원하게 뚜껑을 따고,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술만 마시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입이 심심하다. 프로듀서는 쌓여있던 사탕하나를 뜯어 씹었다. 우유맛이 나는 츄잉캔디. 진한 단맛이 입안에서 퍼지는 것이 약간 떪은 맥주 맛을 씻어주었다.

 

“달어.”

 

말이 끝난 참이었다.

콩콩콩, 문 두드리는 소리. 허름한 철제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프로듀서의 귀를 때렸다. 이미 누군가 오리라곤 예상도 하지 못 했던 그는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통 이 시간에 들르는 사람은 건물의 관리인 정도가 전부였다. 또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혹은 연체한 요금이 있나 생각한 그는 순간 주눅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있을 일은 없었다. 젊은 관리인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부른 건 아닐까 예상한 그는 사탕 몇 개를 들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별로 생각 없으니 이거나 먹으라고 넘겨줄 생각을 품었다.

 

잠금을 풀고 문을 당긴다.

 

“오늘은 형이 좀 쉬고 싶거,”

 

사탕을 내밀던 손이 멈춘다. 사탕을 쥐고 있던 엄지와 검지에 힘이 풀린다.

 

바로 앞에 보인 작은 형상, 주변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가녀린 모습. 주홍빛을 받아 진하게 빛나는 머리칼을 박쥐모양의 머리끈으로 묶은 스포티한 스타일. 가는 선을 그리는 목에 둘러진 하얀 목장식과 코트의 사이로 흐르는 뽀얀 피부가 깊은 가슴골까지 이어진다.

 

“... 미카?”

 

프로듀서는 얼빠진 목소리로 앞선 미카의 이름을 뱉어낸다. 그녀가 입고 있던 코트는 평범한 느낌이었지만, 뒤에는 작은 박쥐 날개가 달려 나름 할로윈 분위기를 낸 흔적이 역력했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굳어버린 사람은 프로듀서뿐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당당하던 그녀의 모습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있었다. 가로등의 빛마저 해치고 나오는 붉은 홍조가 미카의 볼가에 만연하다. 노출 많은 화보도 곧잘 찍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던 프로듀서였기에 썩 신선한 광경이었다. 루즈를 바른 입술이 우물거린다. 바짝 날을 세운 속눈썹이 파르르 흔들린다. 진한 색을 담은 눈동자가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머문다.

 

“저기, 미카?”

 

아무 말 없이 현관 앞에서 우물쭈물 하기만 하는 미카를 찬찬히 살피던 프로듀서는 부쩍 걱정이 들었다. 밤의 스산한 온도를 감당하기엔 그녀의 옷차림이 너무 얇았다. 설마 치히로씨가 말했던 게 이건가. 아무리 온다고 해도 너무 늦잖아. 프로듀서는 슬슬 미카를 안에 들일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순간, 용기를 얻은 미카의 도톰한 입술이 열린다.

 

“트...”

“트?”

 

손을 드는 미카. 손가락에 붙인 네일 팁이 뾰족하다. 불그스름하게 물들인 손톱이 섬짓하다기보단 예쁘다는 인상을 먼저 심어준다. 미카는 손가락을 구부려 짐승의 발모양처럼 만들었다. 더욱 붉어지는 볼가를 안고, 그녀는 용기를 낸다.

 

“Trick and Treat...”

“...”

쥐고 있던 사탕이 떨어져 데구르르 구른다. 순간 작은 심적 충격을 받은 프로듀서는 그대로 정지한 채, 미카의 수줍어하는 얼굴을 뇌리에 새겼다. 생각은 빠르게 돌아간다. 프로듀서는 미카가 내뱉은 말의 의미를 급히 파악하고, 주머니에서 새 사탕을 꺼냈다.

 

어흥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미카의 미열이 점점 강해진다. 스스로 찾아오고 싶어서, 혼자 오고 싶어서 다른 아이들이 가려는 것을 전부 만류했다. 굳게 마음을 먹고, 부끄러운 복장을 하고 개인적으로 온 것은 좋았으나, 프로듀서에게 애교 같은 짓을 하기엔 너무도 많은 수치가 몰아쳤다. 매일 보아왔던 얼굴인데도 정작 이 순간 마주치지 절로 얼굴이 달아올랐고, 쉽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마음가짐이 멀리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어찌 저찌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꾹 참고 말했건만,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엔 앞으로의 걱정이 가득하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같은 말만 반복하는 자신의 머릿속이 야속했다.

 

프로듀서는 패닉에 빠진 미카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손바닥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갠다. 바스락거리는 비닐의 소리가 들리고, 미카는 겨우 초점이 잡힌 눈동자로 앞선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프로듀서...?”

 

그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하다. 아까만 해도 멍청하게 헤 입을 벌리고 있었건만, 어느 샌가 일을 할 때의 모습처럼 멋지게 바뀌어 있었다. 미카의 볼가에 머물던 열이 더욱 커진다. 가끔 보며 가슴 떨리던 모습. 일하면서 가끔씩 흘겨보던 그 얼굴이 지금은 너무나도 가깝다.

 

“일단 들어와.”

 

순간 손목을 잡은 힘이 거세진다. 문 앞에 서있던 그녀를 당기는 손짓. 당황한 미카는 불규칙한 힐 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이끌렸다.

 

“아, 자, 잠... 깐...?”

 

미카를 완전히 안으로 들이고, 프로듀서는 문을 닫는다. 밖의 추운 공기가 잠잠해지고, 집안의 온기가 미카의 몸을 감싸주었다. 그녀는 손을 모으고 꼼지락거렸다. 갑작스런 그의 거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굳은 의지를 품은 그의 눈매. 미카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진지한 눈빛이 그녀를 직시한다. 부드럽게 미카의 어깨를 감싸고, 프로듀서는 천천히 미카에게 입을 열었다.

 

“... 장난 칠거지?”

 

살포시 떨어지는 고개, 힐끗 눈동자만 들어 응망하는 미카의 눈동자.

 

“... 응.”

 

격한 마음의 고조가 오히려 둘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작은 끄덕임과 함께 미카는 발꿈치를 들어 낮은 굽의 하이힐을 벗어냈다. 어깨를 감싸던 손이 양 코트자락을 조여 드러난 살결을 감싸주며 떨어진다. 곧 좁은 복도를 걸어가는 프로듀서의 넓은 등이 미카의 어슴푸레한 눈동자에 어렸다. 수줍은 발가락이 몇 번 꼼지락대고, 미카는 작은 발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른다. 작은 소리를 내는 나무 바닥의 삐걱거림. 차분히 내려앉은 긴장이 감도는 방안. 티비는 꺼지고 새벽의 적막함이 방안을 휘감는다.

 

코타츠 위에 놓인 수북한 사탕더미. 미카는 쭈뼛쭈뼛 그의 단칸방에 들어오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실례합니다...”

 

굳어진 마음을 풀어내려 내뱉은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프로듀서는 적잖게 소심해진 미카의 모습을 보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춥지? 안에 들어갈래?”

 

어색한 미소로 프로듀서는 미카에게 청한다. 붉어진 볼가를 느끼며 고개만 끄덕였다. 방안의 온도 때문에 달아오른 것이라 굳게 믿으며 머리끝까지 차오른 열기가 얌전히 식어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스타킹으로 감싸인 고운 다리가 코타츠 안으로 들어간다. 프로듀서는 가만히 걸칠 것을 권하지만, 미카는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거절했다.

 

어째선지 꺼진 티비. 조용한 새벽의 공기소리. 방안에 흐르는 미카와 프로듀서의 숨이 차분하다. 무어라 대화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 끈질기게도 생각했지만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거, 다 뭐야...?”

 

굳은 공기를 풀어내고 먼저 가볍게 말을 건넨 사람은 미카였다. 코타츠 위에 산처럼 쌓인 가지각색의 캔디들에는 꽤나 본격적으로 준비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프로듀서는 작은 한숨을 내뱉곤 미카가 있던 코타츠 안으로 다리를 넣었다. 발끝이 길게 뻗어 있던 미카의 허벅지를 건드리곤, 깜짝 놀라 급히 무릎을 굽혀 앉는다.

 

“치히로씨한테 연락받고, 급히 사왔지. 애들이 들를지도 모른다고 들어서.”

 

미카는 살짝 찔렸다. 간다고 했던 애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 찾아가고 싶은 맘을 품고, 일일이 한명씩 찾아가서 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 겨우 밤늦게나마 찾아왔건만, 일이 요상해지고 있었다. 프로듀서의 대답을 듣고 미카는 스스로 열을 키운다. 홀로 찾아와서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프로듀서가 건네주었던 사탕을 손바닥에서 굴린다. 평소 같았으면 가벼운 스킨십도 마지않는 즐거운 대화가 되었는데, 지금만큼은 묘한 느낌이다.

 

“참 아이들을 좋아하네, 프로듀서도.”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대화. 미카는 달아오른 미열과 수줍음을 잊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건넨다. 그런 와중에도 자꾸만 머리 한 구석을 괴롭히는 것은 하기로 했던 ‘장난‘이었다. 사탕을 받아도 장난을 칠거야. 깊지 않은 상념에서 나왔던 목소리는 여전히 미카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프로듀서가 무엇을 요구할지, 어떤 일을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사탕하나를 입안에 담는 프로듀서. 서서히 돌아간 고개가 미카의 뾰족한 속눈썹을 관찰한다. 자각하지 못하는 긴장 탓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눈동자는 작은 미소를 품지만 불안한 듯 미동한다.

 

“좋아해.”

“아?! 아...?”

 

갑작스레 들어버린 교묘한 의미. 깜짝 놀라버린 미카를 향해 지긋이 웃으며 프로듀서는 말을 이었다.

 

“프로덕션의 아이들, 전부 좋아해.”

“아, 그, 그렇지? 하긴, 프로듀서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역할이니까...”

 

미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마음을 추슬렀다. 파하하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당연한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그 작은 변화를 프로듀서가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눈매를 세우고 슬그머니 미카를 향해 묻는다.

 

“좋아하지, 정말로. 정말 좋아해, 미카.”

“그, 알겠으니까! 알겠으니까 그만해!”

 

금세 시뻘게진 얼굴. 미카는 참지 못하고 양손으로 볼가를 가렸다. 이미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졌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열기가 이성을 흩뜨린다. 애타는 절규, 프로듀서는 작게 웃으며 미카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낸다.

 

“장난, 칠래?”

 

작은 도발이었다. 굳어있는 미카를 풀어주기 위한 작은 배려와, 욕망이 뒤엉킨 달램이 섞인 권유가 미카를 향해 흘러든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눈만 동그랗게 떴다. 놀림 받는 기분, 어딘가 분해서, 안달 나서 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장난을? 미카는 더불어 몰아치는 혼란을 느낀다. 분명히 바라고 있는 그의 또렷한 눈빛이 보이지만, 어떤 부끄러운 짓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프로듀서는 부드럽게 그녀를 이끈다. 자상한 눈빛, 수줍어하는 미카의 손을 잡고, 차갑지만 내제된 작은 미온을 느끼며.

 

“장난 쳐줄래...?”

 

 

*

 

 

미카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 저기, 장난은 칠건데... 이래야 해?”

“물론.”

“하아... 이런 사람이었을 줄은 몰랐어. 좀 더 건실하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양손을 묶은 프로듀서는 히히, 웃고만 있다. 그렇게나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약간은 기대도 품었던 미카였건만, 그의 당돌한 요구는 지금까지 품고 있던 긴장감을 싹 풀어놓는 것이었다. 독특한 취향이라고 해야 할까. 미카는 자신의 팔을 묶어달라는 프로듀서의 요구를 듣자마자 하?! 떪은 소리를 터트리고 말았다. 순간 부서져버린 굳은 분위기가 풀리고, 프로듀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설명했다.

 

작은 묘미를 위한 일일 뿐이다. 세게 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낼 정도로만 부탁한다. 당연히 자신의 취향이 듬뿍 묻어나오는 발언이었기에 미카의 눈동자는 반달을 그렸지만, 곧 이해해주었다. 이런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호감을 가진 남자의 이런 취향도 받아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 미카는 꽤나 넓은 마음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서, 묶는 건 했는데... 이제 뭘 해주면 되는 거야?”

 

남자의 두꺼운 손을 묶느라 애먹었던 미카는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쳤다.

 

프로듀서는 묶인 손을 몇 번 당겨본다. 생각보다 쌔게 묶였다. 아무래도 작은 감정이 담긴건 아닐까 추측하며 그는 미카를 향해 웃었다.

 

“장난은 미카가 치는 거니까, 자유롭게?”

“...”

 

지긋이 노려보는 눈길. 참 막무가내인 남자... 한심하다는 조롱의 눈빛을 보내보지만, 그래봐야 더 기뻐할 것이 뻔하다. 미카는 잦아든 미열을 느끼며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양복도 벗어던지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프로듀서. 단단한 목덜미가 불끈거리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

 

순간 가라앉았던 그녀의 열기가 서서히 들끓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정말 그를 당황시킬 수 있는 멋진 생각이 떠올랐는데, 스스로 망설인다.

 

“... 정말 한다?”

 

굳은 의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천천히 허리를 숙여 앉는다. 헐렁거리는 목덜미의 단추를 풀어내고, 두터운 목덜미가 후련히 드러나도록 어깨까지 옷을 벗겨낸다.

 

“미, 미카?”

“조... 용히 해...”

“...”

“가만히... 가만히 있어...”

 

천천히 다가가는 입술. 움찔거리는 어깨와 어렴풋이 땀을 흘려내는 건강한 목덜미. 미카의 곱게 난 이가 입술의 위아래로 하얗게 드러나고.

 

 

따스한 입속의 온도와 흘러나온 침의 축축한 촉감이 프로듀서의 목덜미에 작은 소름을 전한다.

미카의 대담한 장난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지만, 안에서 불어오는 작은 욕망들이 커져간다.

프로듀서는 이를 세워 살포시 깨물어오는 부드러운 촉감을 기억 깊은 곳에 새긴다.

작은 실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입술, 붉은 실선의 흔적을 남기며 떨어지는 미카의 살결.

짧은 마주침이지만, 둘은 완전히 새빨개진 채로 서로를 외면한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속에서 가득 차오르는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만 간다.

 

“... 미카...”

“... 응...”

 

침묵을 깨는 목소리에 미카는 조용히 대답한다.

 

“할로윈 지났네.”

“... 그러네.”

 

다시 이어지는 침묵. 욕망에 따라 쉽사리 건네기 힘든 요청이 프로듀서의 입술에서 멤돈다.

 

“... 자고갈래?”

“... 응.”

 

 

   

일러스트 - 네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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