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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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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7, 2015 10:29에 작성됨.

평소에 그리 자주 꿈을 꾸는 건 아니지만, 종종 재밌는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던가, 갑자기 로봇을 타고 악당과 싸운다던가, 산더미처럼 쌓인 과자를 마음껏 먹거나 하는 것들- 에헤헷, 대부분 무척이나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것들이지만요. 하지만 언젠가 꾸었던 꿈은 좀 달랐습니다. 슬프거나 무서운 꿈이었냐고요? 그것은 아닙니다.

 

혹시 현실과 무척이나 닮아서 착각할 정도로 리얼한 꿈이었냐고요? 음.....무척이나 '현실감' 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절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대체 무슨 꿈이었냐고요? 헤헷, 그렇게 보채시지 않아도 알려드릴게요. 제가 꾼 것은 말이죠, 그러니까- 음.....

 

공원에서 치하야쨩과 같이 노닥거리는 꿈이었어요.

 

네? 그게 뭐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거냐고요? 하긴 그렇죠. 언제나 그런다는 건 아니지만, 종종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니까요. 그렇지만 꿈 속의 치하야쨩은 제가 잘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치하야 「......」

 

순진한 갈색 눈망울이 저를 올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살짝 컸던 키는 제 허벅지에 닿을까 말까한 정도였고, 살짝 새초롬한 눈빛이 조금은 둥글게 보였습니다. 푸른 긴 생머리는 그대로였지만요.

 

하루카 「에.....」

 

치하야쨩은 자기 집에 놓여진, 작은 액자 속에 있던 모습과 똑 닮아있었습니다. 우리 둘이 처음 만난 건 765 사무소에 들어가면서부터였으니까, 이런 모습은 그것으로밖에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신기하죠?

 

치하야 「안녕, 하루카」

 

어린 치하야쨩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음, 여기서는 알던 사이라는 설정일까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저는, 일단 인사를 받아주기로 했습니다.

 

하루카 「어, 응! 안녕」

치하야 「오늘도 산책?」

하루카 「그, 그렇네! 날씨가 좋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올려다본 하늘은 다행히 무척이나 맑았습니다.

 

치하야 「나도 같이 할래」

 

치하야쨩은 그렇게 말하며 무척이나 작은 손을 슥 내밀었습니다. 으흠, 절대 거절 같은 건 못하지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공원 이곳 저곳을 걸어다녔습니다.

 

치하야 「햇살이 따끈따끈해서, 기분이 좋아」

하루카 「응. 그리고 바람도 살랑살랑- 이라는 느낌」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 간데도 없고, 기분 좋게 느긋히 산보. 치하야쨩의 발걸음에 맞춰서 천천히, 작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주위를 슬쩍 둘러봤습니다. 한가할 때 자주 시간을 때웠던 공원과 닮은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치하야 「하루카, 저기 좀 앉다 가자」

 

치하야쨩이 벤치를 가리키고는 제 손을 쭉 잡아당겼습니다. 그에 맞춰 저는 적당히 힘을 빼고 끌려다녀주었죠. 살짝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지금 모습과는 정반대였기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치하야 「읏차」

 

치하야쨩이 폴짝 벤치에 앉고나서, 저도 곁에 따라 앉습니다. 치하야쨩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땅에 닿지 않는 두 다리를 왔다갔다, 왔다갔다. 정말로 아이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루카 「저기, 치하야쨩. 하늘에는 뭐가 있어?」

치하야 「음.....저기 구름이 보여」

하루카 「아, 그렇네. 그러면 치하야쨩은 저게 뭘로 보여?」

치하야 「그냥 구름이잖아」

 

토끼니, 양이니 하는 대답을 기대했던 저는 그 말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답니다. 어려도 역시 치하야쨩은 치하야쨩, 이라는 걸까요.

 

하루카 「나는 저 구름이 양처럼 보이는데, 치하야쨩은 어때?」

치하야 「음.....」

 

시선을 딴 데로 돌리며 열심히 고민하던 치하야쨩은 곧 이렇게 답했어요.

 

치하야 「엄~ 청 크고 털이 북실북실한 멍멍이」

 

두 팔을 벌려 멍멍이의 크기를 나타내는 게 무척이나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그만 치하야쨩의 머리에 손이 갔습니다. 슥슥, 쓰다듬어주자 치하야쨩은 뭔가 살짝 불만스러운 듯 했습니다.

 

치하야 「정말, 하루카! 이러면 머리가 엉망이 되잖아」

하루카 「아하하, 미안 미안」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볼을 부풀리는 치하야쨩이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역시 언제까지고 삐진 상태로 둘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한 저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심코 주머니를 뒤적거렸는데, 뭔가 부시럭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뭔가하고 꺼내보니 쿠키 봉지였습니다. 그것도 내용물이 온전한. 이 익숙한 포장지를 보니 아마 제가 만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루카 「치하야쨩」

 

이거라면 치하야쨩을 달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직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치하야쨩을 불렀습니다.

 

치하야 「.....뭔데」

하루카 「이거 줄테니까 화 풀어주지 않을래?」

치하야 「.....」

 

애써 무시를 하는 치하야쨩이었지만, 봉지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슬쩍 슬쩍 곁눈질을 하던 치하야쨩은 결국 항복했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치하야 「...응..」

 

역시, 어린애한테 단 것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겠지요. 아, 물론 저한테도.......이지만요

 

하루카 「에헤헷, 고마워」

치하야 「쿠키, 받은 건 나니까 오히려 이쪽이 고마워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어쨌든 고마워. 잘 먹을게」

 

두 손으로 리본을 술술 풀어내고, 조심스럽게 입구를 벌려 내용물을 확인한 치하아쨩이 즐거운 듯 웃었습니다.

 

치하야 「맛있어!」

하루카 「그래?」

치하야 「자」

 

순간, 달콤한 향이 훅 하고 밀려들어왔습니다. 눈 앞에 바둑판 모양 쿠키가 아주 가까이 보였습니다.

 

치하야 「먹어」

하루카 「엣」

치하야 「.....아- 해, 라고 하는 쪽이 좋아?」

 

그건 좀 부끄러웠기에, 얌전히 손으로 받아먹었습니다. 입안에 퍼지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

 

하루카 「내가 구운 것이겠지만, 역시 맛있네」

치하야 「말이 조금 이상해-」

하루카 「아하하」

 

치하야쨩의 지적을 적당히 흘려넘기는데 성공했습니다.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 「응?」

치하야 「혹시 더 없어?」

하루카 「어디보자....」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하루카 「미안, 그걸로 땡인가봐」

치하야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치하야쨩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직 반쯤 남은 봉지를 오므리고, 입구를 서툴게 묶었습니다.

 

하루카 「다 안 먹어?」

치하야 「이제 유우 꺼야」

 

그렇게 말하며 치하야쨩은 키득키득 웃었지만,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키사라기 유우. 사진 속에서나 보던, 이제는 영영 만날 수 없는 치하야쨩의 소중한 동생.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치하야쨩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슬퍼지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치하야 「하루카? 왜 그래?」

하루카 「아, 그게- 」

 

잠깐, 어쩌면 유우하고도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꿈 속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치하야쨩에게 그 말을 전하려 했지만-

 

딱 그 순간에 그만 눈이 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정말, 꼭 이럴 때 잠에서 깨어나는 걸까요. 헤헤, 그래도 솔직하고 귀여운 치하야쨩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건 좋았지만요. 그 때 이후로는 다시 꾸지 못하는 꿈이지만, 가능하다면 한 번 더 꾸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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