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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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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1, 2012 13:24에 작성됨.

“준비 만반! 문제없다구!”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는 느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로의 주먹을 맞댄 페어리의 세 사람은, 긴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저번 방송데뷔 때 같이 긴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때 이후로 여기저기 영업을 다녀봐서 면역이 생긴 건지, 아니면 그때보다 더 이 녀석들의 실력에 믿음을 갖게 돼서 그런 건지. 아마 둘 다 일거라고 생각하지만.

나 역시 나머지 한 자리에 주먹을 맞대며 말했다.

“너희들이 이 쇼를 끝내는 거야. 페스티벌이 끝나도 관객들 머릿속에 ‘오버 마스터’만이 들리게 만들어버리고 와라.”

“당연하지!”

“물론인 거야!”

“프로듀서님의 뜻대로.”

[프로젝트 페어리. 입장!]

스텝의 외침에 세 사람은 나를 향해 자기들 나름대로 주먹을 꼭 쥐어 보이고, 손을 흔들고, 고개를 살짝 숙인 후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 자, 드디어 아이돌 페스티벌이라는 큰 무대를 열광시킬 요정들의 날갯짓이 시작되는 거다. 다들 눈 똑똑히 뜨고 보라고.



아이돌 페스티벌 당일 아침.
나는 부푼 가슴을 안고 사무소에 도착했다. 드디어 오늘. 프로젝트 페어리의, 한 달 동안 맹특훈을 했던 성과가 나오는 날이니까. 사무실에 도착한 후에도 세 사람이 올 때까지 혼자 안절부절,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하루카가 빙긋 웃으며,

“프로듀서 씨. 긴장되시나요?”

“아니. 긴장되기보다는 들뜬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빨리 현장에 가보고 싶어.”

“에헷. 저희들도 열심히 응원할 테니까. 프로듀서 씨도 힘내세요.”

“그 말은 세 사람이 오면 그 녀석들에게 해줘.”

“네. 물론이죠.”

그렇게 다른 아이돌들이나 리츠코, 오토나시 씨에게 격려를 받으며, 세 사람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곧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히비키, 타카네, 미키 순으로 사무실에 도착했고, 우린 일찍부터 현장에 도달해 분위기를 느껴보는 게 좋다는 리츠코의 조언에 따라 예정시간보다 일찍 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저희도 시간 비는 사람들이랑 같이 응원하러 갈 테니까요!”

리츠코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탑승.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미키가 조수석에, 히비키와 타카네가 뒷좌석에 탑승한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세 사람을 향해 빙긋 웃어주었다.

“솔직히 저번 방송 때는 차에 타자마자 엄청 떨렸는데 말이야. 지금은 그다지 떨리지도 않고, 기분 괜찮은데? 너희들은 어때?”

“나는 절호조라구!”

“진실로, 팬들에게 좋은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미키는 조금만 더 자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느낌? …아후.”

다들 괜찮은 것 같군. 좋아. 출발이다.

이른 시간에 출발한 덕분인지 차도 그다지 밀리지 않아서 좋았다. 미키는 역시나 잠에 빠져들었고, 타카네는 차분하게,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며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히비키는 창밖을 보며 콧노래로 ‘오버 마스터’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만약에 이번 페스티벌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게 된다면 다음엔 뭐할 거야?”

내 질문에 자고 있는 미키를 제외한 두 사람의 시선이 백미러를 통해 내게 향했다. 아직 그것까진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히비키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으음… 물론 언젠가는 솔로활동도 해보고 싶지만, 당분간은 이대로 유닛이 좋지 않을까. 재미있잖아.”

“네. 저 역시 히비키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 동안, 히비키와 미키에겐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페스티벌이 전부도 아니고, 페스티벌 이후로도 당분간은 유닛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나야말로 타카네에겐 많이 배웠다구.”

“뭐. 나도 너희 셋을 프로듀스하게 되어서 좋았다고 생각해. 이제 시작일 뿐인데 이런 소리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싶지만. 아마 프로젝트 페어리가 해산한 후에도 내 기억에는 끝까지 남아있게 되겠지. 뭐니뭐니해도 내 첫 프로듀스 유닛이니까. 히비키도, 타카네도, 경험일천한 프로듀서 따라와 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도 고마울 테고.”

내 말에 히비키와 타카네는 각각 자신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나 또한 마주 웃어준 다음, 시선을 옆자리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녀석에게 돌렸다.

“무엇보다 이 녀석이 정말 의외였지만.”

“그러네. 솔직히 나도 미키는 약간 위험하지 않을까, 했는데.”

“후훗… 두 분 모두. 미키는 그동안 계기를 찾지 못했을 뿐, 그 계기가 주어진다면 그 동안의 열정을 모두 쏟아낼 거라고 저는 믿고 있었답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떻게 들었는지, 타카네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키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으응… 방금 무슨 이야기? 미키 이름이 들린 것 같은 느낌인 거야.”

“호시이 미키.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미키… 뭔가 했어?”

“후훗.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

“으응. 앞으로도 미키만 믿으면 안심인 거야… 아후.”

아. 다시 잠들었다. 미키의 생각을 듣지는 못했지만,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역시 미키도 당분간은 유닛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건가.

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리츠코의 선견지명에 감사해야겠군. 조금 늦게 출발하기라도 했다간 꼼짝없이 차량들 틈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 왔다.”

“흐흥! 여기가 결전의 장소라는 건가? 생각보다 넓잖아?”

야외 스테이지라서 박력이 대단했다. 좌석 역시 대충 훑어봐도 몇 천석은 되는 것 같았다. 여태껏 프로듀서가 된 이후 이 정도 규모의 스테이지는 처음이라(물론 전회의 참고 영상으로 보긴 했다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새삼스럽게 긴장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첫 방송 때에 비하면 견딜만했다. 뭐. 적당한 긴장은 도움이 된다고도 하니까.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부터 진을 치고 있는 열성팬들과 분주히 움직이는 스텝들, 그리고 우리와 마찬가지인 생각을 했는지 이른 시간에도 속속 도착하고 있는 아이돌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우리와 가까운 거리에 막 차에서 내린 낯익은 얼굴이…

“저거. 876프로의 료잖아. 에리랑 아이도 같이.”

내 중얼거림에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내 시선을 따라갔다.

“정말이네. 프로듀서. 쟤들하고는 언제 알게 된 거야?”

“말했잖냐. 내가 저번에 말했던 누나가 876프로 소속이라고. 너희들이야말로 어떻게 아는지 궁금한데.”

“우리 프로랑 876프로는 꽤나 친분이 있으니까. 에리라는 애는 처음 보는 거지만. 헤에… 쟤들도 페스티벌에 참가하는구나. 가서 인사나 하고 올까.”

말을 꺼낸 히비키를 필두로 나머지 두 사람 역시 876프로의 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들을 본 료와 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에리는 아직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지만.
여섯 명의 소녀들은 서로 격려해주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꺼내다가 내 이야기가 나왔는지 히비키가 씩 웃으며 내 쪽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료 쪽이 그나마 나와 접점이 있어서인지, 가장 먼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876프로의 아이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옆에 있는 안경을 쓴 여성(누나의 말대로라면 매니저라고 했었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는 녀석들이랑 경쟁을 하게 되다니, 이거 어째 더 불타오른다구!”

역시 경쟁자가 있어야 시너지 효과가 나는 법이지. 876프로의 존재가 우리들에겐 호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인데 적어도 우리 쪽은 긍정적이다.

슬슬 회장으로 이동. 스텝에게 패스를 받아 목에 건 다음, 세 사람과 함께 회장을 한 바퀴 돌면서 스텝들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까지 마쳤다. 그런 다음 늦은 점심을 간략하게 해결하니 아이돌들의 대기실로 사용되는 건물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어디에 눈을 돌려도 예쁘게 치장한 소녀들이라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 낮은 목소리로 앞에 가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그래도 역시 너희들이 제일 나은 것 같아.”

“흐흥.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잖아. 프로듀서.”

“분명 내가 최고! 당신도 그럭저럭일지도~”

미키는 아예 ‘나는 아이돌’의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건 좋다만, 그 가사는 다른 아이돌들이 듣기엔 문제가 있는 가사라고. 자제 좀 해라.

“아. 여기다. 765프로덕션 프로젝트 페어리의 대기실.”

세 사람을 먼저 들여보낸 다음, 그녀들이 의상을 다 입을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복도는 여기저기 지나다니는 아이돌들로 인해 꽤나 혼잡한 상태였다. 도중에 876프로의 세 사람도 보였고, 어디선가 많이 봤던 녀석들도 볼 수 있었다. 완전 상위 레벨의 아이돌들이 불참하긴 했지만, 역시 대단한 규모의 페스티벌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프로듀서들을 호출하는 자리가 있어서 다녀왔더니, 모두 의상과 메이크까지 완벽하게, 앞으로 있을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편성표다. 사전에 통보된 것과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다시 봐둬.”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가장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우리 것만 확인하느라 미처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 못했었지만, 공교롭게도 876프로의 디어리 스타즈가 우리 바로 앞 순서였다.

“흐흥. 이거 본격적인 경쟁구도라 이건가?”

“그럴 리가. 우리 프로덕션 인지도 엄청 낮은 거 알잖아. 게다가 876프로 인지도는 우리보다 더 낮고.”

“그럼 어째서 우리가 마지막이야? 원래 피날레는 유명 유닛이 차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장님께서 그러시더라. 이번 페스티벌은 경연을 펼쳐서 심사로 점수를 매기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각 공연 순서는 무작위로 뽑게 되었다고.”

“그렇다면, 저희가 마지막 순서에 배정받게 된 건…”

“운이지. 이게 행운인지 불운인지, 어떤 운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뭐. 그래봤자 처음 하던 마지막에 하던 너희들은 별로 상관없잖아? 그렇지?”

내 말에 세 사람 모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고. 처음 내가 이 유닛을 프로듀스 한다고 할 때만 해도 ‘꼴등은 하지 말자.’였는데 말이지. 지금의 목표는 단연 우승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붙기도 했고, 내가 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때 야구부 감독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기도 했고.

“알지? 그 어떤 대회든 간에 목표는 우승이 되어야 한다고.”

세 사람은 내가 처음 그 말을 했을 때처럼 입을 모아 내게 대답했다.

“우승컵. 가장 먼저 프로듀서에게 줄게. 기대하고 있으라구!”

대회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노리려면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두고 노력해야 할 수 있는 거지. 처음부터 막연하게 상위권을 노리면 결코 목표한 바의 위로는 올라갈 수 없다.
토너먼트로 치자면, 16강 전력의 팀이 처음부터 우승을 노리고 열심히 연습하면 언젠가는 8강, 4강, 그리고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겠지. 하지만 목표를 고작 8강 정도로 잡는다면 8강까지는 어떻게 목표달성을 할 수 있겠지만 절대로 그 위는 바라볼 수 없다는 거다. 내가 저번에 유키호에게 해주었던 스즈키 이치로의 명언. ‘상상력의 한계가 곧 그 사람의 한계다.’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거지.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리면 그 사람은, 그 팀은 그 곳에서 끝난다.
그리고 물론 프로젝트 페어리는 여기서 끝날 유닛이 아니다.



대기실 안에 있는 TV에서 사회자가 아이돌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리츠코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이 우리 대기실로 들어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다른 아이들은 밖에서 구경하고 있어요. 원래 저희들도 들어오면 안 되는 건데, 잊은 물건을 갖다 주러 왔다고 해서 잠시 허락받은 거니까요.”

리츠코가 데려온 두 사람은 하루카와 야요이. 완벽하게 우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려는 리츠코의 초이스 같았다. 그리고 그런 리츠코의 선택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것 같았다.

“저기. 출출하실 텐데 요기 거리라도 하시라고 주먹밥 조금 싸왔어요.”

“정말-? 우와- 역시 하루카 최고인 거야!”

“웃우-! 저랑, 하루카 씨랑 유키호 씨가 정성을 듬뿍 담아서 만든 거니까요! 많이 드시고 힘내세요!”

“응! 야요이도 고마운 거야. 미키. 덕분에 힘 낼 수 있어!”

적어도 한 명에게 폭발적인 버프가 된 것 같으니까. 뭐. 딱히 주먹밥 귀신인 미키가 아니더라도 점심을 간략하게 먹었기에 슬슬 배가 고파질 참이었다.

“그럼, 전해드릴 것도 전해드렸으니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응원. 열심히 할 테니까요!”

“보고 있어. 오늘부터 765프로의 대약진이 시작될 거라고.”

리츠코와 두 사람이 나간 이후, 세 사람에게 나머지 녀석들의 격려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사무실을 지키고 계신 사장님과 코토리 씨의 격려전화가 왔다.

“우리. 꽤나 많은 사람들을 등에 업고 있는 거네. 뭐. 난 완벽하니까. 별로 무겁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메일들을 확인하던 히비키가 평소대로 근심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말했다.

“미이. 이어오…”

“미키 넌 일단 입속에 든 것부터 삼키고 말해. 그리고 타카네. 그렇게 먹으면 나중에 댄스 파트 때 힘들지 않겠니.”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프로듀서. 오히려 이렇게 먹어둬야 댄스에서 힘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건가. 에라. 모르겠다. 다들 알아서 잘 하겠지. 나도 배고픈데 좀 먹자. 이 녀석들이 다 먹기 전에.
보온병에 담겨 있는 차를 종이컵에 따라 놓고 주먹밥 하나를 집었다. 차 향을 맡아보니 유키호가 자주 끓여주던 그 차였다. 무슨 차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렇게 먹을 것에 신경쓰다보니 어느새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팀이 스테이지 위로 올라왔다. 네 사람 모두 입만 움직이는 채로 시선은 TV를 향해 집중했다.

“아. 이 노래 알아.”

“유명해?”

“그럭저럭. 하지만 우리들에겐 안 되는 거야.”

미키는 태평하게 이야기한 후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이후로도 몇몇 팀들이 좋은 무대를 보여줬지만, 시큰둥한 반응.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지, 아니면 애써 마음을 다스리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주먹밥을 다 먹은 후에도 TV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세 사람이 처음으로 흥미를 갖고 지켜본 무대는 바로 듀엣무대. 검은색 의상의 긴 생머리 소녀와, 흰색과 붉은색이 섞인 의상의 갈색머리를 사이드로 묶은 소녀. 우리와 마찬가지인 신인유닛이었다.


♬ Never say never - 뉴 제네레이션 (시부야 린, 시마무라 우즈키)


“헤에… 꽤 하잖아?”

히비키가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을 시작으로, 막 잠에 빠져들려던 미키와, 아직 남은 차를 마시고 있던 타카네의 시선 역시 TV로 향했다. 흠… 나는 잘 모르겠다만, 같은 아이돌의 시선이기에 나와는 다른 것이 보이는 건가. 잘 보면 확실히 앞에 나왔던 유닛들보단 더 힘을 쏟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물론 앞에 나왔던 유닛들이 건성건성 했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예상외의 복병이라는 건가? 저 정도는 해줘야 우리도 할 맛이 난다구.”

“…어딘가의 끝판왕 같은 소린 그만 둬라. 히비키.”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하겠어 하지만 언제나 지켜봐주길 바라
강하게 그래 강하게 그곳을 향해 달려 나가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언젠가 도달할 그 날까지


뉴 제네레이션의 무대가 끝나고, 지금까지 들려왔던 환호 중에 가장 큰 환호가 두 사람에게 쏟아졌다.
곧이어 채점이 끝나고, 화면에 점수가 발표되었다. 역시나 지금까지 나왔던 유닛 중 가장 고득점이었다. 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 우즈키라는 이름의 소녀가 린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끌어안고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그, 그만해. 우즈키. 아직 끝난 것도 아니… 앗. 마이크가!]

무언가 깨달은 두 사람이 허둥지둥 무대를 내려가고, 사회자가 웃으며 다음 참가 유닛을 호명할 때 대기실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슬슬 나오라는 스텝의 전언이겠지.

좋아. 드디어 코앞까지 다가왔다.



페어리의 세 사람과 나는 스테이지 뒤편에서 모니터를 통해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분홍빛 의상을 입은 세 사람을 보고 있다. 클로즈업 카메라를 통해 무표정의 에리와 침을 꿀꺽 삼키는 아이와 주먹을 꾹 쥐고 있는 료가 잘 보였다.


♬ “HELLO!!” - 디어리 스타즈


지금 목표를 향하는 나만의 스토리
Brand New Touch 시작하자
Say “HELLO!!”


히비키도, 타카네도, 미키도 완벽하게 집중한 채로 디어리 스타즈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이제 슬슬 다음이 자신 차례인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살짝 긴장이 되기 시작했지만, 곧 심호흡으로 떨치고 화면에 시선을 두었다. 이 녀석들도 엄청나게 노력한 것이 눈에 보이는구나. 뭐. 누군들 노력을 안했겠냐만, 세 사람의 호흡이 정말 착착 맞아떨어지는 게 보기 좋았다.


망설일 때도 있어
가끔씩 괴로운 일도 있지만
하면 된다고
그것이 자신과 오늘의 암호

어떤 허들이라도
클리어해가는 현실
좋아해요 신경 쓰여요
절대로 지지 않는 소원


한동안 말이 없길래, 이 녀석들 설마 긴장이라도 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곧 히비키의 뒷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히비키의 깍지 낀 손에서 손가락이 리듬을 타고 있는 걸 보니, 이 녀석. 빨리 나가고 싶어서 좀이 쑤신 모양이다. 미키 역시 미소 짓는 표정으로 “HELLO!!”의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안심해도 되는 거겠지?


지금 탐스럽게 피어 싹튼 꽃봉오리
뿌리를 내려 가슴을 펴고
자 몇 번이라도 열매를 맺자

‘나’라는 히스토리를 끌어안아
Brand New 우리 시작은
그래 “HELLO!!”

“HELLO!!” 말해보자 모두 같이 Step
넘어져도 꺾어져도 OK
믿으면 괜찮아!

어디까지나 계속되는 스트리트
Brand New Touch 시작하자
Say “HELLO!!”
Brand New 우리 시작은
그래 “HELLO!!”


멋진 무대였다. 세 사람 역시 놀란 표정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관객들의 환호 역시 열렬했다. 아직 이런 쪽에 견식이 별로 없는 나도 1위를 직감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역시 맞아떨어졌다. 현재 1위. 말할 것도 없이 최고 득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팀은 단 한 팀. 가나하 히비키와 시죠 타카네와 호시이 미키로 이루어진 유닛. 프로젝트 페어리 뿐이었다.
디어리 스타즈가 퇴장하고, 마지막 참가자를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가 회장에 울려퍼졌다.

“알고 있지? 너희들이 이 쇼를 끝내는 거야. 페스티벌이 끝나도 관객들 머릿속에 ‘오버 마스터’만이 들리게 만들어버리고 와라.”

“당연하지!”

“물론인 거야!”

“프로듀서님의 뜻대로.”

세 사람 모두 나름대로의 대답을 들려준 후, 마지막으로 세 사람이 모여 기합을 넣고 스테이지 위로 올라갔다.

[이번 아이돌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할 신 유닛. 프로젝트 페어리의 무대입니다. ‘오버 마스터’!!]

사회자의 멘트를 마지막으로 스테이지를 비추는 조명이 어둡게 변했다. 빙글빙글 웃고 있던 히비키의 표정이, 스테이지 위에서까지도 태평했던 미키가, 언제나 그랬듯이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던 타카네의 얼굴이 ‘오버 마스터’의 도입부인 피아노 소리와 동시에 싸늘하게 변하는 것을 모니터를 통해 보면서. 나는 전율 비슷한 것마저 느끼고 말았다. 이 녀석들. 진짜 끝장낼 셈이구나.


♬ 오버 마스터 - 프로젝트 페어리


정말 꼴사납네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한 거 다 들켰잖아
멋있는 척 해봤자
다음에 나올 대사 플랜 B겠지

상냥함을 원한다고 생각해?
역시 당신에게는 절벽 위의 꽃이네
마음에 울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야!

스릴 없는 사랑 따위에
흥이 있을 리가 없잖아
모르는 걸까

타부를 어기려는 녀석은
위험한 향기가 나는 거야
기억해 두는 게 어때?

Come again!


놀라울 정도로 완벽했다. 지금까지 했던 어떤 연습보다 더 잘하고 있다. 이 녀석들과 함께 ‘오버 마스터’를 몇 십번 봤다지만, 이것만큼 사람을 끌어들이는 무대는 처음이었다. 물론 의상까지 전부 갖추고 있기도 하고, 이런 큰 무대만의 연출이 있는 거라지만, 세 사람의 동작 자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좋았다. 컨디션 절호조라더니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다시금 페어리의 스테이지에 빠져 들어갔다.


금지된 사랑을 원하고 있어
왠지 모르게 깨달은 걸
하지만 좀 더 언밸런스한 것을 원해
언제까지나 계속-
나는 본능을 따르고 있으니까!

송곳니 빠진 녀석에게
마음이 흔들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젠틀 보다는 와일드하게
와일드보단 데인저러스
시험해보면 어때?

Good luck to you!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뒤에서 모니터링하던 스텝들조차도 감탄성을 흘릴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이제 됐다 싶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꼴등을 할지라도, 프로젝트 페어리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정도의 무대를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았다.
…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 무대에 꼴등은 말도 안 되지.

무대 위에 선 빛나는 세 사람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심사위원들의 채점을 기다렸다.

[자! 마지막 팀인 프로젝트 페어리! 과연 그 결과는--!]

맹세코 지금 순간이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보다 더 떨렸다. 물론 페어리를 믿고는 있지만, 혹시라도, 설마 하는 감정이 내 마음속을 짓눌렀기 때문에…

그리고 결과가 발표되었다.
세 사람이 서로를 얼싸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주먹을 번쩍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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