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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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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1, 2012 13:23에 작성됨.

Case 6. 타카츠키 야요이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여섯 번째 선수 야요이.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야요이니까 더욱 더 의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밝은 표정으로 방 안에 들어왔다. 한순간 어두컴컴한 방마저 밝게 빛나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웃우-! 프로듀서랑 같이 영화를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비록 영화관에서 보는 건 아니지만, 영화는 거의 처음 보는 거라서 기대되네요!”

그 처음 보는 영화가 야요이의 멘탈을 박살낼 가능성이 농후한 영화라는 게 정말 슬프긴 하다만, 저 천진난만한 표정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하는 것도 재미있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루 종일 어두운 방 안에만 있다보니 정신이 어떻게 된 건가?
어, 어쨌든, 영화를 어서 재생하도록 하자.

“와앗. 대단해요. 언젠가 TV에 나왔던 이오리쨩 집보다 더 클지도!”

영화에 나오는 커다란 저택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하는 야요이. ‘사실 저 저택 안에는…’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결국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까지 야요이는 이것이 공포영화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기에, 밥을 먹던 주인공 일행들이 화를 내며 식사를 다 마치지도 않고 자리를 뜨자, ‘먹을 걸 남기면 안 돼요!’라며 같이 화를 냈다. 완전히 영화에 몰입해버린 모습이었다. 야요이야 뭐 워낙 흥미를 느낀 것에 빠져들기 쉬우니까. 저 나이대의 어린아이가 쉽게 그러기도 하고.

그리고 드디어 시작되었다.

“…프, 프로듀서?”

어딘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정말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 녀석들에게는 쉽게 진실을 이야기해줄 수 있었는데, 야요이에게 곧바로 진실을 말했다간 진짜… 과장 조금 보태서 영문을 모르는 꼬마아이에게 ‘너희 부모님은 이제 세상에 안 계셔.’라고 말할 때의 기분이 이런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음… 그러니까…”

나는 끝내 말할 타이밍을 찾지 못했고, 때맞춰 저택에 숨어있던 귀신이 등장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야요이는 방이 떠나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내게 들러붙었다. 때마침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라, 야요이는 내 옆구리를 단단히 껴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야요이…?”

“프로듀서어어---!! 멜로영화라는 건 귀신이 나오는 영화라는 뜻이었나요?”

이 녀석. 멜로라는 장르도 몰랐다는 건가.

“어떻게 생각하고 여기 왔던 거니.”

“저, 저는… 멜로라는 건 뭔지 몰라도, 그저 프로듀서랑 같이 보는 영화니까 틀림없이 재미있을까-하고.”

순식간에 내가 찰스 맨슨 정도의 대악당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야요이의 표정을 보면 설령 그놈 같은 사이코패스라고 하더라도 죄책감에 몸부림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엄청난 표정이었다.

“야요이…”

“저, 저… 저런 건 정말 무서워요… 프로듀서. 우우…”

으아아으아으아!!!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라. 리츠코부터 사장님까지 전부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묻고 말겠어!
그나저나, 야요이 이 녀석 너무 꼭 달라붙어있어서 불편한데.

“하, 하지만… 이렇게 프로듀서를 꼭 안고 있으면, 어쩐지 오빠와 함께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덜 무섭지 않을까나-하고…”

마치 비에 맞아 떨고 있는 새끼 새 같은 모습으로, 야요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속으로는 폭풍 같은 눈물을 흘렸다.
지금의 야요이를 보게 되면,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마귀사탄이라 해도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기 발로 지옥으로 돌아가리라.

결국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올렸던 왼손으로 야요이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첫 날 종료.

나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야요이와 함께 밖으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사장실로 쳐들어갔다.

“못해요!!”

“응? 무슨 말인가, 자네.”

“이 거지같… 아니. 말도 안 되는 기획 중지입니다! 이러단 제가 성당에 들어가서 고해성사하게 생겼단 말입니다! 죄책감이 가슴을 콕콕!”

아무리 감정이 폭발했다지만 사장님 앞에서는 말을 가리자.
어쨌든, 야요이로 인해 확실해졌다. 난 절대 이걸 못한다.

“음… 하지만 이미 반이나 진행된 기획을 취소할 수는 없네. 미안하지만, 내일도 힘써주게나.”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은 내 항의를 시원스럽게 묵살하셨다. 어차피 나도 내 말만 듣고 기획을 취소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리츠코는 그날 퇴근할 때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토나시 씨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내 시선을 회피할 뿐.


2일차.
Case 7. 하기와라 유키호

오늘 역시 어제 촬영하지 않은 여섯 명 중 오십음도 순으로 가장 앞인 유키호를 시작으로 나는 어두운 방안에 갇혀있게 되었다.
유키호는 평소와 같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와 문을 닫았다. 이번 기획대상인 열두 명 중에 가장 요주의 인물이 등장한 건가. 벌써부터 2인용소파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여기… 앉으면 되나요?”

“그래.”

유키호는 그 좁아터진 2인용소파에서도 최대한 나와 거리를 두고 자리에 앉았다.

“저, 저… 남자분과 함께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이라… 호, 혹시라도 제가 폐를 끼치게 된다 해도 이해해주세요오…”

벌써부터 이런 소리나 하고 있다니. 물론 ‘남자와 함께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이라는 말은 어제 몇몇 녀석들이 이미 말했던 거지만, 유키호는 꼭 뒤에 쓸데없는 소리가 붙는단 말이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미 어제 했던 녀석들 중에 몇몇은 정말 폐를 끼치기도 했으니까. 유키호의 저 말은 아예 동떨어진 말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유키호는 영화 시작한지 5분조차 되지 않아 별 거 아닌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이, 이거… 사실 공포영화라던가… 아니죠?”

지금까지 영화를 본 사람 중 누구보다 빠르게 영화의 정체를 짚어냈다. 겁이 많은 만큼 이런 걸 잘 감지하는 건가? 마치 작은 동물들이 자신에게 닥치는 위험을 빠르게 감지해내는 것처럼.

“…보면 알아.”

내 대답에 유키호는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여, 역시 공포영화군요!”

침묵을 유지하던 나는, 마코토 때와 마찬가지로 무서운 장면에 맞춰서 긍정해주었다.

“맞아.”

“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소프라노. 역시 유키호도 목소리 잘 내는구나. 잠깐. 이걸 이용해 발성 레슨이라든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저, 저, 안 돼요. 저런 무서운 영화는 진짜 안 돼요! 이만 나가볼게요!”

“문 잠겼어.”

내 말에 소파에서 일어났던 유키호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도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나는 삽으로 또 구멍을 파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럴 염려는 없었다.

기절해버렸으니까.
어째 주저앉은 이후로 아무 반응이 없다 했더니.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영화가 거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때쯤 눈을 뜬 유키호의 눈에 비친 것은 하필이면 그 영화에서 가장 추천할만한(무서운) 장면이었다.

“흐으읍!”

유키호가 또 엄청난 비명을 지를 것이 뻔하니, 나는 황급히 유키호의 입을 막았다. 입이 막힌 유키호는 눈물을 흘리며 눈을 꼭 감더니, 곧 내 손을 붙잡고 내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려버렸다.
자신의 눈을 가린 손을 꼭 잡은 유키호의 양손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져 왔다. 이러다 이 녀석들 모두 끝날 때쯤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멘탈이 먼저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직 오늘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미안해. 유키호.”

왜 내가 사과해야 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못 견딜 것 같았다. 유키호는 아무 말 없이 훌쩍일 뿐이었지만.


Case 8. 후타미 아미, 마미

“응~후~후~ 오빠랑 같이 영화라니, 두근거리네용!”

“데이트라는 느낌이네용!”

잘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눈물범벅이 된 유키호를 내보내고도 아직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리츠코와 오토나시 씨의 보안유지능력이 대단한 것 같다. 아니면, 유키호라면 감동해서 울었을 것이다. 라고도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어떤 영화야, 오빠? 에로?”

“끄은~적끈적한 걸로 부탁해?”

그래. 실컷 그렇게 생각해라. 이번 영화. 그 유명한 ‘파라노말 액티비티’라고.
영화가 시작되고, 내 양 옆에(왼쪽에 아미, 오른쪽에 마미) 앉아있던 두 소녀는 남자와 여자가 캠코더를 가지고 이것저것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음흉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마 나름대로의 야릇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뭐. 이 나이대의 애들이 호기심 하나는 끝내주니까.
그렇게 웃고 떠들고 하면서 평화롭게 영화를 보는 두 사람.

그리고 밤이 되었다. 문제의 밤.
캠코더 화면으로 보이는 괴기한 일들. 누군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문이 쾅쾅 닫히고, 유리가 깨지고…

“뭐, 이거 뭐야. 오빠?”

“아, 아하하… 알았어. 이거 웃기는 영화지? 그렇지?”

그렇게 뇌내치환하고 싶은가보구나. 하지만 아니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내게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주체가 직접 나타나는 것도 먹혀들지만, 역시 이런 주체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사람 심리를 건드리는 영화가 즉효다. 이 녀석들. 오늘 잠은 다 잤다.
아니. 그래도 둘이 항상 함께 있으니까 무서움은 덜 하려나?

그리고 드디어 이 영화 최고의 장면. 잠을 자던 여자가 일어나서 몇 시간 동안 남자를 내려다보는 장면. 다시 봐도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 왔다.

“우으으…”

“저, 저기…”

조금이라도 공포를 덜어보려는 건지, 아미는 몇 번이나 내게 말을 걸려 했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는지 말을 걸려는 시도는 시도로만 끝나고 말았다. 어느새 내 양손은 두 쌍둥이에게 붙잡힌지 오래였다.
여기서 한 번 놀라게 해볼까.

나는 두 사람이 안 보일 정도로 발을 들어 올려 발뒤축으로 소파를 두드렸다.

쿵.

““꺄아아아아-!!!!””

아미와 마미는 그 나이 대 어린애다운 새된 소리를 지르며 동시에 내 품안에 파고들었다.

“바,바,방금 무슨 소리야? 응?”

“오빠가 장난친 거지? 그렇지?”

“아니? 양손 다 니들한테 잡혀있는데 어떻게 소리를 내겠냐?”

“그, 그럼…”

“여기에도 있나보지. 정체불명의 존재가…”

라는 나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얘들 이제 13살이고, 아직 아이들이라고 할 만한 나이고, 저번에 유성매직 사건 때 크게 혼을 낸 걸로 울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까지 심리적으로 몰렸는데 우는 것이 당연한 건가.

이번엔 누가 뭐래도 내 잘못이었다. 반성하자.
간신히 달랬나 싶었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폭발. 하필이면 이 영화의 세 가지 엔딩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 담겨져 있는 버전이었다. 설마 일부러 이 버전을 준비한 건 아니겠지.

“흑… 오늘 아미네 엄마아빠 늦으신단 말이야…”

“오빠 때문이야… 아미랑 마미. 오늘 잠 못 잘지도 몰라… 히잉…”

네. 백퍼센트 제 책임입니다.
나는 두 사람을 달래느라 내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만 했다.


Case 9. 호시이 미키

후타미 자매가 나간 지 10분 정도 지난 후에 미키가 하품을 하며 걸어 들어왔다.

“아후… 미키. 여기서 자도 되는 거지? 마침 불도 꺼져있고.”

“…자려면 다 보고 자라.”

“힘내볼게. 하지만 보다 잠이 들어버리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거야.”

과연 이걸 보면서도 잘 수 있을까. 만약 정말 자버린다면 그땐 이 녀석을 스승으로 모시는 걸 고려해봐야지.

영화가 시작되고, 미키는 연신 하품을 했지만 아직까지 잠이 들지 않고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슬슬 스토리가 흘러가면서, 미키 역시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거… 멜로영화 아닌 거지?”

“보면 알아.”

“공포영화… 맞지?”

“보면 안다니까.”

그리고 드디어 무서운 장면이!
미키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내게 안겨왔다. 예상했던 것과는 살짝 다른 반응에 나 역시 놀라긴 했지만, 역시 이렇게 놀라서야 자는 건 무리라는 생각에 속으로 웃음 지었다.

그러나…

“이거 너무 무서운 거야!!”

미키가 놀라고, 내게 달라붙는 일련의 행동이 마치 패턴화가 된 것 같이 느껴지는 건 단지 내 착각인가? 처음에는 미키가 내게 찰싹 붙는 것만 해도 움찔했지만(그 몸매로 전신을 밀착시키면 이쪽이 놀라는 게 당연하다.), 계속 똑같은 반응을 보이니 조금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미키가 달라붙고, 놀라고. 나는 정신을 차린 다음 미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여기서 또 한 번 무서운 장면.

“안 돼애~!”

이번엔 내 팔을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나는 패턴이 바뀐 것에 당황해 미키와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고, 드디어 보고야 말았다.
미키 이 녀석. 웃고 있잖아!

설마 했는데 역시나 일부러 놀라는 척 하면서 들러붙은 거였냐!

“너…”

“아. 들켜버린 거야. 아핫!”

“…안 무섭냐?”

“응? 귀신은 이 세상에 없는 거잖아. 왜 없는 걸 무서워해야 돼?”

어떻게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공포영화를 보면서도 그걸 인식하긴 정말 쉽지 않은데 말이지. 미키도 참 대단하구나.

“어쨌든, 들러붙는 건 금지다.”

“에에- 그럼 재미없는 걸.”

“…날 난처하게 만드는 게 그렇게 재미있냐?”

“프로듀서 반응이 재미있는 거야.”

“망할. 안 돼. 그 얘기를 들으니 역시나 금지.”

“부-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야. 미키. 잘게.”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 자버렸다. 일부러 볼륨을 끝까지 올려놨는데도 절대로 깨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 이 녀석을 사부로 모셔서 잠자는 노하우나 배워볼까 싶다.


Case 10. 미우라 아즈사

자. 드디어 이 여러 가지로 마음 상하는 기획도 끝이 보인다. 다음은 아즈사 씨인가. 비록 영화관은 아니지만, 비록 공포영화를 멜로영화라고 속이고 보는 거지만, 아즈사 씨와 단 둘이 영화감상이라니. 벌써부터 막 긴장이 된다.

“어라, 어라. 프로듀서 씨. 안 보이신다 했더니 계속 여기 계셨던 건가요?”

“네. 뭐… 기획 때문에 그렇게 됐죠.”

“후훗. 저. 이 나이가 되도록 남성분과 함께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이라…”

많이 들었던 말이지만, 아즈사 씨가 말한다면 그건 색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내가 아즈사 씨의 첫 남자가 되는 건가!
…물론 같이 영화 보는 걸 말하는 거다. 어째 뉘앙스가 이상하지만.

“자. 시작합니다.”

“네에~”

아무런 근심걱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빙긋 웃는 아즈사 씨. 어째 미칠 듯한 죄책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느낌이었기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재생버튼을 눌렀다.

역시 아즈사 씨도 평소에는 유한 모습이지만, 막상 무서운 장면이 닥치면 타카네와 같이 겁에 질릴 지도 모르지. 아니. 역시 타카네보단 아즈사 씨가 더 겁이 많을 것 같은 이미지니까,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내게 폭 안겨올지도 모른다. 미리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하자.

아즈사 씨에게 들리지 않을만한 소리로 심호흡을 하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드디어 이 영화의 첫 번째 무서운 장면이 임박했다.
그래. 저기서 귀신이 나오면… 아즈사 씨는 깜짝 놀라서… 응~후~후~

나왔다!

“어머-!”

예상대로 놀랐다! 하지만 아즈사 씨는 내 예상과는 달리 내게 안겨오지 않고 그저 놀란 눈으로 화면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상 이번 영화에서 아즈사 씨가 놀라게 된 단 한 번의 장면이었다.

그 이후로는,

“…아즈사 씨. 별로 무섭거나 하지 않으신가보네요.”

“네. 귀신 씨도 저렇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해코지를 하거나 하지만, 귀신 씨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거겠죠. 딱하네요…”

저기요… 이건 공포영화지 귀신 휴먼드라마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필 영화 내용도 정말 ‘원한이 있는 귀신’이 나오는 영화이기 때문에, 아즈사 씨는 아예 그쪽으로 몰입해버린 모양이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차차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줄곧 귀신을 딱한 눈으로 보고 있던 아즈사 씨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물론 앞의 녀석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다.

“불쌍해라… 연인을 잃고 자신도 죽게 된 슬픔으로 인해 귀신 씨가 된 거였네요…”

네. 공포영화 맞습니다. 저는 정말 무섭게 본 영화였다구요.
아즈사 씨의 천연기질은 공포영화마저 멜로영화로 만들어버리고 마는구나. 이렇게 되면 공포영화를 멜로영화라고 속인 의미마저 퇴색되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내가 얼빠진 표정으로 아즈사 씨를 보자,

“정말 감동적인 영화였어요. 이런 걸 보여주시다니, 리츠코 씨와 사장님에겐 감사의 말을 전해야겠네요.”

저 말 한마디로 한 방에 내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리고 나가버렸다.
물론 내가 아즈사 씨와 스킨십을 하는 일 따윈 없었다. 안기기는커녕 손도 못 잡아봤다. 젠장.


Case 11. 미나세 이오리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기획의 마지막을 장식할 한 명. 이오리의 차례가 다가왔다.
역시나 이오리는 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왜 내가 너 같은 매너라고는 한 가지도 찾아볼 수 없는 남자랑, 그것도 멜로영화를 봐야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냐? 나는 슈퍼 아이돌 이오리…”

“그만해!”

“뭐야. 사람의 말을 자르지 말라고.”

“흥. 분명히 ‘슈퍼 아이돌 이오리쨩과 함께 영화라니…’라는 쓰잘대기 없는 말이나 늘어놓을 게 뻔하지!”

“…그건 맞지만.”

“빨리 영화나 틀어. 난 빨리 보고 나가고 싶으니까.”

“네. 분부대로.”

저 새침도도한 표정이 과연 어떻게 바뀌나 보자. 네가 시작부터 그렇게 나온 이상, 나도 그에 합당한 대응을 해주겠어. 마침 시간도 하루 중 사람이 가장 잔인해진다는 오후 5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너를 놀라게 해주겠다 이거야.

영화 진행 중. 러닝타임 20분 만에 이오리 역시 수상함을 감지한 듯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이거 내용이 이상하잖아…”

“그래?”

“이거… 멜로영화 맞아? 아무리 봐도 스토리가…”

나를 올려다보는 이오리의 불안한 표정에 순간 약해질 뻔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까 들어와서 이오리가 했던 말을 복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대로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까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왔다!

“!!!!!!!!”

이오리는 엄청나게 놀랐는지 거의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그래도 프라이드가 있는지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뭐. 공포영화라는 걸 짐작했던 반응을 보였으니까.

“뭐, 뭐야. 이게! 공포영화잖아! 어떻게 된 거야!”

“사실 이게 기획이야. 멜로영화로 알려준 다음 공포영화 틀어주기.”

“아, 악취미! 대체 어떤 바보가 이런 생각을 한 거야!”

“사장님.”

“으… 끝나면 바로 따지러 가겠어!”

그래도 이 녀석. 프로의식 하난 대단한지라, 이 상황에서도 바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네.

“안 무섭냐?”

“누, 누가 이런 바보같은 것에 무서워하겠어?”

라고 말은 하지만, 이 녀석 떨리는 게 눈에 다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칼을 뽑아주지.

“그래? 무섭지 않다면 다행이군. 나 지금 나가봐야 하거든.”

“… 방금 뭐라고 했어?”

“나가봐야 한다고.”

“자, 잠깐. 어딜?”

“나도 일이 밀렸답니다. 네가 마지막이기도 하고, 안 무섭다면 혼자 보라고. 나는 밀린 일을…”

“기, 기다려!”

내가 거의 반쯤 일어나자, 이오리는 황급히 나를 불렀다.

“왜. 안 무섭다며.”

“그, 그게…”

이오리 성격상. 이제와서 무섭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 여기서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볼까.

“이, 일단 앉아봐. 할 말이 있어.”

“지금?”

“그래!”

“중요한 일이야?”

“그래! 일단 앉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은 하고 있다만, 귀여워 죽겠다. 이오리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나만의 특권 비슷한 건가.
이오리는 날 앉혀놓기만 하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보고만 있었다. 아마 할 말을 찾고 있는 거겠지. 가끔 영화에서 비명소리가 들릴 때마다 움찔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뭐야. 왜 말이 없어? 할말 없으면 간다?”

“자, 잠깐! 뭐가 이리 급해?”

“평소에 성격 급한 건 너였던 것 같은데.”

“…시끄러워.”

“아. 그래. 나 급하게 할 일 생각났어. 이번엔 진짜 가봐야… 윽?”

나는 채 말이 되지 않은 소리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오리가 갑자기 내 무릎 위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오리 자신조차도 급하니까 몸부터 움직인 건지 눈이 동그래져서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뭐하냐.”

“이… 이건… 그러니까… 그, 그래! 니가 사람 말을 안 듣고 가려고 하니까. 그 뿐이야! 딱히 무섭다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정말로?”

“저, 정말로!”

“그럼 영화를 봐야지 왜 나를 보고 있는 거야?”

“지금 할 말을 생각하느라 그러는 거잖아!”

“그걸 꼭 날 보고 생각해야 돼?”

“꼬치꼬치 캐묻지 마! 이 바보!”

한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길래 나도 지긋이 마주봐주었더니, 이오리는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고개를 연신 좌우로 움직였다. 그런 녀석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도 더 이상 추궁하는 말없이 가만히 있기로 했다.

결국 이오리는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내 무릎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Case 번외

드디어 열두 명 모두 끝났다. 그리고 나도 해방되었다.
가장 먼저 사장님을 찾았지만 사장님은 이번에야말로 내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느꼈는지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 리츠코와 오토나시 씨는 일 때문에 잠깐 나가 있는 상태. 그리고 모두 퇴근할 시간이 되어 이오리를 보낸 후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복수의 신이 내게 준 찬스라고.

곧바로 사무용 노트북에 귀신이 나오는 동영상을 다운받은 다음, 파일 제목을 ‘아이돌 페스티벌 참가 프로덕션 최우선 확인 요망!’ 이라고 바꾼 다음 바탕화면에 두었다. 그런 다음 방안을 촬영했던 캠코더를 가져와 오토나시 씨와 리츠코의 책상이 모두 보이는 곳에 은밀하게 숨겨놓았다.
자. 와라. 나의 철퇴를 받아보아라.

“아. 프로듀서. 수고하셨어요. 후훗.”

둘 중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리츠코였다. 나는 리츠코에게 적당히 불만을 토로해준 후, 막 생각났다는 것처럼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 아까 페스티벌 측에서 연락 왔는데 스테이지 동영상 같은 걸 보냈더라고. 그거 내가 노트북에 다운받아놨으니까 같이 확인 좀 해보자.”

아무 것도 모르는 리츠코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헤에. 그래요? 그럼 한 번 보도록 하죠.”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자신의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확인하는 리츠코의 뒤에 섰다.

“아. 정말 있네요. 어디 한 번…”

재생과 동시에 팍!이다. 재생과 동시에 팍!

역시나 리츠코가 동영상 파일을 더블클릭하자마자 화면 전체에 흉측하게 생긴 귀신의 형상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섬뜩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 꺄아아악----!!!”

리츠코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게 거의 보디체크를 하듯이 뛰어들었다.

“뭐, 뭐, 뭔가요 저거어어어---!!!”

“뭐긴. 나를 이틀씩이나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던 복수다.”

“절 속였군요! 너무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해.”

리츠코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내게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힘이 다 빠져서 그런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비명소리는 사무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저,저소리좀어떻게해봐요진짜! 저것좀꺼달란말이에요!”

“니가 해.”

내 말에 리츠코는 고개를 슬쩍 돌려 화면을 바라보고는 목이 꺾어지지는 않았나 싶을 정도로 맹렬하게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못해요!!”

“나도 못해.”

“제발요…”

리츠코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울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자. 껐다.”

“저, 정말이죠…”

“진짜야. 소리 안 들리잖아.”

리츠코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다음, 바탕화면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풀썩 주저앉을…뻔한 걸 내가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하아…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구요…”

“미안. 그렇게 놀랄 줄 몰랐어. …솔직히 웃겼어.”

“남이 무서워하는 걸 보고 웃다니… 악취미!”

“그건 너랑 사장님이 방금 전까지 자행했던 일이거든.”

“그래도 저는 웃지는 않았어요. 애초에 저는 사장님 말에 따른 것뿐이고…”

“내가 느꼈던 죄책감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자. 이제 오토나시 씨다.”

“코, 코토리 씨한테도 보여주는 건가요?”

“물론이지.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고.”

리츠코는 많이 안정이 되었는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그거… 조금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방금 전까지 기겁을 했던 녀석이 할 말이냐.”

“그거야 저만 아니면 되니까요.”

“너도 싹이 보이는구나.”


그리고 오토나시 씨가 도착했다. 나는 오토나시 씨에게도 리츠코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했고, 오토나시 씨 역시 리츠코처럼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고 내 말을 그대로 믿어버렸다.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은 오토나시 씨 뒤에 섰다. 리츠코는 차마 그걸 다시 보기는 싫은지 차를 타오겠다는 걸 핑계로 멀찍이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토나시 씨의 손이 마우스를 잡고, 문제의 동영상 파일을 더블클릭.
전방에 비명 발사!!!

인데… 어째 오토나시 씨. 반응이 없다. 의외로 엄청난 담력의 소유자였던가?

“오토나시 씨…?”

“끄응…”

아. 기절했다. 저질러버렸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으로 리츠코를 보았지만,

“…프로듀서 씨가 벌인 일이니 저는 몰라요.”

리츠코는 발을 뺐다.
그리고 그대로 퇴근해버렸다.

나는 결국 기절한 오토나시 씨를 어떻게든 깨운 다음, 765프로를 알게 된 이래 처음으로 오토나시 씨에게 장시간의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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