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비와 천둥을 머금고 미소로 피어나리

댓글: 2 / 조회: 959 / 추천: 0



본문 - 01-07, 2018 17:11에 작성됨.

정월(1월 1일) 바로 다음날, 촬영을 앞둔 방송 스튜디오의 임시 대기실.

아름다운 후리소데(振袖)를 차려입은 활기찬 소녀들 사이에서 

시라기쿠 호타루는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연초에는 으레 새해 특집 프로그램이나 신규 프로그램 편성 등으로

항상  평소보다 분주해지는 모습을 본지 어느덧 7년.

이젠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아.'

 

'올해에 성인(成人)이 되는 아이돌들을 게스트로 새해 및 성인식 특집 방송을 편성해보자.'는

유명 예능 토크쇼에 참여하게 된 것을 알게 된 후부터

호타루는 어딘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유난히 어렸을적부터 다사다난한 일을 겪은 탓에

세상의 모든 불행과 불운이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재난을 부르고 저주를 부르는 역병신(疫病神)이라 여기며

울다지쳐 눈물마저 메말라버린 소녀는  

 

이제

어느새 스무살이 되어

많은 이들의 응원과 사랑 속에서

눈부신 스포트 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자책과 절망 속에서 침몰하던 자신을 발견하고

이끌어 준 것은 프로듀서와의 우연한 만남.....

 

그때도 지금처럼 어느 예능 프로의 촬영 때문에 스튜디오에서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었을 때였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고, 결국 방송이 캔슬되고 말았다는 걸까.

 

대기실 옆에선

연출팀들의 능숙한 손길에 화려한 무대가 꾸며지고,

색색의 조명 아래에선 스태프분들과 프로듀서씨가 오가며

현장 조율을 위해 감독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엇하나 잘못되는 것 없이 제대로 준비가 되는 와중이지만

호타루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아직도 자신의 이런 행복과 행운에 안심할 수 없는 것일까

 

'나의 불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어떡하지?'

 

프로듀서씨를 만난 후부터 호타루는 '불행'이라는 말을 서서히 잊어갔다.

물론 그간의 아이돌 생활에서 예상밖의 방송 일정 캔슬이나 촬영 중 잦은 부상,

악덕 제작사 측에서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 등으로 뜻밖의 크고 작은 고난들이 닥치기도 했지만 

힘겨운 순간마다 불안에 시달리는 그녀를 다잡아 준 것은 역시 프로덕션의 동료들과 프로듀서씨였다. 

 

'이런.....뜻깊은 날에 내가.....내가 있으면... 모두 불행하게.....'

 

올해로 스무살을 맞아 싱글벙글한 동료들 사이에서

호타루는 방송 사고와 같은 무서운 일은 생각하기도 싫은지 고개를 저었다.

 

"어머? 호타루쨩. 괜찮아요?'

"아.....? 카코씨!"

 

"  네, 가지가 아니라 카코에요옷 ~ ♪. 우후훗. 새해 첫 방송이다보니 많이 긴장되나 보네요?"

 

 카코 씨는 오래전부터 여러 방송에서 새해 메인 게스트로 초대받는 '새해의 여신'.

상냥하고 아름다운 모습뿐 아니라 전통 예능에도 굉장한 소질이 있어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보는 이들을 항상 행복하고 웃음짓게 만드는 멋진 언니.

 

출연 할 때마다 언제나 예능 제작진들이나 방송국 분들에게 화제의 시청률을 선사하여

 '예능 시청률의 여왕', '방송 부활의 구세주'라 불리는....대단한 사람.

 

" 조금.....그렇네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어제 꿈으로 후지산과 매를 보았으니 분명 올해는 대길(大吉)할 거에요!' 

" 저기....그럼 가지는....?"

"우후훗. 호타루쨩이 원한다면 새해의 가지가 되어드릴 수도 있답니다!"

 

카코의 농담과 밝은 모습에 호타루는 어느덧 마음이 점차 편안해진다.

그래.....비록 시작은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지만,

프로듀서씨와 동료들....그리고 수 많은 팬 분들과 함께 하며 이 자리에 왔어.

 

언젠간 프로듀서씨처럼...누군가에게 빛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언젠간 카코씨처럼....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아이돌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지.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게 망설이고만 있어선 된다고. 호타루는 마음을 다잡는다.

 

" 응원....고마워요 카코 씨. 원하신다면....저는 카코씨를 위한 국화가 되어드릴 수 있어요."

" 후후, 기운 차려서 다행이네요. 이제 곧 촬영이 시작될테니 이따가 촬영장에서 봐요!" 

 

프로듀서씨....카코씨....

소중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호타루는 이제 더 이상 떨지 않는다.

 

"네, 올해로 성인이 되는 아이돌 여러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자, 그럼 새해를 맞아 신춘휘호(書き初め/카키조메)로 성인이 된 아이돌들 각자의 새해의 포부와 감회를 들어볼까요?"

 

 전통과 이름 있는 방송답게 능숙한 베테랑 MC의 진행은 물 흐르듯 매끄럽다.

 호타루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한 모습 하나 없이 데뷔 7년차,

 어엿한 '아이돌'로서의 기량을 뽐내며 촬영에 임하고  있다.

 

 호타루의 걱정과 다르게

  호타루를 '불행한 역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카코씨가 호타루의 바로 옆자리에 자리 잡은 탓에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새해의 모든 복스럽고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한 소품들로 채워진 촬영 세트장에서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아닌가 괜한 걱정을 일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아이돌들이 저마다 힘찬 붓질로 일필휘지의 새해 포부를 써내려가는 가운데

 호타루는 자신 앞에 놓인 새하얀 화지(和紙)에 무엇을 쓸까 고민해보았다.

 

 '실수와 실패를 해도 너는 분명 좋은 사람이야. 좀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해도 괜찮아. 너는....내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신인 데뷔 후 첫 방송 때, 연이어 큰 실수를 해서 험악한 촬영장 분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호타루를 감싸고 변호하며 지켜준 프로듀서씨.

 

 '호타루쨩은 미소가 정말 아름답답니다. 저도 반해버릴 만큼! 후후.'

 

 나이차가 많이 나는 까마한 후배이지만, 언제나 응원해주고 살갑게 맞아주며

 흔들릴때마다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카코 씨.

 

'시라기쿠 씨의 이야기와 무대는 저에게 언제나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당신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데뷔 후 처음 '팬 레터'를 받았을 때.

서로 응원하고 다독이며 함께 멋진 무대를 만들어나갔던

 팬 여러분들과의 추억.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10대 시절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은

하나의 말.

호타루는 마침내 붓을 들었다.

 

"자아, 다들 멋지고 아름다운 새해 포부를 자랑하는 가운데.....타카후지 씨!  新春(しんしゅん/신춘)이라고 쓰셨는데요.

 어떠한 의미를 담은 글이신가요?"

 

"네, 새해에 새롭게 움트는 꽃들처럼, 올해로 새봄을 맞이하는 청춘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써보았네요.

 모두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다운 스무살 축하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야 이야, 이거 타카후지 씨가 특별히 쓰신 새해 축하 메시지! 분명 영험한 기운이 가득할 것 같군요! 좋은 글귀 감사합니다!

 그럼, 계속해서...아! 시라기쿠씨는 笑顔(えがお/소안)이라 쓰셨군요. 과연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요?"

 

"전...지금까지...저를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이렇게 웃는 얼굴로 스무살을 맞이하게 되어 정말 기뻐요.

 

  여러분들이 아니셨다면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줄, 저 자신도 몰랐을거에요.

  시청자 여러분들, 팬들 여러분 그리고 언제나 함께 해준 프로덕션의 동료들이

 

  새해엔 더 아름답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저.....시라기쿠 호타루!

  앞으로도 더욱 환하고 밝게 피어나겠습니다!"  

  

 당차게 새해의 청춘 포부를 써내려간 호타루의 글씨는

 어딘가 다소곳하면서도 힘이 있다.

촬영팀 곁에서 마음 졸이며 바라보던 프로듀서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을 보고

카코도 마침내 안도한 표정으로 호타루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소녀들 가운데 

 불행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포기 없이 달려온 7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강인한 소녀는 스스로 보여주었다.

 

아직 매서운 추위와 녹지 않은 눈에 봄은 멀지만,

비와 천둥을 머금어야 비로소 피어나는 꽃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 이 글은 졸자가 자유판에 게시한 '비와 천둥을 머금고 미소로 피어나리'의 텍스트 본입니다.

* 원본은 공식 이미지 합성을 게시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자유판에 쓰게되었습니다.

* 원본 링크 :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16591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