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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님과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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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4, 2015 13:02에 작성됨.

"........?"

 

고된 일정을 마치고, 겨우 돌아온 사무소. 그러나 이 곳은 불조차 제대로 켜지지 않은 체 온통 어두워서, 그만 넘어질 뻔 했습니다. 겨우 벽을 더듬더듬거린 끝에 스위치를 켜 불을 밝혔지만, 사무소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프로듀서씨도 코토리씨도 리츠코씨도 계시질 않고, 치하야쨩이나 마코토, 유키호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미키가 소파에 자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그 쪽을 둘러보았지만 텅텅 비어있을 뿐입니다. 지금이 좀 늦은 시간이긴 해도 원래라면 한 두명 정도는 있어야할텐데.....으음.....

 

오늘은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 걸까나? 잠깐 쉬었다가 갈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사무소에 저 혼자 있기에는 좀 으스스하기도 하고 쓸쓸하겠지요. 그냥 나오기로 하고 탁자에 놓아둔 짐을 챙기려는 순간, 등 뒤에 서늘한 느낌과 함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야 오셨군요."

 

처음에는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지만 곧 그것이 친숙한 사람의 목소리임을 깨닫고,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를 살짝 돌아봅니다. 풍성하고 부드러운 은빛 머리카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는 옷에 가려져 있어도 육감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몸매가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상대로 타카네씨네요.

 

"어휴, 소리 없이 와서 깜짝 놀랐어요."

 

작은 불만을 내뱉어봤지만, 타카네씨는 조용한 미소로 웃어넘깁니다. 그러고는 저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그에 지고 싶지 않아서, 저도 말 없이 그녀의 자주빛 눈동자를 바라봅니다. 잔잔하고 평온하면서도, 그 바닥에는 단단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는 듯한 묘한 눈빛에 저도 모르게 그만 빨려들어갈 것 같아, 움찔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말 없이 서로를 응시한 지 한 몇 분 정도가 지났을까,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읽어냈다는 듯 타카네씨가 만족한 표정을 짓고, 닫혀있던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루카. 그만 장난기가 들어서 그만 놀래켜주고 싶어졌습니다."

 

"에, 아 그 그랬나요?"

 

뭔가 진지한 분위기를 잡고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이었다, 라고 말하는 타카네씨의 말에 어떻게 답해줘야할 지 잘 몰라서 그저 아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뒷통수에 손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그러나 타카네씨는 딱히 상관없다는 듯 평온한 모습 그대로이네요. 왠지 저만 놀란 게 억울해져서 이쪽도 뭔가 왁! 하고 놀래키고 싶어졌습니다. 음, 어떻게 해야 저 대범한 타카네씨가 놀랄까.....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됬는 지 물어보는 게 가장 급하네요.

 

"저어, 타카네씨.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나요?"

 

"코토리 양이나 리츠코 공, 그리고 프로듀사는 퇴근하셨습니다. 유키호도 좀 전까지 남아있었으나 집으로 돌아가셨군요. 남아있는 사람은 저 혼자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대에 타카네씨 혼자? 이상하네요. 보통 프로듀서씨가 계실텐데.....

 

"프로듀사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혼자 남겠다고 요청했기 때문에 먼저 가셨을 뿐이니까요."

 

"앗, 그런가요? 그렇다면 타카네씨는 무슨 일로 혼자 남은 거에요?"

 

"그것은......"

 

혹시 '토푸 시크릿토' 로 대답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시원스럽게 이유를 밝히는 타카네씨.

 

"두 가지 이유입니다."

 

헤에, 두 가지 이유라니 과연 뭘까요. 저는 조용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잠깐 침묵하던 타카네씨는 저를 슬쩍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무소의 창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는 여기서 바라보는 달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말에 저도 살짝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보이는 건 깜깜한 하늘을 수놓는 약간의 별, 그리고 조금 멀리 작게 보이는 동그스름한 보름달. 언젠가 보았던 아주 커다란 보름달만큼 확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끔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나름 그, 뭐라고 해야할까.....풍취가 있다고 해야할까요. 너무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까운 것도 아니라서 살짝 안타까운 것 같기도 한. 에헤헷, 저로서는 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었을까요.

 

.....앗, 저도 모르게 그만 쭈욱 바라보고 있었네요. 과연, 이 정도의 풍경이라면 타카네씨가 계속 바라보고 있을 만 하겠구나~ 라는 느낌.

 

"그렇네요. 정말 아름답네요."

 

"후훗, 그렇습니까. 괜히 저도 기뻐지는 군요."

 

"아, 그런데 또 다른 이유도 궁금해졌어요. 어떤 건가요?"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했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또 하나는 하루카, 당신을 기다리기 위해서입니다."

 

에, 나? 저라고요? 이,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올 걸 그랬나요. 그렇지만 이미 시간은 늦어버렸고.....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프로듀사에게 이미 늦게 올 것이라는 것을 들어두었기도 하고, 또 이렇게 당신을 기다린 것은 제 멋대로의 고집이니까요."

 

하, 하하하 그런가요. 그런데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로 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그 휴대폰도 있으니 메일이나 전화로 이야기해도 될 거 같은데. 아니, 어쩌면 혹시 중요한 일이라도 있다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 히비키쨩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라도 있다던가.....으으, 제가 뭘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서....!

 

"후후후.....그렇게 얼굴을 새파랗게 질릴 만한 일은 아니니까 안심하십시오."

 

휴우, 그런가요. 저어 그러면 어떤 건지 제대로 알려주었으면 하는데요. 이런 제 속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타카네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 이렇게나 달도 아름다운데 가만히 집에 있기에는 아쉽지요. 그러니 밤 산책을 할까 하는데, 같이 어울려주지 않겠습니까? 아마미 하루카."

 

그러고는 천천히 하얀 손을 저한테로 내밀었습니다.

 

"......"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잠깐 고민. 그렇지만 그 고민이 무색하게 금방 결정났습니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모처럼 타카네씨가 권해주신 것이니, 기쁘게 어울려주기로 하죠 뭐. 내일은 오프니까 딱히 일에 지장도 없을테고요. 저는 타카네씨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전철이 끊기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돌려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엣, 그런가요? 저는 한 번 타카네씨네 집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나- 하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곤란합니다."

 

장난 삼아 던진 멘트. 그러나 타카네씨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만 웃음이 나와 키득거리면서, 저는 타카네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타카네씨의 손은 아주 부드럽고,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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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은......마이너의 맛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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