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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하루카. 다리를, 자르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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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8, 2014 21:50에 작성됨.

※ 잔혹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를 바랍니다.

 

치하야「……」

 

눈은 뜨고 있지만 뭔가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이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고개를 떨군 채로 어깨에 덮인 외투만을 붙잡고 있던 치하야의 머릿속에선, 의미 없는 생각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사고현장은 번잡했지만, 그 규모에 비해 그렇게까지 요란스럽지는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불길한 색으로 빛나며 회전하는 구급차의 비상등과, 주위를 서성거리는 구조요원들, 그리고 아련히 들려 오는 철과 철의 요란한 마찰음 정도였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에, 교통량조차 많지 않은 곳이었기에 상황을 구경하려는 인파조차 없었다.

버스를 운행하던 운전사는 어렵지 않게 구출되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오른팔 이외에 이렇다 할 부상은 없었던 치하야는 병원에 가 팔을 치료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고 억지를 부려 현장에 남아 있었다. 버스 안에 그 외의 승객은 없었으므로, 인명피해는 극히 적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서는.

 

… 이럴 거라면, 차라리 병원에라도 가 버리는 편이 나았을까.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치하야가 지금 이 곳에 있는 의미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하루카를 놔두고 갈 수 없다. 그렇게 무책임한, 무의미한 소리를 하고서는, 정작 옆에 있어 주지도 못하고 빠져나와 구석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뿐.
한 층 더 깊이, 얼굴을 파묻었다. 상처를 입은 오른팔이 시큰거리며 아팠다. 고개만을 살짝 돌려 버스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극도의 혼란상태로 버스에서 기어나와 저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스스로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앙상한 철골 뼈대에 반쯤 쳐박혀 있는 버스의 차체 위에는, 섬뜩하리만치 난잡한 형태로 수많은 철골이 쏟아져 있었다.

 

저래서야 차체가 엉망으로 찌그러질 만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지막으로 버스가 지나고 있던 곳은 확실히 새로운 건축물을 공사 중이던 장소 옆이었다. 어째서 사고가 일어난 것인지, 어떤 경위로 버스가 저런 곳에 충돌하게 된 것인지는 의식을 잃은 운전기사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시선을 조금 내리면, 버스의 내부는 임시로 설치된 조명으로 밝게 비춰지고 있다. 저 안에 있는 것은 몇 명인가의 구조대원과, 프로듀서, 그리고.

 


길게 늘어지는 처량한 비명.
제법 버스와 거리를 두고 주저앉아 있는 치하야의 귀에도, 목소리는 너무나 확실하게 들려왔다.
치하야의 몸이 흠칫, 하고 튀었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필사적인 움직임으로 시선을 돌린 치하야는 눈을 강하게 감은 채로 얼굴을 더욱 깊숙하게 묻었다 … 어디까지, 생각했었더라.
그래. 지금 버스 안에는 프로듀서가 있다.

 


누군가 도와 줘. 도와 주세요. 그것만으로 머리가 가득 찬 상태로 버스 안에서 어떻게든 기어나와, 버스의 터무니없는 참상을 보고 할 말을 잃은 채 얼마 동안인가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다가, 이름을 부르는 하루카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겨우 핸드폰을 조작해 연락했던 상대는 프로듀서였다.

처음 연락한 것이, 어째서 프로듀서였을까.
그것만큼은 마지막까지 알 수가 없었다.

 

P「… 치하야…? 무슨 일이야, 이런 시간에…」

 

명백하게 자던 도중 깬 것으로 보이는 그의 몽롱한 목소리를 들으며, 대답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대체 어떤 목소리였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다만,

 

치하야「…… 프로듀서. 도와… 주세요」

 

치하야「하루카를… 도와줘요…」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수화기 너머의 분위기가 바뀌었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P「무슨 일이야, 치하야. 하루카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사정을 설명해 줘」

 

치하야「버스, 버스… 가… 사고…… 하루카… 다리, 다리가…… 저 때문… 에」

 

P「… 치하야, 침착해. 알아듣게 말해 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

 

치하야「… 하루카… 다리, 하루카……」

 

P「…… 어디에 있어. 지금 찾아갈게」

 

치하야「아아아─ 프로듀서, 프로듀서. 하루카가… 하루카…」

 

P「… 치하야!!」

 

일갈하는 목소리에, 마치 찬물이라도 끼얹어진 것처럼 몸을 경직시키고서.

 

치하야「… 으, 흑…… 우우우우우우…!!!」

 

눈물을 쏟아내며, 더듬더듬 위치를 알 수 있는정보를 말하기 시작했었다.

 


도착한 구조대가 그 자리에 계속해서 서 있었던 치하야에게 괜찮느냐며 말을 걸고서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버스 안에 들어서고,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도착한 프로듀서는 축 늘어뜨린 오른팔을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

 

P「치하야… 너, 그 팔… 괜찮은 거야?」

 

치하야「……」

 

P「… 하루카는 어디에 있어?」

 

왼팔을 들어, 버스를 가리켰다.

 

P「… 그런가. 알겠어」

 

프로듀서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버스로 뛰어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치하야를 안아 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강한 포옹.

 

P「…… 다행이다」

 

P「치하야, 무사해서… 다행이야」

 

치하야「……」

 

다행도 뭣도 아니다.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루카 덕분이니까.

저 안에서 공포와 고통에 신음하며 누워 있어야 할 것은, 나였다.

그런 말을 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그런 말조차도 잘 나오지 않았다.

 

P「… 조금만 기다려. 하루카에게 갔다 올게」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치하야의 어깨에 걸쳐 주더니, 프로듀서는 그제서야 버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먼 시선으로 바라보던 치하야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이 내려앉는 충격에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은 부위가 삐걱거리고, 팔의 통증은 한층 더해졌지만, 허망한 표정에선 그러한 감정의 표현 따윈 일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외투만을 꾹 붙잡고 얼굴을 파묻고 있기를 몇 시간. 아니, 몇십 분일까. 어쩌면 몇 분일지도 몰랐다.
시간감각도, 몸의 아픔도, 주위에 내려앉은 어둠과 정적, 하지만 멀리서부터 작게나마, 그러나 확실하게 들려 오는 끔찍한 소리들도, 치하야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멀게 느끼도록 했다, 고 표현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예전부터 즐겨 사용해 왔던,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수단이었다.

 

치하야「…하하」

 

현실로부터 눈을 돌린다, 인가.
버스의 안에 누워, 꼼짝도 못 한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하루카에게는, 그것조차 불가능하겠지.
정말이지 팔자 좋은 일이었다.
하루카는, 나를 대신해서.
그런데도 나는.

 

… 어라.
키사라기 치하야는,
어째서 여기에 있었더라.

 

문득 떠올랐다는 것처럼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입가는 움찔움찔 경련하고 있었다. 옆에서 본다면 어떤 표정으로 보이는 걸까. 그것은 조금 궁금했다.

 

P「치하야」

 

들려온 소리에 반응해 얼굴을 들자, 언제 다가온 것인지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보고 있던 프로듀서와 눈이 마주쳤다.

 

치하야「프로듀서…」

 

P「… 너,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프로듀서는,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괴로운 것 같은 표정을 짓고서는,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 이 사람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치하야「……」

 

P「… 치하야, 따라와 줘. 네가 필요해」

 

치하야「… 무슨, 말씀이신가요」

 

P「그런가… 우선은, 너에게도 설명이 필요하겠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던 머리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감각.
프로듀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이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치하야「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습니까. 하루카를 구해 주세요」

 

P「……」

 

치하야「벌써, 시간이 상당히 지났을 텐데요. 어째서 하루카는 아직도 저기에 있어야 하는 거죠? 프로듀서는, 구조대원들은 뭘 하고 있는 겁니까」

 

P「치하야.」

 

치하야「얼마나… 얼마나 아플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루카는 지금도 무섭고, 아파서, 저 안에서… 울면서, 비명을 지르면서… 그런데도, 당신들은…!!」

 

P「… 냉정해져, 치하야」

 

하고 있는 말이 엉망진창이다. 그 정도는 스스로도 알고 있다. 지금 누군가를 탓해서 대체 뭐가 된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입은 이미 제어를 떠나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치하야「… 그렇네요. 저 같은 것이 이런 말을 하고 있어서는 수지가 맞지 않겠죠. 애초에 제가 아니었다면 하루카가 저런 일을 당할 일도 없었으니까요」

 

P「치하야, 잠시만 조용히 해」

 

치하야「이 팔을 빼내 주려고… 저를 구해주려고, 하루카는 저런 꼴을 당하고 있어요. 뭘까요. 전 무슨 죄라도 지은 겁니까? 하루카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구해 줘야 하잖아요. 저를 구해 준 것은 하루카지만, 그러면 하루카는 누구에게 구해지면 좋은 겁니까. 대답해 주세요, 프로듀서」

 

P「……」

 

치하야「… 당신들의, 당신들의 일이잖아…!! 어서, 하루카를 구해 주세요… 무엇 때문에 불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난 앞으로 얼마나 더, 하루카의 비명소리를 들어야만!!」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 충격으로 몸이 휘청하고, 어안이 벙벙해지기가 무섭게 화끈거리는 아픔이 느껴졌다.

오른팔이 아니다. 뺨에서부터다.

왼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지고, 그제서야 프로듀서에게 뺨을 맞은 것이라고 이해했다.

끓어오르던 머릿속이, 단번에 얼어붙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P「미안하다, 치하야」

 

P「… 하지만, 기억해둬」

 

P「괴로운 건, 초조한 건, 안타까운 건, 어쩔 바를 알 수 없는 건」

 

P「…… 너 혼자가 아니야」

 

치하야「… 그런, 것쯤은」

 

묘하게 차가워진 머리를 의식하며, 언제나와 같은 태도로 대답했다.

 

치하야「처음부터… 알고 있습니다」

 

P「……」

 

P「조금은 냉정해졌어?」

 

치하야「예, 덕분에. 죄송합니다, 프로듀서」

 

P「아니, 됐어… 거친 방법을 써서 미안하군」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프로듀서는 진지한 시선을 향해 왔다.

 

P「… 그러면 상황을 설명해야 할 텐데, 제대로 들어 줘. 괴로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치하야「… 알겠습니다」

 

치하야「하루카는… 훨씬 괴로울 테니까」

 

강하게 쥔 왼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것을 조금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던 프로듀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P「… 지금부터는 구조대원들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할게. 우선 처음에 버스가 충돌하는 순간 철근이 큰 충격으로 무너져서 버스 위에 쏟아진 모양이라고 하는데, 치하야, 그 팔은 어떻게 다치게 된 건지 설명해 주겠어?」

 

치하야「…… 확실한 기억은 없습니다. 버스가 충돌한 후 눈을 떠 보니, 찌그러진 의자에 짓눌려 있어서… 매우 아팠던 것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루카가…」

 

P「… 하루카가, 어쨌다는 거야?」

치하야「몸이 자유로웠던 하루카가, 다리를 사용해서 밀어내 팔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 직후에 뭔가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 보니, 저렇게」

 

P「…… 그런가」

 

그 말을 듣고서 침통한 얼굴을 한 프로듀서가 전해 온 말은, 좀처럼 믿기 힘든 것이었다.

 

아마 처음에 치하야의 팔을 짓누르고 있던 것은, 기껏해야 의자 위로 곧바로 낙하해 버스의 바깥으로부터 의자를 누르고 있었던 철근 한두 개 정도의 무게였을 것이다. 그것은 여자아이라고 해도 사람이 필사적으로 밀어낸다면 조금이라도 움직이기가 불가능한 무게는 아니다. 그렇기에 하루카가 다리를 사용해 어느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치하야의 팔도 빠져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절묘한 밸런스로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낙하한 철골들이, 그 밀어내는 움직임 탓에 균형을 잃었다는 모양이다. 비유하자면 강가의 돌들을 탑처럼 쌓아 놓은 것과 비슷한 상태. 겉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세워 놓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숙련된 사람들은 제각각의 형태를 한 돌들을 요령 좋게 높이 쌓아 놓을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미묘한 무게중심을 이용한 균형이다. 그것은, 설령 아무리 작은 힘이라고 해도 가해지는 순간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릴 만큼 한없이 불안정하다. 그렇기에 하루카가 철골을 밀어내고 치하야의 팔을 빼내었을 때, 그 밸런스가 무너져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던 철골들이 단숨에 쏟아져 내렸고,

 

P「… 지금 하루카의 다리는, 그 철골들 전체의 무게로 깔려 있다는 모양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심각성을 가진 말인지는, 그 방면에 해박하지 못한 치하야라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P「이미 아까 전부터 조금이라도 철골과 부서진 파편들을 들어내기 위해 몇 번이나 시도하고 있지만, 지금의 기재로는 역부족이라고 해. 솔직히 구조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야」

 

치하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방법이…」

 

P「물론 없지는 않아. 크레인 따위를 사용해서 위에서부터 철골을 들어낼 수도 있겠고, 저 만큼의 무게를 들어내고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에어백 같은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구조대원의 말에 의하면, 실질적으로 둘 모두 실행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선 그 정도의 대형 크레인을 공수해 오는 절차 및 여기까지 가져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상당하거니와, 하나하나 들어내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거의 현실성이 없다는 모양이다. 또한 사고 피해자가 무너진 건물 등에 깔렸을 때 에어백을 사용해 들어내는 것 역시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지금 사용 가능한 장비로는 저 정도의 무게를 들어낼 수가 없었다. 사고 현장이 외진 장소였고 늦은 시간 역시 악수가 되어, 이러한 현장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에어백을 지원받는 것 역시 제 때 맞추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P「… 하루카가 이 이상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인간의 다리가, 그만큼의 무게에 짓눌린 것이다. 한계를 넘은 통증과 그로 인한 체력 및 정신력의 소모는 당연하거니와,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조직이 죽기 시작할 위험성도 다분하다고 한다. 사고 발생으로부터 이미 몇 시간이나 시간이 흘렀고, 저런 무게에 그만큼의 시간이나 노출되어 있었다면─

 

치하야「…… 그럴, 수가」

 

어쩔 수도 없는 최악의 선택지가, 자연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P「… 적지 않은 피를 흘렸고, 이미 다리 근육이 괴사했을 거야. 크러쉬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고 해. 피가 통하지 않아 조직이 죽으면서 만들어진 독소가, 혈액순환이 재개되는 순간 피를 타고 온몸에 흘러서 심장까지도 멎을 수 있다는 것 같아」

 

치하야「그런… 하지만, 프로듀서…」

 

P「… 어쩔 수가 없어」

 

누구보다 분할 것이다. 안타까울 것이다. 가능하다면 손으로라도 직접 파헤쳐서 구해내고 싶을 정도로 애가 탈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그를 몰아세울 수가 없었다.


메마른 목소리로, 이미 예정되어 있는 끔찍한 결말을, 프로듀서가 입 밖으로 냈다.

 


P「…… 절단해야 해」

 


그제서야, 진정한 의미의 절망이,
치하야의 시야를 시꺼멓게 물들였다.


치하야「… 하지만… 프로듀서… 하지만…」

 

P「… 목숨이 위험해. 하루카를 살리려면, 그것밖에 없어」

 

치하야「프로듀서… 하루카의, 다리를… 그건 너무나도─」

 

P「치하야!」

 

치하야「…… 그건, 너무」

 

P「… 너는, 하루카가 살아줬으면 해?」

 

치하야「……」

 

치하야「그런, 것……」

 

 

 

치하야「당연하지… 않습니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잔혹하더라도,

고를 수 있는 다른 선택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P「… 그래」

 

P「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치하야「…… 하루… 카에게는, 이말을…」

 

P「… 전했어」

 

그러면, 여기서부터가 너에게 할 부탁이야.
그렇게 말하고서, 프로듀서는 팔을 뻗어 치하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P「… 치하야, 네가─」

 

P「하루카를 설득해 줘」

 


***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쓰러져 있는 버스. 찌그러진 차체.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성. 철이 삐걱대고 톱이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 분주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치하야「… 하아, 하아…!」

 

와들와들 떨리는 몸을 두 팔로 부여잡고, 간신히 가라앉혔다.

 

P「… 괜찮아, 치하야?」

 

치하야「…… 괜찮, 습니다」

 

발걸음을 돌리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저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가까워질수록, 버스의 안쪽이 들여다보인다. 보고 싶지 않았다. 다시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유우의 마지막 모습과, 고통스러워하던 하루카의 얼굴이 뇌리에 스쳤다.

 

치하야「제가…」

 

치하야「제가, 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것만을 유일한 무기로 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아우성치는 것 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버스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의지는,
몸을 굽혀 버스 안에 들어서서, 눈앞의 광경을 보자 마자 깨끗하게 날아갔다.

 


하루카「…… 아, 치하야… 야호─…」

 

하루카「…… 헤헤, 이런 상황에선… 좀, 아니었, 으려나」

 

치하야「… 하… 루카」


몇 명인가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하루카가, 안에 들어선 치하야를 보고서는 눈물자국이 말라붙은 얼굴을 한 채, 미소리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치하야「… 아」

 

쏟아진 잔해에 깔려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하루카의 왼쪽 다리.

그 틈새에서 흘러나와 주위를 흥건하게 적신, 붉은 피.

마치 사망선고를 받은 환자의 꺼져 가는 생명을 강제로 지탱하는 산소호흡기처럼, 다리 주위에 난잡하게 널려 있는 장비들.


반듯하게 누워 있는 하루카는, 그러나 주위의 부서지고 찌그러지고 널부러진 의자와 파편과 철골과 그 한 가운데의 하루카는 마치 먼 예전에 보았던 누군가와도 닮아 있어서

 


─ 유우

 


─ … 유우?

 

 

 

치하야「… 윽, 콜록…!」

 

정신이 들자, 어느샌가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치하야「후욱, 후욱, 하아…!!」

 

P「치하야!? 어이, 치하야! 괜찮은 거야!?」

 

치하야「… 큭, 콜록, 콜록!… 하아, 하아…」

 

치하야「… 괜찮습니다, 프로듀서… 괜찮아요」

 

P「치하야, 무리라면 됐어. 어떻게든 나만으로 해 볼 테니까…」

 

치하야「제가!」

 

후들거리며 떨리는 다리를 애써 버티고 선 채로, 필사적인 시선을 프로듀서에게 향했다.

 

치하야「… 제가, 하게 해 주세요」

 

P「치하야…」

 

어떻게든 납득해 준 것일까. 프로듀서가 뒤로 물러났다. 호흡을 가다듬고서 하루카의 곁으로 다가갔다. 구조대원들이 자리를 비켜 준 덕에 머리맡에 앉을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잠자는 것처럼 누워 있던 하루카가, 식은땀에 젖어 들러붙은 앞머리를 쓸어넘겨 주는 치하야의 손에 반응하듯 느릿한 동작으로 눈을 떴다.

 


치하야「하루카… 많이 아프지」

 

하루카「으응… 괜찮아. 아까 전까지는 너무 아팠지만… 이젠, 참을 수 있을지도… 헤헤…」

 

당연하게도,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피가 통하지 않는 말단부의 감각이 사라져 간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하루카라도 충분히 알 수 있겠지.
모를 리가 없는데도, 하루카는 마치 그런 것은 알지 못한다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하루카「그런데 말이야, 치하야… 들어 봐」

 

꺼져 가는 촛불과도 같은 위태로운 목소리라는 것만 빼고 듣는다면 평소에 오늘의 일이 힘들었다고 투덜거리던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은, 한없이 가벼운 말투로 하루카가 말을 꺼냈다.

 

하루카「있잖아? 프로듀서 씨가, 이상한 말을 하시는 거야… 내 다리…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치하야「……」

 

하루카「이상… 하지? 그게, 나 혼자서도 밀어냈는걸… 이런 것 정도는… 금방 치워 버리고, 나올 수 있을… 텐데」

 

치하야「……」

 

하루카「… 아프네… 아까보다는, 괜찮지만, 그래도… 치하야, 그 때부터 얼마나 지난 거야…? 계속 누워만 있어서, 잘 모르겠어」

 

치하야「……」

 

하루카「치하야…? 저기, 뭔가, 이야기하자…? 계속, 이렇게만 있는 건… 힘들기도 하고… 쓸쓸해」

 

치하야「하루카…」

 

치하야「난…」

 

입술을 아플 정도로 깨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아이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면 좋단 말인가.

 

프로듀서는 이미 한 번 전했다고 말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말을 직접 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프로듀서는 너무나도 강한 사람이었다.
하루카. 언제나 밝게 웃던 하루카. 친구가 되어 준 하루카. 식단을 걱정해 준 하루카. 팔을 빼내어 준 하루카.
정말로 소중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존재.

 

가혹하다.
신이 있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주하고 싶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하루카의 머리만을 계속해서 쓰다듬고 있자, 프로듀서와 눈이 마주쳤다. 이내 곧바로 눈을 돌린 프로듀서는, 괴로운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 치하야, 기억해 둬
─ 괴로운 건
─ 너 혼자가 아니야

 

알고 있어요, 프로듀서.
─ 알고 있다면, 지금, 확실히 해야 했다.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 응? 치하야」

 

치하야「하루카는… 살고 싶지 않아?」

 

하루카「……」

 

치하야「방법이 없다고 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치하야「나도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렇지만」

 

치하야「… 하루카, 부탁할게」

 

하루카「…… 치하야도」

 

그렇게 말하며 치하야를 바라보는 하루카의 눈은, 언제부터였는지, 한없이 차가워져 있었다.

 

하루카「치하야도, 그런 말을 하려는 거야?」

 

치하야「하루카…」

 

하루카「싫어… 나, 아직 아이돌을 하고 싶어… 모두와 함께,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춤추고… 돔에서 라이브도 하고 싶어… 톱 아이돌도, 되고 싶어…」

 

치하야「…… 윽」

 

하루카「다리가 없으면… 그런 거,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걸… 싫어, 싫어… 치하야…」

 

 


하루카「…… 구해줘…」

 

치하야「…… !!」

 


그것이 결정타가 되어.
하려고 했던 말들이 단숨에 새하얗게 날아갔다.


치하야「아… 아」

 

치하야「하루, 카… 난, 나… 는」

 

P「… 하루카, 어쩔 수 없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보다 못한 프로듀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P「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해서 시도해 봤지만, 지금 우리는 네 다리를 구할 수가 없어. …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야. 하루카, 네가 살기 위해서는…!!」

 

하루카「… 상관없어요」

 

P「하루카…!!」

 

하루카「다리를 잘라내고, 아이돌도 하지 못한 채, 평생 동안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전, 살고 싶지 않아요…」

 

P「… 그런 생각하지 마. 순간의 감정일 뿐이야.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없어… 그리고 의족을 사용할 수도 있잖아」

 

하루카「… 의족을 달고서, 댄스를 할 수 있나요?」

 

P「… 그건」

 

하루카「프로듀서 씨… 전, 어렸을 때부터, 아이돌이 되고 싶었어요」

 

다시 솟아나는 눈물을 닦지조차 못한 채, 하루카가 말을 잇는다.

 

하루카「아이돌이 되고… 행복했어요… 모두와 함께 TV에 나오고, 무대에 서서… 아이돌로서 있을 수 있어서… 제 삶의 이유를 발견한 것 같아서, 정말로 기뻤어요…」

 

하루카「그러니까… 그런 말씀, 하지 말아 주세요… 네? …… 저, 이제 아프지 않아요… 더 기다릴 수 있으니까… 프로듀서 씨」

 

P「…… 큭…!」

 

─ 프로듀서라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루카를 보아 왔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듀서 본인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돌에 대한 하루카의 열정과 선망, 그리고 누구보다도 노력하던 모습. 하루카는 두려워하고 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도, 그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을.

이 소녀에게, 살고 싶다면 그것을 잘라내 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 것인가.

 

프로듀서가 팔을 뻗어, 침통한 얼굴로 듣고 있던 구조대원을 붙들었다.

 

P「… 방법이, 없는 겁니까」

 

남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P「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야」

 

P「…… 이 아이를 보십시오」

 

남자「……」

 

P「이 아이에게… 하루카에게, 다리를 자르라는 말 따위…」

 

P「─ 세상의 누가, 할 수 있느냔 말이야!!」

 

고함을 지르던 프로듀서가,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아이돌의 앞에서는 강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자 했던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기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 소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었다.

 

P「… 톱 아이돌로, 만들어 주고 싶었어」

 

P「그 밝은 미소와, 활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고… 나라도…!!」

 

P「하지만… 하루카, 가……!」

 

 

 

「나는, 하루카가 살아줬으면 해」

 

 

 

바닥에 방울지며 떨어지는 눈물의 흔적만을 남기며, 말을 끝맺지 못하던 프로듀서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P「……」

 

P「… 치하야」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주저앉아 있었던, 모든 의지를 빼앗긴 텅 빈 인형 같았던 치하야가, 어느샌가 결연한 표정을 한 채로 그 눈을 다른 것으로 빛내고 있었다.

그 눈은 무언가를 확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의지를 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프로듀서로서도 알 수 없었다.

 

치하야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치하야「들어줘, 하루카. 솔직히 난 처음엔 하루카가 귀찮다고 생각했어」

 

치하야「노래도, 댄스도 형편없는 주제에 항상 친한 척 말을 걸어 오고, 불필요한 참견을 해 오고, 뭐야, 저 애는.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던 때도 있었어」

 

하루카「……」

 

치하야「오늘만 해도 순전히 하루카의 제멋대로였지. 필요없다고 말했는데도, 굳이 나를 따라와서는 이런 사고를 당하고, 하루카는 언제나 그랬어」

 

P「… 치하야, 너 무슨」

 

치하야「하지만」

 

치하야「… 하지만, 그 제멋대로에」

 

치하야「나는 몇 번이나 구원받았어」

 

치하야가, 아픔에 못 이겨 축 늘어뜨리고 있었던 오른팔을 뻗었다.
피가 얼룩져 말라붙은 손으로, 하루카의 뺨을 가볍게 감싸안고, 어루만졌다.

 

치하야「TV 프로그램에서 매몰차게 굴어서 출연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어. 노래를 인정받지 못해서 우울증에 빠졌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어」

 

치하야「그 때마다, 손목을 틀어잡고 끌어 당기면서, 누구보다도 천연덕스럽게 웃어 주었던 하루카가 있어서」

 

치하야「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치하야「─정말로 고마워, 하루카」

 

하루카「… 우… 웃」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하루카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하루카는 눈을 한 쪽 팔로 가린 채로 흐느끼고 있었다.

 

치하야「… 미안해, 이런 일을 당하게 해서. 이런 말밖에는 할 수 없어서, 미안해」

 

치하야「나를 구해 줘서 고마워. 나를 걱정해 줘서 고마워」

 

치하야「그렇지만 나는 융통성 없는 인간이라, 그렇게나 고마운 하루카에게도 이런 식으로밖에는 말할 수 없어」

 

치하야「있잖아, 하루카.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아이야」

 

치하야「그런 나는, 어떤 형태로든지 상관없으니까」

 

치하야「하루카가 살아주기를 바래」

 

치하야「무대에서 춤출 수 없더라도,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하루카는 하루카야」

 

치하야「하루카. 이건 부탁도 아니고, 권유도 아니야. 순전히 내 억지야. 그렇지만 말할게」

 


치하야「나를 위해서─ 살아줘」


P「……」


프로듀서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듣는 쪽에 대한 배려 따위는 보이지 않는, 정말로 말 그대로의 억지.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밀어붙이고 있을 뿐인 엉망진창인 대화법이다.
마침내 치하야도 마음의 여유를 잃은 것일까. 교통사고에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는 치하야를, 이 이상 몰아붙여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치하야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버스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던 그 때.

 


하루카「…… 흑… 욱, 우우우…」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으며, 오열하고 있었던 하루카가.

 


「……… 응」

 

 

 

 

 


하루카「응……」

 

 

그 말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눈으로, 눈물을 머금은 채 치하야를 바라보며.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루카「…… 치하야, 부탁 하나만… 해도 괜찮아?」

 

구조대원들이 황급히 절단에 필요한 장비를 가지러 가는 사이,
치하야의 손을 꼭 잡고 있었던 하루카가 그렇게 말했다.

 

치하야「어떤 부탁인데?」

 

하루카「치하야가, 들려 줬었던 노래 말이야… 정말로 좋았어」

 

뺨을 어루만지는 치하야의 손이 간지럽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하루카는 말을 이었다.

 

하루카「치하야는 이상한 것 같다고 했지만… 내가 듣기에는, 정말로… 좋은 곡이었어」

 

하루카「난 치하야의 노래를… 정말로 좋아해… 그러니까」

 

하루카「…… 노래, 불러 주지 않을래?」

 

치하야「……」

 

하루카「버스에서 들려 주었던 그 노래로, 괜찮으니까…」

 

하루카「…… 치하야의 노래가 묻혀 버리면, 안 되니까… 듣고 있으면…」

 

하루카「나도, 비명을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치하야「… 응, 알겠어」

 

하루카「에헤헤… 고마워… 치하야」

 


준비가 마쳐지고, 부분마취가 시작되었다. 이미 피를 많이 흘렸기에 호흡수의 저하가 우려되어 전신마취는 시행할 수 없었다. 잔혹한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하루카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메스가 꺼내들어졌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하루카가, 치하야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하루카「… 치하야」

 

치하야「… 응.」

 

하루카「부탁, 할게」

 

치하야「……」

 


눈물을 한 차례 닦아낸 치하야가, 숨을 크게 들이키고.

 


─계속 잠들어 있었더라면
─이 슬픔을 잊을 수 있었겠지…

 


아름다운 목소리가, 차체 안을 가득하게 채우며 울려퍼졌다.

 

 

 


***

 

 

 

「… 응, 봐 줬구나. 오늘의 무대」

 

「에?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어… 후후, 과장이 심하네」

 

「… 응, 응. 언제나, 봐 주어서 고마워」

 

「다음에, 또 만나러 갈게… 그러면 그 때 보자」

 


치하야「… 하루카」

 


통화가 끊기고, 조금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치하야에게 프로듀서가 다가왔다.

 

P「하루카로부터의 전화야?」

 

치하야「네. 오늘의 공연, 봐 준 모양이예요」

 

P「요새 하루카는, 너희들의 무대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면서 굉장히 열중해 있으니까. 빼놓지 않고 보는 것도 당연하겠지」

 

치하야「…… 그렇네요」

 

P「… 신경쓰고 있는 거야?」

 

치하야「……」

 

치하야「하루카도, 함께 있었더라면」

 

그 이상 말해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옳은 일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프로듀서와 치하야는 침묵을 지켰다.

 

치하야「… 다음에, 병문안을 갈 때에는, 노래를 불러 줄까 생각해요」

 

P「… 하하. 괜찮은 거야? 부끄럽다면서 항상 거절했잖아」

 

치하야「그렇지만… 하루카는, 제 노래를 들으면 정말로 기뻐하니까요.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

 

P「… 응. 분명히 기뻐하겠지. 잘 생각했어」

 

치하야「… 프로듀서」

 

치하야「하루카가 다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P「… 그렇네. 재활이 끝나면 아마 의족도 착용할 수 있을 테고, 요즘은 미관상으로 문제가 없는 종류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댄스나 활동적인 일만 아니라면, 제한적으로는 가능할지도 몰라」

 

P「하루카가 그것을 원할지는, 아직까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치하야「…… 그렇습니까」

 

P「… 피곤하지? 무대, 수고 많았어. 모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푹 쉬도록 해」

 

그렇게 말하고서, 프로듀서는 치하야를 뒤로 하고 대기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치하야는 그대로 벽에 기대어 스르륵 주저앉았다.

 

치하야「… 하루카」

 

치하야「난… 옳은 일을 했었던 걸까?」

 

허공에 허무하게 스러진 목소리에, 대답해 줄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하루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치하야는, 그런 동기를 부여함으로서 하루카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심을 수 있었다.

한없이 억지스럽고, 이기적인, 그러나 아마미 하루카라는 인물에게는 반드시 필요했던 것.

하루카에게 그 짐을 지운 치하야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이고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책임이 있었다.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은 어두운 복도의 천장. 마치 그 날의 광경을 보는 것만 같아서, 조금 불편해졌다.
교통사고에 대한 치하야의 트라우마는 그 사건 이후로 더욱 심해졌다. 당분간 심리 상담을 겸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이제는 일을 위해 차량으로 이동할 때마다 숨이 답답해질 정도가 되어 여러 가지로 아이돌 활동에도 장애가 되고 있었다. 하루카가 몸의 한 부분을 잃은 것처럼, 어쩔 수도 없이 남게 된 상처자국이었다.

 

─ 하지만, 하루카는 살아 있다.
그것을 되새기며, 치하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로 향했다.

 

저 안에는 공연을 마치고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두가 있을 것이다. 하루카가 애타게 원해 마지않았던, '아이돌'의 모습이다.
그것을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해내며 하루카에게 그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스스로의 책임인 것이겠지.
다음 문병을 갈 때에는 반드시 신곡을 불러주도록 하자. 분명히, 좋아해 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모두에게 보여주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 후, 대기실의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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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의학드라마인 House. M. D에서 원안을 베껴따 왔으므로 아마 의학적 고증은 틀린 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없고 우울할 뿐인 이야기를 분량만 잔뜩 쓴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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