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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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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1, 2012 13:24에 작성됨.

프로젝트 페어리가 아이돌 페스티벌에서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한지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페스티벌 이후로 페어리에게 꽤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예상했던 대로 765프로의 인지도 역시 대폭 상승했다지만, 그래도 아직 유명 프로덕션 라인에 이름을 올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 전보다 일거리가 많이 생긴 것을 생각하면 페어리가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예전 같았으면 출근해서 그냥 멍하니 있다만 가는 녀석들도 종종 있었는데, 이제 적어도 모두 하루-이틀에 한 번 정도는 스케줄이 생겼다는 정도일까. 물론 페어리 당사자들은 꽤나 바빠졌고, 페어리를 제외하고도 몇몇 녀석들은 자주 일거리를 얻고 있다. 덕분에 나도, 리츠코도 덩달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나는 배우느라, 직접 뛰느라, 게다가 아직까지 프로젝트 페어리의 전담 프로듀서이면서도 다른 녀석들까지 신경써줘야 하기에 몇 배는 더 바빠졌다. …그동안 실수가 없었더라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사람을 실수로부터 배우는 거니까. 라고 위안삼고 있다.

누나와 디어리 스타즈가 속한 876프로도 페스티벌 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인지도 상승을 얻었는데, 누나와 칸자키 란코의 듀엣은 애석하게도 오디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도 탈락. 결국 솔로의 길을 걷기로 한 모양이다. 그래. 역시 누나는 솔로가 어울린다고 할까.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르지. 대신 듀엣으로는 그 거인. 모로보시 키라리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 녀석과 니트인 후타바 안즈의 듀엣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도 한 번 듀엣이나 결성해볼까. 마코토와 유키호, 아즈사 씨와 치하야, 이오리와 야요이 정도면 듀엣의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
저번 페스티벌 때의 뉴 제네레이션이 제대로 팬 층을 확보해나가는 것도 그렇고, 듀엣도 여러모로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봐야지.

어쨌든, 제대로 된 이야기는 이제 막 가을의 문턱을 지나온, 가을이라고도, 여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시점. 리츠코가 연예프로덕션 야구대회의 초청장을 받아온 것부터 시작된다.

“우리 765프로도 이제 꽤 인기가 있어졌다는 것의 반증인건가.”

“네! 그런 셈이죠. 작년까지만 해도 프로덕션 대항전 같은 행사에 출전하는 건 꿈도 못 꿨을 테니까요.”

“그거 작년까지만 해도 운동회 비슷한 거 아니었나. 왜 올해는 야구인 거야?”

“그야 요즘 프로야구가 대인기고, 내년에 WBC까지 있으니까.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여기 적혀있기도 하고.”

“뭐. 어찌됐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드디어 내가 제대로 활약할 때가 왔다는 거지. 프로듀서인 내가 전직 프로야구선수인 이상 우리 765프로의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다. 우승 말고 생각할 수가 없어. 다른 선택지 따윈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라고. 알았나.”

“…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어요. 이번 일은 프로듀서에게 위임하려고 생각했으니까요.”

“탁월한 선택이다. 그럼 일단 녀석들을 불러서 이야기해야지.”

우연히도 이 시간대는 열두 명 전원이 비어있는 시간대라 그런지, 모두 사무실 안에 모여 있었으므로 나와 리츠코는 모두를 스케줄을 기입하는 화이트보드 앞에 불러 모았다.

“잘 들어!”

내가 쓸데없이 기합이 들어간 걸 느낀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올해 프로덕션 대항전에는 우리 765프로의 출전이 확정되었다!”

웬만한 유명 프로덕션이라면 모두 참가할 정도로 인지도 높은 프로덕션 대항전. 내가 프로듀서가 되기 전 이쪽에 문외한이었을 때도 알고 있었을 정도로 인지도 높은 행사인데, 이 녀석들이 모를 리가 없지.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 그거 진짜지?”

“물론! 여기 초청장도 받았다.”

사무실은 돌연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왁자하게 떠들기 시작한 녀석들을 진정시킨 다음, 하려던 말을 계속하기로 했다.

“올해의 종목은 작년까지 그랬던 것처럼 운동회 같은 형식이 아니야. 남자부, 여자부로 나뉘어서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한다. 종목은 바로… 야구다.”

그제야 내가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았는지 이해했다는 반응들이 속속 나왔다. 대체 왜 야구를 해야 하는 거냐며 투덜대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역시 나라는 존재가 있으니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이야기해주는 녀석들도 있었다.

“어디보자… 여자부는 8개 프로덕션이 8강 토너먼트를 치르게 되는군. 시간과 체력을 고려해서 경기는 4회말까지만 진행. 야구공도 연식을 쓰긴 하지만… 연식도 맞으면 꽤 아플 텐데. 뭐. 알아서 잘 하겠지.”

“연식구는 경식구랑 쥐는 법이 다르지 않나요?”

마코토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봤자 저 녀석은 연식구 던지는 법도 빨리 배우겠지. 일단 투수는 저 녀석으로 낙점이다. 과연 일본에 존재하는 여성 아이돌 중에 마코토의 공을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천재일 거다. 아. 물론 히비키는 제외하고.

“잘 들어라. 우리 765프로의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야. 물론 내 전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이 분야에 관해서는 지기 싫다는 개인적인 생각도 있지만, 생각해봐라. 이번 대항전은 전국으로 송출되는 방송이라고. 여기서 우승하면 인지도는 자연스럽게 따라붙게 되어있는 거야.”

내 말에 그제야 전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뭔가 속인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솔직히 사실이니까.

“그런 이유로 내일 스케줄 비는 시간에 단체연습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뛰는 것보단 그래도 몇 번 해보고 뛰는 게 훨씬 나으니까. 부상 위험도 적고.”

“에에--”

“무슨 반응이냐, 그건. 내일 별로 덥지도 않고, 다 니들에 맞춰서 연습시킬 거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날 뭘로 보는 거야.”

아무래도 시간상 모두가 모여 연습하는 건 별로 할 수 없겠지. 어떻게 네 명씩 조를 편성해서 로테이션으로 돌리는 편이 나을지도. 자세한건 일단 내일 생각하자.

그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랜만에 우리 팀이 연습하는 구장을 찾았다.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프로듀서가 된 이후로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연습 좀 하고 했으니까. 경기는 아무래도 별로 뛰지 못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엉덩이를 걷어차인 다음, 내일 구장을 사용하는 허가를 받는 대가로 연습이 끝날 때까지 팀원들을 코칭해준 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니,

“………”

“…누나?”

카에데 누나가 내 나무배트를 들고 엉거주춤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군. 아니. 이미 답은 나와 있는 것 같지만.”

아. 처음 봤다. 누나가 부끄러워하는 모습. 웬만한 일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누나가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역시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각하고 있다는 건가.

“876프로도 나가? 야구대회.”

“…응.”

“거기 8명밖에 없지 않아?”

“아니. 최근에 자매 두 명이 더 입사했어.”

“그럼 열 명이네. 거기도 이제 꽤 커졌네.”

“더 재미있어졌지.”

“그나저나, 그 포즈 좀 어떻게 해봐. 그렇게 잡고는 티 배팅도 못할 것 같다고.”

누나는 눈을 귀엽게 깜박이며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내가 장장 한 시간에 걸쳐 손수 자세를 교정해주고 나서야 그나마 봐줄만한 타격 폼을 익히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내일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겠지만 말이다.



다음날.

“다들 모였는가.”

일부러 오전에 연습시간을 잡았는데, 역시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날씨였다. 운동하기 좋은 날씨라는 거지. 마코토나 히비키 같은 활동파들은 이미 밝은 표정으로 준비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활동하기 좋은 차림의 소녀가 열두 명. 거기에 나를 도와줄 리츠코 역시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물론 내가 속한 사회인 야구팀의 유니폼을 갖춰 입고 나왔다. 여성용 야구도구는 내가 직접 렌트해 가져왔다. 한 마디로 만반의 준비가 된 셈이다.

“일단 내야 포지션에 적합한 사람을 뽑을 테니까. 생각해봤더니 역시 포지션을 먼저 정하고 연습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 같아. 내가 부르는 대로 위치에 가서 서라고.”

내야 중에서도 ‘키 스톤’이라 불리는 2루수와 유격수가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부상의 위험도 가장 크고, 땅볼 타구가 가장 많이 가는 곳이니까. 이 두 포지션은 765에서 마코토를 제외하고 가장 운동신경이 좋은 녀석으로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역시 히비키랑… 나머지 한 쪽은 미키나 타카네가 좋을까.

수비연습은 연식구보다 더 강도가 약한 안전구로 하기로 했다. 노크볼은 물론 나밖에 칠 사람이 없다.
일단 투수로 일찌감치 낙점한 마코토를 제외하고 눈대중으로 그나마 운동신경이 좋아 보이는 네 사람을, 1루에 치하야, 2루에 타카네, 유격에 히비키, 3루에 미키를 세워놓고 노크를 시작했다.

“유격수!”

히비키를 향해 땅볼을 쳐내자, 히비키는 자신 있다는 듯이 웃으며 공을 향해 달려 나간 다음, 그대로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빠뜨렸다.

“멋지게 알을 까는구나.”

자신의 뒤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황망히 바라보고 있던 히비키는,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자, 잠깐! 공이 멋대로 튄다구!”

그렇겠지. 요령을 알지 못하면, 뜬공을 잡는 것보다 땅볼처리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우니까. 결국 내가 나서서 요령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물론 선수시절의 대부분을 외야에서 보내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3루 땜빵으로도 나가본 적이 있으니까.

“글러브를 너무 빨리 퍼 올리지 말고 미는 느낌으로…”

“오오--”

대충 요령을 익힌 듯 보이니, 이제 타구를 잡고 1루로 송구하는 연습을 시켰다.
그랬더니 이번엔 히비키나 타카네나 송구에 너무 힘을 줘서 치하야가 잘 잡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좀 약하게 해!”

“에잇-!”

내 외침이 무색하게, 히비키의 송구는 치하야의 머리 위를 훌쩍 지나가 버렸다. 치하야가 점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닿지 않는 높이였다.

“큿…!”

이대로는 틀렸다. 뭔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 그래.

“1루 교체! 야요이. 네가 들어가 봐.”

“에에--”

내 말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치하야의 반응이 정말 극적이었다. 마치 내가 아동학대라도 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인 것이다.

“다 생각한 게 있으니까 조용히들 해.”

야요이를 처음 만난 날 야요이가 내게 한 말이 있다.
‘야구는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해요.’
내가 프로듀서가 되기 전, 아직 사회인 야구에 시간을 많이 쏟았을 때, 야요이와 캐치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느꼈지. 던지는 힘은 아직 약하지만, 받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던 것이다.

“자. 다시 시작! 2루!”

2루로 땅볼을 쳐내자, 타카네는 능숙하게 잡아 1루에… 평소처럼 송구하려다 야요이를 보고 움찔했다. 그리고는 야요이가 최대한 받기 쉽게, 아까보다 훨씬 약하게 1루로 송구했다. 물론 야요이는 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내 예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설마 야요이를 앞에 두고 무식하게 세게 송구하진 않을 테니까. 그것은 유격수 자리에 있는 히비키와 3루의 미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야요이를 1루에 놓고 치하야를 외야로 빼는 것도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문제가 있다면 3루를 보고 있는 미키인데… 이 녀석. 예의 흥미없음모드로 들어가서 대충대충 하고 있다. 3루도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인데 말이지. 그래도 최소한 할 건 해주고 있으니까 일단 이대로 놔두자. 나중에 설득을 하든지 하지 뭐.

그럼 이번엔 외야인가.
내야의 네 명을 제외하고 모두 외야로 보낸 다음 무작위 코스로 뜬공을 쳐낸 다음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먼저 하루카!”

“네엣-!”

하루카가 서있는 좌측으로 공을 쳐 보냈다. 그러자 하루카는 역시나 우왕좌왕하더니, 자신의 왼발로 자신의 오른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으왁! 너 괜찮냐?”

“아야야… 네. 저는 괜찮으니까…”

이 녀석은 안 되겠다. 이 녀석에게 외야 한 자리를 맡겼다간 경기 끝날 때쯤엔 다리가 아작 날지도 몰라.

“다음! 유키호!”

“히잇! 네, 네에-!”

오오. 의외로 곧잘 따라가긴 했지만… 마지막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기겁을 하며 공을 피했다.

“이건 피구가 아니야, 임마!”

“죄, 죄송해요오-”

“다음! 마미!”

분명히 마미를 호명했건만, 마미도, 그리고 옆에 있던 아미도 동시에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마미 볼!!”

“아미 볼!!”

“안 돼! 그만둬! 멍청이들! 그러다 다친…아.”

초보자들은 물론, 프로 선수들도 가끔 범하는 실수가 바로 저 콜 플레이 미스다. 옆에 사람이 있는 건 보지도 않고 오로지 공만 따라가던 두 사람은 서로 충돌해 성대하게 나뒹굴고 말았다.

“오빠는 분명히 마미를 불렀단 말이야.”

“하지마안…”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다치지는 않은 것 같다. 방금 전과 같은 상황에서 크게 부상당한 선수도 가끔 목격했던 나로서는 아직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만큼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 기회에 다들 모아놓고 콜 플레이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쳐줘야겠군. 될 수 있으면 먼저 콜을 외친 사람이 잡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나중에 콜한 사람이 타구를 잡기 쉬울 때가 있지만, 그땐 유연하게 상황대처를 해야겠지. 어쨌든, 어느 시점이던 간에 누군가 콜을 했으면 그때부터 달리던 속도를 늦추고 최대한 충돌을 피하는 것이 기본이다.
반대로 서로 잡으려고 할 때 말고도 서로 상대에게 맡기는 바람에 공이 그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고 땅에 떨어질 때도 있지만, 이건 안타를 만들어줄지언정 부상의 위험은 없다. 그 대신… 그 꼴을 보게 되는 코칭스텝이나 팬들이 현기증과 분노를 동반한 정신적인 부상을 당하게 되겠지.

어쨌든, 콜 플레이에 대한 이론 강의를 마쳤으니 다시 연습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아즈사 씨! 갑니다!”

“네에~”

하루카처럼 허둥댈 줄 알았건만, 아즈사 씨는 의외로 차분하게 낙구지점까지 이동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 공만 제대로 잡으면 드디어 외야수 한 자리 낙점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머어~”

공은 아즈사 씨의 한참 앞에서 떨어졌다. 거기서 바운드된 공은 거짓말같이 아즈사 씨의 가슴 위에 안착한 다음, 또르르 굴러 그녀가 미리 받쳐놓고 있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구장은 순간 침묵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나는 물론이고 외야에 있던 여섯 명과 내가 지시한 대로 연습을 하고 있던 내야 포지션의 네 명과 그걸 서포트 해주는 리츠코마저 얼빠진 표정으로 그 광경에 얼어붙었다.

“큿…”

침묵을 깬 것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비통한 신음소리 뿐이었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즈사 씨 역시 틀렸다. 댄스는 그렇게 잘하면서 다른 운동신경은 절망적인 건 그렇다 치고, 최우선적으로 낙구판단 자체가 끝장이었다. 공이 어디로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따라간단 말인가. 그 기적의 가슴캐치…이후에 몇 번 더 아즈사 씨를 대상으로 타구를 날려 보낸 결과였다.

“괘, 괜찮으세요? 바운드 된 공이라지만 꽤 강했을 텐데.”

차마 ‘가슴 괜찮으세요?’라고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즈사 씨의 표정을 보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인 것 같았다. 역시 대단한 쿠션이야.

“다음! 치하야!”

치하야의 운동신경이 좋다는 건 알고 있으므로, 일부러 타구를 깊숙한 곳으로 보냈다. 하지만 치하야는 기가 막히게 타구를 따라잡았다. 알고 있기는 해도, 평소의 조용한 모습을 생각하면 놀랄만한 움직임이었다.

“좋아! 거기서 공에 눈 떼지 말고! 반동을 줄여야 하니까 팔을 내리면서 공을 캐치해!”

그녀는 내 코치를 제대로 받아들여 뜬공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자신도 놀랐는지, 한참동안 글러브 안에 들어 있는 공을 빤히 보고 있었다. 좋아. 드디어 한 자리 나왔구만. 외야 세 포지션 중 가장 수비범위가 넓어야 하는 중견수를 맡겨야겠다.

“이오리! 간다!”

멀리서도 이오리가 침을 삼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저 녀석 성격상 아무리 처음이라고 해도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고, 잘하면 이오리도 성공할지 모르겠어.

곧바로 이오리가 서 있는 센터를 향해 공을 날려 보냈다.
이오리 역시 치하야와 마찬가지로 공을 쫒아가는 건 꽤나 잘했다.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타구를 제대로 쫓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됐어!”

제대로 위치를 잡고 글러브를 낀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나는 이오리의 성공을 거의 믿고 있었지만,
공은 글러브 안에 들어갔다 밖으로 튕겨져 나와 땅에 떨어졌다.

“아아…”

“아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탄식과 함께, 이오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떨어진 공을 보았다. 그래도 다른 녀석들에 비하면 저것도 대단한 거지. 조금만 다듬으면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다.



“자. 그럼 다음은 타격이랑 주루다.”

“드디어 재미있는 게 왔다구!”

히비키가 주먹을 불끈 쥐는 것을 시작으로, 다들 아까보다는 나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긴 수비연습보단 확실히 타격이 재미있지. 내가 수비연습부터 시킨 건 포지션을 정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걸 나중에 하는 편이 더 쉬울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배팅볼은 내가 알아서 쉽게 던져줄 테니까. 일단 한 명씩 쳐봐.”

그리고…

30분 후의 나는, 곧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건… 뭔가 심각하다.

잘 하는 녀석들은 곧잘 한다. 히비키나, 마코토, 타카네, 그리고 오늘 새로 발굴한 치하야 역시 곧잘 공을 외야로 날려 보냈다. 마코토나 타카네 같은 경우에는 아슬아슬한 홈런성 타구도 만들어낼 정도였다. 그리고 저 네 명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하는 녀석들은 어쨌든 공을 잘 쳐내긴 했다.

하지만 공을 쳐내는 것까진 곧잘 하지만 1루로 달리는 도중 넘어지는 녀석이나, 배트를 제대로 들기도 버거워하며 쳐봤자 땅볼을 양산해내는 녀석이나, 스윙 자체를 무서워하는 녀석이 문제였다.
물론 저 세사람은 하루카, 야요이, 유키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저… 프로듀서 씨? 아무래도 스윙을 하려면 가슴이 걸리는 느낌이 들어서…”

네. 이건 제가 생각도 못한 상황입니다. 내가 가슴이 있어봐야 어떻게 교정을 해주든 하지. 어쩌라는 건가. 90의 타카네는 잘도 하는데, 어째서 91의 아즈사 씨는 못하는 건지. 이것이 바로 1의 기적인가.
궁여지책으로 타카네에게 조언을 부탁한 덕분에, 그나마 공을 맞출 수는 있게 되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맞출 수는 있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스윙할 때마다 흔들리는 풍만한 무언가로 인해 내 눈만 호강하게 되었지.

어찌됐든 이렇게 해서 모든 평가를 마쳤다. 이런 방식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서로 간에 시간도 없고 하니. 아까 생각했던 대로 실력 순으로 조를 나누어서 세분화된 연습을 시켜야겠다.

“자. 다들 내가 호명하는 대로 앞에 쭉 서도록 해. 우선 마코토, 히비키, 타카네, 치하야.”

내가 말한 대로 네 사람이 앞으로 나와 일렬로 섰다.

“너희들은 그럭저럭 잘하는 조다.”

“그럭저럭 잘하는 조…”

“다음. 미키, 이오리, 아미, 마미. 너희들은 보통 조.”

“보통…”

“자, 잠깐만요. 프로듀서… 저 네 사람이 보통이라는 건…”

하루카의 불안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즈사 씨, 하루카, 유키호, 야요이. 이 네 명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조다.”

“아아… 너무해…”

“객관적인 평가일 뿐이야.”

자… 그럼 당장 내일부터 한 팀씩 맡아서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좋겠지. 어느 팀부터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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