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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속박당한 만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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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0, 2013 11:01에 작성됨.

 
 "네. 그럼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무실의 시계가 열한시를 가리킬 무렵, 오늘의 마지막 전화를 마친 프로듀서는 크게 기지개를 폈다.

 "후우… 이제 다 한건가?"

 몰려오는 졸음이라도 쫓을 겸 해서 프로듀서는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유키호의 차랑은 비교하기 미안하지만 코토리와는 같은 커피믹스로 타는 커피인데도 이상하게 맛이 다른 기분이었다. 사무원의 내공이 담겨서일까.

 "오토나시 씨도 커피… 어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이 시간까지 남아서 일을 하던 건 프로듀서와 사무원인 코토리 뿐이었다. 그 나머지 한명인 코토리에게도 커피를 권하려던 그였지만 코토리는 새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듯이 굳은 표정으로 전화기 넘어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으음, 설마 추가 잔업이라던가 하는건…"
 "네, 알겠습니다. 그럼…. ……프로듀서 씨?"

 그렇게 긴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금방 통화를 마친 코토리가 프로듀서를 불렀다. 표정은 그대로 심각하게 굳어진 채였고 목소리도 가라앉아 프로듀서도 덩달아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하게 되었다.

 "무, 무슨 일인가요? 아이돌 누군가에게 문제라도 생긴건가요?"
 "아뇨, 아이돌들은 문제 없어요."

 그 말을 듣자 프로듀서는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다행이네요. 오토나시 씨 표정을 보니 누군가한테 문제라도 생겼는지 알고 걱정했거든요."
 "저… 그게…"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현실이라는 것은 종종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었다.

 "프로듀서 씨의… 누님께서… 쓰러지셨다고……"
 "……네?"

 -

 "안 돼. 이건 그 녀석을 배신하는 거라고…"

 소녀는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의 방, 그렇게 크지 않지만 혼자서 쓰기에는 제법 커다란 침대 위에서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프로듀서가 출근할 때부터 굉장히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자 모두들 걱정했고 사무실 전체의 분위기가 어두워졌었다. 코토리만큼은 무언가 알고 있는 듯 했지만 말하지 않을 모양이었고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을 때 프로듀서는 직접 입을 열었다. 누나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졌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웃었던 프로듀서였지만 평소와 다르게 실수 연발에 힘이 쭉 빠진듯한 그의 모습을 보고 걱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그 녀석한테도 좋은 일이잖아?"
 
 확실히 그녀에게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그렇기에 어깨 위에서 속삭이는 악마의 유혹을 들은 것 처럼 동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냐. 그렇게 한들 아무런 의미 없잖아?"

 보통의 상식으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 밖에 방법이 없는걸 이제."



 ㅡ 돈에 속박당한 만남을




 "하아?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거야?"

 밤바람이 불어닥치는 사무실의 옥상은 추웠다. 그렇기에 왠만하면 아무도 오지 않는 걸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은 그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이런건 그만 두자고 말했어."

 프로듀서는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뭐, 뭐야… 설마 내가 싫어졌다던가 하는 거야? 내가 못해준 거라곤 단 하나도 없잖아? 그런데 왜?!"
 "아냐. 그런 이유로 네가 싫어졌다던가 하는 건 아냐."

 그녀의 말에 프로듀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에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옳지 않은 일이라고."

 그런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받아들인 자신도 책망받아야 마땅하다고 프로듀서는 생각하고 있었다.

 "안 그래, 이오리?"

 미나세 이오리,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 그리고 프로듀서의 '그녀', 여자친구인 이오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편으론 그의 말이 뜻하는 바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선택하겠다는 거야?"

 프로듀서가 이오리에게 한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인, 그녀의 하인인, 그녀의 인형인 프로듀서가 그녀를 버리겠다고 하고 있었다.

 "그래. 그녀는… 내 마음을 구원해줬어. 하나뿐인 가족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그녀가 없애주었어."

 프로듀서의 입에서 나온 건 다른 여자의 이름이었다. 언제?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거지?

 "웃기지 마!"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박력있는 말에 프로듀서조차 움찔했다.

 "네 누나를 살린건 바로 나라구! 너도 내가 살린거나 다름 없어!"

 이오리는 손가락으로 프로듀서를 가리키며 말을 쏟아냈다.

 "누나가 쓰러졌다고 주인 잃은 강아지마냥 쳐져있는 너한테 빛을 준게 이 이오리님이란 말이야! 원인도 모르는 병으로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는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미나세 가, 내 힘이 없었다면 네 누나는 이미 죽었을 거란 말이야!"

 적지 않게 흥분했거나 화가 난 것인지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서도 마치 김이라도 내뿜을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나를 배신하겠다는 거야?"

 이오리가 프로듀서에게 내세운 조건은 미나세 가의 힘으로 프로듀서의 누나를 돌보는 대신, 그가 이오리의 남자친구가 된다는 것이었다. 프로듀서는 그 말을 듣고선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그 약속, 계약을 받아들였었다.

 "네 누나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거냐고!"

 악에 받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이오리를 프로듀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격렬한 감정을 뿜어낸 이오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 고여있었다.

 "물론 그 점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몇번을 고마워해도 모자랄 정도야."

 침묵을 깬 프로듀서는 감사를 표한다는 의미로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스스로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그래. 미나세 가에 비하면 아직 발끝도 못 따라갈 정도의 힘이지만, 지난 1년간 나도 열심히 노력했어."

 이오리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1년동안 연인으로 지내면서 프로듀서가 싫은 내색을 내비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몸이 세개라도 되는 듯이 엄청나게 일했다. 이오리가 데이트를 하자고 말하려고 해도 항상 바빠서 타이밍을 못 잡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혼자서 해야할 일이었어. 꼭 혼자서가 아니더라도, 이런 식이라면 누나도 분명 싫어할 게 분명해."

 이미 마음속에서 정해놓은 결론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프로듀서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그는 자신의 힘으로 누나를 돌보기 위해 일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이 현실로 다가오자 이오리에게 더는 의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미 늦었지만 이제서부터라도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내가 짊어져야해."
 "이 바보야! 그런 거에 부담가질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미안해, 이오리. 고마웠어."
 "잠, 기다려!"

 이오리의 외침에도 그는 그저 등을 돌려 묵묵히 걸어나갈 뿐이었다. 이오리를 이용한 것 같은 모양이 되어버려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며 프로듀서는 이오리를 뒤로하고 떠나갔다.

 -

 "……."

 밤의 옥상에 혼자 남겨진 이오리는 한참동안이나 그곳에 조용히 서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욕심 정도였다. 프로듀서와 연인이 되지 않아도 그녀의, 미나세 가의 힘이 필요하다면 도와줬을 것이 당연하다. 다만 조그마한 욕심으로 자기 자신의 바람을 채웠을 뿐이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못해. ……용서 못해."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오리는 견딜 수가 없었다. 위험하지만 그런 계기로 손에 넣은 프로듀서가 떠나가는 걸 견딜 수 없었다. 둘 사이의 어긋난 관계처럼 이오리의 마음도 이미 어긋나버린 것 같았다.

 밤바람 속에서 방금까지의 열기가 모두 식어 오히려 차가워진 머리와 마음은 달려나가며 해결책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그를 묶어둘 수 있다면…
 
 "…여보세요? 신도?"

 핸드폰을 열어서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거니 신도의 대답이 들려왔다.

 "부탁이 있는데 말이야… 억지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 이번만이라니까!"

 항상 있는 일이었지만 초조해서일까 저절로 큰 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래. 잘 알고 있으니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야?"

 어리광에 진 것 처럼 신도가 적당한 긍정의 대답을 해오자 마음이 풀린듯 저절로 자신감있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응. 그러니까 뭐냐면. 그 여자……"

 '……정말입니까?' 하며 신도가 되물었지만 이오리는 확인을 한다거나 다른 말을 더 덧붙이지 않았다.

 "다만, 절대로 죽이진 마.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건 알고 있지?"


 -

 
 프로듀서가 이오리를 거절한 다음날, 이오리는 다시 프로듀서를 불러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프로듀서였지만 이런 일이야말로 확실히 해야겠다고 다짐한 프로듀서는 어제와 같은 사무실의 옥상으로 와달라는 이오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오리?"

 프로듀서가 옥상에 올라 왔을 때 이오리는 난간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왔어?"

 프로듀서의 부름에 뒤를 돌아본 이오리는 평소의 활기차고 밝은 모습이었다.

 "…괜찮은거야?"
 "어차피 네가 거절했어도 내가 도와줬을거야. 당연한 거잖아?"

 이오리의 밝은 모습을 보자 프로듀서는 마음을 조금 놓았다. 어긋난 관계를 다시 올바르게 돌려놓았다고 하지만 이오리를 이용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에 이오리가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을 지 걱정한 프로듀서였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 니히히힛."
 "그래. 나도 잘… 어라?"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에 프로듀서는 말을 멈추었다.

 "받지 그래? 괜찮으니까."
 "그래? 미안, 잠시 실례할게."

 이오리가 괜찮다고 말하자 프로듀서는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화번호인 걸 보니 일에 관련된 전화는 아닌것 같았다.

 "여보세요?"
 [아, 혹시 P씨 되시나요? 여긴 OO 병원인데요.]
 "네, 맞습니다만… 병원에서 왜?"

 뜬금없이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에서 그는 불안함을 느꼈다.

 [그게, 환자분 핸드폰을 보니 P씨께 전화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무, 무슨 일 있나요?"
 [TV에도 많이 나오시는 분이니 아이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죄송합니다만… 팬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습격당하셔서… 아마 스토커라던가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간호사인 듯한 여자가 전해주는 소식에 프로듀서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온 몸에 힘이 빠져서 핸드폰마저 떨어트릴 뻔 했으나 뒷내용을 들어야만 했기에 간신히 들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스토커라니 그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만, 다리를 다치셔서…]
 "……."
 [아마 아이돌을 하는 건 이제 무리가 아닐지…. 저희로서는 앞으로 걸을 수 있다는 보장도 힘든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야말로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빛나고 있던 그녀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그녀가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에 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그녀가 습격당했다고? 지나가면서 알아보는 팬들에게도 일일히 인사를 하던 그녀에게 스토커 같은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 때, 프로듀서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있을 리도 없는 스토커가 습격을 해서 다리를 공격했다고?
 나와 그녀와의 관계가 알려진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아직 그 사실을 아는건 이오리 한 사람밖에……

 "그래. 눈치챈 모양이야?"

 이오리는 웃으면서 프로듀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같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달랐다. 아니, 같은 웃음이었지만 아까 전의 프로듀서는 눈치채지 못했다.

 "어때, 아직도 혼자서 해낼 수 있겠어?"
 "…이오리…… 너……"

 이오리는 니히힛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 번의 일은 바라던 대로 그만두는 걸로 했어. 그런데 이번엔 어떻게 할 거야? 이 이오리님이 한번 더 도와줄 수도 있어?"
 "그런 걸…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아?"
 "뭐, 그럼 할 수 없는 일이네. 미나세 가의 연줄이 있는 안전한 병원도 아니고, 스토커 씨가 또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는 거고."
 "뭣……"

 이건 이오리에게서의 끔찍한 경고였다. 이오리의 말 그대로 누나도, 그녀도 이오리가 살렸다. 그렇다는건 당연히 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는 진실이라는 이름의 흉기였다.

 "그럼 대답은 정해져 있는 거겠지?"

 주저앉은 프로듀서와 눈높이를 맞춰 이오리는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가질거야. 당신은 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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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이오리네요. 저 자신도 안 쓸 줄 알았던 네번쨉니다. 그렇다는 건 다섯번째, 그리고 그 이후로도 쓸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오리는 현실적으로.. 라는 면에서 가장 무섭죠. 역시 돈이 체고시다 라는 겁니다.

모 리듬 게임에는 金縛りの逢を, 그러니까 가위눌린 만남을 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게 번역이 잘못 되어 '돈에 속박당한 만남을' 이라는 걸로 알려졌습니다만... 뭐, 오히려 그쪽을 소재로 써 본 이야기가 되겠네요.
개인적으로 노래 제목을 글 제목으로 쓴다던가, 노래를 소재로 글을 쓰는걸 좋아합니다만, 아이마스는 그런 면에서 노래라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좋다고 해야할까요.

미키 편에서는 적당히 '하루카는 희생된 거다!'같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제법 위험하게 되어버려서 특정 아이돌을 한명을 딱 정해서 쓰진 않았습니다. 정말로 위험해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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