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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린] 아네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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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9, 2017 00:06에 작성됨.

너는 언제나 그랬다.

너는 항상 스스로를 제일 먼저 자책했다. 항상 모든 것을 너의 탓으로 돌리고, 모든 것을 너가 책임졌다. 처음에는 내가 너보다 연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는 단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너는 그저 누군가가 희생 할 바엔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기희생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던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나는 언제나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

 

 

시작은 작은 의혹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추측들이 난무했을 뿐인 글이 끝에는 진실로 가득찬 하나의 기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보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했기에 작은 추측글을 증명하기 위해 그 위에 살을 조금씩 덧붙였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겐 그저 자극이 필요했을 뿐이다.

 

모래알 같았던 하나의 글에 자그마한 모래알들이 점점 붙고 붙어서 결국엔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시마무라 우즈키와 시부야 린의 열애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가. 언제 파파라치가 붙었던 것인지 기사에는 너와 나의 애정표현이 찍힌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붙어있었다. 덕분에 그저 친한 친구사이라며 부정할 수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세간에서 ‘동성애’라는 것은 정신병 취급을 받고 있었으니까.

 

상황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자 소속사측에서는 모든 것을 책임질 한 명의 희생양을 내놓기로 결정했던 모양이다. 소속사의 최후의 방법은 성공적으로 먹혀들어 너를 더러운 가해자로, 나를 가련한 피해자로 만들어 놓았다. 희생양으로 네가 선택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평범한 여자아이였으니까. 바로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수없이도 많은 흔한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그 제안을 바로 수긍했었다며 프로듀서가 나에게 그리 전했다. 그렇게 아이돌 시마무라 우즈키는 최악의 형태로 모두에게 비난을 받으며 사라졌다.

 

 

*

 

 

너가 사라진 그날, 나도 사라졌다. 내가 아이돌이 된 것은 너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니 그 존재가 사라진 지금, 내가 아이돌을 계속해야 될 이유따윈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들의 열애설을 잊고 또 다시 새로운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았다. 겨우 2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너와 나는 잊혀졌다. 역겨웠다. 짧은 순간의 자극을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너무나도 역겨웠다. 어째서 그들은 모래알을 만든 것일까. 어째서 너와 나였을까. 어째서 너가 지목된 것일까. 어째서 내가 아니었을까. 어째서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어째서 너가 여자로 태어난 것일까.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나는 너를 지켜주지 못한 것일까. 어째서 너는 사랑했을까. 차라리 그날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후회들로 익사해 버릴 것만 같았다. 자기혐오가 온몸을 감쌌다. 모든 것이 역겨웠다. 너 이외의 손길이 내가 닿는 것이. 너가 없는 거리를 걷는 것이. 너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이 세상이. 내곁에 너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시계는 벌써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침대 위에 앉았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너와 이렇게 앉아 대화하곤 했는데. 이젠 없는 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회상했더니 헛웃음이 나왔다. 너가 사라지고 2년. 눈물은 단 한번도 나지 않았다. 운다는 것은 내곁에 너가 없다는 진실을 인정해 버리는 것과도 같았으니까.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내가 일어난 것을 본 것인지 누워있던 하나코가 내게로 다가왔다. 걱정해 주는 것일까. 주말마다 하나코를 데리고 너와 함께 산책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또다시 헛웃음이 나왔다. 오랫동안 누워있다 갑자기 일어난 것이 화근이었는지 현기증이 일었다. 속이 뒤집히는 듯한 구토감에 다시 침대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몸뚱아리. 사라진 것 같았던 자기혐오가 다시 나타났다. 그러다 오랫동안 시선 속에 치워놓고 있었던 내 책상이 눈에 꽂혔다. 한 송이의 아네모네가 텅 빈 책상위에 유일하게 남아있었다.

 

너에게 받았을 때는 아름다웠던 아네모네가 썩어문드러져있었다.

 

그렇구나. 너는 더이상 내곁에 없는 것이구나.

 

너를 잃어버린 상실감과 괴로움으로 가득찬 마음이 책상 위의 아네모네처럼 변해버렸다.

터져버린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봄의 햇살을 잃어버린 꽃은, 그렇게 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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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이네요. 글은 써 본 적이 없어 많이 미숙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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