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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te X iM@S 』 Faker VS Faker 「 Unlimited Blade Wor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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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8, 2015 16:49에 작성됨.

전편들 : 링크

 

 

──이곳의 위치를 알아내는데 3일이 걸렸다.

시간은 꽤 오래 걸렸지만, 정보를 캐내는 ' 작업 '은 어렵지 않았다.

목표물을 사로잡고, 약간의 고문과 함께 심문해 정보를 얻어낸다.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익숙한 작업이었다.

웃기는군, 범죄가 익숙한 ' 영웅 '인가.

 

도착한 건물은 버려진 큰 건물을 적당히 개조한 것.

어떻게든 외형은 평범한 호텔로 보이고,

지나가다 발견하더라도 의심을 살 만한 외형은 아니다.

──정말이지, 악질이구만.

 

여유롭게 자기비하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최대한 소란을 피우지 않고 ' 지하 '까지 들어가야 한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그녀의 안전이다. 쓸데없는 소란을 피우다간 인질을 만드는 꼴 밖에는 되지 않는다.

정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입한다고 해도 건물 안에 CCTV가 없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 양동 작전 '

별 다른 명분도 없이 후지무라 구미의 사람들이 다짜고짜 정문으로 돌격하는 사이,

나는 다른 루트로 잠입한다는 건데.

제정신인지 묻고 싶지만, 그 외에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다.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돌격을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경비들이 그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역시나, 건물의 경비들 중에선 눈에 익은 얼굴들도 있었다.

악연이라면 악연이지만, 지금 당장은 마주칠 일이 없다.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옆쪽으로 돌아 벽을 타고 열린 창문을 찾는다.

진입한 곳은 4층. 심문결과에 따르면 그녀가 갇혀있는 ' 굴 '은 지하.

경비가 전부 정문으로 몰려갔을리는 없으니 어떻게든 충돌은 피할 수 없겠지.

 

그건 그렇고 외견상으론 흠잡을 곳 없는 평범한 숙박시설일 뿐이다.

일반 손님이 아예 없다는 건 그렇다 쳐도, 이런 곳이 매춘에만 사용되다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외견상으로는 평범한 숙박시설이니만큼, 길이 복잡하다거나 얽혀있지는 않다.

지하로 가는 길도 들어 뒀으니, 이 이후로는 별 다른 어려움 없이 돌파할 수 있으리라.

 

 

 

 

 

 

 

 

 

───지옥을 봤다.

아니, 지옥을 보고있다.

호시이 미키는 갇힌 3일동안, 확실히 ' 지옥을 봤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노리개로 유린당할 뿐인 여자들, 자신들을 가축취급하는 경비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격리된 장소.

이쯤되면 용캐도 미치지 않았다고 놀라도 될 수준이겠지.

 

음식이 있다고 해도 먹는 족족 토해냈다.

밤새 울리는 비명과 교성에 의해 제대로 잠도 들지 못했다.

쿠로이 사장의 말이 있었으니 아무도 건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 3일동안 그녀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녀를 폐인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공포에 떨며 얼마나 눈물을 쏟아냈는지, 이젠 울고싶어도 눈물이 도저히 나오지를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던 그녀는 공허한 눈으로 헛웃음을 토해냈다.

어쩌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을 당하는 걸까?

아무리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답이 있을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잘못따위는 없었으니까.

──잘못이 있었다고 한다면, 765프로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에미야 시로와 관계되었다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이 호시이 미키, 그녀의 잘못이냐 묻는다면──

 

「 ....? 」

 

경비들이 두 명만 남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궁금했지만, 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락된 유일한 낙은 그저 방 한 구석에 틀어박혀,

행복했던 일상을 떠올리며 꿈에 잠기는 것 뿐.

 

다시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 아닌 한 명.

누군가가 내려오자마자 놀란 경비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 잠깐, 당신 누ㄱ..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둔탁한 타격음이 두 번 들렸고, 경비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뒤이어 들려온 것은,

 

「 ...정말이지, 심하군, 이건. 」

 

호시이 미키가 고개를 들게 만든 것은, 그녀에겐 더없이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였다.

 

 

 

 

 

 

 

 

경비를 때려눕히고 복도의 양 옆을 살짝 둘러본다.

 

「 ...정말이지, 심하군, 이건. 」

 

성인은 물론, 중 · 고등학생에다,

심지어는 아무리 봐도 초등학생 이상으론 안보이는 아이까지 갇혀 있었다.

쿠로이 사장은 이 많은 사람들을 다른 이들의 노리개로 삼고,

그 일로 돈을 벌어들이고 연줄을 만들었다..는 건가.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 될 것이다.

단검 한 자루를 투영해 철창의 자물쇠를 차례로 끊어나간다.

영문을 모른 채 공허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면,

어째서 더 빨리 알아채고, 더 빨리 오지 못했던 걸까 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일어난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싶지만, 어떻게든 모두 구할 수 있는 것이 행운이다.

아마 그녀들과 연관되지 않았다면 이곳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겠지.

 

오른쪽 맨 마지막 방을 앞에 두고, 살짝 멈춰섰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미키에게 외상은 없는 것 같다.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무사하다.

빠르게 잠금을 잘라내고 철창 문을 열었다.

 

「 ...시로.. 씨? 」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을 보는 것 처럼, 미키는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입에 담았다.

 

「 아아, 구하러 왔다고, 미키. 」

 

마치 시간이 멈춰버리기라도 한 것 같이,

미키는 그 말을 듣고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하다,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그 미키가 이렇게까지 초췌해질 수 있는 것인가.

살짝 발을 옮겨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움찔, 하고 미키의 몸이 살짝 떨렸다.

무서워하고 있는 건가. 아니, 이 반응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 정말로, 시로 씨, 인 거지? 」

「 그렇다고 했잖나. 일어날 수 있겠나? 」

 

허리를 숙이고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이 지옥에서 꺼내주고 싶다.

그녀에겐 이런 절망이 가득한 곳 보다는 모두와 함께 웃을 수 있는 곳이 어울린다.

───애초에, 절망에 빠진 얼굴이 어울리는 여자아이따위 없겠지만.

 

「 ...시로 씨! 위험해! 」

 

미키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삼단봉이 나에게 내려쳐지려 하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몸을 돌려 팔로 날아오는 둔기를 막아낸다.

 

「 크─── 」

 

팔이 부러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고통 따위를 신경쓸 시간은 없다.

흘깃 본 옆에는 벌써 경비 여러명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벌써 후지무라 구미의 사람들이 후퇴한 건가.

처음부터 이 일은 내가 해결해야 했다, 당연한 일이겠지.

 

바로 공격해온 상대의 미간에 주먹을 꽂아넣는다.

거기서 끝. 미리 강화해둔 주먹은 안면강타 한 번이면 사람을 기절시키기엔 충분하다.

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뒤쪽으로 쓰러진다.

 

「 미안하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군. 」

 

경비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저 정도 수를 가지고 나 한 사람한테 겁을 먹는 건가.

뭐, 어쩔 수 없다. 저 녀석들 중에는 나한테 심한 부상을 입은 녀석도 있고.

 

떨어진 삼단봉을 주워 경비들 쪽으로 몸을 돌린다.

강철제 삼단봉이다. 이쯤되면 방금 팔이 부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이거라면 저 녀석들이 겁을 먹는 것도 당연한가.

저들의 눈으로 본다면 나는 괴물로 보이겠지.

 

「 뭐하는 거냐? 이대로 걸어가면 길이라도 비켜줄 생각인가? 」

 

그 말에, 바로 경비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이 복도는 지하철처럼 좁은 장소는 아니다.

포위당하기는 딱 좋은 넓이. 어느정도 부상은 각오해야겠지.

달려드는 한 명의 삼단봉을 쳐낸 다음 안으로 파고들어 명치에 주먹을 꽂는다.

그대로 호흡이 멈춰 기절한 상대를 두고 달려드는 삼단봉을 피한다.

 

「 이 새끼가..! 」

 

욕지거리를 내뱉는 상대의 머리를 잡아 벽에 박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사라진 경비를 땅바닥에 대충 던져둔다.

남은 인수, 6명. 오면서 제압했던 2명을 더하면 총 10명인가...

이 정도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10명밖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뭐, 나로써는 감사할 일이지만 말이다.

 

「 흠! 」

 

삼단봉으로 한 명의 머리를 내리쳐 한 명을 기절시킨다.

그 뒤, 양쪽에서 두 명이 한 번에 이쪽을 공격해 들어왔다.

머리를 노리는 삼단봉을 삼단봉으로 막아내고, 한 쪽 팔로 옆구리를 노리는 삼단봉을 막았다.

 

「 크── 」

 

무거운 아픔이 뼈에 달린다. 아마도 오른쪽 팔의 뼈에 금이 간 것 같다.

그대로 돌격해 옆구리를 공격한 상대에게 몸통박치기를 먹여 철창으로 밀친다.

쓰러진 적을 두고 접근하는 상대의 몸을 발로 차 넘어뜨린 뒤 머리를 쳐 기절시킨다.

 

「 ─── 」

 

무언가, 날카로운 물건이 날아온다.

옆으로 몸을 돌려 빠르게 피했다. 벽으로 나이프가 돌진했다가 튕겨져 떨어진다.

 

「 뒤져...! 」

 

나이프를 쥐고 한 명이 빠르게 달려온다.

삼단봉을 손에서 놓고 내지르는 팔을 잡아 꺾어버린다.

 

「 아아악! 」

「 슬슬 도망쳐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

 

한 숨을 쉬며 목 뒤를 쳐 기절시킨다.

이렇게까지 싸웠는데도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꽤나 신기하다.

 

──그 때, 총성이 울렸다.

 

「 윽...! 」

 

날아온 탄환이 왼쪽 어깨에 박혔다. ──방심했다,

권총 정도는 보유하고 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상대였다.

그래도, 머리에 맞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빠르게 떨어져 있는 나이프를 주워 권총을 가진 적에게 던졌다.

맞지 않으려고 경비가 몸을 움직임을 틈을 타 그대로 돌진해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이빨 하나가 튀어나가며 그 녀석은 리타이어.

남은 한 명은 아까부터 뒷걸음질 치더니 결국 도망쳤다.

 

「 히에에엑!! 」

 

위로 올라간 한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아직 남아있던 건가.

숨을 고르고 있으니, 라이가 할아버지를 필두로 후지무라 구미의 사람들이 내려왔다.

 

「 시로 군, 괜찮나? 」

「 예, 어떻게든 무사합니다. 일단 저보다는 그녀들을.. 」

「 피해자들은 내가 책임지고 집으로 돌려보내지. 」

「 ...감사합니다. 」

「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지.

  얘들아, 다들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

 

우락부락한 남자들 사이에서 말끔한 사람들이 튀어나와 각 방에서 여자들을 데리고 나왔다.

후지무라 구미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지.

야쿠자라고는 해도, 후지무라 할아버지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그라면 분명히 그녀들의 재기를 전력으로 지원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 보다는 낫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그녀들을 빼내는 것이 고작이다.

 

「 자네도 어서... 」

「 모두를 데리고 먼저 가십시오. 전 그녀와 이야기할 것이 있습니다.

  전 기다리실 필요 없습니다. 」

 

라이가 할아버지는 한 숨을 내쉬곤,

 

「 알겠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게나. 」

「 알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람들이 하나 둘 지하를 빠져나갔다.

덤으로, 후지무라 구미의 사람들이 기절한 경비들까지 끌고 나갔다.

쿠로이 사장의 손이 공권력에 까지 뻗쳐 있다고 해도,

이 시설의 존재가 까발려진다면 국민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겠지.

통쾌한 전세 역전, 이라는 거다.

어떻게 발뺌하든 이렇게 커다란 증거가 있다면 그걸로 게임 오버.

 

「 시로 씨... 」

 

미키는 걷지 못하는 건 아닌지, 제 발로 걸어와서는 나를 찾았다.

──안심했다.

안색이 나쁠 뿐, 미키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멀쩡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광경을 목격했는지 알 수 없다.

육체적으론 이상이 없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해는 당연히 크겠지.

 

「 ...뭐야, 미키. 썡쌩하잖아.

  올 필요 없었던 것 아냐? 」

 

살짝 냉소하자, 미키는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볼을 살짝 부풀렸다.

 

「 무우, 오랜만에 만난 연인에게 건넬 말로는 심한 거야. 」

「 언제부터 연인이었다는 거냐.

  뭐, 그건 됐고. 벌써 회복됬나, 빠르군. 」

「 응, 시로 씨 얼굴을 보니까 어쩐지 안심돼서... 」

 

천천히 미키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아니, 그런데 말이야. 이런 상황에 감동적인 재회 장면도 못 찍는다는 건가.

너무하구만, 정말로 인정사정 없는 놈이다.

하다못해 안부인사정도 할 시간은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 꽉 잡아, 미키 」

「 에? 」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뻑이는 미키를 양 손으로 안아 올리고,

바로 계단을 향해 뛰었다.

 

「 잠, 무슨── 」

 

뒤쪽에서 파괴음이 들려온다.

' 그 녀석 '이 설치해둔 트랩,

두 명만 남았을 때 일제히 작동해 광탄을 쏟아내는 조건부 마술의 발동.

녀석은 내 행동패턴을 상당히 잘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 시로 씨, 방금 그건... 」

「 나중에 따로 설명해줄게. 지금은 그냥 꽉 잡고 있어...! 」

 

밖으로 빠져 나오니, 주차되어있던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작정하고 덤벼들겠다는 뜻인가.

거절할 이유는 없다. 한 번에 모두 정리할 수 있다면 오히려 감사할 판이다.

 

「 ...시로 씨, 내려줘. 」

「 아니, 적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 」

「 빨리, 빨리 내려줘! 」

 

소리지르는 미키의 낌새가 이상하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미키를 보았지만──

 

「 컥─── 」

 

복부에 격통이 달린다. 내려다 본 곳에는,

미키가 나이프를 들고 나를 찌르고 있었다.

 

「 ..아, 아....? 싫...어.... 」

 

뽑힌 칼날에는 붉은 피가 선명하게 맺혀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나를 찔렀다는 것이 충격이었는지,

미키는 연신 망가진 인형처럼 ' 싫어 '만 계속 반복하고 있다.

──칼을 집는 순간도 보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미키를 떼어놓고 뒤로 한 발 뛰어 물러났다.

이제야 선명하게 보인다, 미키를 조종하는 ' 실 '의 존재가.

 

「 서프라이─즈!! 」

 

장발의 남성이 박수를 치며 건물 옆쪽에서 나타났다.

──아르센. 언제부터 그가 이 일에 관련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야 원, 보기좋게 한 방 먹었다는 건가.

원체 몸이 단단해서인지 깊이 찔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무시할 정도로 얕은 상처는 아니다.

 

「 그래, 이거야. 이걸 원했다고. 이 피! 」

「 ...직접 행차하실줄은 몰랐는데, 괴도. 」

「 응? 아아, 그래. 이제 직접 나와도 문제 없을테니까. 」

 

미키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른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인다는 것은 무섭겠지.

나이프를 미키에게서 받아든 아르센은, 맺혀있는 피를 살짝 핥았다.

──전신에 소름이 쫙 하고 돋았다.

 

「 그래... 이거야... 실로 멋진 힘이다.. 」

「 ..과연, 네가 상대의 마술을 훔치는 조건은 ' 흡혈. '

  정확히는 상대의 마력을 약간이라도 받는 건가. 」

「 호오, 감이 좋군... 그래, 실로 멋진 힘이지 않나?

  세상엔 아직 많은 종류의 마술이 있다. 그 모든 것을 한데 모으면,

  ' 근원 '으로 통하는 길이 열릴지도 모르지. 」

「 ...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다른 마술사와 다르지 않다는 거냐. 」

 

───인질을 잡고 있어서인지, 적에게는 아무런 방비도 없다.

거기다, 미키가 저쪽 손에 있다면 나도 안심하고 싸울 수 없다.

그렇다면, 방심하고 있는 이 틈을 타서──

 

「 ...! 」

 

회전하며 날아간 간장이 적과 미키의 사이를 가른다.

기습적인 투척에 적이 움찔했지만,

이 공격은 그를 베기 위한 것이 아니다.

 

「 ...흐음? 나를 노리지 않는 건가? 」

 

호를 그리며 날아간 간장은, 그와 미키를 연결한 ' 실 '을 끊고 돌아왔다.

 

「 뛰어라, 미키! 」

 

그 말에 대답하듯, 신체의 자유를 되찾은 미키는 바로 뛰어와 내 뒤로 숨었다.

그가 미키를 쫓을 때를 대비해 제 2격을 준비했으나,

어째선지, 그는 미키를 잡지도, 공격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가치가 없다는 건가.

 

「 ...글쎄, 나한테는 그녀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말이지. 」

「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까지 남 걱정이라...

  ...흐흐, 그래. 실로 재미있어! 그래야지 내가 선택한 ' 적 '이지. 」

 

현재 자신의 전력을 확인한다.

마력량은 거의 꽉 차있는 상태.

투영에도, 고유결계 전개에도 특별한 문제는 없다.

대신, 팔에는 골절, 어깨에는 박힌 탄환, 복부에는 찔린 상처.

몸 쪽은 빈말로라도 멀쩡하다곤 할 수 없는 상태.

하지만 그런 것은 뒷전이다. 검을 휘두를 힘이 남아있다면,

두 발로 설 힘이 남아있다면 아직 싸울 수 있다. 

 

「 너덜너덜한 그 몸으로도 도망치려 하지 않는 건가. 」

 

설계도는 이미 그려져 있다.

나의 반신과도 같은 검이다. 1초내로 만들어낼 수 없다면 면목이 없지.

음양의 부부검을 양 손에 들고 몸으로 미키의 방패가 되듯 앞으로 한 걸음 나간다.

 

「 한 가지만 묻지. 」

「 음...? 」

「 쿠로이 타카오는, 네놈이 조종한 거냐? 」

 

그 질문에 아르센은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대답했다.

 

「 조종까지는 아니지, 나는 살짝 등을 떠밀었을 뿐이다. 」

「 무슨 의미냐. 」

「 조금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게 했다는 거지.

  상당히 흥미로웠단 말이야, 그 사상은.

  본래 그 녀석은 이런 수단을 사용하는 놈은 아니었지.

  뼛속까지 악인인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말이야...

  그래서, 살짝 등을 떠밀어주니 확실히 악인답게 변한 거지.

  뭐어, 눈을 뜨게 해줬다...고 할까? 흐흐흐. 」

「 어째서, 그런 일을 한 거지? 」

「 앙? 재미있으니까, 가 당연하잖나. 」

 

말문이 막힌다.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많은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넣고, 수많은 자들을 상처입힌 이유가,

나에 대한 원한도, 다른 이유도 아닌 단지 ' 재미있으니까 '라고?

 

「 인간은 언제나 반복하지. 」

 

그 말을 입에 담는 녀석의 모습에, 붉은 궁병의 모습이 겹쳐진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되살아난다.

지금까지 멀기만 했던 그 잔향이,

나아간 길에는 절망 뿐이라는 그 현실이 코앞으로 들이닥친 것 같다.

 

『 어떤 시대라도 강자가 약자에게 모두 빼앗는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번영이지. 』

 

그 날, 궁병이 했던 말과 눈앞의 적이 하는 말은 꼭 닮아있다.

수 많은 사람을 죽여왔다는 것도, 근본부터 가짜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혹시, 쌍둥이가 아닐까 할 정도로 그들은.

아니, 우리는 닮아 있었다.

 

「 그것이, 참을 수 없이 재미있다는 거다, 나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약자를 이용하는 강자의 모습도.

  실낱같은 희망만을 믿고 살아가며 더 큰 절망에 빠지는 약자들의 모습도!!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더군!! 」

『 ──그래, 질릴듯이 봐왔지.

  의미 없는 살육도, 의미 없는 평등도, 의미 없는 행복도.....!

  내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어...

  나는 그런 걸 위해서, 수호자 따위가 된 게 아냐!!! 』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누군가를 구하려고 했으나 상처입히기만 할 뿐, 아무도 구할 수 없었던 남자의 자조.

사람의 파멸을 즐기고, 누군가가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쾌락을 얻는 외도의 광소.

그 둘은 정 반대이기에, 이렇게나 닮아 보였다.

그렇기에, 훨씬 더 화가 치밀었다.

모두를 구하기 위해 절망하면서도 우직하게 달려왔던 그 영웅이,

눈 앞에 있는 괴물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다.

 

──녀석의 말이 맞다면, 그녀가 고통받았던 것도.

치하야의 트라우마 되살아났던 것도.

765프로의 모두가 쿠로이 사장의 술수에 고생한 것도.

모두, 나와 이 자의 악연 때문이라는 것인가.

 

「 ─────안심했다. 」

 

쓸데없는 살생은 피하는 주의다.

죽여도 되지 않는 사람을 죽였다간 뒷맛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나의 이상이 그런 것은 견딜 수 없으니까.

──허나, 이 녀석은 다르다.

 

「 뭐에 말이지..? 」

「 네놈을 죽여버려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

 

망설임은 사라졌다.

이 녀석이라면 여기서 꼬챙이로 꿰어버려도 죄책감따윈 남지 않겠지.

그래, 나는 죽어도 이 녀석을 살려둘 수 없다.

괴물은 인간을 먹고, 영웅은 괴물을 죽인다.

그래, 이 ' 괴물 '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그토록 부정했던 ' 영웅 에미야 '의 호칭을, 이번만큼은 자칭하도록 하자──

 

쌍검을 고쳐쥐고 그대로 달려들어 내려친다.

멀쩡하지 않을 터인 몸은 평소보다 훨씬 잘 움직여준다.

쌍검의 일격은, 그대로 질풍이 되어 적을 양단한다.

 

「 하...! 」

 

아르센의 손에서 나의 것과 같은 쌍검이 모습을 드러낸다.

──분명히, 방금 나의 마술을 모방해낸 것이리라.

그의 입가에서 ' 어떠냐 '하는 일그러진 미소가 떠올랐다.

 

「 뭣...! 」

 

하지만, 깨어졌다. 급조한 녀석의 쌍검은 나의 쌍검에 부딪혀 깨졌다.

마치 쇳덩이를 유리막대로 막으려 한 것처럼,

나의 것과 완벽히 같아 보이는 쌍검은 그대로 흩어져간다.

그 일에 상당히 놀랐는지, 아르센은 한 마디 영창을 중얼거리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물러났다.

 

「 무르다. 네놈의 검엔 내용물이 비어있다.

  껍데기 뿐인 네놈의 투영따위, 유리세공에 지나지 않아. 」

「 키, 헛소리를...! 」

 

그의 주위에서 불길하게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르센의 손 끝에서 광탄 여러 발이 뿜어져 나왔다.

──마력을 얼마나 쌓아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식하게 마력을 뿜어내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 얼간이가...! 」

 

앞으로 달려나가며 이쪽을 향해 돌진해오는 탄환 5발을 검으로 쳐낸다.

간장과 막야에는 기본적으로 대마술 능력이 붙어있다.

기량만 된다면, 신대의 마녀가 내뿜는 공격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겠지.

 

그렇기에, 이 정도의 공격을 쳐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 키이익...! 」

 

이번엔 위쪽에서의 전격, 달리던 발을 멈추고 옆으로 뛰어 공격의 목표지점에서 벗어난다.

공중에 떠있는 나에게 정면으로 광탄이, 측면으로는 불길이 쇄도한다.

 

「 칫... 」

 

대마력이 있다고는 해도 그건 검 한정이다.

간장과 막야를 쥐고있다고 해도 몸통에 정통으로 저런 위력을 맞는다면?

그 떄는 손을 제외한 부위가 그대로 구워질 뿐이다.

허나, 투영한 검의 사용법은 ' 쥐고 휘두르는 것 '뿐이 아니다.

 

   Trace on
「 투영 개시. 」

 

방어해낼 수 없는 곳에서 불길이 덮쳐온다면, 검을 사출해 요격한다.

전방으로 공격 해오는 광탄은 쌍검을 휘둘러 전부 튕겨낸다.

──난처하다. 같은 무구를 부딪혀 처참히 깨진 것을 본 녀석은 접근전을 허용하진 않을테지.

녀석의 공격수단은 다양하다. 쉽게 방어가 뚫리진 않겠지만, 이대로 가면 주도권을 잡는 것은 녀석이다.

 

「 ...과연, 그런 사용법도 있었는가... 고맙군, 친절하게 알려줘서. 」

 

적의 등 뒤에서 하나 둘 투영한 검이 모습을 드러낸다.

검의 수는 총 7정.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 이것도 막아보시지! 」

 

역시나, 녀석은 투영한 검을 일제히 나를 향해 사출했다.

마치 그 날의 재현같다. 서로를 향해 쏘아지는 검의 비.

부딪혀 깨지는 보구들, 절대로 서로 인정할 수 없는 숙적.

날아오는 검의 비를 맞아 정면으로 대치한다.

손에 들린 쌍검이 검무를 추며, 몸을 찢으려 하는 검들을 쳐낸다.

 

「 칫... 」

 

7자루의 투척을 막아낸 다음은, 12자루의 검이 이미 장전되어 대기하고 있었다.

D랭크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약한 마력을 품고있을 뿐인 탄환들.

허나, 평범한 바늘이라도 수천개가 한 번에 꽂히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법.

녀석은 질보다는 양으로 떼우는 전법을 취하겠지.

같은 검을 투영해 사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는 있지만, 마력의 양이 문제다.

저 녀석에게 얼마만큼의 마력이 쌓여있는지 알 수 없다.

수심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물에 바로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

단지,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쪽의 특기인 장기전으로 돌입하면 확실히 불리해진다...!

 

「 자아,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까... 20발? 30발? 점점 수는 많아진다고─? 」

 

속이 메스꺼워지는 미소와 함께, 아르센은 나를 시험하듯이 말했다.

이런 넓은 곳에서는 당연하게도 수많은 공격에 포위당할 테지.

건물로 들어오는 큰 길을 제외하면, 삼면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면, 포위당할 걱정이 없는 숲속이라면, 우위를 점할 가능성도 있을 터.

 

미키가 있는 곳에 접근하지 않도록 하며 숲으로 달렸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는 이쪽이 길다.

강화까지 합친다면, 다리의 속도도 이쪽이 빠르다.

사각에서 저격을 꽂아넣을 수 있는 장소만 확보된다면 이쪽의 승리다...!

 

──허나, 그것은 장애물이 없을 때의 이야기.

 

「 이런..! 」

 

녀석이 쫓아오는 등 뒤부터가 아닌, 정면으로부터 마탄이 날아온다.

쌍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마력 덩어리를 위로 쳐낸다.

──위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권총이든 소총이든 머리에 맞는다면 즉사.

한 발 맞는 것 만으로도 위험한 이 몸의 대마력으로는, 위력따위 상관없었다.

 

「 오히려 덫에 걸려준 셈인가...! 」

 

뒤에서부터 날아오는 검을 빠르게 몸을 날려 피한다.

이제와서 역주행은 자살행위다.

그렇다고 덫이 널려있는 숲속을 향해 돌진하는 것도 생환을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 살아나갈 확률이 1퍼센트라도 있다면──

 

다리를 채찍질해 나무 사이를 빠져나간다.

사방으로 날아오는 광탄을 투영한 검을 방패삼아 튕겨낸다.

──이대로 직진이라면, 출구는 어디가 될지 알 수 없다.

직접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행동이 될 수도,

아니면 두 명의 싸움에 관계없는 사람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애초에, 이 숲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뒤에 느껴지는 바람소리.

앞으로 크게 뛰어, 스위치를 전환한다.

들려있던 쌍검은, 활과 화살로 변해 이미 발사할 준비를 마친 상태.

적이 쏘아낸 검, 그 수는 일곱.

자칭하지는 않겠지만, ' 신궁 '으로까지 불린 사내다.

아무리 빠르더라도 직선으로 돌격해오는 검을 쏘아 떨어뜨리긴 어렵지 않다.

 

「 과연 유리세공인가, 화살과 부딪힌 것 만으로 깨지다니. 」

 

비웃듯이 내뱉고는, 왼쪽으로 크게 뛰었다.

이 숲에서 최단루트로 이탈한다.

다시 한 번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다...!

 

 

 

 

 

함정의 무리를 뚫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완연한 평지.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이곳은, 이제는 투기장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어째서 이 상태로 한 방 먹일 방법을 찾았을까.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불리하다, 그렇다면 단기전으로 끝내면 되는 일이다.

 

「 아직 깔아놓은 덫은 많이 남았는데, 아쉽군. 」

 

그렇게까지 산더미로 쌓아놓고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건가.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녀석인지도 모르겠다.

 

「 한 가지 물어보자. 」

 

싸움을 시작했을 때부터 피어오른 작은 의문점 하나.

 

「 어째서 하필 지금 나타난 거지? 」

 

광탄을 쳐내기 위해 다시 투영한 쌍검을 놓지 않고 물었다.

──그래, 굳이 지금일 필요는 없을 터.

 

「 단순한 계획 변경이다. 」

 

망설이지 않고, 남자는 물음에 답한다.

 

「 본래는 쿠로이 녀석이 준비한 계획을 전부 성공하고,

  네놈이 지키려던 것을 모두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그런 에미야 시로의 모습을 음미하며 천천히 죽일 계획이었는데... 」

「 과연, 내가 생각보다 능숙하게 대처했다는 거냐. 」

「 그 말대로.

  너였다면 조금 더 정직한 수단만 쓴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러운 수단을 사용하는 데 거리낌 없더군. 」

「 흥, 이제와서 프라이드라던가 지켜봤자니까. 」

「 핫... 과연, 영웅이란 건 외부의 평가 뿐이었나. 」

 

──대화가 끊겼다. 더 이상 의문점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단 하나.

눈앞에 있는 남자를 전력으로 죽여버리는 것 뿐.

 

떨어진 쌍검이 바닥에 박힌다.

 

「 포기한 건가? 」

「 설마, 나는 본래 마술사다. 어설픈 검사 흉내는 관두기로 한 거지. 」

「 호오, 검을 만드는 것 밖에는 못하는 네가 마술전을? 」

 

왼손을 앞으로 천천히 내민다.

내 손에는 이미 아무것도 쥐어있지 않다.

 

「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아낄 필요도 없었으니까. 」

「 흐흥... 뭐, 그렇다면 네 마술, 한 번 시험해보도록 할까. 」

 

당연하지만, 나에게 자연간섭계 공격마술을 사용할 재주는 없다.

애초에, 나의 회로는 단 하나의 마술에 특화된 돌연변이다.

 

허공에 수십자루, 검이 나타난다.

그 수는 눈으로 헤아린 수만 해도 42.

거기까지 세고는 눈을 감았다.

수가 얼마나 많든, 결과는 똑같다.

의미없는 짓을 할 바에는, 조금이라도 더욱 집중해라.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주문을 입에 담았다.

 

               몸은 검으로 되어있다.
「 ────I am the bone of my sword. 」

 

손 끝에서 나타나는 5장의 꽃잎. 

이것이야말로 그리스의 영웅 아이아스의 무구, 헥토르의 투창인 두린다나를 막아낸,

투척무기에 있어서는 무적이라 일컬어지는 최고의 방어구.

한 장 한 장이 고대의 성벽에 필적하는 7장의 꽃잎 앞에서,

어설프게 만들어진 검은 산산히 깨어져 사라져가고 있었다.

 

「 뭣── 」

 

울려퍼진 목소리에는 경악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도, 방패 한 장 뚫지 못하는 자신의 검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가짜를 몇배나 열화시켜 만들어낸 검은 이 방패 앞에선 유리조각일 뿐.

고대의 성벽을 뚫을 수 있는 유리조각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피는 철이며, 마음은 유리.
「 Steel is my body, and fire is my blood. 」

 

수 십자루의 검은 점점 그 수를 더해, 40에서 50으로,

50에서 100으로, 100에서 200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뚫리지 않는다. 기본부터가 어긋나있는 그의 검은,

똑같은 무구라 해도 미숙한 시절의 나의 투영품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 많은 전장을 넘어서도 불패.
「 I have created over a thousand blades.

  단 한번의 수호는 없고.
  Forget the ideal.

  단 한번의 구원도 없다.
  Forget the Salvation. 」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실로 그랬다.

사람의 목숨을 구한 적은 꽤 많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대형사고의 경우엔 어떻게든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긴다.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는 사람도, 당연히 생긴다.

개중에는 차라리 살아남지 않는게 낫다며 나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다. 구해진 사람의 마음이 어떻든, 그저 목숨을 구하고 구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홀로 검의 언덕에 선 그는, 잃어버린 것에 매달려 절망했다.
「 I always have withstood the pain, like a weapon. 」

 

아무것도 잃고싶지 않다고 얼마나 발버둥쳤는가.

모두를 구할 수 있을 거라며 얼마나 불 속으로 뛰어들었는가.

자신의 몸을, 자신의 마음을 불태워가며 누군가를 구한 끝에는, 절망 뿐이었다.

 

      그러나 이 소원은,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닐테니.
「 But, there is no regret. Because its beauty will not lie. 」

 

하지만, 실로 나의 몸과 마음이 전부 불타 사라지더라도,

내가 행하는 행동들이 누구에게도 진정한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해도, 

그 끝에 있는 것이 절망 뿐이라도, 절대로 나는 잘못따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언제라도, 나는 이 길을 관철할 것이다.

 

───쏟아지는 검의 비는 그칠줄을 모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부서진 방패는 네 장, 그가 쏘아내는 검은 마지막 방패를 향해 돌격한다.

그건 그렇고 대단한 근성이다.

저 빈약한 모방품만 가지고도 아이아스를 4장이나 뚫어내다니.

──하지만, 그것도 이것으로 끝이다.

앞으로 한 소절. 이 입으로 마지막 말을 뱉어내기만 하면 마술은 완성된다.

 

         이 몸은, 부러지지 않는 검으로 되어있다.
「 I will believe until the end, " Unlimited Blade Works " 」

 

불길이 일었다. 지면을 달리는 불꽃은 마치 세계를 전소해버린 것 처럼,

세계를 빈틈없이 칠해버린 뒤,  이계를 이곳에 불러들였다.

 

 

 

 

( BGM )

나타난 세계는 끝없는 황야.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검만이 잠들어있는 묘비.

 

「 ───고유, 결계...?! 」

 

마술사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당연한 반응이다. 자신의 심상세계를 구현화하는 대마술.

이 힘은 본디 악마라 불리는 존재의 것.

진조의 공주가 가진 공상구현화의 열화판.

평균적인 마술사는 어떤 짓을 해도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다.

허나, 검에 특화된 특이체질자인 에미야 시로가 가진 것은 이 세계 뿐.

이것이야 말로 나의 시작이자 끝. 내가 가진 궁극이자 기초.

 

등 뒤로 톱니바퀴가 삐걱이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키의 목소리다. 아까의 전투만으로도 비상식적인 일이었건만,

이런 ' 이계 '까지 목격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 크으... 이따위 결계가지고 뭐가 달라지지는── 」

 

잿빛의 하늘에 어림잡아 60이 넘는 수의 검이 생겨났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다.

 

「 뭣── 」

 

67자루의 무구는, 그 등장과 동시에 1초의 오차도 없이 산산히 부서졌다.

모두 ' 같은 무구 '에 의해서.

 

「 ──여기 있는 검은, 모두 가짜이긴 해도 말이지. 」

 

근처에 있는 아무 검 한 자루를 대충 뽑아서 한 걸음씩 적에게 다가간다.

 

「 네놈같은 괴물을 죽이기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칠 것 같군. 」

 

접근은 순식간이었다. 당황한 틈을 타서, 적의 머리를 향해 검을 치켜들고,

그대로 내리쳤다.

 

「 크학...! 」

 

같은 검을 투영해 겨우 막아낸 적에게서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왔다.

 

「 고유결계 가진 녀석을 모방한 것은 처음인가.

  그렇다면 알려주지. 네놈의 투영은 나의 것을 완전히 모방한 것이 아냐.

  껍데기만 빌려왔을 뿐, 내용물은 텅 빈 허상이다. 」

「 헛, 소리를───! 」

「 헛소리라...

  그렇다면, 이 검극, 따라잡을 수 있을까...! 」

 

주위의 검을 뽑아 적에게 내려친다. 적은 같은 검으로 대응 해보려 하지만,

기본적인 신체 스펙에서 나오는 차이에 의해 시종일관 압도당할 뿐이었다.

 

「 키익...! 」

 

세 자루, 총 삼 합째.

적은 도망칠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손을 뺐다간 그대로 일도양단.

도망칠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다섯 자루, 총 오 합째.

적의 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완전히 방어해내지 못한 일격 일격은,

확실히 그에게 대미지를 축적시키고 있었다.

 

십 합째.

뽑아든 쌍검으로 적의 어깨에 막야를 꽂아넣었다.

 

「 크아아아아악!! 」

 

이대로 힘을 줘서 내리면, 적의 팔은 땅바닥에 나뒹굴게 되겠지.

──하지만, 힘을 주기 전에. 이변이 일어났다.

 

「 ────. ───. ───. 」

 

남자가, 아래를 본 채로 무언가를 중얼거린 순간,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 윽..! 」

 

방금의 충격파는, 그저 마력을 주위로 마구잡이로 방출해 때려박은 것 뿐이었다.

팔에 상당한 충격이 갔는지, 금이 갔던 오른팔이 이젠 움직이지 않는다.

공중에 뜬 나를 죽이기 위해 날아오는 광탄들을, 보구를 사출해 쳐낸다.

 

남자의 몸에 있던 상처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치유되고 있다.

───과연, 수십 개의 치유마술을 합친 것인가, 아니면 동시 발동인가.

어쨌든 평범한 공격으로는 단번에 목을 날리지 않는 이상 큰 효과는 없겠지.

 

「 투영── 」

 

다시 한 번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삐걱이던 오른팔은 무리를 하니 다시 움직여주기 시작한다.

걱정없다. 몸이 튼튼한 것은 나의 자랑이자, 유일한 장점.

죽을 정도의 상처따위, 이미 수십 번도 넘게 경험했다.

 

「 하, 크── 」

「 ───개시.

  찔러뚫는 죽음의 가시창. ( 게이 볼크 ) 」

 

아직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적은, 급하게 다시 검 하나를 투영했다.

이 손에 나타난 것은 검이 아닌 창.

과거, 이 몸이 궤뚫렸던 아일랜드의 대영웅이 소유한 붉은 가시.

 

일격에, 창을 휘둘러 만들어진 검을 때려부순다.

어디서 그렇게 마력이 뽑혀 나오는지,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검은 차례차례 마창에 의해 분쇄되었다.

 

본래 에미야 시로는 창을 다뤄본 적이 없다.

───다만, 이 창을 손에 쥐고있는 이상,

조금 부족하더라도 쿠 훌린의 흉내정도는 낼 수 있다...!

 

「 크, 아아아아악! 」

 

붉은 창날이 적의 어깨를 찌른다.

드디어 유효타를 먹였다. 허나, 이 자세로는 복부가 빈다─

 

한 걸음 크게 뛰어, 상처를 입은 적에게서 물러난다.

 

「 이깟 상처....!? 」

「 어떠냐? 쿨란의 맹견이 보유한 창의 저주맛은. 」

 

적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치유저지의 저주.

비록, 진명을 입에 담아야만 발동하는 능력이지만 효과는 발군.

본래, 이 창의 진명을 개방한다면 어디를 찌르든 심장에 명중하겠지만──

그것은 쿠 훌린의 오리지널 기술. 보구 본연의 능력이 아니다.

어설프게 그의 기량을 카피한 에미야 시로로서는 이 치유저지 효과를 내는 것으로 고작─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타격이다.

치유마술이 듣지 않아 당황한 적에게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 네놈들 전부... 싸그리 불태워 없애주마!! 」

 

적의 표정에선 분노와 수치심만이 남아있었다.

아르센에게서 뿜어져나오는 흉폭한 마력은, 폭풍이 되어 검제를 가득 메운다.

결계의 하늘을 뒤덮는 광탄과 갖가지 공격 마술들──

불꽃, 바람, 얼음 무엇 할 것 없이, 전부 나와 미키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기 위해 퍼부어진다.

흡사 일반 보병 두 명을 죽이기 위해 미사일을 쏴대는 것 같은 광경.

하지만, 죽지 않는다.

상처가 없는 다리를 채찍질해 미키의 앞을 막아선다.

 

             Rho Aias
「 치천을 뒤덮는 일곱 개의 원환...! 」

 

마력의 폭격에, 방패는 한 장씩 깨져 순식간에 마지막 한 장만이 남았다.

방어구 투영의 부작용으로 격심한 두통이 인다. ──하지만 신경쓸 여유는 없다.

투영에 의한 부작용따위 일상다반사. 고통은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이 남은 한 장이 깨지면, 나라면 몰라도 미키는 확실히 죽는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그녀만은 지켜야 한다.

검제 내에서 가장 단단한 검을 검색해 끌고와 아이아스와 함께 펼친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것 같은, 점점 심해지는 두통.

 

「 젠장...! 」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두통을 씹어삼키고는, 남은 한 장에 마력을 쏟아넣는다.

──깨졌다, 저 공격이 ' 투척 무기 '였다면 아직까지 능히 버티고 있을 방패는,

무자비한 마력의 폭격에 의해 한 장도 남기지 않고 부서졌다.

 

「 크────── 」

 

대부분의 공격은 상쇄해냈지만, 아직 남아있는 비교적 약한 위력의 마술들을 몸으로 받아낸다.

──아직이다, 이렇게까지 해놓고 여기서 쓰러지면 웃음거리밖에 되질 않는다.

 

「 ──주위를 잘 봐라, 멍청아!! 」

 

나의 외침에 정신이 든 건지, 남자는 그제서야 자신을 포위하고있는 수백 개의 검을 발견했다.

 

「 체크메이트다, 망할 자식. 」

「 네, 노옴...! 」

 

어느 게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일제히 무한의 검이 남자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밝은 빛이 모두의 시야를 뒤덮었다────

 

 

 

 

황야는 사라졌다. 잠깐 감았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전투가 시작되었던 건물 앞.

싸움은 끝났다. 그의 시체는 없지만, 그 검의 비 속에서 무사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론, 흠잡을 곳 없는 승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던 마력을 모두 소비해버렸다.

방금 고유결계가 사라진 이유도 마력 고갈로 인한 강제 철거.

덤으로, 머리와 전신이 깨질듯이 아프다. 젠장, 몸 성히 돌아가기는 글렀구만.

 

「 시로 씨... 」

「 미키, 다친 데는 없...

  어, 잠깐. 어라? 」

 

몸을 돌려 미키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을 뿐인데, 바로 앞으로 털썩, 하고 쓰러졌다.

전신 어느 곳에도 힘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생각하던 참에, 뺨에 축축한 것이 닿았다.

 

「 시로 씨?! 설마, 죽으면 안돼..! 」

 

피를 이렇게나 많이 흘려버린 건가. 억지로 고통을 견뎌내고는 있었지만,

이 지경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아예 목 아래로는 거의 마비되어 있었다는 것이겠지.

정말로, 웃기지도 않는다. 이런 몸 상태로 싸웠던 건가, 나는.

 

「 안돼, 안돼..! 」

 

앞으로 쓰러진 탓에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뒤통수로 떨어지는 눈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울어주는 건가... 뭐, 나쁘진 않은 느낌이다.

의식까지 흐려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위험하다고...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하려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눈꺼풀은 점점 닫히고 있었다.

 

 

 

 

 

 

 

 

 

 

「 ───윽. 」

 

눈을 뜨니, 온통 하얀색으로 가득 찬 병실의 천장이 보였다.

──그 부상으로도 살아있는 건가, 나.

명줄 하나는 진짜 더럽게 질기구만.

뭐, 살아있다곤 하지만 팔이 양쪽 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감싸진 붕대가 답답하게 전신을 조여온다.

 

「 꼴이 말이 아니구만... 」

 

온 몸에 힘을 줘서 간신히 상체를 일으킨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니, 멍해졌던 정신이 맑아진다.

좋아, 정신적으로는 회복 완료.

 

「 ...음? 」

 

옆으로 시선을 옮기니, 의자에 앉아 쿨쿨 자고 있는 미키가 보였다.

내가 깨어날 때까지 여기에 있었던 걸까.

 

「 ...정말이지. 」

 

씁쓸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만족스럽게 움직이진 못하지만, 고정된 것은 아니니 어떻게든 팔을 움직일 수는 있다.

그대로 살짝 머리를 쓰다듬으니, 미키가 조금씩 움직였다.

 

「 우응... 」

「 아차, 깨워버렸나... 」

 

잠에서 깨어난 미키는 아직 몽롱한 상태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 시로 씨! 」

 

하며,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와락 안았다.

 

「 어이, 미키?! 」

「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

 

...잠들어 있는 사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

한심하구만. 안심시켜야 할 상대에게 걱정이나 더 시키고.

 

「 자, 자, 애정행각은 그쯤 하시고. 」

「 아, 리츠코, 씨. 」

 

병실 문을 열고, 리츠코가 걸어 들어왔다.

그동안 많은 업무를 떠맡았을텐데,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 미키. 잠시 병실에서 나가주지 않을래? 」

「 싫어! 계속 여기에 있을 거야! 」

「 이야기가 끝나면 계속 있을 수 있잖니? 잠깐만 비켜주렴. 」

 

살짝 떨어진 미키가 나를 눈물이 맺힌 눈으로 올려다 보고 있었다.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이야기를 미키 앞에서 꺼내놓을 수는 없으니.

 

「 미안하다, 리츠코에게서 듣고싶은 것이 꽤 많거든. 」

「 ...시로 씨까지 그렇다면, 알겠는 거야.. 」

 

추욱 늘어진 미키는 터덜터덜 걸어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 미키가 없다고 리츠코 씨랑 바람피우면 안돼? 」

「 그런 짓 안해, 그보다 우리 언제부터 그런 관계였냐...? 」

 

병실 문이 닫기고, 쓴 웃음을 짓던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내가 며칠동안 자고 있었지? 」

「 오늘로 딱 일주일째네요. 깨어나지 않으시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어요. 」

 

그렇게까지 잠들어 있었던 건가. 3일 정도 쓰러져 있는 일은 익숙하지만,

이 정도로 부상을 입는 일은 흔치 않다.

 

「 961프로덕션은? 」

「 ' 굴 '의 존재와 실체가 드러나면서, 완전히 망했어요.

  소속 아이돌들은 모두 은퇴하거나 이적했고, 관련된 사람들의 수사가 진행중이에요.

  쿠로이 사장은... 어디론가 잠적해서 숨어 지내고 있어요. 」

 

결국 무너뜨리는 데엔 성공한 건가.

복수를 해냈음에도 기분이 좋다거나, 통쾌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은 허무함 뿐.

복수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말이 뼈에 사무치도록 공감된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거기다 그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나는 만족스럽다.

 

「 765프로의 상황은 어떻지? 」

「 예전처럼 꾸준히 성장중이에요.

  자리를 비운 에미야 씨 대신 사장님도 직접 뛰고 계세요. 」

 

──나는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 밖에는 하는 일이 없는 거냐.

 

「 가장 중요한 건데, 미키와 모두의 상태는..? 」

「 다른 아이들은 조금 불안한 상태에요,

  에미야 씨가 깨어나지 않으실까봐 걱정이 한 가득.

  뭐, 어떻게든 활동엔 지장 없지만요. 」

「 ...다행이라 해야하나.. 모두에게 사과해야겠군. 」

「 그리고, 미키는... 」

 

리츠코는 조금 말을 꺼내기 힘들어 했다.

그녀에게 심각한 일이 있다는 것이겠지.

 

「 신체적으로는 멀쩡해요, 구타나 성적 학대의 흔적도 없고.

  단지 며칠 굶어서 힘이 없었던 것 뿐. 돌아오자마자 금세 쌩쌩해졌어요.

  문제는, 정신... 마음 쪽이 병들어 버렸다는 거에요. 」

「 자세히 말해줘. 」

「 의존증...이라고 할까요. 에미야 씨와 떨어져 있으면 계속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에요.

  다른 사람이 말을 걸 때마다 겁먹은 듯이 놀라고,

  주위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는 공포에 떨면서 발작을 일으키기까지... 」

「 ────그런, 가. 」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내 탓이다. 내가 좀 더 빨리 대응하기만 했더라도.

내가 그녀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도...

 

「 ...아마도, 일주일 정도 당신이랑 떨어져 있다면, 미키는 미쳐버릴 거라고.. 」

「 ────── 」

 

천천히 내 상태를 살피던 리츠코가 놓여있는 의자에 앉는다.

 

「 죄책감, 느끼고 계시죠? 」

「 ...그래. 」

「 ...미키에게서 들었어요, 이상한 마법을 부린다던가 하는,

  그 날 있었던 싸움의 이야기...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765의 모두가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까지 비밀로 하셨던 거라면,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이겠죠. 」

「 ..... 」

「 에미야 씨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에미야 씨는 미키를 구해낸, 모두를 지킨 영웅이에요.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어요, 당신 잘못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오히려, 칭찬받고 상을 받아 마땅해요. 」

「 ...영웅, 인가. 」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 그 호칭, 나는 별로 안좋아해. 」

「 어째서죠? 」

「 ──떠날 수 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거든. 」

 

의아해하는 리츠코는 다시 한 번 왜 그런지 나에게 물어왔다.

 

「 이런 이야기를 알고있나?

  괴물은 인간을 먹고, 영웅은 그 괴물을 죽인다.

  그리고 그 영웅은, 인간에 의해 끌어내려진다. 」

「 ... 」

「 평화로운 세계에 영웅은 필요없지.

  영웅이 인간의 평화에 섞여있어 봤자, 더 큰 혼란이 일어날 뿐.

  그것을 알고있기에, 영웅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 뿐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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