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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키마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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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4, 2016 22:01에 작성됨.

"......"
 
이곳, 765 프로에 오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끼익,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은, 역시나 키사라기 치하야. 기다리고 있던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서로 마주보는 건 또 몇 개월 만이지?"
 
"글세요...여름에 헤어져, 겨울에 다시 만났으니...3개월 정도 지나지 않았을까요?"
 
현재 사무소 내에 있는 건 우리 두 사람 뿐. 다른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그녀와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때 했던 말에 대해서는...미안하다...내가 말이 너무 심했어"
 
"...아뇨, 괜찮아요...심한 건 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오히려, 고마웠어요...저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 화를 내고 욕을 해주길 바랬으니까요"
 
비겁했던 자기자신을, 누군가 욕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던 키사라기
 
"저는, 오늘 부른 노래처럼, 모두에게 약속을 했어요. 지금 있는, 765의 동료들, 그리고 죽은 유우...마지막으로 저 자신에게...이제 도망치지 않겠다고, 그런 약속을요"
 
"그 약속...계속해서 지켜나갈 자신은 있어?"
 
"솔직히...그건 잘 모르겠어요...하지만, 제가 흔들릴 때마다, 제 곁에 있는 동료들이나, 프로듀서가 도와줄 거에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 다짐한 약속을, 깨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저는, 이제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을 겁니다. 설령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에요. 이제 저는...혼자가 아니니까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감상은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주변의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하며 주변을 관찰한다. 모두들, 나를 시선에 담지 않는다.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마치, 나 혼자서만, 다른 세상에 버려진 듯한 그 감상을...나는 잊을 수 없다
 
"잘 되었구나...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히키가야 선배는...어떤가요?"
 
"나야 별로 다를 것 없지"
 
이전처럼 외톨이다. 카와사키랑 조금 어울린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점심시간 한정. 옥상에서 잠깐 만날 뿐이다.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서로 스쳐지나가도라도 아는 척 할 일 없는, 그 정도의 관계일 뿐
 
"선배도...과거에 매달려 있죠? 저와는 달리...선배는 아직인가 보네요"
 
"나도 너와 마찬가지인 거지. 아니, 네가 나와 마찬가지였었달까. 너의 곁에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키사라기 치하야는 인정했다. 이제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변에는 믿음직한 동료들이 있다. 그녀를 여전히 굳게 응원하는 팬들이 있다. 아이돌은, 오롯히 홀로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무대만큼이나, 그 무대의 뒤편에서도, 그녀는 빛이 난다. 그 빛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매료시킨다
 
"너는 톱 아이돌이 될 수 있을거야. 단순히 노래하는 인형이 아닌, 진짜 가희(歌姬)로서 말이지"
 
"과찬이시네요"
 
"과찬으로 치부할 수준은 아니라구? 그럴 때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좋아. 겸손을 보이는 것도,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른거다"
 
"과연...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니까, 마치 3개월 전으로 돌아간 듯한 감상이 든다. 그때도 나는 키사라기에게 필요한 말을 건네주고, 그녀는 바로 이해하고 알아들으며, 그걸 행동으로 옮긴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학생이라고 할까. 선생님들이 왜 발표 잘 하는 학생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는 감상도 있었던 시절. 하지만, 이제 그 시절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오늘의 일로, 키사라기는 한 번 더 높은 곳으로 도약했다
 
이제...내 손은 닿지 않는, 저 하늘 너머로...
 
"파랑새...정말로 노래의 새처럼, 너는 날아가게 되었구나...뭐라고 할까, 감회가 새롭네. 내가 처음 들었던 네 노래도 파랑새였는데"
 
"파랑새...새처럼 날아간다...푸흡!"
 
"......"
 
아저씨 개그에 빵 터지는 부분만큼은 정말 변함이 없구나
 
*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는 밤. 홀로 걷는 밤거리는 쓸쓸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따스한 느낌도 든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 뒤를 돌아보면, 그녀, 하기와라 유키호가 서 있었다
 
"동료들하고 뒤풀이는 벌써 다 끝낸거야?"
 
"아니, 잠깐 도중에 나온거야"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오랜만, 아니, 무대 중간에서도 봤으니 오랜만은 아닌가. 이름에 들어가는 유키(雪)처럼, 눈 내리는 밤풍경 속에 녹아든 그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옷차림도, 하얀 털모자도 전부 하얀색이었으니, 마치 눈의 요정처럼 보인다
 
"치하야와의 이야기는, 잘 끝낸 모양이네?"
 
"아아...너도 이만 돌아가라. 이 장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다간, 썩 좋지 않을 거라구?"
 
아이돌과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남자. 내가 가장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던 모습이다. 카와사키에게도 들켰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못 알아볼 것 같지는 않다. 주변에 사람들이 적다고 해도 말이다
 
"히키가야 군...히키가야 군이 떠나서, 우리들을 위해서 떠나서, 말 못 했던 말...지금 이 자리에서 하려고 하는데 들어줄래?"
 
"......"
 
무슨 말이 나올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다. 그러니까, 막아야 한다. 그녀의 입에서, 내가 생각하는 그 말이 나온다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만둬, 하기와라. 아이돌로서, 그건 너무 위험한──"
 
"아이돌 이전에...하기와라 유키호로서, 히키가야 하치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야..."
 
꽉 쥔 두 손. 아마, 소심한 그녀로서는 최대한 용기를 쥐어짜, 지금 이 자리에, 내 눈 앞에 서 있는 것이겠지. 그 각오를, 그 용기를, 부정할 수 없다
 
"히키가야 군...나는, 너를 좋아해...후루사토 마을 때부터...쭉 좋아해왔어"
 
"......"
 
"히키가야 군에게...지금의 내 고백이 부담이 가는 건 알아...이게 세간에 알려졌다간, 히키가야 군에게 엄청나게 폐를 끼치게 되겠지...그래도, 나는 지금부터, 히키가야 군에게 정말로 잔혹한 부탁을 할 거야. 그래도...들어줄래?"
 
하기와라 유키호는 상냥한 여자다. 절대로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던가, 그런 일은 무리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말 할 잔혹한 부탁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지금의 동료들이 좋아...무대에서 춤추며 노래부르는 것도, 팬들의 환호성도 좋아...전부, 전부 다 놓치고 싶지 않아...그런데, 정말로 이기적이게도, 히키가야 군 또한 좋아해. 히키가야 군만을 위해 노래불러야 하는데, 나는 계속해서 모두를 위해 노래 부를거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가지고 싶지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건 꽤 많은 노력과 인내심을 요구로 한다. 그리고, 지금 하기와라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러니까...기다려주지 않을래? 언젠가, 내가 아이돌에서 은퇴해, 나이 30을 넘었다고 해도...더 이상 지금처럼 젊거나, 예쁘지 않아도, 받아주지 않을래?"
 
"......"
 
지금으로부터, 12년 가까이. 데이트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을 여자를 기다린다
 
그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언제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을지도 모르는 입장에 있는 여자를 기다린다
 
정말로 잔혹한 부탁이다
 
"......너야말로, 나 같은 남자로 괜찮은거야? 주변에, 나보더 더 잘생기고 능력있는 남자는 많잖아?"
 
"......그래도, 항상 곁에 서고 싶은 남자는, 히키가야 군 뿐이야. 실제로, 히키가야 군의 옆이라면, 나는 안심할 수 있어"
 
아, 그런 말 진짜 반칙이라고. 괜시리 두근두근 거리게 만들잖아
 
"대답은 지금 당장 주지 않아도 좋아. 그래도...정말로 히키가야 군이 나를 기다려준다면...항상 나를 찾아준다면...정말로 기쁠거야"
 
그럼 안녕─이라고 말하며, 그녀는 먼저 돌아갔다
 
마치 순정만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곤란한데"
 
입꼬리가, 말려올라가 있었다
 
 
 
 
 
 
다음편으로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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