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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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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6, 2016 14:33에 작성됨.

「치하야쨩, 잠시 나갔다 올테니 얌전히 방 안에 있어? 혼자 외출하면 안된다?! 외출하려면 마코토라도 함께... 아, 아니다, 그냥 방 안에 얌전히 있어. 금방 올테니까! 꼭 얌전히 있어야 돼!!」

 

 

 

 

 

라고,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되지만 자신과 다른 모습의 이가 던진 주의에 처음 몇 분은 치하야는 방 안에 마련된 자신의 작은 요람 위에 앉아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처음 보는 세상에 대해서 호기심이 넘치는 치하야에게는 지루한 일이었다. '금방 온다'라고 하고선 오지 않는 보호자에 뺨을 잔뜩 부풀리고 있던 치하야는 요람에서 빠져나와 날았다. 작고 푸른 날개가 날갯짓하자 그 작은 몸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호기심 어린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창문으로 다가간다. 보호자- 하루카가 하던 대로 창문을 잡아당겨 열어보려고 하지만, 창문은 그 몸으로 잡아당기기엔 너무 무거워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걸 열면 굉장히 시원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쉬운 한숨을 내쉬던 치하야는 이번엔 문으로 다가갔다.
낑낑대며 손잡이를 돌려보려고 하지만, 몸만큼이나 거대한 손잡이는 돌아가긴 커녕 양 팔을 한껏 벌려야 간신히 안을 수 있었다. 그런 상태론 힘도 들어가지 않아서 돌릴 수가 없는 건 당연하다. 그 사실에 분한 표정으로 손잡이를 보던 치하야는 한숨을 푹 내쉬곤 다시 돌아왔다. 엄마는 굉장히 쉽게 열었는데, 자신은 도저히 열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은 이 방에서 놀아야 하는 것이다.


이 방에서 뭘 하고 놀까. 그러고 고민하던 치하야의 눈이, 하루카의 책상에 닿았다. 하루카가 늘 앉아서 일을 하는 책상이다. 뭐 재미있는게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재빠르게 날개를 파닥거려 하루카의 책상으로 간 치하야는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새하얀 종이 위에 새까만 것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한참을 보던 치하야는 이 것이 무슨 그림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삐죽였다. 재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종이 위에 앉았던 치하야는 옆에 있는 커다란 깃털을 발견했다.


새하얗고, 자신보다 커다란 깃털에 깜짝 놀라 손을 뻗는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에 닿았다. 신기해하며 깃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정도로 커다란 깃털이면, 자신보다 몇 배는 큰 걸까? 이 깃털의 주인은 새하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걸까?
한참 그 깃털을 관찰하던 치하야는, 그 깃털의 끝이 뾰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뾰족한 무언가가 달려 있었다. 날카로워 찔리면 아플 것 같지만, 그 끝이 새카만 것에 넘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조심스레 손을 댄다.


"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댔다가 황급히 손을 떼곤 고통이 없었단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치하야는 자신의 손에 거뭇한 무언가가 묻어있다는 것을 깨닫곤 고개를 갸웃했다. 이 검은 건 뭐지? 냄새를 맡으려고 코에 가져갔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뗀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 맛을 보기엔 조금 그렇고, 라고 고민하던 치하야의 손에 묻어있던 검은 액체가 방울짓나 싶더니, 툭, 하고 종이 위로 떨어졌다.
종이 위에 떨어진 검은 액체는 금방 번져나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치하야는, 턱, 종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뗐다. 그러자 검은 액체로 자신의 손바닥이 선명히 종이 위에 새겨졌다. 치하야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건 재미있다!


드디어 갖고 놀 것을 찾아 즐거운 표정으로 손도장을 꾹꾹 찍어본다. 하지만 곧 검은 액체가 말라버려, 거뭇한 흔적만 손에 남기고 종이에 찍히지는 않았다. 그 사실에 자신의 손을 보던 치하야는 다시 깃털 끝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아까처럼 차가운 액체가 묻는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에 의아한 눈동자로 깃털을 본 치하야는 깃털에 묻어있던 거뭇한 액체도 말라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이 깃털에 있던 검은 액체는 어디서 난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린 치하야의 눈에, 검은색의 작은 병이 들어왔다.

조심조심 걸어가, 깃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병을 바라본다. 하루카가 깜빡 잊은 것인지 작은 병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찰랑이는 검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게 자신이 찾는 액체일까? 조심스레 냄새를 맡아보았다가 다시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곧 치하야의 표정은 환해졌다.

 

이거다!

 

환한 표정으로, 그 병 안에 손을 담그자 차갑고 검은 액체 안에 손이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갔다. 빼내자 손에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검은 액체에 젖어있다. 그 손을 종이 위에 옮긴 치하야는, 손에서 떨어진 액체가 종이 위에 번지는 것을 보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곧 종이 위에 자신의 새카만 손으로 직직 긋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검은 액체에 흠뻑 젖었던 손의 모양이 선명하게 종이 위에 남았다.

그 장난을 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 손 뿐만이 아니라 얼굴도, 무릎도, 옷까지 전부 검은 액체에 젖었지만 치하야는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 쓰기엔 이 액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꾹, 하고 종이에 손가락을 대고 지익 그어본다. 그러면 종이에 묻었던 검은 액체가 손가락을 쭈욱 따라온다.
신나게 치하야는 종이 위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책상은 이미 치하야가 손을 담갔다 뺐다 하는 바람에 검은 액체가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그 것이 잉크였다는 것을 치하야가 알 리는 물론 없었다. 다만 이 액체가 재미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치하야가 다시 액체에 손을 담갔다 빼서, 종이 위에 툭, 갖다 대는순간─


"...치하야쨩...?"


익숙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흠칫. 그 목소리에 치하야는 행동을 멈췄다.


"......지금 뭐 하는거야?"


상냥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의 질문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서린 느낌에 치하야는 머뭇머뭇 거리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황급히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치하야가 날개를 펼치기 전에, 하루카가 먼저 치하야를 붙잡았다.


안돼, 잡히면 정말로 엄청나게 혼날거다!!!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최대한 바둥바둥거려보지만, 하루카는 치하야를 놓아주지 않은 채 책상 위의 참사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오오라가 나오는 듯한 기분에 손 안에서 바둥거리던 치하야는 하루카를 가만히 보았다. 하루카의 입에서 후우, 하고 한숨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내가 얌전히 있으라고 했잖아!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하루카의 입에서, 평소라면 절대로 나오지 않는 호통이 터져나왔다.

 

 

 

 

 

 


물론, 하루카가 화낼 만도 했다. 만약 치하야가 그 종이가 아닌 다른 종이에 그런 짓을 했다면 적당히 그만두라고 하는 걸로 끝냈을테지만 책상 위에서 치하야가 벌인 참사의 대상이 된 종이는 그 날 결제해야만 했던 중요 서류였다. 즉 치하야가 본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글씨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치하야에게 화내봤자 눈물에 젖은 눈동자만 돌아올 뿐이고, 서류는 더 이상 알아볼 수도 없는 내용이 되어버린 현실에 자신도 울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하루카는 일단 치하야를 깨끗히 씻겼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모든 사태에 대해 들은 마코토는 인상을 쓰며 치하야를 노려보았다.


"그 서류, 오늘까지 급한 결제였잖아."
"......응... 하지만 이 모양이니..."


그렇게 말하며 하루카가 집어올린 서류는 검은 잉크에 젖어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젠 글씨를 알아볼 수도 없다. 그 사실에 저 익인을 역시 갖다 버려야하나 고민을 하던 마코토은 치하야가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날아오르는 것에 시선을 두었다. 마코토의 그 시선을 눈치챈 하루카도 치하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날아오른 치하야는 곧 하루카의 방 안에 있는 테이블 밑의 서랍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 작은 체구론 아무리 낑낑대도 열리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하루카가 다가가 서랍을 열어주자, 치하야는 재빠르게 그 안에 있던 종이를 끄집어냈다. 어느새 하루카가 무엇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도 알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마코토가 치하야를 바라보자, 치하야는 무언가 확인하듯 종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하루카가 붙잡기 전에 황급히 책상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퐁, 자신의 손을 검은 잉크에 담갔다.


"치하야쨩, 뭐하는거야! 기껏 깨끗히 씻겨놨더니!!"
"...혹시 아직도 반성 못 한 거 아냐?"


그런 치하야에게 외치는 하루카의 호통에 흠칫 놀라는 치하야를 보면서도 마코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체 이런 행동을 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혼나놓고선. 하지만 치하야는 하루카의 호통에도 그만두지 않고 조심조심 눈치를 살피다가 종이 위에 새까맣게 변한 자신의 손을 갖다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인상을 찌푸린채 바라보고 있던 마코토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저건─


"치하야쨩, 장난은 이제..."
"잠깐, 하루카."


치하야의 모습에 아까보다 더 화를 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렇게 말하며 다가서던 하루카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마코토에 무슨 일이냐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코토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치하야가 종이 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다가 말했다.


"...마계어?"


그 말에 놀란 표정으로 하루카는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욱 놀랐다. 마코토의 말이 사실이었다.
치하야가 새까만 손으로 써내려가고 있는 것은, 마계어였다.


"...하루카, 마계어를 가르쳐 준 적이 있어?"
"그럴리가! 치하야쨩 저렇게 어린데. 가르쳐 준 적 있을리가 없잖아."
"...그럼 어떻게 마계어를..."


치하야를 데려온지는 이제 겨우 몇 달. 아무리 하루카가 바보라도 한 손 위에 올라올 만큼 작은 치하야에게 벌써부터 마계어를 가르치겠다고 설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에게, 라고 생각하며 치하야가 쓰는 마계어를 바라보던 마코토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쓰는 게 아니라... 그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녀의 중얼거림에, 치하야가 쓰는 마계어를 같이 바라보던 하루카는 좀 더 자세히 바라보다가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하야가 마계어를 쓰는 방법은 순서도 점도 엉망이었다. 그래, 모르는 글자를 '그린다'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정확할 정도로.
하지만 읽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그 사실에 놀라워하며 치하야를 바라보고 있던 하루카는, 치하야가 곧 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는 것도 그만 둔 상태였다. 그 사실에 아, 하고 당황하며 치하야를 보던 하루카보다 먼저, 마코토가 치하야가 글씨를 쓴 종이를 집어들었다.


"삐!! 삐─잇!"


맨 처음 만난 날, 날개를 아프게 붙잡힌 이후로 마코토를 무척이나 무서워함과 동시에 굉장히 싫어하는 치하야는 마코토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는 듯 종이를 붙잡았지만 아무리 종이를 붙잡고 잡아당겨봐야 그 크기로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종이에 매달린 치하야를 보면서도 태연히 글씨를 읽어내려가던 마코토의 표정이 굳었다.


"마코토?"


좀처럼 볼 수 없는 그 표정에,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그 부름에 시선을 돌린 마코토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치하야를 힐끗 보았다가 하루카를 보고선 말했다.


"이거... 그 서류의 내용이야."
"뭐? 정말?!"
"그래. 정확해. 내가 검토했던 내용 그대로야."


그 말에 말도 안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종이의 내용을 읽어내려간다. 작은 글씨라 읽기 힘들었지만, 그 내용은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읽어내려가면 갈 수록 하루카의 표정은 점점 더 경악으로 바뀌어갔다.
진짜다.
이건 왕에게 올라오는 서류의 서식 그대로다.

치하야쨩이 이걸 알 리가 없는데.

그리고 마코토는 종이에 여전히 매달려 있는 치하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그 장난을 치고 있던 사이에 잠깐 봤던 서류의 글자 '모양'을 전부 기억한다는건가?"


그 말에 하루카는 경악을 숨기지 못한 채 치하야를 내려다보았다. 종이에 매달린 치하야는 뭔가 불만스러운듯한 표정으로 하루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치하야를 멍하니 바라보던 하루카는, 치하야의 검은 손을 본 순간 치하야를 종이에서 떼어내곤 말했다.


"이, 일단 난 치하야쨩부터 다시 씻길게. 마코토는 치하야가 써 준 그 것대로 다시 서류를 작성해서 올려줄래?"
"....그래, 알았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그렇게 답한 마코토는 종이를 들고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치하야를 붙잡은 채 욕실로 걸어가던 하루카는 치하야가 어쩐지 시무룩해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아아, 하고 짧게 한숨을 흘린다.
아마 그 둘이 곤란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그림'을 그대로 '그려낸' 것이리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곤란한 것인지는 모른 채. 하지만 하루카는 자신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코토에게 그 종이를 주고 말았다. 그 때문에 시무룩 해 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하루카는 치하야의 머리를 쓸어넘겨주곤 말했다.


"다행이네, 치하야쨩이 모두 기억하고 있어서. 잘 했어, 치하야쨩."


그 말에, 하루카를 올려다 본 치하야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 표정을 본 하루카는 잠깐 웃었다가, 곧 다시 나름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다시는 그런 장난은 안돼! 알았지?"


그 말에, 치하야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치하야를 보고 피식 웃은 하루카는 치하야를 욕실에 데리고 들어갔다. 손부터 깨끗히 씻겨야 할 것이다.

 

 

 

오늘의 치하야의 수확은, 잉크 장난 금지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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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던 익인이던 같은 천재성을 지닌 치하야라고 한다던가 뭐라던가<

그나저나 일주일에 두번...주말에만 들르고 있는데도 생각보다 창작쪽에 올라오는 게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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