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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17-

댓글: 2 / 조회: 851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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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0, 2016 18:11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아, 안즈가, 내가?”
“축하해요! 안즈 쨩!”
우즈키는 안즈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도 손뼉 쳤다. 다른 멤버들도 우즈키를 따라 손뼉을 쳤다.

“안즈가 왜 센터……. 어, 잠깐……. 설마…….”

-유이의 요청도 있으니 이번 유닛의 중심은 너지만…….

프로듀서가 전에 이런 말을 했는데…….
설마 그 중심이 말 그대로 중심……. 센터를 뜻하는 거였나?

안즈는 안즈 자신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유닛이 모였다는 뜻으로만 이해했다.
아니, 그렇게 착각했다!

“아니 아니, 안즈는 아이돌 초보인데 안즈가 센터를……?”
“안즈 쨩,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왜요?”
우즈키, 미호, 나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안즈가 센터로 배정되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아니라, 안즈의 반응을 보고 그러는 것이다.

“아니, 이 중에 센터라면 우즈키 쨩이나 나나 쨩, 미호 쨩 중에 잘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아니면 미쿠 쨩이 겸임하거나.”
안즈가 미쿠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냈지만 미쿠는 고개를 가로저어 시선을 뿌리쳤다.
“곡 이미지나 유닛 이미지에 맞춰서 센터를 정하는 건 흔한데요?”
우즈키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말하듯이 말했다.
“진짜? 이게 당연해? 흔해?”
멤버들 모두 똑같은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즈는 자리에 앉았다.

“저기, 다들 진짜 불만 없어?”
안즈는 조심스럽게 멤버들에게 물었다.
멤버들 모두 잰 것 같은 타이밍에 어깨를 으쓱였다.

“아, 알았어. 그럼……. 안즈가 센터 할게.”
안즈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지쳤다…….

노래 제목은 ‘나아가라☆소녀여 ~jewel parade~’
우즈키 왈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미쿠 왈 전진하고 싶어지고, 나나 왈 전파가 잘 통하고, 미호 왈 기분이 밝아지며, 안즈 왈 의욕이 생기는 멜로디. C5 멤버가 그렇게 평했던 곡의 제목은 그야말로 곡의 특징을 문장으로 현현한 절묘한 제목이었다.

가사도 마찬가지. 단어를 입에 담다 보면 힘이 솟는 좋은 가사였다.

"나아가라 소녀여~ 좀 더 앞으로~ 이상적인 스테이지로 향하자~“
레슨실에서 다섯 명의 목소리가 겹쳐 울린다.

"서로 이해하는 기쁨이 이제 용기가 될 테니까~“
“잠깐, 후타바! 발음이 샜어. 거기에 타이밍이 빨라.”
트레이너가 노래를 중단시켰다. 다음 가사를 준비하던 다른 멤버들이 입을 열다 말았다. 안즈는 당혹감에 혀를 살짝 깨물었다.

“후타바 혼자만 지금 부분 다시 해봐.”
트레이너의 말에 안즈는 잠깐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아……. 서로 이해하는 기쁨이 이제 용기가 될 테니까~”
발성했다. 조금 전보단 낫지만 여전히 빠르다.
트레이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제점을 짚었다.

“혹시 긴장하고 있냐?”
안즈는 반박하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안즈의 상태를 살피더니 휴식 결정을 내렸다. 잠깐 릴렉스한 다음에 상태를 두고 보기로 했다. 안즈 혼자 휴식하고, 나머지는 레슨을 계속한다.
긴장이라……. 아직도 이런 상태인가……. 안즈는 벽에 기대 풀썩 주저앉았다. 프로듀서가 안즈에게 수건을 건넨다.

“수고했어.”
“아직 안 끝났지만 말이지.”
안즈는 수건으로 목을 닦았다.
“유닛 활동 처음엔 원래 다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마.”
프로듀서는 뭐라고 더 말하려다 말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이 프로듀서 손에서 요란하게 진동한다.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프로듀서의 얼굴이 전화를 받기도 전부터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여보세요. 네, 레슨실입니다. 예, 순조롭습니다. 지금 말입니까? 네, 그럼. 그쪽으로…….”
프로듀서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미시로 상무?”
“어떻게 알았어?”
그야 프로듀서의 얼굴이 창백해졌으니까…….
“그냥 느낌상.”
안즈는 돌려서 대답했다.

프로듀서가 레슨실에서 나갔다. 다른 아이들한테 잘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아이들 쪽으로 향했다. 트레이너가 더 쉬라고 했지만 안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즈가 레슨에 합류했다. 멤버 다섯이서 다시 목소리를 맞춘다.

"서로 이해하는 기쁨이 이제 용기가 될 테니까~“
이번엔 트레이너가 중단시키지 않았다. 중단할 필요 없이 술술 넘어갔으니까. 노래가 끝나고 트레이너가 물었다.

“이제 긴장은 다 풀렸냐?”
“응. 이제 괜찮아.”
트레이너가 안즈의 기색을 살핀다. 트레이너의 시선이 묘하게 거북했는지 안즈는 트레이너의 시선을 피했다.

“그래, 그럼 여기서 잠시 휴식. 다른 아이들도 쉬어야 하니까.”
안즈는 얼떨결에 추가로 휴식을 취하게 됐다.
“안즈 쨩, 이제 괜찮아요?”
미호가 안즈에게 물었다.
“응, 괜찮아.”
“저도 울렁증이 있어서 가끔 버벅거릴 때가 있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누구나 다 초기엔 그래요.”
미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프로듀서도 했던 말이다. 누구나 다 그런다……라…….
안즈가 긴장했던 이유는 그게 아니라…….

“안즈 쨩, P쨩은 다른 데 갔어? 냐.”
미쿠가 안즈 옆에 앉았다.
“응, 상무가 불러서.”
“그렇구나.”
미쿠는 텀블러에 담아온 스포츠 드링크를 빨대로 쪽쪽 빨았다.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몰아쉰 다음 미쿠가 말했다.

“휴우, 안즈 쨩, 아까 긴장했던 거 말인데 혹시 P쨩이 보고 있어서 그랬어?”
미쿠의 표정이 고양이상으로.
“응, 맞아.”
안즈는 미쿠에겐 얼버무려도 소용없겠다고 판단해 솔직하게 대답. 미쿠가 쿡쿡거리면서 웃었다.
“역시 그랬구나냐. 아침부터 묘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거든. 냥. 아침에 무슨 일 있었어?”
안즈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미쿠에게 이야기했다.

“아아, P쨩 친구들? 미쿠도 만난 적 있어. 아이돌도 아닌데 캐릭터가 특이한 사람들이지. 냐.”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정말 부끄러운 꼴을 당했어.”
“그래도 기분 좋았지? 냐.”
“그야……. 그렇지.”
안즈는 얼굴에 수건을 덮었다. 안즈의 목소리가 뭉개지면서 이어졌다.

“근데 그런 건 그냥 겉치레로 하고 다니는 말 아니야? 별다른 뜻 없이 그냥.”
수건에 막혀 뭉개져서 그런지 안즈의 목소리가 자신 없는 것처럼 들린다. 미쿠는 안즈에게서 수건을 뺏었다.

“P쨩은 사람 재능 가지고 그런 말 안 해. 냥. 그런 면에선 정말 똑 부러지거든. 냐. 안즈 쨩이 전에 P쨩한테 말했잖아. 자기를 못 믿느냐고. 그래서 P쨩이 안즈 쨩의 재능을 믿는다고 대답했지. 이것만은 의심할 수 없는, P쨩의 진심이야냐.”
미쿠는 수건을 안즈의 머리에 얹었다.

“안즈 쨩도 P쨩의 안목을 믿어보는 게 어때? 냐.”
“어찌 되었든 이제 와서 뒷걸음질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안즈는 안즈가 할 수 있는 걸 할 수밖에 없어. 추가 선택지는 이제 없으니까.”
안즈는 머리에서 수건을 내리면서 말했다.

“흐음, 그건 그렇고 상무가 불러서 갔단 말이지?”
미쿠는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곤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레슨실 문을 응시했다.

“얼굴이 새파래져선 일하러 갔어.”
“어쩔 수 없지. 냐.”
“저기, 프로듀서는 왜 그 사람을 그렇게 어려워하는 거야? 무서운 사람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벌벌 떨 것까진 없을 것 같은데…….”
“P쨩한테 이야기 안 들었어?”
안즈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안무 표 나온 걸 보면 말이에요, 여기서 이렇……. 앗, 으아아아아, 허리가아아아!”
“나나 쨩, 괜찮아요? 여기요?”
“파스 가져올게요!”
“아베, 괜찮냐?”
나나가 갑자기 허리에 경련이 왔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우즈키와 트레이너가 그런 나나의 허리와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미호는 파스를 가지러 잠시 자리를 떴고.

“앉은 채로 그렇게 허리를 틀면 어떡해……. 근육이 조금 놀라기만 한 거라서 다행이군.”
트레이너가 나나에게 쓴소리.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안즈와 미쿠를 제외한 모두의 정신이 나나에게 쏠렸다. 안즈는 목소리를 낮추어 미쿠에게 말했다.

“아이돌 부서 해체를 그 사람이 막았다고 들었어. 그래서 미안해서 그렇다고…….”
미쿠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 목소리를 작게 해서.

“그다음 이야기가 더 있어. 냐.”
“정말?”
"미시로 상무가 아이돌 부서의 해체를 막았잖아? 그걸 가지고 미안해서 벌벌 떨기에는 도가 지나치지. P쨩이 상무한테 쩔쩔매는 건 미안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실은 다른 이유도 있어. 냥."
미쿠 말대로, 단순히 미안해서 그러는 거면 트라우마 감이 될 리가 없을뿐더러 창백한 얼굴로 벌벌 떨 리가 없다.

“아이돌 부서가 해체를 면한 직후 아이돌 부서에 또 한 번 폭풍이 몰아쳤어.”
미쿠는 떨떠름한 투로 운을 떼었다.
“미시로 상무는 아이돌 부서의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고자 아이돌 부서를 몰아붙였어.”
안즈는 이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이해했다. 그야말로 상무가 할 법한 행동이다. 미시로 상무는 실적주의자. 그런 상무가 아이돌 부서의 해체를 막은 건 즉 해체를 막을 정도로 상무 눈에 차는 무언가가 아이돌 부서에 남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돌 부서가 쓰러지게 둘 수야 없었겠지.

“아이돌 부서가 원래대로였으면 버텼겠지만 당시 부서 사람들 마음은 깨지기 직전이었어. 버티지 못했지. 그래서 별의별 일이 다 있었어. 미시로 상무와 마찰을 겪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냐.”
미쿠가 전에 미시로 상무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 부서 사람 중에 그 사람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매서운 인성을 소유한 그녀는 아이돌 부서를 낭떠러지로 떨어트렸으리라. 흔히들 야생에서 사자가 자기 새끼를 벼랑 끝으로 몬다고 그러는 것처럼.

그러나 과연 그 낭떠러지에서 기어 올라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실제 사자는 새끼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는다.

“P쨩이 그 사람을 유독 어려워하는 건 예전 사건도 사건이지만 P쨩이 그 이후에, 상무의 정책에 얻어맞는 선봉대 역할을 했기 때문이야. P쨩은 상무한테 시달렸어. 냥. 아이돌 얼티밋 이후에 의욕이 깨진 상태에서 그렇게 시달렸으니 남은 의욕이 증발하는 것도 당연하지. 냐. 이게 P쨩이 상무를 어려워하는 진짜 이유야. 냐.”
이런 이유라면 트라우마에 걸릴 만하다. 이런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안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더 발생한다.

“프로듀서가 안즈한테 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글쎄, 아마 모든 사태의 발단이 자기라고 생각해서 P쨩 나름대로 미시로 상무를 감싸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안즈 쨩은 신인 아이돌이잖아. 냐. 높으신 분들한테 찍히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굳이 나쁜 인상을 심어줄 필요는 없다……. 뭐 이런 거 아닐까? 냐.”
안즈가 생각해도 지금 미쿠가 내놓은 답 이외의 것은 나오지 않겠지.

“프로듀서는 참…….”
안즈는 무릎을 끌어모았다.

프로듀서는 참 피곤한 성격이다.
안즈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지금 안즈 때문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안즈가 불평할 처지는 아니다.

“둘 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우즈키가 갑자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어? 그게 말이야. 음 그러니까…….”
안즈는 머리를 굴렸다. 아무거나 머릿속에 번뜩여라……. 오늘 아침 출근길에 뭐가 보였지?
“길 저편에 새로 생긴 도넛 카페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아침에 오면서 봐두길 잘했다. 새로 열어서 그런지 아침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아 눈길을 끌던 곳이었다.

“맞아. 냐. 언제 한 번 가볼까 생각 중이라서. 냥.”
“아, 거기 나나도 가봤어요! 도넛도 맛있지만 커피가 진짜 맛있어요!”
“그렇게 맛있어요?”
어느새 부활한 나나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나나의 허리를 살피던 미호도 자연스럽게 화제에 합류. 트레이너는 멀찍이 떨어져서 레슨 자료를 살피고 있다.

“그럼 오늘 레슨 끝나고 멤버들 다 같이 가볼까요?”
“그거 좋네요! 멤버들끼리 우애도 다질 겸!”
우즈키가 제안했고 나나가 덥썩 물었다.
“슈크림도 있으려나.”
미호도 긍정적인 반응.

일이 귀찮아졌다. 안즈는 곁눈질로 미쿠에게 신호를 보냈지만. 미쿠는 그저 안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릴 뿐이다. 결국, 레슨이 끝나면 멤버들끼리 모여서 가기로 약속이 정해졌다.
안즈를 제외한 멤버들 전원이, 심지어 미쿠마저 기대하는 모양인지 레슨 내내 기운차 보였다.
오늘 레슨은 그런 식으로 종료.

“좋은 느낌으로 스타트를 끊었군.”
트레이너는 레슨 결과가 만족스러웠는지 오늘 레슨을 평가하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자, 오늘은 그럼 푹 쉬고, 다들 목 관리 잊지 마라.”
트레이너가 레슨실에서 퇴장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짐 같은 것도 다 가지고…….”
“어차피 갈아입은 다음에 프로듀서 씨께 보고해야 하니까 사무실에 그대로 모여서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우즈키와 나나가 계획을 세우는 도중에 레슨실 문이 열렸다. 트레이너가 뭘 놔두고 갔나 했지만 들어온 건 프로듀서였다. 일이 끝나서 레슨을 다시 보러 온 것 같다.

“어라? 어디 갑니까?”
프로듀서가 지금 대화를 들었나 보다.
“조금 이따가 끝나고 나서 도넛 카페에 가기로 했어요!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이요.”
우즈키가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오, 좋네요. 거기는 저도 관심이 있었는데. 여러분만 괜찮다면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물론 대환영이에요!”
“어……. P쨩도 같이 가?”
미쿠가 조금 움찔거렸다.
“앗, 미안. 역시 끼어들긴 좀 그러나?”
프로듀서도 미쿠처럼 움찔거렸다. 미쿠와 프로듀서가 서로 시선을 미묘하게 피했다. 안즈는 그걸 눈치챘다. 다른 아이들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미쿠는 유이 때문에 프로듀서와 함께 행동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다른가 보다.

“역시 미쿠는 일이 있어서 못 가겠어.”
“어? 아까는…….”
“일정이 겹쳐서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냐. 먼저 갈아입으러 갈게.”
미쿠는 우즈키가 의아해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프로듀서가 머쓱한 얼굴을 조금 주무르다가 말했다.

“미쿠……씨는 어쩔 수 없지만 오늘은 제가 쏠게요.”
“와아, 진짜요?”
“정확히는 법인 카드가 쏘는 거지만요. 영수증만 제대로 챙기면 문제없어요.”
“우왓, 눈부셔! 이게 바로 지구의 과학력인가요!”
“프로듀서 씨가 정말 든든해 보여요!”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떠들썩해졌다. 프로듀서가 상당히 들떠 보인다. 마치 침울한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인 양. 안즈는 거기서 한 발자국 떨어져 미쿠가 지나간 자리를 응시했다.

도넛 카페에선 이런저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다 보니 그런 시시껄렁한 화제가 의외로 길어져 섭취한 도넛 양도 자연스럽게 증가. 저녁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쓸데없이 배를 채우고 말았다.

조금 후회가 되지만 저녁 먹기도 귀찮으니 오히려 잘 됐나.
안즈는 현관문을 열었다. 반겨주는 소리는 여전히 없다. 혼자 사니까.

신발을 벗고, 현관 근처에 너저분하게 널브러진 옷가지를 발로 대충 치워 길을 만든다. 아침에 갈아입고 나서 아무렇게나 팽개친 옷이다.

부엌에서 물 한 컵 마신 다음에, 욕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그대로 방으로 직행. 가방에서 토끼 인형만 꺼내 침대에 대충 던지고 침대에 다이빙. 안즈는 인형을 다리에 끼우고 오늘 하루를 회상했다.

프로듀서의 동창들, 레슨, 프로듀서와 미시로 상무의 또 다른 과거, 미쿠가 프로듀서를 피한 것, 도넛 가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 등등…….

오늘은 참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 많은 일을 어떻게 버텼나 싶기도 하다. 안즈는 10분 정도 뒹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편에 놔둔 가방에서 안무 표를 꺼냈다.

다시 침대로 귀환. 안즈는 안무 표를 천천히 훑어봤다. 이미 다 외운 내용이지만 혹시나 놓친 게 있을까 봐 다시 한 번 정독.

안무 연습은 내일부터 들어간다. 안무 표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으므로, 제대로 배우는 건 내일 연습 때. 아이돌의 무대는 노래와 춤이 함께해야 완성된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레슨은 내일부터 시작이다.

안즈는 안무 동작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으음, 왠지 모르게 뭔가 팍하고 오질 않네…….”
안무 표의 딱딱한 그림으론 상상의 한계가 있다. 안즈는 안무 표를 침대 밖으로 던졌다.
“뭐 없을까……. 뭐 없을까…….”
내일 전까진 예습해두고 싶다.

안즈는 침대에서 뒹굴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그러다가 안즈의 발이 침대 근처의 책장을 건드렸다.

책장에 비스듬히 끼워뒀던 PC 소프트웨어 패키지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 V3. 전자 음악 제작 프로그램.

전에 보컬로이드에 관심이 생겼을 때 구매했다가 귀찮아서 설치조차 하지 않은 물건이다.
안즈는 그걸 멍하니 보다가 그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다른 소프트웨어의 존재를 떠올렸다.

안즈는 컴퓨터 책상으로 달려갔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를 뒤졌다. 예전에 하츠네 미쿠 소프트웨어와 같이 사용하려고 설치한 프로그램이 있다.

MikuMikuDance. 약칭 MMD.
3D 캐릭터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보통 보컬로이드 음악의 PV를 제작할 때 사용한다. 실제 사람이 뮤직비디오에서 춤추는 것처럼 3D 모델링을 춤추게 할 수 있다.

안즈는 프로그램 창을 띄웠다.
MMD 사용 방법은 예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강좌 페이지를 돌아다니면서 익혔으므로 문제없다.
안즈는 이걸로 안무 표의 안무를 구현하기로 했다. 입체로 보면 이해하기 더 쉬울 테니까.
안즈는 프로그램을 조작했다.

6월 23일

오늘은 C5 유닛 결성을 발표하기 위한 밑 작업에 들어가는 날이다. 멤버들이 나뉘어서 각각 다른 방송에 출연, 방송 끝에 중대발표를 예고하는 식으로 복선……. 시청자들이 흔히 말하는 떡밥을 뿌릴 예정이다.

안즈와 우즈키, 나나, 미호와 미쿠 이렇게 세 조로 나뉘어 행동을 개시했다.

“공을 들여서 준비하네.”
“시간이 촉박하지만 할 건 해야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전략은 정말 중요하니까.”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며 멤버들을 현장으로 보냈다. 프로듀서는 다른 업무가 있어서 현장에 동행하지 못한다.

우즈키와 안즈는 적절한 시간에 촬영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둘은 현장을 돌면서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스태프들 모두 우즈키와 안즈의 인사를 기쁘게 받고, 또 기쁘게 돌려줬다.

전에 유이 토크쇼의 스태프들하곤 반응이 180도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니 당연한 거지만.
안즈는 출연진 대기실로 가려다 먼저 온 다른 출연자가 현장을 둘러보는 걸 발견했다.

출연자 정보는 이미 들었기에 안즈는 그 출연자가 코시미즈 사치코라는 걸 바로 알아봤다. 14세 자의식과잉 큐트 계열 이미지로 활동하는 아이돌. 안즈는 사치코와 얽히면 귀찮아질 것 같아 못 본 척하려 했으나, 우즈키가 사치코를 발견해버렸다.

우즈키는 사치코와 구면인지 사치코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사치코 쨩, 안녕하세요!”
“어라? 우즈키 씨? 안녕하세요. 우즈키 씨는 운이 좋네요. 오늘도 귀여운 저하고 같이 일을 하니까요. 아, 그쪽이 후타바 안즈 씨?”
사치코가 우쭐거리면서 안즈에게 말을 건넸다. 안즈에 관해서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안즈는 사치코와 정식으로 통성명을 나누었다. 사치코가 말하길 전에 아이돌 필살 전력 어필 대전 방송을 봐서 안즈를 안다고 한다.

“안즈 씨도 꽤 귀여웠어요. 저보단 아니지만요!”
“사치코 쨩은 굉장해요! 저도 사치코 쨩한테 방송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후후, 저는 귀여우니까요!”
“주로 버라이어티 방송에서요!”
“윽, 그, 그렇죠.”
이런 잡담을 나누면서 셋은 대기실에 도착했다. 대기실에 있던 선객이 셋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즈가 들은 사전 정보에 따르면 이름은 카미야 나오. 안즈는 나오와 통성명을 나누었다. 사치코 때처럼 나오는 우즈키와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다.

“우즈키하곤 어째 자주 보는 것 같네.”
“그런가요?”
“저번 촬영 때도 봤으니까.”
나오와 우즈키가 살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나오 씨, 다른 한 분은 아직 안 오셨나요? 5명 촬영으로 아는데요?”
사치코가 나오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나갔어. 뭐하러 나갔는지는 잘 모르겠네.”
그때 문이 열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사람이 이야기에 딱 맞춰서 들어왔다.
오늘 출연진 목록은 후타바 안즈, 시마무라 우즈키, 코시미즈 사치코, 카미야 나오, 그리고…….

“오, 왔다. 왔어.”
“안녕하세요! 시마무라 우즈키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기품 있는 분이시네요! 그래도 큐트력은 제가 더 강하지만요! 안녕하세요, 코시미즈 사치코입니다.”
나오, 우즈키, 사치코에 이어 안즈도 말을 꺼내려다가……. 굳었다.
오늘 5번째 출연자는……. 지금 들어온 저 사람이 아니다! 안즈가 받았던 자료에는 저 사람의 이름 한 글자도 없었다.

안즈는 지금 들어온 저 사람을 알고 있다. 예전에 자료로 잠깐 본 거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잊을 리가 없다. 지금 시점에선 잊어서도 안 되는 얼굴이다.
안즈는 저 사람의 책략에 당해서 오다이바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거니까.

아이카와 치나츠. 오오츠키 유이의 소속사 동료.
아이카와 치나츠가 안즈 쪽으로 온다.

안즈는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경계의 자세.
치나츠는 그에 개의치 않고 그저 묵묵히 다가온다.

“아이카와 치나츠.”
치나츠는 가볍게 자기소개를 하곤 안즈를 내려다보았다. 키 차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치나츠가 안즈를 내려다본다. 치나츠는 안경을 고쳐 썼다. 안경알 너머로 모든 걸 꿰뚫어보는 듯한 묘한 시선이 안즈에게 쏟아졌다. 치나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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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그다지 기대 안 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머리를 최대한 굴려봤는데 실패한 물건이 나와서요. 아무튼 내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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