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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X 아이돌 마스터] 두 송이의 꽃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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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0, 2015 04:58에 작성됨.

원작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혼고 아키요시
아이돌 마스터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보통 탐정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중절모를 쓰고 시가를 물며 사건 해결에 앞장서는 하드보일드한 해결사를 떠올릴 수도 있고, 안락의자에 앉아 마치 예언하는 것처럼 사건의 전모를 술술 엮는 선지자를 떠올릴 수도 있고, 사명감이나 정의, 그리고 의무 같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자기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괴짜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인간관계에 질척하게 얽힌 악의를 찾아내거나, 거대한 악을 상대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공정해야 할 공익에 숨어든 비리를 밝히는 등 멋들어진 이미지를 띄고 있다.

이게 바로 보통 탐정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이며, 또한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창작물에서 답습하여 이어지는 인상이다.

하지만 현실의 탐정은, 대부분의 진짜 탐정은 이런 진지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태반이다. 불륜 조사, 실종된 애완동물 찾기……. 이런 거면 오히려 건실한 업무다. 어떨 땐 퀵 서비스나 심부름센터 같은 취급을 받을 때도 있다.

리얼과 허구의 괴리는 이다지도 크다.
현실은 환상을 가차 없이 쳐부순다.

게다가 이런 현실적인 사정도 이미 대중에 많이 알려진 편이라 현실의 탐정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하고 환상을 품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그래서 오히려 소설, 드라마, 영화 등에 나오는 과장된 탐정의 모습을 비현실적이라며 등한시하는 시선도 있다.
현실감과 비현실감.
진짜와, 가짜.

하지만 그걸 무조건 가짜라고 단정 짓긴 이르다.
탐정 대부분은 현실적인 업무를 보고 있지만, 영화 같은 하드보일드한 삶을 넘어 심지어는 비현실의 영역에 한발 걸친 인물들도 소수 존재하니까.
온갖 오컬트적 현상의 성지라 불리는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터를 잡은 쿠레미 탐정 사무소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 운영하는 곳이다.

쿠레미 탐정 사무소는 특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의뢰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쿠레미 탐정 사무소의 소장, 쿠레미 쿄코는 그러한 의뢰도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분실물 수색 의뢰부터 오컬트, 도시전설의 해명까지. 쿠레미 쿄코는 ‘안심과 실적의 탐정 사무소’란 별칭을 내세우며 온갖 의뢰를 받고, 또, 해결한다.
이렇게 폭넓은 의뢰를 받고 있지만, 쿠레미 탐정 사무소의 특기 분야는 따로 있다.

시대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생활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분야. 종이와 잉크의 영역에서 회로기판과 전기신호로 영역을 옮긴 가상현실이 바로 그러하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범죄도 같이 발전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범죄는 근절되지 않는 법이니 시대에 맞춰 살아남는다.

언변을 무기로 사람을 등쳐먹던 사기꾼들도 편리한 수단인 익명을 손에 넣어 네트워크로 진출하였으며, 다른 재주 없이 금고의 금괴를 훔칠 줄만 아는 강도는 도태되고 컴퓨터 해킹으로 통장 잔액울 불릴 줄도 아는 강도가 강도계의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도태와 진화. 이건 바로 이 세상의 진리다. 그러니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그저 범죄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리고 진화한 범죄에 맞서는 진화한 탐정도 마찬가지.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관한 새로운 해결법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쿠레미 탐정 사무소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기에 쿠레미 탐정 사무소는 업계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유명인사가 의뢰를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늘처럼 유명 아이돌 사무소에서 의뢰하는 경우도.

시간은 12시 55분. 점심시간이 끝나기 조금 전, 쿄코는 쿠레미 탐정 사무소의 소장석에 앉아 커피 잔을 비우곤 뜬금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
“조수 군, 요즘 아이돌에 관해 흥미가 있나?”
쿄코의 조수, 아이바 아미는 소파에 앉아 식후 디저트인 비스킷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대는 바야흐로 아이돌 전국시대라. 예전보다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하더군. 지역별로 아이돌이 생기는 시대이니 당연하다고나 할까.”
“그런가요?”
그때야 비스킷을 목에 넘긴 아미가 쿄코의 말을 받았다.
아미는 티슈로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닦은 후에 봉긋 솟은 가슴에 묻은 부스러기마저 탈탈 털었다.

“학교에선 아이돌에 관한 화제를 많이 들었지만, 딱히 흥미가 있는 건 아니라서 그런 사정은 몰랐어요.”
“흠, 그런가.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일은 알아두는 게 좋으니, 요즘 시대에 뭐가 유행하고 있는지는 숙지하는 게 좋을 게다. 후훗……. 자, 그럼 TV를 틀어볼까? 조수 군, 내기 하나 하지 않겠나?”
“내기요?”
“그래. 지금 TV를 틀면 어떤 방송이 나올지 알아맞혀 보는 거야. 물론 오늘 어떤 방송이 나오는지 편성표는 찾아보지 않으마. TV를 끄기 전 마지막으로 고정한 채널은 전문 채널이 아니야. 그러므로 한 종류의 방송이 고정되어 나오진 않지.”
“그러면 음……. 이 시간이면 정오 뉴스 같은 게 아닐까요?”
“그래? 그럼 난 아이돌 방송으로 걸지. 좋아, 그럼 내기의 대가를 정해볼까?”
아미는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쿄코는 아미의 불편한 기색을 감지했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기라고 했잖아. 내기는 대가가 걸려야 제맛이지. 내가 이기면 조수 군에게 새로 개발한 블렌드 커피를 대접하마. 어때? 구미가 당기지? 어제 개발한 새로운 레시피로 만든 커피다.”
순간 소파 앞 테이블이 시끄럽게 덜컥거렸다. 아미가 몸을 움찔거린 탓에 다리에 걸려 움직인 것이다.
“왜 그러지?”
쿄코가 의아해하자
“저, 저기. 그건 제가 너무 득을 보는 거잖아요? 오히려 상이죠!”
아미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위험하다. 아미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몸으로 몇 번이나 겪은 생명의 위협. 여태까지 아미의 혀로 직접 느꼈던 절망스러울 정도로 괴이한 맛의 소용돌이. 그 맛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혀끝에서 되살아나 춤췄다.
쿠레미 쿄코가 탄 커피는 끔찍하다. 단순히 맛이 없는 수준이 아니다. 정말 끔찍하다. 세간에선 심각한 요리치를 연금술사에 빗대어 망금술사라고 표현하던데, 쿄코가 바로 그런 부류다.

마치 석탄을 금으로 바꾸듯이 커피를 수수께끼의 괴이한 액체로 바꾸는 정도의 능력.
이건 이능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이 쿄코의 커피를 입에 대면 로마 시대의 분수대 조각상처럼 코와 입으로 커피를 분출하는 건 기본이요, 심하면 환각을 보거나 기절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쿄코의 커피는 강력하고 끔찍하다.

“그럼, 조수 군이 이기면 커피를 대접하기로 할까?”
“예?!”
“왜 그러지?”
“아, 아뇨…….”
내기에 이기고 벌칙게임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내기에 지고 벌칙게임을 받을 것인가.
아미는 결국 소극적인 저항을 포기했다.

“대신 내가 이기면 의뢰를 부탁하도록 하지.”
그건 항상 받고 있잖습니까. 아미는 말을 삼켰다. 말을 꺼내서 이야기가 잘못 흘러갔다간 상황이 쿄코의 새로운 레시피1 vs 쿄코의 새로운 레시피2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미는 리모컨을 눌러 TV를 켰다.

『안녕하세요! 하기와라 유키호입니다! 신곡 Kosmos, Cosmos 잘 부탁합니다!』
TV 화면에선 청초하고 예쁘게 생긴 소녀가 음반을 두 손에 들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배경이 CG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서 그런지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듯한 미소였다.
“만세! 이얏호! 해냈다!”
아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쾌재를 불렀다.

“‘EDEN에서 함께’라는 아이돌 방송이군. 그건 그렇고, 좋아하는 아이돌인가? 아이돌엔 관심 없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 아뇨! 그게 지금 팬이 됐어요! 오늘부터 팬 시작했어요!”
“그런가, 이렇게 첫눈에 팬이 되는 경우도 있군. 첫눈에 반한 건가? 뭐 그건 그렇고 오늘 편성표도 저번 주와 달라지지 않았나 보군.”
저번 주?
아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쿄코가 씨익 웃었다. 그때서야 아미도 깨달았다. 쿄코가 모른다고 한 건 오늘 편성표. 보통 방송국 편성표는 개편 시기가 아닌 이상 주마다 변동 사항이 거의 없다.
대가 조건을 바꾸길 잘했다. 하마터면 쿄코의 커피를 맛볼 뻔했으니까. 아미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내가 이겼으니 대가를 받도록 할까? 조수 군. 이제 일할 시간이다.”
쿄코가 선언하듯 말하자 사무소의 시간이 딱 1시 정각을 맞이했다, 그와 동시에 사무소의 문이 열렸다. 마치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쿄코가 소장석에서 일어났고, 아미도 리모컨을 조작하여 TV를 껐다. TV에서 흘러나오던 가요소리가 소거되면서 순간적인 정적을 불러왔다.

마치 무대에 올라온 다음 타자를 위해 전 타자가 퇴장하듯 정적은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들의 발소리에 밀려났다.
하나는 성인 남자의 투박한 구두 소리였고, 또 하나는 얌전하며 자그마한 소녀의 구두 소리였다.

그리고 한 쌍의 인사 소리가 이어졌다. 그중 하나를 듣자 아미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익숙하진 않지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느낌.

사무소에 들어온 인물들은 수트를 차려입은 청년과 선글라스와 니트 모자 등으로 변장한 소녀였다. 소녀 쪽은 체격으로 보아 아마 아미와 동갑일까, 소녀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고 탐정사무소를 둘러보았다. 소녀의 어깨는 움츠려 있었으며 시선도 꺼질락 말락 가늘었고 안색도 다소 핏기가 가셔 창백해 보였다.

그래서 아미는 그 소녀가 조금 전까지 TV에 나왔던 아이돌이라는 걸 알아보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소녀와 청년은 쿄코의 안내를 받아 아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쿄코가 아미 옆에 앉자 이쪽과 저쪽이 자연스레 마주 보는 형태가 됐다.

“저기…….”
소녀가 목소리를 짜냈다.
쿄코가 시선으로 응수하자 소녀가 말을 이었다.
“남자 분은 안 계시죠?”
“저와 저의 조수 둘 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입니다.”
쿄코의 대답을 듣자 소녀는 움츠린 어깨를 부드럽게 풀었다. 창백했던 안색에도 혈색이 돌았다.

“저는 남자가 껄끄러워서요…….”
“옆에 계신 분은 남자 분 아니신가요?”
“프로듀서는 괜찮아요. 오랫동안 같이 일했으니까요.”
쿄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혹시나 제가 의뢰인에 대해 잘못 파악했나 싶었습니다. 그럼 확인 차, 그리고 제 조수에게 소개 차 여쭤보겠습니다. 당신이 바로 의뢰인이신 하기와라 유키호 씨 맞으시죠? 765 프로덕션에서 아이돌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은 하기와라 유키호 씨의 담당 프로듀서분이시죠?”
“그렇습니다. 유키호만 담당하는 건 아니지만요.”
청년, 프로듀서는 그렇게 대답하며 쿄코에게 명함을 건넸다.
쿄코는 명함을 받곤 슬쩍 훑어봤다. 765 프로덕션의 이름과 연락처, 프로듀서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확인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의뢰 이야기로 들어갈까요? 내용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만…….”
쿄코가 그렇게 운을 떼자 프로듀서가 서류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화면을 띄웠다. 태블릿PC 화면에 어떤 사진이 떠올랐다. 어떤 남자를 가면을 쓴 어떤 여자가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얼굴을 보아 하니 남자는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고 여자는 남자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를 억지로 안고 있었다.

정확히는 사진이 아니라 스크린샷이다.
남녀가 자리한 푸르고 밝은 사이버틱한 공간이 이 화면이 사진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있다.
푸른색의 바닥과 반투명한 인공 건조물, 배경에는 온갖 전광판들이 공중을 유영하고 있다. 또, 드문드문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한 사람 그림자도 보인다.

현실에선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배경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배경에 남녀만 합성한 것처럼 덩그러니 현실감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배경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다. 이 사진, 아니 스크린샷이 찍힌 게 어딘지 이 자리에 모인 인물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인류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물질세계의 모든 감각을 전뇌 공간에 재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 데이터 또한 전뇌공간에 완벽하게 소환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 모든 게 요즘 시대의 IT 기술을 주도하는 카미시로 엔터프라이즈의 업적이다.
스크린샷의 배경은 바로 카미시로 엔터프라이즈의 역작, 전뇌공간 EDEN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에 어떤 남녀가 찍혀있다.
EDEN에선 사칭 사기 등의 전뇌범죄 방지 목적으로 아바타를 임의로 바꾸거나, 신원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일반적인 유저는 등록된 아바타 그대로 EDEN을 이용한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EDEN에서 신원을 가릴 수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방법만 그렇다 할 뿐이지,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 즉 위법적인 방법으론 가능하다.
아미와 쿄코는 여자 아바타가 쓴 가면을 잘 알고 있다. 저 가면은 해커들이 신원을 가릴 때 자주 쓰는 가면이다.

여자의 정체는 해커인가?
아미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쿄코가 의외의 부분을 캐냈다.

“이건, 누가 멀리서 몰래 찍은 스크린샷이군요?”
쿄코의 말에 프로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쿄코의 말대로 스크린샷이 좀 비틀어진 각도로 찍혀있다. 스크린샷의 주인공인 남녀의 사각에서 찍힌 스크린샷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찍은 걸까? 아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차에 프로듀서가 스크린샷을 다음 장으로 넘겼다.
아미는 다음 스크린샷을 본 다음 유키호의 얼굴을 보고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크린샷에는 가면을 쓸 준비를 하는 유키호가 찍혀 있었다.

“여기 찍힌 건 유키호가 아닙니다.”
아미와 쿄코의 의문에 프로듀서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래서 쿄코는 원래 물어보려 했던 말을 거두고 다른 말을 꺼냈다.
“이것도 다른 사람이 몰래 찍었군요. 각도가 똑같습니다.”
“이런 스크린샷이 익명으로 여러 장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보내더군요. 상응하는 금액을 내놓지 않으면 이걸 언론에 뿌려버리겠다고요.”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며 사진을 계속 넘겼다. 수십 장의 스크린샷이 태블릿 PC에 빠르게 지나갔다. 하나같이 가면을 쓴 유키호가 남성에게 들이대는 스크린샷이었다. 여러 날, 여러 장소에서 찍은 건지 사진 속의 남성은 제각각 다른 인물들이었다.

스크린샷을 찍은 사람은 파파라치인가? EDEN이 일상생활에 녹아든 만큼 유명인들의 EDEN 생활을 노리는 파파라치도 생겼으니까.
쿄코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이 자리에 있는 인원은 모두 쿄코가 생각을 정리하길 기다렸다. 1분 정도 지나고 나서 쿄코가 흠-하고 짧고 가벼운 숨을 내쉬며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스크린샷에 찍힌 인물이 하기와라 유키호 씨가 아니라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위조 아바타일 경우, 이 경우엔 하기와라 유키호 씨의 신체 데이터를 손에 넣는다면 가능합니다. 게다가 미디어 노출이 많은 아이돌인 만큼 위조 아바타 작성은 쉽겠죠. 사진이야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뜨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계정 사냥. 이건 요즘에 많이 들어보셨죠? 해커들이 다른 이용자들의 계정을 가로채는 행위입니다. 꽤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서 유명한 범죄입니다.”
쿄코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마치 떠보듯이 프로듀서의 눈을 의미심장하게 응시했다. 그러자 프로듀서가 조금 움츠러들며 쿄코의 시선을 회피했다. 이내 쿄코의 시선은 유키호를 향했다.

“하기와라 유키호 씨, 이 스크린샷에 있는 게 정말 당신이 아닙니까?”
“아……. 그게…….”
유키호가 말끝을 흐린다.

“이런, 추궁하는 게 아닙니다. 수사에는 정보가 필요하니까요.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가능성은 이렇습니다. 저기 있는 인물은 유키호 씨가 아니지만, 아바타는 유키호 씨의 것이 맞다. 그럼 계정 사냥인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최근에 EDEN에 접속했으니까요.”
아미는 조금 전에 본 방송을 떠올렸다. EDEN을 배경으로 찍은 방송. 그 방송은 방영과 4일 정도의 텀을 두고 찍힌다고 한다.

“이 대량의 스크린샷은 여러 날에 걸쳐 찍은 것 같고…….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는 틀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조 아바타라고 단정 짓긴 이릅니다. 진짜 위조 아바타였다면 분명 더 과격한 스크린샷을 보냈을 테니까요. 스크린샷에 찍힌 건 기껏해야 남자의 팔짱을 끼거나 뒤에서 껴안는 등의 간지러운 수위뿐. 그러므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오히려 이쪽. 즉, 빼앗기지 않은 아바타가 멋대로 행동을 한 것.”
“대, 대단해요…….”
유키호가 감탄했다.

“별거 아닌 추리입니다. 아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방금 전에 하기와라 유키호 씨가 출연한 방송을 봤으니까요. 사실 이 추리엔 허점도 많습니다만……. 유키호 씨의 반응을 보아하니 얼추 맞았나 보군요. 그럼 이제부터 의뢰 내용을 자세히 듣도록 할까요? 테스트는 끝난 것 같으니까요.”
쿄코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프로듀서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유키호와 눈을 맞췄다. 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당신이 진짜로 믿고 맡길 수 있는 탐정인지 알고 싶었어요.”
프로듀서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쿄코는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다.

“이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 접하는 상황이죠. 괜찮습니다. 이해하니까요. 의뢰인이 예능 쪽 관련자인 만큼 실패는 의뢰인의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니까요.”
탐정을 시험하려 드는 의뢰인들에겐 이미 익숙하다. 오히려 프로듀서와 유키호는 가벼운 축으로, 심하면 가짜 의뢰까지 들고 오는 의뢰인까지 있으니까.
처음부터 제한된 단서만 나열하고 그 단서만으로 정답을 맞히게 하는 퀴즈 같은 방식은 오히려 귀여운 축이다.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유키호한테 메일로 협박 메시지가 왔습니다. 스크린샷과 함께요. 말씀드렸다시피 금전 목적으로요. 조작 스크린샷인지 확인을 해봤습니다만 조작 스크린샷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프로듀서는 껄끄러운 듯 잠시 목 주변을 긁었다. 옆에 앉은 유키호의 시선이 낮아졌다.

“피해를 본 본인이 이 스크린샷이 조작이 아니란 걸 증명했으니까요.”
“호오, 그 말씀은?”
“유키호 아바타의 EDEN 로그인 기록이 스크린샷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괜찮습니다. 괴력난신이니 불가사의니 하는 걸 해명하는 의뢰에도 익숙하니까요. 오히려 고찰 거리로썬 최적이죠. 그러니 염려 마시고 들려주세요.”
쿄코가 부드럽게 다독이자 프로듀서는 결심을 굳혔는지 심각하게 이야기를 이으려 했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말을 잇기 전에 유키호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기어들어가듯 작은 소리였지만 자리에 앉은 이들의 귀를 주목하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단편적이지만, 기억……하고 있어요. 이 상황들…….”
유키호의 말은 의외의 말이었다. 유키호가 직접 스크린샷 속의 남자들에게 달라붙은 건가? 아미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4명 중 깜짝 놀란 건 아미 혼자. 아미는 혼자 놀란 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곤 표정관리를 했다.
“본인의 의사로 한 행동인가요?”
쿄코가 물어보자 유키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게…….”
“어떤 이에게 협박당해서 억지로 한 겁니까?”
이번에도 유키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꿈에서…….”
유키호는 말을 끝내 맺지 못한 채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쿄코도 잠시 입을 다물고 머리를 굴려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 여쭤볼 말이 있습니다. 하기와라 유키호 씨는 혹시 몽유병을 앓고 계십니까?”
“아뇨. 유키호는 몽유병이 아닙니다. 사무소 차원으로 보증할 수 있어요.”
“네, 몽유병은 없어요. 나, 남성공포증은 있지만요……. 일할 때는 괜찮아요. 일할 때는 일에만 집중해서……. 이게 많이 나아진 거거든요. 그래도 사적으로 남자랑 접촉하면 힘들어요…….”
“아바타는 유키호 씨 본인이 아닌 게 확실하군요. 그건 그렇고 정말 기묘합니다. 본인은 로그인하지 않았지만 기억이 있다. 로그인 기록도 있다. 몽유병은 아니다…….”
쿄코는 턱을 괴었다. 중얼거리는 분위기는 심각했지만 얼굴은 평소와 같은 마이페이스를 유지했다.

“이상한 의뢰란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의지할 곳이 여기밖에 없어요. 경찰은 상대를 해주질 않고 카미시로도 자기네들 시스템엔 결함이 없다면서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부탁합니다. 사건의 범인을 꼭 찾아주세요!”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쿄코는 손짓으로 프로듀서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오히려 해결할 보람이 있는 사건이군요. 의뢰를 받겠습니다. 부디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마음 편히 가지시길.”

프로듀서와 유키호가 돌아간 직후, 쿄코는 소장석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조수 군, 얼마 전에 받았던 의뢰 기억하고 있나?”
“특정해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몰라요. 그래도 뭐……. 어떤 사건을 말씀하시는지 알겠네요. 그 사건 말씀이시죠?”
“조수 군, 그 사건이라고만 하면 몰라.”
“쿄코 씨…….”
쿄코 나름대로 한 농담이었는지 쿄코가 피식 웃었다. 아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BAKU 리본 서비스와 관련된 사건 말이에요.”
BAKU 리본 서비스. 이용자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탈퇴하거나, 이용자 본인이 죽었을 때를 대비하는 서비스로,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프로그램이 이용자의 계정에 달라붙어 이용자가 네트워크에 남긴 데이터를 긁어모아 완전히 소거한다.
이 서비스의 핵심이자 작동 원리인 BAKU 프로그램은 이용자의 정신 데이터의 해마 부근에 있는 비활성화된 부분, 즉 무의식적인 단기 기억에 접촉할 수 있는데, 이 기능을 악용한 사건이 얼마 전에 일어났고, 아미와 쿄코, 그리고 또 한 명이 그 사건을 멋지게 해결했다.

『나 불렀어?』
쿄코가 자판을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난데없이 모니터에서 팝업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팝업창에서 방해꾼이 떠오른다. 고양이처럼 생긴 기묘한 생물이었다. 모습은 마치 고양이의 머리만을 찐빵처럼 만든 것 같이 기묘하면서도 귀엽게 생겼다.

이 생물체에 대해 모르는 이가 본다면 잘 만든 3D 아바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팝업창 안에 있는 생물체는 단순한 3D 텍스처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아바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생물체에 대해 아는 이가 봐도 단순한 프로그램이라고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생물체는 현재 인간사회에선 해커들이 사용하는 A.I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이 이야기의 핵심, 전뇌공간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주민.
디지털 몬스터.
약칭 디지몬.
팝업창 안의 디지몬은 그 중 와냐몬이라는 종류로, 쿄코는 그 와냐몬을 피트라고 부르고 있다.

“아니, 부르지 않았어.”
『그래? 부른 느낌이 들었는데.』
쿄코는 팝업창을 화면 한구석으로 옮겼다. 피트가 팝업창 너머로 쿄코의 작업을 구경한다.
『뭐하는 거야?』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중이다. 저번 사건의 당사자에게.”
쿄코는 그렇게 말하며 메일창의 송신 버튼을 클릭했다.

“저번 사건 때 알게 된 BAKU 프로그램 설계자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자문하는 메일을 보냈다. 이제 자문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면 되고…….”
아미는 저번 사건으로 알게 된 전문가에 대해 떠올렸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던 천재 소년이었다. 요즘엔 전뇌세계가 일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린 나이에 접해 어른들보다 더 빠르게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천재들도 많다.
『아까 그 아이돌이 한 의뢰야?』
“듣고 있었구나.”
『심심했으니까. 난 여기 인트라넷 바깥으론 나가지 못하고. 그건 그렇고 하기와라 유키호였던가? 제법 괜찮았지만, 역시 유우키 후유메 만하진 않네. 그녀만큼 대단한 아이돌은 못될 것 같아.』
피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유우키 후유메는 피트가 푹 빠져있는 아이돌이다. 시대를 풍미했단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히트한 아이돌이지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요즘 시대에 유우키 후유메를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은데.”
아미는 그렇게 말하며 그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다.
유우키 후유메는 수십 년 전의 인물이다. 요즘 인지도로 따지면 하기와라 유키호를 따라오지 못한다.
쿄코는 피트가 유우키 후유메에게 정열을 태우는 걸 보고 ‘공유할 수 없는 추억은 공감할 수 없다.’고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그 시대엔 그 시대의 아이돌이 있는 거고, 지금 시대에는 하기와라 유키호 같은 지금 시대의 아이돌이 있는 거겠지.”
쿄코는 그렇게 말했다. 피트는 쿄코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그 요즘 시대의 아이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까. 나갈 수는 없지만, 여기서도 조사 정도는 가능하니까 말이야.』
피트는 그 말을 끝으로 팝업창을 닫았다.

“자아, 그럼 이제 조수 군 차례로군.”
쿄코는 손가락을 으득거리며 풀었다. 타자를 쳐서 손가락이 굳은 걸 풀고 있는 것이리라.
“메일을 작성하면서 동시에 자료를 정리했어. 스크린샷에 있던 남성들의 인상착의와 남성들이 있던 장소를 정리한 리스트다. 지금 디지바이스로 전송했다.”
아미는 디지바이스를 확인했다. 아미의 디지바이스는 고글형. 아미는 고글형 디지바이스를 머리끈처럼 쓰고 있으므로 머리로 손을 올려 디지바이스를 조작했다. 디지바이스에 쿄코가 보낸 자료가 떠오른다.

“별로 없네요?”
“그만큼 많이 확인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번에 확인할 사항은 당시 하기와라 유키호의 아바타 상태다. 실제로 하기와라 유키호의 아바타를 조종하던 인물의 언동을 조사해줬으면 한다. 말버릇 같은 사소한 점이라도 좋아. 수사의 기본은 탐문수사. 알지? 전뇌탐정(사이버 슬루스).”
쿄코는 그렇게 말하며 피로를 푼 손가락을 비스듬히 기울여 아미를 가리켰다.

“기본적인 정보는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는다. 이게 탐문수사의 기본이지. 그리고 너는 그걸 전뇌세계에서 직접 해낼 수 있지. 즉 이 분야의 전문가다.”
“칭찬은 감사하지만 그렇게 띄워주셔도 아무런 보답도 안 나온답니다.”
아미는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우연히 얻은 능력이니까요.”
“우연이든 필연이든, 몸에 익히고 있는 이상 네 것이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야.”
아미는 TV에 가까이 다가갔다. 화면이 꺼진 TV에 아미의 모습이 비친다. 아미는 TV 화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미가 뻗은 손 너머로 무언가가 아른거린다. 보통 인간은 볼 수 없는 흐름이 아미의 손에 얽혀 마치 유혹하듯 손짓한다. 잔잔했던 파동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아미의 손을 건드린다. 마치 아미의 손을 잡을 기세로. 아미는 흐름에 손을 맡겼다.
그러자 마치 아미가 뛰어들 듯이, 아미의 몸이 그대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미의 시야에 현실과는 이질적인 통로가 보였다. 지금 아미의 몸은 어떤 통로를 유영하고 있다. 무척이나 불안정하면서도 무척이나 안정적이고 무척이나 거칠면서도 무척이나 부드러운, 현실 물질세계와는 다른 묘한 감각이 아미의 몸을 감쌌다.

통로의 정체는 디지털 웨이브로 이루어진 통로로, 아미는 지금 맨몸으로 디지털 공간을 지나고 있다. 물질세계에 몸이 묶인 평범한 인간은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묘기. 아미의 몸은 아날로그 물질세계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디지털세계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는 아미의 몸이 평범한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미의 몸은 물질세계와 디지털세계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반전뇌체다.
뼈와 근육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진짜 육신이 아니라서 이런 묘기가 가능하다.

아미의 시야가 슬슬 바뀐다. 배경이 파장의 모음에서 점점 형태를 갖춰간다. 현실과는 다른 사이버틱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에는 각종 디지털 정보가 기록된 단말들이 유영하며, 건물과 각종 장식물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 기묘한 색채를 띠고 있다.

이곳이 바로 전뇌공간 EDEN. 아미의 탐문수사 목적지다.
아이바 아미, 전뇌탐정은 EDEN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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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와 아이돌 마스터의 크로스 오버입니다.
사이버 슬루스의 세계에 765 프로덕션이 존재하는 설정이에요. 사이버 슬루스의 스토리 시점은 대강 챕터7에서 챕터8 정도로 잡았고,
아이마스 쪽은 사이버 슬루스 세계의 유키호와 프로듀서라는 느낌으로 적당히 잡았습니다.
전체 분량은 지금 4편 완결로 잡고 있는데 쓰다 보면 변동될지도 몰라요. 한편 더 늘거나 아니면 줄어드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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