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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을 원하기에[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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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3, 2016 21:44에 작성됨.

잠결에,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다.

 그 것이 전화 소리라는 것을 간신히 깨달은 하루카는,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았다. 침대의 근처다. 그 것을 깨닫고, 아직도 멍한 정신 상태에서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하야, 일어났어?」

 

 그 소리를 들었을 때, 하루카는 멍한 정신으로 왜 치하야를 찾는지 고민했다. 이 목소리는 분명히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때서야 그녀는 잠이 깼다.

 

「치하야? 아직 자고 있어? 얼른 일어나!」

 

 리츠코씨다.

 그녀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자각했다. 집이 아닌 것이다. 옆을 돌아보자,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치하야가 있었다. 햇살이 창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벌써 아침인걸까. 황급히 시간을 확인해보면 7시. 지나치게 늦은 시각은 아니라는 데에 안도한 하루카는, 조용히 치하야를 흔들어 깨웠다.

 

 “치하야쨩, 치하야쨩. 일어나봐, 전화왔어!” 

 

 어쩌자고 자신이 전화를 받았을까. 심각하게 후회하며 하루카는 눈을 뜨긴 했지만 아직 졸린 듯 눈을 부비대는 치하야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치하야는 전화를 받은 채 졸음에 취한 응답을 몇 번 하고선 수화기를 그대로 하루카에게 다시 건넸다. 그 모습을 보던 하루카는 수화기를 받아들어 내려놓고선 말했다.

 

 “슬슬 준비해야 하는 거야?”
 
“응...”

 

 잠에 한껏 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연인이 약간의 저혈압이 있다는 것을 하루카는 잘 알고 있었다. 아침이면 언제나 힘들어하는 그녀가 여태까지 잠이 거의 허락되지 않는 이 일을 해 온 것은 어찌 생각해보면 대단하다.
 
치하야는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하아, 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졸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온기와 아직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약간은 고집을 부려도 괜찮을 시각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하야는 다시 눈을 감고 하루카의 품에 파고들었다.

 

 “치, 치하야쨩?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치하야는 졸린 목소리로 응답했다.

 

“두 시간 뒤야... 그러니까, 좀 더 자게 해줘...”

“그, 그렇지만-”

“응, 30분 있다가 깨워줘, 하루카...”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당황하는 하루카를 내버려 둔 채 그녀의 품에 마음껏 기대어 그 온기를 만끽했다. 다른 무엇의 온기보다도, 훨씬 더 따뜻한 온기.
 
그것은 분명 자신의 마음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모두 거짓이어도 이 온기만큼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트리가 거리에 서 있고, 여기저기 반짝이는 전등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나무들이 녹색의 잎 대신 전등을 흔들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지만, 눈은 오지 않았다. 이번 겨울은 진짜로 눈이 오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저어, 미안하지만, 히비키쨩. 나 먼저 집에 가볼게.” 

“어? 아직 11시인데 벌써 가는거야?” 

“으응...”

 

 크리스마스에는, 가게들도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따라 바쁘다. 그에 원랜 늦게까지 일할 생각이었던 하루카는, 예상외의 일정 차질로 인해서 집에 빨리 돌아가 볼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치하야의 공연 티켓을 어떻게든 사 보려고 열심히 일했던 탓에 아르바이트 장소의 사장님도 쉽게 넘겨주었다는 것은 다행일 것이다.

 

“하아- 그러고 보니 벌써 크리스마스지. 하루카도 가는거야?"

“응? 어딜 말이야?”

“왜, 그... 키사라기 치하야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하루카도 팬이었지?”

 

그 말에 하루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은, 아르바이트 장소에선 팬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 중에 만난 친구조차 그렇게 오해하고 있었으니까. 오해하게 만든 건 자신이었지만.

 

차마 연인이라고 말할 순 없잖아?
 
이상한 녀석 취급당할 게 불보듯 뻔한 일을 알아서 저지르는 성격은 아니었다.

 

“응... 일단, 갈 생각이지만. 어떻게 될 지 모르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니? 마지막 콘서트라는데.” 

“그게, 좀... 문제가 생겨서.”

 

 그렇게 말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긴 채 미소 짓는다. 

21일, 그 날 이후 3일이 훌쩍 지나, 24일이 되었지만 치하야가 보낸다고 했던 콘서트 티켓은 오지 않았다. 치하야가 잊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주소가 잘못 되어 갔다거나, 전산상의 오류일까- 까지 생각해봤던 하루카는 섬뜩한 기분에 몸서리치곤 그런 생각은 그만두자고 결심했었다.

 

그렇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히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티켓이 오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생각해보니 어쩐지 울고 싶어지는 기분에, 하루카는 고개를 내젓곤 말했다.

 

“그 일 때문에 조금 일찍 가는 거야. 그럼, 내일 모레 보자. 먼저 갈게!” 

“아아, 그래! 조심해서 가라고!”

 

 바쁘게 그렇게 아르바이트 장소를 나서는 하루카의 뒤로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래 예수가 태어난 날이라는 크리스마스는, 지금은 연인들의 날이 되어있다. 길거리마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눈부신 조명. 추워지는 온도일수록, 서로 따스하게 기댈 수 있는 날씨. 하지만 곁에 있을 사람이 없는 하루카로서는 쌀쌀할 뿐일 날씨였다.

거리를 온통 물들인 주홍색의 불빛.
 
작년에는, 그녀와 함께였는데. 
작년뿐만이 아니라, 그 전에도, 쭉. 그녀를 알게 된 이래 계속, 이 날은 그녀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곤 했었다.

 

거리에 내걸린 TV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하루카는 TV의 화면을 통해 나오는 치하야의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마지막 콘서트에 대한 인터뷰 내용. 잠시 그 모습을 보던 하루카는 그게 이틀 전에 나왔던 연예계 뉴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의 연인을, 마치 먼 거리에 있는 사람처럼 멍하니 바라본다.

그 소식에 우는 팬들의 모습이 잡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루카는, 갑작스레 주머니 안에서 울려오는 진동에 깜짝 놀랐다.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당황하며,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도 확인할 새 없이 하루카는 휴대폰을 열었다.

 

“여보세...”

「하루카! 지금 어디야?」

 

말을 끝내기도 전에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그에 약간은 당황하면서도, 하루카는 충실하게 그 질문에 답했다.

 

“으, 응, 지금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왜 그래?”

「집에 전화했는데, 이 시각에 전화 안 받아서 놀랬어.」

 “아. 크리스마스이브라, 조금 늦게 끝났거든. 급한 일이라도 있어?”

「응.」

 

 상투적으로 그렇게 질문했지만, 긍정해버리는 치하야의 목소리에 놀라 하루카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치하야의 말은 하루카를 더욱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시간 없으니까 본론만 말할게. 지금 당장 내일 있을 콘서트 장소로 와. 알고 있지? 어디인지.」
 
“어, 어? 물론 알고 있지만... 어, 어째서-”

「좋아, 지금 당장 와. 기다릴테니까? 그럼.」
 
“엣? 저, 저기, 잠깐-!”

 

 이해가 되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뚝, 하는 전화가 끊기는 소리만이 하루카를 반겼다. 그에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던 하루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원래 이러는 성격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론 치하야의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있을 콘서트장으로 가는 길을 그려본다. 여기서 그렇게 먼 길은 아니었다. 걸어서 15분 쯤 걸릴 것이다. 어차피 오늘은 집에 갈 차비밖에 없었다. 차비도 모자라는데 걸어서 갈까, 그렇게 생각한 하루카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콘서트장의 외부는, 적막했다. 지키는 경비원 하나조차 없다는 사실에 하루카는 의아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주변 어디에도 치하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까 고민하던 그녀의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하루카가 휴대폰을 꺼내 열었을 때, 휴대폰의 액정에 검은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안의 공연장까지 와. 누군가 잡을 일은 없으니까.]

 

마치 예상했다는 듯 적절한 타이밍의 말이다.
 
그에 잠깐 주변을 둘러본 하루카는 한숨을 내쉬고 콘서트장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막한 그 안은, 불조차 하나 들어와 있지 않았다.
 
약간은 머뭇거리며, 내일을 위해서인 듯 미리 붙여진 안내판을 따라 길을 찾아간다. 이 어두움은, 바깥의 크리스마스 준비 분위기와는 완전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내일 이런 장소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열린다는 것이 별로 실감이 오지 않았다.

 

 “여기인가...?” 

 

 안내판을 따라 걸어와 찾아낸 커다란 문 앞에 서서 그렇게 중얼거린 하루카는 조심스레 문을 열어 젖혔다.

 

 넓은 공연장.
 
잠시 그 안을 둘러보던 하루카는 스테이지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일하게 전기가 들어와 환하게 비춰지는 무대에서, 새하얀 스포트라이트의 빛 안에 서 있는 그녀를 본 하루카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새하얀 코트가 잘 어울린다. 그렇게 생각했다. 약간은 화려하면서도 심플한 그 의상은, 내일 있을 무대의 의상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하루카의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지, 지금 바라보고 있어..」

 

 반주는 없었다.
 
단지, 맑은 목소리만이 귓가에 들어올 뿐.
 
치하야가 여태까지 냈던 앨범은 모두 들어본 하루카였지만, 지금 들려오는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멍하니 무대에 서 있는 치하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이던 하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스테이지 쪽으로 발을 옮겼다.

 

「... 마음으론 줄곧, 네 곁에 있어. ...」

 

살짝 미소 짓고 있는 그녀.
 
여태까지 봐오며, 그녀가 몰랐던 미소를 짓던, 그녀가 몰랐던 곳에서 혼자 견디고 있던 그녀의 미소가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그녀였다.

 

자신을 바라봐주고 있었다.
 
하루카는 그녀의 시선에서,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치하야가 자신을 여기까지 부른 것은, 이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것을.

 

스테이지 끝에 걸터앉는 그녀를, 스테이지 아래에서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의 거리.

 

「...기도가 울려퍼지도록, 약속할게 꿈을 이루겠다고...」

 

 노래는 그리 길지 않았다.

 

「.... Thank you for love」

 

 스테이지의 끝에 걸터앉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렇게 노래를 끝마친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들고 있던 마이크를 무대 위에 내려놓자, 툭, 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를 보고, 하루카도 미소 지었다.

 

 “제 시간에 맞춰서 왔네.”

 

 기계를 통하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 그에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하야쨩이 불렀으니까.”
 
“응.”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치하야는 스테이지의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극성 팬들이 무대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스테이지의 높이는 꽤 높은 편이었다. 잠깐 그렇게 바닥을 바라보던 그녀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응?”
 
“여기서, 아래로 뛰어내리면 받아줄 거야?”

 

뛰어내리지 못할 높이는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물론이지!”

 

그렇기 때문에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고 짧게 웃은 치하야가, 쓰러지듯 스테이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렸다기보다는, 떨어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런 그녀를 그대로 끌어안는다.
 
순식간에 줄어드는, 그 거리에, 그 온기에 안도하며 치하야는 하루카의 목을 끌어안았다. 꽉 끌어안는 그 단단한 팔의 힘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

그 동안의 거리감은 아무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그 사실이 너무 기뻤다.

 

 “...자. 콘서트 티켓.”

 

 한동안 그렇게 끌어안고 있던 치하야는, 티켓 한 장을 내밀었다. 하루카가 받아들자, 그녀의 품에서 떨어지며 치하야는 말했다.

 

“편지로 보낼까 했는데, 역시 직접 주고 싶었어... 올 거지?” 

“당연하잖아? 반드시 가겠습니다!”

 

당당하게 그렇게 말하는 하루카의 말에 치하야는 약간 얼굴이 붉어진 채로 웃었다.
 
하루카와 연인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까 그 노래, 하루카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내가 만들었던 거야.” 

"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 치하야는 달아오르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하루카가 눈을 깜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에 치하야는 그녀의 시선을 피한 채로 말했다.

 

“이제 타이틀곡으론 못 내게 되었지만, 콘서트에서 부를 거야. 그러니까...” 

“아... 치, 치하야쨩?”

 

 치하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하루카는 치하야가 자신의 품에 안겨오는 것에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치하야는 그녀를 바라보지는 않은 채, 그녀의 품에 파고들어 붉어진 얼굴을 숨기며 말했다.

 

 “...하루카를 위해 부를 거니까... 꼭 와줘야 해. 하루카가 오지 않으면, 부르지 않을 거니까.”

 

 옷깃에 얼굴을 묻은 채로, 가만히 중얼거린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던 하루카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약속할게. 반드시, 보러 올거야.”

 

 그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이 입술이 짧게 맞닿았다.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 울려 퍼지는 것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12월 25일 오후 10시.
 
머뭇거리며 자신의 자리를 찾은 하루카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잠깐 멈칫했다. 좌석이, 일반석이 아니다. 그에 당황하던 하루카는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야아, 하루카. 오랜만이네.”

“...오랜만..이네요.”

 

하루카는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엔 그다지 적개심으로 대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그 사람에게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에 그 사람- 아카바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나쁜 뜻은 없었으니까."

“...나쁜 뜻이 없었다고요?”

 

 퉁명스레 그렇게 내뱉자, 아카바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하루카가 뭐라고 하려했지만, 그의 말을 끊고 아카바네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나라면 치하야의 재능을 살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
 
“그렇잖아? 치하야는 재능이 있어. 그런 면에서, 너와 함께 있는 건 그 재능을 살리는 데에 지체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사실 일반인과의 연애는 힘들잖아.” 

“...저기요...”

 

 하루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치하야의 마지막 콘서트니까 여기서 괜히 흥분해서 망치면 안 된다. 그런 생각으로 간신히 자신을 다잡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아카바네는 살짝 쓴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졌어.” 

“네?”

“설마하니 너 때문에 치하야가 이 길을 포기할 줄은 몰랐어. 완전한 나의 패배지. 그러니까, 소중하게 대해줘. 모두의 연인을 독차지 한 셈이니까.”

 

그렇게 말을 끝낸 아카바네는 하루카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가버렸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 뭐라고 외치려던 하루카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은 필요 없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그대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미 끝난 승부고, 치하야는 자신을 택해줬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치하야의 마지막 무대를 기다렸다.

 

관객석에 들어왔던 불이 하나씩 꺼진다. 수많은 팬들이 웅성대던 것이 그쳤다. 하루카는 스테이지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처음이자 마지막의 무대다.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피커를 통해 커다란 소리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미친 듯한 함성이 쏟아졌다. 어두운 스테이지의 한 쪽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그녀가 그 곳에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하루카는, 문득 자신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착각인가 싶었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치하야가 그녀를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 그것을 깨달은 하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며 마주 미소 지었다.
 
모두의 무대지만, 또한 두 사람만의 무대다.


 
시작을 알리는 듯한 노래가 스테이지를 울렸다. 팬들의 비명과도 같은 함성소리가 그 노래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노래와 그 함성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며, 하루카는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치하야가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맨 처음 냈던 앨범의 타이틀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가 멍멍해지며 주변의 모든 것에 압도당하는 기분에 하루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쏟아지는 함성들과, 무대 위에서 미소 짓고 있는 그. 어쩐지 다른 세상에 있는 그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하루카의 입가엔 미소가 드리워졌다.
 
아름답다.
 
분명히 거리감은 있지만, 그녀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노래가 멈췄다. 그에 하루카는 스테이지에 올라서 있는 치하야를 올려다보았다. 치하야가 후우, 하고 작게 숨을 돌리는 것이 들렸다.

 

「크리스마스인 오늘,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콘서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차분한 그 목소리에, 쏟아지던 함성이 잦아들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즐거운 날이 되었습니다만, 이런 날에 여태껏 절 지켜봐주신 많은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되었네요.」

 

살짝 미소 짓는다. 그 미소에, 뒤에서 벌써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하루카는 치하야가 이 무대 위에서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무대 위에선, 그녀에게 자신의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여러분께 작별 인사를 하게 된 것은, 저도 아쉽고 슬프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후우, 하고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귓가에 작게 닿았다. 하루카는 멍하니 ‘스타’인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는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

 

「저에겐,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이 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작은 숨소리까지 와 닿는 기분에 하루카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저는, 그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서, 여기서 여러분들께 작별인사를 고하려 합니다.」

 

 관객석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하루카는 그 소란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있는 그녀를 바라볼 뿐.

 

「여태까지, 여러분들의 응원도, 격려도, 모든 것이 저의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이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힘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저를 지켜봐주신 여러분,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울음 섞인 소리들 위로 콘서트의 마지막 노래가 흘러나왔다.
 
하루카는 치하야를 올려다보았다.

 

치하야가 무대 위에서 그녀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무대는 눈물과 환호가 섞인 채로 끝이 났다. 여기에서 그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하루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엔터테인먼트의 중요 인물들은 모두 나간 뒤였고, 팬들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 치하야가 돌아갈 차량을 찾기 위해 나서고 있었다.

 

“하루카.”

“아, 미키...”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서던 하루카는 미키의 부름에 시선을 돌렸다. 미키는 살짝 미소 지은 채 하루카의 어깨를 툭, 치곤 말했다.

 

“미키가 져버렸네.”

“응? 무, 무슨 소리야?”

“미키 말이지, 사장님의 명령으로 하루카랑 치하야씨를 떼어놓으려고 했었어.”

“에엣? 그, 그런-”

 

 갑작스런 미키의 고백에 하루카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물었다. 그에 미키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치하야씨를 존경하고, 좋아했었어.” 

“...으응...” 

“그래서, 치하야씨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런 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런데, 완전히 져 버렸어, 두사람한텐- 정말, 엄청나다니까.”

 

 미키의 푸념과도 같은 소리에 하루카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쓰게 웃었다. 치하야는 정말로 인기가 좋다고, 머릿속으론 어울리지도 않는 생각을 해본다. 미키는 가볍게 웃고선 말했다.

 

“그래도 우리들, 친구로 연락할 순 있지? 치하야씨도, 하루카도.”

“아... 물, 물론이야!. 언제든지.”

“아핫, 고마워.”

 

별로 많은 말은 필요 없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바쁜 듯 했다. 하루카는 공연장을 바삐 빠져나가는 미키의 뒷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치하야를 위해 가져온 꽃.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곤 스테이지를 바라본다.

 

이 위에서, 치하야는 정말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 자리를 그만두게 한 것은 과연 옳은 것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빛나는 채로, 그대로 두며, 지켜봐야 했던 것이 옳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빠져나간 공연장에 적막함이 흘렀다.

 

“으앗?!”

 

모두가 빠져나갔음에도 나가지 않고 멍하니 스테이지를 올려다보던 하루카의 두 눈을 누군가가 가렸다. 하루카가 당황하자, 뒤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치하야쨩, 장난치지 마―”

“후훗, 기다렸어?”

 

 작은 웃음소리. 무대 의상이 아닌, 평범한 하얀색 코트를 입고 있는 그녀가 뒤에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웃어버린다.


 그런 사실은 모두 잊더라도, 단 하나 깨닫는 사실이 있다면, 그녀를 좋아한다. 그 뿐.

 
“자!”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넨다. 그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 꽃을 받아든 치하야는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에 하루카는 웃으며 그녀의 뺨에 입 맞추곤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치하야쨩.”

“...응, 메리 크리스마스, 하루카.”

 

부드러운 미소가 서로에게 오갔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곁에 있는 건, 너 하나뿐이면 되니까.

 

 

 

 

 

 

서로의 손을 잡고, 탈의실을 통해 공연장의 뒤쪽을 따라 빠져나왔다. 팬들이 알아보지 않을까 걱정하는 하루카에게 치하야는「벌써 대역을 보내놨으니까 모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에 하루카는 약간은 안도하며 치하야의 손을 꼭 붙잡았다.
 
꽤나 추운 날씨다. 시계는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난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쓴 웃음을 지었다.

 

“버스도 전철도 끊겼을 시간이고... 걸어가야겠네. 가까워서 다행일까~”

 "응.”

“추운데, 괜찮겠어?”

 

 걱정스레 묻는 그녀의 말에, 치하야는 잠깐 하루카를 바라보다가 쿡, 하고 짧게 웃었다. 그에 하루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치하야는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말했다.

 

“기억 나, 하루카?”

“응? 뭐가?”

“크리스마스에, 언제나 늦은 시각까지 함께 걸어 다녔던 거.”

 

아, 하고 짧게 내뱉는다.
 
크리스마스에는,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이곳저곳 치하야쨩과 함께 돌아다니곤 했었다. 그냥 거리를 살펴보듯이, 그렇게.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어. 걷다가... 오늘은, 하루카의 집에 가서 잘까.”

 

당연한 것처럼, 그 날은 치하야는 하루카의 방에서 함께 자곤 했다.
 
서로를 탐하고 안은 것은 아니다. 단지, 소중한 것을 대하듯 그렇게 끌어안곤, 서로의 온기를 의지 삼아 자곤 했었다.

 그 때를 이야기하는 치하야를 바라보던 하루카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할까?”
 
“응. 아, 하루카!”

 “응? 아...”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자신도 하늘을 바라본 하루카는 이마에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에 눈을 크게 떴다.
 
새하얀 눈송이가 하늘에서 하나, 둘 흩날리고 있었다.

 

“눈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하얗게 흘러내린 눈이, 물방울이 되어 뺨에 와 닿는다. 그 모습을 잠깐 보던 하루카는 치하야의 손을 꼭 붙잡았다.

차가운 온도가 닿지 못하는, 연결점.

 

“...눈이 와서 다행이네?”

“응? 왜?”

“치하야쨩은, 눈을 좋아하니까. 이번 겨울에 눈이 오지 않는다면,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와주는군요~”

 

하늘도 그렇게 매정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하루카는 자신의 뺨에 와 닿는 온기에 시선을 돌려 그를녀 바라보았다.

살짝 닿은 입술의 끝은, 약간은 차가우면서도 따스했다.

 

“...오늘은, 늦게까지 함께 있자. 하루카.”

“..응!”

 

겨우 되찾은 듯한 온기에, 안도와 행복을 동시에 느끼며 하루카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하게 전등으로 장식된 나무 위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눈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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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리스마스도 이번 크리스마스도 군대에 있을 예정이라, 일단 겨울이라도 다 지나가기전에(..)

그렇다고 내년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리기엔 어렵잖아요 제가!?

뭣보다 저 자신이 지금 하루치하분을 대량포함한 아이마스분이 부족해서!<

노래는 커녕 글도 이미지도 없는 공간에서 도대체...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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