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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토끼를 위한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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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31, 2015 19:24에 작성됨.

 

조금, 아니 제법 위험한 소재일지도요...?

어디까지나 법에 저촉되지는 않는 선에서!

 

 

-

 

 

 손을 브이자로 만들어 내미는 동작과 함께 노래가 끝이 났다. 작게 박수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나나쨩은 다음 토요일에 올테니 꼭 다시 만나러 와주셔야 해요! 알겠죠?!"

 

 나는 고개를 크게 숙이며 인사한 다음 뒤돌아섰다. 노래가 끝난 카세트 테이프는 빙글빙글 공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전원을 껐다. 사람들이 떠나는 소리가 났다. 음향장비는 오디오 하나. 조명은 햇빛. 심지어 무대도 없다. 아이돌이 춤추고 노래하는 그 곳이 무대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지만 그저 길 위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하고 춤출 뿐인 정도. 가끔씩 너무나도 서러워질 때도 있었지만 연주자들이 길거리 연주를 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어디까지나 실력이 제일 우선이니까.

 

 "나나쨩-"

 "네, 넷?!"

 

 쪼그려앉아서 오디오를 정리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공연을 보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소중한 팬이다.

 

 "나나쨩 오늘도 귀여웠어! 자, 여기."

 

 팬 분은 캔콜라를 건넸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순간 움찔했다.

 

 "에? 나나쨩은 콜라 싫어하는 편?"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두손으로 캔콜라를 받았다. 팬 분은 그런 나를 보면서 웃었다.

 

 "사실 나나쨩한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뭐든지 말씀하세요!"

 "나나쨩... 팬티 보여주지 않을래?"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버렸다. 아, 안 되는데. 웃지 않으면. 밝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이쪽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잖아? 웃어. 웃어. 싫어. 싫은걸. 싫어......

 

 "하, 하하... 역시 조금 그건 곤란한걸요."

 "다른 아이들은 다 보여주는데 나나쨩만 안 보여주는걸! 내가 오늘 공연한거 캠코더로 찍어놨는데 넷에 올려서 광고도 해줄테니까!"

 

 나는 고민했다.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혐오스러웠다. 그래도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죄, 죄송해요...!"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려 도망쳤다.

 

 

-

 

 

 "나나 씨- 휴식 시간 끝났어요!"

 ".....에..."

 

 누군가 부르는 것 같은데.

 

 "나나 씨-"

 "아, 네! 일어났어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의 스태프 룸이었다. 잠깐 휴식시간에 졸아버린 건가. 그럼 방금 그건 역시 꿈...

 

 "금방 나갈게요!"

 

 나는 빠르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었을 뿐이라 크게 이상해진 부분은 없는 듯 싶었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면서 눌린 자국같은 건 없나 체크. 모든 확인이 끝난 후에 나는 홀로 나갔다.

 

 여기는 346 프로덕션 안에 있는 미시로 카페. 사실 대형 프로덕션 사내에 있는 카페라는 것만 다르지 예전에 일하던 아키바의 메이드카페와 다를 게 없었다. 중요한 건 여기는 언제 일이 생겨서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내 사정을 이해해준다는 것 정도다. 문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는 점 정도일까. 

 

 아베 나나는 아이돌이다. 애니메이션의 성우가 되고 싶었던 나는 아키바 아이돌을 선택했다. 성우들은 이미 어린 나이에 양성소 같은 곳에 가서 기획사에 들어가서 히트하는 레일 위의 길이었기에 나이가 제법 되었던 나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노래는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수가 되는 건 역시 무리. 그래서 아이돌이 되기로 했다. 그마저도 대형 기획사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못해서 아키하바라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 오타쿠 문화의 중심가니까 오히려 그쪽이 좋다며 자기위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은 그저 꿈같은 이야기였다. 이름은 아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알려졌지만 돈은 끝없이 사라져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손을 빌리기도 죄송해서 일하기 시작한 곳이 아키바의 메이드 카페. 그 때에도 오히려 아이돌로써 자신을 광고할 수 있다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마저도 끝이 났다. 어떤 사건때문에 몇 명 있던 팬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일하던 카페에서도 잘렸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로 어딘가에 신은 존재했던 것인지 그런 나도 운좋게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혼자서 공연을 계속 하던 것을 지나가다가 본 프로듀서가 나를 스카우트 해준 것이다. 그냥 나 자신으로써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아키바 아이돌과 어릴 적 좋아했던 설정을 합쳐서 만들어낸 우사밍 성인 컨셉. 그렇게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지만 행운은 거기서 끝. 어떻게 미시로 카페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돌 아베 나나는 개점휴업중이다. 그저 명함과 간판뿐인 아이돌이다.

 

 그런 부담감 때문일까, 최근에는 옛날 꿈을 꾸는 일이 늘었다. 이대로 계속 일을 하지 못하면 다시 아키바로 돌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미 부모님은 그만두고 본가로 돌아와서 결혼이나 하라고 재촉을 하는 판이었다. 

 

 "나나 씨-"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손님이 와 있었다. 사무원인 치히로 씨였다. 이곳에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제법 의외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하하하, 그렇게 딱딱하게 계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치히로 씨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최근에 나나 씨가 힘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네?"

 

 무슨 이야기인지,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묻기도 전에 치히로 씨는 뒤에 서있던 사람을 소개했다. 

 

 "안녕- 나는 이치노세 시키라고 하는데-"

 

 약간 붉은 빛을 띄는 머리의 여자아이였다. 특이하게도 백의를 입고 있었다.

 

 "그럼 두 분이서 이야기하세요. 저는 먼저 올라가볼게요."

 

 치히로 씨는 그렇게 사라졌다. 역시 커피 사지 않는구나. 혹시나 했는데.

 

 "아, 아베 나나에요. 잘 부탁드려요."

 

 생각해보니 나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게 생각나서 뒤늦게 자기소개를 했다.

 

 "나나쨩인가- 고민의 냄새가 여기까지 퍼지고 있는걸?"

 "고민의 냄새?"

 "나는 냄새에 민감하거든- 잘 알지. 도망가버리고 싶은 그 마음! 나도 잘 알아!"

 

 텐션이 높았다. 휘둘리고 있었다.

 

 "뭐 대충은 이해했어.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여튼 그런 거지? 그럼 내가 처방하는 약은 '자신감'이야!"

 "자신감...?"

 

 우습게도 시키는 품 안에서 정말로 약봉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나나 쨩은 조금 더 자신감이 필요해! 그러면 모든게 따라올 타입이라구!"

 

 약봉지를 건넨 시키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다면서 제멋대로 사라졌다. 여름의 폭풍같은 아이였다. 순식간에 찾아와서 모든걸 휩쓸고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약봉지를 열어보니 사탕이 들어있었다. 우습게도 사탕에는 스마일 마크가 그려져있었다. 

 

-

 

 "미미밍! 미미밍! 우사밍! 우사우사우사 우사밍!"

 

 정말 믿지 못하겠지만 나의 세계는 바뀌었다. 계기는 시키가 준 사탕. 정말로 작은 자신감이 이 모든걸 바꿔 놓은 걸까. 영원한 17세 우사밍 성인이라는 설정도 어느샌가 대 히트했다. 가까운 사무소 동료들도 다 내가 17세라고 알고 있다. 일부는 전파계니 아이돌답지 못하다니 하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아베 나나는 성공한 아이돌이었다.

 

 "모두들 고마워요! 모두의 힘으로 메르헨 체인지-! 앞으로도 나나를 잘 부탁해요!"

 

 화려한 조명 아래의 커다란 무대. 심장을 울리는 노랫소리. 떠나갈 것만 같은 환호성. 모든 게 달라졌다. 다신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나는 습관적으로 시키가 준 사탕을 찾았다. 언제나 나에게 자신감을 주는 스마일 캔디. 그 조그마한 사탕이 우사밍 성인의 비밀이었다.

 

 "어, 없어...?"

 

 찾아낸 약봉지는 비어있었다. 언제 다 먹은 거지. 어제 게 마지막이었나?

 

 "나나 씨,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수고하셨어요..."

 

 프로듀서 씨가 나를 맞이해 주었지만 어째서인지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왜일까. 스마일 캔디가 없어서일까? 아니, 그냥 사탕인걸. 어린 아이도 없다고 사탕 하나 때문에 내가 달라질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모습은 크게 달라져만 갔다.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날로 우울해져만 갔다. 생각해보면 시키의 사탕 하나로 크게 변한건데 다시 없어지면 변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키를 찾아갔다.

 

 "응? 그 사탕?"

 "...네."

 "그거 도파민이라는 약물이 들어가 있는 사탕이야."

 

 시키가 아하핫 하고 웃었다. 뭐야, 약물이라니..

 

 "아,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어디까지나 법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이니까!"

 

 도파민은 사람의 의욕과 흥미를 북돋아주는 호르몬이라고 시키는 말했다. 말 그대로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사탕이었다는 거다.

 

 "냐하하핫. 뭐 더 필요하다면 만들어 줄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환영!"

 

 이번에는 사탕과 함께 시키의 특제 향수도 선물받았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니 시키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천재. 자신 있는 건 화학쪽이고 향수를 만드는게 특기라고 했다. 그래서 선물받았다. 

 

 "자, 뿌려봐."

 

 시키가 건네준 향수를 뿌리니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꽃 냄새 비슷한 향기...

 

 "습-하- 거 봐. 기분 좋지?"

 

 한 가지 더 알게 된건 중증의 냄새페치라는거. 그 후로 한참이나 시키에게 붙잡혀있었다.

 

-

 

 어느샌가 이치노세 시키라는 사람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있었다. 마법의 스마일 캔디도 기분을 좋게 해주는 향수도 아베 나나가 우사밍 성인 나나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이번 정류장은-"

 

 아차, 정류장을 놓쳐버렸다. 나 잠들었던 건가? 분명 깨어있었는데?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의식이 또렷했다. 분명 시키의 생각을 하고 있었는걸. 지금이라도 내리려고 일어나는데 순간 비틀 했다. 잠들어서 그런 걸까,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결국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두 정거장이나 지나버려서 걸어오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우사밍 별이라고 해도 치바에 있는 집일 뿐이다. 혼자 살기 때문에 정리도 잘 되어있지 않고. 이게 우사밍 성인 나나, 아베 나나의 진짜 모습이다. 아아 귀찮네. 밥하기도 귀찮고. 그냥 이대로 누워서 잘까. 아니, 그래도 씻기는 해야겠지.

 

 핸드폰을 보니 부모님한테서 부재중 전화 기록이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음성 메시지까지 남기신 모양이라 확인했다.

 

 "너는 언제까지 고집 부릴 거니? 이러다가는 진짜 늦어버린다고. 빨리 본가로 돌아오려무나. 맞선 자리도 있으니까.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해야지.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닫아 끄고 던져놓았다. 눈물이 났다. 안 되지. 중요한 건 밝은 모습과 자신감이니까. 스마일 캔디라도 먹고 밝게 웃어야지!

 

 

-

 

 "어지러움? 그건 잘 모르겠는데..."

 

 다시 사탕을 받으러 간 시키에게 어지러운 증상에 대해 물어봤다. 하지만 시키도 알 수 없다는 대답만 했다.

 

 "아하하핫. 나는 의사는 아니니까 말이야. 뭐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닌데."

 

 시키는 이번엔 제대로 된 약 같은 걸 건넸다.

 

 "그 귀에 붙이는 멀미약 같은 거 있지? 그런 성분이 들어가 있으니까 어지러운 건 이걸로 해결이 될 거야."

 

 스코폴라민이라고 했던가. 어려운 이름이었다. 확실히 그 이후에 어지러움이 느껴질 때 먹었더니 나아졌다. 점점 시키에게 의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걸.

 

-

 

 "하, 하하하... 이걸로 꿈꾸던 애니메이션의 성우도 될 수 있어요!"

 

 회장에 울려퍼지는 우사밍 콜. 떠나갈 것 같은 함성. 나는 손을 흔든다. 손을 흔들때마다 세상이 흔들린다. 환호성이 들린다. 눈 앞이 흐려졌다. 아차, 약을 먹지 않으면. 아니, 그저 눈물이 나올 뿐이었나?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품 속에서 스코폴라민과 스마일 캔디를 꺼내서 먹었다. 다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잘 보이지 않는 관객들에게 다시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할 때마다 시야가 검게 변했다가 다시 밝게 변했다. 약간 속이 울렁거렸지만 참을만 했다. 그때 어딘가 멀리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나 씨- 휴식 시간 끝났어요-"

 

 세상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나 씨-  ......나나 씨?"

 

 

 

---------

 

다른 쪽의 사정으로 쓴 글입니다만... 뭐 여기에만 안 올리기도 아깝고 해서 말이죠.

한 달 동안 생각을 하다가 몇 시간만에 날림으로 써버린거라 부족한 점도 아쉬운 점도 너무 많네요.

 

여튼, 조오금 위험한 글이었습니다.

제목은 동명의 곡을 따왔지만 사이키델릭한 기분 말고는 딱히 소재로 쓰지는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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