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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연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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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03, 2016 18:18에 작성됨.


거품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한 채로 세면대에 앉아있는 치하야는 하루카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목욕 시간, 보통 때 같으면 지금쯤 끝났을 일이지만 오늘은 하루카가 마코토와 뭔가 이야기하느라 도중에 자신을 방치한 터였다.


"응, 그게 성별 분화야?"
"슬슬 할 때가 되긴 했지. 근데 하필이면 여자네."
"...응? 치하야쨩이 여자면 무슨 문제라도 있어?"
"큰 건 아니지만."


마코토의 중얼거림에 멍하니 눈을 깜박이는 하루카를 바라보던 치하야는, 곧 자신의 발 밑을 채우고 있는 거품으로 신경을 돌렸다. 하얗게 뭉개뭉개 일어나 있는 거품은 굉장히 맛있어 보였지만, 처음 씻을 때 입 안에 넣었다가 굉장히 쓰디쓴 맛을 맛봤던 것을 치하야는 잊지 않았다.
그런데도 치하야가 목욕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 그건 단 하나, 이 거품이 재미있다는거다.
손으로 건져 떠올리면, 가득 쌓여있는 거품이 미끌미끌거리며 손 사이로 빠져나간다. 가득 떠올려봤자 겨우 조금이지만, 그걸 후, 하고 부는 걸 치하야는 정말로 좋아했다. 불면 휙휙 공중으로 떠오르는 거품들이 재미있다. 그리고 다 날리면 다시 아래에서 거품을 한웅큼 집어들어 후- 하고 불어본다. 거품들이 공중을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다.


"왜? 왜 여자면 안되는건데?"
"...."
"으응? 저어, 마코토?"
"남자라면 마계의 왕자로라도 쓸모가 있잖아?"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남자였다면 나중에 치하야쨩을 이용할 생각이었던거야?!"
"대드냐, 지금?!"
"끼약!!"


밖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목소리와, 쾅, 하는 소리에 치하야는 밖을 돌아봤다가 눈을 감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마코토가 때리는 건 정말로 아프다. 저번에 마코토에게 마음껏 괴롭힘 당하고 나서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한 치하야는, 자기가 맞을 때보다 훨씬 아파보이게 맞은 엄마를 잠시 동정했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거다. 익인을 후계자로 삼을 순 없잖아?"
"으... 그, 그래도 너무하잖아... 그리고 난 여자아이인 쪽이 훨씬 좋은데?"
"..왜?"
"남자아이라면 직접 씻겨주기 좀 그렇잖아?"
"...말을 말지."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뭔지는 치하야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히 몸에 변화가 있다는 건 깨달았다. 그 변화가 자세히 뭔지는 모르지만, 하루카는 '치하야쨩도 분명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면 나쁜 변화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는 치하야는 다시 거품을 주워올리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거품에 칠해진 몸이 미끌, 하며 세면대 중심으로 미끄러져갔다.


"삐잇!!!"
"치하야쨩?!"


하루카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하루카를 돌아보기도 전에 치하야의 몸은 세면대 거품 아래, 쌓여있던 물 아래로 풍덩 빠져버렸다. 하루카나 마코토에겐 손이 잠기는 정도의, 크게 깊은 깊이도 아니었지만, 작은 치하야에게는 상당히 깊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발버둥치자, 퐁퐁 하는 소리가 들리며 거품들이 막 밀려난다.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치하야에 당황해선 하루카는 황급히 달려와 치하야를 세면대에서 구출해냈다. 콜록대는 치하야에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는 하루카를 한심하다는 듯 보던 마코토가 인상을 찌푸리곤 말했다.


"얼른 얼굴부터 씻겨. 눈에 거품 들어가겠다."
"아, 으, 응! 자아, 치하야쨩."


이미 거품이 좀 들어갔는지 눈이 따가워서 손으로 비비려던 치하야의 손을 막고선, 얼른 옆에 있던 깨끗한 물로 얼굴을 씻어낸다. 정확히는 얼굴만은 씻기기 힘들기에, 온 몸을 씻기는 셈이 되지만. 푸우, 하고 고개를 내젓던 치하야는 조금 정확해진 시야로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괜찮니, 치하야쨩?"
"삐이..."


이토록 험난한 목욕은 처음이었기에 지쳤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하야는 하루카의 손 위에 풀썩 엎드렸다. 문에 기댄 채 그런 치하야를 가만히 보던 마코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그 녀석, 조금 크지 않았어?"
"응? ...그러고보니."


마코토의 말에 손 위에 푹 엎드린 치하야를 가만히 보던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랜 손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지만, 지금은─


"2cm 정도 컸나. 확실히 성별 분화가 되면서 성장이 시작된 모양이네."
"...마코토는 눈대중으로도 그런 정확한 숫자가 나온단 말이야?"
"의심스러우면 재보던가."


2cm라고 단언하는 마코토를 의심스러운 눈동자로 바라보던 하루카는 후우, 하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시 반짝이는 눈동자로 거품을 바라보는 치하야에 질린 듯 웃었다. 빠져서 허우적 대고서도 아직 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 치하야가 날아서 거품에 다가가지 않도록 꼭 붙잡은 채, 하루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목욕은 여기서 끝! 치하야쨩, 얼른 남은 것 씻고 나가자."
"그리고 하루카는 내가 가져온 일을 좀 해줬으면 하는데."
"네에..."


마코토의 날카로운 말에 잠시 굳었다가 고개를 겨우 끄덕인 하루카는 치하야가 손 위에 앉은 채 눈을 꼭 감은 걸 확인하고서 조심스레 물을 부었다. 조금 남아있던 거품기가, 그 물에 전부 씻겨나간다.

 

 

 

성장이 시작되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하루카도 알고 있다.


이렇게 작은 치하야라고 해도, 앞으로 7년정도면 성체가 된다. 익인의 성장은 굉장히 빠르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손 위에 올려놓고 씻겨주는 건 아주 잠시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에 커서, 자신을 쫓아다니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조금 쓸쓸하지만.

...아니, 너무 앞서나가고 있다.
누가 뭐래도 앞으로 7년이나 남은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수명에서 보면 7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은 하루카는 푸우, 하고 숨을 뱉는 치하야를 수건에 감싼 채 욕실을 나섰다가, 질린 눈동자로 방을 바라보았다.


"...마코토... 방까지 가져올 건 없지 않나요...?"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서류라 말야."
"......"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그 말을 연상시키는 서류의 높이를 보며 질려있는 하루카의 손 안에서, 치하야는 꼼지락대며 수건에 몸을 깨끗히 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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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 프리덤! 가디언!의 효과 발동으로 쓸 시간이 없던데다가

그나마의 주말도 면회와 근무로 시간이 안나서 그나마 쓴 분량은 이 정도 ^오^..

대신 다음편은 그래도 그동안에 비해선 나름 길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

예상해둔 내용이 있으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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