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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나 말야, 765 프로덕션이라는 곳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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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1, 2015 05:05에 작성됨.

「… 좀 소름끼치지 않아?」

「응… 나도 그래」

수군거리는 소리에 읽던 책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들자, 두 명의 여자아이가 입을 가리고 어딘가를 흘겨보고 있었다. 낯이 익다. 같은 반 학생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는 방향을 바라보니 마찬가지로 아는 얼굴의 소녀가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는 얼굴, 이라고 표현한 만큼 그저 면식만 있을 뿐이다. 이렇다 할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다. 신상에 대해 알고 있지도 않다. 솔직히 이름마저도 흐릿할 정도다.

「정말로 저런 애가 있을 줄 몰랐다니까…」
「불쌍하다면 불쌍하기도 한데, 그래도… 저건」

자기 자신을 두고 말하는 것임이 분명한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인지 소녀는 태연하게 걸어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익숙한 몸짓으로 가방을 풀어놓고 교과서 따위를 꺼내는 소녀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마, 들어올 때부터 저랬던 것 같은데. 기분 좋은 일이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법했지만, 미소의 이유가 정말로 그것이라면 소녀는 매일매일이 행복한 일뿐인 것이 틀림없었다. 특별히 눈여겨보지 않았던 나조차 알고 있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듯도 평온한 듯도 보이는 저 미소는 소녀가 언제나 짓고 있는 표정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자리가 정리되자 소녀는 눈을 감더니 웃는 얼굴인 채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노래라도 부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보고 있었지만, 그것을 지켜보던 두 아이의 미간이 마치 흉물스러운 것이라도 보듯이 찌푸려졌다. 그 애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교실 안에 거북한 침묵이 감도는 동안에도 소녀는 멈추지 않고 입을 달싹였다. 뭐라고 하는 것인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행복에 겨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선생님이 들어오자 소녀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그와 동시에 입가에 띄우고 있던 미소도 사라졌다. 같은 사람인지 의심될 정도로 소녀는 완전히 감정 없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타인의 험담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소름 끼친다'는 말의 의미를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석 체크가 시작되고,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자 소녀가 손을 들었다. 그랬었지. 저 애, 저런 이름이었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소녀에게서 눈을 돌렸다.


***


「있잖아, 미키. 나 요즘 이상한 데라도 있어?」

「응? 글쎄, 미키는 잘 모르겠는데」

이상한 것을 묻는다는 듯 호시이 미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풍성하고 화려한 금발에 나이답지 않은 체형의 소유자인 이 아이는 같은 사무소에서 함께 아이돌을 하고 있는 동료다. 친구, 라고도 할 수 있겠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그만큼 어디에서나 빛나기 때문에 옆에 있으면 조금 초라해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 정도가 곤란한 점일까. 그렇지만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동료임에는 틀림없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하루카」

그렇게 되물으며 음료에 꽂힌 빨대에 입을 가져가는 미키의 옷차림은 제법 화려하다. 거기에 아이돌다운 출중한 외모까지 더해지면 이런 카페에서는 상당히 시선을 끌 법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묘하게도 딱히 다가오는 사람은 없다. 뭐랄까,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란 오오라 같은 게 있는 걸지도. 그런 식으로도 납득이 가능하다는 점이 미키의 무서움이다.

「그야… 으음, 어떨려나… 막상 물어보면 대답하기 힘든 걸」

「흐응, 그냥 기분이 안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그런 건 아냐. 그러니까… 우우, 뭐라고 할까…」

적당한 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이나 단어를 고르다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 이상해, 다들」

「… 이상한 건 하루카가 아니었어?」

「그러니까, 내가 이상해서 모두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그냥 모두가… 으으, 역시 잘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저기, 하루카. 고민이 있다면 하다못해 제대로 말해 줬으면 하는 거야」

「미안, 미키. 그러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그러면 일단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한지부터 말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걸」

「…… 시선. 아니, 태도이려나」

「태도? 다른 애들의?」

「응… 모두의」

좀처럼 형태가 잡히지 않던 위화감의 윤곽이 첫 마디를 떼자마자 조금씩 드러나는 기분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앞을 더듬듯, 느꼈던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말했다.

「뭐랄까, 다들… 이상한 눈으로 볼 때가 있어.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뭔가, 가엾은 사람을 보는 눈 같기도 하고, 슬픈 눈 같기도 해. 그래서 그걸 물어보면 화들짝 놀라는 거야. 그리고는… 다시 태연해져.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무슨 소리야, 하루카. 그런 적 없다구. 이상한 말 하지 마, 하루카.
하나같이 그런 식으로 얼버무린다.
시선 자체도 그렇지만, 그 쪽이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 없다.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치만 다들 제대로 대답해 주지도 않고. 가끔 그러는 걸 빼면 모두들 평소대로지만… 저기, 미키. 미키는 혹시」

뭔가 아는 거 없어, 라고. 그렇게 묻기 위해 바라본 미키의 눈은.


「어…」


생각하던 것이 단숨에 날아갔다.

 

「… 앗, 아아」

갑작스레 전원이 들어온 로봇처럼 미키가 약간 허둥대며 손을 내저었다.

「그, 하루카의 말은 이해한 거야. 그치만 역시 미키는 이상하다고 생각해. 으음, 애초에 모두가 하루카를 그렇게 대할 필요가… 아, 역시 하루카의」

「왜 그런 거야, 미키?」

횡설수설하는 미키의 말을 자르고서 물었다. 묻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봤어?」

 

당혹으로 딱딱하게 굳은 표정. 잠시 그대로 멈춰 있던 미키는 이내 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응? 뭐가?」

「… 미키」

알고 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무력감이 무겁게 내려앉혔다. 주위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이쪽을 흘깃거리고 있다. 아이돌 두 명의 말싸움이라며 화젯거리로라도 삼고 있을까. 말싸움으로 비춰지는 건 싫은데. 그럴 생각은 없었는걸.

「이만, 실례하는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향하는 미키를, 막지 않았다. 막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강하게 쥐었다. 정체도 모를 소외감과 불안감을, 그렇게 해서 지울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결국 혼잣말로밖에 말할 수 없었다.

 

***


대단한 흥미는 없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유별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애초에 크게 관심을 가져 본 일도, 그럴 이유도 없었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냥 그곳에 있다는 정도의 존재감밖에는 갖고 있지 않은 인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유별나지 않은' 사람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쉬는 시간을 틈타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 같은 반의 누군가에게 그 아이에 대해 넌지시 물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평범했으나 돌연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인물. 약간은 호기심을 가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말을 꺼내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러난 관심어린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던 동급생은 그 아이의 이름이 나오기 무섭게 표정을 굳혔다.

「…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꺼릴 만한 화제라고는 생각치 못했고, 게다가 대답이 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정색하고 나오는 상대에게 그냥 궁금했을 뿐이라는 말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없던 일로 할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개운하지 않다. 결국 이리저리 빙 돌려 말해서 설득하자, 동급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 그것도 안 봤나 보네. 우리 반 애들은 다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거라도 해도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동급생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잠깐 핸드폰을 조작하던 동급생은 이내 내 쪽으로 액정 화면을 향했다. 동영사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안의 인물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보면 알겠지만… 이상해, 걔」

동급생의 목소리가 음향 없는 영상의 배경음이라도 되는 듯 느껴졌다. 나는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의문과, 뒤이어 납득이 찾아왔다. 이래서야 어쩔 수 없다. 저런 걸 찍혀서는, 저 애는. 그렇게 수긍하고 말 정도로, 동영상은 일견 불합리하게 보이던 그 아이에 대한 취급의 근거로서 너무나도 충분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때 자기 입으로 말한 것도 아마 거짓말일걸. 진짜일 리가 없어. 과연 정말일까 궁금해하던 애가… 누구라곤 말 못 하지만. 여튼 학교 끝나고 몰래 따라가 봤더니 이러고 있더라는 거지. 그 뒤로 다들 이런 분위기야」

핸드폰을 도로 가져간 동급생이 잠시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 될 수 있으면 엮이지 마. 진짜로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래서 아직은 다들 피하기만 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언제까지일지」

섬뜩하게 들리는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동급생은 읽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나도 자리로 돌아와 앉았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였다. 제정신이 아닐지 모른다는 말은 상당한 폭언이었지만 그 이외의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째서일까. 그 소녀는, 대체 무엇 때문에. 본인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할 터였다.

그 아이의 자리로 시선을 향했다. 어디로 간 것인지 자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

 

「하루카는 어째서 아이돌이 되었어?」

그렇게, 누군가가 물었다. 옆을 보자 키사라기 치하야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기고 있었다. 푸른 장발과 호리호리한 체형, 단아한 외모가 특징인 그녀는 미키와 마찬가지로 같이 아이돌을 하고 있는 동료다. 단지 그뿐만은 아니었다. 내게 있어선, 둘도 없이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그리 이상하기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갑작스러웠다.

「엣? … 그건, 그게… 으음… 가,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야? 치하야」

「… 그렇네. 조금 갑작스러웠을지도 모르겠어.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미안해, 하루카」

「아아, 으응. 아니야.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거라면 제대로 들려줄 대답도 있고」

「있는, 거네. 그건 기대되는걸」

치하야는 미소를 머금고서 이 쪽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동요가 일었다. 떠오르고 말 것 같다. 모두의, 미키의, 그 눈. 이유도 의미도 알 수 없었던.
아니, 이래선 안 돼. 눈을 감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 착각일 뿐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치하야만큼은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대답을 들려주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치하야에게 말한 적 없었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중요한 말을. 내려다본 난간 너머의 까마득한 풍경을 응시하며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 어렸을 때부터 말야?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했어」

그랬었다고 기억한다. 가족들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곧잘 노래하곤 했다. 제법 오래 전의 일이니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하루카는 어릴 때부터 한결같았지' 같은 말을 자주 듣곤 했기에 알고 있었다.

「그 무렵엔 딱히 아이돌을 지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봤었던 무대가 굉장히 인상깊어서…」

정확히 언제였는지, 는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그저 TV 안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정말로 기뻐서 어쩔 수가 없다는 듯 환하게 빛났던 것만을 기억하고 있다.
어째서, 뭐가 그렇게 기뻐서 저렇게 활짝 웃고 있을까? 아마 노래하는 걸 무척 좋아하나 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곡이 끝나고 온 힘을 다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녀들을 보며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분명히, 너무 기뻤던 거야. 자신의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수 있다는 게」

저 웃음의 의미는 그것이다. 나, 아마미 하루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도, 틀림없이.

「…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 아이돌이 되자. 꼭 되고 싶어… 계속 그렇게 꿈꿨어」

「그래… 그랬던 거네」

「응. 그래서,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 아이돌이 되었으니까.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니까」

「후후. 잘 됐구나, 하루카」

치하야는 그렇게 말했다. 치하야의 목소리였으니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추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치하야를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할 수는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얼마든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극히 당연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 있지, 치하야」

아무렇지 않게 내려 했던 목소리는 아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날 보고 있어?」

 

대답은 없었다.

 

「─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하루카는, 정말 어쩔 수 없네…」

 

「.. 저기, 치하야? 그건」

무슨 뜻이야, 라고 묻기도 전에 치하야가 몸을 돌렸다. 등을 보인 치하야는 점점 멀어져 갔다. 치하야가 계단 아래로 사라지자 이내 침묵이 감돌았다. 넓다란 옥상에는, 하루카 이외의 누구도 없게 되었다.

「치하야…?」

불러 본 이름은 덧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오싹한 공포감이 순식간에 치솟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터무니없이 두려웠다. 뒤쫓아야 한다. 치하야를 놓쳐선 안 된다.

「잠깐, 만…! 치하야!」

급히 달려나가다 보니 발이 꼬여 휘청한 것을 겨우 바로잡았다.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정신없이 달려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주위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어째서…?」

모든 것이 아득해지는 느낌과 함께 극심한 탈력감이 밀려왔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이 고여 흘러내려 작은 자국을 만들었다. 그 눈물의 이유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다.

「모르겠어」

두 손을 펴고 얼굴을 묻었다. 힘이 들어가 하얗게 변색된 손가락 사이로, 흐느낌에 가까운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 아무것도 모르겠어, 치하야……」

 

 

 

 


「죄책감이라도 느끼고 있어?」

한쪽 팔에 토끼 인형을 끼고 있는 갈색 장발의 여자아이가 빈정대듯 물었다. 돌아본 '키사라기 치하야'의 눈빛에 적의는 없었다. 이런 취급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스스로 인정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미나세 씨」

「미나세 씨… 말이지」

미나세라고 불린 소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상하잖아? 아니, 어이가 없다고 해야곘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야」

「… 그 마음은 이해해」

「흐응. 이해라는 걸 할 수 있구나, '우리'도」

낮게 읊조린 미나세가 경멸스런 눈으로 아래를 흘겨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간 치하야의 눈에 주저앉아 있는 소녀가 보였다. 망연자실해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 치하야는 가슴이 죄어드는 슬픔을 느꼈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나로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미나세가 말했다. 그 눈빛에 담겨 있던 감정은 어느샌가 처연함 비슷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간이 저런 표정을 지을 상황은 그리 많지 않겠지. 치하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령, 너무나도 가엾은 모습의 누군가를 바라볼 때라던가.

「따지고 보면 전부 저 녀석 탓인데 말야. 정말, 언제까지 장단을 맞춰 주면 되는 걸까」

「…」

「… 흥」

말이 없어진 치하야를 보자 조금 머쓱해졌는지 미나세는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지배하는 가운데 멀찍이에서 소녀가 흐느끼는 소리만이 작게 들려왔다.

「… 언제까지 못본 척할 셈이야」

「…」

「뭐라고 말 좀 하는 게 어때. 그 우스운 죄책감도, 사실은 알고 있으니까 품게 되는 거 아냐?」

「뭘 말하는 걸까, 미나세 씨」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잖아」

치하야의 표정이 낭패감과 괴로움으로 물들었다. 손속을 두지 않고 미나세가 말을 이었다.

「네가 안 하면 다른 누군가가 해. 그게 자의 같은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지? 웃기지도 않지만, 정작 자기부터가 눈치채고 있는 거야, 저 녀석」

「알고 있어, 미나세 씨」

고개를 숙인 채 듣고만 있던 치하야가 얼굴을 들었다. 그것을 본 미나세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 치하야」

「그 아이도─ 하루카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야. 언제까지고 계속할 순 없다고. 그렇지만 혼자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어서, 저렇게 괴로워하고 있어」

「그걸 알고 있으면…」

「그래. 내가 할게」

「… 너도 참 사람이 좋네」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미나세가 다시 하루카가 있던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하염없 이 그 자리에 붙박혀 있을 것만 같았던 하루카는, 몸을 일으켜 어디론가 비척비척 걷고 있었다. 그 등을 지켜보단 미나세가 소리없이 이를 악물었다. 치하야에겐 갈 곳 없는 분노를 억눌러 참으려는 행동으로 보였다.

「… 납득이 안 가. 정말로」

「미나세 씨…」

「저래서는 꿈도 뭣도 아니잖아. 그딴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다음의 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치하야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악질의 저주다.

 


***

 


그 아이의 뒤를 밟기로 결정한 것은 수업이 끝난 직후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것도 한 몫 했지만, 역시 의문스러운 점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저 작은 호기심 정도였던 것은 이미 강한 충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죄의식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동급생이 보여주었던 영상이 계속해서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그럴 용기가 생긴다면 현장을 잡아 직접 말을 걸어 보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좌우지간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면 실행해야 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종례를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목표를 눈으로 쫓았다. 그 아이는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다.
하교길인데도 그 아이는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기피되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딱히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 듯 그 아이는 계속해서 걸었다. 학교를 나와, 도로를 지나, 코너를 돌아, 어딘지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 미행하는 일이 의외로 간단했기에 약간 김이 빠질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긴장감을 풀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뒤를 돌아본대도 대비할 수 있도록 주의하며 신중하게 뒤를 쫓았다.


몇십 분쯤 걸었을까. 그 아이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쪽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몸을 숨긴 후 조심스레 내다보자 어느새 인영이 사라져 있었다. 뭐야, 이건. 들킬지도 모른다는 것조차 잊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그 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놓친 건가.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과 허무감이 밀려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의 건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변을 다시 살피던 도중 묘한 것을 눈치챘다. 미행에 집중하느라 알아채지 못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제대로 완성된 건물이 많지 않았다. 주위에는 낙하방지망과 처리가 덜 된 철근들이 즐비했다. 무기질적인 회색빛의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늘어서 있는 이 곳은, 어떻게 봐도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누군가 살 만한 곳이라고는 여기기 힘들다. 그저 지나가는 길목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는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모습을 감춘 그 아이는, 이 짓다 만 건물들 중 한 곳으로 들어가기라도 했다는 것일까. 미행을 눈치챘기에 따돌리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였다. 소녀가 모습을 감춘 곳을 신중히 떠올려, 그럴싸하다고 생각되는 건물을 골라 안으로 발을 들였다.

불법침입 같은 죄목으로 제지당하지는 않을지 긴장했지만, 들어선 직후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내팽개쳐진 공사기재와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은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데다 하나같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마 공사가 도중에 중지되어 버려진 건물이겠지. 어쩌면 이 주변 전체가 같은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인적이 없다시피 했던 것도 이해가 갔다. 무턱대고 들어오기엔 적절한 환경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선택이 옳았는지였다.
살풍경한 회색의 바닥을 따라 조금 걷자 계단이 나타났다. 마감이 덜 되어 석회가 울퉁불퉁하게 어그러져 있었다. 그것을 밟고 오르자마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로 선 채 신경을 집중하자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사람의 말소리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여자아이의 목소리.

 

그 아이다. 적중했다는 흥분과 긴장으로 굳게 주먹을 쥐었다.

 

정적만이 흐르는 건물 안에서는 어떤 소리건 울려퍼지기 쉽다. 그 덕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건 이쪽 역시 마찬가지다. 발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2층에 다다르자 어렴풋이 울리던 소리가 더 또렷해졌다. 틀림없이 그 아이였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양쪽으로 갈라진 통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전진했다. 그리 길지 않은 통로는 끝에서 다시 한 번 왼쪽으로 꺾이게 되어 있엇다. 붉은 빛이 퍼져나오는 것으로 보아 창문이 있는 방으로 통하는 것 같았다. 겨우 스무 걸음 정도의 거리였는데도 기괴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방향이 꺾이는 부분까지 다다랐다. 원래는 문이 있어야 했을 곳은 커다랗게 비어 있었다.
왼쪽 벽에 가까이 붙은 채로 안쪽을 살피기 위해 서서히 고개를 내밀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여길 만 했다.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장소에서 누군가와 만나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의심한 여유조차, 그 때의 내게는 없었던 것이다.


새빨간 노을빛 안에 선 누군가의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한 순간.
이해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서, 내 눈 안으로 '진실'이 쏟아져 들어왔다.

 

***

 


「…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렇게밖에 물을 수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레슨을 끝마친 후,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던 탓에 의기소침해져 있던 내게 다가온 치하야가 꺼낸 말은 그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한 그대로야. 이제 그만하자, 하루카」

「그만 하자니… 뭘 말하는 걸까, 치하야는」

「… 알고 있잖아」

「그, 그러니까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루카」

말하려는 것을 듣지 않고 치하야가 이름을 불렀다. 나를 올곧게 바라보는 그 눈은, 미키나 다른 아이들에게서 보았던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너는, 누구지?」

「… 엣」

 

누구냐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치하야.

「… 이상하네, 치하야… 아까 옥상에선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레슨장에 와선 말도 전혀 걸어 주지 않고, 게다가 갑자기… 누구, 냐니… 아, 하하」

「됐으니까 말해 봐, 하루카. 너는,」

누구야.


대답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치하야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기증이 몰려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주변이 핑핑 도는 것 같다.
치하야는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도대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 걸까. 모두들,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어쩌면 이상해진 건 나뿐인 걸까. 아니, 그런 것들보다도.
나는 왜 이런 이상한 질문에 이렇게나 동요하고 있는 걸까?

「나… 나는, 아마미 하루카… 잖아」

「…」

「아이돌… 응, 아이돌을, 하고 있고, 그리고… 765 프로덕션 소속이고. 친구로는 치하야랑, 미키랑, 그리고…」

「하루카, 너는 아이돌인 거네?」

「… 그건 당연하잖아」

「그럴까. 그럼 넌 어떻게 아이돌이 되었어?」

「어떻게라니… 그야 765 프로덕션에 와서, 오디션을」

오디션에 합격해서 입사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대답하려고 한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눈치챘기 때문이다. 굉장히, 너무나 이상한 것.

 

남아 있지 않다.
765 프로덕션에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어… 라」

「왜 그래? 하루카」

「아니, 아무 것도… 응, 아무… 것도, 아니야, 치하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거지?」

「……」

「하루카, 처음부터 잘 생각해 봐」

「뭘… 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바보 같은 농담이야.
그냥 오래 된 일이라서 잊어버렸을 뿐이야.
그런 농담은 재미없는데, 치하야.

정말로 재미없다니까.

 

 

 

「너는─ 정말로 아이돌이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실에, 치하야는 당연하다는 듯 의문을 던졌다.

 

 


당연하다. 대체 왜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아마미 하루카는 아이돌이다.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사실이다. 765 프로덕션 소속의, 키사라기 치하야와 호시이 미키와 키쿠치 마코토와 미나세 이오리와 후타미 마미와 그리고, 또, 많은, 동료들.
아이돌로서 보낸 나날. 꿈을 이루었던 나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지난 나날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렇게나 염원하던 아이돌이 된 순간만큼은, 어째서인지, 정말로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치하야… 나, 이상해진 걸까나…?」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

「그치만! 하, 하나도… 기억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왜… 어째서…?」

「… 하루카」

「시, 싫어! 치하야… 나! 나…!」

불현듯 뻗어나간 손이 치하야의 소매를 틀어잡았다. 스스로의 제어를 벗어난 일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와 온몸을 유린했다. 이것과 비슷한 것을 불과 오늘 느꼈었다. 걷잡을 수 없는 무서움. 놓고 싶지 않다는 공포.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걷혀버릴 것만 같아서.

걷힌다니.

무엇이?

 

 


「치, 치하야… 가지 마, 아무 데도… 안 갈 거지? 응? 그렇지」


── 우리가 사무소를 차릴, … 지금은 어수선하지만 ──


「응? 왜, 왜 대답해 주지 않는 거야? 치하야, 저기, 치하야… 가지 마」


── 보 같은 계집애가. 순진해 빠져 ──


「무서워… 무서워, 치하야! 잠깐만, 저기! 왜 이러는 거야? 같이 아이돌 했었잖아? 쭉, 그랬잖아! 나, 나는, 765 프로덕션의 모두랑, 그러니까! 치하야, 그렇지! 그렇… 잖아」


── 다. 그렇게 바라던 …… 실컷 보여 ──


「…… 아아, 아」

 

 


차갑고 딱딱하고 아프고 기분 나쁜 곳에 만신창이가 되어 널부러진 채 무언가를 보았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정말로 되고 싶어서, 오디션에서 비참하게 떨어진 보잘것없는 신세인데도 어딘가 받아줄 만한 곳을 계속해서 찾아다녔습니다
자그마한 소형 액정 TV에 비춰지는 노래하고 춤추는 귀여운 여자아이들
그러던 도중 굉장히 친절한 두 분을 만났어요
765 프로덕션 소속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저를 아이돌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셔서
처음 듣는 곳인데 어딘가의 소속사이려나
저는 정말 운이 좋다고 기뻐하며 두 분을 따라갔습니다
아, 예쁘다, 의상도 귀여워, 나도 매일 혼자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이제 곧 사무소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건물에 따라 들어가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두 분은 뒤를 돌아보고 싱긋 웃으시더니
나도 저렇게 되고 싶었을 뿐인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나도 저렇게 되었어야 했는데
여기에는 아무도 없단다
어째서 난
아무도, 말이야
지금 이렇게

 


아냐,


나는

 

 

나도

 

 

 

 

『너도 그렇잖아? 하루카』

 

 

 

 

 


「… 하루카」

치하야의 손이 뺨 위에 얹혔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은, 마치 어머니의 그것처럼 자애로운 동작으로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바로 방금 전까지 매섭고 무감정하게까지 보이던 치하야의 얼굴에는 명백히 다른 것이 떠올라 있었다. 슬픔과, 동정과, 안타까움과, 사랑. 그런 것들을 엿볼 수 있었다.


「알겠어? 하루카」

 

「우리들은, 지금 이렇게가 아니라」

 

「'진짜 우리'로 너와 만나고 싶은 거야」

 

그렇구나, 치하야. 그런 거구나.


「… 아아, 그렇, 구나」


「… 즐거웠는데」


「정말로… 응. 행복했는데… 말야」

 

치하야가 활짝 웃어 보였다. 알 것 같았다. 그 눈빛들의 의미도, 지금이라면 분명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신기한걸.
그런 거, 이해하면 그 순간 어떻게 되어 버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안녕이네. 하루카」

「응, 치하야… 그렇지」

「또 만날 수 있을 거야」

「나 같은 애가, 할 수 있으려나」

「할 수 있어. 하루카 너라면」

「… 치하야」

「하루카」

「나, 역시」

「미안해」

 

「역시, 무서운걸…」

 

 


***

 

 

석양이 쏟아지는 공간 안에 우두커니 선 인영은 하나뿐이었다.
스스로도 얼이 빠져 있다고 느꼈다. 그 와중에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행동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 아마미」


이름을 불린 '아마미 하루카'가 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고여 그렁거리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괴로움에 차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눈을 하고 있는데도.
그 입꼬리만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기괴하게 비틀려 마치 웃는 듯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 여, 긴」

「…… 아아. 그렇구나」

「아까까지, 레슨장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아마미가 이 쪽으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어떤 행동을 하면 좋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게나 확인하고 싶었던 것을 확인하고 나자, 그 다음엔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인가.
옆을 스쳐 지나가던 아마미가 한 마디를 말했다.


「… 미안해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뒤를 돌아보자 아마미는 통로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터벅터벅 울리는 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그곳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 후로는 아마미 하루카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아마미는 등교하지 않았고, 전학을 갔다는 말이 뒤늦게 전해졌을 뿐이었다.

그 때 보았던 동영상 안에서 아마미는 춤을 추고 있었다. 누군가와 즐거운 듯 대화하고 있었다. 영상 안에 다른 인물은 없었다. 전부, 아마미 혼자서 하고 있는 일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765 프로덕션이라는 곳에도 전화를 해 보았지만, 전화를 받은 여성 사무원은 의아한 목소리로 '그런 이름의 아이는 여기 없는걸요?' 라고 대답해 왔다.
아마 동급생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었다는 것이겠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인정하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아마미가 그렇게까지 되어 버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젠 알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을 테지만, 언젠가는 아마미와 우연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된다면, 아마 물어볼 수 있을 테지.


이제는 비어 있는 자리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 앉아 있던 아마미의 예전의 모습이 순간 겹쳐졌다.
그 녀석, 항상 행복해 보였지.
어쩌면 아마미는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역시 책상은 비어 있었다.


나는 빈 책상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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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정도 시점에서 방전됐습니다. 애초에 개연성 있게 짜려면 분량을 훨씬 늘렸어야 했는데

꼭 서두를 필요도 없었을 텐데 후회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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