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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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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6, 2012 13:25에 작성됨.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프로젝트 페어리의 첫 방송데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다 떨려서 전력질주로 맨션단지 세 바퀴를 돈 다음에야 약간 진정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코시엔 결승 당일도 이 정도로 떨리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간에 이번 방송으로 시청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프로듀서?”

운전을 하는 내 표정이 굳긴 굳었나보다. 치하야마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으, 응?”

“어딘가 몸이라도 안 좋으신가요.”

“아아아니! 전혀!”

“표정이 너무 딱딱하신데요.”

“솔직히 긴장은 된다. …엄청.”

그래도 치하야가 지적해준 덕분에 심호흡을 하고 표정을 풀도록 노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무소에 가까워질수록 도로아미타불. 사무소 계단을 올라가면서 평상시대로 하던 아침인사마저 까먹을 지경이 되었다. 하던 대로 문을 벌컥 열기는 했지만, 갑자기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하다가,

“히, 힘세고 강한 아침!”

이라는 사상 초유의 아침인사를 해버리고 만 것이다.
옆에서 치하야가 쿡쿡대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 프로듀서 씨. 좋은 아침이에요!”

“좋다! 아침!”

“…? 프로듀서 씨?”

하루카를 포함한 다른 녀석들이 나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표정들이 저러지?

“아, 아! 그래. 안녕. 하루카.”

“아하하… 굉장히 특이한 아침인사네요.”

“…내가 무슨 말을 했니. 나 솔직히 지금 엄청 긴장해서 죽을 것 같거든.”

“페어리의 방송데뷔 때문에 그러시나요?”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게 맞는 거 같긴 한데… 후. 젠장. 아직 세 명 다 안 왔지?”

“아. 히비키라면 저기…”

하루카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히비키…의 등신대 마네킹이 서있었다. 쟤는 또 왜 저래. 설마 저 녀석도 긴장한 건가? 긴장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을 것 같은 저 녀석이?
나는 한숨을 쉬며 마네킹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어이. 히비키.”

무언가 중얼거리며 멍하니 서있던 히비키는, 그제야 눈을 크게 뜨고 펄쩍 뛰며 내게 한걸음 물러났다.

“으? 우갸앗--! 프로듀서!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호들갑떨지 마. 나도 방금 왔다. 그나저나, 뭐야. 그 꼴은.”

나도 아직 제대로 정신을 차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녀석들 앞에서까지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 그랬다간 동요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나마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정신줄을 놓치지 않은 내가 다 대견했다.

“그, 그, 그게…”

“설마 그까짓 케이블 방송데뷔가지고 얼어버린 건 아니지? 페어리의 리더씩이나 되는 녀석이. 한 번만 더 그런 모습 보였다간 리더 자리 박탈이다.”

내 말을 들은 히비키의 눈에 곧바로 생기가 돌아왔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이 완벽한 내가 긴장이라니! 그러는 프로듀서야말로 긴장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냐, 멍청아. 자. 미키랑 타카네 오면 바로 마지막 점검 들어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순간 뜨끔했지만,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을 냈다. 다행히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고, 히비키도 내게서 별 조짐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히비키답게 회복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걸 보며 놀라고 있는 와중에, 미키가 하품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긴장이라고는 길가다가 오리 선생 밥으로 주고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타카네 역시, 평소의 온화한 표정 그대로였다. 과연 나랑 히비키가 이상한 걸까, 미키와 타카네가 이상한 걸까.

세 사람이 모두 모인 이후, 우리는 칸막이가 쳐진 일명 회의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오토나시 씨가 고맙게도 차를 타주셔서, 네 사람 모두 차를 홀짝이며 프로그램 진행표를 마지막으로 훑어보았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뭔 할 말이 또 있겠냐. 노래는 셋 다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토크파트가 문제군. 제발 부탁이니 엉뚱한 소린 하지 말아주라. 특히 미키 너.”

“미키가 왜?”

“은근히 공격적인 발언 하잖아.”

미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녀석. 정말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대머리한테 대머리라고 말한다던가, 바보한테 바보라던가.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지 말라고.”

“그건 공격적인 말이 아니라 직설적인 거야.”

“잘도 네 입으로 말하는구나. 그러니까 그걸 그만 두라고. 오늘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자제해.”

“…노력해볼게.”

미키의 입에서 나오는 ‘노력해볼게.’라… 결국 자제할 생각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구두로라도 대답을 들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리고 타카네. ‘톱 시크릿’은 좋지만 남발은 하지 말아줘. 맥이 끊긴다고.”

“그건 질문의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히비키는… 뭐.
대충 대화중에 폭주해버릴 것 같은 사람과 상대를 폭주시켜버릴 것 같은 사람과 침묵으로 일관할 것 같은 사람이 모인 건가.
사실은 이게 다 내 기우일 뿐이고, 본방에 들어가면 다들 잘 해주리라고 믿는다.
…제발 그래주라.



점심을 먹고, 대충 소화를 시킨 다음 바로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조수석에 앉은 미키는 시동을 거는 것과 동시에 잠에 빠지는 묘기를 보여주었고, 히비키와 타카네는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들 컨디션은 좋아 보이는구나. 나 역시 이런 녀석들을 보며 아까보다는 훨씬 진정이 된 상태다. 그래. 이래야지. 겨우 방송인데 이러면 나중에 페스티벌 당일은 어쩌자는 거야. 그날 아침에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방송국에 도착해 곧바로 세 사람을 대기실로 보내 준비해온 의상으로 갈아입게 했다. 리츠코가 미리 준비한 필살의상으로, 시착한 모습을 본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것이었다.

“들어가도 괜찮겠어?”
문 안쪽에서 ‘좋다구-’라는 히비키의 말이 들려왔으므로, 나는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닛네임인 ‘페어리’라기에는 약간 도발적인 의상이었지만, 765프로 내에서도 몸매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녀석들이 바로 페어리의 세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역시 좋네.”

“…어딜 보고 말하는 거야. 변태 프로듀서.”

물론 셋 중 가장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미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긴 했지만, 난 프로듀서의 눈으로 옷이 제대로 어울리는지 보고 있었던 것뿐이다. 다른 의도 따윈 없었다. 정말로.
그나저나,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미키의 이 복장은 대단하구나. 거의 톱이 연상되는 작은 상의에 핫팬츠. 거의 헐벗다시피 한 복장이다. 부츠가 무릎 위까지 올라오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위의 복장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키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이 녀석. 평소에도 워낙 자기에게 자신 있는 모습이니까. 이런 것도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 오히려 옆에 있는 히비키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분위기니까 말 다했지. 히비키의 상의는 아예 검은 톱이긴 하지만, 히비키는 그 위에 조끼라도 입었다.
상의가 상반신 전체를 덮어 셋 중 유일하게 복부를 노출하지 않는, 그래봤자 치마가 짧디짧은 치마인 타카네는 그나마 내가 안심하고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럼 난 끝까지 타카네만 보고 말해야 한다는 거냐.”

“…타카네랑 말할 때도 아래는 보지 말라구.”

“어째서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해햐 하는 거야.”

“프로듀서 가슴매니아잖아! 미키에게 모두 들었다구!”

“뭐! 가슴매니아라니. 물론 내가 여성의 가슴에 호감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건 모든 남자들이 마찬가지인데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잠깐. 미키가 말했다고?”

미키를 홱하니 돌아봤더니, 미키는 그녀답지 않게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문을 향해 움직였다.

“미키. 잠깐 나가서 음료수 좀 뽑아올게!”

“어딜 도망가!!”

미키가 후다닥 달려 나가는 것과 동시에 나도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쫓았다. 역시나 미키. 저런 부츠 신고 잘도 달리는구나.

“이, 이상한 사람이 쫓아오는 거야!!”

“남들한테 오해 살 발언은 그만둬!! 아니. 그것보다, 그런 거 신고 전력질주하단 다칠지도 모른다고! 멈춰!”

“싫-어!”

“안 혼낼 테니까 멈춰!”

“저, 정말?”

“그래!”

“약속하는 거야!”

“알았어, 할게! 그러니까 멈춰!”

미키는 그제야 속도를 줄인 후 이내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손으로 무릎을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메이크업하기 전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애초에 너에게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나도 잘못이 있지만, 남의 흑역사를 잘도 말하는구나, 너.”

“흑역사는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흑역사라고 생각하는 거야.”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본인 앞에서. 어쨌든, 더 이상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돌아가면 네가 알아서 히비키랑 타카네에게 설명해.”

“무슨 설명? 타카네가 E컵의 90이라서 프로듀서가 5년 정도 더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걸?”

“그 얘기는 잘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구나!”

“아핫! 미키. 어릴 때부터 기억력 좋다는 소리 들어온 거야.”

“지금이 자랑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너는.”

여기서 더 이상 말다툼해봤자 시간낭비일 뿐이고, 여기까지 나온 김에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미키는 지쳤다는 것을 핑계로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아 나 혼자 히비키에게 해명하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여차저차해서 리허설까지 마치게 되었다. 그놈의 리허설 하나 때문에 나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했다. 프로듀서라는 게 역시나 안 보이는 곳에서 이렇게 바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미키의 ‘Day of the future’, 타카네의 ‘상냥한 양손’, 히비키의 ‘Is This Love’. 그리고 마지막 단체곡인 ‘나는 아이돌’의 리허설까지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본방을 기다렸다. 리허설대로만 하면 다들 멋진 데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스텝이 안내하는 대로 대기실을 나와 세트 입구 앞까지 이동했다.

“본방 5분 전!! 전 스텝 스탠바이!”

스텝의 외침에 내가 다 긴장이 되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바싹바싹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있는데, 그 모습을 봤는지 세 사람 모두 작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프로듀서. 우리보다 더 긴장하면 어쩌자는 거야?”

“와. 진짜. 이건 말도 안 된다. 어째 재작년 플레이오프 마지막 5차전보다 더 긴장된다고. 니들은 어떻게 긴장 안할 수가 있는 거야?”

“…솔직히 말하면, 나도 조금 떨리지만.”

히비키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시인하자, 타카네 역시 평소보다 약간 굳은 얼굴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미키 역시 두근거리는 듯 오른손으로 가슴을 꼭 누르고 있었다.
물론 세 사람 모두 이전에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지만, 그런 마이너 방송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은 방송인데다, 우리 프로덕션의 미래를 책임질 프로젝트 유닛의 첫 데뷔이다 보니 긴장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빨리 진정해야겠다. 아까도 몇 번이나 이 녀석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게 하기위해 노력했으면서, 막상 시작 전에 이게 뭐야.

“아. 음. 으흠. 좋아. 침착하자고. 내가 너희들에게 못 보일 꼴을 보였군.”

크게 심호흡을 한 번. 내가 하자 세 사람 모두 동시에 따라했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히비키도, 타카네도, 미키도. 방송사고만 안내면 되겠지.”

“…뭐야 그 말은. 어째 사기를 더 떨어뜨리는 것 같다구.”

“괜찮아. 문제를 일으켜도 사장님께서 다 해주실 거야.”

“무, 문제를 일으키는 건 이미 기정사실인 거야?”

“그건 아니지만, 지금같이 긴장한 상태에서 나가면 그렇게 될 것 같은데.”

내 말에 심호흡을 한 이후부터 눈을 감고 있었던 타카네가 눈을 떴다. 그 표정에는 예의 평온함이 돌아와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프로듀서님의 말이 맞습니다. 너무 긴장하면 될 것도 안 되게 되어버리겠지요.”

“그래. 무엇보다 프로젝트 페어리의 기념비적인 첫 행보라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765프로에겐 커다란 도약인 셈이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습니다만.”

“신경 쓰지 마. 지금 그게 중요하냐.”

“푸훗. 진실로,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따로 있지요.”

“그래. 어쨌든, 너희들은 워낙 잘하는 녀석들이라는 걸 아니까.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해도 충분해. 백퍼센트 먹히고도 남아.”

이 말은 세 사람에게 해준 말이었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았다. 그래. 이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다.

“본방 시작합니다-! 게스트 스탠바이!”

스탭의 외침에 네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찔했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세 사람이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게 하기 위해 어깨를 잠깐씩 마사지해주었다. 평소라면 변태를 운운할 히비키 역시 내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는지, 아니면 긴장해서 느끼지 못하는 건지 가만히 내 손에 몸을 맡겼다.
드디어 사회자가 프로젝트 페어리의 소개를 시작하고, 세 사람은 무대에 입장할 준비를 갖췄다.

“괜찮겠지?”

“응. 문제없다구!”

좋아. 평소대로의 히비키다. 타카네와 미키 역시. 평정을 되찾은 것 같아 보였다.

[프로젝트 페어리의 세 분을 소개합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울려퍼지고, 나는 마지막으로 무대로 향하는 세 사람을 향해 손을 펼쳐보였다. 가장 먼저 히비키가 내 손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손을 마주쳤고, 그 다음으로 타카네가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으며, 미키는 손을 마주치는 척하다가 이내 혀를 날름 내밀고 가버렸다. 그러더니 입장하기 전 뒤를 돌아보고 나를 향해 방긋 웃으며 윙크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갔다 올게!”

다행이다. 세 사람 모두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나 역시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페어리는 여기서부터 날개를 펼치는 거다.


♬ 나는 아이돌 - 프로젝트 페어리

꽤 오래 지속된 수록도 이제 마무리에 이르러, 세 사람의 마지막 곡이 진행되고 있었다. 와. 정말이지.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2시간 가까이 지속된 수록동안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세 사람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더니,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젠장. 소변이 마려운데 조금만 더 참아야지.

내가 보기엔 이번 방송.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은 내가 방송 직전까지 했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래도, 토크도 모든 것을 매끄럽게 해냈다. 정말이지. 그렇게 잘한다 잘한다 해놓고 왜 그런 걱정을 했는지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였다.
막나가는 걸 걱정했던 히비키는 역시나 큰 목소리로 떠들어댔지만 사회자의 짓궂은 질문에는 평소에 내가 놀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리숙한 반응을 보여 건강미 넘치지만 충분히 소녀다운 모습을 보였으며, 직설적인 발언을 걱정했던 미키 역시 평소 그대로의 발언으로 사회자를 당황하게 할 정도였지만, 그것이 자유분방한 요즘세대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 자체로 어필한 것 같았다. 톱 시크릿을 남발하는 걸 걱정했던 타카네는 의외로 능숙한 완급조절로 신비주의 컨셉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결국 내가 걱정할 하등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세 사람의 솔로 역시 대호평이었고, 이 방송이 제대로 전파를 탄다면, 페스티벌 전에 목표했던 인지도를 쌓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가 최고로 빛나고 있는 것 같아
하긴 태어날 때부터 다이아 원석 같았는 걸
좀 더 크게 되지 않으면 정말 뭔가 잘못된 거잖아?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는 뒤늦은 사람들에게도
이 매력빔으로 하트를 록 온 하는 거야!


일사불란하게 멋진 댄스를 보여준 세 사람이 마지막 포즈를 취하고 음악이 끝나자, 세트장은 열렬한 박수소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제 끝인가. 이번 일을 경험삼아 다음 일부터는 괜히 쫄지 말아야겠다. 정말이지. 되짚어보면 꼴불견이잖아. 이렇게 잘 해낼 거 뭔 걱정을 그렇게 해댄 건지.

수록이 모두 종료된 후, 나는 마지막으로 스텝들에게 인사를 건넨 다음(PD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나는 입가가 자꾸 벌어지는 걸 참느라 꽤나 고생해야만 했다.), 그동안 참았던 걸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른 후 대기실로 돌아가자 아직 의상도 갈아입지 않은 세 사람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고했다. 너희들 진짜 굉장했어.”

“흐흥! 문제없다고 했지?”

“사회자 아저씨. 우리들 대단했다고 칭찬해줬어. 앞으로도 응원하겠다고 해준 거야.”

“후훗… 진실로,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들이 많아지겠지요.”

“그래. 이 기세로 페스티벌도, 그 이후도 잘 해나가자고.”

“응!/알았어!/네.”

“좋아… 그렇다면 오늘은 상으로 저녁 살 테니까. 메뉴는 뭐든지 좋아.”

“정말이지!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구!”

“미키는 주먹밥도 먹고 싶고, 단것도 먹고 싶고… 음…”

“이런 경사스러울 데가. 히비키, 미키. 이런 일은 신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뭐. 인원 중에 타카네가 있다는 사실이 약간 걸렸지만, 이런 좋은 분위기에 그런 걸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마냥 좋았다. 앞으로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거라면, 역시 프로듀서는 좋은 직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예상대로 지갑이 탈탈 털려버렸지만, 뭐. 괜찮다. 그만큼 수고해줬으니까. 단지 데뷔만으로 이 정도라면 페스티벌 끝나면 통장이 탈탈 털릴 것 같다는 공포심이 들었을 뿐이지만.
마지막으로 디저트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네 사람은 차에 탑승했다.

“자. 이제 돌아가서 사무실에 승전보를 전하는 일만 남았네.”

“후아. 이제야 조금 피곤한 기분이네. 그래도 재미있었다구.”

“미키도 재미있었던 거야. 이제 미키. 빛나기 시작한 거지? 앞으로 더 빛날 수도 있는 거지?”

“그래.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해줄게.”

“아직 너무 이른 말 같지만, 이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는 느낌이로군요.”

“세 사람 모두. 오늘 정말 수고했어. 잘해줘서 고마워.”

“프로듀서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난 아직 더 수고해야지. 이번에 재대로 해준 일도 없으니. 이제부터가 내 차례라고.”

“헤에. 굵직굵직한 일들 얻어다주는 거야?”

“글쎄다. 그래도 페스티벌 전까지 그렇게 큰일을 얻는 건 무리겠지만.”

“괜찮아. 프로듀서. 우리들은 이제 막 시작한 거라구.”

“내, 내가 할 말을 가로채지 마라. 멍청이. 리더라고 기어오르는 거냐.”

“누, 누가 멍청이라는 거야, 이 변태가!”

이 자식이 또 나를 변태라고 불렀겠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후… 후후. 히비키.”

“가, 갑자기 뭐야. 그 웃음은.”

“방금 나를 변태라고 불렀지? 나는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프로듀서…?”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나를 변태라고 부르는 건 참을 수 없다!!”

“우갸--!! 타카네!! 프로듀서가 이상해!!”

“이리와!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주지. 어차피 좁아터진 차안이라 도망갈 곳따윈 없다!”

“…미키. 그 스푼은 어디서 나타난 것입니까. 다들 그 스푼을 들고 있는데 저만 없군요. 혹시나 이 아이스크림이 불량품인지…”

“응? 타카네. 그거 아이스크림 밑부분을 열면 들어있는 거야.”

“밑부분 말입니까. 이, 이런… 기이한!”

“타카네에----!! 나 좀 도와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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