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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5, 2015 14:20에 작성됨.

간만의 오프. 예능계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에게 주말은 없지만 토요일날 오프인 아이돌이라고 하면 아직 갈길이 먼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방송이야 생방송이 아니라면 토요일이라는 좋은 시간대의 방송을 꼭 토요일날 녹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벤트 같은 경우에는 팬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주말에 열리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반성해야 할 일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오늘같은 날까지 레슨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나름 일거리가 늘어서 완전히 쉬는 날은 오랜만이기도 하고 한동안 내리던 비도 그쳐 화창했다. 빨래도 잘 마르겠다 싶은 햇볕을 받으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모두들 나처럼 오랜만의 햇볕을 반기며 나온 거겠지. 아이와 그 부모님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그 모습이 조금은 부러웠다. 아이돌 일을 시작하면서 부모님을 뵙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고, 연애도 무리였으니까. 게다가 아이돌이기 이전에 남자친구 같은 건...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바라보고 있으면 흐뭇했다. 카메라를 꺼내서 찍으려는데 문득 망설여졌다. 풍경이나 건물, 동물 같은 거라면 상관 없지만 사람을 찍는 건 상대방의 동의 없이 괜찮은 걸까?

"…뭐 하고 있어?"
"그야 사진을… 에에?!"

갑자기 뒤편에서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같은 사무소의 린이 있었다.

"깜짝 놀랐잖아, 린!"
"아니, 이미 몇 번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니까."
"그, 그랬어?"

린의 나머지 한 손에는 목줄이 쥐어져있었다. 하나코와 산책을 나온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산책이나 하면서 사진 찍고 있었지. 린도 산책?"
"응. 간만에 한가해서 말이야."

그런가. 린도 오늘 오프였구나.

"잘 됐네. 괜찮으면 같이 걷지 않을래?"
"그래."

린과 함께 걸으니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모르겠다. 제법 가까운 편이지만 각자 일로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게다가 린은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어서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러고보니 린네 집, 꽃집이었지?"
"응. 그런데 왜?"
"린이라면 꽃에 대해 잘 알 것 같아서."
"…어느 정도는?"

사실은 린을 만났을 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꽃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이 꽃, 뭔지 알려줄 수 있어?"

다섯 장의 붉은 꽃잎을 가진 압화였다.

"나도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아는 건 아니니까… 짚히는 게 없지는 않은데. 잠시만 기다려줘."

린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더니 무언가 찾고 있었다. 한 손에는 목줄을 잡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보면서 용케도 걸을 수 있구나 싶었다. 나라면 분명히 넘어지거나 부딪힐텐데.

"…흐응. 아이코."
"응?"
"그 압화, 누구한테 받은 거야?"

그렇게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나도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으니까.

"글쎄… 오늘 아침에 집 앞에 편지처럼 와 있었거든. 누군지는 모르겠어."
"…흐응. 짚히는 게 없지는 않은데…"

린은 뭔가 짐작가는 데가 있는 듯 했지만 알려주지는 않았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게 맞으면 내가 다 말해버리면 보낸 사람의 마음이 흐려져버리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해도… 나는 꽃에 대해 잘 모르는 걸."
"그 꽃의 이름은 히비스커스라고 해."

알려주는 건 여기까지, 라고 선을 긋는 것처럼 린은 말했다. 어쩔 수 없나. 이름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고마워, 린. 답례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같이 카페 가지 않을래? 원래 나도 거기 가려고 했었고… 차 한 잔 정도는 대접해야 수지가 맞으니까 말이야."
"카페…?"
"내가 좋아하는 곳. 자신있는 곳이라고 해도 괜찮고."

-

린과 함께 카페에 들어서자 특유의 커피 향기가 느껴졌다. 서점에서 책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카페에서도 느껴지는 향기가 있었고 나는 이곳의 분위기와 향기를 좋아했다.

"뭐 마시고 싶은 거라도 있어?"
"으음… 나는 그냥 카페 라떼로."
"그럼 나도 같은 거에 호박 타르트로 할까."

내가 주문을 하자 린이 옆에서 제법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한데…"
"에이, 그래도 모처럼 만났는데."

흔치 않은 만남인데 대접히 섭하면 곤란하지. 주문을 마치고 어디에 앉을까 잠시 가게 안을 둘러보는데 먼저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코, 여기 앉지 그래?"
"…유미 씨?"

저편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요즘 주가를 높이고 있는 유미 씨였다. 오늘은 아무래도 우연한 만남이 많은 것 같다.

"린, 괜찮을까?"
"상관 없어."

혹시 몰라 린의 의향을 물어봤지만 괜찮다고 하기에 유미 씨가 있는 자리에 함께 앉았다.

"유미 씨, 여기는 시부야 린.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346 프로덕션의 동료. 린, 여기는 아이바 유미 씨."

내 소개에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유미 씨가 웃음을 터트렸다.

"유미 씨?"
"아, 미안미안. 순간 못 참아서 말이지…"
"그게, 유미랑 나는 이미 아는 사이거든."
"에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꽃에 일가견이 있는 유미 씨와 꽃집을 하는 린은 데뷔 초부터 알던 사이라고 했다. 나만 몰랐던 건가…?

"그래서, 오늘은 다들 어쩐 일이야?"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유미 씨가 이 카페에 있다니."

평소에 자주 오는 카페였는데 유미 씨를 만난 적은 없었는데.

"오늘 오프라서 말이지. 가끔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볼까 해서 말이야."
"나도 오프여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아이코와 어울리게 되어서 오게 되었어."
"…뭔가 제가 중간에 끼어버린 느낌이네요."

셋 모두 서먹서먹하지 않은 사이인데도 뭔가 알 수 없는 어색함때문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코는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거야?"
"네? 무슨 일 있나요?"
"…정말 모르는 거야?"

린과 유미 씨 모두 나를 보면서 심각한… 아니, 심각하지는 않지만 의외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이 몇일인지도 잊어버린 거야…?"
"에… 오늘이 7월 25일이니까…… 아."

그제서야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깨달았다. 요즘 하루하루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날짜가 지나는 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럼 이 압화는 유미 씨가?"
"의외로 눈치가 빠른데? 다만, 날짜도 잊어버릴 정도라는 게 문제지."

린과 유미 씨는 눈을 한 번 맞추더니 동시에 말했다.

"생일 축하해, 아이코."

린은 우연이었던 것 같지만 유미 씨는 압화도 그랬고 이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가, 감사합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감사의 인사가 나왔다. 갑작스런 축하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이코, 히비스커스의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이야."
"그걸 여기서 말하면 어떻게 해, 린!"
"그야… 아까 아이코가 물어봤는걸. 지금이라면 대답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유미 씨의 얼굴도 새빨개졌다. 린은 그걸 보면서 조그맣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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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짧게 써 봤습니다. 생일이니까. 패션의 양심 플라워리(+린)! 산책과 꽃으로 엮인 세명이라는 느낌으로...

누가 드럼통보고 아이코라고 놀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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