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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세이크리드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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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7, 2015 20:45에 작성됨.

 처음에는 누구도 그녀의 등장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그녀는 무대의 한 쪽에 서 있었다. 조명은 꺼져 있었지만 사람의 형체는 충분히 알아챌 수 있는 정도였다. 보통 무대에서 공연이 시작되기 전 출연자가 걸어 나오면 얼굴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지만 이미 관객들은 눈치를 채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던 자리에 어느샌가 조용히 서 있었다. 한 두 명 씩 눈치를 채고 웅성웅성 거리다가 마침내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호시이 미키다!!"

 

 그 순간 호시이 미키는 선가락을 튕겼다. 폭발하는 섬광이 무대를 뒤덮었고 터져 나오는 음악과 함께 호시이 미키는 뛰어올랐다.

 

 "모두들! 같이 가는 거야! edeN!"

 

 익숙한 전주와 함께 호시이 미키는 댄스를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호시이 미키는 귀여운 이미지보다는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내가 호시이 미키라는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가련하기보다는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가지 말라며 절규하는 것이 호시이 미키에게는 더 어울렸다.

 

 "푸른 하늘 아래 당신과 만나고 사랑한다는 기분을 알고 멈출 수 없는 운명을 믿게 되었어-"

 

 결코 만만치 않은 안무였지만 호시이 미키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같은 765 프로덕션의 키사라기 치하야같은 아이돌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호시이 미키 또한 뛰어난 보컬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역시 안정적이라는 점이었다. 최고의 보컬은 아니지만 격렬한 댄스를 소화하면서도 호흡이 달리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거기에 비주얼도 뛰어나니 톱 아이돌이라는 자리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단하네요, 치히로 씨."

 "네? 미키 말인가요?"

 "그것도 그렇지만 이런 공연 티켓을 어떻게 구한 겁니까?"

 

 호시이 미키의 공연 티켓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하기조차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었고 암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프로듀서 씨가 미키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틀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은 없다는 점인데… 이 사람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직 프로듀서 씨는 경험이라는 게 전무하니까요. 별 것 아닌 듯 보여도 이런 것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경험이 된답니다."

 

 물론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전혀 감도 오지 않았다. 저런 무대를 보고 연출이나 기획에 대한 구상을 떠올릴 수 있는 감각도 나에게는 없었다.

 

 "그냥 보통 팬의 관점 이상으로는 볼 수 없는 걸요."

 "지금은 그걸로 됐어요."

 

 치히로 씨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와 함께 윙크를 날렸다.

 

 "오늘은 프로듀서 씨에게 '진실'을 보여주려는 것뿐이니까요."

 

 -

 Project Sacred

 #02 아무래도 나에게는 기적이 내려온 것 같아서

 -

 

 다음날 다시 346 프로덕션을 찾아갔다. 공연이 끝나자 시간이 늦은 밤이 되어버렸기에 치히로 씨는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 하자며 돌아갔다. 지난번에 왔을 때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사무실로 들어가는 문에는 '임시'라는 팻말이 작게 붙어있었다.

 

 "치히로 씨… 어라?"

 

 사무실로 들어가 보니 치히로 씨가 아닌 다른 여자가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외모. 긴 머리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도 너무 어리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적어도 고등학생은 넘어 보였지만 요즘은 외형으로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그 여자는 전에 치히로 씨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에 집중한 나머지 내가 들어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치히로 씨인 줄로만 알고 인사까지 하면서 소리를 냈는데도 여전히 시선은 책에 못박혀있었다.

 

 "저, 저기요…?"

 "……."

 "…실례합니다?"

 

 평범하게 불러도 다시 대답이 없자 일부러 큰 소리를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제서야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었지만 앞머리에 눈 쪽이 가려져서 인상을 판단하기 힘들었다. 긴 머리는 머리띠로 정리를 하고 있었지만 눈을 다 가릴 정도로 앞머리가 내려와 있는 건 본인의 의지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긴 치마에 니트 스웨터를 입은 것도 가려진 사이로 보이는 푸른 눈동자도 예상대로 제법 어른스러운 느낌이었다.

 

 "……."

 "……."

 "…누구십니까?"

 

 그녀가 먼저 이 자리에 와 잇었고 내가 그녀를 불러서 고개를 돌리게 했으니 무언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없어서 내가 먼저 물어보고 말았다.

 

 "……."

 

 나의 물음에도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풍기는 분위기나 조용한 모습도, 약간은 어둡지만 꿰뚫어보는 것 같은 푸른 시선도 내 취향이기는 했다. 괜히 남에게 피해를 끼칠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이고. 그런데 이렇게 조용한 건 너무하잖아?

 

 "……읏."

 

 처음으로 들린 그녀의 목소리는 자기소개도 아니고 어떤 말도 아닌 미묘한 소리였다. 그리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나를 스쳐 지나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뭐지, 이 상황은."

 

 치히로 씨를 만나러 왔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있었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기에 누구인지 물었더니 갑자기 도망을 가버렸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한데 내가 무지 나쁜 놈이 된 것 같잖아.

 

 "왜 그렇게 서 계신가요? 마치 살인을 저지르고 망연자실해있는 범죄자처럼."

 "…무슨 비유가 그렇습니까, 치히로 씨."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기다리던 치히로 씨의 목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 사람, 취미가 고약하다. 왠지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웃입니다.

 

 "농담이에요, 농담.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긴 한데."

 "…그런 거 없습니다."

 "그래요. 일단 앉죠."

 

 여전히 살풍경한 방에서 치히로 씨와 나는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어느 쪽에 앉던 상관은 없었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방금 전의 여자가 앉아있던 자리를 피했다. 치히로 씨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앉았다. 지난번에도 그 자리에 앉아있기도 했고.

 

 "무슨 이야기이기에 이렇게 뜸을 들여서 여기까지 와서 하는 겁니까?"

 "공연장은 시끄럽기도 하고 듣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시끄러우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일부러일까, 아니면 그냥 생각이 짧았던 걸까.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프로듀서 씨가 앞으로 이 일을 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테니 의미를 두려고 굳이 이곳에서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냥 평범한 공연이었지 않습니까?"

 

 물론 대단하긴 했다. 톱 아이돌의 이름에 걸맞은 완벽한 공연이었다. 완벽이라는 말을 뛰어넘을 정도의 공연이었다. 하지만 치히로 씨의 거창한 말과는 달리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다.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 부서는 시작단계일 뿐이고 이제 프로듀서로써의 첫 발을 내딛은 나에게도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건 별로 없어보였던 공연이었다.

 

 "미키의 움직임, 어땠나요?"

 "움직임?"

 

 나는 어제 공연에서 보았던 미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야…"

 "완벽했죠?"

 

 치히로 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채고 선수를 쳤다.

 

 "…그렇죠."

 "너무 완벽하지는 않았나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렇게 완벽하니까 톱 아이돌의 자리에 오른 거잖아.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완벽하다던가 하는 유치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사람에게는 노력으로도 재능으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거죠."

 

 치히로 씨는 자연스럽게 어디선가 가져온 에너지 드링크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그야 당연하죠.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재능이 있어도 하늘을 날 수는 없으니까요."

 "…말을 잘못 골랐내요. 어떤 의미로는 재능이 있다면 벽을 넘을 수 있어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능이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나는 자연스럽게 음료수 캔을 따려다가 문득 어떤 느낌이 들어서 멈칫했다.

 

 "호시이 미키는 시간을 멈출 수 있습니다."

 "……네?"

 

 당황스러웠다. 황당했다. 갑자기 저런 말을 들으면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 걸까.

 

 "굉장히 어려운 안무를 추면서도 손 끝 하나 틀리지 않는 정확함도, 그런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 보컬도 모두 시간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지금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갑자기 그런 말을 믿으라고 하는 건 무리겠죠. 개인적으로 '그럼 증거를 보여주지!' 같은 방식은 이류같아서 싫어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네요. 아무리 잘 이야기한다고 해도 가지고 있던 상식을 뛰어넘는 이야기니까요."

 

 말하는 게 마치 증거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일단은 헛소리라고 생각해도 좋으니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들어는 보죠."

 "아이돌의 대부분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호시이 미키의 이야기보다 더 황당했지만 들어보겠다고 말을 했으니 지키기는 해야지.

 

 "대부분이라고 말한 건 일부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그 능력이 없는 아이돌들은 대부분 밀려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돌은 능력자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죠."

 

 아이돌이 개성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너무 나갔다. '이 아이돌은 힘이 정말 셉니다!'라던가 '이 아이돌은 정말로 유연해서 몸을 완전히 둥글게 말 수 있습니다!'같은 것까지는 어떻게든 이해를 하겠지만 '이 아이돌은 시간을 멈출 수 있습니다!'는 아니지. 온갖 최신 기술들이 나올 때마다 혹시 그런 초능력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몽상을 하기도 했지만 이런 시점에 초능력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어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백 보 양보해서 그런 힘이 있다고 치고, 그 힘은 어떻게들 얻었답니까?"

 "그건 알 수 없어요. 그걸 알았다면 정부라던가 어딘가의 비밀조직에서 대량으로 능력자를 양산해서 군대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그럴싸하다. 뭔가 제한사항이 있는 거겠지. 그런데 왜 당신은 그걸 알고 있는 거냐니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아이돌'에 관련되어 있다는 건 확실해요. 일반인들에게는 능력의 존재 자체조차 알려져 있지 않지만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이돌들 뿐. 은퇴한 사람들 중에서도, 다른 예능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능력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했죠."

 "그런 경우는 다른 게 아니라 다들 숨기고 있을 뿐인 건 아닙니까?"

 "그럴 지도 모르죠. 하지만 확인된 사실만 말하자면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네요."

 

 인간을 초월한 능력이 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능력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멀리 돌아오기는 했지만 결국은 아이돌 세이크리드의 이야기에요."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346 프로덕션이 아이돌 부서를 만들게 된 게 아이돌 세이크리드 때문이라는 건 들었지만 그 이야기가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쿠로이 타카오 사장이 무슨 생각으로 아이돌 세이크리드라는 오디션을 만들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돌 세이크리드의 존재 이유는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지금의 765 프로덕션의 아ㅣ돌들을 포함한 능력을 가진 아이돌들. 말하자면 강자들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환경을 만들어 버린 거죠."

 

 치히로 씨는 이제야 되었다는 듯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말했다.

 

 "프로듀서 씨를 끌어들인 건 그 때문입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해는 어떻게 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겼는지 알 수도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돌들의 싸움에 내가 끼어야 할 이유는 뭐란 말인가.

 

 "당신은 비뚤어졌어요."

 

 이번에도 치히로 씨는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먼저 말했다.

 

 "너무나 올곧기 때문에 23.4도 기울어진 세상에서는 오히려 비뚤어진 존재죠."

 

 치히로 씨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비뚤어진 축을 다시 원래대로 세워놓으려는 쪽일 뿐이니까요."

 

 나는 자신이 품평당하는 것이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적당한 대답도 떠오르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떤가요, 이제 생각이 달라졌나요?"

 

 기분 나쁜 여자였다. 모든 걸 알고 있는 듯이 이야기한다. 정말로 모를만한 것도 알고 있다. 분명 평범한 사무원의 직함을 달고 있으면서 정의의 대변인이라도 된 것 처럼 군다.

 

 "어차피 제가 할 일은 평범하게 아이돌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뿐, 아닙니까?"

 "뭐, 그렇게 생각하셔도 되구요."

 

 일단은 어려운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했다. 나는 소개를 받아 일자리를 얻었을 뿐이고 하라는 일을 충실하게 하면서 적당히 돈을 벌면 되는 거다.

 

 "그럼 어느정도 정리가 된 것 같기도 하니 직접 이야기 하는 쪽이 빠르겠네요."

 

 치히로 씨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그래. 미안미안, 오래 기다렸지? 지금 오면 돼."

 

 통화는 누군가를 부르는 내용이었는데 용건은 그게 다였는지 바로 끝나버렸다.

 

 "지금 불렀으니 금방 올 거에요."

 

 순간 '누구요?' 라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지는 충동이 순간 일었으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담당할 아이돌…이겠죠."

 "정답! 역시 똑똑한 학생이네요."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서 치히로 씨의 시선을 피했다. 계속 느껴온 거지만 이 사람은 간격이 너무 좁다.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검사들이 서로 간격을 재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항상 간격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 간격이 너무 멀면 어색한 느낌이 들고 너무 가까우면 부담스럽다. 센카와 치히로라는 사람의 간격은 항상 미묘하게 좁아서 부담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다만 그게 무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계산된 행동인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단 말이지.

 

 "실례합니다."

 

 정말로 얼마 걸리지 않아 사무실에 누군가 들어왔다. 그때까지는 혹시나 아까 본 그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들어온 건 다른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치히로 씨.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들어온 여자아이는 공손하게도 치히로 씨와 나에게 따로따로 인사를 했다.

 

 "타카모리 아이코, 15살입니다. 아직 데뷔는 하지 못했고 처음이라서 많이 미숙하지만 일단은 아이돌을 하고 있습니다."

 

 인상도 목소리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소녀였다. 아까 있었던 여자가 차가운 느낌의 차분함이었다면 타카모리 아이코라는 소녀는 따뜻하고 포근한 차분함이 느껴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15살이면 한참이나 어린 상대였지만 우선은 존대를 했다. 일 때문에 만난 거라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지만 상대가 어리다고 초면부터 반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고민을 한 건 나이 차가 제법 나기 때문이긴 한데… 15살과 22살의 차이와 22살의 29살의 차이는 크다. 후자의 경우에는 초면에 절대로 반말을 할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전자의 경우는 미묘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역시 치히로 씨네요. 좋은 분 같아요."

 "아이코도 그렇게 생각하지?"

 

 저 소녀는 무엇을 보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한 걸까. 만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았고 서로 첫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 그저 초면에 존대를 했다고 좋은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만."

 "아니에요. 치히로 씨의 안목도 안목이지만 제가 봐도 프로듀서 씨는 좋은 사람처럼 보여요.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 좋은 사람이던걸요. 부끄럼쟁이들 같네요."

 

 마음 속에서 찔리는 부분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여튼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프로듀서 씨. 앞으로 함께 해 나갈 파트너니까요."

 

 아이코 씨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나라는 사람은 역시 부끄럼쟁이인지 그렇게 평소에는 그렇게 올바름 운운하면서도 정말로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럼 저는 아이코 씨 한 명만 담당하면 되는 건가요?"

 "그게… 일단은 유닛으로 가려는 게 계획이에요. 두 명이나 세 명 정도."

 "그럼 나머지는?"

 "아직이요. 일단 아이코는 선발에서 뽑힌 첫 번째 인원이니까요."

 

 선발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보통 오디션을 한다면 프로듀서도 함께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런 건 언제 진행된 겁니까?"

 "아, 보통의 오디션 같은 건 아니에요. 개인적인 면접… 면담이라고 하는 게 더 적당하겠네요. 그런 방식으로 소질이 있는 아이를 찾아내는 거죠."

 "저도 제 자신이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프로듀서로써 직접 보고 정하는 편이…"

 "기본적인 틀은 이쪽에서 제공해야하지 않느냐는 게 '위쪽'의 판단이거든요."

 

 그렇게 말하니까 섭섭한 기분이었다. 어딜 가나 위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 사회의 룰이라지만 이래서야 나는 그냥 뒤처리 담당같잖아.

 

 "혹시… 제가 별로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나와 치히로 씨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아이코 씨가 불안해하며 말했다. 결코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천만입니다. 아이코 씨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아이 참, 그냥 아이코라고 부르세요. 아이코 씨라던가 어색하니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이코."

 

 내 말에 아이코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코라고 부르면서 '알겠습니다.' 같은 딱딱한 말투를 쓰니까 엄청 어색하잖아요. 후후후…"

 

 어색한 건 알겠지만 원래 말투가 이런 것을 이제와서 고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물론 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바닥인 게 잘못이다. 치히로 씨에게는 왠지 반발심에 쏘아붙이는 느낌으로 제멋대로 이야기해버렸지만 아이코와 이야기하면서 내 부덕함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앞으로 계속 봐야할 텐데 어서 친해져야죠. 그렇죠?"

 "……"

 

 그렇지 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그저 입 안에서만 맴돌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따. 그래도 아이코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정도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거다. 왠지 손을 이끌려 뒤따라 걷는 느낌이라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자, 그럼 서로에 대한 소개로 대략 된 것 같으니 두 번째 멤버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치히로 씨는 작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겁니까?"

 "아뇨. 확정된 건 아이코 뿐이고 두 번째는 봐 둔 정도일까요. 이 경우에는 프로듀서의 판단도 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요. 게다가 세 번째는 아예 정해지지도 않았고."

 

 멋대로 첫 번째는 정해버렸으면서 두 번째는 내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뭘까. 이제 와서 대접이라도 해주겠다는 건지 아니면 내 판단이 필요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비뚤어진 생각을 하고 있나?

 

 "대충 이 시간 쯤에 여기로 와달라고 전해뒀는데…"

 

 치히로 씨에게도 능력이 있다면 분명 마음을 읽는 능력일 거다.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그런 착각이 들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예지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 끝나자마자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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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에게는 기적이 내려온 것 같아서>

스즈무 - 과식성 아이돌 증후군 : https://www.youtube.com/watch?v=AirI6BVyBL8

 

뜬금없지만 첫 멤버는 아이코라는 걸로.

글을 쓰기 힘든 환경에 있다 보니까 한 달에 한 편 나올까 말까라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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