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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가 된 이유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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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5, 2015 00:11에 작성됨.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끝나자 곧이어 불이 모두 꺼지면서 무대 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관객들 사이에 퍼진 당황도 순간, 다음 무대를 위해 잠깐의 준비시간을 가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자 기대감과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무대 위에 빛이 내려왔다.

 

 "시부린!!!"

 

 무대 위에 다시 나타난 시부야 린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그녀의 애칭인 시부린을 연호했다. 린의 의상은 무대의상이라기에는 조금 수수한 하얀 원피스였다. 한 손에 마이크를 들고 가만히 객석을 응시하는 모습은 노래를 시작하기 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는 린의 모습을 보고 관객들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연호하던 소리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객석이 다시 조용해진 후에야 린은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이렇게 오늘 찾아와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린의 말에 곧바로 응답의 환성이 터져 나왔지만 평소 같았으면 활기찬 목소리로 외쳤을 린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 것 때문인지 조그맣게 웅성거림이 생겼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계속 이렇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분명 여러분들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지금 저도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테지요.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린에게 다시 한 번 함성소리로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만큼이나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정말로 시부야 린이라는 소녀는 이런 멋진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여러분의 앞에 서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럼 불러볼게요. 나와 주세요, 프로듀서."

 

 린이 손짓하자 무대의 오른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단정한 머리를 하고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미남은 아니었지만 대기업의 유능한 회사원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의 유능한 회사원이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도 쭈뼛쭈뼛한 자세로 걸어나왔다. 이 자리가 탐탁지 않은 듯 걸어 나온 프로듀서는 무대의 중심까지 걸어와 린의 옆에 섰다. 프로듀서가 다가오자 린이 마이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시부야 린의 프로듀서입니다."

 

 프로듀서가 공손하게 인사하자 박수가 이어졌다.

 

 "원래 이런 자리에 나와서는 안 될 사람이지만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고집이라고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린 덕분에 이렇게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프로듀서의 멘트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린은 프로듀서에게 투덜거렸지만 마이크를 들고 있지 않았기에 크게 들리지는 않았다.

 

 "이렇게 나온 김에 이 자리를 빌어서 우리의 신데렐라 걸, 시부야 린에게 다시 한 번 축하를 보내고 싶습니다."

 

 프로듀서가 박수를 치자 관객석에서도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린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린도 정말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지 못했겠죠. 저 또한 제가 담당하는 아이돌이 여기까지 다다를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듀서도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객석에서도 박수가 다시 터져 나왔다.

 

 "그럼 저같이 칙칙한 뒤편의 사람은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이 공연은 신데렐라 걸이 된 기념으로 열리는 린의 단독 콘서트니까 주인공이 다시 나서야겠죠. 남은 순서도 즐겨주세요!"

 

 프로듀서는 마이크를 린에게 다시 넘기고 손을 흔들며 무대 밖으로 사라져갔다. 린도 프로듀서에게 손을 들어 화답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랍니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에요."

 

 린이 작게 웃으며 말하자 무대 끝 쪽에 있던 프로듀서는 도망치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럼 다음 곡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가장 특별한 곡이기도 합니다. 마침 분위기도 살짝 가라앉았으니 오늘은 조금은 특별하게 어쿠스틱으로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주세요, Never say never."

 

-

 

 "수고했어, 린."

 

 린이 무대에서 내려오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도 남아있던 팬들마저 하나 둘 씩 돌아가고 다른 스태프도 모두 퇴근한 시간이었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공연장의 뒤편에 린은 혼자 서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을 막기 위한 머플러를 두르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였다.

 

 "…어떻게 알았어?"

 

 린도 이미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대로 이곳에 남아있었다. 프로듀서는 그런 린을 발견한 것이었다. 린은 프로듀서가 찾아올 줄은 몰랐기에 제법 놀랐다. 프로듀서도 사실 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서로가 놀란 상황이었다.

 

 "나도 린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마음이 통한 건가?"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이 자리에서 마주친 건 우연이 아니다.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도 고민이 많은가 보네."

 

 두 사람 다 공연을 마치고도 고민이 많았다. 공연이 좋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완벽한 무대였다. 하지만 이미 정상에 오른 두 사람에게 앞으로의 일은 더욱 고민이었다. 신데렐라 걸이 되고 나서 오늘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단독 공연까지 마치고 나자 이제는 자신이 정점에 올랐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미 계단을 다 올라버려서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

 

 "지금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해 왔으니까."

 

 계속 위를 향하는 것만을 생각하며 달려왔다. 전력으로 달리던 에너지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지만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린에게는 마음에 품고 있었던 생각이 있었다. 정점에 오르는 길에 이어서 새롭게 펼쳐지는 길. 정점에 올라서야만 바랄 수 있는 자신의 소망. 프로듀서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 자리잡아버린 사람이 있었다.

 

 "프로듀서."

 "응?"

 "이제 조금은… 내 욕심을 채워도 괜찮은 걸까?"

 

 프로듀서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온 힘을 다해 달려온 린에게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며 말해주고 싶었다.

 

 "…고마워."

 

 린은 작게 웃었다. 아이돌로써 일을 할 때는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린의 미소였지만 평소의 린의 미소는 값진 편이였다.

 

 "사실 나…"

 

 린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검은 장감을 끼고 있는 프로듀서의 손을 잡았다. 피부가 맞닿지 않아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린에게는 큰 의미였다.

 

 "프로듀서를 좋아해."

 "……응?"

 

 프로듀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은 반응이었다. 너무 놀라서 반응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린 모습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해줄래?"

 "확실히 들었잖아! 두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말란 말이야."

 

 린은 부끄러워하며 소리를 높였지만 손은 꼭 붙잡은 채였다.

 

 

-

 

 

 햇빛과 함께 익숙한 알람소리가 들렸다. 린은 힘겹게 물 아래에서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깨어났다.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자 언제나와 같은 방의 모습이 보였다. 다만 바로 어제와 방의 모습이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어서 어딘가 어색했다. 린은 곧바로 어느 부분이 다른 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다른 부분을 찾아보려 했지만 항상 같은 느낌의 방이어서 마치 한 번에 하나의 그림만 볼 수 있는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어려웠다.

 

 "얘, 린. 학교 가야지!"

 

 린이 침대 위에서 꾸물거리고 있자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린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분명 일요일일텐데.

 

 '어제는 공연을 무사히 마쳤고…'

 

 그제야 린은 어젯밤 일어난 일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고백한 이후의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집에서 깨어났다는 건 집으로 돌아와서 잤다는 말인데 그 시간 이후의 기억이 마치 블록이 빠진 듯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뭐, 조금 있으면 다 기억이 나겠지….'

 

 린은 우선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갔다. 이미 일어난 부모님이 거실로 나온 린에게 말했다.

 

 "학교 갈 준비 안 하니?"

 "오늘 일요일이잖아?"

 "…얘도 참, 이상한 꿈이라도 꿨니?"

 

 서로 대화는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핀트가 맞지 않았다. 깨어나서부터 계속 어긋나는 듯한 이질감에 린은 불안함을 느꼈다.

 

 "우선 씻고 오려무나. 정말 악몽이라도 꿨니? 머리도 말이 아니고."

 

 부모님이 하는 말은 잘 알 수가 없었지만 우선 씻기 위해 세면대 앞으로 가서 거울을 봤다.

 

 "…잠깐."

 

 키가 줄어있었다. 그저 기분 탓이겠지 싶었지만 머리 길이도 미묘하게 짧아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체형도 조금 달라져있었다. 누가 봐도 확실한 시부야 린이어지만 어제와 가장 달라진 건 린 자신이었다.

 

 "이게 무슨… 오늘이 몇일이었지?"

 

 금이 간 듯한 위화감을 느낀 린은 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날짜를 물어보았다.

 

 "린도 생각보다 여린 아이였구나. 새학기 첫 날이라고 긴장해서는 말이야."

 

 아버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린을 안심시키기는커녕 혼란을 가중시켰다.

 

 '새학기 첫 날…?'

 

 가족들이 모두 장난을 치는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린은 혼란스러웠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프로듀서였지만 어제의 기억이 전혀 없었기에 섣불리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군가한테라도…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린은 속으로 혀를 찼다. 보통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검색이나 단축번호를 써서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보내거나 해서 정작 전화번호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린은 가능하면 가장 가까운 나오나 카렌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기억나는 번호는 한 가지 뿐이었다.

 

 '분명 666이니 악마의 숫자니 했었지.'

 

 칸자키 란코의 핸드폰 번호는 상당히 특이했다. 란코의 평소 캐릭터와 어울리게도 6이 연속으로 세 번 들어간다거나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자랑스럽게 설명하던 게 인상에 깊이 남아 기억하고 있었다.

 

 "…란코?"

 

 기억 속의 번호로 전화를 걸자 무미건조한 연결음이 지나간 후 전화를 받았다.

 

 "칸자키 란코입니다."

 "란코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린은 약간 안심했다. 뭔가 다른 분위기였지만 이름을 칸자키 란코라고 댔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란코, 나 린이야."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

 

 목소리는 란코의 목소리 그대로였지만 린이 알고 있는 란코와는 달랐다. 휘황찬란한 수식어를 붙이지도 않고 연기를 하는 듯한 말투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끄러워 하는 목소리도 아닌 담담한 음성이었다.

 

 "란코, 장난치지 말고."

 "……."

 "나 린이라니까? 시부야 린."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네요. 실례하겠습니다."

 

 단호한 거절의 말과 함께 전화는 매정하게도 끊어져버렸다. 분명 전화를 받은 사람은 칸자키 란코였지만 린이 알고 있는 란코는 아니었다. 린을 모르는 건 둘째 치더라도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설마 진짜로?"

 

 정말로 아이돌이 되기 전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라면 란코도 아직 린의 존재를 모른다. 란코가 아직 린이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란코도 카렌도 나오도 모두 아이돌이 아닌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고 생각하면 란코의 반응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기억이 모두 꿈이었다는 건가. 아니면 프로듀서가 사실 외계의 생물체여서 시간을 빼앗아 과거로 날려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게 제일 문제네."

 

 린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비해서 침착성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당황해서 패닉에 빠진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지도 않는다. 이럴 때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린은 큰 문제 없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은 프로듀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프로듀서에게 스스로 마음을 밝힐 정도였지만 그 프로듀서도 사라져버렸다. 프로듀서의 대답조차 기억나지 않아 애가 탔는데 대답을 다시 들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몰아내려고 해도 미칠 것만 같았다. 차라리 거절을 당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린은 웃었다. 속이 까맣게 타버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애써 웃었다. 오히려 기회라고 할 수도 있었으니까. 다시 한 번 모든 걸 되풀이하면 될 일이었다.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프로듀서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해 본 입학식은 비디오를 돌려보는 것 같았다. 행사는 기억하고 있던 것처럼 전혀 달라진 점도 없이 차례대로 진행되었다. 입학식이 모두 끝나고 중학교 때 알던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서 같은 반이 된 아이들을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한 것도 그대로였다.

 

 린은 입학식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있을 일도 대략적으로는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시험도 모두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 과거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당황스러우면서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점이 많이 떠올랐다. 아쉬웠던 점들, 후회스러웠던 일들을 고칠 수 있다. 그리고 해왔던 일들을 더 좋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다시 프로듀서와 만나 아이돌이 되는 것이었다. 더 좋은 방향으로 더 빠른 시간 안에 신데렐라 걸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프로듀서에게 다시 고백하는 날도 더 빨라지겠지.

 

 

 그날 이후로 시부야 린은 완벽해졌다. 모든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평소 생활에서도 오점이라는 찾아 볼 수 없는 생활이었다. 미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 간단히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정확히 무슨 노력이 필요한 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해낼 수 있었다. 덕분에 학교 내에서도 알게 모르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린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린이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모든 여유와 노력을 쏟아 부은 일은 아이돌이 되기 위한 준비였다. 예전에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레슨에 비해서는 열악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미리 준비를 했다. 양성소에 들어가서 레슨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아이돌들의 댄스를 따라하기도 하고 예전에 받았던 보컬 레슨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노래연습을 하기도 했다. 매일 저녁 동네를 뛰며 체력을 기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린의 부모님은 무슨 바람이 불어는지 궁금해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린이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바로 오늘이 프로듀서를 처음 만나는 날…'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프로듀서와 처음 만났던 순간과 장소, 상황까지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었다. 우연히 꽃집으로 찾아온 남자는 처음 보는 소녀에게 무언가 좋은 예감이 느껴진다고 말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린은 일부러 오늘은 일을 돕겠다며 부모님에게 말해두었다. 예전에는 가끔씩 일을 돕곤 했지만 최근에는 프로듀서를 만날 준비를 하기 위해서 거의 하지 않았었다. 부모님도 꽃집 일에는 아예 관심이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면서 살짝 놀라셨다.

 

 문득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어색했다. 이 시간을 살았던 예전의 시부야 린과는 너무나도 달랐기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꽃을 보아도 이름마저 가물가물했다. 정말로 예전에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만이 들 뿐이었다. 꽃집 딸이라서 별로 알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던 지식마저 흐려져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안중에도 없이 미뤄두었던 탓일까.

 

 하지만 깨닫고 나서도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린의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나 긴장해서 다른 쪽에 신경이 쏠린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라도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린은 입이 바짝 말랐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떨렸다. 시간은 저녁 7시 30분, 이제 곧 프로듀서가 올 것이다. 린은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린?"

 "……."

 "얘, 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는 린이 기다리던 프로듀서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눈에 띄게 안좋아보이는 린의 상태를 보고 말을 건 것이었다.

 

 "어디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니? 힘들어 보이는데 들어가서 쉬거라."

 

 문득 시계를 바라보니 이미 시계는 8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로 잠깐동안 정신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의심이 될 정도로 시간은 지나가 있었다.

 

 "…네. 조금 들어가서 쉴게요."

 

 린은 별다른 말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프로듀서와 처음 만난 시간은 7시 50분이었다. 말로 정리할 수 없는 마음으로 서 있었던 것이 한 시간 가까이 되어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린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컸던 긷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움직일 수도 없게 마음을 짓눌렀다. 정말로 그대로 무너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걷고 있으면서도 걷고 있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어디로 갔을까. 시간이 되돌아갔다고 해서 있던 사람이 없어질 리는 없다. 차라리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다면 부모님도 친구들도 그리고 란코도 없었어야 했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과거로 돌아간다고 모든 일이 그대로 일어날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했어야 했던 걸까. 해온 일들이 달랐기에 정해져 있었던 미래가 바뀐 걸까. 린은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린은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못하고 계속 머릿속으로 사고를 되풀이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

 

미묘한 부분에서 잘라버린 것 같네요.

하편에서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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