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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의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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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4, 2018 22:18에 작성됨.

사무실에 출근해서 먼저 본 것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는 한 상자였습니다. 2월 14일이라는 날짜, 아직은 이른 오전 8시, 프로듀서의 책상 위에 놓여진 포장되어 있는 초콜릿 색 포장지의 상자. 너무나 뻔한 것입니다. 발렌타인 초콜릿이라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해야 할 일을 어제 남기고 퇴근하길 잘했습니다. 그 덕분에 프로듀서에게 온 이 초콜릿을 제가 먼저 발견할 수 있었으니깐요. 오토나시 코토리, 일찍 일어나는 작은 새가 먹이를 발견했군요, 장해요 작은 새!
  상자를 들어 살펴보면 꽤나 고급진 포장지입니다. 꼼꼼이 살펴보면 어설픈 포장 마무리도 보이네요. 그렇다는 건 누군가 직접 포장한 초콜릿이라는 의미입니다. 으음, 사무실에서 직접 초콜릿을 만들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하루카일려나요? 빨간 리본이 왠지 하루카임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는 듯 싶은 기분도 드네요. 잠시 창문 밖을 살펴봅니다. 아직 누가 오는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죠, 빨리 오는 야요이라도 9시가 되어야 오죠. 계속 귀는 경계태세로 유지한채 초콜릿의 포장을 풉니다. 종이를 새로 덧대어 포장한 듯한 상자가 나오네요. 위에는 검은 고양이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습니다. 시호였나보네요. 이 아이, 정성스레 프로듀서를 위해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서 이렇게 포장까지 해놓고는, 어젯밤 몰래 여기에 올려두고 퇴근한 모양이에요. 시호답다면 시호답군요. 생각해보니 하루카라면 프로듀서에게 직접 초콜릿을 주지 이렇게 몰래 주진 않을 것이니 말이죠. 자, 그럼 할 일을 할 차례에요.
  바스락바스락, 우적우적, 꿀꺽.
  음, 맛이 없어요. 설탕양 조절에 실패한 걸까요, 아니면 이상한 재료를 넣은 걸까요. 맛이 묘하게 초콜릿이라기보다는 잡탕같은 맛이네요. 어차피 이유를 제가 알 리 없지만요. 생각해보세요, 발렌타인 초콜릿 한 번 만들어보지 않은 제가 초콜릿 맛이 이상해지는 이유따위 알 리가 없잖아요? 어차피 제 나이의 ㅂ, 어흠, 아니, 어차피 어린 시호가 초콜릿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 리도 없지만 말이죠, 어쨌든 실수를 뭔가 했겠죠. 알게 뭐에요.
  일부러 사장실 쓰레기통에 초콜릿 포장지와 상자를 압축해서 버립니다. 여기라면 제가 비우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게 들킬 리도 없겠죠. 시호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어디 건방지게 제 나이의 ㅂ, 어흠, 또 헛소리를, 어쨌든 어디 건방지게 어린 주제에 발렌타인 때 로맨스를 만들려고 하는 거죠? 혹시 모르니 거울로 입가를 확인합니다. 음, 완벽해요, 초콜릿이 묻어있지 않아요.
  다시 시계를 보면 8시 11분. 앞으로 15시간 49분동안, 모든 로맨스를 차단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저의 임무는 다른게 아니에요. 프로듀서든 사장님이든 초콜릿을 받는 모습을, 어떤 아이돌이든 초콜릿을 주는 모습을 차단하는게 저의 임무입니다. 그런 로맨스 봐 줄 수 없어요. 이제는 제 가슴이 찢어질 거 같은 기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모든 초콜릿을 차단해버리면 그만인 거죠. 어젯밤 그걸 겨우 깨달았을 뿐인 거죠.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거 같네요. 우선 녹차부터 한 잔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해야겠어요.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배탈이 날 줄이야. 일단 지금은 더 나올게 없으니 물을 내리고 화장실에서 나옵니다. 시호 얘는 대체 초콜릿에 무엇을 넣었기에 벼... 아니, 크흠, 무엇을 넣었기에 사람 배탈을 일으키는 걸까요. 두번째로 나오니 사무실에는 방금까지 없던 인물이 보입니다.
  "어머, 히나타쨩. 오늘은 빨리 왔구나?"
  "아, 코토리씨! 좋은 아침이구만요!"
  어쩜 귀여운 아이인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저것만 없다면 언제나처럼 히나타쨩을 쓰다듬었을 정도로 말이죠.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 히나타가 손에 든 그것을 확인합니다. 적당히 작은 사이즈, 포장지조차 없이 딱 초콜릿 그대로인 그것. 방금 5분 전에 편의점에서 사온 듯한 초콜릿입니다.
  "아, 이건, 그, 방금 저 앞에서 사온기라"
  정말이었네요. 방긋 웃어주며 조금 히나타쨩을 추궁해봅니다.
  "히나타쨩, 왠 초콜릿이니?"
  "그게, 도쿄에서는 오늘같은 날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건내주고 그러는기라고 하던데야, 정말인지야?"
  히나타쨩, 나쁜 걸 배워왔구나.
  "응, 맞어"
  "그래서 프로듀서씨에게 초콜릿이라도 하나 건내줄라고 그랬시야, 에헤헤"
  수줍게 웃는 히나타쨩의 볼이 빨개지는 걸 보고, 저는 이 초콜릿이 반쯤 진심인 걸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으음, 프로듀서놈 왜 14살짜리들에게 이렇게 인기가 좋은건지.
  "그렇구나 히나타쨩, 그런데 오늘은 시어터에서 아침 연습이 있지 않니?"
  "그, 그렇지야! 얼른 건내주고 가고 싶었는데야..."
  "그러면 내가 대신 프로듀서님에게 건내줄게, 어때?"
  "대신 말이지야? 우웅..."
  역시 대신 전해주는 건 조금 어색한 모양이네, 히나타쨩. 하지만 히나탸쨩 정도는 쉽게 속일 수 있습니다.
  "히나타쨩도 프로듀서님도 바쁘기도 하니 괜찮을 거야. 내가 히나타쨩의 마음까지 잘 말해줄게"
  "마, 마음까진 됐시야! 그건 제가, 그러니깐..."
  갑자기 귀까지 빨개지는 히나타쨩을 보고 있으니 저는 반대로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거 같은 기분입니다.
  "그, 그냥 건내주기만 하이소! 그, 그럼 지는 가보겠시야!"
  무언가 혼자 열이 오르더니 히나타쨩이 급하게 나갑니다. 말도 꼬이고... 많이 당황한 모양이네요. 자, 그럼 이건 제가 처리해볼까요. 시호의 초콜릿 맛이 찝찝하게 남아있는 입안을 무난하게 씻겨줄 보통 초콜릿이니 기대가 좀 되네요. 자, 그럼
  "아, 코토리씨, 안녕하세요!"
  "시즈캬쨩, 안녕"
  위험했네요. 포장지를 뜯으려는 찰나에 시즈카쨩이 들어올 줄이야. 조용히 초콜릿을 뒤로 치우자니 시즈카쨩이 다가옵니다.
  "코토리씨, 손에 그건..."
  "어어 별 거 아니야"
  "헤에..."
  시즈카쨩, 조금 웃는 표정을 짓네요. 이건 대놓고 오해를 하는 표정이군요.
  "별 거 아니라니깐"
  "별 거 아니라기엔 날이 날이라서"
  "그러면 이렇게 포장도 안 하겠니? 그리고 내가 프로듀서에게 초콜릿같은 걸 줄 리 없잖니"
  "그건 그렇네요"
  시즈카는 말을 마치더니 물러섭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프로듀서의 책상을 힐끔 살펴보네요.
  "그러는 시즈카쨩이야말로 초콜릿 준비해온 모양이네?"
  "제, 제가요?"
  "응. 프로듀서 줄려고?"
  "아아아아아아아 아뇨! 애, 애초에 초콜릿 같은 거 가져오지 않았는데요!"
  "그럼 가방 안의 저건 뭘까?"
  그 말에 놀라서는 가방을 열어 확인하는 시즈카쨩. 물론 시즈카쨩의 가방 안을 제가 본 건 아니지만요, 떠보니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은 몰랐단 말이죠.
  "아아아아아아아, 어, 어, 어어어어, 이, 이건 그!"
  "설마 우리 시즈카쨩이, 프로듀서에게 관심이 있었을 줄이야"
  "아, 아아아아니 이건 그러니깐!"
  "미라이쨩이나 츠바사쨩도 재밌어하겠지?"
  "이건! 그래요! 제, 제 거에요! 제 거!"
  도발에도 쉽게 넘어가는 시즈카쨩은 제법 귀엽네요.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시 물어봅니다.
  "시즈카쨩 거라고?"
  "네, 네 그럼요! 오, 오는 길에 받은 거에요!"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을 받은 거야, 시즈카쨩?"
  "그그그그, 그건, 그, 그러니깐, 그래요! 여자 팬분에게서!"
  "헤에, 그렇구나..."
  약간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시즈카쨩. 하지만 이 쪽은 확인사살을 해야하니 그 표정을 내버려둘 수 없답니다.
  "그러면 말이지, 둘 다 여기서 먹을래?"
  "네, 네네? 네네네네?"
  초콜릿을 포장지에서 까서 한 입 베어먹으며 말을 잇습니다.
  "시즈카쨩 거라며? 그럼 처리하지 뭐, 더 오해 사기 전에"
  "그, 그그그, 그건...!"
  "미라이쨩이나 츠바사쨩도 곧 올거야?"
  그 말에 시즈카쨩이 다시 굳습니다. 달콤하네요.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혀로 다시며 시즈카쨩을 다시 쳐다봅니다. 무언가 흔들리는 눈동자가 왠지 재밌단 말이죠. 이윽고 시즈카쨩은.......


  초콜릿을 사전차단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에요. 미리 오늘 프로듀서가 아이돌들과 만나지 못하도록 스케쥴을 조정하고 거짓말을 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서에게 초콜릿을 주려는 아이돌들의 의지가는 생각보다 강하네요. 서랍에 숨겨져 있던 초콜릿들도 몇 개를 치웠고, 프로듀서를 만나러 사무실에 온 아이돌들을 돌려보내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저녁 7시입니다. 더는 먹어치우는 것도 무리인지라 제 서랍 구석에 초콜릿을 넣어놨습니다만 그것도 슬슬 무리네요. 공간이 없어요.
  "안녕하세요"
  "어머, 코토하쨩?"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지 코토하쨩이 사무실에 왔네요. 이상합니다, 오늘은 시어터에서 일이 끝나면 바로 퇴근하도록 스케쥴을 조정해놨을텐데.
  "코토하쨩, 무슨 일이니?"
  "프로듀서를 보려고요"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본 코토하쨩은, 프로듀서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소파에 얌전히 앉습니다. 으음, 쫓아내야 하는데 말이죠. 좀 있으면 출장을 마친 프로듀서가 사무실에 올 겁니다.
  "어머, 혹시 초콜릿을 건내주려고?"
  "네"
  부끄러움 따위 하나 없다니.
  "그, 그렇구나"
  "네"
  쎄다, 코토하쨩. 코토하쨩은 그 말만 마치고 조용히 시계를 봅니다. 언제 오나 확인하고 싶은 거겠죠.
  "프로듀서, 어째서 오늘 핸드폰으로 연락이 안 되는 걸까요"
  "그, 글쎄..."
  제가 프로듀서의 핸드폰의 소X 타이머를 억지로 발동시켰다곤 말할 수 없죠. 분위기가 왠지 위험한걸요.
  "뭐 괜찮아요, 오늘 내로 한 번 쯤은 사무실로 돌아오시겠죠"
  "많이 늦으실텐데, 괜찮니?"
  "네, 괜찮아요"
  그 말을 마치고 다시 시계를 쳐다보는 코토하쨩. 저는 더 어찌 할 도리가 없어서 일단 고개를 돌려 다시 제 책상을 향합니다. 얼른 코토하쨩을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하겠어요.


  고민을 마치고 잠시 뒤를 돌아보면 아직 코토하쨩이 있네요. 조용히 책을 꺼내서는 읽고 있어요. 학교 숙제인 모양이네요, 제법 집중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시계를 보면 이제 곧 8시. 정말 위험해요. 슬슬 프로듀서가 돌아오셔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에요. 로맨스 따위, 볼 수 없죠! 이것만 넘기면 오늘은 넘기는건데!
  "코토하쨩...?"
  "네"
  코토하쨩이 잠시 멈춰서는 저를 봅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ㄲ"
  "괜찮아요"
  어른 말을 중간에 끊다니, 괜찮지 않단다 코토하쨩!
  "쵸콜릿은 내가 대신 건내줄게. 이제 사무실도 슬슬 정리해야 하고"
  "그럼 도와드릴게요"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네요. 쉽게 풀렸으면 좋았겠지만 코토하쨩이라면 가드가 단단할 건 알고 있었으니깐 말이죠.
  "그래도 코토하쨩, 퇴원한지도 얼마 안 됐으니 무리하면 안 된단다...?"
  "......."
  역시 이게 조금 유용하네요.
  "코토하쨩의 마음은 잘 알지만, 또 무리하다가 다시 몸이 나빠지면 프로듀서님도 슬퍼하실 거야?"
  "그렇겠죠, 그렇지만..."
  "그렇지만, 지금은 컨디션에 언제나 조심해서 완전히 회복된 코토하쨩을 보여주는 걸 프로듀서도 기뻐하지 않으실까?"
  언제나 성실하고 어른이 하는 말은 잘 듣는 코토하쨩이니깐, 코토하쨩을 위해서 말하는 척하면서 지금 코토하쨩이 신경쓰고 있을 부분을 건드리면 코토하쨩도 물러날 거에요. 이러고 싶진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내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단다 코토하쨩!
  "그렇죠... 하지만 제가 입원하고 있을 때 깨달은 게 있어요"
  "응?"
  코토하쨩이 꺼져있는 TV를 바라보면서 말을 잇습니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면서, 그리고 오랫동안 제 마음을 정리하면서 깨달은게 하나 있어요.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원하는게 있다면 그건 그 자리에서 바로 전하고 바로 원해야 한다는 거에요. 오랜 시간동안 그저 그리움만 커지면서, 그저 제 마음만 엉키면서 괴롭다가도 그 생각의 끝에는 '내가 하지 않아서 후회한다'라는 결론만 나왔거든요. 아프기 전에 마음을 전했으면 지금처럼 괴롭지 않지 않았을까? 아프기 전에 프로듀서씨를 원한다고 확실히 말했다면, 그 결론이 어쨌든 지금처럼 미완의 고통에서 계속 괴로워하진 않았겠지? 그래서 결심했어요. 앞으로는 제 마음을 표현하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피하지도 않겠다고. 그 때 그 자리에서, 전력으로 전하고 전력으로 원하겠다고"
  "......."
  "...하지만 코토리씨 말씀대로에요. 지금 괜히 이러다가 또 몸이 안 좋아지면 그건 본말전도겠죠"
  "아, 그, 그렇지"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볼게요..."
  "초콜릿, 내가 전해줄까?"
  "아뇨"
  코토하쨩이 싱긋 웃으면서 일어납니다.
  "이건 제 마음과 함께 제가 직접 전하고 싶어요"


  코토하쨩이 돌아가고 30분 정도가 지났습니다. 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들어왔습니다만, 30분동안 앉아있어도 볼 일은 봐지지가 않네요. 다시 변비가 도진 모양입니다. 배가 아파야 하는데 머리가 아픕니다. 더러운 화장실 공기를 오늘 너무 많이 마신 모양입니다. 그냥 사무실로 들어가야겠어요.
  "아, 프로듀서씨"
  "코토리씨 어디계셨어요?"
  "잠시 화장실을..."
  그 대답에 프로듀서가 헛기침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시합니다. 그 새 돌아와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자리에 앉자니 프로듀서가 자신의 핸드폰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챘습니다.
  "핸드폰? 고장나지 않으셨어요?"
  "아 그랬죠, 오늘 출장처에서 고쳤어요"
  "에?"
  "출장처가 소X 엔터테인먼트 칸사이점이었잖아요? 마침 바로 옆에 서비스센터도 붙어있더라고요"
  아차차, 이거 뭔가 불길한데요.
  "그런데... 코토리씨. 제 책상에 아이돌들 선물은 어디로 갔을까요? 어디에도 안 보이는데"
  "그, 그게"
  프로듀서와 눈을 마주치고 깨닫습니다. 확신에 찬 눈. 이미 프로듀서는 제가 오늘 무얼 했는지 대충 다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핸드폰, 티나지 않게 아예 작살냈다고 확신했는데 제길....... 탁, 하는 소리가 납니다. 프로듀서가 핸드폰을 내려놓습니다.
  "돌려말하는 거 그만두죠. 코토리씨, 왜 그러셨나요?"
  "......."
  "아이돌들이 저에게 선물을 주는게, 무언가 문제가 있던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
  제 질투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는 말 할 수 있겠냐고요.
  "코토리씨, 저는 코토리씨의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받을 선물을 중간에서 다 차단시키는 그 행동들은 좀, 정상은 아닌 거 같아요"
  반박할 수 없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면 무언가 이유라도?"
  문제는 없죠. 저에게 있을 뿐. 남들이, 다른 연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걸 여기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요. 이런 걸 설명할 수 있을 리도 없다고요. 초침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에서 왔다갔다합니다. 초침소리를 한숨소리가 뒤덮습니다.
  "코토리씨, 그만둡시다"
  "...네?"
  프로듀서가 일어나서 다가옵니다.
  "그만두자고요, 마음을 속이고 어린아이처럼 땡깡 부리는 거 말이에요"
  "무슨 말씀이시죠..."
  "저번 크리스마스때도 비슷한 일 하셨잖아요. 아이돌들이랑 저 사이에서 이상한, 뭐라고 해야 하나, 이간질? 이간질이라기엔 좀 아니지만, 어쨌든 오늘과 비슷한 일 말이에요"
  "......."
  "코토리씨의 마음을 말해주세요. 털어놔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코토리씨의 불평, 아니면 슬픔, 뭐든지 좋아요. 아니면 그냥... 마음이라도 말이죠. 들어드릴게요. 그냥 말씀해보세요. 얘기정도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어요. 부탁도 가능한한, 들어드릴 수 있어요. ...마음도요"
  "이, 이해하실 수 없을 거에요"
  "괜찮아요"
  "아니에요, 이해하지 못해요! 프로듀서는 이해하지 못해요, 그렇게나 인기가 많은 사람이 저같이 인기도 없는 사람의 마음은 이해할 리 없지요!"
  "코토리씨..."
  "저는 싫어요, 가망없는 사랑싸움 같은 거 할 자신 없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 눈을 부담하는 사랑같은 거... 할 수 없어요. 차라리 마음 편한 사랑이나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미 늦었어요, 이미 너무 늙었다고요... 저는 그 아이들처럼 제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요. 이룰 수 없는 사랑같은 걸 안고 있으니 그 아이들의 사랑을 보고 싶지도 않았을 뿐이라고요!"
  괜히 마음이 고양되어서는 크게 소리를 질러버립니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지 않다고요!"
  "저는 괜찮아요, 코토리씨"
  "...네?"
  이 사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저는 코토리씨를 응원하고 있어요. 저는 코토리씨가 좋아요. 그러니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고요?"
  "하, 하지만... 응원이라니..."
  "그러니, 코토리씨의 마음을 말해주세요. 들어드릴게요"
  "대체 무슨..."
  그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둘이 놀라서 문 쪽을 바라보면, 사장님이 들어오네요.
  "이 밤까지 일하다니 이건 정말로 대단 대단... 아이구, 미안하네, 이거 실례를"
  사장님은 우리 둘을 보더니 당황하며 다시 문을 닫고 나갑니다. 저는 그렇게 나가는 사장님과 프로듀서를 번갈아 봅니다. 프로듀서의 눈을 봅니다. 그래요, 이 사람 말대로에요. 제 마음을 말해야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갑니다. 문을 박차고 나온 저를 보고는 계단 밑의 사장님이 놀라서는 뒤돌아보네요.
  "사장님!"
  "오, 오토나시군?"
  "이, 이거 받으세요!"
  "아아, 고, 고맙네"
  혹시나 싶어서 준비해두고는 주머니에 넣어놓기만 했던 작은 초콜릿을 사장님에게 건내드립니다.
  "올해도 자네에게는 신세를 지는구만! 이 나이에는 의리 초콜릿이라도 참 고맙단 말이지... 그럼, 프로듀서군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게나, 나는 먼저"
  "아니에요!"
  "으, 응?"
  코토하쨩의 말대로에요. 전하고 싶을 때 전하고 원할 때 원해야 해요. 프로듀서씨의 말대로에요. 괜찮아요.
  "의리 초콜릿 아니에요!"
  "오, 오토나시군...?"
  "진심입니다, 사장님!"
  "으음...?"
  제 마음을 전할 겁니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네요. 사장님을 원할 겁니다.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고 입이 그저 금붕어처럼 뻐끔뻐끔하게 되네요.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 저는 말을 다시 꺼내기 시작합니다.


  "마음, 그 쪽이었습니까..."
  혼자 사무실에 남은 프로듀서만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잣말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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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네요. 아, 저도 다른 커플 초콜릿 주고받는 거 방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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