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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가 걷는 가을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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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1, 2016 17:55에 작성됨.

음침한 인도어파, 라고 분류할 수 있는 녀석들은 대부분 상종 못 할 히키코모리나 그에 준하는 사람들이다. 그곳에 서서 숨 쉬는 것 만으로도 독버섯의 포자 같은 감염물질을 내뿜어 충만한 리얼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을 썩혀버린다. 남녀노소, 크든작든마르든뚱뚱하든 그 음침함은 태양 아래에 내놓아선 안 될 더러운 것이다.

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놈들이 있다. 그런 놈들은 그 맛을 보지 못한 자들이다. 어둠 속에 홀로 숨어, 빛을 저주하며 모든 것을 원망한다. 너희들이 나빠, 라고 몇 번이고 되뇌이며 책임전가의 바닥을 한 번이라도 핥아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감미롭고 풍부한 맛을 내는지 안다. 표고버섯의 맛과 송이버섯의 향에 비견할 만한 천하일미다.(오해가 있을까 봐 밝혀두지만, 바닥의 맛이 표고버섯이나 송이버섯보다 좋다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세상에 알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한 광대버섯을 쳐다보는 것 마냥 거리를 두고, 그럼에도 눈을 떼지 못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니, 그거 완전 최악이잖아."

 

최악, 이라는 표현에 딱히 반론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완전이라는 말을 형용사인지 부사인지 구분하지도 않고 붙이는 리얼충들에겐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의미도 없이 태양빛 아래를 걸어다니며 시간을 소모하는 양아치와, 그냥 조용히 집 안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음침한 인도어파. 둘 중 어느 존재가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는 질문할 필요도 없고 대답힐 필요도 없다. 아니, 애초에 이런 지리멸렬한 독버섯 같은 사고 자체가 먹물버섯보다 더 허망하게 질 순간의 상념에 불구하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 자체가, 인간에게 있어선 독이기 때문이니까. 바깥을 아무런 생각 없이 돌아다니든 인터넷을 아무런 생각 없이 돌아다니든 그것은 사회나 자기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 낭비이며, 도덕적으로 약간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젊은 놈들이...'로 시작되는 나이 든 꼰대들의 짜증 어린 잔소리도, 당장 반박할 말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이것은 먹물버섯보다 허망하게 질 상념이어아 햐고, 다만 독버섯 포자 처럼 마음 속에 독의 씨앗을 뿌릴 뿐이다. 버섯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자기합리화라고 하는 영양분을 잔뜩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WTO는 각성해라. 왜 이게 필수영양소가 아닌 거냐.

인도어나 아웃도어나 결국 별 다를 바 없는 시간낭비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한 번 해 보기로 한다. 나는 자타공인 인도어파이며, 세상을 질투하고 원망한 끝에 불합리한 증오를 그곳에 쏟아내는 사람이다. 리얼충 따위는 다 버섯구름 속에 휩쓸려 사라질지어다, 라는 말을 실제로 내뱉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인터넷에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그런 인간이나 사상들과 본질적으로 이어진 그런 존재다. 이 절망적인 인격의 바닥에 대체 변명할 거리가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내려온 자연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가 발전시킨 신학, 근대의 인간찬가와 현대의 복잡계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입에 담아 외치는 것이다. 난 니새끼들보단 존나 잘난 인간이라고 이 좆같은 새끼들아! 그리고 히키코모리는 아니라고! 이 몸은 제대로 노동을 하고 바깥에 나가서 취미를 즐기기도 한단 말이다!

 

"고 투 헬!!!!!!!!"

 

메탈계 아이돌 호시 쇼코.

취미는 버섯 재배. 

자타공인 인도어파. 하지만, 가끔씩은 취미를 위해서 바깥으로 나가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내일처럼.

 

.......민폐를 무릅쓰고 나서는 거니 이 정도 용기는 인정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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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이라는 표현이 있었기에 부득이하게 손가락을 튀겨가며 과거 이야기를 하지.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주 전.... 아니, 7일 전이었나. 뭐, 됐어. 내게 있어서는 바로 1/4개월 전의 일이다만, 너희 앰생들에게 있어서는 아마 3주 후의 일이다. 물론 집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너희들에게 있어서 시간의 흐름이란 큰 의미가 없겠지. 응? 일 때문에라도 집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일 때문에만 바깥에 나가는 사람...... 그거, 집과 직장만 반복해서 돌아다니는 사회의 기계바퀴. 히키코모리와는 또 다른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친우, 코시미즈 사치코. 머리가 좋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짜증귀엽' '댕청커엽' '괴롭히고싶어하악하악' 등등의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녀는 본질적으로 수재에 속하는 사람이며, 그보다 더한 노력가이기도 하다. 프로의식의 발로임과 동시에,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으면 왠만한 일은 다 해낼 수 있게 된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그녀를 둘러싼 여러 평가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지만, 코시미즈 사치코는 그녀를 평가하는 팬들보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다. 지금처럼 예상 못 한 일침을 날리기도 할 정도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잘난 듯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만, 그런 사실을 지적해 줄 마음은 없다. 그런 마음 속의 어둠이야말로 내 지갑을 불리고 버섯을 키우는 원동력이니까.

 

"모리쿠보는 바깥에 안 나가는 게 아닌데요.... 그저 다른 선택지가 없을 뿐인데요..... 좀 쉬고 싶은데요....."

 

모리쿠보 노노가 이번에도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무-리 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사치코 앞에서 휴일은 그냥 집에서 쉴 뿐이라고 말한 결과가 이거다.

아이돌 일이 괴멸적으로 체질에 안 맞는다고 주장하는 이 아이는, 정말 애석하게도 아이돌 일을 잘 해내고 있다. 본인에 대한 과소평가는 그저 아이돌을 그만두기 위한 핑곗거리에 불과하다. 잘 봐라, 노노는 귀엽지, 운동신경도 괜찮지, 조금 네거티브할 뿐이지만 나쁜 아이도 아니지, 거기에 동화를 쓸 정도로 머리도 좋고.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버섯메탈 오타쿠와는 인연이 없을 귀여운 아이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선택지를 즐겨보자는 거잖아. 포기하라고."

 

하야사카 미레이가 말했다. 어둠의 기분이 된 니나라는 평가에 항상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하고 있지만, 아파서 오그라드는 기분이 된 니나라는 아스카의 말엔 아무런 반론도 못 한 반항기의 중2병 펑키다. 그리고 우리 프로덕션 중2병이 다 그렇듯 귀엽다. 그녀가 지닌 반항기는 메탈과도 약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그녀와는 자주 패션이나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일맥상통할 뿐이지, 메탈과 펑키는 매우 다른 거다. 마법과 사이오닉이 다른 것 만큼 다른 건 아니지만, 메타그로스와 히드런이 다른 것 이상으로 다르다. 반항기 주제에 리얼충에 가까운 게 그녀가 몸에 두른 펑키라는 거다. 내가 가진 부정적 에너지의 메탈과는 그 방향이 너무나도 다르다. 애초에 좀 반항적일 뿐인 아이니 내 기준에선 충분히 빛나는 리얼충이다.

 

"우우우......"

 

다른 선택지. 그래, 다른 선택지다. 기본적으로는 노노보다 더 한 히키코모리인 나도 때로는 방구석 말고 다른 곳을 여가시간 활용의 장소로 선택하는 것이다. 전국의 수십 만 히키코모리들에겐 미안하지만, 이 호시 쇼코님은 때론 아웃도어를 즐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아웃도어가 상당히 빈번해 질 계절이다.

 

"가을 산행도 좋죠.... 프로듀서에게, 마유의 마음을 잔뜩 주워다 드릴 수 있겠죠....."

 

"산장 같은 곳에 머무르면.... 그것도 좋겠네... 고립된 산장에서 연쇄살인..... 에헤헤....."

 

노노는 휴일에도 집 바깥으로 끌려나가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듯 하지만, 마유와 코우메는 의욕에 가득 차 있다. 나와는 의욕의 방향이 좀 다른 것 같지만 뭐 어쩌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목적이 같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바보의 소행일 뿐이다. 애초에 이 개성넘치는 멤버의 의견이 하나로 모일 거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멍청한 거다. 이번처럼, 같은 행동을 하게 된 것 만으로도 사소하고 자그마한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미, 미안하지만 살인사건이 일어난 산장은 아니야..... 하, 하지만, 가끔씩 조난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니까...."

 

대부분의 조난사고는 무사 구출이라는 결말이지만 굳이 입에 담지는 않기로 했다. 그런 말을 해서 코우메의 기대를 일부러 꼼꼼히 박살낼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여기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대상은 물론 나다. 코우메도 만족한 듯 귀엽게 웃고 있으니 괜찮겠지.

자,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서론이 너무 길었다.

 

"쇼코씨, 그럼 언제 가는 건가요?"

 

"다음 오프... 그러니까, 이번 주 토요일이네.... 후히...."

 

"다들 그 때 밖에 시간이 안 나기도 하고 말이야. 노노의 휴일에 맞추느라 고생이었다고."

 

"모, 모리쿠보의 휴일 같은 건 배려 안 해줘도 괜찮은데요....."

 

이런 곳에서는 쓸데없는 배려가 넘치는 게 이 프로덕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

 

"그럼, 다음 오프 때 아침 일찍 프로덕션 앞에서 모이기로 해요."

 

"모리쿠보 말은 아무도 안 들어주는 건가요....."

 

"흐흥~ 가을 단풍에 귀여운 저만 보다가 조난당하지 마시라고요~"

 

"조난... 시체... 에헤헤..."

 

"제각각이구만~ 뭐, 나도 인스피레이션을 얻으러 가는 거지만."

 

이걸로 일정이 확정되었다. 서론이 정말 길었다. 아마 서론만으로도 백 페이지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국 내용을 쫙 줄여버린 서론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뭐에 대한 서론이냐고? 그런 건 보면 알잖아. 알 수 있도록 몇 번이고 같은 단어를 사용했고, 추측할 수 있도록 문장을 배치하고 묘사를 서술하였다. 가을 산이다. 이쯤 되면 무엇이 목적인지 알 수 있겠지?

 

"그럼, 주최자인 저로부터 한 말씀... 후히....."

 

아직도 모르겠다고? 그럼 마지막으로 확인시켜 줄 수 밖에 없다.

자, 간다. 귀랑 목 씻고 들어라!

 

"후히..... 우리 모두, 후후.... 후히히..... 힘내서........

야생 버섯 채집이다아아아아아!!!!!!!"

 

"가을 산열매를 채집하죠. 프로듀서에게 잔뜩...."

 

"뭐, 등산 정도라면 어울려 주지."

 

"땅 파고.... 조난당한 시체를 찾고.... 에헤헤...."

 

"가을 산을 절 위한 무대로 만들죠! 가을 산은 행복하겠네요~ 절 돋보이는 데 쓰일 수 있으니~"

 

"무리. 이건 처음부터 무리."

 

위에서 서로 행동이 맞은 것 자체가 사소한 기적이라고 했지? 이게 그 증거다. 이 개성넘치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가을 산행에 어울려준 것 자체가 자그마한 기적이다. 정말 우연찮게, 각자의 목적이 맞아떨어졌으니까 겸사겸사 모인 것 뿐이지만 이렇게 멋질 정도로 의견이 갈라질 줄이야. 주최자인 내 의견은 애초에도 안중에 없던 게 분명하다고 이 자식들.

그렇게, 제각각의 가을 산행이 결정되었다. 프롤로그 한번 참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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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지는군요. 그래서 적당한 곳에서 끊고 우선 올립니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쇼코. 어떤 이야기가 될 지 쓰는 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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