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오후 두 시 반의 일탈

댓글: 2 / 조회: 965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02-25, 2016 21:53에 작성됨.

          문득 생각한다. 지금 마시는 따듯한 교쿠로, 함께 곁들인 토라야의 양갱은 분명 지복의 한때를 만끽하게 해주고 있으나 잠시 시죠 타카네는 돌이켜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입을 더럽혀 본 것’이 언제인가? 더럽힌다는 표현은 다소 맞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작은 일탈이기에.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히비키.”

          “응?”

          문고책을 읽으며 사무소 휴게실 소파에 앉아있는 가나하에게.

          “잠시 어울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응?”

          가나하의 두번의 대답은 모두 같았으나 그 의미는 달랐다. 잠시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스케줄 표를 빠르게 눈으로 한번 쫓는다. 별다른 스케줄은 없었고 시간은 오후 두시 반. 이미 데뷔 초의 시절은 지나간 지 수년임에도 여전히 과거의 버릇이 남아 일이 없더라도 급한 핼프에 응하기 위해 사무소에서 대기한다. 정작 그런 급한 일은 그녀들이 나설 자리가 아님에도 이렇게 남아있는 것은 그저 이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고자 함이 아닐까. 책을 닫아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어디 가게?”

          “잠시…”

          “응?”

          그리고 세번째 같은 대답. 의미는 비슷하나 모두 다르다.

 

         

 

          봄이 오는 것이 느껴지는 날씨 임에도 아직은 이른 걸까. 아직 벚꽃을 기대하기는 너무나도 이른 날이다. 어디서 산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무스탕은 곳곳의 가죽이 벗겨졌음에도 가나하 히비키는 여전히 이 코트를 입고 밖을 나선다. 분명 이 옷을 더는 입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옷장 깊숙히넣어둔 것이 얼마되지 않았을터 인데 다시 꺼내게 만든 이 날씨가 다소 원망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반면 그녀를 이끌어낸 시죠 타카네 본인은 어느새 봄날의 옷을 입고있다. 베이지 색의 얇은 자켓과 청바지 그리고 하얀 셔츠. 보는 이가 추워질 정도로 얇은 봄의 옷. 가나하는 추운 날씨를 장난스럽게 원망한다고 하지만 시죠 타카네는 진심으로 이 날씨를 원망하고 있다.

          “어디 가려고?”

          “으음…”

          어째서인가 당황하는 순백의 공주님. 그 뺨이 살짝 붉게 물들어 있는건 비단 추위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가나하는 알고 있다. ‘나한테 무언가를 말하지 못해서 당황하는 것 이 아냐. 조금 더 단순한 고민. 타카네는 그런 복잡한 고민 안 해.’ 더욱더 단순한 고민. ‘어디 갈지 못 정한 건가?’

          “갑자기 맥주가 마시고 싶었습니다...”

          “응?”

          그리고 네 번째 같은 대답.

          “막상 나오니 날이 추워 도저히 맥주가 넘어갈 것 같지 않군요…”

          “하하…”

          그런 고민 이었다. 어디를 갈지, 그리고 무엇을 마셔야 할지를 정하지 못해 그녀는 다소의 패닉상황 인 것 이다. 복잡한 얼굴의 시죠를 앞질러 간다. 그리고 그녀를 시죠가 뒤쫒는다. 가나하가 길을 이끌기에 따라가는 것 이 아닌, 단순히 다른 생각을 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 것. 그리고 가나하 히비키는 시죠가 잘 따라오는지 계속해서 확인한다.

          “어디를 가시나요?”

          이제서야 알아차려 준걸까. 뒤늦은 시죠의 물음.

          “그냥.”

          두 사람이 도달한 곳 은 역 근처의 타치노미점. 바에 서서 시죠가 마시고 싶어하던 맥주로 살짝 목을 축일 생각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그녀가 다른 술이나 안주거리를 주문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생각한 것 이었기에 가나하 로써는 점심을 먹은지 그리 시간이 지나지 않은 지금 이 선술집에서 자신의 위장이 한계를 시험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소의 각오를 하며, 타카네가 마시고 싶어하니까.

          시죠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탄산의 느낌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제가 죽기 전까지 모든 술을 맛볼 수는 없을터, 포기할 수 있는 것은 과감히 포기합니다.” 라는 논리로 맥주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가나하 히비키 역시 마찬가지. 맥주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알코올 전반에 대해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성인식을 거치자 술의 맛을 알아버린 시죠가 가나하를 자꾸만 동행시키는 바람에 그녀도 조금씩 술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단맛과 과일향이 나고 탄산이 들어간 가벼운 탄산주나 맥주라면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게 되었다.

          자리는 모서리 자리. 의자는 없었고 바의 한 면에 있는 고리에 시죠는 가방을 걸어둔다. 자신이 대려온 만큼 주문도 자신이 주도하고 싶다. 언제나 시죠에게 끌려만 다니며 그녀가 바라던 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것을 조금 곁들이는 수준이었만 오늘의 ‘데이트’는 조금 자신이 주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삿포로 한병하고 은행구이 주세요.”

          시죠는 그저 조용히 가나하의 주문을 들으며 기다린다. 맥주를 올려놓고 뚜껑을 딴 점원은 컵을 두개 두 사람 앞에 내려놓는다. 이미 시죠 타카네와 가나하 히비키를 알아차린 그 점원은 두 사람에게 계속 눈길을 주면서 카운터 뒤에서 사인보드 두장을 꺼낸다.

          “저, 실례합니다. 가나하 히비키씨하고 시죠 타카네씨 맞으시죠?”

          “네, 하하하.”

          그리고 시죠도 미소로 답한다. 두 사람은 아직 잔을 채우지 않았다. 이 전개를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마시기 시작했다면 가게로써도 부탁하기 힘들태고 두 사람으로써도 흐름이 끊겨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 이다.

          사인을 끝낸 두 사람 앞에 조금 나이가 있는 점원이 접시를 내려놓는다.

          “프라이베잇중에 실례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손님.”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접시 위에 올려진 두개의 꼬치와 여기에 꼽힌 다섯개의 따듯한 은행구이. 은행의 향은 벌써 두 사람을 후각을 자극하고 있다. 가나하가 병을 들어 시죠의 잔을 채운다. 그녀는 잔을 들어 받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잔을 채우고 조금 남은 맥주병을 옆에 내려놓는다. 바에 두 개의 잔을 남겨둔 체 두 사람은 꼬치를 하나씩 들어 첫번째 은행을 입에 넣는다. 코로만 느끼던 은행의 향은 어느세 입안 가득 차오르고 쫄깃한 과육 속에서 느껴지는 소금이 섞인 쓴맛이 혀를 움츠러들게 한다. 먼저 잔에 손이간 것은 가나하, 은행 하나가 사라진 꼬치를 접시에 되돌리고 잔으로 혀에 남은 은행의 향을 닦아낸다. 탄산이 과하지 않아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까지 씻겨진다. 시죠도 잔을 들어 한 모금, 그러나 그 양은 많지 않다.

          두번째 은행을 입에 넣는다. 향은 너무나도 좋으면서 어찌하여 이리도 쓰단 말인가. 오히려 그것이 괘씸하게 느껴지던 가나하는 즉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아직 많은 술과 안주를 먹어본 것은 아님에도 그녀에게 있어 맥주의 안주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가라아게나 생선구이 같은 맥주와 함께 마시는게 어울리는 음식이 있다. 생선이라면 다소의 이견이 있겠으나 가나하로써는 이것을 맥주와 함께 먹을때 어울리는 음식으로써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음식은 먹으면서 맥주로 적당히 느끼함을 씻어주어 자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안주이다. 두번째는 은행이나 파와 같은 향이 강한 음식이다. 그 향이 너무나도 좋음에도 실제로 입에 넣어보면 맛이 없어 맥주로 씻어내고 싶은 맛 이다. 이것은 단순히 물이나 콜라같은 음료로 닦아낼 수 없다. 알콜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까지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가나하 히비키는 그것 맛을 씻어내고 향만을 남길 수 있는것은 술이 유일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음식들을 먹을때는 필연적으로 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은행을 주문한 것이 바로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맥주가 마시고 싶었지만 날씨가 추워 고민하던 시죠에게 어쩔 수 없이 맥주에 손을 댈 상황을 만든 것 이다. 술은 그녀가 느끼기에 가장 가볍다고 느꼈던 삿포로로 탄산을 부담스러워 하는 시죠에게 이 정도라면 괜찮을까 싶은 것을 주문했다. 평소에 딱히 마시던 맥주가 있던 것 은 아니지만 어째선가 가장 일반적으로 손이가는 아사히가 아닌 오늘은 다른 것을 주문했다. 시죠는 조용히 은행만을 연신 먹고있을 뿐이다.

 

         

 

          가나하의 잔이 비었고 은행접시에는 꼬치 두 개만이 올라가 있다. 시죠는 잔 아래 조금 남은 맥주를 마시고 잔을 내려 놓는다. 가나하의 왼쪽에 놓인 병에는 아직 반잔 정도의 맥주가 남아있지만 그것에 손이 가지는 않는다.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고.

          “잘 먹었습니다.”

          “응. 그럼 갈까?”

          “네.”

          “계산은 내가 할께.”

          “감사합니다.”

 

 

 

          돌아가는 길은 따듯했다. 가나하는 만족한 얼굴로 시죠를 본다. 어라? 뭔가 밝지 않은데…

          “생각해보니, 제가 먹고 싶었던 것은 맥주가 아니라 히비키가 언제나 맥주와 함께 먹던 가라아게 였던 걸지도 모르겠군요.”

          “응?”

          그리고 다섯번째의 같은 대답.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