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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마음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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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1, 2016 02:39에 작성됨.

몇 번을 둘러봐도 방 안의 풍경은 바뀌지 않는다.
감옥의 용도는 사람을 가두는 것 뿐만이 아니라, 심심함으로 사람을 미쳐 버리게 하는 목적도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포로나 죄수라도 있다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야기를 할 수 조차 없게 잡혀온 포로는 치하야 하나 뿐이었다.
덕분에 치하야는 무료함에 한껏 시달리고 있었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는지, 하루카도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 식사를 가져다 주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 마족과도 이야기 할 수 있을 테지만 치하야는 이야기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족도 치하야와 이야기 하려 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움직일 공간조차 좁다. 그 사실은 치하야에게 무력감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무언가 해보려 했지만 해 볼 일조차 없다. 그렇기 때문에 치하야는 전쟁의 예상도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하루카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우연히 여기서 발견한 돌 조각으로 벽면에 하나하나 전쟁의 추이를 예상해본다. 마코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보급로를 공격하는 부대는 비룡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들었다. 하루카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장소에 보급로가 분명히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서 이 쯤 떨어진 곳에 또 하나... 있겠지.'


그 수많은 보급물자를 쉴 곳도 없이 계속 이동시켜 갖다주는 방법은 광활한 마계에선 불가능하다. 사막에 가까운 마계의 환경 또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면 보급로는 분명 오아시스를 쫓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이 쯤- 보급대가 쉬고 갈 만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족들로 구성된 부대는 이 쯤에서 보급대를 공략할 것이다.
거기까지 예상한 치하야는 보급대를 공격하는 제 2부대에 관심을 버리고, 본대와 상대하는 제 1부대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하루카가 포함된 부대였다.

 
치하야는 잘 그어지지 않는 돌로 힘겹게, 하루카에게 들은 마지막 본대의 위치를 표시했다. 마치 추격전과도 같은 양상이었다. 하루카가 속한 부대는 일부는 비룡으로, 일부는 처음 듣는 동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들었다. 기동성을 주로 하는 부대이니만큼, 둘러싸면서 한 쪽의 입구는 내 버려 두는 쪽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여태까지의 추격 루트로 보면 인간계로의 돌파구를 만들어 둔 채로 쫓고 있었다. 식량이 없으니 형편없이 쫓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 마계 제 1군의 돌진력을 볼 때 현재 본대의 위치는 이 쯤─

 
"치하야쨩?"

 
그렇게 생각하며 치하야가 벽에 돌로 선을 하나 그을 때, 뒤에서 갑자기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하야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자신이 문이 열리는 소리마저 못 들었다는 사실에 난처해했다. 그런 그녀의 감정은 단 하나의 말로 표현되었다.
 

"뭐야, 하루카였네..."
"네, 하루카씨였습니다!"
"......."
"어흠.. 뭐하고 있었어, 치하야쨩?"
"그냥, 그림."
"...뭘 그린거야?"

 
치하야는 벽을 바라보았다. 돌로 그어진 난잡한 선들로 이루어진, 마치 추상화 같은 것이 그 자리에 있었다. 아까 그리고 있을 때에는 뭔가 확실하게 그린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난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을 자신이 갖고 있는 도구의 빈약함이 아닌 자신의 그림에 대한 조악함으로 해석한 치하야는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어. 오랜만이네."
"응..."
"전쟁은 어때?"


그 질문에 하루카가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에 치하야는 뭔가 틀어진 것이라도 있는지 하루카의 표정에서 알아낼 생각인 듯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하루카의 표정에서 뭔가를 찾아내기 전에 하루카가 먼저 말했다.


"수월할까..? 보급로는 완전히 차단했고, 식량이 떨어진 인간군은 쫓기고 있어. 솔직히, 식량이 없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사기가 떨어질 줄은 몰랐어."
"먹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거든.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안 좋아 보이는데."

 
솔직히 표정만 보면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는 말을 내뱉는 대신 치하야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하루카는 한숨을 내쉬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한 걸까, 라는 짦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루카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치하야는 지금이 식사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식사를 가져다 주는 일도 아닌데 하루카가 자신을 찾아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실에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치하야가 하루카를 바라보자, 그에 재촉된 듯 하루카는 머뭇거리다 내뱉었다.

 
"저어, 치하야쨩."
"응?"
"치하야쨩은, 전쟁에 몇 번이나 참가해봤어?"
 

그 말에 치하야는 잠깐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 이번 전쟁이 내 첫 참전이고... 실제 전투에 투입된 건 5~6번 정도. 그건 왜?"
"그... 누군가를 죽여본 적이 있어?"
"직접?"
"직접."

 
짧은 문답이 오고가고, 치하야는 잠깐 고민하는 듯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있어."
"...괴롭지 않았어?"


그 말에 치하야는 하루카를 올려다보곤 말했다.


".....괴로워?"
 

순간 하루카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것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 말. 피하려 했던 것을 정확히 집어내는 말에, 잠깐 숨을 멈췄던 하루카는 결국 푹 한숨을 내쉬었다.

 
"...굉장히..."


그 말에 치하야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마치 말해보라는 듯 조용히 하루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에 잠깐 머뭇거리던 하루카는 말을 이었다.


"난, 인간도, 천족도, 마족도... 모두 좋아해."
 

한숨과도 같은 고백. 그 말에 치하야는 최대한 무덤덤한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마족이 천족을 좋아한다는 것은 굉장히 희귀한 일이기 때문에 비록 놀랐더라도.


"하지만, 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죽이고 왔어.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고, 그리고 죽여. 최대한 죽이지 않으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인 사람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

 
담담히 말하지만, 하루카의 손 끝은 떨리고 있었다.


"오늘도, 몇 명을 죽였는지 모르겠어... 날 바라보는 그들의 증오스러운 눈빛을, 똑똑히 기억해. 증오하고, 미워하는 그 눈빛이, 도저히... 도저히, 잊혀지지 않아..."


툭, 차가운 것이 하루카의 손 위로 떨어졌다. 하루카는 고개를 떨궜다.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들은, 그들은 날 미워할 거야. 그리고 증오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도저히, 도저히... 미워하고 싶지 않아. 미워하지 않았으면...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 어지럽게 섞였다. 그렇게 내뱉던 하루카는 문득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심정을, 이해해 줄 리 없었다.

 
"미, 미안해.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그렇기 때문에 하루카는 자신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도 못한 채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치하야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것을 치하야가 자신의 말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라 생각한 하루카는 황급히 이 곳을 떠날 인사를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말을 한 것은 치하야가 먼저였다.

 
"미워하지 않아."


그 말에 하루카가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느냔 듯한, 눈물에 젖은 눈동자를 상대로 치하야는 눈을 피하지도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모두가 하루카를 미워해도."


당당한 만큼의 진솔함.
 

"...난 널 미워하지 않아."
 

하루카는 멍하니 치하야를 볼 뿐이었다. 눈동자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흘렀다.
그 모습을 본 치하야는 조용히 손을 뻗어 하루카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하루카가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바라는게 무엇인지 아니까. 미워하지 않아."

 
그 말에도 아무 반응 없이, 마치 인형처럼 멍하니 치하야를 바라보던 하루카는, 그녀의 손이 자신의 뺨에 닿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잡아당겨 끌어안았다. 그리고 치하야는 반항하지 않았다.
따스한 온기가 있는 몸이 품 안에 안겼다. 그 몸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하루카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전쟁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날 미워하겠지?"
"...응."
"이 전쟁 후에, 나는 분명 악독한 마왕으로 인간들의 역사에 남겠지?"
"응."
"이 전쟁 후에... 치하야쨩은...?"


흐느낌이 섞인 그 목소리에, 치하야는 담담히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난 널 미워하지 않을거야."


누구보다도 괴로워 한 게 너이길 알기 때문에.
그 뒤에 숨겨진 말을 이해한 듯, 하루카는 그대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달래듯 어깨를 다독여주는 치하야의 손길을 느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그대로 울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하루카를 바라보며 치하야는 말했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더 악해져야 할거야. 역사상 최악의 마왕이 되야 할거야."
"...으응..."


흐느낌이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 그 대답을 못 들은 듯 치하야는 말을 이었다.

 
"하루카는 분명히 인간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기록시킬거야."
 

수없이 참살하고, 한 군을 전멸시키고, 나중엔 치졸하게 보급로까지 끊고서 식량이 없는 인간들을 좇아 없애 버리는, 그런 전쟁의 주역.


"...그렇지만, 적어도 인간들 중 하나, 난 기억해."
"......"


하루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흐느낌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치하야는 여전히 변함없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인간들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 엄청난 마왕이, 사실은 덜렁이에다가, 순진하고, 어떻게 보면 한심하기까지 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데다가, 쓸데없이 잡다한 거에 신경쓰고, 정도 많아서 아무 것도 못하고, 눈물도 많고..."


험담처럼 들리는 그것에 잠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은 치하야는 한숨같은 말을 내뱉었다.

 
"정말로, 사람을 좋아했다는 거, 기억해."


그 말에 하루카는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품에 안긴-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단 하나의 인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하루카는 자신이 왜 치하야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주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는 태도를 처음으로 취해 보였던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요즘에 먹을 건 제대로 먹고 있는거지?"
"응... 아무래도."
"다행이네."


간신히 진정한 하루카는 치하야에게 본래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그 것은 치하야의 식사에 관련된 문제였다. 전쟁에 참전하고 있고, 왕의 직위를 맡고 있는 이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다른 이가 안다면 비웃을 일이지만, 하루카의 머릿속 한 구석에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치하야는 다른 곳을 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아무래도 난 그런 일을 두 번 당하고 싶진 않거든."


그 말에 하루카는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 맨 처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던 치하야에게 '입으로' 억지로 물을 먹게 했던 일은 치하야에게 있어서 상당히 나쁜 추억인 듯 싶었다.
그리고 하루카 자신 또한 치하야가 다시 한 번 단식을 감행한다면 똑같은 방법을 얼마든지 시행할 생각이 있다는 점에서, 하루카는 그저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치하야는 흥, 하고 가볍게 내뱉곤 말했다.


"그리고 살아있어야 전쟁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하루카가 전쟁을 수월히 끝내도록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고."
"...응... 치하야쨩에겐 정말 고맙게 생각해."
"..나도 인간을 위해 돕는 것 뿐이니까 됐어. 인간은 이 전쟁에서 이겨봤자 얻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납득시킬 수도 없지. 10년간의 투쟁의 결과는 아무 것도 없다는 선언을 쉽게 믿을 리 없으니까. ..지금 각 위치는 어떻게 돼?"
 

치하야의 질문에 하루카는 기억하는 대로 지명을 말하려 했지만, 마계의 지명을 치하야가 알 리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에 하루카가 당황하자, 잠깐 하루카를 바라보던 치하야는 돌벽을 톡톡 두드렸다. 그 벽엔 아까 치하야가 그리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건..."
"그림이라고 했지만, 대충 그린 지도야. 마계의 지리는 잘 모르니까, 내가 아는 만큼만 그려서 엉망이지만."


그래도 그림 실력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하루카 또한 그림에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그림의 조악함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보단 다른 것에 대해 지적했다.

 
"저 선들은?"
"내가 예상한 전쟁의 진행 상황일까... 그러니까, 이 곳이 마왕성이고... 계속 추격을 지속했다면, 이 쯤에 본대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 진행 상황은 어때?"


치하야가 툭, 하고 가리킨 곳을 가만히 보던 하루카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치하야의 예상은 정확했다. 그림이 엉망이라 잘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분명히 그 곳은-


"정확하네. 지금 현재 인간군의 본대는 리코타 평원에 주둔하고 있네. 여기서 계속 급박하게 밀어붙였다간 곤란해 질 것 같아서, 타카네씨에게 전권을 일임하고 잠시 마왕성의 상황을 보러 돌아왔지만... 어떻게 여기쯤이랄 걸 알았어?"
"대충... 추격하는 속도를 본다면 이 쯤이라고 생각했어. 잠시 쉬는 건 잘 생각했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해지면 역으로 덤빌지도 모르니까. 천천히 쫓으면서 포기하게 만드는 게 관건이야."
"응..."


치하야의 말에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똑같이 지도를 바라보던 치하야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지도 위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갔다.


"이런 식으로 추격하면... 나오는 것은, 이 협곡."
"애스터리스크 협곡.. 치하야쨩이 잡혔던 곳이구나."
"응. 여기까지 쫓기면 슬슬 인간군도 회의를 느끼기 시작할거야. 완벽히 패하고 도주하는 셈이니까. 그런데 이 협곡 알고 보니까 오아시스랑 가까워서, 그곳의 보급대와 합류하면 곤란해질지도 몰라. 이 근처에 있는 오아시스, 그러니까..."
"그린 브리즈 호야."
"그런 이름이야? 내 생각에 마계에서 물을 구하는 건 흔치 않으니까, 그 주변에 보급대가 쉴 수 있는 곳이 있을거야. 그 곳과 본대가 합류하면 장기전이 될 것 같아. 그 쪽엔 진료소도 있고, 신관들도 몇 명 합류해 있을테니까. 회복할 수 있으면 사기를 회복할테니까 곤란해지겠지. 그러니까, 그린 브리즈 호... 라고 했던가. 그 곳으로 가는 길을 끊어야해. 이 중간 지점에서 마코토랑 합류하면 좋을 거야."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나가는 치하야의 손을 바라보며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치하야는 손을 내리곤 말했다.


"아니면 아예... 그린 브리즈 호 근처에 주둔하고 있을 인간군을 없애는 방법도 있지만..."


치하야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말 끝에 이어지는, '나는 그 방법을 권할 수 없다, 인간이니까'라는 치하야의 말을 들은 듯한 느낌을 받으며 하루카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애스터리스크 협곡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 생각난건데.."
"응?"


잠깐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 치하야는 그 말에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치하야의 표정에서 어두움이 조금 가신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하루카는 말을 이었다.


"치하야는, 애스터리스크 협곡에서 미키의 비룡을 죽였었지?"
"응? 아... 아. 그랬었지."
"어떻게 그 비룡을 죽인거야? 그 비룡은 강화종인 리인포스 와이번인데... 그 비늘은 분명 치하야쨩을 잡았을 때 갖고 있던 무장으로 뚫을 수 없었다구."
"그렇겠지..."
 

그 말에 치하야는 가볍게 수긍했다. 그러나 정작 질문의 내용엔 대답하지 않는 치하야에 하루카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자, 치하야는 하루카를 바라보다 물었다.


"그건 왜 물어봐? 새삼스레."
"응? 아, 그게. 우리들의 사육사가 그걸 매우 궁금해하고 있거든."
"사육사? 무슨?"
"비룡의 사육사야. 비룡을 교육하고, 길들이며, 동시에 그 품종을 개량하기도 해. 사육사들은 리인포스 와이번은 비룡의 최종적인 개량형이고, 가장 우수한 품종이며, 인간의 실력으론 절대 죽일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던 듯 해서 매우 궁금해 하면서 나에게 부탁하더라구. 좀 물어봐 달라고."

 
그 말에 치하야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하루카도 쓴웃음을 지었다.


"난 그 비늘을 관통한 적 없어."
"응? 그러면...?"
"비룡의 비늘 사이를 노렸을 뿐이야."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하루카가 그를 바라보았다. 치하야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이 그려놓은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두꺼운 비늘이라도, 틈새가 있기 마련이야. 그 안에 있는 건 다른 비룡과 다를 바 없는 살이라고 생각했어. 그럼 제대로 찌르면 죽을거야. 그래서 비늘의 역방향으로, 심장을 노려서 창을 찔렀을 뿐이야. 뭐, 확률없는 도박이었지. 만약 안에 있는 살까지 단단했으면 비룡한테 씹어먹히지 않았을까."


담담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치하야를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던 하루카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하루카를 힐끗 바라본 치하야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언제쯤 다시 출전해?"
"일단 전권은 타카네씨에게 일임했고, 보급로는 이미 차단한 상태라 급히 서두를 것도 없으니... 내 상태도 상태고, 한 삼사일 뒤에나 다시 출전할 것 같아."
"그래? 꽤 오래 쉬네."
"응... 그리고 마왕성에서 할 일도 있고."


그 말에 치하야는 무슨 일이냐는 듯 하루카를 돌아보았다. 그 일에 대해 궁금해 할 권리는 분명 포로인 치하야에겐 없을 것이 틀림없지만, 대상이 하루카인 이상 자연스레 그런 반응이 나와 버렸다. 그리고 하루카는 그녀의 예상대로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작전에 대해, 모두가 만족했거든. 그렇기 때문에-!"
"때문에?"
 

그리고 하루카가 그렇게 태연하게 말했던 것은, 단순히 하루카가 바보라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치하야는 바로 깨닫게 되었다.


"잠깐 치하야쨩의 외출이 허락됐어. 그리고 그것에 동행하는 것이 바로 하루카씨랍니다!"
 

그 말에 치하야는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루카는 태연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치하야는 마족들 전부가 경계심이라곤 전혀 없는 건 아닐지 심각한 의문에 빠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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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리스크 협곡이니, 그린 브리즈 호니...뭐 여기저기 유닛이름에서 따오기는 하지만

그게 뭐 사실 딱히 중요하지는 않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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