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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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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3, 2016 00:12에 작성됨.

※ 하루카「나 말야, 765 프로덕션이라는 곳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어」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안 읽으셔도 일단 즐길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역시 이전 글을 읽은 후에 읽어 주시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

 

이렇다 할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었다.
키사라기 치하야는 아래로 늘어뜨린 오른팔을 힘없이 부여잡고서 창문을 통해 사무소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들은 드문드문 도로를 지나갔고, 어디론가 분주히 걷는 행인들도 가끔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와 같은 광경이다. 당연히 일부러 구경해 봤자 재미도 뭣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분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좋겠지 싶었다.
단순히 무료할 뿐이라면 대화라도 하면 될 것이다. 실제로 사무소에는 사무원인 코토리가 있었지만,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대화 같은 걸 하려고 해도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다. 치하야는 그렇게 자각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따금 별다른 이유조차 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마는 때가 있는 것이다. 우울, 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럴 때엔 의사소통조차 만족스럽게 할 수 없고, 따라서 일을 할 때도 적잖이 걸림돌이 되어 버린다. 프로듀서나 관계자들에게 폐가 되는데다 무엇보다 치하야 자신에게도 곤란하다. 그렇다고 해서 돌연 찾아오는 이러한 침잠에 저항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치하야는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자신이라면, 그것은 받아들이고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이렇게 이유도 없이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바깥에 시선을 보내는 것 역시 아마 그 일환이리라고 치하야는 추측했다. 문득 어항 속의 열대어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다들 분주히 움직이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유리 너머가 바깥일지 안쪽일지, 어항 속에 있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일지 열대어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할 테니까.
스스로가 조금 우스워졌다. 이런 걸, 감상적이 되었다고 하는 걸까?
표현에는 그다지 해박하지 못하다. 심정을 어떻게 나타내면 좋을지 몰라 미간을 약간 찌푸리던 치하야는, 그 직후 자신도 모르게 입을 작게 벌렸다.


「… 어?」


행인일 뿐이라는 생각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녀가 사무소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갈색의 단발에 새빨간 리본을 묶은, 치하야와 동년배로 보이는 아이다. 세세한 생김새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를… 보고 있는 걸까.」


중얼거린 혼잣말에 반응하듯이 소녀가 고개를 내려, 치하야는 흠칫했다. 주저하는 듯이 머뭇거리던 소녀는 이내 결심을 굳혔는지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치하야는 창문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본 것인지 코토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치하야? 왜 그러니?」
「… 아뇨, 아무 것도.」


지금부터 저 아이가 사무소로 찾아오는 걸까. 아니, 반드시 여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여기라면 어째서? 혹시 동료들 중 누구나의 팬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


이상하다. 그저 누군가가 방문할 뿐인데 이렇게까지 동요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키고 치하야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러나 시선은 계속해서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그저 신경이 쓰였다.
그 아이는 누구일까.
왜 사무소에 찾아온 걸까.
왜 그런,
눈을.


눈?


「아아.」


그랬다.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던 이유를, 치하야는 그제야 깨달았다.
명백하게 사무소 방향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그 소녀.
그 소녀가 보내고 있었던 눈빛은,

 


***

 


─ 우리들은 '진짜 우리'로

─ 너와 만나고 싶은 거야

 


너의 그 말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치하야.

 


올려다본 사무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왜소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들어선 건물 안,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한참이나 응시하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채찍질해 겨우 한 계단을 디뎠다. 그것만으로 벌써 마음이 꺾일 것 같았다. 꾸욱, 힘을 넣어 움켜쥔 손 안이 땀으로 축축했다. 정적으로 인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이다. 날 여기까지 이끌어 준 그 아이를, 그 말을 떠올리면 이런 것쯤.


「… 할 수 있어.」


자신에게 되뇌고서, 한 계단을 더 올라갔다.


「기어이 왔구나, 하루카.」
키쿠치 마코토가 비웃었다.


한 계단을 더 올라갔다.


「절대 좋은 꼴은 못 볼 텐데, 대단한 거야.」
호시이 미키가 이죽댔다.


한 계단을 더 올라갔다.


「하루룽은 진짜 바보라니깐.」
후타미 자매가 손가락질했다.


한 계단을 더 올라갔다.


「질리지도 않는구나, 너.」
미나세 이오리가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다.


계단을.
한 계단을,

 

더.

 

 

「하아… 하아… 하아…!」


어느샌가 계단이 꺾이는 부분까지 다다라 있었다. 힘이 풀릴 듯한 무릎을 짚고 몸을 구부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억누르기 위해 가슴 위에 손을 대고 강하게 눌렀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처음 발을 들였을 때와 같은 정적만이 주위를 감돌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유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멈출 수 없다.
'이런 것'에, 지지 않아.


얼핏 보이는 철제의 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서 계속해서 발을 내딛었다.
한 계단을 올라갔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나을 거예요.」
■카츠키 야■이가 측은■ 눈빛을 보■■.


한 계단을 더 올라갔다.


「사실은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으면서.」
하■■라 유■■가 조롱■다. 그만해.


한 계단을 더 올라갔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텐데, 왜 그러는 거야?」
■■■■나하■■키■가■■했■■■어째■?


한 계단을 더 올라갔다.


「하루카.」

 

 

「힉──」


극심한 공포로 몸을 움츠렸다.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할 수만 있다면 고막을 찢어내서라도 이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눈물이 맺힌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았지만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너 같은 애는.」

 

「그만… 해…」
그 목소리로.
그 목소리만큼은.
나를 부정하지 말아 줘.


「■ 같은 ■■, ■이돌이 될■수■■■■」


듣지 못했다. 듣지 않았다. 그 다음은 듣지 못했어 듣지 못했어 듣지 못했어.
넘어질 듯 휘청거리며, 계단을 손으로 짚어 가며, 네 발로 기다시피 남은 계단을 단숨에 올라갔다.


「윽, 아──」


엉망진창으로 뛰어올라간 탓에 내팽개쳐지듯 바닥을 굴렀다. 필사적으로 자세를 바로잡은 후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등 뒤에서 그 아이가 지켜보고 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 싫어 돌아가야 해 돌아갈 수 없어 어차피 나 같은 건 이 안에 그 아이가 열기만 하면 이 문을 열기만 하면.
치하야.
난 겨우,
여기까지.


불투명한 창유리에 765 프로덕션이라는 글씨가 검게 붙어 있는 문을.
문고리를 돌려, 열어젖혔다.

 

그 아이는 그곳에 있었다.


***


치하야는 비로소 소녀와 처음으로 마주했다.
부드러울 것 같은 갈색 단발에 새빨간 리본을 양쪽으로 묶었다. 머리를 묶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단순한 액세서리일 것이다. 말끔한 피부에 갸름한 얼굴, 동그란 눈을 가진 귀여운 아이였지만 그런 인상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정도로 소녀는 처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뒤섞인 듯 소녀는 일그러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눈가에는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분명히 사무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런 상태가 아니었을 텐데. 소녀가 극한까지 몰아붙여진 원인이 치하야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소파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치하야, 열린 문에 쓰러지듯 기대 헐떡이고 있는 소녀, 깜짝 놀란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코토리─ 셋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부자연스러운, 그러나 쉽사리 깰 수 없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 아.」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사무소에 뛰어든 소녀였다. 짙게 드리워져 있던 두려움이 서서히 소녀의 얼굴에서 걷혔다. 그 직후 소녀가 지은 표정은, 그럼에도 결코 밝지는 않았다. 소녀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이제, 안, 들려.
치하야에게는 그렇게 말한 것처럼 보였다.

 

「에에, 음, 그게… 저기.」

「당신은…?」

 

할 말을 잃고 있던 코토리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을 걸려고 했지만, 치하야는 그것을 끊듯이 앞으로 나섰다. 초점이 흐릿하던 소녀의 시선이 치하야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친 소녀는, 어째서인지 그대로 굳은 채 한참이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두려움은 아니다. 방금까지와는 다른 이유다.
그 연녹색 눈동자 안에 서린 것을, 치하야는 어렵사리 읽어낼 수 있었다.
경악이다. 저 소녀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무언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놀란 것이다. 하지만 그래선 이상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가 응시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치하야 자신이었으니까.
면식이 없는 아이다. 단순히 아이돌을 직접 보고 놀란 것이라고 하기엔, 자신은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유명한 몸은 아니다─라고 치하야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소녀를 저렇게까지 당혹스럽게 한 걸까.
모르겠다.
이해되지 않는 일뿐이다.


「… 치… 하야……」
「…?」


이름을 불러졌다.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돌로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처음 보는 사람이 이름을 알고 있는 것 정도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마치 자신도 모르게 흘러넘치고 만 것 같았던, 치하야의 이름을 부른 소녀의 한 마디는 결코 초면인 사람을 보았을 때의 그것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 마치,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듯한─ 아니 그 이상으로,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과 맞닥뜨린 것 같은.
분명히, 처음 보는 아이일 텐데.


「누구… 신가요?」
「…!」


치하야의 질문에 멍하니 있던 소녀가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서인지 조금 실망한 것 같은 얼굴이 된 소녀가 속삭이듯 읊조렸다.


「… 하루카예요.」
「… 하루카?」
「아마미 하루카… 예요…」

 

겨우 그 말만을 끝맺고, 자신을 하루카라 밝힌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치하야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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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저렇게 끝내는 건 아니지 않은가. 좋은 이야기를 이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미련이 남아 쓰고 말았습니다

몇 편이 더 이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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