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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사와 후미카 "리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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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1, 2016 21:11에 작성됨.

아무도 없는 거실 안에서 꼬마 아이는 아무도 없는 테이블보가 깔린 식탁 의자에 홀로 앉아 집안 구석에 위치한 피아노가 혼자서 연주를 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누군가 올 때까지, 누군가 와도 끝나지 않을 달콤하면서도 절망으로 치닫다가 끝내 환희로 이어지는 비음의 선율을 듣고 있었다.
 
 
"음악실에서 하나의 피아노 연주가 하는 선율을 듣고 있으니.. 어때요?"
 
 
처음 듣는 목소리가 아니다. 익숙한 목소리. 내가 아는 사람, 동경하는 사람. 그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리스의 두 눈을 까칠까칠한 안대로 살포시 가렸지만 꼬마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가 나가기 전에 명령했던 자세를 고수하면서 뿌리칠 생각도 머릿속에 들지 못한 채 순순히 두 손을 가지런히 두 무릎에 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 좋아요"
 
 
꼬마 소녀가 내뱉은 말에 그녀의 눈을 안대로 묶고 있던 사람은 흡족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주머니에서 파란색 천을 하나 더 꺼내어 이번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의자에서 일어나게 한 다음에 손등이 하늘로 가게 만들고 족쇄처럼 손목 부분을 단단히 묶기 시작하였다. 꼬마는 불안하였다.
 
 
그 불안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눈과 손을 묶기 시작한다는 위협의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을 나가기 전에 어머니가 명령하고 당부하였던 착한 아이 자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로 억지로 움직였기 때문에 더더욱 당항스러웠다.
 
 
"건물 바깥으로 나와 창문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들으면 어때요?"
 
 
타치바나 아리스는 자신의 셔츠 속으로 갑자기 바람이 들어왔기에 두둥실하고 끝자락이 움직여 간지러운 느낌이 들자 음악실 안에 있다가 건물 바깥으로 나온 걸 눈치로 깨달았다.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 소리는 비록 가까이가 아니었지만 거리가 멀어져도 듣기엔 좋았다. 오히려 조금 더 은은하게 들리는 맛에 꼬마 소녀는 무서움도 잊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듣기 좋아요"
 
 
그녀의 두 손을 파란색 천으로 묶고 있던 사람은 또 흡족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주머니에서 이번에는 보라색 천을 하나 꺼내어 그녀의 두 발목에 천천히 묶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음악실 옆에 또 하나의 음악실이 있고 거기에서 똑같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리면 어때요?"
 
 
하나의 피아노만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대의 피아노가 동시에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꼬마 소녀는 그 음악을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던 것 같았지만 곡의 제목이 기억나질 않았다. 허나 확실한 건 아까보다 울림이 더욱 힘차고 좋아졌다는 것. 때때로 귀가 아플 정도로 강도가 세졌다.
 
 
"조금 귀가 아프지만, 듣기 좋아요"
 
 
그녀의 두 발을 보라색 천으로 묶고 있던 사람은 또 흡족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주머니에서 이번에는 노란색 천을 하나 꺼내어 그녀의 오른쪽 눈을 천천히 묶기 시작하였다.
 
"후, 후미카 씨..?"
 
꼬마 소녀는 순간 묶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눈동자를 손가락으로 도려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예감인 채로 끝났다.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머릿속에서 울린 괘종시계의 음색 때문에 그런 것일까. 두 눈이 가려졌는데도 왜 한 쪽 눈을 한 번 더 감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가 말한 대로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후미카의 뜨거운 숨이 귓가에 주입되자 아리스는 그 숨이 자신의 입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 방, 밑의 있는 음악실에서 피아노들이 똑같이 연주했던 선율과는 다른 선율을 연주하는 트럼펫 소리가 들리면 어때요?"
 
 
그녀는 오직 귀로만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다만 피아노 소리를 다 잡아먹을 것 같은 트럼펫 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리기 전에 꼬마 소녀는 지레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그녀에게 그러면 피아노 소리가 사라지니 잘못되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말 대로 트럼펫의 소리가 서서히 크게 들리기 시작하더니 신기하게도 피아노의 죽어가는 선율과 신기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꼬마 소녀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마법처럼 이루어진 소리 때문에 이내 만족감이 어렸기에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갈 정도로 행복감을 느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 좋아요...."
 
 
꼬마 소녀는 이번에는 자신의 눈을 천으로 묶고 있던 사람, 사기사와 후미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웃는 소리가 들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후미카라고 생각했던 여자의 입에서 무섭게, 귀신처럼 우는 소리가 나오니 소름이 등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지렁이 수백만 마리가 자신의 등을 타고 올라와 머리카락 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에 소녀는 바로 입을 벌려 무기력한 비명을 지르려고 하였다.
 
 
자신이 그리워하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였다. 하나밖에 없는 부모님은 분명 어떤 상황이든 자신을 구해줬었다. 버팀목이었다. 다만 비명을 지르려고 한 순간 후미카라고 생각했던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입안에 재갈물린 천이 들어오고 말았다.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그 방, 옆에서 누군가 커다란 트라이앵글을 치고 있다면 어떠니"
 
 
"으으읍..!!!"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두 눈을 천으로 묶고, 두 손을 천으로 묶고, 두 발을 천으로 묶었던 사람이 우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두 볼을 쓰다듬다가 광기에 맛들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자 꼬마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이 사람은 사기사와 후미카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
 
"말해봐요"
 
 
물음에는 답해야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끄덕였다. 소녀는 작은 트라이앵글 소리라면 트럼펫의 기센 소리에 묻혀 조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자신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후미카에게 전해질 거라 생각했던 아리스는 눈을 떠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 소리가 조화를 깨트리면? 방 안에서 들었을 땐 좋았던 소리가 건물에서 나오고 한 눈에 바라보고 한 귀에 들어보니 어떠니, 하나의 선율만을 들으면 아름답지만 네 개의 선율, 어쩌면 수 백개의 선율이 한 꺼번에 각자 내고 싶은 소리만을 내면 어떠니? 끔직하니? 기분 좋니?"
 
 
"만약 어둠이 내려온 밤에 그런 상황이 연출되면 어떨까요?"
 
 
 
 
 
 
"무서워요 아리스?"
 
"후미.. 카 씨.. 읏..."
 
"걱정하지 마세요. 익숙해지면 듣기 좋아질 수도 있으니, 익숙해질 때까지 아무도 찾지 못 하는 지식과 늪의 사이에서, 쭉.."
 
 
꼬마 소녀는 말할 틈이 없었다. 무섭게 슬피 우던 한 사람은 이내 처음으로 자신을 되찾은 듯이 만족한 웃음 소리를 내었다. 묶고 있는 천은 풀어주지 않은 채. 영원히 들리는 불협화음을 즐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입에 자신의 입을 테이프로 붙이는 것처럼 가볍게 붙이며 다시 의자에 앉혔다.
 
 
방 안이 아니라 건물 바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고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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