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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미식가 7화 - 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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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5, 2017 16:24에 작성됨.

아이디어 제공에 감사드립니다!(Sephia님)

 

*

"프로듀서님, 괜찮으신가요?"

 

"아, 미나미..."

 

야심한 시각, 사무소 내에서 섹시를 담당하고 있는 닛타 미나미가 프로듀서에게 다가온다. 프로듀서는 일을 하면서 배고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각에 무언가를 먹으러 갔다간 잠을 자지 못해버려. 프로듀서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미나미의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쳐다본다. 천연의 색기가, 포근한 모성에 뒤덮여 알 수 없는 시너지를 낸다. 다음에는 이런 노선으로 해서 일을 잡아볼까, 프로듀서의 직감을 잠시 빛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배가 조금 고파서-"

 

"어머, 그럼 녹차라도 한 잔 드시겠어요?"

 

"애석하게도, 내 몸은 카페인을 넣으면 그 날 밤을 새우게 되어서 말이야."

 

"아, 그러신가요..."

 

프로듀서의 말에 미나미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하지만 사람마다 약간의 이상체질은 있다고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미나미를 아이돌로 만들어서 그녀에게 섹시 노선으로 가자고 말했을 때에도 저런 표정을 지었었지. 뭐, 그 일의 경우에는 지금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도 그는, 지금 배가 고프다. 하지만 무언가를 먹으면 안 돼. 그 영원한 순환논리에 휩싸여, 프로듀서는 피곤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표정을 본 미나미가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묘한 색기가 더 강해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여리고 흰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댄다. 날씨가 날씨이니만큼 감기에 걸리는 것을 걱정한 것일테다.

 

"열은 없으시네요."

 

"그냥 배가 고픈것 뿐이라니까."

 

"그런가요. 그럼 적절히 야식을 드실 수 있는 곳을 안내해 드릴까요?"

 

"음?"

 

뜻밖의 미나미의 말에, 프로듀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본다. 간단히 배를 조금 부르게 할 수 있는 곳이라니. 웬만한 미식가 뺨치게 혀가 민감한 그로서는, 약간은 신용이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다. 프로듀서의 표정을 본 미나미가 살짝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전혀 믿겨지지가 않으신가요?"

 

"아, 아아, 그게 아니라..."

 

"프로듀서씨는 대식가시니까, 웬만한 곳의 양으로는 배가 차지 않으시겠죠."

 

"아, 뭐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소개해드릴 곳은, 저같은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까요."

 

"흐음..."

 

미나미의 말을 듣고 프로듀서는 한 시름 놓는다. 돈 없는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면 싸고 양도 푸짐할테다. 맛은... 어느정도 감수하는 수밖에 없겠지. 안 그래도 돈도 다 떨어졌고, 미나미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 그 곳이 어딘데?"

 

"그 곳은-"

 

*

와 버렸다. 와 버렸어! 드디어 미나미가 소개한, 비장의 맛집을 와 버렸다!

대학 캠퍼스 근처의 골목이라, 젊은 사람들의 풋내가 가득 느껴지는 것만 같다. 활기찬 대학 주변의 공기. 젊은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 으음, 나랑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들어가서 가게 분위기를 좀 체크해볼까.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점심시간이라 학생들이 바글바글하다. 주방은 꽤나 분주하고, 양복 차림새의 남자는 나 뿐이다. 이런 곳에 내가 와도 되는걸까. 나는 갑자기 이 곳에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업하고 싶어진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도착하면 늘상 드는 생각이다. 어디 보자, 그럼 생각난 김에 이 곳에는 원석이 있는지 찾아볼-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아, 그렇지. 나는 여기에 밥을 먹으러 왔다. 영업이야 나중에 하면 되는 것이고, 지금은 이 가게에서 나는 라멘의 냄새부터 음미해보도록 할까. 으음, 진한 사골 육수 냄새... 라멘의 맛은 단 두 가지가 지배한다. 육수의 맛과, 면의 탱글탱글하고 쫄깃쫄깃한 식감. 육수의 냄새를 맡아보니 첫 번째 난관은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다. 으음, 점점 배가 고파진다...

 

"배가... 고파졌다..."

 

"예?"

 

"아, 아닙니다. 한 명입니다. 자리가 있을까요?"

 

"그럼요. 그럼 이 쪽으로 따라오세요."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안내에 따라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진한 육수의 향이 더더욱 깊게 내 몸을 둘러싼다. 이건 라멘의 늪, 라멘의 덫, 라멘의 올가미!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어! 그래, 라멘에게 이 생을 다 바치리! 이 라멘은 분명히 나를 발할라로 인도할거야!

 

"이 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주문은 뭘로 해드릴까요?"

 

"아, 메뉴판은 어디에..."

 

"저희 가게는 메뉴판은 따로 없고, 라멘의 종류는 두 가지 종류만 있습니다. 사이즈는 손님께서 선택하실 수 있고요."

 

"호오..."

 

과연, 대학가의 가게라 메뉴를 간소화했다는 건가. 그럼 어디, 주변을 둘러볼까.

...아, 돈코츠라멘과 쇼유라멘인가. 흐음, 어느 쪽도 맛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주문한다?

 

"아주머니, 여기 쇼유라멘 하나 주세요."

 

"저는 쇼유라멘 먹었으니까 돈코츠라멘으로요."

 

"네, 알겠습니다-"

 

호오, 과연! 그런 방법이! 그래, 두 가지 맛이 있다면 둘 다 먹으면 되는거지! 양을 조금만 적게 해서 먹으면 문제 없을거야!

 

"죄송합니다, 저도 주문하겠습니다."

 

"네, 뭘로 하시겠어요?"

 

"쇼유라멘 보통으로 하나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문을 받은 종업원 아주머니가 총총거리며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흐음, 여기의 여주인인가.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저 사람을 스카우트할 것도 아니고. 그보다, 주변을 둘러봐 영업할만한 인재를 발견-

 

"네, 여기 쇼유라멘 보통 나왔습니다-"

 

"빨랏?!"

 

분명히 주문을 받은지 1분도 안 지난것 같은데 어떻게...? 미리 내가 올 것을 예측이라도 했단 말인가?!

...뭐, 그럴 리가 없겠지. 육수는 미리 만들어놓고, 면만 재빠르게 익혀 내온 것일테다. 그래야 우루루 몰려드는 대학생들에게 값싸고 편하게 라멘을 내올 수 있을 테니까. 약간은 인스턴트같은 맛이겠군. 뭐, 예상은 했지만. 그럼 면을 한 번 먹어볼까.

...으음, 역시나 면은 조금 인스턴트의 맛이 나긴 하는군. 뭐, 그래도 먹지 못할 수준의 식감은 아니야. 빠른 시간에 나온 것치고는 면의 질감도 부들부들하고, 육수도 생각보다는 잘 배어들었고. 무슨 면을 쓴거지. 뭐, 하여튼 나쁘지 않군. 그럼 국물의 맛은 어떨지 한 번 볼까...

오오, 이 맛은... 내 생각대로의 진하고 짭짤한 맛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짜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가 나에게는 딱 맞아. 으음, 몇 번이고 먹고 싶은 맛이군. 예의가 아니지만, 그릇째로 들고 국물을 먹어볼까. 「후룹후룹-」 으음-. 딱 좋은 따뜻함과 맛이다. 과연 미나미. 나를 이 정도까지 파악하고 있었을 줄이야... 대단한걸.

이런 멋진 가게를 소개해준 미나미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감사해하며 라멘을 먹는다. 맛있는 라멘, 맛있는 라멘.... 후후, 나도 참 묘하게 들떠 버렸군. 쇼유라멘이 들어있었던 그릇을 쳐다보니 언제 해치웠는지 완전히 비어있다. 이것 참, 돈코츠를 먹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군.

 

"저기, 죄송합니다. 주문 좀 하려고 하는데요."

 

"네, 뭘로 드릴까요?"

 

"돈코츠라멘 대로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의 주문을 들은 종업원 아주머니가 총총거리며 또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곧 나타나겠지. 내 몫의 돈코츠라멘을 들고 말이야.

 

"돈코츠라멘 대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뜨끈뜨끈한 돈코츠 라멘이 내 앞에 놓여진다. 대로 시켜서 그런가, 생각보다 양이 많아보인다. 하지만 나는 면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 이 정도 면의 양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 면을 먹기 전에 일단 국물부터. 「후루루룹-」 음, 역시 딱 적당한 짭짤함의 맛이다... 따뜻하고 기분 좋아지는, 그런 푸짐한 기분.

면을 먹는다. 돈코츠에 담가져 있던, 그 짭짤하고도 구수한 맛을 품고 있는 면을 먹는다. 아, 기분 좋아... 이 곳은 왠지 또 찾게 될 것만 같다. 그런 따스하고도 훈훈한 기분이, 이 곳에는 언제고 남아있을 것만 같다. 미나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나는 라멘을 먹는다. 돈코츠라멘 대가 천천히 비워져간다. 구수한 향이 나를 천천히 싸고 돈다. 오늘의 식사는 이것으로도 충분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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