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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3, 2015 00:20에 작성됨.

 
 당신은 항상 떨어지는 별을 보고 있었습니다. 별이 떨어지는 일이 그리 흔한 일도 아니라지만 저의 기억 속에서 별이 떨어지는 하늘 아래에는 항상 당신의 옆모습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푸르게 빛나는 달 아래 입김이 하이얗게 퍼지던 밤이었습니다. 조용히 부는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그 외에는 온 세상이 고요한 날이었지요. 서로의 숨소리와 심장의 고동소리만이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울렸습니다. 저는 그때, 어쩌면 그전부터 계속, 바랐습니다. 차라리 저 유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당신의 그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타들어 가며 죽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처음 본 것은 좁은 사무실 구석의 소파 위에서였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흐드러진 채로 자고 있던 모습이었죠. 그런 당신의 모습을 보고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은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손이 떨렸습니다. 운명을 느꼈다고 해도 괜찮겠네요.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찾아낸 듯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저를 여기로 이끌었다고 믿어질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부터 당신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신에게 직접 말을 걸 용기 한 조각조차 없던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당신의 나이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무소의 연습생이라는 것까지 알아냈습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도 당신과 더욱 가까워질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신을 믿지 않았던 제가 처음으로 신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였습니다. 저는 어색한 기도로 당신을 만난 일을 축복했습니다.
 
 저는 사장님에게 곧바로 달려가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은 곤란해하셨습니다. 당신은 아직 데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제멋대로에 철도 아직 들지 않아서 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무리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억지를 부렸습니다. 제가 당신을 지켜보겠다고, 그래도 당신께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면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코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사무소를 관두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말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그런 저의 무례한 태도에도 어쩔 수 없다며 한숨 섞인 웃음을 지으시며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당신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후회도 들었습니다. 당신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제멋대로여서 사장님 말씀을 듣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데뷔도 하지 못해서 일거리는 없고 해야 하는 레슨은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당신은 데뷔를 하고 싶다고 했었지만,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채로 뛰어들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곳임을 알고 있었기에 참고 견디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럴수록 당신의 태도는 점점 나빠져만 갔고 준비는 점점 늦어졌습니다. 재능은 있지만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패한다고 생각했기에 저의 마음속에는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의 관계가 악화되어가기만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저는 제 뜻을 굽히기로 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실패뿐이라는 불안한 생각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재능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 화려하게 빛나는 재능이라면 처음 한 발을 억지로 내디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바꿔놓을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히비키와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 명이 모여 데뷔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저와는 달리 밝고 긍정적인 그녀와 함께라면 당신을 잘 이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명의 춤을 세 명의 무대로 만드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데뷔가 결정되었다는 이야기와 새로운 동료와 만났다는 즐거움에 당신도 조금은 적극적인 모습이라 세 명의 유닛이 만들어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맞이한 데뷔 무대에서, 저의 기대는 무참하게 부서졌습니다. 제가 상상하지도 못한 압도적인 재능과 매력으로 이루어낸 성공적인 데뷔 앞에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당신을 처음 봤을 때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당신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습니다. 세 명이 함께 이뤄낸 성공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당신이 억지로 따낸 성공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실감했습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있던 건 저 자신이라고. 노력이 더 필요한 건 저라고. 제가 당신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힘껏 뒤에서 받쳐주는 것이 올바르다고. 
 
 지금 떠올려보면 너무나도 어렴풋하게 느껴져서 그 감각을 잘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저 자신인가 하는, 정말로 제가 그런 일을 해냈다는 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습니다. 그만큼이나 믿기지 않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당신은 제게 있어서 동료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감정이 넘쳐 흘렀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걸 깨달아버린 까닭에 열등감으로 몸서리쳤습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것은 저 머나먼 '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당신이 저를 돌아봐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절망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마음은 언제까지고 닿을 리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도, 저는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포기할 수 없던 것이 아니라 떼어내고 버려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당신으로 가득 차버린 붉은 마음은 심장을 뜯어내 죽은 후에 검게 물들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순간 이후로 제게는 아이돌 활동이나 유닛 같은 건 전부 당신과 가까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분명히 저에게도 목표로 하는 바가 있었을 겁니다. 꿈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당신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당신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동료 아이돌도, 프로듀서도, 코디네이터라 해도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은색의 왕녀라는 별칭을 안겨준 일견 고결해 보이는 모습도, 전부 당신의 빛에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필사적으로 그런 거짓을 꾸며내지 않으면 당신이라는 커다란 존재 앞에서 저는 너무나도 무력하고 작아 보여서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자신은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별은 스스로 빛나는 존재를 말합니다. 밝게 빛나는 태양도 별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달의 빛은 다른 존재의 빛을 빌려 온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될 수 없습니다. 영원히 누군가의 곁을 도는 존재일 뿐입니다. 누군가의 빛을 필사적으로 비춰내지 않으면 검고 무력하고 아름답지 못한 존재일 뿐입니다. 저는, 그런 달과 같았습니다. 
 
 
 이후로도 세 명은 성공을 계속해나갔습니다. 많은 부와 명예와 인기를 얻었습니다. 어느 순간이었을까요, 문득 저는 당신이 그 모든 것들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이유는 아직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져서였을까요? 당신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당신은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당신 가장 가까이에 있던 건 저였으니까요.
 
 결국 당신은 휴식을 선택했습니다. 사장님도 프로듀서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까요. 그때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자그마한 예감이었지만 그것을 믿고 조금만 더 빠르게 움직였더라면.
 
 당신은 돌아왔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도, 주변 사람들도, 그 일련의 행동들을 스트레스 해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저희 앞에서 보이는 느긋하고 밝은 모습 뒤에도 분명히 고뇌와 불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째서 당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이제 와서 후회해봐도 늦은 일입니다.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치솟던 유닛의 인기도 사그라졌습니다. 물론 크게 실패를 하거나 추락하는 일은 없었지만 더는 오르는 일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더 오를 곳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안정세라는 것이 찾아왔고 완전무결해 보였던 저희 사이에도 조금씩 틈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신문에 근거 없는 허위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악의적인 억측이 담긴 이야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걱정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은 당신의 긴 휴식 때문이었습니다. 유독 당신이 오랜 시간 동안 보이지 않으면 불화설이나 해체설이 터져 나오곤 했습니다. 저와 히비키는 당신이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개인 활동도 계속했지만, 당신만큼은 어느 순간부터 개인 활동의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당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니, 당신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당신 없이도, 저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일에 열중할 때면 아주 잠깐이라도 당신을 잊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였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는 기대로 부푼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당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부정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면서 강한 척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 이름처럼 유성이 되어 날아갔습니다. 곧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다른 유성과는 달리 샛노란 빛줄기를 하늘에 남기고 날아가버렸습니다. 이제는 제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아득히 먼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저는 날개를 얻었습니다. 빛을 얻었습니다. 모두에게 전해질 목소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빛은, 이 목소리는, 결코 구름 너머의 당신이 있는 곳까지 닿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당신이 제게 준 것은 저 스스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잘라내기로 했습니다. 이런 날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날아올라 빛난다고 해도 당신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립니다. 하지만 거짓의 증거들은 씻어내릴 수 없습니다. 그 푸르른 밤에 당신이 지었던 표정을 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추락하는 편이 좋은 거겠죠. 끝없이 끝없이 새파랗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간다면 그곳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겠죠. 더는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짓눌린 마음은 당신을 떠올리는 일도 없을 테죠.
 
 애석하게도 그 아래에서도 하늘은 보였습니다. 언제까지고 멀어지는 당신과의 거리, 그것이 제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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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노 츠키 - 새장 - In this cage : https://youtu.be/NwioakFMl4c

 
생일이라고 쓴 글인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글이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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